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변절자 카우츠키
The Proletarian Revolution and the Renegade Kautsky
레닌이 1918년 10~11월에 써서 그해 12월 모스크바에서 펴낸 논쟁서. 제2인터내셔널의 대표 이론가 카를 카우츠키가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볼셰비키 정권을 민주주의를 버린 소수의 독재라고 비판하자, 레닌은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 “순수 민주주의”는 없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떤 법에도 묶이지 않고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힘으로 꺾는 권력이라고 반박했다. 카우츠키를 마르크스주의를 버린 “변절자”로 규정한 이 책은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두고 갈라선 대표 문헌이 되었다.
상세
레닌은 왜 카우츠키를 “변절자”라 불렀나?
카를 카우츠키는 엥겔스가 죽은 뒤 제2인터내셔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고, 레닌을 비롯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도 그의 책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배웠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 사회민주당이 전쟁을 지지하자, 카우츠키는 전쟁 지지에도 혁명적 반전 행동에도 서지 않는 중간 노선을 택했다. 레닌은 1915년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이를 “카우츠키주의”라 부르며, 1909년 혁명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책을 쓰고 1912년 바젤 선언에 서명한 사람이 전쟁이 오자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적 투쟁 수단만 빼 버렸다고 비판했다. 말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인정하고 실제로는 기회주의를 따르는 것, 레닌이 말한 “변절”는 이것이었다.
1918년 8월 카우츠키는 빈에서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펴내 볼셰비키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때 러시아는 내전과 외국 간섭, 적색 테러 한가운데 있었고, 제헌의회는 그해 1월 해산된 뒤였다. 레닌은 1918년 10월 11일 《프라우다》에 같은 제목의 글을 먼저 실어, 이 책이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보다 “백 배는 더 수치스럽고 더 분노스럽고 더 변절적”이라고 썼다. 이어 10월부터 11월 10일까지 소책자를 완성했고, 책은 12월 모스크바의 코뮤니스트 출판사에서 나왔다. 서문에서 레닌은 여러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실제 의제가 된 만큼 카우츠키의 궤변을 따져 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카우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무엇을 주장했나?
카우츠키는 볼셰비키와 그 반대자들의 대립이 개인적인 시기심이 아니라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 곧 민주주의의 방법과 독재의 방법의 대립”이라고 보았다(제1장). 그는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를 한 사람이 법에 매이지 않고 다스린다는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통치 형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쥔 곳이면 어디서나 반드시 생기는 상태”였다는 것이다(제5장). 그 근거로 그는 마르크스가 영국과 미국에서는 평화적 이행이 가능하다고 본 점,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부른 파리 코뮌이 보통선거로 뽑혔다는 점을 들었다. 카우츠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인 곳에서 “순수 민주주의로부터 반드시 나오는 상태”였다.
그는 노동계급의 가장 큰 무기가 그 수에 있으므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소수의 독재는 복종하는 군대에 기댈 수밖에 없고, 반대파가 투표 대신 총검에 호소하게 만들어 내전을 부르며, 내전만큼 사회주의 건설을 해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멘셰비키의 진단을 따랐고, 볼셰비키가 제헌의회 선거에서 소수가 된 뒤에야 소비에트가 더 높은 민주주의라고 내세웠다고 꼬집었다(제6장). 결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세우겠다던 볼셰비키 체제가 “프롤레타리아트 안의 한 정당의 독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제7장).
레닌은 어떻게 반박했나?
레닌은 먼저 카우츠키가 독재의 정의를 내놓지 않았다고 따지고, 자신의 정의를 제시했다. “독재란 폭력에 직접 기대고 어떤 법에도 묶이지 않는 권력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란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으로 쟁취되고 유지되는, 어떤 법에도 묶이지 않는 권력이다.” 독재가 한 사람의 통치를 뜻한다는 말은 문법으로도 틀렸으니, 한 줌의 사람들도, 과두 집단도, 한 계급도 독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닌이 보기에 독재의 필수 조건은 착취자를 계급으로서 강제로 누르는 것, 따라서 그 계급에 대해 “순수 민주주의”, 곧 평등과 자유를 깨는 것이었다.
