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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인물 296명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푸르센코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Фурсенко
학술·연구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27–2008 ○ 사망

소련 기록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처음 재구성한 역사가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번스는 그를 '20세기 미국사에 관한 가장 유능한 소련 전문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전후 세대 최초로 소련에서 미국사 연구의 학문적 기초를 세운 역사가. 레닌그라드대학에서 국제관계사를 전공하고 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에서 평생 연구하며 석유정치, 미국 혁명, 미소 관계를 아우르는 300여 편의 저작을 남겼다. 티머시 나프탈리와 함께 소련 공산당·크렘린 문서고를 처음 열어 쿠바 미사일 위기의 내막을 밝힌 『One Hell of a Gamble』(1997)은 냉전사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어진 『Khrushchev's Cold War』(2006)로 영국 왕립연합군사연구소의 올해의 군사사 서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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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역사학 후보학위 취득
  • 1954–1988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 선임·주임 연구원
  • 1966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88–2008레닌그라드 역사연구소 세계사 부장
  • 1990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 1996–2002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역사부 아카데미크 서기

타티야나 이바노브나 자슬랍스카야

Татьяна Ивановна Заславская
학술·연구 소련 국가기관 소련 러시아 1927–2013 ○ 자연사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의 창시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뇌관

「소비에트 경제학자로서 국가로부터 높은 봉급을 받는 11명의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경제와 사회의 상태에 대해 인민 앞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생각한다」 — 1983년

물리학도에서 경제학으로 전향한 키이우 출신 학자.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농촌사회를 연구하며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을 개척했고, 1983년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KGB가 압수했으나 서방으로 유출되어 『노보시비르스크 선언』으로 불리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토양이 되었다. 소비에트 사회학 협회 회장, VTsIOM 초대 소장, 인민대의원으로 사하로프·옐친과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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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50모스크바대 물리학과 3년 수료 후 경제학부 우등 졸업
  • 1950–63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농업 부문 연구, 1956년 кандидат 학위
  • 1963–87노보시비르스크 IEiOPP, 1967년 사회문제 부서장, 경제사회학 학파 창립
  • 1968 / 1981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이어 정회원(당시 여성 학자 5명 중 한 명)
  • 1983「노보시비르스크 선언」: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사회적 경직을 진단
  • 1986–91소비에트 사회학 협회 회장
  • 1988–92VTsIOM(전연방 여론연구센터) 창립 소장
  • 1989–91인민대의원, 사하로프·옐친과 지역간 대의원 그룹에서 활동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부를라츠키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Бурлацкий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 1927–2014 ○ 자연사

흐루쇼프 개혁의 설계자, 소련 정치학의 선구자

「나는 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철제 담장에 올라 팔을 벌리고 날아올랐다. 떨어져 팔이 빠졌다. 그것이 내 인생의 상징이 되었다」 — 권력에 맞서기를 회고하며

소련에서 정치학을 독립 학문으로 정립한 이론가. 1961년 당 강령에 '전인민국가' 테제를 삽입했으며, 해빙기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개혁 노선을 이은 개혁적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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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7타슈켄트 법학대학 졸업
  • 1951법학 후보학위 (소련 과학아카데미 법학연구소)
  • 1952–1960과학아카데미 상임간부회 과학비서 → 잡지 『콤무니스트』 국제부
  • 1960–1964CPSU 중앙위 컨설턴트 그룹 책임자 (안드로포프 휘하); 1961년 당 강령·도덕 규범 공동 집필
  • 1964철학 박사학위: 논문 「국가와 공산주의」
  • 1965–1967『프라우다』 정치평론가 (주필급, 독자적 발언권)
  • 1967–1977검열 반대 기사로 해임, 10년간 출판 금지·7년간 해외여행 금지
  • 1969–1971소련 과학아카데미 사회학연구소 부소장
  • 1971–1989CPSU 중앙위 사회과학연구소 철학 주임
  • 1982–1991『문학신문』 정치평론가 → 주필 (1990–1991)
  • 1989–1991소련 평화기금 대표 인민대의원, 최고회의 국제문제위원

