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반대파
United Opposition
트로츠키가 이끄는 좌익반대파와 지노비예프·카메네프의 신반대파가 1926년(4월 결성으로 보는 문헌도 있다) 결성한 당내 연합으로, 스미르노프의 '15인 그룹' 제안이 계기가 되었다. 당내 표현의 자유 확대, 관료주의 축소, 신경제정책(NEP) 해체와 중공업 우선 발전을 요구하며 스탈린이 이끄는 중앙(다수파)에 맞섰다. 수천 명 규모의 느슨한 반스탈린 연합으로 옛 데치스트·노동반대파 잔존 세력과 크룹스카야도 일시 참여했으며, 1927년 12월 제15차 당대회에서 제적되었다.
상세
기원과 결성
볼셰비키당은 1921년 제10차 당대회에서 분파 활동을 금지했으나 비공식 분파는 계속 남았다. 1923년 가을 '46인 선언'이 당내 관료화와 검열을 비판했고,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와 지노비예프·카메네프의 신반대파는 1925년부터 입장이 접근하기 시작해 1926년 초 하나의 반대 블록으로 통합되었다. 결성의 계기는 스미르노프의 '15인 그룹' 제안이었으나, 이 그룹은 소련이 더 이상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성 직후 이탈했다.
1926년 5월 트로츠키·지노비예프 등 82명이 스탈린 지도부를 비난하는 선언에 서명했고, 중앙위원회가 두 달 뒤 철회를 요구했으나 반대파는 거부했다. 통합반대파는 1926년 7월 14~23일 중앙위원회·중앙통제위원회 합동 전원회의에서 '13인 선언'으로 공개 등장했다.
강령
통합반대파는 당내 표현의 자유 확대, NEP 해체, 중공업 발전 확대, 관료주의 축소를 요구했다. 1926년 강령은 당내 민주주의와 토론의 결여를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어디에서도 결의는 언제나 만장일치로만 채택된다"는 점을 지적했고, 노동자·평당원의 영향력이 꾸준히 축소된다고 보았다.
1927년 통합반대파는 새 공식 강령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노동조합 대회(전연맹 대회 포함)에서 노동자 과반 대표와 이 선출 기관에서 비당원 노동자 비중 1/3 확대, 노동자의 비판권(독자적 제안권)의 법적 보호 요구가 담겼다. 같은 해 9월 강령은 NEP를 통해 자본주의적 영향이 스며든다고 비판하고 당이 진정한 레닌주의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통합반대파 강령》은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의 상황, 농업 문제와 사회주의 건설, 국가산업, 소비에트, 민족 문제, 당, 공산청년동맹, 국제 정세와 전쟁 위험, 적군과 적색함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었고, 표지 서명자 명단에는 트로츠키, 카메네프, 요페, 피아타코프, 라데크, 라콥스키, 지노비예프, 스밀가, 프레오브라젠스키, 라셰비치 등이 포함되었다.
활동과 진압
중앙위원회에서 막힌 통합반대파는 1926년 9월 말 공장 지역에서 공개 시위를 열었으나 한 달 안에 스탈린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았고, 트로츠키·카메네프·지노비예프는 공개적으로 철회했다. 크룹스카야는 잠시 지지를 보내다 1926년 가을 "반대파는 너무 멀리 갔다"며 이탈했다. 1926년 7월 전원회의에서 반대파는 국가산업이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품 부족이 지속된다는 점을 주요 불만으로 제기했고, 중앙위원회는 지노비예프를 분파 금지 위반으로 기소해 정치국에서 제명했다. 그해 10월 트로츠키가 정치국에서 축출되고 지노비예프는 코민테른 지도부 직을 잃었으며 카메네프는 정치국 후보위원 지위를 상실했다.
1927년 11월 7일 혁명 10주년에 반대파는 크룹스카야와 함께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시위를 열고 레닌의 '유언장'을 불법 배포했으나 당내에서 뚜렷한 소수에 머물렀으며, 경찰이 구성원 다수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1927년 10월 세 사람 모두 중앙위원회에서 제적되었고 11월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 12월 카메네프가 당에서 제명되었다. 제15차 당대회(1927년 12월)는 반대파 견해가 당원 자격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이들을 제적했으며, 1928년 1월 트로츠키는 알마아타로 유배되었다.
관계와 이후
통합반대파는 스탈린-부하린 다수파에 맞섰으나 1927년 중반까지 카메네프·지노비예프 그룹 지지자 대부분과 노동반대파 출신 다수가 정치적 압력 속에 스탈린 지지로 돌아서며 이탈했다. 1927년 곡물조달 위기의 영향 속에서 스탈린은 반대파의 구호(공업화·집단화)를 사실상 수용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이로써 어제의 동맹이던 부하린파가 '우익 편향'으로 규정되었다. 1928년 부하린은 지노비예프·카메네프와 스탈린에 대항한 연합을 시도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스탈린은 이 회동을 두 사람의 음모 증거로 이용했다.
좌익반대파는 1923년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형성된 파벌이고, 통합반대파는 1926년 좌익반대파가 신반대파와 통합해 만들어진 연합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러시아어 문헌은 1926~1927년에 트로츠키주의자, 지노비예프주의자, 옛 데치스트(민주집중파)와 노동반대파의 잔존 세력이 통합했다고 서술하며, 어제의 사상적 적대자들의 이 같은 결합이 오히려 이들의 명분을 약화시켜 '무원칙성'과 권력 장악만을 위한 행태라는 비난을 불렀다고 평가한다.
1936년 쇼재판 끝에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으며 이 사건은 대숙청의 출발로 평가된다. 1940년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소련 요원에 의해 암살되었다. 1941년 말까지 통합반대파의 옛 지지자 거의 전원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처형되거나 암살되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platform of the Joint Opposition
- encyclopedia.com leadership, programme and defeat
- 위키백과 (영문)
- encyclopedia.com
- 위키백과 (러시아어)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