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트러블』에서 젠더 수행성 이론을 세운 미국의 철학자
1990년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시간 속에 되풀이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는 수행성 이론을 펴, 페미니즘이 「여성」을 공통된 성질을 지닌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해 온 방식을 비판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헝가리계·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미국의 철학자. 예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 1984년 헤겔과 프랑스 사상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웨슬리언·조지워싱턴·존스홉킨스 대학을 거쳐 1993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에서 가르쳤다. 『젠더 트러블』(1990)과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1993)로 젠더 수행성 이론을 세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8년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단지 문화적인」에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 밀어내는 마르크스주의 쪽 비판을 다루었고, 낸시 프레이저와 논쟁했다. 전쟁·애도·비폭력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도 글을 써 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93–
학술·연구대표
헤겔 연구에서 젠더 수행성으로
1956년 2월 24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헝가리계·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로 죽었다. 어린 시절 히브리 학교와 유대 윤리 특별 수업을 들은 것을 버틀러는 「철학의 첫 훈련」이라 불렀다. 베닝턴 칼리지를 거쳐 예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 1978년 학사, 1984년 헤겔·코제브·이폴리트·사르트르의 욕망 개념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고쳐 첫 책 『욕망의 주체들』(1987)을 냈다.
1988년 논문 「수행적 행위와 젠더 구성」에서 버틀러는 젠더가 고정된 정체성이나 역할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바뀔 수 있는 일련의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1990년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은 페미니즘이 「여성」을 공통된 성질을 지닌 몰역사적 집단으로 만들려 한 것이 잘못이며, 그것이 오히려 이분법적 젠더 관계를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보부아르·프로이트·라캉·크리스테바·이리가레·위티그·데리다·푸코를 두루 다루었고, 정체성을 본질이 아니라 수행으로 보는 생각은 퀴어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1993)는 수행성을 날마다 고르는 선택으로 읽는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다. 버틀러는 수행성이 규범의 규제되고 강제된 반복이며, 이 반복은 주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후 『혐오 발언』(1997), 『권력의 정신적 삶』(1997), 『안티고네의 주장』(2000), 『젠더 허물기』(2004)로 작업을 넓혔다.
「단지 문화적인」 논쟁과 정치 참여
1993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수사학과에 들어가 1998년 맥신 엘리엇 석좌교수가 되었고, 2007년 비판이론 프로그램을 함께 세웠다. 1998년 1~2월호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단지 문화적인」에서 버틀러는 두 가지 주장을 다루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학문과 운동이 문화 연구로 축소되었다는 명시적인 마르크스주의 쪽 반론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문화의 영역으로 밀어내 ‘단지’ 문화적인 문제에 매달린다고 깎아내리고 분파적·정체성주의적이라고 보는 경향이다. 버틀러는 이런 비판이 좌파를 갈라놓는 불필요한 분열을 넘어서려 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3~4월호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이성애주의, 무시, 자본주의: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답변」으로 답했다. 프레이저는 마르크스주의와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치 있는 측면을 되살리려는 버틀러의 뜻을 환영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유산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통찰,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을 두고 두 사람이 다르게 본다고 했다. 또 자신이 동성애자 억압을 ‘단지 문화적인’ 부차적 문제로 여기는 「신보수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와 한데 묶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버틀러는 일찍부터 퀴어·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해 국제 게이·레즈비언 인권위원회 이사장을 지냈고, 반전 운동에도 나섰다. 2011년 10월 월가 점령 시위에 참가했고, 유대인 평화의 소리 학술 위원으로 활동하며 팔레스타인 문제와 시온주의의 한계에 관해 써 왔다. 2012년 테오도어 아도르노상을 받을 때는 이스라엘 비판을 문제 삼은 반발이 일었다. 2017년 브라질의 민주주의 학술회의를 앞두고는 버틀러의 인형이 불태워졌고, 이 일이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는가?』(2024)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