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t ist tot · 1882

신의 죽음

Death of God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2년 『즐거운 학문』 125절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쓴 말 “신은 죽었다”가 가리키는 사태. 초자연적 존재가 실제로 죽었다는 주장도, 무신론을 증명하려는 논증도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의 도덕과 삶의 의미를 떠받쳐 온 기독교 신앙이 더는 믿을 만하지 않게 되었다는 문명의 진단이며, 니체는 그 뒤에 올 허무주의를 이겨 내는 일을 자기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상세

「신은 죽었다」는 누가 어떻게 말했나?

니체가 이 말을 처음 펼친 곳은 1882년 『즐거운 학문』 125절 「미친 사람」이다. 한 남자가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시장으로 달려가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하고 끝없이 외친다. 시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고, 그들은 신이 길을 잃었느냐, 배를 타고 이민을 갔느냐며 비웃는다. 미친 사람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이렇게 말한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마!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

Wir haben ihn getötet – ihr und ich! Wir alle sind seine Mörder!

이어지는 문장이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 미친 사람은 등불을 땅에 던져 깨뜨리고 “나는 너무 일찍 왔다. 아직 내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 오는 중이고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신을 믿지 않는 군중은 신앙을 버렸으면서도 그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니체가 겨냥한 것은 신자들보다 오히려 이렇게 태평한 무신론자들이었다.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

같은 책 108절은 이를 더 짧게 말한다. 부처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동굴에서 그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듯이,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니 어쩌면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그의 그림자를 보여 주는 동굴들이 있을 것이다.” 니체는 “우리는 그의 그림자까지 이겨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1883년부터 펴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가 숲속의 늙은 성자와 헤어진 뒤 혼잣말을 한다. “이럴 수가 있나! 이 늙은 성자는 숲속에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

Gott ist tot: aber so wie die Art der Menschen ist, wird es vielleicht noch jahrtausendelang Höhlen geben, in denen man seinen Schatten zeigt.

왜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나?

니체에게 신의 죽음은 형이상학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다. 1887년 『즐거운 학문』에 덧붙인 제5권 343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근래의 가장 큰 사건, 곧 ‘신이 죽었다’는 것,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벌써 유럽 위에 첫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과학과 역사 비판이 발전하면서 교양 있는 유럽인은 성서의 기적이나 신의 섭리를 더는 문자 그대로 믿지 않게 되었다. 니체가 보기에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Das größte neuere Ereignis – daß »Gott tot ist«, daß der Glaube an den christlichen Gott unglaubwürdig geworden ist – beginnt bereits seine ersten Schatten über Europa zu werfen.

기독교의 신은 유럽 문명에서 한낱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다. 선과 악의 기준, 고통에 의미를 주는 이야기, 진리가 있다는 확신, 모든 사람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이 모두 이 신앙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니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면 그 위에 지은 도덕과 가치도 근거를 잃는다. 사람들이 이 결과를 깨닫지 못한 채 기독교 도덕만 그대로 붙들고 있는 상태를 니체는 신의 그림자를 섬기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머지않아 유럽이 최고의 가치들이 무너지는 허무주의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그 너머에서 새로운 가치를 세울 인간형으로 위버멘쉬를 내세웠다.

니체는 근대의 세속적 이상들도 신의 그림자로 보았다. 1886년 『선악의 저편』 202절은 “민주주의 운동은 기독교 운동의 유산을 이어받는다”고 쓰고, 평등과 동정을 내세우는 민주주의자·아나키스트·사회주의자를 모두 기독교 도덕의 세속판으로 묶었다. 신을 버렸다고 말하는 진보 세력이 실은 신의 도덕을 이름만 바꾸어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뒤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니체 사이의 가장 날카로운 대립점이 된다.

die demokratische Bewegung macht die Erbschaft der christlichen.

니체 이전과 이후에 이 말은 어떻게 쓰였나?

“신 자신이 죽었다”는 말은 니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17세기 루터파 신학자 요한 리스트의 찬송가 「슬픈 장례의 노래」에 이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신앙고백이었다. 독일 관념론은 이 구절에서 기독교의 색채를 덜어 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정신현상학』과 종교철학 강의에서 이 찬송가 구절을 들어, 근대 종교의 밑바닥에 깔린 ‘신 자신이 죽었다’는 무한한 고통의 감정을 절대정신의 한 계기로 다루었다. 막스 슈티르너는 1844년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계몽주의자들이 신을 이겨 냈지만 인간이 “하늘의 유일한 신”이 되려고 신을 죽였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니체가 이 말을 문명 진단으로 바꾼 뒤 20세기 철학은 그것을 여러 방향으로 읽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1943년 강연을 바탕으로 1950년에 펴낸 글 「니체의 말 ‘신은 죽었다’」에서 이 말을 플라톤 이래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에 관한 선언으로 해석했다. 실존주의자들은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는 미국 개신교 일부에서 ‘신 죽음의 신학’이 나타나, 교회 안에서도 이 말을 신학의 주제로 삼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신의 죽음을 어떻게 보았나?

마르크스주의의 종교 비판은 니체보다 한 세대 앞서 나왔고 방향이 달랐다. 카를 마르크스는 1844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을 “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본질적으로 끝났고,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다”라는 문장으로 열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이미 신은 인간이 자기 본질을 하늘에 투사한 것이라고 밝혔으니, 이제 남은 일은 사람들이 왜 그런 환상을 필요로 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자 “인민의 아편”이며, 그러므로 “하늘의 비판은 땅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바뀐다.

Die Kritik des Himmels verwandelt sich damit in die Kritik der Erde, die Kritik der Religion in die Kritik des Rechts, die Kritik der Theologie in die Kritik der Politik.

두 비판의 차이는 신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두느냐에서 드러난다. 마르크스에게 종교의 폐지는 환상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 곧 사람들의 현실적 행복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반대로 니체에게 평등과 해방을 내건 사회주의는 신의 그림자, 곧 기독교 도덕의 연장이었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프란츠 메링은 1891년 니체를 “자본주의의 사회철학자”라고 불렀고, 죄르지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1954)에서 니체의 종교 비판을 신 없는 신화, 곧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지를 위한 새 신화를 만드는 시도로 읽었다.

러시아에서는 신의 죽음이 남긴 빈자리를 사회주의로 채우려는 시도도 있었다. 1905년 혁명이 패배한 뒤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와 막심 고리키는 인류의 집단적 힘을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세우자는 신건설론을 내놓았고, 블라디미르 레닌은 어떤 형태의 신 만들기도 반동이라며 이를 거세게 비판했다. 신의 죽음이라는 문제는 이렇게 니체와 마르크스주의가 맞부딪치는 첫 자리가 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zeno.org
  2. zen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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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zeno.org
  6. 위키백과 (영문)
  7. web.archiv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