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현재

이 역사를 연구한 사람들 128명

사료를 읽고 이 역사를 해석해 온 역사가와 사회과학자들.

연구자 영국 영국계 유대인 1965–현재 ○ 생존

권력의 사적 세계를 파고든 역사 저술가

그는 스탈린의 죽음 곁에 있던 베리야를 독살설의 증거와 함께 검토하며, 궁정의 사적 장면을 역사적 쟁점으로 바꾸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로, 권력자의 사적 세계와 정치적 폭력을 함께 그리는 역사 서술로 알려졌다. 『붉은 차르의 궁정』은 스탈린의 통치와 측근들을 새 문서와 회고 자료로 재구성했으며, 스탈린 말년의 베리야와 독살설을 둘러싼 증언을 검토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후 『젊은 스탈린』, 『예루살렘』, 『로마노프 왕조』 등으로 시야를 넓혀 혁명과 제국, 왕조의 장기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5런던에서 출생
  • 1983케임브리지 곤빌 앤드 키스 칼리지에서 역사학 수학
  • 1991첫 소설 『왕의 행렬』 출간
  • 2001『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템킨』 출간
  • 2003『붉은 차르의 궁정』 출간
  • 2007『젊은 스탈린』 출간
  • 2011『예루살렘』 출간 및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진행
  • 2016『로마노프 왕조』 출간

선즈화

沈志华
연구자 중국 중국 1950–현재 ○ 현역 역사학자

냉전 문서로 중소관계를 다시 읽은 역사가

선즈화는 중국 냉전사와 소련사, 중소관계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이며 화둥사범대학 냉전국제사연구센터를 이끌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해제 문서를 직접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 문서집을 편찬해 중국 냉전사 연구의 자료 기반을 넓혔다. 그의 연구는 중소분열을 국가이익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관계가 교차한 과정으로 분석하며, 중국의 선택을 이념적 연대만으로 설명하는 공식 서술에 질문을 던졌다. 한국전쟁과 중소동맹에 관한 저술은 중국과 소련, 조선 사이의 상호 계산을 추적해 중국 학계의 냉전 해석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상세 이력 보기
  • 1950베이징에서 출생
  • 1971–1978스징산 발전소 노동자·선전 부문 간부
  • 1978–1982중국사회과학원 세계사 연구생
  • 1983–1984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수감, 조기 석방
  • 1993–2002동방역사연구센터 설립·소련 역사档案 편찬
  • 2004–현재화둥사범대학 종신교수·냉전국제사연구센터 주임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라드첸코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Радченко
연구자 영국 러시아 1980–

중소분열의 원인을 동맹 내 불평등과 민족적 이해충돌에서 찾은 냉전사가

이데올로기적 불일치는 권력투쟁의 덮개에 불과했으며… 그 안에서 이데올로기는 수단일 뿐이었다.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소련 출신 영국 역사학자로, 냉전 시기 중소관계와 소련 외교정책을 연구해 왔다. 첫 저서 『하늘의 두 태양』(2009)은 중소분열의 원인을 이념보다 동맹 내 구조적 불평등과 중국의 민족적 굴욕감에서 찾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시한 로렌츠 뤼티의 해석에 대한 주요 반론으로 자리 잡았다.

상세 이력 보기
  • 2001BSc 국제관계학, 런던정치경제대학 (LSE)
  • 2005PhD 국제사, LSE
  • 2005–2007피츠버그주립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
  • 2007–2009LSE 국제사학과 펠로
  • 2009–2013닝보 노팅엄대학 강사
  • 2013–2016애버리스트위스대학교 부교수
  • 2016–2021카디프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
  • 2021–존스홉킨스대학교 SAIS 윌슨 E. 슈미트 석좌교수

세르히 미콜라요비치 플로히

Сергій Миколайович Плохій
연구자 미국 우크라이나 1957–

체르노빌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주장한 하버드대 역사학자

체르노빌 이야기 없이는, 소련의 붕괴는 심각하게 불완전할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을 지낸 역사학자로, 동유럽과 냉전의 지성사·국제사를 연구해 왔다. 2018년 『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글라스노스트를 촉발하고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의 기반을 형성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제국』, 『유럽의 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소련 해체와 동유럽 민족 정체성의 역사적 기원을 재해석하며 현대 동슬라브 역사서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80드니프로페트롭스크 대학교 역사·사회과학 학사
  • 1982민족우호대학교 대학원 수료
  • 1983–1991드니프로페트롭스크 대학교 교수
  • 1990키예프 대학교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96–2007앨버타 대학교 캐나다 우크라이나 연구소 교수
  • 2007–현재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
  • 2013–2025하버드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
  • 2018『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 수상

