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1905년 혁명과 권력 문제: 멘셰비키 협의회 결의, 레닌, 트로츠키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율리 마르토프, 표트르 스트루베, 알렉산드르 포트레소프, 카를 카우츠키 용어멘셰비키, 볼셰비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이스크라, 연속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러시아 임시정부, 제헌의회, 사회혁명당, 소비에트 사건1905년 혁명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 7장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 정당은 권력을 잡아야 할까?

멘셰비키 협의회 결의 「권력 장악과 임시정부 참여에 관하여」 (1905)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승리한 인민 봉기에서 나온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또는 인민의 직접적인 혁명적 압력 아래 전 인민 제헌의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하는 이런저런 대의 기관의 혁명적 발의로 표시될 수 있다.

이 경우든 저 경우든 그러한 승리는 혁명 시대의 새로운 국면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회 발전의 객관적 조건이 이 새로운 국면 앞에 자연발생적으로 내놓는 과제는, 정치적으로 해방된 부르주아 사회의 요소들이 자기의 사회적 이익의 실현과 권력의 직접 장악을 위해 서로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신분제적·군주제적 체제 전체를 최종적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적 성격으로 보아 부르주아적인 이 혁명의 과제를 떠맡을 임시정부는, 해방되어 가는 국민의 대립하는 계급들 사이의 상호 투쟁을 조정하면서 혁명적 발전을 앞으로 밀고 나갈 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기초를 위협하는 그 발전의 요인들과도 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민주당은 혁명의 전 과정에 걸쳐,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을 가장 잘 보장하고, 부르주아 정당들의 불철저하고 이기적인 정책에 맞선 투쟁에서 손을 묶지 않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않게 지켜 줄 그러한 위치를 지키려고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민주당은 임시정부에서 권력을 장악하거나 나누어 갖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극단적 혁명 야당으로 남아야 한다.

이 전술[“극단적 혁명 야당으로 남는다”]은 물론, 오로지 봉기의 확산을 돕고 정부를 교란하려는 이익을 위해 이런저런 도시, 이런저런 지역에서 권력을 부분적·일시적으로 장악하고 혁명 코뮌을 세우는 것이 합목적적일 수 있음을 조금도 배제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경우에만 사회민주당은 스스로 발의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되도록 오래 그것을 자기 손에 쥐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바로 혁명이 사회주의 실현의 조건이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서유럽 선진국들로 번지는 경우다. 이 경우 러시아 혁명의 제한된 역사적 범위는 크게 넓어질 수 있고, 사회주의적 개조의 길에 나설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혁명기 내내 혁명의 흐름 속에서 바뀌어 가는 모든 정부에 대해 극단적 혁명 야당의 위치를 사회민주당에 지켜 준다는 계산 위에서 자기 전술을 세움으로써, 사회민주당은 정부 권력이 자기 손에 떨어지는 경우 그것을 활용할 준비도 가장 잘 할 수 있다.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1905, 발췌)

3.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란 무엇인가?

“협의회”의 결의는 “권력 장악과 임시정부 참여”라는 문제를 다룬다[1]. 앞서 지적했듯이 문제를 이렇게 세우는 데에서 이미 혼란이 숨어 있다. 한편으로 문제가 좁게 세워졌다. 임시혁명정부에 대한 당의 과제 일반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임시정부에 참여하느냐만을 묻는다. 다른 한편으로 전혀 성질이 다른 두 문제, 곧 민주주의 변혁의 한 단계에 우리가 참여하는 문제와 사회주의 변혁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실제로 사회민주당의 “권력 장악”이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보통의 뜻으로 쓴다면, 바로 사회주의 변혁이며 그 밖의 다른 것일 수 없다. 반대로 이 말을 사회주의 변혁이 아니라 민주주의 변혁을 위한 권력 장악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임시혁명정부 참여에 더해 “권력 장악” 일반을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이 있겠는가? 분명히 우리의 “협의회 참가자들”은 자기들이 정작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민주주의 변혁인지 사회주의 변혁인지 스스로도 잘 몰랐던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룬 문헌을 따라온 사람이라면 이 혼란의 시작이 마르티노프 동지의 그 유명한 『두 독재』였다는 것을 안다. 신이스크라파는 (1월 9일 이전에 이미) 이 모범적인 추수주의 저작이 내놓은 문제 설정을 떠올리기 싫어하지만, 그것이 협의회에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의의 제목은 제쳐 두자. 그 내용은 비교도 안 되게 더 깊고 심각한 오류를 보여 준다. 그 첫 부분은 이렇다.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승리한 인민 봉기에서 나온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또는 인민의 직접적인 혁명적 압력 아래 전 인민 제헌의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하는 이런저런 대의 기관의 혁명적 발의로 표시될 수 있다.”

그러니까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승리한 봉기일 수도 있고, 그리고… 대의 기관이 제헌의회를 조직하기로 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결정적 승리가 제헌의회를 조직하겠다는 “결정”으로 표시될 수 있다니?? 게다가 그런 “승리”를 “승리한 인민 봉기에서 나온” 임시정부의 수립과 나란히 놓다니!! 협의회는 승리한 인민 봉기와 임시정부 수립은 실제로 이룬 혁명의 승리를 뜻하지만, 제헌의회를 조직하겠다는 “결정”은 말로만 이룬 혁명의 승리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멘셰비키 신이스크라파의 협의회는 자유주의자들, 곧 해방파가 늘 빠지는 바로 그 오류에 빠졌다. 해방파는 “제헌”의회에 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 힘과 권력이 여전히 차르의 손에 있다는 사실에는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제정”하려면 제정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협의회도 어떤 대표들의 “결정”이든 그 결정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멀다는 것을 잊었다. 협의회도 권력이 차르의 손에 남아 있는 한 어떤 대표들의 어떤 결정이든, 1848년 독일 혁명사에서 이름난 프랑크푸르트 의회의 “결정”들이 그랬듯이 공허하고 가련한 수다로 끝나리라는 것을 잊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 마르크스가 자신의 『신라인 신문』에서 프랑크푸르트의 자유주의 “해방파”를 가차 없는 풍자로 매질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좋은 말을 하고 온갖 민주적 “결정”을 채택하고 온갖 자유를 “제정”했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국왕의 손에 남겨 두었고 국왕이 거느린 군사력에 맞선 무장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의 해방파가 떠드는 동안 국왕은 때를 기다려 군사력을 다졌고, 반혁명은 실제의 힘에 기대어 민주주의자들을 그들의 그 어여쁜 “결정”들과 함께 철저히 쳐부수었다.

협의회는 승리의 결정적 조건이 바로 빠져 있는 것을 결정적 승리와 같은 것으로 놓았다. 우리 당의 공화국 강령을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었을까? 이 기묘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당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에 관한 제3차 당대회의 결의를 볼 필요가 있다[2]. 이 결의는 우리 당 안에 “‘경제주의’와 친족 관계에 있는” 여러 경향이 아직 남아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의 협의회 참가자들은 (그들이 마르티노프의 사상적 지도 아래 있는 것도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혁명에 관해, “경제주의자들”이 정치 투쟁이나 8시간 노동일에 관해 논하던 것과 꼭 같은 정신으로 논한다. “경제주의자들”은 곧바로 “단계론”을 들고 나왔다. 1) 권리를 위한 투쟁, 2) 정치적 선동, 3) 정치 투쟁. 또는 1) 10시간 노동일, 2) 9시간, 3) 8시간. 이 “과정으로서의 전술”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모두가 충분히 알고 있다. 이제 그들은 혁명도 미리 단계별로 깔끔하게 나누자고 제안한다. 1) 차르가 대의 기관을 소집한다. 2) 이 대의 기관이 “인민”의 압력 아래 제헌의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3) … 셋째 단계에 관해서는 멘셰비키가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인민의 혁명적 압력이 차리즘의 반혁명적 압력과 맞부딪친다는 것, 따라서 “결정”이 실현되지 않은 채 남거나, 아니면 결국 다시 인민 봉기의 승리나 패배가 일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었다. 협의회의 결의는 “경제주의자들”의 다음과 같은 논리와 판에 박은 듯 닮았다. 노동자의 결정적 승리는 8시간 노동일의 혁명적 실현으로, 또는 10시간 노동일의 하사와 9시간 노동일로 넘어가겠다는 “결정”으로 표시될 수 있다… 판에 박은 듯 꼭 같다.

어쩌면 결의를 쓴 사람들은 봉기의 승리를 차르가 소집한 대의 기관의 “결정”과 같은 것으로 놓으려던 것이 아니라 이 경우와 저 경우에 당이 취할 전술을 미리 내다보려 했을 뿐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답하겠다. 1) 결의의 문장은 대의 기관의 결정을 곧바로, 그리고 모호함 없이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라고 부른다. 어쩌면 이것은 문장을 소홀히 다듬은 결과일지 모르고, 어쩌면 의사록에 기대어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은 동안에는 이 문장의 뜻은 하나뿐이며, 그 뜻은 철두철미 해방파적이다. 2) 결의 작성자들이 빠진 “해방파”식 사고방식은 신이스크라파의 다른 글들에서 비교도 안 되게 더 뚜렷이 드러난다. 예컨대 티플리스 위원회의 기관지 『사회민주주의자』(그루지야어로 나오며, 『이스크라』 제100호가 칭찬했다)에 실린 「젬스키 소보르와 우리의 전술」이라는 글은 아예 “젬스키 소보르를 우리 행동의 중심으로 삼는” “전술”이 (덧붙이자면 그 소집에 관해 우리는 아직 확실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무장봉기와 임시혁명정부 수립이라는 “전술”보다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고까지 말한다. 이 글에는 뒤에서 다시 돌아오겠다. 3) 혁명이 승리할 경우와 패배할 경우, 봉기가 성공할 경우와 봉기가 큰 세력으로 타오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당의 전술을 미리 논의하는 것에는 아무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차르 정부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거래할 목적으로 대의 기관을 소집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제3차 당대회의 결의는 이를 내다보고 “위선적 정책”, “사이비 민주주의”, “이른바 젬스키 소보르 같은 인민 대표제의 희화적 형태”를 곧바로 말한다[3].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 임시혁명정부에 관한 결의에서 언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임시혁명정부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봉기와 임시혁명정부 수립이라는 문제를 뒤로 미루고 그 모양을 바꾸는 따위의 일을 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온갖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 승리도 패배도, 곧은길도 에움길도 가능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참으로 혁명적인 길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에 혼란을 들여와서는 안 된다는 데, 승리의 기본 조건이 빠진 것을 해방파처럼 결정적 승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8시간 노동일도 우리가 단번에 얻지 못하고 길고 먼 에움길을 거쳐서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연과 연기와 흥정과 배신과 반동을 막을 힘조차 없는 그런 무력함, 그런 허약함을 노동자의 승리라고 부르는 사람을 두고 당신은 무어라 하겠는가? 러시아 혁명은 언젠가 『전진』이 말했듯이 “입헌적 유산(流産)”으로 끝날지도 모른다[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 투쟁을 앞두고 이 유산을 “차리즘에 대한 결정적 승리”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우리는 공화국을 쟁취하지 못할 뿐 아니라 헌법조차 “시포프식”[5]의 허울뿐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자가 우리의 공화국 구호를 흐릿하게 지우는 것이 용서될 수 있겠는가?

물론 신이스크라파가 아직 공화국 구호를 지우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혁명적 정신이 그들에게서 얼마나 날아가 버렸는지, 생기 없는 공리공론이 그들의 눈앞에서 이 시기의 전투적 과제를 얼마나 가려 버렸는지는, 그들이 자기 결의에서 바로 공화국에 관해 말하기를 잊어버렸다는 데서 특히 똑똑히 드러난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사회민주당의 모든 구호가 협의회의 여러 결의에서 확인되고, 되풀이되고, 설명되고, 세분되었다. 노동자들이 사업장마다 반장과 대표를 뽑는 일조차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임시혁명정부에 관한 결의에서만은 공화국을 떠올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인민 봉기의 “승리”와 임시정부 수립을 말하면서 이 “걸음”과 행위가 공화국 쟁취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꽁무니에서 절뚝거리며 따라가기 위해 결의를 쓰는 것을 뜻한다.

결론. 결의의 첫 부분은 1) 공화국을 위한 투쟁과 참으로 전 인민적이고 참으로 제헌적인 의회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임시혁명정부가 지니는 의의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2) 진정한 승리의 기본 조건이 바로 아직 빠져 있는 사태를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와 같은 것으로 놓음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 의식에 노골적인 혼란을 들여왔다.

5. 어떻게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가?

