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을 자본에 꼭 필요한 재생산 노동으로 다시 정의해 오페라이스모를 안에서 비판한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1971년 파도바의 노동자 권력 사무실에서 열린 여성 모임에서 보수 없는 가사노동이 자본 축적의 구조적 요소라는 글의 초고를 내놓았고, 이 글은 이듬해 셀마 제임스와 함께 낸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에 실렸다.
1943년 트레비소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페미니스트. 파도바 대학에서 안토니오 네그리의 조교로 일했고, 노동자 권력(포테레 오페라이오)과 함께 활동한 오페라이스모 활동가들 사이에 있었다. 1971년 6월 파도바에서 뒤에 로타 펨미니스타가 되는 여성 모임을 만들었고, 1972년 셀마 제임스와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을 냈다. 같은 해 7월 파도바 국제 회의에서 생긴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을 제임스·실비아 페데리치·브리지트 갈티에와 함께 조정하며 가사노동 임금 국제 운동을 시작했다. 1976년 법학 학위를 받았고 1985년부터 2013년까지 파도바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가르쳤다. 뒤에는 뉴딜 시기 가족 정책, 자궁절제술 남용, 어민 운동을 연구했다.
다른 이름: 마리아로사 달라코스타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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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977
독립 활동대표
사회운동·조직 - 1985–2013
경력 연표
- 1970런던에서 셀마 제임스를 만남
- 1971.06파도바에서 여성 투쟁 운동(뒤의 로타 펨미니스타) 결성
- 1972.03셀마 제임스와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 간행
- 1972.07파도바 국제 회의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 결성
- 1974메스트레에서 연설 「총파업」
- 1976법학 학위
- 1983『가족, 복지, 국가: 진보주의와 뉴딜 사이』 간행
- 1985–2013파도바 대학 정치학부 정치사회학 부교수
- 1998『자궁절제술』 간행
- 2005어민 운동을 다룬 『우리 어머니 바다』 간행
오페라이스모 안에서 왜 페미니즘이 갈라져 나왔나
오페라이스모(노동자주의)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생긴 마르크스주의 흐름이다. 공산당과 노동조합의 지도보다 공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벌이는 투쟁과 노동 거부를 혁명의 출발점으로 보았고, 1969년 뒤에는 노동자 권력(포테레 오페라이오) 같은 의회 밖 좌파 조직으로 이어졌다. 달라 코스타는 파도바 대학에서 안토니오 네그리의 조교로 일했고, 베네치아 맞은편 포르토 마르게라 공업 지대에서 노동자 권력과 함께 정치 경험을 쌓은 활동가들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이 흐름의 계급투쟁은 공장의 남성 노동자만 바라보았다. 1971년 6월 달라 코스타와 동료들은 파도바에서 「여성 투쟁 운동」을 만들었고, 노동자 권력 사무실에서 연 여성 모임에서 그는 보수 없는 가사노동이 자본 축적의 구조적 요소라는 글의 초고를 내놓았다. 1970년 런던에서 만나 편지로 이론 토론을 이어 온 셀마 제임스도 이 모임에 왔다. 그해 7월 모임은 「동네 주부 투쟁 강령」을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내어 돌봄의 사회화, 사회 서비스 확대, 국가나 지방정부가 가사노동에 보수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모임은 1972년 로타 펨미니스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해 7월 로마에서 이들이 연 여성만의 회의에 노동자 권력 로마 지부 활동가들이 몰려와 여성들을 폭행했고, 이 일을 계기로 아직 노동자 권력에 적을 두고 있던 회원들도 9월에 조직을 떠났다. 이때부터 모임은 분리주의와 「페미니스트-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내걸고, 투쟁의 무게중심을 공장에서 「사회」로 옮겼다. 집과 동네가 생산과 전복의 새 장소가 된 것이다. 영어판 위키백과는 이를 오페라이스모에 대한 「내재적 비판」, 곧 오페라이스모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 그 한계를 안에서 드러낸 비판으로 설명한다.
로타 펨미니스타는 북·중부 이탈리아와 남부 일부로 퍼졌다. 파도바에서는 집집이 찾아가 주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묻는 조사를 하고 이탈리아 최초의 자율 여성 상담소 가운데 하나를 세웠다. 1974년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가사노동 임금 집단이 생기자 달라 코스타는 메스트레에서 「총파업」이라는 연설을 했다. 지금까지의 파업은 총파업이 아니라 남성 노동자만의 파업이었다는 것이다. 1977년 국제 운동이 갈라진 뒤 파도바 집단은 국제 운동을 떠나 곧 해산했고, 그는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정치 탄압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가사노동은 가치를 만드는가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생산적 노동」은 자본을 위해 잉여가치를 만드는 노동이다.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보다 더 많이 만들어 낸 가치로, 자본가의 이윤이 여기서 나온다. 당시 마르크스주의 경제 사상은 임금 노동만을 생산적 노동으로 보고, 집안일은 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일로 가치의 흐름 밖에 두었다. 그래서 주부는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달라 코스타와 로타 펨미니스타는 이 구분을 뒤집었다. 공장 전체와 잉여가치 생산은 여성이 집 안에서 보수 없이 해 온 노동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의 기둥」이자 조립 라인의 숨은 핵심, 곧 가장 귀중한 상품인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공장이었고, 그 안의 여성은 「가정의 노동자」였다.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에서 달라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는 먹이고 치우고 마음을 보살피고 아이를 기르는 일이 개인적 시중이나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실제 생산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 노동이 공짜인 것은 사회의 재생산 비용을 여성에게 떠넘겨 낮추는 자본의 구조적 장치라는 것이다. 영어판 위키백과는 이를 가사노동을 자본의 작동에 꼭 필요하지만 임금 관계에서 빠져 있어 보이지 않게 된 재생산 노동으로 다시 정의한 것이라고 요약한다.
이 입장은 이탈리아 여성 연합(UDI)과 기존 좌파 정당의 평등 페미니즘과도 부딪쳤다. 이들은 여성이 공식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길로 보았지만, 가사노동 임금론자들은 그것이 바깥일과 집안일을 함께 떠맡는 「이중 착취」라고 보았다. 가사노동 임금 요구는 1970년대 여성 운동 안에서도 거센 반대와 비판을 받았고, 운동이 끝난 뒤 오랫동안 잊혔다. 2000년대 이후 젠더사와 구술사 연구가 이를 다시 평가했고, 오늘날 이탈리아어판 위키백과는 로타 펨미니스타의 재생산 노동 분석을 현대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주요 선행자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