올레크 티모페예비치 보골몰로프

Олег Тимофеевич Богомолов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계 1927–2015 ○ 자연사

사회주의권 경제 통합과 개혁을 연구한 경제학자

그는 소련 경제의 정체가 페레스트로이카에 첫 자극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올레크 보골몰로프는 사회주의권의 국제경제 관계를 연구한 소련 경제학자이자 학술기관 운영자였다. 그는 동유럽의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개혁 경험을 비교 연구하며 계획경제의 경직성과 시장 메커니즘의 가능성을 함께 검토했다. 안드로포프가 경제 개혁 준비를 추진한 1983년에는 관련 위원회에 참여해 개혁 논의에 전문 지식을 제공했다. 이후에도 시장과 사회적 보호를 결합하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적 선택지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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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대외무역부 고등무역학교 졸업
  • 1954국제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 1962–1969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대외무역 관련 기관에서 근무
  • 1967–197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해외 사회주의 국가 경제지리학 강좌장
  • 1969–1991사회주의체제세계경제연구소 소장
  • 1981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3안드로포프 경제 개혁 준비 위원회 참여
  • 1989–1991소련 인민대회 대의원

이반 티모페예비치 프롤로프

Иван Тимофеевич Фролов
학술·연구 소속 미확정 소련 러시아 1929–1999 ○ 자연사

페레스트로이카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마르크스주의 인문학자: 유전학에서 인간학까지

「나는 '당의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한다. 정치는 과학의 철학적 해석에만 관여할 뿐, 과학 자체를 평가할 수 없다」 — 『유전학과 변증법』, 1968년

리센코주의를 철학적으로 무너뜨린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진정한 휴머니즘'을 제시했으며, 생명윤리와 인간 종합연구를 개척했다. 프라우다 주필과 정치국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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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모스크바대 철학부 졸업 (은메달)
  • 1958철학 후보박사 — 「결정론과 목적론」
  • 1965–68CPSU 중앙위 이념담당 서기 보좌관
  • 1966철학 박사 — 「생물학 방법론의 문제들」
  • 1968–77『철학의 제문제』 주필, 1968년 『유전학과 변증법』 출간
  • 1976 / 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이어 정회원
  • 1986–87『콤무니스트』 주필, TV 「철학 대화」 진행
  • 1987–89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과학·교육·문화 보좌관
  • 1989–91『프라우다』 주필
  • 1989–90CPSU 중앙위 서기
  • 1990–91CPSU 중앙위 정치국원
  • 1991–99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인간연구소 창설·소장

세르고 아나스타시예비치 미코얀

Серго Анастасович Микоян
학술·연구 소련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1929–2010 ○ 자연사

냉전의 비공개 기록을 복원한 역사학자

그는 1962년 아버지의 개인 비서로 쿠바 협상을 기록했고, 그 문서가 훗날 공개되며 미사일 철수 뒤에도 전술핵이 쿠바에 남아 있었음이 드러났다.

세르고 미코얀은 라틴아메리카와 소련 대외정책을 연구한 소련·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아들이었다. 1962년 아버지를 수행해 쿠바를 방문한 경험과 개인 기록을 바탕으로, 공개된 미사일 철수 뒤에도 소련 전술핵이 쿠바에 남아 있었고 협상 과정이 쿠바 지도부와의 균열을 낳았음을 밝혔다. 그는 학술지 《라틴아메리카》를 이끌며 이 지역 연구를 조직했고, 훗날 소련과 미국 연구자들의 공동 냉전사 연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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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졸업
  • 1956동 대학원 수료
  • 1957–1960《세계경제와 국제관계》 학술 편집자
  • 1960–1990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
  • 1962아나스타스 미코얀의 쿠바 협상 수행원
  • 1970–1990월간지 《라틴아메리카》 편집장
  • 1990년대미국 대학·문서보관소와 공동 연구
  • 2000년대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율리 야코블레비치 오를세비치

Юлий Яковлевич Ольсевич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인 1929–2016 ○ 자연사

코시긴 개혁의 '두 규제자' 비양립성을 분석한 소련 경제학자

「한 기업에 동시에 두 개의 이질적 규제자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자동차에 두 명의 운전자와 두 개의 핸들이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회고로 본 계획체제』(2000)에서 코시긴 개혁의 실패를 요약하며.