결의의 다음 부분을 옮긴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민주당은 혁명의 전 과정에 걸쳐,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을 가장 잘 보장하고, 부르주아 정당들의 불철저하고 이기적인 정책에 맞선 투쟁에서 손을 묶지 않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않게 지켜 줄 그러한 위치를 지키려고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민주당은 임시정부에서 권력을 장악하거나 나누어 갖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극단적 혁명 야당으로 남아야 한다.”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을 가장 잘 보장하는 위치를 차지하라는 충고는 우리 마음에 아주, 아주 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만 이 좋은 충고 말고도, 바로 지금, 주어진 정치 정세에서, 인민 대표 소집을 둘러싼 풍문과 추측과 이야기와 구상이 오가는 이 시기에, 사회민주당이 정확히 어떻게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인민과 차르의 “합의”라는 해방파 이론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제헌의회를 소집하겠다는 “결정” 하나를 승리라 부르는 사람, 임시혁명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과제로 삼지 않는 사람, 민주공화국 구호를 그늘에 묻어 두는 사람이 지금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는 혁명을 뒤로 끌어당기고 있다. 실천적·정치적 측면에서 그들은 해방파의 입장 수준에 멈춰 섰기 때문이다. 혁명의 순간에 당의 현재의 과제와 당면 과제를 정하는 전술 결의에 공화국을 위한 투쟁이라는 구호가 없다면, 전제정을 공화국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강령을 그들이 인정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해방파의 입장, 입헌주의 부르주아지의 입장의 특징은 실제로 바로 이것, 곧 전 인민 제헌의회를 소집하겠다는 결정에서 결정적 승리를 보고, 임시혁명정부와 공화국에 관해서는 신중하게 입을 다문다는 데 있지 않은가! 혁명을 앞으로, 곧 군주주의 부르주아지가 밀고 가는 한계보다 더 멀리 밀고 나가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불철저함”을 허용하지 않는 구호들을 적극적으로 내걸고, 강조하고, 맨 앞에 내세워야 한다. 지금 그런 구호는 단 두 가지, 1) 임시혁명정부와 2) 공화국뿐이다. 전 인민 제헌의회라는 구호는 군주주의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였고(「해방동맹」의 강령을 보라), 그것도 바로 혁명을 슬쩍 빼돌리기 위해, 혁명의 완전한 승리를 막기 위해, 대부르주아지와 차리즘의 장사꾼 같은 거래를 위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듯이 협의회는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이 두 구호 가운데 공화국 구호는 아예 잊어버렸고, 임시혁명정부 구호는 해방파의 전 인민 제헌의회 구호와 대놓고 같은 것으로 놓아 둘 다 “혁명의 결정적 승리”라고 불렀다!!

그렇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며, 우리는 이것이 장래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역사가에게 이정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1905년 5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협의회는 민주주의 혁명을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좋은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혁명을 뒤로 끌어당기는 결의, 실제로는 군주주의 부르주아지의 민주주의 구호보다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는 결의를 채택했다.

신이스크라파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으로 녹아 사라질 위험을 우리가 무시한다고 즐겨 비난한다. 우리는 이 비난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가 채택한 결의의 문장에 근거해 입증하겠다고 나설 사람을 한번 보고 싶다. 우리는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이렇게 답하겠다.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 위에서 활동하는 사회민주당은 이런저런 개별 경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나란히 걷지 않고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때 우리와 당신들의 차이는, 우리는 혁명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부르주아지와 나란히 걷되 그것과 하나로 녹아들지 않고, 당신들은 자유주의적이고 군주주의적인 부르주아지와 나란히 걷되 역시 그것과 하나로 녹아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정은 이렇다.

협의회의 이름으로 내놓은 당신들의 전술 구호는 “입헌민주”당, 곧 군주주의 부르주아지의 정당의 구호와 일치한다. 게다가 당신들은 이 일치를 알아차리지도 의식하지도 못했고, 그리하여 사실상 해방파의 꽁무니에 서게 되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의 이름으로 내놓은 우리의 전술 구호는 민주혁명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부르주아지의 구호와 일치한다. 그런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는 러시아에서 아직 큰 인민 정당으로 형성되지 않았다[6]. 그러나 그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뿐이다. 우리는 (위대한 러시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사회민주당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뿐 아니라, 우리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이 소부르주아지도 지도할 작정이다.

협의회는 자기 결의로써 무의식중에 자유주의적이고 군주주의적인 부르주아지의 수준으로 내려간다. 당대회는 자기 결의로써 거간질이 아니라 투쟁을 할 수 있는 혁명적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자기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그런 요소는 농민 속에 가장 많다. 큰 사회 집단들을 그 정치적 경향에 따라 나눌 때, 우리는 크게 틀리지 않고 혁명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농민 대중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노동계급을 사회민주당과 같은 것으로 볼 때와 같은 뜻에서, 같은 단서와 암묵의 조건을 붙여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결론을 다음과 같은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협의회는 혁명의 순간에 자기의 전국적[7] 정치 구호로써 무의식중에 지주 대중의 수준으로 내려간다. 당대회는 자기의 전국적 정치 구호로써 농민 대중을 혁명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 결론 때문에 우리를 역설을 좋아한다고 나무랄 사람에게 우리는 도전하겠다. 다음 명제를 반박해 보라. 만일 우리가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없다면, 만일 혁명이 해방파식 “결정적 승리”로, 곧 조롱 삼아서나 제헌의회라고 부를 수 있을 차르가 소집한 대의 기관 하나로 끝난다면, 그것은 지주와 대부르주아 요소가 우세한 혁명이 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참으로 위대한 혁명을 겪을 운명이라면, 역사가 이번에는 “유산”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혁명을 끝까지, 해방파식도 신이스크라파식도 아닌 뜻에서의 결정적 승리까지 밀고 나갈 힘이 있다면, 그것은 농민과 프롤레타리아 요소가 우세한 혁명이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우세를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다가오는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에 대한 확신을 버리는 것으로 볼지도 모른다. 『이스크라』에서 보듯이 이 개념을 함부로 쓰는 판이니 그럴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6. 부르주아지의 불철저함에 맞선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손이 묶일 위험은 어디서 오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적 성격을 지닌다고 굳게 확신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러시아에 필요해진 정치 체제의 민주주의적 개혁과 사회경제적 개혁이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거나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허무는 것을 뜻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시아식이 아닌 유럽식의 넓고 빠른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처음으로 제대로 땅을 고르고,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하리라는 뜻이다. 사회혁명당은 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 법칙에 관한 기초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민 봉기가 완전히 성공하더라도, 모든 토지가 농민의 이익에 따라 농민이 바라는 대로 재분배되더라도(“흑토 재분배”나 그 비슷한 무엇이 되더라도) 자본주의는 조금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발전에 추진력을 얻어 농민 자신의 계급 분해를 앞당긴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혁명당은 소부르주아지의 무의식적 이데올로그가 된다. 이 진리를 고수하는 것은 사회민주당에게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정치적으로도 엄청나게 중요하다. 지금의 “전 민주주의적” 운동 속에서도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계급적으로 완전히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회경제적 내용으로는 부르주아적인) 민주주의 변혁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막대한 이해가 걸린 일이 아니라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또 여기서 민주주의 변혁이 주로 대자본가, 금융 거물, “개명한” 지주에게 유리한 형태로도, 농민과 노동자에게 유리한 형태로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결론도 결코 나오지 않는다.

신이스크라파는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범주의 뜻과 의의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들의 논의에는 부르주아 혁명이란 부르주아지에게 유리한 것만을 줄 수 있는 혁명이라는 생각이 줄곧 비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다. 부르주아 혁명이란 부르주아적인, 곧 자본주의적인 사회경제 체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혁명이다. 부르주아 혁명은 자본주의 발전의 요구를 표현하며, 자본주의의 토대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넓히고 깊게 한다. 그러므로 이 혁명은 노동계급의 이익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전체의 이익도 표현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므로, 부르주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보다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더 많이 표현한다고 말해도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부르주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완전히 터무니없다. 이 터무니없는 생각은 부르주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어긋나며 따라서 우리에게 부르주아적 정치 자유는 필요 없다는 케케묵은 인민주의 이론으로 귀착하거나, 아니면 부르주아 정치, 부르주아 혁명, 부르주아 의회주의에 프롤레타리아트가 참여하는 것을 일절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로 귀착한다. 이론적으로 이 생각은 상품 생산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초 명제를 잊어버린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상품 생산에 기초하고 문명화된 자본주의 국민들과 교환하는 사회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스스로도 피할 수 없이 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선다고 가르친다. 마르크스주의는, 예컨대 러시아가 자본주의 발전을 거치지 않거나 자본주의에서 뛰쳐나오거나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그것도 바로 이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그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길이 아닌 다른 어떤 길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인민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헛소리와 돌이킬 수 없이 결별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 모든 명제는 일반적으로도, 특히 러시아와 관련해서도 낱낱이 자세하게 증명되고 풀이되었다. 그리고 이 명제들로부터, 노동계급의 구원을 자본주의의 더 큰 발전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찾는 생각은 반동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기보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모자라서 고통받는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은 가장 넓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빠른 자본주의 발전에 무조건 이해관계가 있다. 넓고 자유롭고 빠른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옛 시대의 모든 잔재를 없애는 것은 노동계급에게 무조건 이롭다. 부르주아 혁명이란 바로 옛 시대의 잔재, 농노제의 잔재(이 잔재에는 전제정만이 아니라 군주제도 속한다)를 가장 단호하게 쓸어버리고, 가장 넓고 자유롭고 빠른 자본주의 발전을 가장 완전하게 보장하는 변혁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이롭다. 부르주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무조건 필요하다. 부르주아 혁명이 더 완전하고 더 단호하고 더 철저할수록,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은 그만큼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초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이 결론이 새롭거나 기묘하거나 역설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결론에서는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이 부르주아지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 이롭다는 명제도 나온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이 명제는 의심할 바 없다. 부르주아지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옛 시대의 어떤 잔재들, 예컨대 군주제나 상비군 따위에 기대는 것이 이롭다. 부르주아지에게는 부르주아 혁명이 옛 시대의 모든 잔재를 너무 단호하게 쓸어버리지 않고 그 가운데 몇몇을 남겨 두는 것, 곧 이 혁명이 완전히 철저하지 않고, 끝까지 가지 않고, 단호하고 가차 없지 않은 것이 이롭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흔히 이 생각을 조금 달리 표현해,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을 배반한다, 부르주아지는 자유의 대의를 팔아넘긴다, 부르주아지는 철저한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부르주아지에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향의 필요한 개혁이 더 느리게, 더 점진적으로, 더 조심스럽게, 더 우유부단하게, 혁명의 길이 아니라 개량의 길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이롭다. 이 개혁이 농노제의 “존경할 만한” 제도들(군주제 같은 것)을 되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더 이롭다. 이 개혁이 평민, 곧 농민과 특히 노동자의 혁명적 자발성과 주도력과 에너지를 되도록 적게 키우는 것이 더 이롭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프랑스 사람들 말처럼 “총을 이쪽 어깨에서 저쪽 어깨로 바꿔 메기가”, 곧 부르주아 혁명이 그들에게 쥐여 줄 무기를, 그 혁명이 줄 자유를, 농노제를 걷어 낸 땅 위에 생겨날 민주적 제도들을 부르주아지 자신에게 겨누기가 그만큼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계급에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향의 필요한 개혁이 바로 개량의 길이 아니라 혁명의 길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이롭다. 개량의 길은 질질 끌고 늦추며 인민이라는 유기체의 썩어 가는 부분이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들이 썩어 가는 데서 맨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고통받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다. 혁명의 길은 빠르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장 덜 고통스러운 수술의 길, 썩어 가는 부분을 곧바로 도려내는 길, 군주제와 그에 걸맞은 역겹고 추악하고 썩어서 썩은 내로 공기를 더럽히는 제도들에 대해 가장 적게 양보하고 가장 적게 조심하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부르주아 자유주의 언론은 검열을 고려해서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두려워서”라는 성경 구절처럼 겁에 질려서만이 아니라[8], 혁명의 길이 열릴 가능성을 슬퍼하고, 혁명을 두려워하고, 혁명으로 차르를 겁주고, 혁명을 피하려고 애쓰며, 개량의 길의 바탕이 될 보잘것없는 개혁을 얻으려고 굽실거리고 아첨한다. 『러시아 통보』, 『조국의 아들』, 『우리의 삶』, 『우리의 나날』만이 아니라 비합법의 자유로운 『해방』도 이 관점에 서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가 처한 처지 자체가 민주주의 변혁에서 그들의 불철저함을 피할 수 없이 낳는다.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처한 처지 자체가 그들을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게 한다.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강화를 불러올 민주주의의 진보를 두려워하며 뒤를 돌아본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쇠사슬 말고는 잃을 것이 없으며, 민주주의의 도움으로 온 세계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혁명이 그 민주주의적 개혁에서 더 철저할수록, 그 혁명은 부르주아지에게만 이로운 것에 그만큼 덜 머문다. 부르주아 혁명이 더 철저할수록, 그 혁명은 민주주의 변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이익을 그만큼 더 많이 보장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부르주아 혁명에서 물러나라고, 그것에 무관심하라고, 그 혁명의 지도를 부르주아지에게 맡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반대로 가장 힘차게 참여하라고,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가장 단호하게 싸우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테두리에서 뛰쳐나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테두리를 엄청나게 넓힐 수 있으며, 이 테두리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그 직접적 요구를 위해, 장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그 힘을 준비할 조건을 위해 싸울 수 있고 싸워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도 이런 것이 있고 저런 것이 있다. 상원을 지지하고,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면서 뒤로는 슬그머니 차리즘과 쪼그라든 헌법을 놓고 거래하는 군주주의자 젬스트보 인사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다. 손에 무기를 들고 지주와 관리에게 맞서 나아가며 “순진하게 공화주의적으로” “차르를 쫓아내자”고 제안하는 농민[9]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도 독일 같은 것이 있고 영국 같은 것이 있으며, 오스트리아 같은 것이 있고 미국이나 스위스 같은 것이 있다. 민주주의 변혁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정도의 차이와 그 이런저런 형태가 지닌 성격의 차이를 놓쳐 버리고, 어쨌든 이것은 “부르주아 혁명”이며 “부르주아 혁명”의 열매라는 “영리한 소리”에 그치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참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자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자기의 근시안을 뽐내는 그런 영리한 사람들이 우리의 신이스크라파다. 그들은 공화주의적·혁명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군주주의적·자유주의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할 곳과 때에, 불철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에 관한 논의에 그치고 만다. 그들은 정말로 “상자 속의 사나이”가 되기라도 한 듯, 지금의 혁명에서 민주주의적 지도를 하는 것, 스트루베 씨 일당의 배신적 구호와 구별되는 선진적 민주주의 구호를 강조하는 것, 지주와 공장주의 자유주의적 거간질과 구별되는 참으로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투쟁의 당면 과제를 곧바로 날카롭게 가리키는 것이 문제인 때에, “대립하는 계급들 사이의 상호 투쟁의 과정”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로 만족한다. 여러분, 당신들이 놓친 문제의 핵심은 지금 이것이다. 우리 혁명이 진정한 거대한 승리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가련한 거래로 끝날 것인가.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에까지 이를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적·시포프식 헌법에서 “기운이 다해” 버릴 것인가!