쉴라 피츠패트릭

Sheila Fitzpatrick
연구자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1941–

소련 사회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한 수정주의 역사학의 선구자

'실패만큼 확실한 실패는 없다. 혁명 100주년을 맞는 역사가들에게 소련의 소멸은 그늘을 드리운다.' (「What's Left?」, LRB, 2017)

소련사 연구의 수정주의 학파를 이끈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역사가. 1970~80년대 『교육과 사회 이동』, 『러시아 혁명』, 『스탈린의 농민들』, 『일상의 스탈린주의』를 잇달아 내며 국가와 지도자가 아닌 노동자·농민·도시민의 시선으로 소비에트 체제를 읽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개척했다. 2017년 LRB 기고문 「What's Left?」에서 10월 혁명 100주년의 역사서들을 평하며 혁명사 서술의 세 흐름(전체주의 모델, 수정주의 사회사, 포스트소비에트 '역사의 막다른 골목' 합의)을 정리했고,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귀결된 경로를 숙명이 아닌 사회적 동학의 산물로 분석해 냉전기와 그 후의 학계 모두에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상세 이력 보기
  • 1961멜버른 대학교 학사 졸업
  • 1969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앤터니스 칼리지 박사
  • 1976컬럼비아 대학교 조교수·부교수
  • 1980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교수
  • 1990시카고 대학교 석좌교수 (2012년까지)
  • 2012오스트레일리아가톨릭대학교 교수, 시드니 대학교 명예교수

스탠리 페인

Stanley G. Payne
연구자 미국 미국 1934–

제2공화국의 급진화가 내전을 불렀다고 본 미국의 대표적 보수 역사학자

역사적 기억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어법이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매우 자주 오류에 빠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페인 현대사 연구자로, 위스콘신대학에서 37년간 봉직하며 파시즘 유형론과 스페인 내전 연구의 보수적 해석을 정립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제2공화국 붕괴의 일차적 원인이 우파 음모가 아니라 사회당 주도의 혁명적 급진화에 있다는 것으로, 내전을 혁명과 반혁명의 충돌로 읽는다. 2000년대 이후 프랑코 정권에 온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비냐스, 프레스턴 등 진보 진영의 주요 논쟁 상대가 되었으나, 그가 세운 수정주의적 틀은 스페인 내전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55Pacific Union College에서 역사학 학사
  • 1960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지도교수 Shepard B. Clough)
  • 1962–1968UCLA 역사학 조교수
  • 1968–2005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역사학 교수; Hilldale-Jaume Vicens Vives 석좌교수
  • 1987스페인 왕립역사아카데미 통신회원
  • 2004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명예교수

스티븐 G. 휘트크로프트

Stephen G. Wheatcroft
연구자 영국 영국인 1947–

소련 기근·탄압 통계를 기록보관소로 재구성한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사가

「우리는 스탈린에게 기근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드러낸 것은 잘못된 정책 탓에 초래되었지만 예상치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던 기근 위기와 씨름하는 소비에트 지도부의 모습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사가이자 소비에트 사회·경제·인구사 연구자. 로버트 W. 데이비스와 함께 『기아의 해』(2004)를 저술해 구소련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1932–1933년 기근 사망자를 약 450만~650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기근을 의도된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강제적 곡물 조달 정책·기상 재해·무분별한 공업화가 결합된 비극으로 설명했다. 1990년 「소련의 1930년대 탄압 규모와 초과 사망에 대한 추가 해명」으로 서방의 과장된 수치를 바로잡기 시작했고, 훗날 독일과 소련의 탄압 규모를 비교하는 작업으로까지 나아갔다.