소련 및 러시아의 경제학자로, 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우랄공대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1965년부터 사망까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해외 경제이론 비판적 연구 분과를 이끌었고, 후기에는 경제체제 전환 이론과 러시아 경제사상사 연구에 집중했다. 2000년 폴 그레고리와 공저한 『회고로 본 계획체제』에서 1965년 코시긴 개혁의 핵심 모순을 지령적 계획과 준시장이라는 두 이질적 규제자의 한 기업 내 양립 불가능성으로 분석하여, 개혁 연구의 '두 규제자' 학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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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1957우랄공대 정치경제학 강사
  • 1957–1962외국문학출판사 경제편집부 편집자·부장
  • 1962–1965IMEMO 선임연구원
  • 1965–1968소련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세계가격분과장
  • 1968–1992경제연구소 해외경제이론비판분과장
  • 1969–2016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 1992–2016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주력연구원

블라디미르 트레믈

Vladimir Treml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29–2018 사망

소련 경제의 숨은 흐름을 계량한 연구자

공식 판매량이 줄어도 사모곤은 통계 밖에서 계속 소비되었다.

블라디미르 트레믈은 소련 경제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득과 소비를 간접 지표로 추정한 미국의 경제학자다. 그는 사모곤을 포함한 실제 주류 소비량과 국가 재정에서 보드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해, 주류 판매 통계만으로는 소련 사회의 음주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음을 보였다. 1982년 저서 《소련의 알코올》은 이 연구를 집약했으며, 소련에서는 도서관 제한 열람 자료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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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s소련 경제와 비공식 소득 연구
  • 1970s소련의 비공식 경제와 소비 추정
  • 1977소련 제2경제 연구에 기여
  • 1982《소련의 알코올》 출간
  • 1987소련의 음주와 알코올 남용 연구 발표
  • 1989마이클 알렉세예프와 소련 제2경제의 불안정화 연구

그리고리 표도토비치 크리보셰예프

Григорий Фёдорович Кривошеев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계 1929–2019 ○ 자연사

기밀 해제된 전쟁 손실의 계량자

2002년 「군사역사잡지」에 실은 글에서 그는 역사가의 의무를 이렇게 적었다: "역사가는 자기 민족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리고리 크리보셰예프는 소련군에서 출발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까지 오른 군인이자 군사역사가였다. 그는 1988년부터 군사역사 연구단을 이끌어 비밀 해제 자료를 바탕으로 소련과 러시아 군대의 전쟁 손실을 통계화했고, 그 결과는 1993년 저서로 출간됐다. 이 연구는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의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12만 6,875명으로 제시해 널리 인용됐지만, 후속 연구자들은 누락과 중복 가능성을 지적하며 더 높은 수치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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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소련군 입대, 포병연대 복무
  • 1953튜멘 군사보병학교 졸업, 소대장
  • 1964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졸업
  • 1973제161차량화소총사단 사단장
  • 1979투르키스탄 군관구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 1984소련군 서부집단군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генерал-полковник
  • 1987소련군 총참모부 조직·동원총국장, 부총참모장
  • 1988–1993군사 손실 통계 연구단 책임자

메라브 콘스탄티노비치 마마르다슈빌리

Мераб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Мамардашвили
학술·연구 소련 그루지야 1930–1990 ○ 심장마비

의식을 소리내어 말한 철학자

「영웅적 의식은, 우리가 정확히 사유하지 않을 때 악마가 우리를 가지고 논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정확히 사유하라.」

소비에트 그루지야의 철학자. 마르크스에서 칸트·프루스트로 나아가며 의식과 자유를 비도그마적으로 탐구했다. 모스크바 논리학 서클을 공동 창립했고, 강의로 철학했으며 작업 대부분이 녹음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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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1954모스크바 국립대 철학과 수학, 졸업
  • 1954–1957모스크바 국립대 철학과 대학원
  • 1958–1961『보프로시 필로소피』 편집자문위원, 철학 후보학위 취득
  • 1961–1966『평화와 사회주의의 제 문제』 비평·서지부장 (프라하)
  • 1966–1974국제노동운동연구소 부문장, 『보프로시 필로소피』 부편집장
  • 1968–1980모스크바 국립대·VGIK·심리학연구소 강의; 철학박사(1970), 교수(1972)
  • 1980–1990그루지야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주임연구원, 트빌리시 국립대 강의

