슈투트가르트에서 식민 정책을 거부하고 치머발트에 참가한 독립사회민주당 공동 의장
독일의 사회주의 정치가·언론인. 좌파 자유주의 진영을 거쳐 1891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00~1918년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식민 정책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소수파 수정안을 냈고, 1915년 치머발트 회의에 독일 대표로 참가했다.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 공동 의장이 되었고 1919년 1월 봉기 지도부에 가담했다. 1923~1924년 사회주의자동맹을 세웠고, 1933년 스위스로 망명해 1947년 베른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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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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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1917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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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8
독일 국가기관독일 제국의회 의원
입법·국가 대표 -
1917–1923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91사회민주당에 들어갔다.
- 1900–1918제국의회 의원.
- 1907.08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식민 문제 소수파 수정안을 냈다.
- 1915.09치머발트 회의에 참가했다.
- 1917독립사회민주당 공동 의장.
- 1919.01베를린 1월 봉기 지도부에 가담했다.
- 1933스위스로 망명했다.
식민 정책과 전쟁에 맞서
레데부어는 하노버에서 법원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상업 견습을 거쳐 보불전쟁에 위생병으로 나갔다. 1876년부터 1882년까지 런던에서 베를린 신문들의 해외 통신원으로 일했고, 이후 좌파 자유주의 신문의 편집자로 일하다 1891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 국제사회주의자대회 식민 문제 위원회에서 다수파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문명화 작용을 할 수 있는」 식민 정책을 원칙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결의안을 냈다. 레데부어는 브라케, 카르스키 등과 함께 이 첫 문단을 지우고 「자본주의 식민 정책은 그 본질상 원주민의 예속과 강제 노동 또는 절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문장으로 바꾸자는 소수파 수정안을 냈다. 같은 독일 대표단의 에두아르트 다비트는 다수안을 옹호하며 그의 논리를 공격했지만, 수정안은 127대 108로 통과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전쟁에 반대한 소수파에 속했고, 1915년 9월 치머발트 회의에서 아돌프 호프만과 함께 독일 참가자를 대표해 프랑스 참가자들과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이 세워지자 공동 의장이 되었고, 1919년 1월에는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에베르트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봉기의 지도부에 가담했다. 1920~1922년 독립사회민주당이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갈라질 때 그는 남았지만, 루르 점령 대응을 두고 테오도어 리프크네히트와 다툰 끝에 당을 떠나 사회주의자동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