상세 이력 보기
  • 1965–1969킬대에서 러시아어·경제학·역사 전공
  • 1970–1972영국문화원 교환장학생, 모스크바 플레하노프 연구소
  • 1972–1974버밍엄대 대학원 연구
  • 1990소련 탄압 규모 논문으로 학계 주목
  • 1990년대~멜버른대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소장
  • 2004『기아의 해』 출간 (데이비스 공저)
  • 2005오스트레일리아 사회과학아카데미 회원
  • 현재멜버른대 명예교수

스티븐 마크 코트킨

Stephen Mark Kotkin
연구자 미국 미국 1959–

소련은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 소련 붕괴의 구조적 분석가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서방과의 경쟁에서 분명히 패배했지만,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고 상당 기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소련사 연구의 구조적·제도적 전환을 이끈 미국의 역사가로, 스탈린주의를 하나의 '문명'으로 분석한 『마그니토고르스크』(1995)와 3권작 스탈린 평전으로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피한 아마겟돈』(2001)에서 그는 소련이 1985년까지도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으며, 체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시도 자체였다고 주장해 소련 붕괴 논쟁의 핵심 축을 재편했다. 프린스턴대에서 33년간 러시아·유라시아 연구를 이끌었고,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상세 이력 보기
  • 1981로체스터 대학교 영문학 학사
  • 1988UC버클리 역사학 박사
  • 1989–2022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 1995『마그니토고르스크: 하나의 문명으로서의 스탈린주의』 출간
  • 2001『피한 아마겟돈: 소련 붕괴 1970–2000』 출간
  • 2014『스탈린: 권력의 역설 1878–1928』 출간, 퓰리처상 최종후보
  • 2017『스탈린: 히틀러를 기다리며 1929–1941』 출간
  • 2022–현재후버연구소 클라인하인츠 선임연구원

쓰요시 하세가와

長谷川 毅
연구자 미국 일본 1941– ○ 현역 연구자

전쟁 종결의 국제사를 다시 쓴 역사가

1945년 8월의 항복은 원폭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쓰요시 하세가와는 러시아·소련사와 냉전사, 러시아·일본 관계를 연구한 일본계 미국인 역사가다. 그는 러시아혁명, 일소 관계, 태평양전쟁 종결이라는 세 분야를 넘나들며 국가 간 외교와 사회 변동을 함께 분석했다. 대표작 《Racing the Enemy》는 1945년 8월 일본의 전략적 선택에서 히로시마 원폭만이 아니라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중립조약 파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해 항복 원인에 관한 논쟁을 다시 열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4도쿄대학교 교양학부 졸업
  • 1969워싱턴대학교 역사학 박사
  • 1970년대뉴욕주립대학교 오스위고 역사학 교수
  • 1980–1981《The February Revolution》 출간
  • 1980년대–1990년대홋카이도대학교 슬라브연구센터 교수
  • 1998《The Northern Territories Dispute and Russo-Japanese Relations》 출간
  • 2005《Racing the Enemy》 출간, 로버트 퍼렐상 수상
  • 2016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역사학 교수 은퇴

아나톨 폴 리벤

Peter Paul Anatol Lieven
연구자 영국인 영국인 1960–현재 ○ 활동 중

발트 독립을 기록한 역사가이자 기자

“발트인들이 러시아계 소수자에게 더 호의적이 되리라 농담했지만, 이제는 농담이 아니다.”

아나톨 리벤은 영국의 기자·저술가·정책 분석가로, 현장 취재와 역사적 맥락을 결합해 국가와 민족주의의 문제를 다뤘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발트 지역에 상주한 《타임스》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 회복의 격동을 취재했고, 그 경험을 《발트 혁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발트 사회의 계급 구조와 민족적 긴장, 독립 이후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갈림길을 함께 분석했다. 리벤은 민족 정체성의 복원이 배타적 민족주의와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무조건적 시민권 부여와 국가들의 조건부 시민권 사이의 긴장을 단순한 도식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82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86–1989인도 프리랜서 기자, BBC 대외방송 아시아 서비스 제작자·저자
  • 1989–1990《타임스》 남아시아·동유럽 특파원
  • 1990–1993《타임스》 발트 지역 상주 특파원
  • 1993《발트 혁명》 출간
  • 1996–1997미국평화연구소 초빙 선임연구원
  • 2000–2005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외교·안보정책 선임연구원
  • 현재퀸시 책임국정연구소 유라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킹스 칼리지 런던 방문교수

