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즈다노프

Андр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Жданов
소련 러시아 1896–1948 ○ 자연사

스탈린주의 문화정책에 이름을 남긴 이념 관리자

1947년 9월, 코민포름 창립 회의에서 세계 정치 세력이 '제국주의·반민주 진영'과 '반제국주의·민주 진영'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고 선언하며 냉전기 소련의 공식 세계관을 정식화했다.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1934년 중앙위 서기 겸 레닌그라드 당 제1서기에 오른 뒤, 대숙청 시기 정치국원으로 사형 집행 명단에 서명했으며 1941-44년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도시 방어를 진두지휘했다. 전후 당내 실질적 2인자로 부상하여 1946년부터 문학·음악·철학을 강타한 이념 캠페인 「즈다노프시나」를 주도하며 소비에트 문화사를 규정했고, 1947년 코민포름 창설과 함께 세계를 '두 진영'으로 나누는 냉전기 소련의 공식 세계관을 정식화했다. 스탈린·키로프와 역사 교과서 지침을 공동 집필한 당의 수석 이론가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즈다노프시나: 전후 문화 숙청

1946년 8월, 즈다노프는 레닌그라드 문예지 『즈베즈다』와 『레닌그라드』에 대한 중앙위 결정을 주도하고 직접 연설했다. 그는 미하일 조셴코를 '문학의 쓰레기(подонок литературы)'로, 안나 아흐마토바의 서정시를 '민중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규정하며 그녀를 '반은 수녀, 반은 창녀'라고 공개 비난했다. 동시에 메레시콥스키, 뱌체슬라프 이바노프, 쿠즈민, 안드레이 벨리, 기피우스, 솔로구프 등 실버 에이지 작가들을 '정치와 예술에서의 반동적 암흑주의와 배신'으로 몰아세웠다. 1947년에는 알렉산드로프의 『서양철학사』를 둘러싼 철학 토론을 지휘했고, 1948년 초에는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 주요 작곡가들을 '형식주의'로 공격하는 음악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이 숙청의 연쇄는 '즈다노프시나(ждановщина)'라는 이름으로 소비에트 문화사에 각인되었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반응했다: '10년 뒤 우리가 즈다노프 같은 자 앞에 굽신거린다면, 바로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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