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이중성
Dual Character of Labour
상품을 만드는 노동이 동시에 지니는 두 성격. 재단이나 베 짜기처럼 특정한 목적과 방식으로 특정한 사용가치를 만드는 쪽을 구체적 유용노동(구체노동), 그 모든 구체적 차이를 빼고 남는 인간 노동력의 지출 일반으로서 상품의 가치를 이루는 쪽을 추상적 인간노동(추상노동)이라 한다. 마르크스는 상품이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면을 지니는 까닭을 이 노동의 이중성에서 찾고, 그것을 처음 비판적으로 밝힌 일을 정치경제학을 이해하는 「도약점」이라 했다.
상세
상품의 두 면과 노동의 두 면은 어떻게 이어지나?
『자본』 1권 첫 절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이 두 면을 지닌다고 했다. 하나는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쓸모, 곧 사용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상품과 일정한 비율로 바뀔 수 있게 하는 가치다. 둘째 절에서 그는 이 두 면이 노동의 두 면에서 나온다고 이어 갔다. “처음에 상품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것, 곧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타났다. 나중에는 노동도 가치로 표현되는 한에서는 사용가치를 낳는 노동에 속하는 특징을 더 이상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품에 담긴 노동의 이 이중적 성질은 내가 처음으로 비판적으로 밝혀냈다. 이 점은 정치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축이 되는 도약점이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밝혀 보자.”
Diese zwieschlächtige Natur der in der Ware enthaltenen Arbeit ist zuerst von mir kritisch nachgewiesen worden. Da dieser Punkt der Springpunkt ist, um den sich das Verständnis der politischen Ökonomie dreht, soll er hier näher beleuchtet werden.
마르크스는 이 구별을 자기가 가치론에 보탠 가장 중요한 혁신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스미스와 리카도도 노동이 가치를 만든다고 보았지만, 어떤 노동이 어떤 의미에서 가치를 만드는지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었다.
구체노동이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외투 한 벌과 아마포 10엘레를 예로 든다. 외투를 만들려면 재단이라는 특정한 활동이, 아마포를 만들려면 베 짜기라는 다른 활동이 필요하다. 목적도, 쓰는 도구도, 다루는 재료도, 결과물도 다르다. 이렇게 그 쓸모가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나타나는 노동을 그는 「유용노동」이라 불렀다. “외투와 아마포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이듯,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노동도 질적으로 다르다. 재단과 베 짜기다.”
Wie Rock und Leinwand qualitativ verschiedne Gebrauchswerte, so sind die ihr Dasein vermittelnden Arbeiten qualitativ verschieden - Schneiderei und Weberei.
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면 교환도 없다. 외투는 외투와 바뀌지 않는다. 같은 사용가치를 같은 사용가치와 맞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 안에 갖가지 구체노동이 갈라져 있는 것, 곧 사회적 분업이 상품생산의 전제 조건이다.
추상노동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외투 한 벌이 아마포 20엘레와 바뀐다면, 둘 사이에는 무언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재단과 베 짜기의 구체적 차이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라고 했다. “재단과 베 짜기는 질적으로 다른 생산 활동이지만 둘 다 인간의 두뇌, 근육, 신경, 손 등의 생산적 지출이며, 이런 의미에서 둘 다 인간 노동이다.”
Schneiderei und Weberei, obgleich qualitativ verschiedne produktive Tätigkeiten, sind beide produktive Verausgabung von menschlichem Hirn, Muskel, Nerv, Hand usw., und in diesem Sinn beide menschliche Arbeit.
이렇게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게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노동이 추상노동이며, 상품의 가치를 이루는 실체다. 마르크스는 2절을 이렇게 맺었다. “모든 노동은 한편으로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며, 같은 인간 노동 또는 추상적 인간 노동이라는 이 속성에서 상품가치를 이룬다. 모든 노동은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목적이 정해진 형태로 인간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이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Alle Arbeit ist einerseits Verausgabung menschlicher Arbeitskraft im physiologischen Sinn, und in dieser Eigenschaft gleicher menschlicher oder abstrakt menschlicher Arbeit bildet sie den Warenwert. Alle Arbeit ist andrerseits Verausgabung menschlicher Arbeitskraft in besondrer zweckbestimmter Form, und in dieser Eigenschaft konkreter nützlicher Arbeit produziert sie Gebrauchswerte.
여기서 「추상」은 머릿속에서만 하는 추상이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서로 다른 생산물이 시장에서 일정한 비율로 맞바뀔 때, 교환 당사자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그 생산물을 만든 서로 다른 노동이 실제로 같은 것으로 견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가치형태와 상품물신성 분석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노동은 단순한 노동과 어떻게 견주나?