아시프 시디키

Asif Siddiqi
연구자 미국 벵골계 1966–

소련 우주사 연구의 기초를 세운 방글라데시계 미국 역사가

다카 출생의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역사가 시디키는, 소련 붕괴 후 개방된 기록물을 처음으로 체계 분석하여 소련 우주사 연구를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립했다. 2000년 NASA가 출간한 『Challenge to Apollo』는 소련 유인우주계획의 결정적 기록사로서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우주탐사 최고의 책 5선'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표준문헌으로 남아 있다. 2010년 『The Red Rockets' Glare』로 19세기 러시아 우주적 상상력의 문화사까지 영역을 넓혔고, 현재는 굴라그와 과학기술의 접점을 다룬 저작을 준비하며 포덤대학 교수로 있다.

상세 이력 보기
  • 2000NASA 역사시리즈로 『Challenge to Apollo』 출간
  • 2004카네기멜론대학교 역사학 박사
  • 2005–현재포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2010『The Red Rockets' Glare』 출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
  • 2016구겐하임 펠로십 수상
  • 2016–현재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 과학기술사 시리즈 공동편집자

아이나스 라사스

Ainius Lašas
연구자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인 현대 ○ 현대 학자로 활동

발트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 리투아니아 학자

2007년 논문에서 그는 고르바초프가 1월 유혈 사태를 '몰랐다'는 주장을 재검토하며,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명령하지는 않았어도 그 비극을 초래한 군사 해법을 택했다고 결론지었다.

아이나스 라사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학자이자 발트 지역 정치와 국제관계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2007년 논문에서 1991년 1월 빌뉴스와 리가의 유혈 진압을 둘러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무지 주장을 재검토하고, 이를 반박하는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그의 연구는 소비에트 해체기의 민족문제와 권력 책임을 문서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추적한다.

상세 이력 보기
  • 2000년대리투아니아 정치학자
  • 2007「피의 일요일」 저자, Journal of Baltic Studies
  • 2008발트해 지역 안보 협력 연구 공저자
  • 2000년대~현재발트 정치·국제관계 연구

아치 브라운

Archie Brown
연구자 영국 스코틀랜드계 영국인 1938–

고르바초프의 개인적 리더십을 소련 체제 변혁의 결정적 요인으로 논증한 영국 정치학자

개별 지도자가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고르바초프는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옥스퍼드대 정치학 교수이자 소련·러시아 정치 연구의 대가. 1996년 저서 『고르바초프 팩터』에서 구조적 결정론에 맞서 고르바초프의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선택이 소련 체제 변혁과 냉전 종식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는 '개인 지도자' 테제를 정립했다. 이 주장은 이후 역사논쟁의 한 축을 이루며, 페레스트로이카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4–1971글래스고대학교 강사
  • 1967–1968영국문화원 교환 학자, 모스크바국립대학교
  • 1971–1989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앤터니스칼리지 소련제도 강사
  • 1989–2005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96『고르바초프 팩터』 출간
  • 2005–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명예교수

안드레이 미하일로비치 마르케비치

Андрей Михайлович Маркевич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77– ○ 생존

러시아 경제사의 계량적 재구성자

2021년 연구는 기근 사망률의 지역 격차가 식량 생산성보다 민족적 편향과 더 밀접하다고 제시했다.

안드레이 마르케비치는 러시아 경제사를 통계와 제도 분석으로 재구성해 온 역사경제학자다. 그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국가, 시장, 산업화, 계획을 장기 자료로 분석했으며 러시아신경제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2021년 나탈리야 나우멘코, 낸시 치안과 함께한 연구는 1932~1933년 기근에서 우크라이나인의 높은 사망률이 식량 생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민족적 편향이 반영된 조달 정책과 이동 제한이 사망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 작업은 대규모 지역 자료를 통해 기근의 경제적 메커니즘과 국가 정책의 책임을 함께 묻는다.

