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Euro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21개국이 함께 쓰는 단일 통화. 1999년 1월 1일 회계 통화로 출범했고 2002년 1월 1일 지폐와 동전이 나왔다. 유로를 쓰는 나라들을 유로존이라 부르며, 이 나라들의 금리와 통화량은 각국 중앙은행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이 정한다. 미국 달러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준비통화이자 거래 통화다. 회원국이 환율과 금리를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제도여서, 2009년 이후 유로존 위기에서 그 설계 자체가 논쟁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상세
유로는 어떤 돈인가?
보통 한 나라는 자기 돈을 찍고, 중앙은행을 통해 금리를 정하며, 필요하면 돈의 값을 내린다. 유로를 쓰는 나라는 이 세 가지를 공동 기관에 넘긴다. 금리와 통화 정책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이 정하고, 각국 중앙은행은 유로시스템의 일원으로 그 결정을 집행한다. 2026년 불가리아가 들어와 유로존은 21개국이 되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라고 다 유로를 쓰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는 조약에서 적용 제외를 얻어 크로네를 지켰고, 탈퇴 전의 영국도 파운드를 지킬 권리를 얻었다. 스웨덴은 2003년 국민투표에서 유로 도입을 거부했다. 반대로 코소보와 몬테네그로처럼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데도 일방적으로 유로를 쓰는 곳도 있다. 다만 이런 나라들은 유로존 기관에 대표를 두지 못한다.
유로라는 이름은 1995년 12월 16일 마드리드에서 정해졌다. 1999년 1월 1일 유럽 통화 단위(ECU)를 1대 1로 대신해 금융시장에 회계 통화로 나왔고, 11개국의 환율이 그 전날 영구히 고정되었다. 사람들이 손에 쥐는 지폐와 동전은 2002년 1월 1일 나왔으며, 2002년 3월까지 각국의 옛 돈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리스는 2년 늦은 2001년 1월 1일에 들어왔다.
왜 단일 통화를 만들려 했나?
첫 구상은 1970년 10월 룩셈부르크 총리 피에르 베르너가 이끈 위원회의 베르너 보고서였다. 10년 안에 세 단계를 거쳐 환율을 되돌릴 수 없게 고정하고 단일 통화로 가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1971년 8월 금태환 정지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석유 가격이 뛰면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달러에 묶여 있던 환율이 흔들리자 유럽 나라들은 1972년 서로의 환율을 좁은 폭 안에 묶는 이른바 “터널 속의 뱀”을 시도했지만 이탈리아가 1973년 일찍 빠져나가는 등 오래가지 못했다.
1979년에는 유럽통화제도(EMS)가 생겼다. 회원국 통화가 정해진 폭 안에서만 오르내리게 하는 환율 조정 체계(ERM)를 두고, 여러 통화를 가중 평균한 계산 단위 ECU를 만들었다. 이 틀은 각국 정치에 실제 제약이 되었다. 1983년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는 유럽통화제도에 남기로 하면서 국유화와 수요 확대 정책에서 긴축으로 돌아섰는데, 재무장관 자크 들로르가 이 결정을 이끌었다.
그 들로르가 유럽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1989년 내놓은 들로르 보고서가 오늘의 유로로 이어진 설계도다. 3단계 계획 가운데 1단계로 1990년 7월 1일 유럽경제공동체 안의 자본 이동이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경제통화동맹을 공식 목표로 정했다. 환율을 고정해 두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같은 해 드러났다.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에 영국 정부는 파운드를 ERM의 하한선 위에 지키지 못하고 ERM에서 빠져나왔다.
유로에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을 맞춰야 했나?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유로에 들어갈 문턱으로 수렴 기준을 정했다. 물가 상승률, 재정, 장기 금리, 환율 안정에 관한 기준이다. 재정 기준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한 해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 정부 부채는 GDP의 60%를 넘지 말아야 한다. 또 2년 이상 ERM에 머물며 환율을 안정시켰음을 보여야 한다.
