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евая оппозиция большевикам · 1917–1975

좌파 반대파

Left opposition to the Bolsheviks

볼셰비키 집권기의 좌파 반대파는 1917년 10월 혁명 뒤 레닌의 당과 소비에트 지도부를 왼쪽에서 비판하거나 그에 맞선 여러 흐름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브레스트 강화에 반대해 연립에서 물러난 좌파 사회혁명당, 당 안의 좌파 공산주의자(1918)·민주중앙집권파·노동자 반대파·좌익반대파(1923~1927), 소비에트 재선거와 사회주의 정당의 자유를 요구한 1921년 크론시타트 봉기, 1930년대 초의 당내 반대 그룹, 그리고 1975년 레닌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며 함상 반란을 일으킨 발레리 사블린 같은 뒤 시대의 사례까지 포함한다.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세계 혁명, 노동자 자치, 당내 민주주의를 내세운 서로 다른 반대 흐름의 모음이다.

상세

개념과 범위

볼셰비키 집권기의 좌파 반대파는 10월 혁명 뒤 레닌의 당과 소비에트 지도부를 왼쪽에서 비판하거나 그에 맞선 흐름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의 조직이나 강령이 아니라, 볼셰비키와 연립했다가 갈라선 좌파 사회혁명당, 당 안에서 생긴 좌파 공산주의자·민주중앙집권파·노동자 반대파·좌익반대파 같은 분파, 1921년 크론시타트 봉기, 1930년대 초의 당내 반대 그룹, 그리고 훗날 ‘레닌의 원칙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한 개인까지 아우른다. 이들은 세계 혁명의 즉각적 추진, 노동자·농민의 자치, 당내 민주주의와 분파의 자유, 소비에트의 자유선거 같은 요구를 내걸었다.

1923~1927년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한 좁은 의미의 분파는 「좌익반대파」, 1926~1927년의 연합은 「통합반대파」 항목에서 따로 다룬다. 이 항목은 그보다 넓은 범위, 곧 1917년부터 소련 후기까지 이어진 왼쪽에서의 반대를 한데 묶어 설명한다.

좌파 사회혁명당: 연립에서 결별로

좌파 사회혁명당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사회혁명당의 좌파로 생겨났다. 1917년 5~6월 사회혁명당 제3차 대회에서 이들은 당 중앙위원회에 맞서는 왼쪽 반대 세력을 이루어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즉시 빠져나올 것, 임시정부와의 협력을 끝낼 것, 토지를 곧바로 농민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다. 10월에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군사혁명위원회에 들어가 무장봉기에 참여했고, 제2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볼셰비키를 지지했으며, 12월 독자 정당으로 조직되었다. 1917년 말에는 인민위원회의에 들어가 농업(안드레이 콜레가예프), 법무(이사크 시테인베르크), 우편·전신(프로시 프로샨) 인민위원부 등을 맡았다.

결별은 브레스트 강화에서 시작되었다. 좌파 사회혁명당은 1918년 2월 23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강화 조약 서명에 반대했고, 3월 제4차 임시 소비에트 대회에서 비준에도 반대한 뒤 인민위원회의에서 물러났다. 빈농위원회 법령이 당의 기반인 근로 농민의 이해를 해친다고 본 당은 6월 ‘소비에트 정책의 노선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기로 결의했다. 7월 6일 당원 야코프 블륨킨과 니콜라이 안드레예프가 모스크바에서 독일 대사 미르바흐를 살해했고, 이어진 사태 뒤 제5차 소비에트 대회는 당 중앙위원회 노선을 지지한 좌파 사회혁명당원을 소비에트에서 배제했다. 마리야 스피리도노바의 편지에 근거해, 대사 살해는 몇몇 지도자의 개인적 결정이었고 봉기는 없었다는 해석도 있다. 당은 1918년 9월 분열했고 일부는 지하에서 무장 투쟁을 이어 갔다. 제4차 대회(1918년 9~10월) 뒤 당의 강령은 기업을 노동 집단의 자치에 맡기자는 등 아나키즘·혁명적 생디칼리슴에 가까운 쪽으로 옮겨 갔다. 대숙청 때 보리스 캄코프와 콜레가예프 등이 총살되었고, 스피리도노바는 1941년 9월 오룔 근처에서 총살되었다.

당 안의 분파: 좌파 공산주의자에서 노동자 반대파까지

당 안에서는 1918년 1월 좌파 공산주의자가 반대파를 이루었다. 이들은 다른 나라로 혁명을 곧바로 확산시키지 않으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 무너진다고 보고 브레스트 강화에 반대했으며, 국내에서는 은행의 완전한 폐지와 화폐 폐지 가속, 국가·경제 관리의 분권화를 주장하고 ‘부르주아’ 전문가 기용에 반대했다. 이들은 모스크바 지역 당 사무국을 장악하고 《코무니스트》를 펴냈다. 러시아어판 백과사전은 이들의 ‘혁명 전쟁’ 강령이 1918년 초 이전 레닌의 주장보다 더 왼쪽에 있지 않았다고 적는다.

