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опутчики · 1920년대–1930년대 초

동반작가

fellow travelers (poputchiki)

볼셰비키 혁명에 공감하고 소비에트 권력에 협력했으나 당원은 아니었던 작가·예술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용어는 루나차르스키가 만들었다고 흔히 전해지며, 트로츠키가 1923년 『문학과 혁명』에서 이론화했다. 1925년 6월 18일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정치국 결의는 동반작가의 분화, 문학 기법의 숙련된 '전문가'로서의 가치, 이 층의 동요를 지적하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할 것을 지시했다. 이 가운데는 1937~1938년 대숙청에서 희생된 필리냐크, 만델슈탐, 바벨, 클류예프가 있었다.

상세

어원과 정의

러시아어 '포푸치크(попутчик)'는 문자 그대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한다. 1917년 10월 혁명 직후 이 말은 부정적 색채 없이 쓰여, 볼셰비키에 호의적이면서도 당원이 아닌 작가·예술가를 가리켰다. 명칭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는 인민교육위원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가 흔히 거론되고, 1923년부터 레프 트로츠키가 이 말을 널리 사용해 「세라피온 형제」의 작품에 처음 적용했으며 『문학과 혁명』에서 이를 이론화했다.

트로츠키의 정의

트로츠키는 동반작가를 '부르주아 예술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 예술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과도기 예술'의 담당자로 규정했다. 필리냐크, 프세볼로트 이바노프, 니콜라이 티호노프, 「세라피온 형제」, 예세닌과 이미지스트 그룹, 어느 정도는 클류예프가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혁명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지만 혁명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못하고 공산주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으며,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 쪽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술가'가 아니라 '혁명의 예술적 동반자'이다. 트로츠키는 동반작가에게 늘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며, 그 답은 개인의 자질보다 향후 10년의 객관적 추세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1924년 당내 논쟁

1920년대에는 소비에트 예술의 진로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크라스나야 노브』의 편집인 알렉산드르 보론스키를 중심으로 한 전러시아 작가연합과, 아베르바흐의 사상적 지도 아래 『나 포스투』를 발행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협회(바프)가 맞섰다. 바프 쪽이 당 정책의 유일한 대변자를 자처하자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출판부가 1924년 5월 9일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앞두고 동반작가 그룹은 중앙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현대 러시아 문학의 길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길과 연결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편지에는 카타예프, 필리냐크, 예세닌, 만델슈탐, 바벨, 알렉세이 톨스토이, 프리슈빈, 조셴코, 카베린, 프세볼로트 이바노프 등 30명이 서명했다. 회의에서 보론스키는 당이 어느 한 유파의 입장에 서지 않고 모든 혁명적 문학 집단을 지원하며 그 노선을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고 말했고, 트로츠키는 동반작가를 '우리가 훨씬 멀리 가는 길을 어느 지점까지 비틀거리며 가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혁명의 이익이 우리에게 최고의 법'이라고 덧붙였다.

1925년 결의와 문학정책

1925년 6월 18일 정치국 결의 「문학예술 분야에서의 당 정책에 관하여」는 '이른바 동반작가'에게 별도의 항을 할애해, 그 분화, 문학 기법의 숙련된 '전문가'로서의 의미, 이 층의 동요를 지적하고, 이들이 하루빨리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넘어오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시했다. 결의는 작가를 농민 작가, 동반작가,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세 범주로 나누고, 당이 모든 소비에트 작가의 부대를 지원하며 공산주의적 오만과 예술적 기교의 전문가에 대한 경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보론스키가 비판한 프롤레타쿨트적 발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결의와 갈렸다. 1932년 4월 「문학예술 단체의 재편성에 관하여」 결의로 모든 문학 집단이 해산되고 단일 소비에트 작가동맹이 세워졌으며, 동반작가라는 범주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명단과 그 이후

동반작가로 분류된 이들 가운데는 필리냐크, 만델슈탐, 바벨, 클류예프처럼 1937~1938년 대숙청에서 희생된 작가가 적지 않았다. 1934년 제1차 전소비에트 작가대회에 참가한 문학인 593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이후 체포되었다. 전형적인 동반작가로 거론되는 명단은 사료마다 달라, 1920년대 문학사에서는 필리냐크, 프리슈빈, 파스테르나크, 바벨, 레오노프, 파우스토프스키, 「세라피온 형제」 등이 꼽힌다.

영어권에서의 확산

1930~1950년대 영어권에서 'fellow traveller'는 공산당원은 아니면서 공산주의와 소련에 동조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멸적 표현으로 쓰였다. 소련 안에서 이 어휘는 스탈린 시기에 정치 담론에서 사라졌지만 서구는 이 영어 표현을 받아들여 공산주의 동조자를 지칭했다. 장폴 사르트르는 스스로 프랑스 공산당의 동반자라고 자처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tailed account of the term's origin (Lunacharsky, Trotsky), the 1924 CC meeting, the 1925 Politburo resolution, and the list of typical попутчики writers including Pilnyak, Babel, Pasternak, Mandelstam, and the Serapion Fraternity.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broader history of the concept, Trotsky's definition from Literature and Revolution ch. 2, and the American Cold War usage.
  3. britannica.com Encyclopaedia Britannica: concise entry emphasizing the NEP-era 'brilliant flowering of Soviet literature' and the regime's recognition of the artist's need for intellectual freedom.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Leon Trotsky, Literature and Revolution (1923), Chapter 2: primary source where Trotsky names Pilnyak, Ivanov, Tikhonov, the Serapion Fraternity, Yesenin, and Kliuev as fellow travelers and defines them as 'not the artists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but her artist fellow-travellers.'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위키백과 (영문)
  7. 위키백과 (러시아어)
  8.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