알렉산드르 예브게니예비치 보빈

Александр Евгеньевич Бовин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 1930–2004 ○ 자연사

브레즈네프의 외교 연설문 작성자, 데탕트의 문장을 쓴 언론인

한 파티에서 누군가 물었다. '브레즈네프의 최근 연설 읽어보셨나요?' 보빈이 답했다. '읽다뇨? 제가 썼는데요.' 다음 날 그는 『이즈베스티야』로 전보되었다.

브레즈네프 시대 소련 외교 수사의 핵심 설계자로, 1963년부터 1972년까지 CPSU 중앙위 국제부 컨설턴트 그룹을 이끌며 데탕트·평화공존·군축 담론의 문장을 직접 썼다. 그가 만든 '경제는 절약해야 한다' 같은 문구들은 브레즈네프의 공식 어록이 되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바르샤바조약군 개입에 회의적 입장을 견지해 당 기구에서 『이즈베스티야』 정치평론가로 옮겨갔고, 이후 20년간 TV '국제 파노라마'의 얼굴로 소련에서 가장 신뢰받는 국제문제 해설자가 되었다. 1991년 소련 최초의 이스라엘 대사로 임명되어 일주일 뒤 러시아 연방 대사로 이어지는 독특한 외교 경력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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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1956하디젠스크시 인민판사 (소련 최연소 판사)
  • 1959–1963잡지 『콤무니스트』 철학부 과학 컨설턴트
  • 1963–1972CPSU 중앙위 국제부 컨설턴트 그룹 책임자 · 브레즈네프 연설문 작성
  • 1968체코슬로바키아 체르나 협상에 소련 대표단 자문으로 참여
  • 1970–1982브레즈네프 서기장 연설문 작성 (비공식 외부직으로 지속)
  • 1972–1991『이즈베스티야』 정치평론가 · TV '국제 파노라마' 진행자
  • 1981–1986CPSU 중앙감사위원회 위원
  • 1991.12소련 이스라엘 대사 (1주일 후 러시아 대사로 전환)
  • 1991–1997러시아 연방 이스라엘 대사
  • 1997–2000『이즈베스티야』 정치평론가 복귀 · TV·라디오 진행

로더릭 맥파쿼

Roderick MacFarquhar
학술·연구 영국 영국 1930–2019 ○ 자연사

『문화대혁명의 기원』 3부작과 『마오의 마지막 혁명』으로 엘리트 정치를 해부한 하버드의 중국학자

1961년까지 런던에서 중국 관련 보도를 담당한 언론인이었고 중국 본토는 1972년에야 처음 방문했으며, 이후 인민공화국 건국부터 문화대혁명까지의 중국 엘리트 정치를 연구했다.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언론인과 노동당 하원의원을 거쳐 학자가 되었고 『차이나 쿼털리』를 창간해 편집했다. 1974년부터 1997년까지 낸 『문화대혁명의 기원』 3부작은 1956년 백화제방부터 1966년까지 최고 지도부 안의 노선 대립을 추적해 문화대혁명이 마오 개인의 변덕이 아니라 대약진 실패 이후 누적된 정치적 갈등의 귀결임을 보였다. 2006년 마이클 쇤할스와 쓴 『마오의 마지막 혁명』은 1966~1976년 전체를 다룬 표준적 서술이다. 하버드대학 교수와 페어뱅크센터 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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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79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벨퍼)
  • 1984–2019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