상세 이력 보기
  • 1994–1999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학생
  • 2002러시아과학아카데미 러시아사연구소 역사학 박사(칸디다트)
  • 2005–2007워릭대학교 경제학부 박사후연구원
  • 2011응용경제학 국가상 수상
  • 2012–러시아신경제학교 교수 및 제도경제학과장
  • 2021–Economic Journal 부편집인

안드레이 발레리예비치 수시코프

Андрей Валерьевич Сушк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75–

스탈린 말기 '레닌그라드 사건'의 원인을 지도부의 부패에서 찾은 역사가

안드레이 수시코프는 소련 시기 당·국가 권력체계와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통치 실천을 연구해 온 러시아 역사가다. 우랄 연방관구 기록보존소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문서고에서 발굴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된 동인이 엘리트 간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의 만연한 부패와 공적 자원의 사적 유용이었다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2018년 저서 『'레닌그라드 사건': '혁명의 요람'에 대한 총숙청』은 이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연구로 평가받으며, 전후 스탈린주의 정치사 연구의 주요 논쟁점을 재구성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93–1998니즈니타길 국립사범대학 역사학부 학생
  • 1998–2001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박사과정
  • 2003역사학 후보자 학위 취득 (논문: 1957~1964년 소련공산당 중앙위 간부회 구성)
  • 2003–2004니즈니타길 국립사회사범아카데미 전임강사
  • 2004–2006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연구원
  • 2007–현재러시아과학원 우랄분원 역사·고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알렉산드르 블라들레노비치 슈빈

Александр Владленович Шубин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1965– ○ 생존

소련 해체를 권력투쟁으로 읽은 역사가

그는 소련 해체를 ‘반노멘클라투라 혁명’이 아니라 노멘클라투라의 불일치와 일관성 상실의 결과로 설명했다.

알렉산드르 슈빈은 러시아의 역사가이자 좌파 사회운동에 참여한 공공 지식인으로,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 소련 사회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그의 대표작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놓친 가능성과 비공식 운동, 소련의 정치투쟁을 함께 분석하며 체제의 변화가 자동적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었음을 묻는다. 그는 소련 해체를 구조적 필연이라기보다 일관성을 잃은 지배 엘리트 내부의 권력투쟁과 정치적 선택이 빚은 결과로 해석해, 1980년대 말의 개혁과 당내 갈등을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에 개입한다.

상세 이력 보기
  • 1982–1989모스크바 국립 레닌 교육대학 학생
  • 1985–1991사회주의 운동과 비공식 정치클럽 활동
  • 1989–1992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사연구소 대학원생
  • 1992–2001세계사연구소 연구원
  • 2001–2015세계사연구소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사 센터장
  • 2003–국립 인문대학 교수
  • 2007–2015세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2015–세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알렉세이 바실리예비치 사프로노프

Алексей Васильевич Сафронов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인 현재 ○ 생존

소련 경제를 개혁의 가능성과 한계로 읽는 역사가

"소련 경제는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고, 간주해야 한다"며 사프로노프는 그 역사를 중앙집권과 분권의 순환으로 읽는다.

알렉세이 사프로노프는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역사가로, 소련 경제의 전 시기를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그는 코시긴 개혁을 자유화와 컴퓨터화의 단순한 대립으로 보지 않고, 경제·수학적 방법과 물질적 유인을 결합하려 한 계획경제 개혁으로 해석한다. 그의 분석은 1965년 개혁의 구상이 당대의 통념보다 보수적이었으며, 실행의 불철저함이 성과와 한계를 함께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상세 이력 보기
  • 2025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민경제·행정 아카데미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 2025『코시긴 개혁: 구상에서 축소까지』 발표
  • 2025『대소련 경제: 1917~1991』 저술
  • 2020소련 계획경제의 관리 컴퓨터화 연구 발표
  • 현재소련 경제사 및 개혁 논쟁 연구

앙리 루소

Henry Rousso
연구자 프랑스 프랑스계 1954– ○ 생존

비시와 전쟁 기억의 역사를 다시 쓴 역사가

앙리 루소는 제2차 세계대전기 프랑스와 비시 체제, 그리고 그 기억의 변화를 연구한 프랑스 역사가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가정이 수에즈 위기 뒤 프랑스로 이주한 경험은 그의 역사적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작 《비시 증후군》은 해방 이후 프랑스 사회가 협력과 책임을 망각하거나 재구성해 온 과정을 분석했으며, 그는 레지스탕스의 규모와 국민적 단결을 과장하는 기억의 신화를 ‘레지스탕시알리슴’이라 불렀다. 그의 작업은 역사적 사실과 집단기억, 현재의 정치적 사용을 구별하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추적하는 현대사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74–1979생클루 고등사범학교 학생
  • 1977역사학 아그레가시옹 취득
  • 1981–현재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자
  • 1988–1990파리 정치대학 강사
  • 1994–2005현대사연구소 소장
  • 2001–2010파리 낭테르대학교 교수
  • 2019–현재테러 역사 국립박물관 설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앙헬 비냐스