유로가 나온 뒤에도 재정 규율이 풀리지 않도록 1997년에는 안정·성장 협약을 맺어 같은 숫자를 계속 지키게 했다. 2005년에는 프랑스와 독일의 압력으로 적용을 느슨하게 고쳤지만 3%와 60%라는 상한은 그대로 두었다. 유럽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첫째 목표로 삼도록 만들어졌고, 조약은 재정 적자를 중앙은행 돈으로 메우는 일을 금지했다.
이 규칙들을 비판한 사람들은 이를 “거꾸로 된 케인스주의”라고 불렀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 지출로 수요를 받쳐 완전고용을 꾀하는 대신, 통화와 공공 지출을 조여 물가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지키고, 노동 비용을 낮추는 데서 일자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환율을 잃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자기 돈이 있는 나라는 수출이 막히고 빚이 쌓이면 돈의 값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그 나라 물건이 외국에서 싸져 수출이 늘고, 비싸진 수입품이 줄어 고통이 온 나라에 퍼진다. 유로존 국가는 이 길이 막혀 있다. 남은 방법은 임금과 물가를 실제로 깎아 경쟁력을 되찾는 “내부 평가절하”다. 같은 효과를 노리되 그 부담은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에 곧바로 떨어진다.
금리도 하나뿐이다. 유럽중앙은행은 물가와 경기가 저마다 다른 나라들에 하나의 금리만 적용할 수 있다. 유로 초기에 이 금리는 독일에는 물가에 견주어 높고 남유럽에는 낮았다. 싼 돈을 빌리기 쉬워진 남쪽으로 북쪽 자본이 흘러들었고, 남쪽의 적자는 주로 민간에서 쌓였다.
경제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 최적 통화 지역론이다. 로버트 먼델은 1961년 지역마다 다른 충격을 받는다면 환율을 띄워 두는 편이 낫다고 보았는데, 1973년에는 공동 통화 쪽에 유리한 논증도 내놓아 그의 연구는 유로 논쟁 양쪽에서 인용된다. 충격을 흡수할 다른 수단 가운데 하나는 사람의 이동이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미국 거주자는 40% 넘게 다른 주에서 태어났지만 유로존에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14%였다. 유럽연합이 유로 도입 때 이 이론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유로존 위기는 유로의 설계와 어떻게 이어지나?
2009년 이후의 위기 경과는 유로존 위기와 그리스에서 다룬다. 설계와 이어지는 부분만 보면, 외국 자본에 기대던 나라들에 자본 유입이 갑자기 끊겼을 때 이 나라들은 평가절하를 할 수 없었다. 구제 프로그램을 받은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는 재정 긴축과 구조 개혁, 내부 평가절하를 함께 요구받았다.
위기는 유로의 제도를 바꾸어 놓았다. 위기 전에는 없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안정기구(ESM)가 긴급 대출을 맡았고, 2012년 유럽중앙은행은 조건을 받아들인 나라의 국채를 무제한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유로존을 떠난 나라는 없으며, 조약에는 스스로 나가거나 내보내는 절차가 따로 없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유로를 어떻게 보나?
주류 경제학의 논쟁은 주로 유로존이 최적 통화 지역인가, 재정 통합 없이 통화 통합이 버틸 수 있는가에 모인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와 좌파 경제학자들은 누가 그 비용을 지는가를 묻는다.
그리스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통화 동맹에서는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독일이 물가를 낮게 누르고 노동자에게 적게 지불하는 식으로 그 규칙을 깼다고 본다. 그래서 문제는 그리스나 포르투갈이 아니라 독일이며, 공공 부문이 앞장서는 경제로 돌아가는 일은 경제통화동맹 안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좌파 안에도 다른 입장이 있다. 시리자 좌파 강령 출신의 소티리스 마르탈리스는 유로 탈퇴는 필요한 단계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썼다. 탈퇴를 더 넓은 변혁 강령과 떼어 놓으면 자국 통화 자체가 해방을 가져다주리라는 위험한 환상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리스 공산당은 유로 탈퇴보다 나토와 유럽연합 자체와의 단절을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