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열차 안에서 발렌티나 폴랴코바가 추궁했다. 「당신의 거짓 증언으로 내 남편이 총살당했다.」 야코블레바가 답했다. 「예조프의 명령이었다. 15일 밤낮 잠을 못 자게 하더니 결국 서명했다.」
혁명기 페트로그라드 체카를 이끌었던 옛 볼셰비키이자, 1924~26년 좌익 반대파의 지도자였다. 러시아공화국 재정 인민위원을 지낸 뒤 1937년 체포되어 장기형을 선고받았고, 1941년 오룔 감옥의 집단 처형에서 총살됐다.
경력 연표
- 1904–1917볼셰비키 지하활동과 유배
- 1918–1919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
- 1924–1926좌익 반대파 지도부
- 1929–1937러시아공화국 재정 인민위원
- 1937–1941체포, 수감과 오룔 감옥 처형
관련 역사 사건
1918년 가을, 페트로그라드 체카를 맡은 여성
바르바라 야코블레바는 모스크바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 수학을 공부한 직업 혁명가였다. 1917년 당 모스크바주국의 서기로서, 페트로그라드보다 훨씬 길고 격렬했던 모스크바의 10월 시가전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1918년 초에는 부하린과 함께 브레스트-리톱스크 강화에 반대한 좌익 공산주의자 그룹의 핵심이었고, 그가 속한 모스크바주국은 이 반대파의 거점이었다.
1918년 11월 그는 페트로그라드 체카의 의장이 되었다. 우리츠키 암살과 적색 테러 직후의 이 도시에서, 혁명 국가의 보안 기관을 이끈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이었다. 재임은 1919년 1월까지로 짧았으나, 혁명의 가장 가혹한 기구조차 여성에게 열려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구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정인민위원, 그리고 오룔의 숲
1920년대 야코블레바는 교육인민위원부 간부회에서 일했고, 1923년에는 46인 선언에 서명해 당내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했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는 러시아공화국 재정인민위원으로서 제1차, 제2차 5개년 계획기의 공화국 재정을 운영했다. 옛 반대파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비에트 국가 건설의 실무를 놓지 않았다.
1937년 9월 체포된 그는 1938년 부하린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져 1918년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관해 증언해야 했고, 이후 20년형을 선고받았다. 1941년 9월 11일, 독일군이 접근하던 오룔 감옥에서 라콥스키, 스피리도노바 등 150여 명의 수감자와 함께 메드베데프 숲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1958년 명예 회복되었다. 그의 생애는 혁명이 여성에게 연 가능성과 대숙청이 앗아 간 것을 동시에 증언한다.
제3차 모스크바 재판: 깨진 증인
1937년 체포된 야코블레바는 15일간 수면을 박탈당하는 연속 심문 끝에 자백을 강요받았다. 1938년 3월 제3차 모스크바 재판(‘반소비에트 우익-트로츠키 블록’ 재판)에서 그녀는 니콜라이 부하린에 대한 기소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때 자신이 속했던 좌익 반대파의 동지들을 법정에서 고발하는 모습은 올드 볼셰비키 세대의 비극을 상징했다. 20년형을 선고받은 뒤 카잔 방면 교도소로 이송되던 죄수열차에서, 그녀의 허위 증언으로 남편 아브람 카멘스키가 처형된 발렌티나 폴랴코바와 마주쳤다. 폴랴코바가 추궁하자 야코블레바는 “예조프 인민위원의 지시로 거짓 증언을 했다. 15일 밤낮으로 잠을 못 자게 하더니 결국 자제력을 잃고 서명했다”고 실토했다. 이 대화는 1954년 폴랴코바가 소련 검찰총장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