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 populaire / Народный фронт · 1934–1939

인민전선

Popular Front

파시즘의 위협 앞에서 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물론 자유주의 정당까지 끌어안는 광범한 반파시즘 연합을 추구한 전략. 1934년 프랑스에서 실험이 시작되어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디미트로프의 보고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공식 노선이 되었고, 1936년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민전선 정부가 집권했다.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이라 부르던 직전 시기 노선의 정반대 방향 전환이었으며,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과 함께 갑작스럽게 폐기되었다.

상세

코민테른은 노선을 뒤집었나

1928년 이후 코민테른의 공식 노선은 「계급 대 계급」이었다. 자본주의가 최후의 위기에 들어섰으니 혁명이 눈앞에 있고, 노동자들을 개량주의에 붙잡아 두는 사회민주주의야말로 「사회파시즘」, 곧 파시즘의 쌍둥이라는 것이었다. 이 노선 아래 독일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을 주적으로 삼았고, 두 당이 서로 싸우는 동안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해 두 당을 모두 파괴했다.

전환의 첫 신호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현장에서 왔다. 1934년 2월 프랑스에서 극우 동맹들의 폭동에 맞서 사회당과 공산당의 대열이 거리에서 합류했고, 그해 7월 두 당은 통일행동협정을 맺었다. 라이프치히 법정에서 나치의 국회의사당 방화 혐의 기소를 되받아친 것으로 유명해진 디미트로프가 코민테른의 새 서기장이 되었고, 1935년 8월 제7차 대회 보고에서 그는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고 배외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분자들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로 규정하며, 그것에 맞서는 가장 넓은 연합을 새 노선으로 선언했다. 사회파시즘론에 대한 명시적 자기비판은 없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통일전선과 무엇이 다른가

두 낱말은 자주 섞여 쓰이지만 층위가 다르다. 통일전선은 1920년대 초부터 쓰인 개념으로,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 곧 노동계급 조직들 사이의 공동 행동을 가리킨다. 인민전선은 그 바깥까지 나간다. 프랑스의 급진당, 스페인의 공화좌파 같은 자유주의·중간층 정당과의 연합, 그리고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방어를 당면 목표로 삼는 것이다.

바로 그 확장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지지자들에게 이것은 파시즘이라는 더 큰 적 앞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길이었다. 비판자들에게 이것은 연합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요구를 자유주의 정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까지 깎아야 하는 구조, 곧 계급협조의 제도화였다.

어디서 어떻게 실험되었나

프랑스에서 인민전선은 1936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해 블룸 정부를 세웠고, 총파업마티뇽 협정, 유급휴가와 주 40시간제를 남긴 뒤 2년 만에 무너졌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 2월 총선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했으나 7월 군부 반란으로 내전이 시작되었고, 인민전선 방어 전쟁의 안쪽에서 「전쟁이 먼저인가 혁명이 먼저인가」라는 노선 투쟁이 벌어졌다. 칠레에서는 1938년 급진당의 아기레 세르다가 인민전선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중국에서는 1937년 국공합작이 같은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미국공산당은 「공산주의는 20세기의 미국주의」라는 구호까지 나아갔다.

노선의 끝은 시작만큼 급격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자 코민테른은 반파시즘 연합 노선을 하루아침에 접고 전쟁을 제국주의 상호 간의 전쟁으로 규정했으며, 각국 당은 다시 한 번 궤도를 급선회해야 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함께 반파시즘 연합은 되살아났고, 전후 동유럽의 「민족전선」·「인민민주주의」는 인민전선 논리의 연장선에서 설명되었다.

무엇이 논쟁으로 남았나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배신의 다른 이름」이라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시작된 혁명을 의회의 틀에 가두었고, 스페인에서는 연합을 지킨다는 이유로 혁명을 되돌리다 전쟁까지 졌다는 것이다. 반대편의 옹호론은 두 나라에서 파시즘의 집권을 막거나 늦춘 것, 공산당들이 처음으로 대중정당이 된 것, 그리고 유급휴가에서 단체협약까지 노동자들이 손에 쥔 실물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은 노선 전환의 동기 자체도 나누어 본다. 각국 현장의 반파시즘 압력이 아래로부터 밀어 올린 전환이었다는 독법과, 집단안보로 돌아선 소련 외교의 필요가 위에서 내려보낸 전환이었다는 독법이 겹쳐 있고, 1939년의 급선회는 후자의 무게를 보여 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된다.

이름은 개념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반세기 뒤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의 소련에서 발트 공화국들의 대중운동이 스스로를 「인민전선」이라 불렀을 때, 그 이름은 1930년대의 기억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Georgi Dimitrov, The Fascist Offensive and the Task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935.08.02) —
  2. Leon Trotsky, Whither France? (1934–1936) —
  3. Julian Jackson, The Popular Front in France: Defending Democracy, 1934–3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4. Kevin McDermott & Jeremy Agnew, The Comintern: A History of International Communism from Lenin to Stalin (Macmillan, 1996)
  5. E. H. Carr, The Twilight of the Comintern, 1930–1935 (Macmillan,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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