폴 에이브리치

Paul Avrich
학술·연구 미국 러시아 1931–2006 ○ 자연사

『크론시타트 1921』로 러시아·미국 아나키즘사를 개척한 역사가

명예교수로 임명됐을 때 그를 소개하며 인용된 말, '진정 좋은 사람이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구나 아나키스트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오데사 출신 유대인 이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퀸스 칼리지에서 평생 러시아와 미국의 아나키즘 운동사를 가르친 개척적 역사가였다. 『크론시타트 1921』(1970)으로 볼셰비키가 그 봉기를 반혁명 음모로 규정한 신화를 실증적으로 깨뜨렸으며, 훗날 게츨러의 명부 연구가 더 정밀한 수치를 내놓자 그 우위를 인정했다. 아나키스트를 '부도덕하고 폭력적'으로 보는 편견에 맞서 그들을 '사회정의의 선구자'로 복원하려 했고, 평생 모은 2만 점의 자료를 미국 의회도서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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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뉴욕 브루클린 출생
  • 1952코넬대학교 졸업
  • 1950년대 초미 공군으로 한국전쟁 참전
  • 1961컬럼비아대학교 박사 학위, 퀸스 칼리지 강사 임용
  • 1967첫 책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 출간
  • 1970『크론시타트 1921』 출간
  • 1984『헤이마켓 비극』으로 필립 태프트 노동사 도서상 수상
  • 1999퀸스 칼리지에서 퇴임

모리스 마이스너

Maurice Meisner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31–2012 ○ 자연사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로 중국 혁명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한 역사가

1968년 위스콘신대학에서 냉전기 미국 학생들에게 마오 시대 중국을 가르쳤고, 개혁개방기 중국이 관료자본주의로 흘러갔다고 진단하며 1989년 베이징에 있었다.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위스콘신대학 매디슨 교수를 지냈다. 첫 저작 『리다자오와 중국 마르크스주의의 기원』(1967)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농민에 대한 신뢰가 결합한 방식을 밝혔다. 1977년 초판이 나온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는 인민공화국사의 표준 교과서로, 마오주의를 사회주의의 이상과 후진국 근대화라는 이중 과제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읽었다. 그는 마오 시대의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개혁기의 시장화가 사회주의의 약속을 저버렸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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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1999위스콘신대학 매디슨 역사학 교수

휴 토머스

Hugh Thomas
학술·연구 영국 영국인 1931–2017 ○ 자연사

스페인 내전을 세계사적 서사로 만든 역사가

스페인어 한마디 몰랐던 서른 살의 영국인이 쓴 《스페인 내전》이 파리에서 출간되어 프랑코 정권 아래 금서로 밀반입됐다.

휴 토머스는 1961년 저서 《스페인 내전》으로 전쟁을 국제 독자에게 널리 알린 영국 역사가다. 그는 외교 자료와 참전자들의 기록,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화파의 투쟁과 내부 폭력을 공산주의 진영이나 반공주의 진영의 논리 어느 한쪽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서술했다. 이 책은 프랑코 독재 아래의 스페인에서 clandestine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며, 사실과 해석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출발점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쿠바와 스페인 제국, 세계사를 연구했고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에서 보수당을 거쳐 자유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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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1952윈저 출생, 셔본 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수학
  • 1952–1953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트라이포스에서 최우등, 케임브리지 유니언 회장
  • 1954–1957영국 외무부 근무, 유엔 군축위원회 영국 대표단과 파리 대사관에서 활동
  • 1957왕립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강의, 첫 소설 《세계의 게임》 출간
  • 1961《스페인 내전》 초판 출간, 1962년 서머싯 몸상 수상
  • 1966–1976리딩 대학교 역사학 교수
  • 1971–2014쿠바, 멕시코 정복, 스페인 제국을 다룬 대작과 세계사 저술
  • 1981–2017스위너턴의 토머스 남작으로 귀족원 의원, 2017년 사망

로버트 오언 팩스턴

Robert Owen Paxton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32–

비시 프랑스의 협력을 재구성한 역사가

“비시 정권은 패배 뒤 프랑스를 재편하려는 자체의 적극적 계획을 갖고 있었다.”