얼핏 보면 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우리가 주제에서 아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얼핏 볼 때뿐이다. 실제로는 바로 이 문제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의 사회민주주의 전술과 신이스크라파 협의회가 정한 전술 사이에 이미 지금 뚜렷이 드러난 원칙적 차이의 뿌리가 있다. 신이스크라파는 혁명의 순간에 노동자 정당의 전술에 관한, 비교도 안 되게 더 복잡하고 더 중요하며 더 생사가 걸린 문제를 푸는 데서 “경제주의”의 오류를 되살려 냄으로써 이미 지금 두 걸음이 아니라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기된 문제를 분석하는 데 온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옮겨 적은 신이스크라파 결의의 부분에는 사회민주당이 부르주아지의 불철저한 정책에 맞선 투쟁에서 손이 묶이지나 않을까,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위험에 대한 지적이 들어 있다. 이 위험에 관한 생각은 신이스크라파 특유의 문헌 전체를 붉은 실처럼 꿰뚫고 있으며, 이 생각이야말로 우리 당 분열에서 (이 분열의 말다툼 요소가 “경제주의”로의 선회라는 요소 앞에서 완전히 뒷전으로 물러난 뒤로) 원칙적 입장 전체의 진짜 요점이다. 우리는 이 위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바로 지금 러시아 혁명이 한창인 때에 이 위험이 특히 심각해졌다는 것을 에두르지 않고 인정한다. 사회민주당의 이론가, 아니 나 자신에 관해서는 차라리 평론가라고 말하고 싶은데, 우리 모두에게는 이 위험이 실제로 어느 쪽에서 다가오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긴급하고 대단히 책임 있는 과제가 지워져 있다. 우리 사이의 의견 차이의 원천은 그런 위험이 존재하느냐를 둘러싼 논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을 낳는 것이 “소수파”의 이른바 추수주의냐 “다수파”의 이른바 혁명주의냐를 둘러싼 논쟁에 있기 때문이다.

곡해와 오해를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말해 두자. 우리가 말하는 위험은 일의 주관적 측면이 아니라 객관적 측면에, 사회민주당이 투쟁에서 취할 형식적 입장이 아니라 지금의 혁명 투쟁 전체가 맞을 물질적 결말에 있다. 이런저런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 녹아들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자기가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꺼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떤 사회민주주의자에게서도 그런 바람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으며, 여기서 문제는 결코 바람에 있지 않다. 이런저런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혁명의 전 과정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형식적 자립성, 별개성, 독립성을 지키느냐도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 “자립성”을 선언할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 지킬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될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불철저함에 맞선 투쟁에서 그들의 손이 묶이는 것이다. 혁명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말은 이럴 수 있다. 형식적 “자립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의 완전한 조직적·당적 별개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이 실제로는 자립하지 못하고, 사태의 흐름에 자신의 프롤레타리아적 자립성의 도장을 찍을 힘이 없으며, 너무 약해서 대체로, 결국에는, 최종 결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으로의 “용해”가 역사적 사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진짜 위험이 있다. 그러면 이제 그 위험이 어느 쪽에서 다가오는지 보자. 우리 생각처럼 신『이스크라』로 대표되는 사회민주당의 오른쪽 일탈에서인가, 아니면 신이스크라파 생각처럼 “다수파”, 『전진』 등으로 대표되는 왼쪽 일탈에서인가.

이 문제의 답은, 앞서 지적했듯이, 여러 사회 세력의 작용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이 세력들의 성격은 이론적으로는 러시아 현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으로 정해졌고, 이제는 혁명의 흐름 속에서 집단과 계급이 공공연히 나섬으로써 실천적으로 정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보다 훨씬 전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해 놓은 이론적 분석 전체와, 혁명적 사태의 전개를 지켜본 실천적 관찰 전체가 보여 주는 것은, 객관적 조건의 관점에서 러시아 혁명은 두 갈래로 진행되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향으로 개조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이 개조를 가로막을 수 있는 힘은 지상에 없다. 그러나 이 개조를 이루어 내는 현존 세력들의 작용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이 개조는 두 가지 결과, 두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 둘 중 하나다. 1) 일이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로 끝나거나, 2) 결정적 승리를 거둘 힘이 모자라 차리즘과 부르주아지의 가장 “불철저하고” 가장 “이기적인” 요소들 사이의 거래로 끝나거나. 누구도 미리 내다볼 수 없는 세부와 조합의 끝없는 다양성도 대체로 바로 이 두 결말 가운데 하나로 귀착한다.

이제 이 결말들을 첫째로 그 사회적 의의의 관점에서, 둘째로 두 결말 각각에서 사회민주당이 처할 위치(그 “용해”나 “손이 묶임”)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신이스크라파가 이 표현을 쓰면서 그 가장 가까운 정치적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이 개념의 계급적 내용에 대한 이해는 그들에게서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 많은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가폰처럼) 그러하듯이 “혁명”이니 “위대한 러시아 혁명”이니 하는 말에 홀려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차리즘”(이것은 아주 실재적이고 누구나 아주 잘 아는 세력이다)에 맞서 있으며 그것에 대해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실재적 사회 세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따져 보아야 한다. 대부르주아지, 지주, 공장주, 해방파를 따르는 “사회”는 그런 세력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결정적 승리를 바라지조차 않는다는 것을 본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계급적 처지 때문에 차리즘과 결정적으로 싸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 사적 소유, 자본, 토지는 결정적 투쟁에 나서기에는 발목에 너무 무거운 쇳덩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에 맞서 차리즘과 그 경찰·관료·군사력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차리즘의 절멸을 바랄 수 없다. 그렇다, “차리즘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인민, 곧 기본적인 큰 세력을 놓고 볼 때 농촌과 도시의 소부르주아지(이들도 “인민”이다)를 이쪽저쪽에 나누어 넣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뿐이다.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다. 『전진』이 오래전에 지적한 이 결론에서 우리의 신이스크라파는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차리즘에 대해 결정적 승리를 거둘 다른 누구는 없다.

그리고 그런 승리는 바로 독재일 것이다. 곧 “합법적”으로, “평화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이런저런 제도가 아니라 군사력에, 대중의 무장에, 봉기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독재일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에게 당장 꼭 필요한 개혁을 실행하면 지주도 대부르주아도 차리즘도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 없이는 이 저항을 꺾고 반혁명의 시도를 물리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사회주의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독재일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발전의 여러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의 토대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토지 소유를 농민에게 유리하게 근본적으로 재분배하고,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농촌 생활만이 아니라 공장 생활에서도 아시아적이고 예속적인 모든 특징을 뿌리째 뽑아 내고, 노동자의 처지를 진지하게 개선하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일에 첫발을 내딛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이지만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일로서[10] 혁명의 불길을 유럽으로 옮겨 붙이는 것이다. 그런 승리도 우리의 부르주아 혁명을 아직 조금도 사회주의 혁명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민주주의 변혁은 부르주아 사회경제 관계의 테두리를 직접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그런 승리가 러시아와 온 세계의 장래 발전에 지니는 의의는 거대할 것이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혁명의 이 결정적 승리만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에너지를 높이 끌어올리는 것은 없을 것이며, 그 완전한 승리로 가는 길을 이만큼 크게 줄여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승리가 얼마나 있을 법한가는 다른 문제다. 우리는 이 점에서 무모한 낙관에 기울지 않으며, 이 과제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러나 투쟁에 나서는 이상 우리는 승리를 바라야 하고, 그 승리로 가는 참된 길을 가리킬 줄 알아야 한다. 이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경향은 의심할 바 없이 존재한다. 사실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대한 우리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은 아직 아주아주 부족하다. 농민 대중에 대한 혁명적 영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특히 농민의 흩어짐, 미발달, 무지는 아직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혁명은 빠르게 결속시키고 빠르게 깨우친다. 혁명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대중은 깨어나고, 자신의 참된, 피로 맺어진 이익을 철저하고 온전하게 표현하는 유일한 것인 혁명적 강령 쪽으로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끌려온다.

역학의 법칙은 작용과 반작용이 같다고 말한다. 역사에서도 혁명의 파괴력은 자유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강하고 오래 억눌려 왔는지, 대홍수 이전의 “상부구조”와 현대의 살아 있는 힘 사이의 모순이 얼마나 깊은지에 적잖이 달려 있다. 국제 정치 정세도 여러 면에서 러시아 혁명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의 봉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흩어져 있고 자연발생적이며 약하지만, 결정적 투쟁을 할 수 있고 결정적 승리로 나아가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의심할 바 없이 무조건 증명하고 있다.

이 세력이 모자란다면, 그때 차리즘은 거래를 맺을 시간을 벌 것이다. 그 거래는 이미 양쪽 끝에서 불리긴 나리들과 스트루베 나리들이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 일은 쪼그라든 헌법으로, 아니 최악 중의 최악의 경우에는 헌법의 패러디로 끝날 것이다. 그것도 “부르주아 혁명”이겠지만, 유산이고 조산아이며 사생아일 것이다. 사회민주당은 환상을 품지 않는다.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지의 배신적 본성을 안다.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 입헌적인 “시포프식” 태평성대의 가장 잿빛 일상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교육을 위한 끈질기고 참을성 있고 꿋꿋한 활동을 내던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결말은 19세기 유럽의 거의 모든 민주주의 혁명의 결말과 대체로 비슷할 것이며, 그때 우리 당의 발전은 어렵고 힘들고 길지만 익숙하고 다져진 길을 따라갈 것이다.

이제 묻는다. 이 두 가능한 결말 가운데 어느 쪽에서 사회민주당은 불철저하고 이기적인 부르주아지에 맞서 실제로 손이 묶이게 되는가? 실제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 “녹아 버리거나” 거의 녹아 버리게 되는가?

이 질문을 분명하게 세우기만 하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다.

부르주아지가 차리즘과 거래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을 좌절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 사회민주당은 실제로 바로 불철저한 부르주아지에 맞서 손이 묶이게 될 것이다. 그때 사회민주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에 자신의 뚜렷한 도장을 찍지 못하고, 프롤레타리아답게, 또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평민답게” 차리즘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 “녹아 버리게” 될 것이다.

혁명의 결정적 승리가 이루어진다면, 그때 우리는 자코뱅식으로, 또는 원한다면 평민식으로 차리즘을 처리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 그 유명한 『신라인 신문』에 이렇게 썼다. “프랑스의 테러리즘 전체는 부르주아지의 적들, 곧 절대주의, 봉건제, 속물근성을 평민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마르크스 유고집』, 메링 판, 제3권, 211쪽을 보라.)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에 “자코뱅주의”라는 허수아비로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을 겁주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이 말이 지닌 뜻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오늘날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지롱드파인 신이스크라파는 해방파와 하나로 녹아들지는 않지만, 자기 구호의 성격 때문에 실제로는 그들의 꽁무니에 서 있다. 그런데 해방파, 곧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은 전제정을 부드럽게, 개량식으로, 귀족과 지주와 궁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게 양보하면서, 아무것도 부수지 않게 조심스럽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나리답게 흰 장갑을 끼고 처리하고 싶어 한다(“피의 니콜라이”가 “인민 대표”(?)를 접견할 때 페트룬케비치 씨가 바시보주크의 손에서 벗겨 끼었던 그런 장갑 말이다. 『프롤레타리』 제5호를 보라).

