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반대파
Left Opposition
1923년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형성된 러시아 공산당 내 파벌. 신경제정책(네프) 시기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 삼두정의 관료적 경향에 맞서 급속한 공업화, 농업의 자발적 집단화, 당내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했다. 1926년 지노비예프-카메네프의 '신반대파'와 합류해 통합반대파를 결성했으나 1927년 12월 제15차 당대회에서 당적이 박탈되었고, 구성원 대부분은 1930년대 대숙청에서 처형되었다.
상세
형성
좌익반대파는 1923년 가을에 형성되었다. 그해 10월 8일 트로츠키가 중앙위원회에 보낸 서한이 당 기구의 관료화와 서기국의 인사권 집중을 비판했고, 10월 15일에는 46명의 당 간부가 같은 취지의 선언을 정치국에 제출했다. 이 두 문서가 조직적 결집의 출발점이 되었다.
1923년의 국면은 경제 위기와 겹쳐 있었다. 가위 위기로 공업품 가격과 농산물 가격의 격차가 벌어지고 실업이 늘어난 상황에서, 반대파는 계획적 공업화와 당내 민주주의 회복을 함께 요구했다. 이 결합이 이후 강령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강령
강령의 경제적 축은 세 요소로 이루어졌다. 계획을 통한 급속 공업화, 자발성에 기초한 농업 협동화, 그리고 소득 격차와 관료 특권의 억제였다.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이 이 가운데 공업화 재원 문제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정치적 축은 당내 민주주의의 회복이었다. 반대파는 1921년의 분파 금지 결의가 비상 조치였음을 지적하며 강령적 견해의 표명과 토론 절차의 복원을 요구했다. 국제 노선에서는 중국 혁명에서 국민당과의 관계, 영국 총파업에 대한 대응을 두고 코민테른 지도부와 대립했다.
통합과 축출
1925년 이후 정치적 배치가 바뀌었다. 스탈린과 부하린이 결합하고, 이전에 트로츠키에 반대했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신반대파를 형성했다가 1926년 좌익반대파와 통합반대파를 구성했다. 통합반대파는 1927년 10월 혁명 10주년 시위에서 독자적 구호를 내걸었고, 이 행동이 조직적 처분의 근거가 되었다.
1927년 12월 제15차 당대회는 반대파 성원을 당에서 제적했다. 이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포함한 다수가 견해 철회를 통해 복당했고, 트로츠키는 1928년 알마아타로 유배되어 1929년 국외로 추방되었다. 1932년과 1933년에 남은 그룹들이 재차 검거되었으며, 반대파에 속했던 인물의 다수가 1930년대 모스크바 재판과 대숙청에서 처형되었다.
유산
좌익반대파의 문헌은 소련 체제의 성격을 분석하는 최초의 좌파 내부 비판으로 남았다. 관료화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고립된 후진국에서의 권력 구조에서 찾는 분석 방식은 이후 소련 연구와 좌파 논쟁의 준거가 되었으며, 국제적으로는 트로츠키주의 조류의 이론적 출발점이 되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history: faction formation 1923, Declaration of 46, platform (rapid industrialization, voluntary collectivization, party democracy), United Opposition formation 1926, expulsion at XV Congress Dec 1927, International Left Opposition 1930, Great Purge fate
- 위키백과 (러시아어) _и_ВКП(б) — Russian article confirming faction details and non-Trotskyist origins of early Left Oppos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