로버트 팩스턴은 미국의 현대 유럽사 연구자로, 비시 프랑스와 파시즘의 사회적·정치적 조건을 분석했다. 독일 점령기 문서와 프랑스 자료를 함께 읽어 비시 정권이 독일의 수동적 도구가 아니라 자체적인 국가 재편 구상을 지닌 협력자였음을 밝혔다. 마이클 마루스와 함께 쓴 『비시 프랑스와 유대인』은 비시의 초기 반유대 법령이 독일의 직접 명령 없이 추진된 정책임을 논증해 프랑스의 전후 기억과 역사학을 바꾸었다. 그의 연구는 협력과 저항을 도덕적 신화가 아니라 국가기관, 사회세력, 전쟁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보게 했으며 세부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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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워싱턴 앤드 리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음
  • 1961옥스퍼드 대학교 머턴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음
  • 1963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음
  • 1966『비시의 행진과 정치』를 출간
  • 1969컬럼비아 대학교 역사학과에 합류
  • 1972『비시 프랑스』를 출간해 협력 연구의 전환을 촉발
  • 1981마이클 마루스와 『비시 프랑스와 유대인』을 출간
  • 1997모리스 파퐁 재판에서 비시 협력에 관한 전문가 증언
  • 2004『파시즘의 해부』를 출간
  • 2009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 서훈

아벨 게제비치 아간베갼

Абел Гезевич Аганбегян
학술·연구 소속 미확정 소련 아르메니아 1932–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장개혁 설계사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비에트 사회 전체의 혁명적 쇄신이다. 성장의 가속은 민주화와 글라스노스트에서 분리될 수 없다. (1988)

트빌리시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수리경제학자. 노보시비르스크 IEiOPP 소장(1966–1984)으로 시베리아 개발과 BAM의 경제 토대를 설계하고 『EKO』를 창간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 되어 기업 자율성 확대, 시장 요소 도입, 대외경제 개방이라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학아카데미 경제분과 서기(1986–1989)로 활동하며 소비에트 계획경제 안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모색했고, 소련 해체 후 국민경제아카데미 총장(1989–2002)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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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1961노동·임금 국가위원회에서 경제학자로 근무
  • 1961–1966노보시비르스크 IEiOPP 섹터장, 33세에 소장
  • 1966–1984IEiOPP 소장, BAM 과학위원회 의장, 『EKO』 창간·편집장
  • 1974과학아카데미 정회원 (1964년 통신회원)
  • 1985–1989고르바초프 경제 고문, 생산력연구위원회 의장
  • 1986–1989과학아카데미 경제분과 아카데미크-서기, 상임위원
  • 1989–2002소련·러시아 정부 산하 국민경제아카데미 총장
  • 2002–현재국민경제아카데미 경제이론·정책 학과장, 저술 활동 지속

야아코브 로이

יעקב רועי
학술·연구 이스라엘 이스라엘 1932–

소련 사회와 유대인의 역사를 잇댄 역사가

그는 전쟁의 장기적 국내 영향이 국제적 파장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분석했다.

야아코브 로이는 소련의 유대인, 이슬람, 중동 정책과 소비에트 사회를 연구한 이스라엘 역사가다. 그는 문서 연구와 사회조사를 결합해 국가 정책이 민족 공동체와 대중의 정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출혈하는 상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국내적 비용과 유산을 분석하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주민의 태도 차이를 통해 전쟁과 소련 붕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실증 자료를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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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60–1965바이츠만 기록보관소 연구원
  • 1972–1974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강사
  • 1977–1982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소장
  • 1982–1990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부교수
  • 1990–2003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정교수
  • 2001–2002컴밍스센터 소장
  • 2003–텔아비브대학교 명예교수

블라디슬라프 알렉산드로비치 쿠투조프

Владислав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тузов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인 1933–2016 ○ 자연사