오늘날 사회민주당의 자코뱅파, 곧 볼셰비키, 『전진』파, 당대회파, 또는 『프롤레타리』파, 정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자기 구호로써 혁명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소부르주아지와 특히 농민을, 자기의 완전한 계급적 별개성을 지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철저한 민주주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인민, 곧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군주제와 귀족을 “평민식으로” 처리하기를 바란다. 자유의 적을 가차 없이 섬멸하고, 그들의 저항을 힘으로 짓누르고, 농노제와 아시아적 야만과 인간 모욕의 저주받은 유산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꼭 1793년의 자코뱅을 흉내 내고 그들의 견해, 강령, 구호, 행동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낡은 강령이 아니라 새 강령, 곧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최소 강령이 있다. 우리에게는 새 구호, 곧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가 있다. 우리가 혁명의 참된 승리를 보게 될 때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는 완전한 사회주의 변혁을 지향하는 노동계급 정당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새로운 행동 방식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비교로써 다만 다음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20세기의 선진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 곧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8세기의 선진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 곧 지롱드파와 자코뱅파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두 날개(기회주의적 날개와 혁명적 날개)로 나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이 완전히 승리할 때에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불철저한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에서 손이 묶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때에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 “녹아 버리지” 않고 혁명 전체에 자신의 프롤레타리아적, 더 정확히 말해 프롤레타리아·농민적 도장을 찍을 것이다.

한마디로, 불철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손이 묶이지 않으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농민을 혁명적 자각에까지 끌어올리고, 농민의 진격을 지도하며, 그리하여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자립적으로 실행할 만큼 충분히 의식적이고 강해야 한다.

불철저한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에서 손이 묶인 채 남을 위험이라는, 신이스크라파가 그토록 서툴게 풀어 놓은 문제는 이렇게 서 있다. 부르주아지는 언제나 불철저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선 없는 인민의 벗으로 여길 수 있게 해 줄 조건이나 조항을 그려 내려는 시도[11]만큼 순진하고 부질없는 것은 없다. 민주주의를 위한 철저한 투사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하는 투사가 될 수 있는 것은 농민 대중이 그 혁명 투쟁에 합류한다는 조건에서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럴 힘이 모자란다면, 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 혁명의 선두에 서서 그 혁명에 불철저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줄 것이다. 이를 막을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 말고는 없다.

이리하여 우리는 바로 신이스크라파의 전술이 그 객관적 의의로 보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롭게 한다는 의심할 바 없는 결론에 이른다. 국민투표와 합의 원칙과 당 문헌의 당으로부터의 분리에까지 이르는 조직적 산만함의 설교, 무장봉기 과제의 경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군주주의 부르주아지의 전 인민적 정치 구호의 혼동,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의 조건 왜곡, 이 모든 것을 합치면 바로 혁명의 순간의 추수주의 정책이 된다. 그 정책은 승리로 가는 유일한 길을 가리키고 인민의 모든 혁명적·공화주의적 요소를 프롤레타리아트의 구호 아래 끌어모으는 대신, 프롤레타리아트를 헷갈리게 하고, 흩뜨리고, 그 의식에 혼란을 들여오며, 사회민주당의 전술을 깎아내린다.


결의를 분석해서 얻은 이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 같은 문제에 다른 쪽에서 다가가 보자. 첫째로, 그루지야의 『사회민주주의자』에 글을 쓴 소박하고 솔직한 멘셰비키가 신이스크라파의 전술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보자. 둘째로, 지금의 정치 정세에서 신『이스크라』의 구호를 실제로 누가 이용하는지 보자.

10. “혁명 코뮌”과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

신이스크라파의 협의회는 신『이스크라』가 말끝에 이른 무정부주의적 입장(“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가 아니라 오직 “아래로부터”)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봉기는 인정하면서 승리와 임시혁명정부 참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터무니없음이 너무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의는 마르티노프와 마르토프가 내린 문제의 답에 단서와 제한을 달았다. 결의의 다음 부분에 적힌 이 단서들을 살펴보자.

“이 전술(‘극단적 혁명 야당으로 남는다’)은 물론, 오로지 봉기의 확산을 돕고 정부를 교란하려는 이익을 위해 이런저런 도시, 이런저런 지역에서 권력을 부분적·일시적으로 장악하고 혁명 코뮌을 세우는 것이 합목적적일 수 있음을 조금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아래로부터만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행동도 허용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스크라』(제93호)에 실린 L. 마르토프의 그 유명한 문예란 글이 내세운 명제는 뒤집히고, “아래로부터”만이 아니라 “위로부터”도라는 신문 『전진』의 전술이 옳다고 인정된다는 뜻이다.

나아가 권력 장악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 따위라 하더라도) 분명히 사회민주당 하나만의, 프롤레타리아트 하나만의 참여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것은 민주주의 혁명에 이해관계가 있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아니라는 데서 나온다. 이것은 검토 중인 결의의 첫머리에서 말하듯이 봉기가 “인민의” 봉기라는 데서, 거기에 “비프롤레타리아 집단”(봉기에 관한 협의회 결의의 표현), 곧 부르주아지도 참여한다는 데서 나온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가 소부르주아지와 함께 임시혁명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이라는 원칙은 『전진』이 바라던 대로 협의회에 의해 배 밖으로 내던져졌다는 뜻이다. “배신”은 그것을 이루는 행위가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며 지역적인 것 따위라고 해서 배신이 아니게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임시혁명정부 참여를 저속한 조레스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는 생각도 『전진』이 바라던 대로 협의회에 의해 배 밖으로 내던져졌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 권력이 여러 도시가 아니라 한 도시에, 여러 지역이 아니라 한 지역에 미친다고 해서, 또 그 정부가 무엇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정부가 아니게 되지 않는다. 이리하여 신『이스크라』가 내놓으려 했던 원칙적 문제 설정은 협의회에 의해 버려졌다.

이제 원칙적으로 허용된 혁명정부 수립과 거기 참여하는 일에 협의회가 다는 제한이 합리적인지 보자. “일시적(эпизодический)”이라는 개념이 “임시적(временный)”이라는 개념과 무엇이 다른지 우리는 모른다. 여기서는 외국어로 된 “새” 낱말이 분명한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가리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더 깊어” 보이지만 실은 더 어둡고 더 뒤죽박죽일 뿐이다. 도시나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의 “합목적성”은 국가 전체의 임시혁명정부에 참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시들” 가운데에는 1월 9일 사건이 일어난 페테르부르크 같은 곳도 있지 않은가? 지역들 가운데에는 많은 국가보다 더 큰 캅카스도 있지 않은가? (한때 신『이스크라』를 당황하게 했던) 감옥, 경찰, 국고 따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과제가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도시에서라도 “권력을 장악”하면 우리 앞에 닥치지 않겠는가? 물론 힘이 모자라거나 봉기가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거나 그 승리가 결정적이지 못할 때 부분적인 임시혁명정부, 도시 단위의 임시혁명정부 따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그게 여기서 무슨 상관인가? 결의 첫머리에서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승리한 인민 봉기”를 말한 것은 바로 당신들 자신이 아닌가?? 언제부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의와 목표를 흩뜨리고, 그것을 전체적이고 단일하고 온전하고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으로 돌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일을 떠맡게 되었는가? 한 도시에서 “권력 장악”을 상정하면서 당신들 스스로 “봉기의 확산”을 말한다. 감히 생각하건대 다른 도시로의 확산이겠지? 바라건대 모든 도시로의 확산이겠지? 여러분, 당신들의 결론은 당신들의 전제와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우연적이며, 모순되고 뒤죽박죽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는 임시혁명정부 일반의 문제에 빈틈없고 분명한 답을 주었다. 이 답은 모든 부분적 임시정부도 포괄한다. 그러나 협의회의 답은 문제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제멋대로 떼어 냄으로써 문제 전체를 (헛되이) 피해 가고 혼란을 들여올 뿐이다.

“혁명 코뮌”이란 무슨 뜻인가? 이 개념은 “임시혁명정부”와 다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협의회 참가자 여러분은 이것을 스스로도 모른다. 흔히 그렇듯이 혁명적 사고의 혼란은 그들을 혁명적 미사여구로 이끈다. 그렇다, 사회민주당 대표자들의 결의에 “혁명 코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혁명적 미사여구이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지나간 과거의 “매혹적인” 용어 뒤에 미래의 과제를 숨기는 이런 미사여구를 여러 번 비난했다. 역사에서 한 역할을 한 용어의 매혹은 이런 경우 공허하고 해로운 금박 장식, 딸랑이로 바뀐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인민 전체에게 다음에 대한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은 생각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임시혁명정부의 수립을 바라는가? 이미 시작된 인민 봉기가 승리로 끝나 우리가 권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우리는 바로 내일 어떤 개혁을 실행할 것인가? 정치 지도자들 앞에 놓인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는 이 개혁들의 완전한 강령, 곧 우리 당의 최소 강령을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들에 더없이 분명하게 답한다. 그런데 “코뮌”이라는 말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무슨 먼 종소리로, 아니면 빈 소리로 머리만 어지럽힐 뿐이다. 이를테면 1871년 파리 코뮌이 우리에게 소중할수록, 그 오류와 그 특수한 조건을 따져 보지 않고 그것을 끌어대는 것으로 때우는 것은 그만큼 더 용납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엥겔스가 비웃은 블랑키주의자들, 곧 (1874년 그들의 “선언”에서) 코뮌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에 머리를 조아린 블랑키주의자들의 터무니없는 본보기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협의회 참가자에게 결의에 언급된 이 “혁명 코뮌”에 관해 묻는다면 그는 무어라 답할 것인가? 그는 역사에서 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그때 민주주의 변혁과 사회주의 변혁의 요소를 구별할 줄도 몰랐고 구별할 수도 없었던 노동자 정부, 공화국을 위한 투쟁의 과제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제를 뒤섞은 노동자 정부, 베르사유를 향한 힘찬 군사적 공세라는 과제를 풀지 못한 노동자 정부, 잘못하여 프랑스 은행을 장악하지 않은 노동자 정부 따위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들이 답하면서 파리 코뮌을 끌어대든 다른 어떤 코뮌을 끌어대든 우리의 답은 이렇다. 그것은 우리의 정부가 그래서는 안 되는 그런 정부였다. 참 훌륭한 답이다! 당의 실천 강령은 침묵으로 지나치고 결의에서 엉뚱하게 역사 강의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글자만 아는 학자의 공리공론과 혁명가의 무력함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씌우려다 실패한 오류, 곧 어느 “코뮌”도 구별하지 못했던 민주주의 변혁과 사회주의 변혁의 혼동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토록 엉뚱하게 코뮌이라 불린) 임시정부의 목적으로는 “오로지” 봉기의 확산과 정부의 교란이 내세워진다. 이 “오로지”는 낱말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다른 모든 과제를 배제하며, “오직 아래로부터”라는 터무니없는 이론의 트림이다. 다른 과제들을 이렇게 배제하는 것은 또다시 근시안이며 생각이 모자란 것이다. “혁명 코뮌”, 곧 한 도시에서라도 서는 혁명 권력은 (일시적으로라도, “부분적·일시적으로”라도) 모든 국가 업무를 피할 수 없이 수행해야 할 것이며, 여기서 머리를 날개 밑에 숨기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이 권력은 8시간 노동일을 법으로 정하고, 공장에 대한 노동자 감독을 세우고, 무상 보통교육을 시행하고, 법관 선거제를 도입하고, 농민위원회를 세우는 따위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일련의 개혁을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 개혁들을 “봉기의 확산을 돕는 일”이라는 개념 아래 묶는 것은 말장난을 하는 것이며, 완전한 명확성이 필요한 곳에서 일부러 모호함을 키우는 것이다.

신이스크라파 결의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 당 안에서 되살아난 “경제주의”의 원칙적 경향을 비판할 새 재료를 주지는 않지만, 위에서 말한 것을 조금 다른 쪽에서 보여 준다.

그 부분은 이렇다.

“단 하나의 경우에만 사회민주당은 스스로 발의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되도록 오래 그것을 자기 손에 쥐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바로 혁명이 사회주의 실현의 조건이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서유럽 선진국들로 번지는 경우다. 이 경우 러시아 혁명의 제한된 역사적 범위는 크게 넓어질 수 있고, 사회주의적 개조의 길에 나설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혁명기 내내 혁명의 흐름 속에서 바뀌어 가는 모든 정부에 대해 극단적 혁명 야당의 위치를 사회민주당에 지켜 준다는 계산 위에서 자기 전술을 세움으로써, 사회민주당은 정부 권력이 자기 손에 떨어지는(??) 경우 그것을 활용할 준비도 가장 잘 할 수 있다.”

