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 1944.07–현재 (1944년 7월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협정이 맺어졌고, 1945년 12월 27일 29개국의 비준으로 정식 출범해 1947년 3월 1일 업무를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세계은행과 함께 만들어진 국제 금융기구. 회원국이 출자한 기금에서 국제수지 위기에 빠진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최후의 대부자」 구실을 한다. 처음 30년 동안은 각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한 브레턴우즈 고정환율 체제를 감독했고, 1971년 이 체제가 무너진 뒤에는 국제수지 위기와 금융위기 관리로 역할이 바뀌었다. 대출 조건으로 긴축과 시장 개방 등 정책 개혁(구조조정)을 요구해 왔고, 출자액에 따라 표결권이 정해져 미국과 서방이 지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상세

국제통화기금은 대공황 때 각국이 앞다투어 무역 장벽을 쌓고 통화를 절하하며 세계 무역이 줄어든 경험에서 나왔다. 1944년 7월 브레턴우즈의 마운트워싱턴 호텔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은 전후 국제 통화 협력의 틀을 논의했고, 기금의 성격을 두고 두 구상이 맞섰다. 미국 대표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빌려 간 나라가 제때 갚도록 관리하는 은행에 가까운 기금을 그렸고, 영국의 케인스는 회원국이 위기 때 경제활동과 고용을 지키려고 꺼내 쓸 수 있는 협동 기금을 그렸다. 최종 협정에는 화이트안이 대부분 들어갔다.

기금은 1945년 12월 27일 29개국이 협정문을 비준하며 정식 출범했고, 1947년 3월 1일 업무를 시작해 5월 8일 프랑스가 처음 돈을 빌렸다. 본부는 모겐소 재무장관이 뉴욕을 원했지만 후임 빈슨이 「국제 금융」의 낙인을 피한다며 워싱턴으로 정했다. 회원국은 경제 규모에 따라 할당된 출자금(쿼터)을 내고, 국제수지가 막히면 이 기금에서 빌린다. 쿼터는 표결권도 정한다. 중요한 결정에는 85%의 찬성이 필요해, 오랫동안 16% 넘는 표를 가진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쥐었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IMF는 각국이 달러에 고정한 환율을 지키도록 감독하고, 일시적 적자국에 신용을 주어 디플레이션 없이 조정하게 하는 장치였다. 설립 때부터 1970년대까지는 각국의 자본 통제도 허용했다. 이 설계는 국제 자본주의의 재건과 각국의 경제 주권·복지를 함께 추구한 「착근된 자유주의」로 불린다. 냉전 때문에 소련권 나라 대부분은 1970~1980년대까지 가입하지 않았다.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 태환을 멈추고 1976년 자메이카 협정으로 협정문이 고쳐진 뒤 IMF의 역할은 바뀌었다. 1980년대 외채 위기 때 다시 세계 금융 관리의 중심에 섰고, 레이건 정부의 압력 아래 대출에 시장 자유화 개혁을 조건으로 붙이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넘어갔다. 1980년대부터 직원들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선호하게 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한국이 받은 IMF 대출은 경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상환 때까지 경제 결정을 IMF와 협의하라는 조건이 붙어, 한국 대중은 이를 굴욕적인 「부채의 덫」으로 받아들였다.

IMF에 대한 비판은 대출 조건이 긴축을 강요해 회복을 늦추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 차입국의 경제 주권을 제한한다는 것, 표결권이 서방에 기울어 있다는 것으로 모인다.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케인스식 경기 부양을 돕도록 만들어진 기금이 통화주의 쪽으로 돌아서며 존재 이유를 잃었고, 「음모에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서방 금융계의 이해와 이데올로기를 반영했다」고 썼다. 2016년에는 IMF 연구부 스스로 「신자유주의: 과대 포장되었나?」라는 보고서를 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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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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