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arismus / agraryzm / земеделизъм · 1893–현재 (정치 운동 기준, 전성기는 1919~1930년대 동유럽)

농민주의

Agrarianism

농업을 경제의 결정적 영역으로, 농민과 마을 공동체를 사회와 국가의 기초로 보고 농민의 이해를 정치의 중심에 두는 이념과 운동이다. 19세기 후반 독일 대지주의 농업 이익 운동에서 출발했으나, 20세기 전반 동유럽·남동유럽에서 소농의 이해를 대변하는 농민정당 운동으로 꽃피었다. 사유 토지와 가족농을 지키면서 협동조합과 자치를 강조하고 집단화에 반대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내세웠다. 1919~1923년 불가리아의 스탐볼리스키 정부, 1921년 프라하의 녹색 인터내셔널,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핀란드의 농민정당이 대표적이다. 농민 공동체에서 사회주의를 끌어낸 러시아의 나로드니키·사회혁명당과는 계보가 다르다.

상세

정의와 기본 관념

독일어권 정의에서 농민주의는 농업을 결정적 생산 영역으로, 마을 공동체를 사회와 국가 구조의 세포로 보는 농정 이념이다. 이 말은 보헤미아 왕관령 나라들에서 ‘농민운동의 바탕이 되는 사상 전체’를 가리키며 쓰이기 시작했고, 토지와 농업이 경제와 사회 전체의 기초라는 데서 농민 신분의 지도권을 끌어냈다. 자연에서 멀어진 도시 생활이 몸의 건강과 정신적·도덕적 균형을 잃게 한다는 생각도 함께했다. 폴란드어권 개관은 대부분의 갈래가 땅과 그 경작자에 대한 존중, 사유 토지의 보호, 협동조합 지지와 농업 집단화 반대, 경작자에게 자연스러운 체제로서의 민주주의 옹호, 중앙집권과 강한 국가에 대한 경계를 공유한다고 정리한다. 다만 폴란드 농민주의의 주류는 경제의 부분적 계획과 일부 산업 국유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영어권 개관은 그 철학적 뿌리로 중국의 농가 사상과 프랑수아 케네의 중농주의를 든다.

성립: 독일에서 동유럽 농민정당으로

정식 교리로서의 농민주의는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나왔고, ‘농민주의’라는 말을 만든 이는 독일 사회학자 알베르트 셰플레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값싼 미국 농산물 유입으로 타격을 입은 대지주들의 운동이었고, 이들의 이익은 1893년 창립된 농업가동맹이 대변했다. 이후 동유럽과 중동부 유럽에서 농민주의는 주로 소농의 이해를 대변하는 농민 운동이 되었다. 독일어권 개관에 따르면 시장 접근을 둘러싼 갈등이 자본주의적 관계가 이미 들어선 곳의 농민주의를 규정했고, 산업화가 덜 된 사회의 운동들은 시장과 거리가 먼 가족농과 전통 마을 공동체를 지키는 데 더 기울었다. 루마니아의 처러니즘은 차지농과 지주의 착취, 특히 1907년 대농민 봉기에 대한 응답으로 자랐고, 농민 농업이 본래 비자본주의적이며 자본주의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대표 이론가 비르질 마자루는 1936년 『농민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로 교리를 다듬었다.

집권과 녹색 인터내셔널

불가리아 농민민족동맹은 1899년 조세에 저항하고 협동조합을 세우려 조직되었고,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가 이끌던 1919년 집권해 토지 소유 규모를 제한하는 토지개혁과 노동 의무제를 시행했다. 1923년 6월 쿠데타로 정부가 무너지고 스탐볼리스키는 살해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화농민당은 안토닌 슈베흘라 아래 거듭 연정을 이끌었고, 루마니아에서는 1926년 국민농민당이 결성되어 율리우 마니우가 1928~1930년 총리를 지냈다. 폴란드에서는 빈첸티 비토스 등이 농민당을 이끌었고, 핀란드의 농민동맹은 1906년 창립되어 뒤에 중앙당이 되었다. 1921년 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유고슬라비아의 농민정당들은 국제농업사무국, 이른바 녹색 인터내셔널을 만들었고, 1921년 11월 프라하에 사무국을 두었다. 스탐볼리스키는 이를 왕당파·지주의 ‘백색 인터내셔널’과 볼셰비키의 ‘적색 인터내셔널’ 양쪽에 맞서는 국제 농업 연맹으로 구상했다. 1920~1926년 사이 열 나라의 농민정당 16개가 여기에 참여했다. 독일어권 개관은 농민주의가 보통선거와 토지개혁을 통해 농촌 주민을 국민국가에 통합하는 민주화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민족주의와 반자본주의가 반유대주의나 권위주의 체제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하며, 스탐볼리스키 정부를 ‘도시 부르주아에 대한 농민 독재’로 부른 사례를 든다.

공산주의 운동과의 관계와 전후의 운명

코민테른은 1923년 크레스틴테른, 곧 적색 농민 인터내셔널을 세워 동유럽·남동유럽 농민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얻으려 했다. 녹색 인터내셔널은 크레스틴테른의 주요 경쟁자였고, 1929~1934년에는 크로아티아 농민당을 크레스틴테른에서 끌어오기도 했다. 1922년 불가리아 국민투표에서는 농민민족동맹과 불가리아 공산당 지지자들이 함께 전쟁 책임자 처벌을 관철했다. 2차 대전 뒤 헝가리 독립소농당은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대규모 토지 재분배를 시행했으나 1949년 일당 체제 도입과 함께 금지되었다. 루마니아 국민농민당은 1947년 해산되었고, 불가리아 농민민족동맹은 1989년까지 공산당과 함께하는 정당으로 남았다. 독일어권 개관은 동유럽 농민정당의 최종적 권력 상실이 사회주의적 전환과 농업 집단화와 함께 왔다고 정리한다. 1947년 망명 지도자들은 국제농민연맹을 세웠고, 스타니스와프 미코와이치크와 너지 페렌츠가 차례로 의장을 맡았다. 한편 루마니아의 농민 정당 농민전선은 페트루 그로자 아래에서 공산 정권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로드니키·사회혁명당과의 구별

농민주의는 러시아의 나로드니키나 사회혁명당과 자주 혼동된다. 사회혁명당은 나로드니키 조직들을 기반으로 한 20세기 초의 가장 큰 신나로드니키 조직이자 제2인터내셔널에 속한 비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반면 중동부 유럽의 농민주의는 사유 토지와 가족농을 지키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에 대한 대안을 자처했다. 루마니아 처러니즘이 러시아 나로드니키의 영향을 받은 포포라니즘과 닮았다고 평가되듯 두 흐름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도 있다. 영어권 개관은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하려는 농업 사회주의를 농민주의의 한 형태로 따로 분류하고, 농민을 혁명의 열쇠로 본 마오주의를 그 예로 든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de.wikipedia.org
  2. pl.wikipedia.org
  3. ro.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
  6. bg.wikipedia.org
  7. fi.wikipedia.org
  8.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