여기서 기본 생각은 『전진』이 여러 번 정식화한 바로 그것이다. 『전진』은 우리가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당의 완전한 승리, 곧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를 (마르티노프가 두려워하듯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승리는 우리에게 유럽을 일으켜 세울 가능성을 줄 것이고, 유럽의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멍에를 벗어던진 뒤 이번에는 우리가 사회주의 변혁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 신이스크라파의 서술에서 얼마나 나빠졌는지 보라. 세부에는 머물지 않겠다. 권력 장악을 해로운 전술로 여기는 의식적 정당의 손에 권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에도,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조건은 어느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성숙했다는 점에도, 우리 당 강령은 어떤 사회주의적 개조도 모르고 오직 사회주의 변혁만을 안다는 점에도 머물지 않겠다. 『전진』의 생각과 결의의 주된 기본적 차이를 보자. 『전진』은 러시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능동적 과제를 가리켰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고, 이 승리를 이용해 혁명을 유럽으로 옮겨 가라는 것이다. 결의는 우리의 (신이스크라파식이 아닌 의미의) “결정적 승리”와 유럽의 혁명 사이의 이 연관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래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나 그 승리의 전망이 아니라 가능성 일반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혁명이 번진다면”… 『전진』은 주어진 사회 발전 단계에서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민주주의적 전제로서 먼저 실현해야 할 것을 헤아리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정부 권력을 활용”할 수 있고 활용해야 하는 방식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곧바로, 분명하게 가리켰다. 그리고 이 지적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의 결의에 들어갔다. 결의는 여기서도 절망적으로 꽁무니에서 끌려가며 “활용할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할 뿐,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준비하는지, 어떤 활용인지는 말하지 못한다. 예컨대 우리는 신이스크라파가 당에서의 지도적 지위를 “활용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그들이 쌓은 그런 활용의 경험, 그들의 준비가 가능성이 현실로 바뀌리라는 희망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진』은 “권력을 자기 손에 쥘” 실재적 “가능성”이 정확히 무엇에 있는지를 정확히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에, 반혁명의 모든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그들의 공동의 대중적 힘에, 민주주의적 개혁에 관한 그들의 이해관계가 피할 수 없이 일치한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의 결의는 여기서도 아무런 적극적인 것을 주지 않고 문제를 피해 갈 뿐이다. 러시아에서 권력을 쥘 가능성은 마땅히 러시아 자체의 사회 세력 구성에 의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변혁의 조건에 의해 정해져야 하지 않는가.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면(혁명이 유럽으로 옮겨 가는 것과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는 것 사이에는 아직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다)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필사적인 반혁명 투쟁이 일어날 것이 아닌가. 신이스크라파의 결의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의 결의가 그 의의를 평가한 이 반혁명 세력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공화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 말고 농민에게도 기댈 수 없다면, “권력을 쥐는” 일은 가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가망 없지 않다면, “차리즘에 대한 혁명의 결정적 승리”가 그런 가능성을 연다면, 우리는 그 가능성을 가리키고, 그것을 현실로 바꾸자고 적극적으로 호소하며, 혁명이 유럽으로 옮겨 가는 경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렇게 옮겨 가게 하기 위해서도 실천적 구호를 내놓아야 한다. 사회민주당의 추수주의자들에게 “러시아 혁명의 제한된 역사적 범위”를 끌어대는 것은 이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와 이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맡는 선진적 역할에 대한 이해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가릴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라는 구호에 대한 반론 가운데 하나는, 독재는 “단일한 의지”를 전제하는데(『이스크라』 제95호)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부르주아지 사이에는 단일한 의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반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일한 의지”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기초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단일하고 다른 면에서는 단일하지 않은 의지가 있다. 사회주의 문제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단일성이 없다고 해서 민주주의 문제와 공화국을 위한 투쟁에서 의지의 단일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잊는 것은 민주주의 변혁과 사회주의 변혁 사이의 논리적·역사적 차이를 잊는 것이다. 이것을 잊는 것은 민주주의 변혁의 전 인민적 성격을 잊는 것이다. “전 인민적”이라면, 그 변혁이 전 인민의 필요와 요구를 실현하는 한에서 바로 “의지의 단일성”이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범위를 넘어서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부르주아지 사이의 의지의 단일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 사이의 계급투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토대 위에서 이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인민의 투쟁이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에도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가 있다. 그 과거는 전제정, 농노제, 군주제, 특권이다. 이 과거와의 투쟁에서, 반혁명과의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의지의 단일성”은 가능하다. 이해의 단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미래는 사적 소유에 맞선 투쟁, 고용주에 맞선 임금노동자의 투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여기서는 의지의 단일성이 불가능하다[12]. 여기서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전제정에서 공화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소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물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는 과거의 요소와 미래의 요소가 얽히고, 이 길과 저 길이 섞인다.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에 맞선 그 투쟁은 전제정 아래에도 있고, 농노제 아래에서조차 싹튼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발전의 큰 시기들을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구분하는 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맞세우며, 모두 그 둘을 가장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무조건 주장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두 변혁의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요소들이 얽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에 일련의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적 시도가 없었던가? 그리고 장래의 유럽 사회주의 혁명에도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마저 해야 할 일이 아직 아주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자는 가장 민주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에 맞서 사회주의를 위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벌일 계급투쟁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다. 여기서 사회민주당이 따로 서 있는 자립적이고 엄격히 계급적인 정당이어야 한다는 무조건적 의무가 나온다. 여기서 부르주아지와 “함께 치는” 것은 일시적 성격을 지니며 “동맹자를 적처럼” 엄중히 감시할 의무가 있다는 것 따위가 나온다. 이 모든 것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현재에 대해 긴요한 과제, 비록 지나가는 일시적인 과제라 할지라도 그것을 잊거나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반동적일 것이다. 전제정과의 투쟁은 사회주의자의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과제다. 그러나 이 과제를 조금이라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반동에 봉사하는 것과 같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는 의심할 바 없이 사회주의자의 지나가는 일시적 과제일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에 이 과제를 무시하는 것은 곧바로 반동적이다.

구체적인 정치 과제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모든 것은 흐르며, 모든 것은 변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강령에 공화국 요구를 넣지 않는다. 그곳의 정세는 이 문제를 실천에서 사회주의 문제와 떼어 놓기 어려운 그런 것이다(그렇지만 독일에 관해서도 엥겔스는 1891년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에 대한 의견에서 공화국과 공화국을 위한 투쟁의 의의를 낮추어 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에서는 강령과 선동에서 공화국 요구를 빼자는 문제조차 생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공화국 문제와 사회주의 문제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화국 문제를 따로 첫째 자리에 놓지 않는 1898년의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놀라움도 비난도 사지 않는다. 1848년에 공화국 문제를 그늘에 묻어 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가 있었다면 그는 혁명의 명백한 배신자였을 것이다. 추상적 진리란 없다.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

때가 올 것이다. 러시아 전제정과의 투쟁이 끝나고, 러시아에서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가 지나갈 것이다. 그때에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의지의 단일성”이니 민주 독재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우스울 것이다. 그때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 독재를 곧바로 생각하고 그에 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선진 계급의 정당은 차리즘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위해 가장 힘차게 힘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결정적 승리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와 다른 것이 아니다.

붙임

1) 『이스크라』가 『전진』과 논쟁하면서 무엇보다 엥겔스가 투라티에게 보낸 편지를 끌어댔다는 것을 독자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 편지에서 엥겔스는 (장차)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될 사람에게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엥겔스는 1894년 이탈리아의 정치 정세에 관해 다가오는 이탈리아 혁명은 소부르주아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혁명이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이스크라』는 『전진』이 엥겔스가 세운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나무랐다. 이 비난은 옳지 않다. 『전진』(제14호)은 19세기 혁명의 세 주요 세력의 차이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이 대체로 옳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낡은 질서, 곧 전제정, 봉건제, 농노제에 맞서 1) 자유주의적 대부르주아지, 2) 급진적 소부르주아지, 3) 프롤레타리아트가 나선다. 첫째는 기껏해야 입헌군주제를 위해, 둘째는 민주공화국을 위해, 셋째는 사회주의 변혁을 위해 싸운다. 완전한 민주주의 변혁을 위한 소부르주아적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적 투쟁과 혼동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에게 정치적 파산을 가져온다. 마르크스의 이 경고는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혁명 코뮌”이라는 구호는 잘못되었다. 역사에 알려진 코뮌들은 바로 민주주의 변혁과 사회주의 변혁을 뒤섞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의 구호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 독재는 이 오류를 완전히 막아 준다. 우리의 구호는 오직 민주주의 변혁의 테두리를 직접 벗어날 수 없는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무조건 인정하면서, 이 주어진 변혁을 앞으로 밀고 나간다. 이 변혁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장 이로운 형태를 주려고 힘쓴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후 투쟁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민주주의 변혁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힘쓴다.

주석

  1. 이 결의의 전문은 이 소책자 400쪽, 403~404쪽, 407쪽, 431쪽, 433~434쪽에 인용한 대목들로 독자가 복원할 수 있다(1907년판에 붙인 저자 주). 옮긴이: 이 쪽수는 1907년 문집 『12년간』의 쪽수다. 이 문헌집 첫째 글에 그 대목들을 모아 결의 전문으로 실었다. ↩
  2. 이 결의의 전문을 싣는다. “대회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안에 ‘경제주의’와 싸우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와 친족 관계에 있는 경향들이 정도와 측면을 달리하며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이 경향들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의식적 요소의 의의를 낮추어 자연발생적 요소에 종속시키려는 공통된 경향을 특징으로 한다. 이 경향의 대표자들은 조직 문제에서 이론상으로는 당의 계획적으로 정비된 활동에 맞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조직’ 원칙을 내세우고, 실천에서는 많은 경우 당 규율을 회피하는 체계를 따르며, 또 다른 경우에는 당의 가장 덜 의식적인 부분을 향해 러시아 현실의 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선거 원칙의 폭넓은 적용을 설교함으로써 현재 유일하게 가능한 당 결속의 기초를 허물려고 한다. 전술 문제에서 그들은 당 활동의 폭을 좁히려는 경향을 드러내며,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들에 대해 완전히 독자적인 당 전술을 취하는 데 반대하고, 우리 당이 인민 봉기에서 조직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과 바람직함에 반대하며, 어떤 조건에서든 당이 임시 민주혁명정부에 참여하는 데 반대한다.
    대회는 모든 당원에게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런 부분적 일탈에 맞서 어디서나 힘찬 사상 투쟁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견해에 어느 정도 기울어 있는 사람들도 당 대회와 당 규약을 인정하고 당 규율에 전적으로 복종한다는 필수 조건 아래에서는 당 조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1907년판에 붙인 저자 주)
    ↩
  3. 변혁 전야 정부의 전술에 대한 태도에 관한 이 결의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지금의 혁명기에 자기를 지키려고 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 요소를 겨냥한 평소의 탄압을 강화하는 한편, 1) 양보와 개혁 약속으로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타락시키고 그리하여 혁명 투쟁에서 떼어 놓으려 하고, 2) 같은 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위원회와 협의회에 대표를 뽑으라고 권하는 데서 시작해 이른바 젬스키 소보르 같은 인민 대표제의 희화적 형태를 만들어 내는 데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선적 양보 정책에 사이비 민주주의의 옷을 입히며, 3) 이른바 검은 백인대를 조직하고, 인민 가운데 반동적이거나 의식이 없거나 인종적·종교적 증오에 눈먼 온갖 요소를 혁명에 맞서 부추기고 있다. 이를 고려하여,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는 모든 당 조직에 다음을 제안하기로 결정한다.
    가) 정부 양보의 반동적 목적을 폭로하면서, 선전과 선동에서 한편으로는 그 양보가 강요된 것이라는 성격을, 다른 한편으로는 전제정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만족시킬 개혁을 내놓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
    나) 선거 선동을 이용하여 정부의 이런 조치들이 지닌 참뜻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권에 기초한 제헌의회를 혁명적 방법으로 소집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필요함을 입증할 것.
    다) 8시간 노동일과 그 밖에 당면한 노동계급의 요구를 혁명적 방법으로 즉시 실현하도록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할 것.
    라) 정부가 지휘하는 검은 백인대와 온갖 반동 세력의 행동에 맞서 무장 반격을 조직할 것.”(1907년판에 붙인 저자 주)
    ↩
  4. 제네바의 신문 『전진』은 1905년 1월 당의 볼셰비키 쪽 기관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1월부터 5월까지 18호가 나왔다. 5월부터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의 결정에 따라 『전진』 대신 『프롤레타리』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기관지로 나오기 시작했다(이 대회는 5월에 런던에서 열렸다. 멘셰비키는 나오지 않고 제네바에서 자기들의 “협의회”를 열었다). (1907년판에 붙인 저자 주) ↩
  5. 옮긴이: 젬스트보 온건파 지도자 드미트리 시포프의 이름에서 나온 말. 차르의 전제권을 건드리지 않는 자문 기관 수준의 대의제를 가리킨다. ↩
  6. “사회혁명당”은 그런 정당의 맹아라기보다는 테러리스트 지식인 그룹이다. 다만 이 그룹의 활동이 지니는 객관적 의의는 바로 혁명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부르주아지의 과제를 실현하는 데로 귀결된다. ↩
  7. 농민에 관한 특별한 구호는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따로 결의를 두어 다루었다. ↩
  8. 옮긴이: 원문 «страха ради иудейска»는 「요한복음」 20장 19절의 교회 슬라브어 구절로, 러시아어에서 “겁이 나서”를 뜻하는 관용구로 쓰인다. ↩
  9. 『해방』 제71호, 337쪽, 주 2를 보라. ↩
  10. 원문은 영어 “last but not least”. 순서로는 마지막이지만 중요성으로는 마지막이 아니라는 뜻이다. ↩
  11. 스타로베르가 제3차 당대회에서 폐기된 자기 결의에서 하려 했고, 협의회가 그에 못지않게 서툰 결의에서 하려는 것처럼. ↩
  12. 자유 아래에서 한층 더 넓고 빠르게 진행될 자본주의의 발전은 의지의 단일성을 피할 수 없이 곧 끝장낼 것이다. 반혁명과 반동이 더 빨리 분쇄될수록 그만큼 더 빨리. ↩

트로츠키, 『결산과 전망』 (1906, 발췌)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란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사회 세력들이 공공연히 힘을 겨루는 것이다.

