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한 '민주중앙집권파' 지도자
「이런 경제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노동계급 앞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을 실추시키는 일이다」 —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 1931
툴라주 빈농 가정 출신 도장공(塗裝工)으로, 1905년 혁명에 참가했고 1912년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10월 혁명 후 모스크바 주 집행위원장, 최고경제회의 부의장,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서기, 소(小)인민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20년대 초 '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를 이끌며 당내 관료적 중앙집권화에 맞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이후 좌익 반대파의 주요 이론가로 활동했다. 1931년 유배지에서 집필한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에서 스탈린 체제를 '기형적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했으며, 1937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 1905–1916모스크바에서 도장공 노동자 조직, 건설노조 결성
- 1917–1919모스크바 주 집행위원회 의장
- 1920하리코프 주 혁명위원회 및 집행위원회 의장
- 1920–1921'민주중앙집권파' 지도자, 당내 민주화 투쟁
- 1921–1923최고경제회의(VSNKh) 부의장,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VTsIK) 서기
- 1923–1925소(小)인민위원회 의장, 전러시아 중앙노동조합평의회 의장
- 1926–192715인파 성명 주도, '국가자본주의' 테제 제출
- 1927–1937당 제명, 유배,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 집필, 체포 및 총살
관련 역사 사건
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 당내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사프로노프가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 오신스키 등과 함께 이끈 '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는 1919년 3월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내전기 당이 급속히 관료화되고 중앙집권화되면서 '민주집중제'의 민주적 측면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산업·지방행정·당 기구에서 중앙의 엄격한 통제가 지역의 자율성을 질식시키고 있으며, 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신하는 '당 독재'로 변질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당내 비판과 토론의 자유, 선출직의 보고 의무와 소환권, 지방 당 조직의 실질적 권한 회복을 요구했다. 1920년 3~4월 제9차 당 대회에서 톰스키 등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의 부분적 지지를 얻었으나 제안은 부결되었다. 1920년 말~1921년 초 '노동조합 논쟁'에서 사프로노프는 노동조합이 국가기구에 흡수되는 것을 반대하며 독자적 입장을 견지했다. 1921년 3월 제10차 당 대회는 레닌 주도로 크론시타트 봉기 직후 '당 통일에 관한 결의'를 채택해 분파 활동을 전면 금지했고, 데치스트는 실질적으로 해체되었다. 사프로노프는 이 결의가 당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관료적 중앙집권을 영구화했다고 보았으며, 이후 트로츠키의 좌익 반대파에 합류해 '15인파'를 거쳐 스탈린 체제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 중 한 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