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머발트 선언 작성에 참여한 이탈리아 사회당 개량파,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형
이탈리아의 변호사·정치가이자 반파시스트. 리보르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형으로 태어났다. 1894년 이탈리아 사회당 리보르노 지부를 세웠고, 개량파 안에서 좌익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해 치머발트 회의에 참가하고 트로츠키, 라코프스키와 함께 선언을 작성했다. 1913년부터 하원 의원으로 아벤티노 탈퇴에 참여했고, 1926년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망명했다. 1947년 이탈리아 노동자사회당 의장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4이탈리아 사회당 리보르노 지부를 세웠다.
- 1898피아첸차에서 체포되어 6개월형을 받았다.
- 1913하원 의원이 되었다.
- 1915.09치머발트 회의에 참가했다.
- 1926의원직을 박탈당하고 망명했다.
- 1944이탈리아로 돌아왔다.
- 1947.01.11팔라초 바르베리니 분열에 참여해 이탈리아 노동자사회당 의장이 되었다.
치머발트에서 반파시즘 망명까지
모딜리아니는 피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가까워졌다. 1894년 이탈리아 사회당 리보르노 지부를 세웠고, 이듬해 시의원이 되어 노동회의소 설립과 토스카나 일대의 사회주의 확산에 힘썼다. 1898년 피아첸차에서 신문을 내다 체포되어 사회당 지도부 전체와 함께 재판을 받고 6개월형을 받았다. 그는 필리포 투라티와 개량주의 노선을 공유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왼쪽에 섰고, 가에타노 살베미니와 가까웠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강하게 반대한 그는 1915년 치머발트 회의에 참가해 크리스티안 라코프스키, 레프 트로츠키와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치머발트 선언을 작성했다. 1913년부터 하원 의원으로 일한 그는 뛰어난 논변과 준비로 1920년과 1922년 하원 규칙 개정에 이바지했다. 1920년대 사회당 내 논쟁에서 그는 개량파와 최대강령파의 분열을 막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21년 5월 1일 피사와 비아레조 사이의 기차에서 파시스트 행동대에게 습격당했지만, 그해 8월 사회당과 파시스트의 화해 협정을 추진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1924년 아벤티노 탈퇴에 참여했고, 1926년 다른 야당 의원들과 함께 의원직을 박탈당하자 변호사로 돌아가 자코모 마테오티 살해 재판에서 사인(私人) 원고 측을 대리했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망명해 반파시즘 선전을 이어가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이탈리아 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