국가는 자기 목적이 아니다. 국가는 지배적 사회 세력의 손에 쥐어진 작업 기계일 뿐이다. 모든 기계가 그렇듯이 국가에도 동력 장치, 전동 장치, 작동 장치가 있다. 동력은 계급 이익이다. 그 장치는 선동, 언론, 교회와 학교의 선전, 정당, 거리 집회, 청원, 봉기다. 전동 장치는 카스트, 왕조, 신분 또는 계급의 이익을 신의 의지(절대주의)나 국민의 의지(의회주의)라는 모습으로 꾸민 입법 조직이다. 마지막으로 작동 장치는 경찰을 거느린 행정, 감옥을 거느린 법원, 군대다.

국가는 자기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사회관계를 조직하고, 해체하고, 재조직하는 가장 큰 수단이다.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국가는 깊은 변혁의 지렛대가 될 수도, 조직된 정체(停滯)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름값을 하는 모든 정당은 정부 권력을 장악해 국가를 자기가 그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에 봉사하게 하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당연히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지향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자라고 강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독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이다. 그러나 권력이 노동계급의 손에 넘어가는 날과 시간은 생산력의 수준에 직접 달려 있지 않고, 계급투쟁의 관계, 국제 정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 주도력, 전투 태세 같은 일련의 주체적 요인에 달려 있다.

경제적으로 더 뒤떨어진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적으로 앞선 나라에서보다 먼저 권력을 잡을 수 있다. 1871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부르주아적인 파리에서 의식적으로 공적 업무의 관리를 손에 넣었다. 비록 두 달 동안뿐이었지만.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의 대자본주의 중심지에서는 단 한 시간도 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그 나라의 기술적 힘과 수단에 무슨 자동적으로 의존한다는 생각은 극단까지 단순화된 “경제적” 유물론의 편견이다. 그런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자기의 국가 경영 천재를 온전히 펼쳐 보일 기회를 얻기도 전에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넘어갈 수 있는(혁명이 승리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르크스는 미국 신문 『트리뷴』에 1848~1849년 혁명과 반혁명을 결산하면서 이렇게 썼다.

“독일의 노동계급은 사회적·정치적 발전에서 독일 부르주아지가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지에게 뒤처진 것과 똑같은 정도로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계급에게 뒤처져 있다. 그 주인에 그 하인이다. 수가 많고 강하며 단결되고 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발전은, 수가 많고 부유하며 단결되고 강력한 부르주아지가 존재하는 조건의 발전과 나란히 간다. 노동계급의 운동 자체는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 특히 그 가장 진보적인 부분인 대산업가들이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국가를 자기 요구에 맞게 개조하기 전에는 결코 자립적이 되지 않으며 순전히 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을 띠지 않는다. 그러나 일이 거기에 이르자마자 기업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의사일정에 오르고, 그것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된다…”[1]

독자는 아마 이 인용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 글귀에 매달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것을 자주 남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을 러시아의 노동자 정부라는 생각을 반박할 수 없이 무너뜨리는 논거로 내세웠다. “그 주인에 그 하인이다.” 러시아의 자본가 부르주아지가 국가권력을 손에 넣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면, 노동자 민주주의, 곧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엇보다 분석의 방법이다. 텍스트의 분석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분석이다. 러시아에 적용할 때,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의 허약함이 반드시 노동운동의 허약함을 뜻한다는 것이 옳은가? 러시아에 적용할 때, 부르주아지가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전에는 자립적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옳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만 해도, 마르크스의 역사적으로 상대적인 언급을 초역사적(supra-historique) 정리(定理)로 바꾸려는 시도 뒤에 얼마나 가망 없는 사고의 형식주의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의 공장 공업 발전은 산업 호황기에 “미국식” 성격을 띠기는 했지만, 우리 자본주의 공업의 실제 규모는 미국의 공업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경제활동 인구의 16.6퍼센트인 500만 명이 가공 공업에 종사한다. 미국의 해당 숫자는 600만 명, 22.2퍼센트다. 이 숫자만으로는 아직 비교적 많은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러시아 인구가 미국 인구의 거의 두 배라는 것을 떠올리면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공업의 실제 규모를 알려면, 1900년에 미국의 공장과 큰 수공업 작업장들이 250억 루블어치의 상품을 시장에 내놓은 반면, 러시아는 같은 기간에 자기 공장에서 25억 루블어치도 못 되는 상품을 생산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2].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수, 그 집중도, 그 문화 수준, 그 정치적 의의는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 공업의 발전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의존은 직접적이지 않다. 한 나라의 생산력과 그 계급들의 정치적 힘 사이에는 어느 순간에나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의 여러 사회정치적 요인이 끼어들며, 그 요인들이 경제 관계의 정치적 표현을 굴절시키고 심지어 완전히 바꿔 놓는다. 미국 공업의 생산력이 우리의 열 배인데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역할, 자기 나라 정치에 대한 영향력, 머지않아 세계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과 의의보다 비교도 안 되게 크다.

카우츠키는 최근에 쓴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한 저작에서,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힘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발전 수준 사이에 곧바르고 직접적인 대응은 없다고 지적한다.

“서로 정반대인 두 나라가 있다.” 그는 말한다. “한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요소 가운데 하나가, 다른 나라에서는 다른 하나가 지나치게, 곧 그 생산양식의 높이에 걸맞지 않게 발달했다. 미국에서는 자본가계급이, 러시아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렇다. 미국에서는 다른 어디보다 더 큰 근거를 가지고 자본의 독재를 말할 수 있다. 반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러시아에서만큼 큰 의의를 얻은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이 의의는 커져야 하고 틀림없이 커질 것이다. 이 나라는 최근에야 현대의 계급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최근에야 이 투쟁에 얼마간의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어느 정도 러시아에서 자기의 미래를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카우츠키는 말을 잇는다. “참으로, 자본의 조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항거로 나타나는 한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여 줄 것이 바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은 아주 기이한 일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큰 나라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나라다. 이것은” 카우츠키는 지적한다. “경제 발전이 정치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유물론적 역사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는 계속한다. “이것은 우리의 반대자와 비판자들이 그려 내는 유물론적 역사관, 곧 그것을 연구 방법이 아니라 기성의 틀로만 보는 그런 유물론적 역사관과 모순될 뿐이다.”(K. 카우츠키, 『미국 노동자와 러시아 노동자』, 상트페테르부르크, 1906, 4~5쪽)

이 구절들은 사회관계에 대한 자립적 분석을 살면서 마주칠 모든 경우에 대비해 골라 놓은 텍스트로부터의 연역으로 대신하는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이 명목상의 마르크스주의자들만큼 마르크스주의의 체면을 깎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카우츠키의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는 경제 영역에서는 비교적 낮은 자본주의 발전 수준으로, 정치 영역에서는 자본가 부르주아지의 보잘것없음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함으로 특징지어진다. 그 결과 “러시아 전체의 이익을 위한 투쟁은 지금 그 나라에 있는 유일한 강한 계급, 곧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곳에서 거대한 정치적 의의를 지닌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숨통을 조이는 절대주의라는 문어로부터 나라를 해방하려는 투쟁이 절대주의와 산업 노동계급의 일대일 결투가 되었다. 그 결투에서 농민은 상당한 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지도적 역할을 할 능력은 없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의 “하인”이 그 “주인”보다 먼저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권리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가?


정치적 낙관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자기의 힘과 혁명적 정세의 유리함을 과장해서 평가하고, 주어진 힘의 관계로는 풀 수 없는 과제를 스스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처지의 논리가 우리를 피할 수 없이 그 너머로 내던질 한계 안에 자기의 혁명적 과제를 낙관적으로 가둘 수도 있다.

우리 혁명은 그 객관적 목적으로 보아, 따라서 그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보아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주장으로 혁명의 모든 문제의 테두리를 가둘 수 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 부르주아 혁명의 주된 행위자가 프롤레타리아트이며, 혁명의 전 과정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권력으로 밀어붙인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을 수 있다.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는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일단 권력을 손에 넣으면 가장 필사적인 저항 없이는 그것을 내주지 않을 것이며, 무장한 손에 빼앗기기 전에는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잊을 수 있다.

러시아의 사회적 조건은 아직 사회주의 경제를 위해 성숙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면서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처지의 모든 논리에 따라 국가의 계산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쪽으로 피할 수 없이 밀려가리라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다.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일반적인 사회학적 규정은 주어진 부르주아 혁명의 역학이 내놓는 정치적·전술적 과제, 모순, 어려움을 조금도 풀어 주지 않는다.

자본의 지배를 객관적 과제로 삼았던 18세기 말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서 상퀼로트의 독재가 가능했다. 이 독재는 그저 스쳐 가는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후 한 세기 전체에 도장을 찍었다. 그것도 그 독재가 부르주아 혁명의 좁은 테두리에 부딪혀 아주 빨리 무너졌는데도 그랬다.

그 직접적인 객관적 과제로 보아 역시 부르주아 혁명인 20세기 초의 혁명에서는, 가까운 전망 속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의 필연성, 또는 적어도 그 개연성이 그려지고 있다. 이 지배가 몇몇 현실주의 속물들이 바라는 대로 그저 스쳐 가는 “에피소드”가 되지 않도록,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돌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미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에 부딪혀 피할 수 없이 부서져야 하는가, 아니면 주어진 세계사적 토대 위에서 그 좁은 테두리를 깨뜨리고 승리의 전망을 열 수 있는가? 그리고 여기서 우리에게 전술적 질문이 나온다. 혁명의 발전이 우리를 이 단계에 가까이 데려가는 만큼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동자 정부를 맞으러 나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은 정치권력을 부르주아 혁명이 노동자의 머리 위에 쏟아부으려 하는 불행, 노동자들이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불행으로 보아야 하는가?

“현실주의” 정치가 폴마르가 일찍이 1871년의 코뮌 전사들에 관해 한 말, 곧 그들이 권력을 손에 넣는 대신 잠자리에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혁명이 결정적으로 승리하면 권력은 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 계급,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넘어간다. 물론 곧바로 덧붙이자면, 이것이 비프롤레타리아 사회 집단의 혁명적 대표자들이 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조금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 한다. 건전한 정책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도시 소시민층, 인텔리겐치아, 농민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을 권력에 참여시키게 할 것이다. 문제는 오로지 누가 정부 정책의 내용을 정하고, 누가 그 안에서 동질적인 다수를 결집하느냐에 있다. 그 다수의 구성으로 보아 노동자 정부인 정부에 인민의 민주적 계층의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것과, 특정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이 다소 명예로운 인질로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자유주의적 자본가 부르주아지의 정책은 그 모든 동요와 후퇴와 배신 속에서도 아주 분명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은 그보다 더 분명하고 완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간에 있고 정치적으로 유연한 인텔리겐치아의 정책, 사회적으로 이질적이고 중간에 있으며 원시적인 농민의 정책, 마찬가지로 개성이 없고 중간에 있으며 정치적 전통이 전혀 없는 도시 소시민층의 정책, 이 세 사회 집단의 정책은 전혀 분명하지 않고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며 가능성으로, 따라서 뜻밖의 일로 가득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가 없는 혁명적 민주주의 정부를 상상해 보려고만 해도 그런 상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가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사회민주당이 혁명정부 참여를 거부한다면 혁명정부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해질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혁명의 대의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부 참여는 지배적이고 지도적인 참여로서만 객관적으로 가장 있을 법하고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물론 이 정부를 프롤레타리아트, 농민, 인텔리겐치아의 독재라고 부르거나, 노동계급과 소부르주아지의 연립정부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정부 안에서, 그리고 정부를 통해 나라에서 헤게모니는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가 노동자 정부를 말할 때, 우리는 그 헤게모니가 노동계급에게 있을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자코뱅 독재의 기관이던 국민공회는 결코 자코뱅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안에서 자코뱅은 소수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공회 바깥의 상퀼로트의 영향력과 나라를 구하려면 단호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권력을 자코뱅의 손에 넘겼다. 그리하여 국민공회는 형식상으로는 자코뱅, 지롱드파, 그리고 거대한 늪지파로 이루어진 국민 대표 기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코뱅의 독재였다.

우리가 노동자 정부를 말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노동자 대표들이 차지하는 지배적이고 지도적인 위치를 뜻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토대를 넓히지 않고서는 자기 권력을 굳힐 수 없을 것이다.

근로 대중의 많은 계층, 특히 농촌의 계층은 혁명의 전위인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의 키를 잡은 뒤에야 처음으로 혁명에 끌려 들어오고 정치 조직을 갖게 될 것이다. 혁명적 선동과 조직은 국가의 수단을 빌려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법권 자체가 인민 대중을 혁명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때 부르주아 혁명의 모든 무게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지우는 우리 사회역사적 관계의 성격은 노동자 정부에게 엄청난 어려움을 안겨 줄 뿐 아니라, 적어도 그 존재의 첫 시기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이점도 줄 것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관계에서 드러날 것이다.