레닌그라드 사건 연구의 기초를 놓은 소련 역사학자

1989년, 『CPSU사 문제』에 실린 그의 논문 「이른바 '레닌그라드 사건'」은 이 사건을 '즈다노프 그룹 대 말렌코프-베리야 그룹'의 파벌 투쟁으로 정식화했다. 이후 30년 넘게 이 틀이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소련의 역사학자. 레닌그라드대학 사학부를 우등 졸업하고 토르조크에서 교사와 당 일꾼으로 일한 뒤, 1966년부터 레닌그라드 당역사연구소에서 25년간 봉쇄·전후복구·당 간부들의 정치 전기를 연구했다. 1989년 『CPSU사 문제』에 발표한 「이른바 '레닌그라드 사건'」에서 이 사건을 즈다노프 그룹과 말렌코프-베리야 그룹 사이의 파벌 투쟁으로 해석하는 틀을 처음 제시했고, 이듬해 빅토르 데미도프와 함께 편찬한 동명의 책은 20만 부 발행으로 대중적 폭발을 일으켰다. 이 작업으로 '레닌그라드 사건' 연구의 포스트소비에트 역사학 전체를 열었으며, 1991년부터 사망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로 후속 세대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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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칼리닌주 토르조크 출생, 노동자 가정
  • 1952–1957레닌그라드대학 사학부 우등 졸업
  • 1957–1962르제프 중등학교 교사, 이후 토르조크 시당위 선전선동부 지도원·부장
  • 1965후보학위 취득, 「제1차 5개년계획기 레닌그라드 CCC-RKI 활동」
  • 1966–1991레닌그라드 당역사연구소(후일 역사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 1987–1989『대화』에 '레닌그라드 사건' 첫 논문 게재, 『CPSU사 문제』에 획기적 논문 발표, 박사학위 취득, KGB상 수상
  • 1990V. I. 데미도프와 『레닌그라드 사건』 편찬, 20만 부 발행
  • 1991–2016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역사학부 러시아현대사 교수, 150편 이상 논문·저서 발표

알렉산드르 빅토로비치 넴초프

Александр Викентьевич Немцов
학술·연구 소련 러시아인 1933–

반알코올 캠페인으로 100만 명이 살았다고 추계한 러시아 알코올 역학의 권위자

"반알코올 캠페인은 1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넴초프가 25년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다.

모스크바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로 출발해 모스크바 정신의학연구소에서 평생을 연구한 알코올 역학의 개척자다. 1985년 반알코올 캠페인을 계기로 실제 알코올 소비량과 그로 인한 사망 규모를 추계하는 방법론을 개발했으며, 캠페인이 약 1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추정치를 제시해 국제적 논의의 기준점을 만들었다. 고르바초프 시기와 소련 붕괴 이후의 알코올 관련 초과 사망을 추적하며 알코올 정책과 공중보건의 관계를 실증한 그의 연구는 러시아 인구위기의 핵심적 설명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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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모스크바에서 출생
  • 1977의학박사 학위 취득
  • 1982알코올 중독 문제 연구 시작, 1985년부터 역학 조사
  • 1987실제 알코올 소비량 추계 방법론 개발
  • 1990알코올 관련 사망률 추계 방법론 개발
  • 1996모스크바 정신의학연구소 정보학·체계연구부장
  • 2011『러시아 알코올 현대사』 영문판 출간 (쇠데르턴 대학)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야블로코프

Алекс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Яблоков
학술·연구 러시아 러시아인 1933–2017

체르노빌의 장기 피해를 추적한 생태학자

그가 편집한 체르노빌 연구서는 6,000여 개 자료를 검토해 장기 피해를 추산하며 공식 사망자 수 중심의 서술에 이의를 제기했다.

알렉세이 야블로코프는 동물학과 생태학을 연구한 소련·러시아 생물학자이자 환경정책가였다. 그는 체르노빌의 장기적 건강·환경 피해를 강조하며 공공 논쟁에 참여했고, 공동 저술서의 높은 사망 추정치는 재난 피해 규모를 둘러싼 논쟁의 한 극단을 이루었다. 과학 연구와 환경운동, 의회·대통령 자문 활동을 오가며 생태 문제를 국가 의제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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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6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생물·토양학부 졸업
  • 1966생물학 박사 취득, 세베르초프 동물 형태학 연구소 선임연구원
  • 1969–1989콜초프 발달생물학연구소 연구실장 및 선임연구원
  • 1984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 correspondent 선출
  • 1988–1991그린피스 소련 창립자·공동의장
  • 1989–1991소련 인민대의원, 최고회의 생태위원회 부위원장
  • 1992–1997러시아 대통령 환경·보건 자문 및 환경안보 부처간위원회 의장
  • 2007–2009『체르노빌: 사람과 환경에 미친 재난의 결과』 공동 편집·저술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33–2023