1919년 초에는 티모페이 사프로노프, 블라디미르 막시몹스키 등 옛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를 만들었다. 이들은 ‘관료적 중앙집권’에 민주적 중앙집권을 맞세우고, 제9차 당대회에서 기업의 1인 관리제에 반대했으며, 제10차 당대회가 분파와 그룹을 금지한 뒤에는 당내 분파의 자유를 요구했다. 1919년 말~1920년 초에는 알렉산드르 실랴프니코프, 세르게이 메드베데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유리 루토비노프가 이끈 노동자 반대파가 나타나 국민경제 관리를 노동조합에 넘기자고 주장했고, 1922년 제11차 당대회에서 패배했다. 노동자 반대파의 일원이던 가브릴 먀스니코프는 뒤에 ‘노동자 그룹’을 이끌며 소련의 성격이 국가자본주의라는 견해를 폈고, 1922년 2월 당에서 제명되었다.

크론시타트 봉기 (1921)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요새 수비대와 발트 함대 수병, 시민들은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독재와 전시 공산주의 정책에 맞서 봉기했다. 2월 전함 세바스토폴과 페트로파블롭스크 승무원 회의가 채택한 결의에는 ‘정당이 아니라 소비에트에 권력을!’ 같은 정치적 요구가 담겼고, 2월 28일 회의는 소비에트 재선거, 정치위원 폐지, 모든 사회주의 정당의 활동 자유, 자유 거래 허용을 요구했다. 역사가 폴 애브리치는 이 결의를 헌법을 지키고 1917년 레닌이 말한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 곧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구호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했다. 회의는 스테판 페트리첸코가 주재했다. 진압에는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지휘한 제7군과 함께 제10차 당대회 대의원 약 300명이 투입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자원한 노동자 반대파와 민주중앙집권파 지도자들도 있었다. 같은 해 정부는 전시 공산주의를 끝내고 신경제정책으로 넘어갔다.

좌익반대파와 1930년대 초의 당내 반대

좌익반대파는 레닌이 병석에 있던 1923년 10월 ‘46인 성명’을 계기로 형성되기 시작했고, 레프 트로츠키,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 카를 라데크, 크리스티안 라콥스키, 이반 스미르노프, 레프 소스놉스키, 알렉산드르 보론스키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러시아어판 백과사전은 1923~1924년의 반대파가 ‘트로츠키주의’ 조직도 ‘분파’ 조직도 아니었으며, 당 정책에 대한 비판과 당내 체제의 더 과감한 ‘민주화’ 요구로 묶인 흐름이었다는 견해를 소개한다. 옛 민주중앙집권파도 여기에 합류했으나, 사프로노프와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는 트로츠키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보고 1926년 독자 그룹을 만들었다. 반대파는 1927년 11월 7일 10월 혁명 10주년 시위에 ‘레닌의 유언을 실행하자!’ 같은 구호를 들고 나왔고, 12월 제15차 당대회는 그 견해를 당원 자격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통합반대파 활동가 75명과 사프로노프·스미르노프 그룹이 제명되었고, 대회 전후로 약 8천 명이 당에서 쫓겨났다. 1930년에는 국외의 트로츠키 지지자들이 국제좌익반대파를 만들었다.

1930년대 초에도 반대는 이어졌다. 1930년 비사리온 로미나제는 라자리 샤츠킨과 반대 그룹을 만들고 인민위원회의 의장 세르게이 시르초프와 접촉했는데, 스탈린은 이를 ‘우파-좌경 블록’이라 불렀다. 1932년에는 바실리 카유로프가 이끈 혁명 전 고참 볼셰비키 그룹이 마르테먄 류틴에게 강령 집필을 부탁해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을 결성했다. 주로 ‘우파’ 지지자들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스탈린 노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을 좌우 가리지 않고 결집하려 했고, 문서 「스탈린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위기」는 당내 체제에 맞선 좌익반대파의 투쟁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레닌주의 복귀 요구: 사블린 사건 (1975)

뒤 시대의 사례로는 1975년 11월 9일 대잠함 「스토로제보이」에서 반란을 일으킨 해군 3등 함장 발레리 사블린이 있다. 공식 발표는 그가 배를 스웨덴으로 몰고 가려 했다고 했지만, 사블린 자신은 당과 정부가 사회주의 건설에서 레닌의 원칙을 벗어난 데 항의하려고 배를 크론시타트로 몰고 가 중앙 텔레비전에서 브레즈네프에게 호소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1976년 8월 3일 모스크바에서 총살되었다.

이웃 흐름과의 관계

이 흐름들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왔다. 좌파 사회혁명당은 근로 농민을 기반으로 한 별도의 사회주의 정당이었고, 당내 분파들은 볼셰비키 당원으로서 당내 민주주의와 노동자 통제를 요구했다. 러시아어판 백과사전은 노동자 반대파가 몇몇 점에서 독일의 평의회 공산주의 운동과 비슷했지만 두 집단이 직접 접촉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적는다. 국외로 이어진 트로츠키 계열 운동은 「트로츠키주의」, 독일·네덜란드의 평의회 공산주의와 이탈리아 좌파는 「좌익 공산주의」와 「평의회 공산주의」 항목에서 다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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