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라 니콜라예브나 야코블레바

Варвара Николаевна Яковлева
소련 러시아 1884–1941 ✕ 처형

체카에서 좌익 반대파로 간 재정 인민위원

죄수열차 안에서 발렌티나 폴랴코바가 추궁했다. 「당신의 거짓 증언으로 내 남편이 총살당했다.」 야코블레바가 답했다. 「예조프의 명령이었다. 15일 밤낮 잠을 못 자게 하더니 결국 서명했다.」

혁명기 페트로그라드 체카를 이끌었던 옛 볼셰비키이자, 1924~26년 좌익 반대파의 지도자였다. 러시아공화국 재정 인민위원을 지낸 뒤 1937년 체포되어 장기형을 선고받았고, 1941년 오룔 감옥의 집단 처형에서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8년 가을, 페트로그라드 체카를 맡은 여성

바르바라 야코블레바는 모스크바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 수학을 공부한 직업 혁명가였다. 1917년 당 모스크바주국의 서기로서, 페트로그라드보다 훨씬 길고 격렬했던 모스크바의 10월 시가전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1918년 초에는 부하린과 함께 브레스트-리톱스크 강화에 반대한 좌익 공산주의자 그룹의 핵심이었고, 그가 속한 모스크바주국은 이 반대파의 거점이었다.

1918년 11월 그는 페트로그라드 체카의 의장이 되었다. 우리츠키 암살과 적색 테러 직후의 이 도시에서, 혁명 국가의 보안 기관을 이끈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이었다. 재임은 1919년 1월까지로 짧았으나, 혁명의 가장 가혹한 기구조차 여성에게 열려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구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정인민위원, 그리고 오룔의 숲

1920년대 야코블레바는 교육인민위원부 간부회에서 일했고, 1923년에는 46인 선언에 서명해 당내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했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는 러시아공화국 재정인민위원으로서 제1차, 제2차 5개년 계획기의 공화국 재정을 운영했다. 옛 반대파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비에트 국가 건설의 실무를 놓지 않았다.

1937년 9월 체포된 그는 1938년 부하린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져 1918년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관해 증언해야 했고, 이후 20년형을 선고받았다. 1941년 9월 11일, 독일군이 접근하던 오룔 감옥에서 라콥스키, 스피리도노바 등 150여 명의 수감자와 함께 메드베데프 숲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1958년 명예 회복되었다. 그의 생애는 혁명이 여성에게 연 가능성과 대숙청이 앗아 간 것을 동시에 증언한다.

제3차 모스크바 재판: 깨진 증인

1937년 체포된 야코블레바는 15일간 수면을 박탈당하는 연속 심문 끝에 자백을 강요받았다. 1938년 3월 제3차 모스크바 재판(‘반소비에트 우익-트로츠키 블록’ 재판)에서 그녀는 니콜라이 부하린에 대한 기소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때 자신이 속했던 좌익 반대파의 동지들을 법정에서 고발하는 모습은 올드 볼셰비키 세대의 비극을 상징했다. 20년형을 선고받은 뒤 카잔 방면 교도소로 이송되던 죄수열차에서, 그녀의 허위 증언으로 남편 아브람 카멘스키가 처형된 발렌티나 폴랴코바와 마주쳤다. 폴랴코바가 추궁하자 야코블레바는 “예조프 인민위원의 지시로 거짓 증언을 했다. 15일 밤낮으로 잠을 못 자게 하더니 결국 자제력을 잃고 서명했다”고 실토했다. 이 대화는 1954년 폴랴코바가 소련 검찰총장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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