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화
Reification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가 물건과 물건의 관계, 또는 물건이 타고난 속성처럼 나타나, 사람들이 바꿀 수 없는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분석한 상품 물신성을 바탕으로 죄르지 루카치가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의 논문 「물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에서 정식화했다. 루카치는 상품 형식이 사회 전체와 사람의 의식까지 지배하는 보편적 형식이 되었다고 보았고, 이 생각은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이어졌으며 악셀 호네트는 이를 인정 이론으로 다시 풀었다.
상세
물화란 무엇이고, 왜 ‘물건이 된다’고 하나?
‘물화’(物化)는 독일어 Verdinglichung을 옮긴 말이다. Ding은 ‘물건’, ver-…-ung은 ‘무엇이 되게 함’이니, 직역하면 ‘물건이 되게 함’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이 말은, 서로를 위해 분업으로 생산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물적 관계로 뒤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노동의 생산물은 상품, 화폐, 자본의 형태를 띠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서 독립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쉬운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쌀값이 오르면 ‘시장이 그렇게 정했다’고 말한다. 값은 마치 쌀이라는 물건에 붙어 있는 성질처럼, 또는 날씨처럼 사람이 어쩔 수 없는 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값이란 실은 수많은 사람이 서로를 위해 일하고 그 결과를 주고받는 관계가 물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화는 바로 이렇게 사회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이다. 사람 자신도 같은 운명을 겪는다. 노동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환원되어 얼마든지 바꿔 끼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를 사람이게 하는 개인의 특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물화를 소외와 같은 말로 쓰기도 하지만, 둘을 나누어 쓰는 관행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가요 페트로비치의 정리에 따르면, 소외는 인간이 낯설어지는 일반적 조건이고, 물화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특징적인 소외의 가장 철저하고 널리 퍼진 형태이며, 상품 물신성은 다시 물화의 한 특수한 형태다. 또 하나 구별할 것은 ‘대상화’다.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자체는 물화가 아니다. 이 구별은 뒤에서 보듯 루카치 자신의 자기비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과는 어떻게 이어지나?
마르크스 자신은 ‘물화’라는 말을 단편적으로만 썼고, 이 생각을 주로 『자본』 1권 1장의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에서 펼쳤다. 그는 상품 교환에서 사람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관계가 “사람들이 노동 속에서 직접 맺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물적 관계이자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고 썼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띠는 것은 “사람들 자신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종교에 견주었다. 종교에서 사람 머리의 산물이 제 생명을 지닌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듯, 상품 세계에서는 사람 손의 산물이 그렇게 보인다. 그는 이를 “물신숭배”라고 불렀고, 상품이 생산되는 한 이 물신성은 상품 생산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보았다. 가치는 모든 노동 생산물을 일종의 “사회적 상형문자”로 만든다. 이 신비의 안개가 걷히는 것은 사회의 생산 과정이 “자유롭게 연합한 사람들의 산물로서 그들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 아래” 놓일 때뿐이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물신성은 머릿속 착각이 아니라 상품 생산이라는 현실이 만들어 내는 객관적 겉모습이라는 것이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무엇을 보탰나?
죄르지 루카치는 1919년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에서 교육 인민위원 대리를 지냈고, 그 경험 뒤에 쓴 글들을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묶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긴 논문이 「물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이다. 이 글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이자, 훗날 비판 이론의 ‘중심 문제’를 정식화한 글로 꼽힌다. 1844년 원고가 출간되기 9년 전의 일이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의 물신성 분석에서 출발해 훨씬 급진적인 주장을 폈다. 상품 형식이 점차 사회 전체를 규정하는 보편적 범주가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물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식 자체, 곧 ‘대상성의 형식’(Gegenständlichkeitsform)이 상품 형식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결합했다. 노동 과정이 상품 교환의 지배 아래 합리화되면 노동은 계산할 수 있는 조각들로 쪼개지고, 노동자의 인격은 수단이 되며, 상품은 서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사람은 자기 능력과 성질마저 바깥 세계의 물건처럼 소유하고 처분하는 것으로 대하게 된다.
이 과정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와 법도 자본주의적 교환의 요구에 맞춰 계산 가능한 것으로 바뀌어 관료제 국가와 형식적 실정법이 지배하고, 사람들은 객관화된 기계적 규칙 앞에서 수동적으로 적응한다. 루카치는 이런 태도를 ‘관조’라고 불렀다. 사회는 사람이 만든 것인데도 법칙처럼 움직이는 ‘제2의 자연’으로 군림한다. 그는 칸트의 ‘물자체’로 대표되는 근대 철학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곧 ‘부르주아 사상의 이율배반’도 이 물화를 뚫고 나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물화를 넘어설 길은 어디 있는가?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역사의 ‘동일한 주체-객체’로 보았다. 부르주아지와 노동자는 똑같이 물화된 현실을 마주하지만,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사회적 노동 과정의 능동적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객체로 경험한다. 이 갈라진 의식 때문에 노동자는 눈앞에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총체로 파악하는 데로 떠밀린다. 그 깨달음이 실천으로, 곧 혁명으로 이어질 때 물화가 극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카치에게 물화의 반대말은 계급의식이었다. 오늘날 이 대목은 페미니즘 인식론이 발전시킨 ‘입장 이론’의 선구로도 읽힌다.
왜 루카치는 이 책을 스스로 거두어들였나?
