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주코프

Георг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Жуков
소련 러시아 1896–1974 ○ 자연사

위기마다 불려 나온 소방수, 평화가 오자 치워지다

1945년 5월 9일 0시 43분, 베를린 카를스호르스트. 독일군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이 끝나자 주코프는 일어서서 말했다: 「독일 대표단은 퇴장해도 좋소.」 카이텔 원수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쓰러뜨린 군인에게 어울리는 대사였다.

칼루가 농가 출신으로 차르 군대 하사관에서 붉은군대 원수까지 올랐다. 1939년 할힌골에서 관동군을 격파하며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고, 이후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레닌그라드·베를린: 전쟁의 결정적 고비마다 파견되어 승리를 이끈 유일무이한 사령관이었다. 1945년 베를린에서 독일의 항복 문서를 받은 '승리의 원수'. 그러나 그 명성은 정치적 위협이 되었고, 두 번의 실각(1946, 1957)을 겪었다. 그래도 베리야 체포로 잠시 복귀했고, 회고록을 남기며 침대에서 죽은, 살아남은 승리자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3년 6월 26일 — 베리야를 체포한 날

1953년 6월 26일, 크렘린 정치국 회의. 라브렌티 베리야는 자신만만하게 회의실에 들어섰다. 스탈린이 죽은 지 3개월, 베리야는 이미 KGB와 내무부(MVD)를 통합했고, 수용소 수감자들을 사면했으며, 동독 반란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모두에게 위협적이었다.

말렌코프의 사전 신호에 따라,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와 장교들이 무기를 숨긴 채 회의실 밖에서 대기했다. 회의 도중 말렌코프가 갑자기 테이블 아래의 벨을 눌렀다. 주코프가 무장한 장교들과 함께 들어가 베리야에게 다가갔다: 「일어서시오. 당신은 체포되었소.」

베리야는 잠시 놀라며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지만, 곧 무장 해제되었다. 그는 말렌코프의 집무실에 구금되었다가, 그해 12월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주코프는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물리친 사람이었지만, 그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크렘린의 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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