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닝
Urning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가 1864년에 만든 말로, 타고난 본성에 따라 오로지 남성에게만 성애의 끌림을 느끼는 남성을 가리킨다. 울리히스는 우르닝을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으로 설명하고, 그 사랑이 자연에 맞는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성애」라는 말이 자리 잡기 전 독일어권과, 「우라니안」으로 옮겨진 영어권에서 동성애 남성을 부르는 이름으로 쓰였다.
상세
울리히스는 1864년 누마 누만티우스라는 필명으로 낸 첫 책자 『빈덱스』부터 이 말을 썼고, 이름의 유래도 거기서 풀이했다. 바탕은 플라톤 『향연』의 파우사니아스 연설이다. 거기서 사랑의 여신은 둘로 나뉜다. 어머니 없이 하늘의 신 우라노스에게서만 태어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 아프로디테 디오네는 남녀의 사랑을 대표한다. 울리히스는 앞의 이름에서 「우르닝」을, 뒤의 이름에서 이성애 남성을 가리키는 「디오닝」을 지었다. 그는 「남색가」처럼 경멸과 처벌의 냄새가 밴 기존 낱말을 버리고 중립적인 이름을 원했다. 그 사랑은 「우르닝의 사랑」, 현상 전체는 「우라니즘」이라 불렀다. 다만 플라톤의 우라니아적 사랑이 남성다운 사랑이었던 것과 달리, 울리히스는 우르닝을 본질적으로 여성적인 존재로 보았다.
이 생각은 『멤논』(1868)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표제지에 내건 라틴어 문구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가 그 핵심이다. 머리말에서 울리히스는 우르닝을 “자연의 수수께끼”라 부르며, 그의 사랑의 충동은 여성의 것이고 오직 몸으로만 남자라고 썼다. 그는 이를 태아 발생으로 설명했다. 모든 태아는 처음에 남녀의 생식기 싹과 아직 성별이 없는 사랑의 충동의 싹을 함께 지닌 「원초적 자웅동체」다. 몸을 빚는 자연이 생식기는 남성으로, 사랑의 충동은 여성으로 발달시키면 우르닝이 생긴다. 반대로 하면 남성의 사랑의 충동을 지닌 여성, 곧 「우르닝긴」이 생긴다. 사랑의 충동의 싹이 이미 태아에 놓여 있으므로 우라니즘은 타고난 것이고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울리히스는 편지를 보내 온 수많은 우르닝의 증언을 모아 분류를 세분했다. 몸가짐과 성격, 욕망의 방식이 모두 남성적이고 사랑의 방향만 남성을 향하는 「남성형 우르닝」과, 몸만 남성이고 나머지가 모두 여성적인 「여성형 우르닝」을 두 끝에 두고, 그 사이에 규칙적인 중간 단계들이 늘어선다고 보았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사랑하는 사람은 「우라노디오닝」이라 부르고 결합형과 분리형으로 나누었다. 본래 우르닝이 아니면서 여성이 없는 환경이나 습관 때문에 남성과 관계하는 남성은 「우르닝화된 남성」으로 따로 구별했다. 둘 사이의 이 연속적인 단계가 남녀 두 성만 있다는 틀을 처음으로 흔들었다.
타고난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울리히스 논증의 정치적 결론이었다. 그는 「자연에 반하는 음행」을 벌하는 법 조항이 우르닝에게는 애초에 맞지 않는다며 처벌 폐지를 요구했다. 1867년 8월 29일 뮌헨의 독일 법률가 대회에서 그는 이 요구를 공개 연설로 내놓은 첫 사람이 되었으나 야유 속에 연설을 끝맺지 못했고, 그 경위를 『글라디우스 푸렌스』에 기록했다. 『멤논』에서는 요한 루트비히 카스퍼의 법의학 저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판, 루돌프 피르호의 편지를 타고났다는 주장의 학문적 증언으로 끌어왔다. 1869년 『인쿠부스』와 『아르고나우티쿠스』에서도 같은 말로 형사 사건과 우르닝의 권리를 다루었다.
울리히스의 책자를 읽은 많은 남성이 스스로를 우르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영어권에서는 존 애딩턴 시먼즈가 이 말을 처음 「우라니안」(Uranian)으로 받아들여 울리히스의 용어와 이었고, 에드워드 카펜터와 함께 계급을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동지적 사랑을 뜻하는 말로 썼다. 오스카 와일드도 편지에서 「우라니안의 사랑」을 고귀하다고 옹호했다. 187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고전 교양을 바탕으로 소년애 시를 쓴 영국 시인들은 「우라니안 시인」으로 불린다.
1868년 작가 케르트베니 카로이 마리어가 울리히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성애」(Homosexualität)라는 말을 처음 썼고, 이듬해 프로이센 남색 처벌 조항에 반대하는 익명 소책자로 이를 공개했다. 케르트베니는 동성애 남성이 본래 여성적이지 않다고 보아 울리히스와 달랐다. 이후 의학과 법학의 논의에서 「동성애」가 자리 잡으면서 우르닝은 점차 낡은 말이 되었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 중간 단계를 둔 울리히스의 생각은 마그누스 히르슈펠트가 이어받아 성적 중간 단계론으로 다듬었고, 「제3의 성」이라는 표상을 통해 20세기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이론적 출발점이 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 de.wikipedia.org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영문)
- Karl Heinrich Ulrichs, »Memnon«. Die Geschlechtsnatur des mannliebenden Urnings (Schleiz: Hübscher, 1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