Ángel Viñas
연구자 스페인 스페인 1941–

프랑코 정권의 신화를 문서고 증거로 무너뜨린 스페인 내전사가

보수나 신프랑코주의 역사가 중에 증거를 조작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며, 그들이 파는 것은 뻔뻔한 거짓말이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권에 관한 연구에서 문서고 실증으로 프랑코주의 역사 서사를 체계적으로 허물어 온 역사가이자 경제학자, 외교관이다. 대학원 시절 본에서 나치 독일의 프랑코 지원을 파헤친 것을 시작으로, 「모스크바의 금」 신화의 실체를 밝혔고 4부작 『공화국』 연작에서 무기 금수와 국제 외교가 전쟁의 승패를 어떻게 갈랐는지를 입증했다. 2011년 왕립역사아카데미가 프랑코를 독재자로도 적시하지 않은 『스페인 인명사전』을 내자 30여 명의 역사학자들을 규합해 976쪽의 대항 사전 『역사를 위한 싸움』(2012)을 출간했으며, 이는 스페인 '역사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8국가 기술상무관 및 경제전문가단 입단, 수석 합격
  • 1971–1973주본 스페인 대사관 상무참사관
  • 1974『나치 독일과 7월 18일』 출간, 박사학위
  • 1976『스페인 내전의 금』 출간, '모스크바의 금' 신화 해부
  • 1982콤플루텐세 대학 응용경제학 교수, 외무장관 고문
  • 1986–2005EU 집행위원회 아시아·라틴아메리카 국장 등 역임, UN 주재 EU 대사
  • 2006–20094부작 『공화국』 연작: 『고독』 『방패』 『명예』 『붕괴』
  • 2012왕립역사아카데미 인명사전에 맞서 『역사를 위한 싸움』 편집

애덤 히긴보섬

Adam Higginbotham
연구자 영국 영국계 1968– ○ 생존

재난의 구조를 추적한 저널리스트

그의 체르노빌 서사는 폭발의 순간보다 그것을 둘러싼 설계와 침묵의 구조를 추적한다.

애덤 히긴보섬은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 잡지 편집과 국제 취재를 거쳐 역사적 재난을 서사적으로 복원해 왔다. 그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한밤중」은 1986년 원자로 사고를 기술적 실패에만 가두지 않고 설계, 관료제, 비밀주의, 현장 노동자와 주민의 경험이 얽힌 사건으로 재구성했다. 이 책은 체르노빌을 다룬 2018~2019년 영어권 역사서 흐름을 대표하며, 참사 이후 진실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긴장을 널리 알렸다. 이후 그는 챌린저 우주왕복선 참사를 다룬 책으로 재난의 역사화를 이어 갔다.

상세 이력 보기
  • 1998–1999「더 페이스」 편집장
  • 1990년대–2000년대「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
  • 2000년대–현재「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고 작가
  • 2019「체르노빌의 한밤중」 출간
  • 2020앤드루 카네기 논픽션상 및 윌리엄 E. 콜비상 수상
  • 2024「챌린저」 출간

앤 애플바움

Anne Applebaum
연구자 미국 미국계 1964– ○ 생존

소련과 동유럽의 기억을 추적한 역사가

제20차 당대회의 탈스탈린화는 “두 걸음 전진한 뒤 한 걸음 물러선” 과정이었다.

앤 애플바움은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권위주의, 시민사회를 연구해 온 미국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굴라크』는 수용소 체계를 혁명기부터 해체기까지 архив 자료와 증언으로 재구성해 2004년 퓰리처 일반 논픽션상을 받았다. 『철의 장막』과 『붉은 기근』에서는 전후 동유럽의 소비에트화와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다루며, 제20차 당대회의 탈스탈린화가 해방과 통제의 재편을 동시에 낳았다고 해석한다.