1789~1793년과 1848년의 혁명에서 권력은 먼저 절대주의에서 부르주아지의 온건한 요소에게 넘어갔다. 이 부르주아지는 혁명적 민주주의가 권력을 손에 넣거나 넣으려 하기 전에 농민을 해방했다(어떻게 해방했느냐는 다른 문제다). 해방된 농민은 “도시 사람들”의 정치적 기획, 곧 혁명의 이후 진행에 대한 관심을 모두 잃었고, “질서”의 밑바탕에 꼼짝하지 않는 지층으로 드러누워 혁명을 카이사르주의적 반동이나 예로부터의 절대주의적 반동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러시아 혁명은 민주주의의 가장 원시적인 과제를 풀 수 있는 어떤 부르주아 입헌 질서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비테나 스톨리핀 같은 관료 개혁가들로 말하자면, 그들의 “개명한” 노력은 모두 그들 자신의 생존 투쟁 때문에 무너진다. 그 결과 농민의 가장 기본적인 혁명적 이익의 운명은, 심지어 신분으로서 농민 전체의 운명조차, 혁명 전체의 운명, 곧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과 묶인다.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는 농민 앞에 해방자 계급으로 나타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민주적 평등, 자유로운 자치, 조세 부담 전체를 유산계급에게 옮기는 것, 상비군을 무장한 인민 속에 해소하는 것, 교회에 바치던 의무적 공납을 없애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농민이 토지 관계에서 벌인 모든 혁명적 재편(장악)을 인정하는 것도 뜻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재편을 농업 분야에서 국가가 취할 이후 조치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러시아 농민은 첫 시기, 가장 어려운 시기 동안 프롤레타리아 체제(“노동자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에, 새 소유자들에게 총검의 힘으로 그들 토지의 불가침을 보장해 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사 체제를 유지하는 데 프랑스 농민이 가졌던 것 못지않은 관심을 어쨌든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농민의 지지를 얻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 아래 소집된 인민 대표 기관이 프롤레타리아트 지배의 민주주의적 형식화와 다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어쩌면 농민 자신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역사적 경험이 이 가정에 반대한다. 역사적 경험은 농민이 자립적인 정치적 역할을 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3].

자본주의의 역사는 농촌이 도시에 종속되어 온 역사다. 유럽 도시들의 공업 발전은 한때 농업 생산 분야에서 봉건적 관계가 더 존속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농촌 자체는 봉건제를 없애는 혁명적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계급을 내놓지 못했다. 농업을 자본에 종속시킨 바로 그 도시가 혁명적 세력을 내놓았고, 그 세력이 농촌에 대한 정치적 헤게모니를 손에 넣어 국가 관계와 소유 관계에서의 혁명을 농촌으로 넓혔다. 그 뒤의 발전에서 농촌은 결국 자본의 경제적 예속에, 농민은 자본가 정당들의 정치적 예속에 빠진다. 이 정당들은 의회 정치에서 봉건제를 되살려, 농민을 자기의 정치적 영지, 자기의 선거 사냥터로 만든다. 현대 부르주아 국가는 조세와 군국주의로 농민을 고리대 자본의 아가리로 밀어 넣고, 국가의 사제와 국가의 학교와 병영의 타락으로 농민을 고리대 정치의 희생물로 만든다.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모든 혁명적 진지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내주고 있다. 그들은 농민에 대한 혁명적 헤게모니도 내주어야 할 것이다.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넘어감으로써 생겨날 정세에서 농민에게 남는 길은 노동자 민주주의 체제에 합류하는 것뿐이다. 농민이 보통 부르주아 체제에 합류할 때보다 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은 저마다 농민의 표를 손에 넣으면 서둘러 권력을 이용해 농민을 털어 가고 모든 기대와 약속에서 농민을 속이며, 그러다가 자기에게 최악의 경우 다른 자본가 정당에 자리를 내주는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농민에게 기대어 농촌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농민의 정치의식을 키우는 데 모든 힘을 움직일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라는 생각을 어떻게 보는지 분명하다. 핵심은 우리가 그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느냐, 우리가 그런 형태의 정치적 협력을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적어도 곧바르고 직접적인 의미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그렇다. 이런 종류의 연합은 기존 부르주아 정당 가운데 하나가 농민을 장악하거나, 농민이 자립적이고 강력한 정당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가 보여 주려 했듯이 둘 다 불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 체제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적 고양, 전 인민적 열광에 기대어서만 권력에 이를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의 혁명적 대표자로서, 절대주의와 농노제적 야만에 맞선 투쟁에서 인정받은 인민의 지도자로서 정부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으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로운 시대, 곧 혁명적 입법과 적극적 정책의 시대를 열 것이며, 여기서 민족의 인정받은 대변자라는 역할이 계속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남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낡은 체제의 아우게이아스 외양간을 치우고 그 주민들을 쫓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조치들은, 자유주의 거세자들이 인민 대중의 어떤 편견이 얼마나 끈질긴지에 관해 무어라 떠들든 민족 전체의 적극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 청소는 모든 사회관계와 국가 관계의 민주주의적 재조직으로 보완될 것이다. 노동자 정부는 직접적인 충격과 요구에 떠밀려 모든 관계와 현상에 단호하게 개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정부는 인민의 피로 자기를 더럽힌 자들을 모두 군대와 행정에서 내쫓고, 인민에 대한 범죄로 가장 더럽혀진 연대들을 해산하거나 해체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맨 처음 며칠 안에, 곧 선출되고 책임을 지는 관리 제도를 시행하고 인민 민병 조직에 착수할 수 있기 훨씬 전에 해치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노동자 민주주의 앞에는 곧바로 노동시간 기준 문제, 토지 문제, 실업 문제가 닥칠 것이다…

한 가지는 의심할 바 없다. 날마다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은 깊어지고 그 계급적 성격은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 그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 사이의 혁명적 유대는 깨질 것이고, 농민의 계급 분화는 정치적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노동자 정부의 정책이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전 민주주의적인 것에서 계급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는 만큼 구성 부분들 사이의 적대도 커질 것이다.

농민과 인텔리겐치아에게 굳어진 부르주아 개인주의적 전통과 반프롤레타리아적 편견이 없다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이 편견의 부재가 정치의식이 아니라 정치적 야만, 사회적 무정형성, 원시성, 무개성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철저하고 적극적인 정책에 믿을 만한 토대를 결코 만들어 줄 수 없는 성질과 특징이다.

신분적 농노제의 폐지는 부담을 지는 신분으로서 농민 전체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누진 소득세는 농민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농업 프롤레타리아트를 보호하는 입법 조치는 다수의 그런 적극적 공감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소수의 적극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을 농촌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농민 전체에 분명히 있지만 비교적 좁은 범위 안에서만 있는 이해의 공통성을 깨뜨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지배의 바로 첫 시기부터 농촌 빈민을 농촌 부자에, 농업 프롤레타리아트를 농업 부르주아지에 맞세우는 데서 지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농민의 이질성이 어려움을 낳고 프롤레타리아 정책의 토대를 좁힌다면, 농민의 계급 분화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기댈 수 있을 발달한 계급투쟁을 농민 속으로 가져가는 데 장애가 될 것이다. 농민의 원시성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 적대적인 면을 돌려 보일 것이다.

그러나 농민의 냉담, 그 정치적 수동성, 더구나 그 상층의 적극적 반대는 인텔리겐치아의 일부와 도시 소시민층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이 뚜렷하고 단호해질수록, 그 발밑의 토대는 좁아지고 발밑의 땅은 흔들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있을 법하며, 심지어 피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정책의 두 가지 주된 특징이 그 동맹자들 쪽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그것은 집산주의와 국제주의다.

농민의 소부르주아적 성격과 정치적 원시성, 농촌의 좁은 시야, 세계 정치의 연관과 의존 관계로부터의 고립은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정책을 굳히는 데 무서운 어려움이 될 것이다.

사회민주당이 임시정부에 들어가 혁명적 민주주의 개혁의 시기에 그 정부를 지도하면서 개혁의 가장 급진적인 성격을 지켜 내고 이때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 기대다가, 민주주의 강령이 다 실행되면 자기가 지은 건물에서 나와 부르주아 정당들에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는 야당으로 넘어가 의회 정치의 시대를 연다고 생각하는 것, 일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 정부라는 생각 자체를 망쳐 놓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추상적인 문제 설정에는 내용이 없다. 그것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며, 가장 나쁜 종류의 유토피아주의, 무슨 혁명적 속물의 유토피아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우리 강령을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으로 나누는 것은 권력이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다는 조건에서 막대하고 깊이 원칙적인 의의를 지닌다. 바로 이 사실, 곧 권력이 부르주아지에게 있다는 사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는 모든 요구를 우리의 최소 강령에서 몰아낸다. 그런 요구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내용을 이루며, 그 전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그러나 권력이 사회주의 다수를 가진 혁명정부의 손에 있게 되면, 그 순간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의 구별은 원칙적 의의도, 직접적인 실천적 의의도 잃는다. 프롤레타리아 정부는 결코 이 구분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8시간 노동일 요구를 보자. 알다시피 이 요구는 자본주의 관계와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그래서 사회민주당의 최소 강령에 들어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열정이 팽팽히 달아오른 혁명기에 그것을 실제로 시행하는 장면을 그려 보자. 새 법은 틀림없이 자본가들의 조직적이고 끈질긴 저항, 이를테면 직장 폐쇄와 공장 폐쇄 같은 형태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내던져질 것이다.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부르주아 정부라면 아무리 급진적이라도 일이 그렇게까지 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닫힌 공장 앞에서 무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는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8시간 노동일은 도입되지 않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는 진압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으로 지배할 때 8시간 노동일의 시행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처럼 자본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에 기대려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하지 않는 정부에게, 자본가들의 공장 폐쇄가 노동일을 늘릴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노동자 정부에게 출구는 하나뿐일 것이다. 닫힌 공장들을 수용하고 거기서 사회의 계산으로 작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논할 수도 있다. 노동자 정부가 자기 강령에 충실하게 8시간 노동일을 법령으로 정했다고 하자. 사적 소유의 유지를 전제하는 민주주의 강령의 수단으로는 이겨 낼 수 없는 반대를 자본이 해 온다면, 사회민주당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며 사퇴한다. 이런 해결은 정부 인원을 이루던 그룹의 관점에서만 해결일 뿐,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이나 혁명 자체의 발전의 관점에서는 해결이 아니다. 사회민주당이 사퇴한 뒤에도 사정은 전과 같을 것이며, 사회민주당으로 하여금 이 권력을 잡게 했던 그 사정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조직된 반대 앞에서 달아나는 것은 권력을 손에 넣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큰 혁명에 대한 배신일 것이다. 참으로, 자기 무력함을 드러내고 물러나기 위해서만 들어가느니 아예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업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힘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에 들어간 노동자 대표들이 실업자들의 요구에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들먹이며 답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실업자의 생계 보장을 떠맡기만 하면(어떤 형태로든 지금 우리에게는 상관없다) 그것만으로 경제적 힘이 프롤레타리아트 쪽으로 단번에 크게 옮겨 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압박을 언제나 산업예비군의 존재에 기대 왔던 자본가들은 경제적으로 무력하다고 느낄 것이고, 혁명정부는 동시에 그들을 정치적 무력함에 묶어 둘 것이다.

실업자의 부양을 떠맡음으로써 국가는 그것만으로 파업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과제도 떠맡는다. 국가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단번에 돌이킬 수 없이 자기 존재의 기둥을 스스로 허물어뜨릴 것이다.

공장주들에게는 직장 폐쇄, 곧 공장 문을 닫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남지 않을 것이다. 생산 중단을 공장주가 노동자보다 더 오래 견디리라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리고 대규모 직장 폐쇄에 대해 노동자 정부에게 남는 답은 하나뿐일 것이다. 공장을 수용하고 거기에, 적어도 가장 큰 공장들에는, 국영 또는 자치체 경영 생산을 도입하는 것이다.

농업 분야에서도 토지를 수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비슷한 문제들을 낳을 것이다. 대규모 생산을 하는 사유 영지를 수용한 프롤레타리아 정부가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쪼개 소생산자들에게 경작하라고 팔아넘기리라고는 결코 상정할 수 없다. 그 정부에게 유일한 길은 자치체의 통제 아래, 또는 곧바로 국가의 계산으로 협동조합적 생산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주의의 길이다.

이 모든 것은 사회민주당이 미리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최소 강령에서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부르주아지에게는 최소 강령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겠다고 약속한 채로 혁명정부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런 쌍방의 약속은 도저히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무력한 인질이 아니라 지도적 세력으로 정부에 들어감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들은 그것만으로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곧 집산주의를 의사일정에 올린다. 이 방향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게 될지는 힘의 관계에 달려 있지,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처음 의도에 달려 있지 않다.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무슨 특별한 형태, 곧 프롤레타리아트의(또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 독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계급은 자기의 민주주의 강령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자기 독재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어떤 환상도 아주 해로울 것이다. 그런 환상은 처음부터 사회민주당의 체면을 깎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것은 끝까지 권력을 위해 싸울 것이다. 권력을 지키고 굳히기 위한 이 투쟁의 한 수단이 선동과 조직, 특히 농촌에서의 선동과 조직이라면, 다른 수단은 집산주의 정책일 것이다. 집산주의는 권력을 잡은 당의 처지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일 뿐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에 기대어 그 처지를 지키는 수단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언론에서 연속혁명이라는 생각, 곧 점점 커지는 일련의 사회적 충돌, 대중의 새로운 층의 봉기, 지배계급의 정치적·경제적 특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그칠 줄 모르는 공격을 통해 절대주의와 시민적 농노제의 청산을 사회주의 변혁과 잇는 혁명이라는 생각이 정식화되었을 때, 우리의 “진보적” 언론은 한목소리로 분개한 울부짖음을 터뜨렸다. 아, 그들은 많은 것을 참아 왔지만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외쳤다. 혁명은 “합법화”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비상한 수단은 비상한 경우에만 쓸 수 있다. 해방 운동의 목적은 혁명을 영원히 이어 가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빨리 그것을 법의 물길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등등, 기타 등등.

