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1976

4인방

Gang of Four

문화대혁명기 마오쩌둥의 급진 노선을 대변한 장칭·장춘차오·야오원위안·왕훙원의 상하이계 정치국 그룹. 선전과 문화를 장악하고 저우언라이·덩샤오핑의 정상화 노선에 맞섰으며, 1976년 4월 톈안먼 사건 뒤 덩샤오핑 재실각을 이끌었다. 마오 사망 한 달 뒤인 10월 6일 화궈펑·예젠잉·왕둥싱이 이들을 체포했고, 1980~1981년 특별법정에서 문화대혁명의 죄를 이들에게 집중시킨 재판이 열렸다. 「4인방」이라는 이름은 마오가 1974년 이들을 경고하며 쓴 말이다.

상세

네 사람의 결합은 1965년 상하이에서 야오원위안의 『해서파관』 비판문을 준비하던 때로 거슬러 간다. 장칭은 문예 분야를 맡아 「양판희(樣板戲)」로 혁명 문화를 규정했고, 장춘차오는 상하이 코뮌과 「자산계급 법권 제한론」으로 이론을 제공했으며, 왕훙원은 노동자 조직을 대표했다. 1973년 제10차 당대회 뒤 이들은 정치국에서 급진파 블록을 이루었다.

마오는 이들을 이용하면서도 견제했다. 1974년 「너희는 4인방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고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에게 정부 운영을 맡겼다. 그러나 1975년 말 「덩샤오핑 비판·우경번안풍 반격」 운동으로 다시 급진파가 우세했고, 1976년 4월 저우 추모 시위를 「반혁명」으로 규정해 덩을 실각시켰다.

마오 사후 이들이 당권을 노린다는 판단 아래 예젠잉이 화궈펑을 설득했고, 10월 6일 중난하이에서 장춘차오·왕훙원·야오원위안이, 이어 장칭이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장칭은 「나는 마오 주석의 개였다」며 책임을 마오에게 돌렸고 사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4인방 규정은 문화대혁명의 책임을 마오에게서 분리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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