책이 나오자 독일과 헝가리의 당 지식인들은 관념론적 경향을 문제 삼았고, 그리고리 지노비예프는 1924년 6월 코민테른 제5차 대회 개막 연설에서 이 책을 비판했다. 같은 해 아브람 데보린도 「루카치와 그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써서 공격했다. 이 비판의 요지는 루카치가 헤겔에 기대 주체의 의식을 지나치게 앞세웠다는 데 있었다.
루카치는 1930년대부터 이 책을 자기비판했고, 1945년 이후로는 자기 본령의 저작에 넣지 않았으며 재간행도 거부했다. 그가 승인하지 않은 1960년 프랑스어판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1968년 자기 저작집 제2권으로 독일어 재판을 내면서 1967년에 새 서문을 붙였다. 이 서문에서 그는 예전 논의가 대상화, 외화, 소외를 혼동했다고 인정했다. 사람의 노동 산물과 사회 제도가 의식에서 독립해 있다는 사실(대상화)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며, 비판해야 할 것은 대상화된 형식들이 인간의 본질을 그 실존과 충돌하게 만드는 기능을 할 때, 곧 소외일 때라는 것이다.
이 자기비판을 어떻게 볼지는 엇갈린다. 루카치 자신은 이를 실제 오류의 교정으로 내세웠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필자들은 이 서문에 실린 여러 자기비판이 정당하지 않고 외부의 압력에서 나온 듯 보인다고 평하면서도, 대상화와 소외를 나누는 구별 자체는 물화 비판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 구별에 따르면 물화 비판은 모든 객관적 사회 형식을 집단적 주체가 남김없이 되찾아야 한다는 요구 없이도 가능하다. 루카치의 육필 수정본을 연구한 뤼디거 다네만은 그가 말년에 이 책을 자기 교정의 눈으로 다시 읽었다고 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물화를 어떻게 이어받았나?
루카치의 물화론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저작들이 그 예다. 아도르노는 일찍이 키르케고르론에서부터 물화를 다루었다. 이들에게 물화는 공장 노동의 문제를 넘어 문화와 사유 전체에 스며든 도구적 합리성의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비판 이론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반면 혁명적 계급이 물화를 꿰뚫고 역사를 되찾는다는 루카치의 낙관은 그들에게서 크게 후퇴한다. 위르겐 하버마스 이후 세대도 루카치와의 대결을 이어 갔다.
물화는 마르크스주의 바깥에서도 메아리를 남겼다. 뤼시앵 골드만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루카치에 대한 응답으로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기 드보르, 레이먼드 윌리엄스, 프레드릭 제임슨, 슬라보이 지젝 등도 이 개념을 다루었다. 반대로 루이 알튀세르는 인간관계 곳곳에서 ‘물건’을 보는 ‘물화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호네트는 물화를 어떻게 다시 정의했나?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를 대표하는 악셀 호네트는 2005년 미국 버클리에서 한 태너 강연을 바탕으로 같은 해 『물화』를 냈다(국내 번역 『물화: 인정이론적 탐구』). 그는 이 마르크스주의의 열쇠 개념을 인정 이론으로 다시 짰다. 핵심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맺는 관계에서 모든 인식의 바탕에 깔린 앞선 ‘인정’의 요소가 사라질 때 물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차갑게 알기 전에 먼저 정서적으로 참여하며 세계와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 물화는 이 앞선 인정을 잊는 일이다.
이로써 물화의 원인도 달라졌다. 마르크스와 루카치에게 물화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계의 구조가 낳는 것이었다. 호네트에게 모든 형태의 물화는 상호주체적인 인정 관계의 병리에서 비롯된다. 서평자 미하엘 셰프치크는 호네트가 자본주의를 물화의 책임자로 보는 루카치의 주장을 쓸모없다고 물리치는 대신, 되찾아야 할 ‘참된 실천’이라는 루카치의 생각을 인정 이론으로 발전시켰다고 정리했다.
비판도 날카로웠다. 서평자 랄프 코너스만과 볼프강 케르스팅은 개념을 상호작용 전반으로 넓히면서 인정이 빛나는 긍정 개념이 되었고, 그 결과 아직 물화로 더럽혀지지 않은 근원을 그리워하는 ‘사회 낭만주의’로 되돌아갔다고 보았다. 셰프치크도 호네트가 물화 비판의 정치적 함의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낸시 프레이저는 호네트와의 논쟁에서, 인정 같은 윤리적 범주를 재분배 같은 구조적 사회·정치 범주보다 앞세우는 것을 비판한 바 있다.
물화 비판의 갈래를 어떻게 가늠할까?
세 갈래를 견주면 판별 기준이 드러난다. 첫째, 물화의 원인을 어디서 찾는가. 마르크스는 상품 생산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루카치는 상품 형식이 사회 전체로 퍼진 자본주의를, 호네트는 인정의 망각이라는 상호주체적 병리를 꼽는다. 둘째, 무엇을 극복의 길로 보는가. 마르크스에게는 생산을 자유로운 연합의 의식적 통제 아래 두는 일, 루카치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과 혁명, 호네트에게는 잊힌 인정 관계를 되살리는 일이다. 셋째, 대상화 자체를 문제 삼는가. 초기 루카치는 사회관계가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로 본다는 비판을 받았고, 1967년의 루카치와 호네트는 그렇지 않다.
정치적 귀결도 다르다. 물화를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찾으면 물화 비판은 곧 자본주의 비판이고 생산관계의 변혁을 요구한다. 물화를 인정의 병리에서 찾으면 그 비판은 일상의 대인 관계와 제도 개혁까지 넓게 겨눌 수 있지만, 비판자들 말대로 자본주의 비판의 날이 무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