외과 의사의 한 시간과 짐꾼의 한 시간은 같은가?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했다. “더 복잡한 노동은 단순노동이 강화된 것, 아니 오히려 몇 배가 된 것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은 많은 양의 단순노동과 같다.”
Kompliziertere Arbeit gilt nur als potenzierte oder vielmehr multiplizierte einfache Arbeit, so daß ein kleineres Quantum komplizierter Arbeit gleich einem größeren Quantum einfacher Arbeit.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이 환산이 생산자들의 등 뒤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숙련노동의 가치를 단순노동의 몇 배로 표현할지 정하는 구체적인 계산법을 내놓지 않았고,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으로 남아 있다. 뉴스쿨의 안와르 샤이크는 미국의 산업연관표와 임금·노동 자료로 숙련 차이의 시장 평가를 실증적으로 다루려 했고, 다른 쪽에서는 숙련의 평가가 교육 제도와 계급 사이의 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고 본다.
생산력이 오르면 왜 물건은 늘고 가치는 줄어드나?
노동의 이중성은 자본주의의 한 역설을 설명한다. 작은 예를 들어 보자(가정). 한 노동자가 8시간에 셔츠 8벌을 만들다가 새 재봉틀로 16벌을 만들게 되었다. 구체노동의 생산력은 두 배가 되어 사용가치, 곧 입을 수 있는 셔츠는 두 배가 되었다. 그러나 추상노동으로서는 여전히 8시간을 일했으므로, 새로 만든 가치의 총량은 그대로다. 셔츠 한 벌에 담긴 가치는 1시간어치에서 30분어치로 줄어든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물질적 부의 증가하는 양에 그 가치 크기의 동시적인 하락이 대응할 수 있다. 이 상반된 운동은 노동의 이중적 성격에서 나온다.” 생산력은 언제나 구체적 유용노동의 생산력이며, 가치로 표현된 노동 자체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Dennoch kann der steigenden Masse des stofflichen Reichtums ein gleichzeitiger Fall seiner Wertgröße entsprechen. Diese gegensätzliche Bewegung entspringt aus dem zwieschlächtigen Charakter der Arbeit.
자본을 분석할 때 이 구별은 어떻게 쓰이나?
『자본』 1권 6장에서 마르크스는 이 구별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을 설명한다. 실을 잣는 노동은 추상노동으로서 일한 시간만큼 새 가치를 보태고, 구체노동, 곧 실잣기로서는 솜과 방추의 가치를 실로 옮긴다. 노동자가 한 번 일하는데도 옛 가치는 보존되고 새 가치는 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잉여가치론 전체가 노동력이 만드는 가치와 노동력 자신의 가치의 차이에 기대고 있으므로, 노동의 이중성은 『자본』의 논리 전체를 받치는 주춧돌 구실을 한다.
추상노동은 자본주의에만 있나?
뒤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추상노동이 어떤 역사적 범주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마르크스는 『요강』 서설에서 노동 일반이라는 범주가 모든 사회 형태에 있는 오래된 관계를 표현하지만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만 실제로 완전히 실현된다고 했다. 이를 두고 미국 경제학자 존 윅스 같은 이들은 구체노동이 추상노동으로 바뀌는 것은 자본주의에서만 일어난다고 보아 추상노동을 자본주의에 고유한 범주로 읽는다. 반면 일본의 이토 마코토 같은 연구자는 노동시간을 추상적으로 견주는 일이 교역의 역사 전체에 걸쳐 발전해 왔다고 보며, 자본주의에서 일반화된 상품생산과 함께 완전히 실현된다고 해석한다.
어떤 비판과 반론이 있나?
추상노동이라는 개념의 어려움은 많은 경제학자가 노동가치론을 버린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한계효용학파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1871년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노동은 그 자체로 가치가 같지 않으며 무한히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치로 정해져야지 그 반대가 아니며, 막노동자와 목수와 교사와 변호사의 생산력을 미리 견줄 수는 없다고 했다.
소련의 경제학자 이사크 루빈은 이런 비판에 답하며 추상노동이 처음 보기보다 훨씬 복잡한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생리학적으로 같은」 노동, 사회적 평가를 통해 「사회적으로 같아진」 노동, 화폐를 일반적 등가물로 삼는 생산물 교환을 통해 같아진 노동을 구별했다. 최근에는 독일의 미하엘 하인리히가 추상노동을 교환에서만 성립하는 사회적 관계로 해석하자, 영국의 컴퓨터과학자 폴 콕숏이 2013년 그것이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고 비판하는 등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존 홀러웨이는 『크랙 캐피털리즘』에서 추상노동을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근본적인 범주로 보고, 추상노동에 맞서는 투쟁을 반자본주의 정치의 중심에 두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