둘째로 레닌은 계급이 있는 한 “순수 민주주의”란 없고 계급의 민주주의만 있다고 했다. 카우츠키는 “어느 계급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를 묻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중세에 비하면 진보였지만, 인쇄소와 종이와 좋은 건물이 자본가 손에 있는 한 노동자의 출판·집회의 자유는 위선에 그친다. 소비에트 권력은 이것들을 빼앗아 근로 대중에게 넘겼으므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어떤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백만 배 더 민주적”이라고 그는 썼다.
셋째로 그는 혁명 뒤에도 착취자들이 돈과 재산, 인맥, 관리 경험, 교육, 군사 지식에서 오랫동안 큰 우위를 지니고, 국제적 연결 덕분에 한 나라에서 패배해도 여전히 강하다고 보았다. 그러니 깊은 혁명에서 다수와 소수의 산술만으로 일이 결정되리라 여기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제헌의회 해산 문제는 카우츠키 책의 “핵심”이라 부르고, 자신은 1917년 4월부터 파리 코뮌형 소비에트 공화국이 부르주아 의회 공화국보다 높은 형태라고 말해 왔다고 반박했다. 레닌은 카우츠키가 마르크스를 “흔해 빠진 자유주의자”로 바꿔 놓았다며 “변절자 베른슈타인도 변절자 카우츠키에 비하면 강아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썼다.
독일 혁명은 이 논쟁에 어떤 답을 주었나?
레닌은 책을 거의 마무리한 1918년 11월 9일 밤 킬과 베를린에서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권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1월 10일 자 후기에 카우츠키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소책자에 쓰려던 “결론은 필요 없게 되었다”고 적었다. 서방에서는 혁명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반론에 사건이 직접 답했다고 본 것이다. 책에는 제헌의회에 관한 테제와, 국제사회주의사무국 의장이던 에밀 반데르벨데의 『국가에 맞선 사회주의』를 비판한 글이 부록으로 붙었다.
그러나 독일 혁명은 레닌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카우츠키는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혁명 정부에 참여해 사회화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외무부 문서로 전쟁 책임을 밝히는 일을 했다. 혁명 정부는 평의회 공화국 대신 국민의회 선거를 택했다. 평의회와 의회 가운데 무엇을 고를 것인가라는 이 책의 물음은 독일에서 곧 실제 정치의 문제가 되었다.
이 책은 그 뒤 어떻게 읽혔나?
책은 1919년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영국·프랑스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카우츠키는 1919년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로 다시 볼셰비키를 비판했고, 트로츠키가 1920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응수했다. 카우츠키는 1934년 『마르크스주의와 볼셰비즘: 민주주의와 독재』에서도 볼셰비키가 차르 전제정 자리에 새 독재의 토대를 놓았을 뿐이라고 썼다.
공산주의 운동에서 이 책은 『국가와 혁명』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기본 문헌이 되었고, 레닌이 붙인 “변절자”와 “카우츠키주의”는 말로는 마르크스주의, 실제로는 기회주의를 뜻하는 낙인으로 굳었다. 중국 혁명 연구자들은 승리한 혁명이 낡은 부르주아 군대를 곧바로 해체하고 프롤레타리아 군대로 바꿔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원칙에서 이 책의 영향을 찾는다.
사회민주주의 쪽의 평가는 반대다. 카우츠키의 전기 작가 마시모 살바도리는 “변절자”라는 혐의를 논쟁적 희화화로 보고, 1917년 이후 카우츠키의 볼셰비즘 비판은 그가 1890년대부터 지녀 온 민주적·의회적 국가관을 일관되게 적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두 사람의 입장이 레닌이 인정한 것보다 가까웠고 어떤 면에서는 카우츠키가 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연구도 나왔다. 이 논쟁은 혁명 권력이 다수결 민주주의에 묶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싸고 오늘날까지 두 전통이 서로를 판단하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uaio.ru
- de.wikisource.org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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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변절자 카우츠키』, 원제 Пролетарская революция и ренегат Каутский(ренегат=변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