미국 정치학자, 에티오피아 연구자

멩기스투 정권 시기, 망명자들의 망명·사면 청원을 도와 수십 명이 고문과 죽음을 피하도록 했고 2018년에는 성훈장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에티오피아 연구자로, 오클라호마주립대학 정치학교수와 명예교수를 지냈다. 평화봉사단 아디스아바바 부단장 부임 시점은 부고·왕실평의회가 1963년, 출판사·도서관 약력이 1964년으로 엇갈린다. 뉴델리 교육자료센터 상주 책임자, 오스틴대학 평생교육원장, 털사대학 선임연구원을 거쳐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오클라호마주립대학에서 가르쳤다. 멩기스투 정권 시기 망명자들의 망명·사면 청원을 도와 수십 명이 고문과 죽음을 피하도록 했고, 2018년 성훈장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 《에티오피아: 냉전 이후의 아프리카 국가》(1999)와 《신대륙의 유다의 사자》(2011)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가연구서 《에티오피아: 국가연구》는 그의 저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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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텍사스주 셔먼에서 출생
  • 1963 또는 1964미국 평화봉사단 입단 및 아디스아바바 부단장(출처 간 연대 불일치)
  • 1974 이후에티오피아 망명자 망명·사면 청원 지원
  • 1988–2008오클라호마주립대학 정치학 교수
  • 1999《에티오피아: 냉전 이후의 아프리카 국가》 출간
  • 2011《신대륙의 유다의 사자》 출간
  • 2018성훈장 대십자 훈장 수훈
  • 2023향년 89세로 사망

마틴 매콜리

Martin McCauley
학술·연구 영국 아일랜드 1934–

소련 현대사를 해석한 영국 역사가

스탈린에게 '영원한 적'이라는 관념의 창조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마틴 매콜리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소련과 동유럽의 정치사를 연구한 역사가다. 그는 UCL 슬라브·동유럽학부에서 가르치며 스탈린주의, 흐루쇼프 시대, 냉전과 소련의 흥망을 폭넓게 다뤘다. 20차 당대회 비밀연설을 그는 당을 효율적인 기구로 되돌리려는 개혁이자, 흐루쇼프가 경쟁자들의 권위를 약화한 권력투쟁으로도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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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1956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측량학 수학
  • 1961파리 소르본에서 프랑스 문명 연구
  • 1962–1968런던대학교에서 학위 과정 및 박사학위 취득
  • 1968–1978런던대학교 슬라브·동유럽학부 선임강사
  • 1975『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국가』 편집·출간
  • 1976『흐루쇼프와 소비에트 농업 발전』 출간
  • 1995『흐루쇼프 시대, 1953~1964』 출간
  • 2007『소련의 흥망』 출간

모리스 아앙한조글레

Maurice Ahanhanzo-Glèlè
학술·연구 소속 미확정 베냉 베냉 1934–

1990년 베냉 헌법을 이끌어 낸 헌법학자

1990년 8월 9일 그가 이끈 헌법위원회가 헌법 초안을 채택했고, 12월 2일 국민투표를 거쳐 12월 11일 헌법이 공포됐다.

1934년 다호메이 진비에에서 태어난 베냉의 헌법학자이자 법률가다. 1990년 2월 국민회의 법·헌법 문제 위원회를 이끌며 12월 11일 헌법의 초안을 마련했고, 1990~1991년 제헌의회 의장을 지냈다. 유네스코에서 일했고 다호메이 정치·사회사를 연구했으며 유엔 인권 기구에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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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1966유네스코 사무총장 자문
  • 1967–1992유네스코 근무
  • 1975–소르본 대학 법학 교수
  • 1989–1993유네스코 사무차장
  • 1990국민회의 법·헌법 문제 위원회 의장
  • 1990–1991제헌의회 의장
  • 1994–2002유엔 현대적 형태의 인종차별 특별보고관
  • 2000–유엔 인권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