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ätkapitalismus · 1925 (좀바르트가 1925년 처음 쓰고, 1930~1970년대 유럽 사회주의자와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받아 썼으며, 만델의 1972년 저서로 체계적인 경제 이론이 되었다.)

후기자본주의

Late capitalism

2차 세계대전 뒤의 자본주의를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보는 마르크스주의 개념. 독일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1925년 처음 썼고, 1930~1970년대 유럽 사회주의자와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국가가 조절하는 전후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썼다. 에르네스트 만델은 1972년 『후기자본주의』에서 이를 다국적기업, 제3차 기술혁명, 항상적 인플레이션, 국가의 경제 개입 확대를 특징으로 하는 제국주의 시대 안의 새 국면으로 이론화했다. 만델의 「후기」는 임박한 종말이 아니라 뒤늦게 얻은 새 생명이라는 뜻에 가까웠다.

상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분석한 19세기 자유경쟁 자본주의, 레닌이 분석한 20세기 초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이어, 2차 대전 뒤의 자본주의는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후기자본주의라는 말은 이 물음에 대한 이름이다. 처음 쓴 사람은 독일 사회과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로, 그는 1925년 1차 세계대전 뒤 나타난 새 사회질서를 자본주의 역사의 새 단계로 보고 이렇게 불렀다. 다만 좀바르트는 짧은 언급과 윤곽 말고는 체계적인 이론을 내놓지 않았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이 말을 국가가 조절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썼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뜻이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이 말을 썼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968년 독일 사회학 대회의 주제였던 「산업사회」보다 「후기자본주의」를 선호했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1973년 『후기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를 냈다. 하버마스는 시장의 기능 공백을 메우는 국가 개입이 후기자본주의의 정치적 핵심 문제가 되었다고 보았다.

이 개념을 포괄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으로 만든 사람이 벨기에의 트로츠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이다. 그는 1972년 베를린 자유대학에 낸 박사 논문을 『후기자본주의』로 펴냈고, 1975년 영어판이 나오면서 이 말이 영어권에 널리 퍼졌다. 프랑스어판 제목은 『자본주의의 제3시대』였다. 만델은 서문에서 이 책의 중심 목적 하나가 「마르크스주의자와 비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모두를 놀라게 한, 국제 자본주의 경제의 전후 장기 급성장의 원인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시기의 내재적 한계를 밝혀 그 뒤에 성장률이 훨씬 낮은 사회·경제 위기의 긴 물결이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것이라고 썼다.

만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누었다. 대략 1700~1870년의 자유경쟁 자본주의, 대략 1870~1940년 국제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과 자본 수출, 식민지 착취의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2차 대전에서 나온 후기자본주의다. 후기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국적기업, 세계화, 소비주의, 탈식민화, 점점 국제화하는 금융시장이며, 기업의 자기 금융, 해외직접투자의 대팽창, 신용·통화·상품·자본 자산을 규율하는 세계적 체계의 형성도 여기에 든다. 만델은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을 버리지 않고, 전후 재건, 탈식민화, 스탈린주의의 정치적 영향이라는 경험에 비추어 고쳐 썼다. 그에게 「후기」는 양차 대전 사이의 기대와 달리 노동운동이 큰 패배를 겪으면서 세계 자본주의가 뜻밖에 늦게 새 생명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만델은 이 시기의 기제를 차례로 설명했다. 출발점은 파시즘과 전쟁이 노동계급에게 안긴 역사적 패배로 자본의 가치증식 조건이 크게 나아진 것이다. 그 위에서 원자력·전자·자동화로 대표되는 「제3차 기술혁명」이 전개되었고, 고정자본의 수명이 짧아지고 기술혁신이 빨라져 기술 혁신에서 나오는 지대가 독점 초과이윤의 주된 형태가 되었다. 판매의 어려움, 곧 실현 문제에 대한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해결」은 항상적 인플레이션과, 고전적 산업 순환에 신용의 확장과 수축이라는 「반순환」이 겹친 새 경기순환이었다. 만델은 후기자본주의가 「‘탈산업사회’를 대표하기는커녕,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화된 보편적 산업화를 이룬다」고 썼다. 인간의 서비스까지 상품으로 바꾸고 산업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와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계속 커졌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만델은 후기자본주의를 「생산력의 성장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존속 사이의 모순이 폭발적 형태를 띠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의 역사적 시기」로 정의했다. 체제는 이제 금 가치가 안정된 「정상」 조건, 곧 신용과 화폐의 항상적 인플레이션 없이는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후 팽창의 긴 물결이 끝나고 1960년대 후반부터 잉여가치율을 둘러싼 투쟁이 격화하면서 세계적으로 계급 갈등이 질적으로 날카로워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이 분석은 그의 장기 파동론과 한 짝을 이룬다. 만델은 또 이 책에서 헨리크 그로스만의 붕괴론과, 문제를 한 가지 요인으로 환원한 힐퍼딩·룩셈부르크·부하린·바우어·칼레츠키·베틀렘의 방법을 비판했다.

만델의 영향은 경제학 밖으로 퍼졌다. 미국 문학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만델에게서 일부 영감을 받아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문화 생산 양식으로 해석했다. 21세기에 들어 이 말은 영어권 대중문화에서 다시 유행했는데, 2017년 《애틀랜틱》이 지적했듯 오늘날의 기업 문화의 부조리를 비꼬는 반어적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만델의 경제 이론과는 뜻이 상당히 다르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de.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6.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