같은 민주주의의 더 급진적인 대표자들은 이미 이룬 입헌적 “성과”의 관점에서 혁명에 맞서 나서는 모험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조차 의회주의의 출현 자체를 앞질러 버린 이 의회 백치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과 싸우는 강한 무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길을 고른다. 그들은 법의 토대가 아니라 자기들에게 사실로 보이는 것의 토대 위에, 역사적 “가능성”의 토대 위에, 정치적 “현실주의”의 토대 위에,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토대 위에까지 선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일찍이 베네치아의 경건한 부르주아 안토니오가 아주 적절하게 말했다.

“잘 봐 두게. 악마도 제 목적을 위해 성경을 끌어댈 수 있다네.”…

그들은 러시아의 노동자 정부라는 생각 자체를 공상으로 여길 뿐 아니라, 가까운 역사적 시기에 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부정한다. 필요한 “전제”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가? 물론 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의 날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적인 역사적 전망 속에 놓는 것이다.

러시아의 노동자 정부와 사회주의

우리는 앞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전제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 발전으로 이미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였다. 그런데 이 점에서 러시아에 관해서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권력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우리 국민경제를 사회주의 원리 위에서 개조하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1년 전 우리는 우리 당 두 분파의 기관지들에게서 모진 포화를 받은 글에서 이 질문들에 이렇게 답했다.

“파리 노동자들은” 마르크스는 말한다. “코뮌에 기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즉각적인 기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권력은 전능하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얻기만 하면 법령 몇 개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을 것이다. 경제 체제는 국가 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산주의를 향한 경제적 진화의 길을 쉽게 하고 줄이기 위해 국가권력을 온 힘을 다해 쓰는 것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른바 최소 강령에 들어 있는 개혁들에서 시작할 것이며, 바로 그 개혁들로부터 곧바로, 자기 처지의 논리 자체에 따라 집산주의적 실천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시간 노동일과 빠르게 높아지는 누진율의 소득세를 도입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일 것이다. 다만 여기서도 무게중심은 ‘법령’을 내는 데가 아니라 그 실제 시행을 조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주된 어려움은, 그리고 바로 여기가 집산주의로 넘어가는 지점인데, 이 법령들이 나온 데 대한 대응으로 소유자들이 닫아 버릴 공장들에서 국가의 계산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데 있을 것이다.

“상속권을 폐지하는 법을 내고 그 법을 실제로 시행하는 것도 비교적 간단한 일일 것이다. 화폐자본 형태의 상속 재산도 프롤레타리아트를 곤란하게 하거나 그 경제에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토지 자본과 산업 자본의 상속자로 나선다는 것은 노동자 국가에게 사회의 계산으로 경제를 조직하는 일을 떠맡는다는 뜻이다.

“보상을 주든 주지 않든 수용에 관해서도, 더 넓은 범위에서 같은 말을 해야 한다. 보상이 있는 수용은 정치적 이점이 있지만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보상 없는 수용은 재정적 이점이 있지만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어려움보다 더 큰 것은 경제적이고 조직적인 어려움일 것이다.

“되풀이하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부는 기적의 정부를 뜻하지 않는다.

“생산의 사회화는 어려움이 가장 적은 부문부터 시작된다. 첫 시기에 사회화된 생산은 상품 유통의 법칙으로 사적 경제 기업들과 이어진 오아시스들일 것이다. 사회화된 경제가 이미 차지한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 이점은 더 분명해질 것이고, 새 정치 체제는 더 굳건하다고 느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후 경제 조치는 더 대담해질 것이다. 이 조치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국내의 생산력만이 아니라 국제적 기술에도 기댈 수 있고 기댈 것이다. 그 혁명 정책에서 국내 계급 관계의 경험만이 아니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경험 전체에 기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는 그 경제적 노예 상태와 양립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떤 정치적 깃발 아래 권력을 잡든 그것은 사회주의 정책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의 내적 역학으로 국가 지배의 높이에 들어 올려진 프롤레타리아트가, 설령 그러고 싶다 해도,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지배를 위한 공화주의적·민주주의적 환경을 만드는 데로 자기 사명을 한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가장 큰 유토피아로 인정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는 비록 일시적이라도 언제나 국가권력의 지원이 필요한 자본의 저항을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 투쟁에 거대한 규모를 줄 것이다. 노동자들은 혁명 권력에게 파업 노동자를 지원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프롤레타리아트에 기대는 정부는 그런 지원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 예비군의 영향력을 마비시키고, 노동자를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주인으로 만들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허구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런 피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결과는 곧바로, 정치 체제의 민주화가 끝나기 훨씬 전에 나타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자마자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의 경계는 지워진다.

프롤레타리아 체제는 맨 처음부터 토지 문제의 해결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러시아 인구의 거대한 대중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풀 때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경제 정책의 기본 지향, 곧 사회주의 경제를 조직할 영역을 되도록 넓게 차지한다는 지향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때 토지 문제에서 이 정책의 형태와 속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장악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에 의해서도, 가능한 동맹자들을 반혁명의 대열로 밀어내지 않도록 자기 행동을 배치해야 할 필요에 의해서도 정해져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농업 문제, 곧 농업 경영과 그 사회관계의 운명에 관한 문제는 토지 문제, 곧 토지 소유 형태에 관한 문제로 결코 다 덮이지 않는다. 그러나 토지 문제의 해결이 농업의 진화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농업 정책을 미리 결정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 체제가 토지에 부여할 용도는 농업 발전의 흐름과 요구에 대한 그 체제의 전반적 태도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토지 문제가 맨 먼저 놓일 것이다.

사회혁명당이 결코 흠잡을 데 없다고 할 수 없는 인기를 안겨 준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모든 토지의 사회화다. 유럽식 분칠을 벗기고 나면 그것은 “균등한 토지 이용”, 곧 흑토 재분배와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균등 재분배의 강령은 모든 토지의 수용을 전제한다. 사유지 일반만이 아니라, 농민의 사유지만이 아니라, 공동체 토지까지 말이다. 이 수용이 새 체제의 첫걸음부터, 상품적·자본주의적 관계가 아직 온전히 지배하는 가운데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수용의 첫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스스로를 희생자로 느끼는 것은 농민일 것이다. 농민이 분여지를 자기 소유로 만들어 주기로 되어 있던 상환금을 수십 년 동안 내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또 형편이 나은 일부 농민이 틀림없이 지금 살아 있는 세대가 치른 큰 희생으로 넓은 토지를 사들여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공동체 토지와 작은 사유지를 국가 소유로 수용하는 것이 어떤 저항을 불러일으킬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길로 간다면 새 체제는 거대한 농민 대중을 자기에게 맞서게 하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공동체 토지와 작은 소유지가 국가 소유로 바뀌는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것을 지금의 땅 없는 농민과 머슴을 포함한 모든 농민이 “균등하게” 경작하도록 내주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경제적 측면에서 새 체제는 작은 토지와 공동체 토지를 수용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재분배 뒤에도 국가 토지나 공공 토지는 사적 경영으로 경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적 측면에서 새 체제는 엄청난 실책을 저지를 것이다. 농민 대중을 혁명 정책의 지도자인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 단번에 적대적으로 맞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균등 분배는 고용 노동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을 전제한다. 고용 노동의 폐지는 경제 개혁의 결과일 수 있고 결과여야 하지만, 법적 금지로 미리 정해질 수는 없다. 자본가 농업 경영자에게 노동자를 고용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먼저 땅 없는 머슴들에게 살아갈 가능성을, 그것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균등한 토지 이용 강령 아래에서 고용 노동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땅 없는 머슴들에게 땅 한 조각에 눌러앉으라고 의무를 지우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이 머슴의 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생산에 필요한 농기구를 대 주겠다고 의무를 지는 것이다.

물론 농업 조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개입은 흩어진 일꾼들을 흩어진 땅 조각에 붙들어 매는 데서가 아니라, 큰 영지를 국가나 자치체의 계산으로 경영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사회화된 생산이 단단히 자리를 잡을 때에만 고용 노동 사용의 금지로 이후의 사회화 과정을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길로 가면 소규모 자본주의 농업은 불가능해지겠지만, 자급적이거나 반자급적인 농가가 설 자리는 아직 남을 것이다. 그런 농가를 강제로 수용하는 것은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획에 결코 들어 있지 않다.

어쨌든 프롤레타리아트는 한편으로는 소소유자들의 목적 없는 순전히 형식적인 수용을 전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큰 영지를 작은 조각으로 아주 실제로 쪼갤 것을 요구하는 “균등 분배” 강령을 결코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정책은 직접적으로 경제적 낭비일 뿐 아니라 그 밑바닥에 반동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속셈을 깔고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혁명 정당을 정치적으로 약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적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정책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한 가지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 정책은 나라의 기술적 후진성에 막히기 훨씬 전에 정치적 장애물에 부딪힐 것이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국가적 지원 없이는 러시아 노동계급은 권력을 지킬 수 없을 것이며, 자기의 일시적 지배를 지속적인 사회주의 독재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은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구의 사회주의 혁명이 노동계급의 일시적 지배를 곧바로, 직접 사회주의 독재로 바꿀 수 있게 해 주리라는 것도 의심할 수 없다.

1904년에 카우츠키는 사회 발전의 전망을 논하고 러시아 혁명이 가까이 다가올 가능성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썼다.

“러시아의 혁명은 곧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 나라의 경제적 조건이 아직 한참 성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나머지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강한 충격을 주어야 할 것이며, 불붙은 투쟁의 결과 프롤레타리아트가 독일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 결말은” 카우츠키는 계속한다.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고, 서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불러와야 할 것이며, 동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기 발전의 단계를 줄이고 독일의 본보기를 따라 사회주의 제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가능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사회 전체는 발전의 개별 단계를 인위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개별 구성 부분들은 그럴 수 있다. 그것들은 선진국을 본받아 자기의 뒤처진 발전을 앞당길 수 있고, 그 덕분에 발전의 선두에 서기까지 할 수 있다. 낡은 민족들이 끌고 다니는 전통의 짐을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카우츠키는 이어서 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여기서 우리는 이미 연구할 수 있는 필연성의 영역을 떠났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다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K. 카우츠키, 『혁명의 전망』, 키예프, 1906)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가는 이 구절을, 혁명이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날지 서구에서 먼저 일어날지가 그에게 아직 물음표로 남아 있던 때에 썼다.

그 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장 낙관적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조차 기대하지 못한 엄청난 힘을 보여 주었다. 러시아 혁명의 흐름은 그 기본 특징에서 정해졌다. 2~3년 전에 가능성이었던 것, 또는 가능성으로 보였던 것이 가까운 개연성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 개연성이 필연성이 될 태세라는 것을 말해 준다.

주석

  1. 옮긴이: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마르크스 이름으로 연재된 「독일의 혁명과 반혁명」의 한 대목이다. 이 연재는 실제로는 엥겔스가 썼다는 것이 뒤에 밝혀졌다. ↩
  2. D. 멘델레예프, 『러시아의 이해를 위하여』, 1906, 99쪽. ↩
  3. 처음에는 「농민동맹」이, 그다음에는 두마의 근로자 그룹(트루도비키)이 생겨나 자라났다는 사실이 이런 생각과 앞으로 할 생각을 반박하지 않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농민동맹」이란 무엇인가? 대중을 찾는 급진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와, 아마도 농민의 하층은 아닌 가장 의식 있는 요소들이 민주주의 변혁과 토지 개혁의 이름으로 결합한 것이다. 「농민동맹」의 존재 이유인 그 토지 강령(“균등한 토지 이용”)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토지 운동이 더 넓고 깊게 펼쳐질수록, 더 빨리 몰수와 분할에 이를수록, 「농민동맹」은 지역적·생활적·기술적인 수천 가지 계급 모순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해체될 것이다. 그 성원들은 지방의 토지 혁명 기관인 농민위원회에서 제 몫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행정 기관인 농민위원회가 현대 사회의 기본 특징 가운데 하나인 농촌의 도시에 대한 정치적 의존을 없앨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근로자 그룹은 그 급진성과 무정형성 속에서 농민의 혁명적 열망이 지닌 모순을 표현했다. 입헌 환상의 시기에 근로자 그룹은 무력하게 카데트를 따라갔다. 두마가 해산되는 순간 근로자 그룹은 당연히 사회민주당 의원단의 지도 아래 들어갔다. 농민 대표의 비자립성은 가장 단호한 주도력이 필요할 날들, 곧 권력이 혁명의 손으로 넘어가는 날들에 특히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L. 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