상세 이력 보기
  • 1986예일대학교 역사·문학 학사
  • 1987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 1988–1991『이코노미스트』 바르샤바 특파원 및 동유럽 담당 기자
  • 1992–1996『스펙테이터』 외교·부편집장, 이후 『이브닝 스탠더드』 정치 편집자
  • 2002–2006『워싱턴 포스트』 편집위원
  • 2003–2004『굴라크』 출간, 퓰리처 일반 논픽션상 수상
  • 2011–2016레가툼 연구소 전환 포럼 창립·운영
  • 2020–현재『애틀랜틱』 스태프 작가, 존스홉킨스대 SNF 아고라 연구소 선임연구원

야아코브 로이

יעקב רועי
연구자 이스라엘 이스라엘 1932– ○ 명예교수

소련 사회와 유대인의 역사를 잇댄 역사가

그는 전쟁의 장기적 국내 영향이 국제적 파장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분석했다.

야아코브 로이는 소련의 유대인, 이슬람, 중동 정책과 소비에트 사회를 연구한 이스라엘 역사가다. 그는 문서 연구와 사회조사를 결합해 국가 정책이 민족 공동체와 대중의 정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출혈하는 상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국내적 비용과 유산을 분석하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주민의 태도 차이를 통해 전쟁과 소련 붕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실증 자료를 보탠다.

상세 이력 보기
  • 1954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 학사
  • 1960–1965바이츠만 기록보관소 연구원
  • 1972–1974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강사
  • 1977–1982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소장
  • 1982–1990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부교수
  • 1990–2003텔아비브대학교 러시아사 정교수
  • 2001–2002컴밍스센터 소장
  • 2003–텔아비브대학교 명예교수

얀 파우어

Jan Pauer
연구자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50–

탱크와 기억의 전쟁 사이에서 프라하의 봄을 해석한 역사가

그 나라의 점령, 1968년 8월의 믿기 어려운 그 연대의 경험, 그것은 누구나 겪을 수 없는 아주 드문 역사적 순간들에 속하고, 그것을 경험한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얀 파우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목격하고 이듬해 서독으로 이주한 체코 출신 역사가다. 1995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다룬 표준적 저작 『프라하 1968』을 출간했으며, 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현대사를 연구했다. 2011년 ENRS 기고문에서 그는 침공이 '시민사회 반대운동의 시작이자 개혁공산주의의 역사적 종말'이었다고 평가하며,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탱크와 탈냉전기 체코의 기억 정치에 의해 두 번 묻혔다고 주장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69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서독으로 이주
  • 1990–1993체코 정부의 1967~1971년 역사연구위원회 위원
  • 1993–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 연구원
  • 1995『프라하 1968: 바르샤바조약군의 진입』 출간
  • 2017『자율성을 위한 투쟁: 중동부 유럽의 반체제 담론』 공동 편집

에드바르트 스타니슬라보비치 라진스키

Эдвард Станиславович Радзинский
연구자 러시아 러시아 1936– ○ 생존

기록과 극작으로 러시아의 비극을 재구성한 대중 역사가

에드바르트 라진스키는 러시아의 역사와 비극적 인물을 대중에게 전달한 역사가이자 극작가, 방송인이다. 모스크바 역사기록보관소에서 훈련받은 그는 연극으로 경력을 시작한 뒤 니콜라이 2세, 라스푸틴, 스탈린 등의 전기를 썼다. 1997년 스탈린 전기에서 새로 공개된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베리야가 스탈린을 독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이 주장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사망 원인을 둘러싼 논쟁의 한 해석으로 남아 있다. 그의 서사적이고 심리적인 역사 서술은 널리 읽혔지만, 사료의 출처와 해석을 둘러싸고 전문 역사가들의 비판도 받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59모스크바 역사기록보관소 졸업
  • 1958–극작가로 활동 시작, 「내 꿈… 인도」 초연
  • 1960년대–「사랑에 관한 104쪽」 등 희곡 발표
  • 1976–러시아 역사 인물에 관한 역사서 집필
  • 1993「마지막 차르」 출간
  • 1997「스탈린」 출간, 비공개 기록과 증언으로 사망 논쟁 제기
  • 1990년대–「역사의 수수께끼」 방송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