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문헌

전체 120 저작·연설 36 헌법·법령·명령 29 정당·정부 문서 28 조약·협정 15 정보·수사 기록 6 연구서 5 소설 1
저작·연설

합동 반대파의 두 문서 — 「13인 선언」(1926)과 「볼셰비키-레닌주의자(반대파) 강령」(1927)

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크룹스카야 등 열세 명이 1926년 7월 합동 전원회의에 낸 선언(당 관료주의를 분파성의 원천으로 규정하고 임금·공업화·농촌·코민테른에 관한 입장을 열두 절로 요약)과 지노비예프 제명 제안에 대한 추가 성명, 그리고 1927년 9월 제15차 당대회 앞에 제출된 열두 장의 강령 초안(노동자의 처지, 쿨라크의 성장, 공업화 속도, 소비에트의 관료화, 당 체제, 전쟁 위험, 중국 혁명의 패배). 배포가 금지된 이 강령이 반대파 제명의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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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스탈린, 「곡물 조달과 농업 발전의 전망에 대하여」

1928년 1월 곡물 조달 위기 때 스탈린이 시베리아로 내려가 지방 간부들 앞에서 한 발언이다. 곡물을 쥐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쿨라크에게 형법 제107조를 걸라고 지시하고, 그 일을 못 하겠다는 검사와 판사는 갈아치우라고 요구한다. 뒷부분에서는 개인 소농 경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며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으로의 전환을 당면 과제로 내건다. 네프의 시장 논리로 곡물을 사들이던 방식이 행정적 강제로 넘어가는 지점이 한 문서 안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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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부하린, 「한 경제학자의 노트」

1928년 9월 30일 『프라우다』에 실린 우익반대파의 정면 반론이다. 부하린은 스탈린의 이름을 한 번도 적지 않은 채, 공업의 자본 투자 증가율과 건축자재 수급 균형과 금속 배분표를 하나씩 짚으며 계획이 스스로 세운 통제숫자와 어긋나 있음을 논증한다. 원료와 자재가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를 밀어붙이면 공업 자신이 멈춘다는 것, 곡물 위기의 원인도 쿨라크의 저항이 아니라 공업과 농업 사이의 균형이 깨진 데 있다는 것이 논지다. 통계표 5개를 포함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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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스탈린, 「대전환의 해」

1929년 10월 혁명 12주년에 맞춰 『프라우다』에 실린 글로, 1928년의 논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승자 자신의 말로 보여 준다. 노동생산성·공업 건설·농업 건설 세 항목으로 성과를 정리하는데, 핵심은 셋째다. 개별 빈농이 아니라 중농이 마을째 집단농장으로 들어왔다는 주장이 두 달 뒤 전면적 집단화로 이어진다. 부하린이 경고한 속도 문제는 반박이 아니라 성과로 답해지고,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낡은 쓰레기」가 무너졌다고 선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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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즈다노프, 「소비에트 문학은 가장 사상적이고 가장 전진적인 문학이다」

1934년 8월 17일 제1차 전연방 소비에트 작가대회 개막일에 즈다노프가 당 중앙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의 이름으로 한 연설의 전문 번역.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 정의(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진실하게 그리되 근로자의 사상적 개조·교육과 결합할 것), 스탈린의 「인간 영혼의 기사」 호칭에 대한 해설, 혁명적 낭만주의론이 모두 이 연설에서 정식화되었고, 대회는 이를 작가동맹 규약에 새겼다. 십여 년 뒤 즈다놉시나 문화 단속의 이론적 잣대가 된 미학 강령이다. 영문판(1935)을 저본으로 한 중역이며 핵심 정식화는 러시아어 원문과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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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디미트로프 제7차 대회 보고 「파시즘의 공세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임무」

1935년 8월 코민테른 제7차 세계대회의 기본 보고와 폐회사 전문. 파시즘의 「디미트로프 정의」와 통일전선·인민전선으로의 노선 전환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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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스페인 내전을 둘러싼 두 노선: 1936~1937년 문헌 6건

스페인 내전에서 「전쟁이 먼저인가 혁명이 먼저인가」를 두고 갈라선 두 노선을 당대 문헌으로 읽는다. 1936년 10월 16일 스탈린과 스페인공산당이 주고받은 전보 두 건, 서기장 호세 디아스가 제5연대를 해산하며 정규군을 주장한 연설과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강연, 그리고 그 노선을 정면으로 공격한 트로츠키의 1937년 글 두 편의 한국어 번역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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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스탈린,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스탈린이 1938년 9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소교정』 제4장 2절로 발표한 이론 논문의 한국어 완역.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의 네 가지 특징과 철학적 유물론의 세 가지 특징을 서술한 뒤, 생산양식과 생산력·생산관계를 축으로 사적 유물론을 체계화한다. 이후 소련과 각국 공산당의 표준 철학 교재가 된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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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달라디에의 1939년 9월 2일 의회 선언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튿날 프랑스 하원에서 총리 달라디에가 읽은 참전 정당화 선언의 한국어 전역. 8월 31일 교섭 결렬의 경위, 히틀러의 약속 파기 목록, 대폴란드 동맹 의무, 「명예는 안전의 담보」라는 결론까지, 의사록의 박수 표기와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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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흐루쇼프 비밀보고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

1956년 2월 25일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비공개 회의에서 흐루쇼프가 한 보고의 전문 한국어 번역. 레닌이 「대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스탈린의 경질을 제안한 대목에서 시작해 키로프 살해 이후의 대량 탄압, 1937~38년 중앙위원 다수의 처형,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 전쟁 초기의 오판, 민족 강제이주, 유고슬라비아와의 단절, 「레닌그라드 사건」과 「의사들의 사건」, 개인숭배의 형성을 차례로 다룬다. 예이헤·루주타크·케드로프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그 자리에서 읽은 대목이 보고의 중심이다. 1989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통보』 게재본을 저본으로 삼았고, 그 편집부 주석 66개를 별도 절로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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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와 당의 간부 정책에 관하여」 (1987)

페레스트로이카가 경제의 「가속화」에서 정치의 「민주화」로 방향을 튼 1987년 1월 전원회의 보고. 침체의 원인을 「제동 메커니즘」과 간부층의 보수주의에서 찾고, 당과 소비에트 선거에 복수 후보와 비밀투표를, 기업장 선출과 글라스노스트를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공기처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당 지도부의 저항을 당원 대중과 인민에 호소해 넘으려는 논법이 처음 공식화된 문서로, 제19차 당협의회와 1989년 인민대표대회 선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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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연설

고르바초프, 1988년 유엔 총회 연설

1988년 12월 7일 고르바초프가 유엔 총회에서 한 연설의 전문 번역.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 선택의 자유, 탈이데올로기화 등 신사고의 원칙을 집대성하고, 병력 50만 일방 감축과 동유럽 주둔군 축소를 선언해 냉전 종식의 이정표가 된 문서다. 유엔 공식 속기록(A/43/PV.72)의 영어본을 저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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