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전체의 총아」, 당의 이름으로 죽다
1920년대 중반, 스탈린이 부하린에게 말했다: "너와 나, 부하르치크, 우리는 히말라야이고, 나머지는 전부 작은 얼룩일 뿐이야." 10년 뒤, 같은 입이 그를 총살하라 명령했다.
레닌이 유언에서 「당 전체의 총아」라 부른 명민한 이론가. 브레스트에서는 혁명전쟁을 외친 최좌파였고, 10년 뒤에는 네프와 농민을 지키려 스탈린의 대전환에 맞선 「우편향」이 되었다. 1938년 재판 끝에 총살되었다. 스탈린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코바, 왜 나의 죽음이 필요한가?」는 스탈린의 책상에서 발견되었다.
경력 연표
- 1916–17뉴욕에서 망명 신문 편집
- 1917《제국주의와 세계경제》 출간(1915년 집필)
- 1918좌파 공산주의자, 브레스트 반대
- 1918–29프라우다 주필, 코민테른 지도부
- 1920프레오브라젠스키와 《공산주의 ABC》 공저·출간
- 1921《사적 유물론: 사회학 체계》 출간
- 1925–28네프 이론가, 「부유해지십시오」
- 1929「우편향」으로 실각
- 1934–36이즈베스티야 주필, 1936년 헌법 기초 참여
- 1938제3차 모스크바 재판, 처형
관련 역사 사건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당 중앙 지도자로 정책 방향 결정
- 1921–1928신경제정책(네프)네프의 이론가스미치카를 옹호하며 시장을 통한 점진적 사회주의 건설론을 가장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 1923–1927레닌 사후 권력투쟁과 좌익 반대파「문학토론」의 포문을 연 프라우다 사설의 필자1924년 10월 프라우다 사설 「10월의 역사를 어떻게 쓰지 말 것인가」로 트로츠키에 대한 '문학토론'을 개시. 이후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을 이론화한 다수파 동맹자가 되었다.
- 1928–19375개년 계획과 소련의 대전환우파 반대파 지도자네프의 지속과 점진적 공업화를 주장하며 강제 집단화 노선에 반대하다 1929년 지도부에서 밀려났다.
- 1932–1933홀로도모르와 집단화 기근우익반대파 지도자, 네프 연장론의 마지막 대변자스탈린의 강제 집단화에 반대하며 네프의 점진적 연장과 농민에 대한 시장 유인책을 주장했으나, 1929년 '우익 편향'으로 제거되었다.
- 1937–1938대숙청표적모스크바 재판 뒤 처형된 옛 볼셰비키 지도자였다.
1928년 7월 11일 — 카메네프와의 비밀 면담
1928년 7월 11일, 니콜라이 부하린은 스탈린의 눈을 피해 레프 카메네프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불과 3년 전 서로가 서로를 정치적으로 죽이려 했던 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통의 적 앞에 섰다.
부하린은 카메네프에게 긴급히 경고했다: 스탈린이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으며, 농민을 짓밟고 네프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노선은 재앙이다. 그는 자신을 파라오처럼 여긴다. 우리는 모두 위험하다 — 그는 우리 모두의 목을 벨 것이다.」
카메네프가 이 대화를 기록해 두었고, 그 기록은 훗날 스탈린의 손에 들어갔다. 이 비밀 면담은 부하린과 '우익 반대파'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929년, 부하린은 정치국에서 축출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스탈린은 정말로 그의 목을 벨었다.
모스크바 재판에서 비신스키는 이렇게 외쳤다: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변호사가 감히 우리의 위대한 스탈린 동지를 비방하다니!」 부하린은 1938년 3월 총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