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노학파
Uno school
일본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우노 고조(1897~1977)와 그 계승자들이 이룬 전후 일본 마르크스 경제학의 큰 흐름. 경제학 연구를 순수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밝히는 「원리론」, 중상주의·자유주의·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다루는 「단계론」, 현실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현상분석」의 세 층위로 나눈 3단계론으로 유명하다. 『자본』을 원리론으로,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단계론으로 놓고, 『자본』을 유통론부터 다시 짰으며, 경제학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분리된 사회과학으로 세우려 했다. 이토 마코토, 세키네 도모히코 등이 영어권에 소개했다.
상세
우노학파의 출발점은 1930년대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큰 논쟁이다. 「일본 자본주의 논쟁」에서 코민테른과 일본 공산당 노선을 따른 강좌파는 메이지 유신 뒤의 일본이 아직 반봉건 사회라서 두 단계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노농파는 일본이 이미 완전한 자본주의 나라라서 한 단계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노농파에 가까웠던 우노 고조는 이 대립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자기 경제학의 기초를 세웠고, 1938년 인민전선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전후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교수가 된 우노는 1947년 『가치론』으로 마르크스 가치론 논쟁에 불을 붙였고, 『경제원론』(1950~1952)과 『공황론』(1953)을 냈다. 그를 따르는 연구자들이 도쿄대학을 중심으로 모여 우노학파, 우노 경제학으로 불렸다.
우노학파를 대표하는 것은 3단계론이다. 왜 이런 구분이 필요했을까. 우노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자본주의의 추상적·논리적 분석과 19세기 영국의 구체적 역사 서술과 통계를 한데 섞어 방법적으로 「불순」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세 층위를 엄격히 나누었다. 가장 추상적인 「원리론」은 모든 역사적 우연과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걷어 낸 가상의 「순수 자본주의 사회」, 곧 자본가·노동자·지주 세 계급만 있는 사회의 경제 법칙을 밝힌다. 중간 층위의 「단계론」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각 시기의 지배적 자본 형태와 그에 맞는 국가 정책으로 나눈다. 상인자본이 지배한 중상주의, 산업자본과 자유방임의 자유주의, 금융자본이 지배한 제국주의다. 가장 구체적인 「현상분석」은 특정 나라와 시기의 현대 자본주의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며, 우노는 이것이 직접적인 사회주의 실천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이 구분에 따라 마르크스의 『자본』은 원리론,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단계론에 속하는 저작이 된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19세기 자유주의 단계에서 20세기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가도 『자본』은 원리론으로서 유효성을 잃지 않는다. 우노는 원리론의 대상인 순수 자본주의가 막스 베버의 「이념형」처럼 연구자가 머릿속에서 짠 모형이 아니라고 보았다. 19세기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스스로 순수한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고전파 경제학과 마르크스는 대상 자체로부터 그것을 그려 내는 방법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방법의 모사」설이라 한다.
우노는 『경제원론』에서 『자본』의 구성을 다시 짰다. 마르크스는 『자본』 첫머리에서 상품의 사용가치를 걷어 내면 가치의 실체로서 노동만 남는다는 이른바 「증류법」으로 노동가치론을 논증했다. 우노는 노동가치론이 노동력이 상품으로 사고팔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로소 전면적으로 성립하므로, 단순한 교환관계에서 곧바로 노동가치론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경제원론』은 먼저 가치의 실체를 전제하지 않고 상품·화폐·자본의 형태를 다루는 「유통론」에서 시작해, 그다음 「생산론」에서 처음으로 노동가치론을 논증한다. 그 근거는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고 받은 임금으로 자기가 만든 생활수단을 되사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찾는다. 우노에게 자본주의의 결정적 특징은 상품 교환이 지배하는 「상품경제」였다.
우노의 공황론은 경기순환론의 성격이 강하다. 호황기에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임금이 오르고 이윤이 짓눌려 공황과 불황이 온다. 불황 동안 더 생산적인 새 기술이 도입되어 상대적 과잉인구가 다시 만들어지고, 그것이 다음 호황의 조건이 된다. 이렇게 「인구법칙」이 조절하는 순환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스스로 유지된다. 노동력은 자본이 직접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이라는 점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우노학파는 경제학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분리하려 했다. 우노는 원리론이 자본주의의 법칙을 밝힐 뿐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필연이라는 것을 논증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공황의 필연성은 논증할 수 있지만 혁명의 필연성은 논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기 학문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아니라 「마르크스 경제학」이라 불렀고, 『자본』을 한 마디도 바꿀 수 없는 성서처럼 다루거나 비판하면 곧 「수정주의」라 낙인찍는 태도를 비판했다. 만년에는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는 물론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자로도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공식 이데올로기에서 거리를 두고 스탈린주의를 공공연히 비판한 그의 태도는 많은 추종자를 낳았고, 우노학파는 일본의 신좌파와 사회주의협회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파 안에서도 갈래가 나뉘었다. 스즈키 고이치로와 이와타 히로시 등은 원리론이 국민경제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을 안에서 그려 내야 한다는 「세계자본주의론」을 내세웠다. 오우치 쓰토무는 『국가독점자본주의』(1970)를 썼고, 야마구치 시게카쓰, 사쿠라이 쓰요시 등이 원리론을 다듬었다. 영어권에는 세키네 도모히코(토머스 T. 세키네)가 1980년 『경제원론』을 영어로 옮기고, 이토 마코토가 『가치와 공황』(1980), 『자본주의의 기초 이론』(1987)을 내고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와 『화폐와 금융의 정치경제학』(1999)을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캐나다의 로버트 올브리턴도 우노의 단계론을 발전시켰다.
비판도 많았다. 일본 안에서는 구루마 사메조가 가치형태론을 두고, 우메모토 가쓰미가 경제학 방법론을 두고 우노를 비판했다. 최근에는 엘레나 루이자 랑게가 우노의 재구성이 상품물신성 비판을 괄호에 넣은 「물신 없는 가치」의 이론이며, 결국 고전파·신고전파 「경제학」의 틀로 돌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바꾸거나 문제 삼을 동기를 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가치법칙을 수요와 공급의 사회적 균형을 보장하는 「교정 과정」으로 보는 우노의 관점이 자본주의를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자기 조절 체계처럼 그리고, 그 모순과 착취와 위기 경향을 「불순한」 역사적 현실의 문제로 밀어낸다는 비판, 우노의 공황론이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장기적 위기가 아니라 경기순환만 다룬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