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
Labour and Socialist International
재건된 제2인터내셔널과 빈 국제연합이 1923년 함부르크에서 합쳐 만든 사회민주주의·노동당의 국제 조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세계 노동운동의 지도권을 두고 경쟁했으나 파시즘의 확대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속에서 활동을 멈췄다.
상세
성립
노동사회주의 인터내셔널(LSI)은 사회민주주의·노동당들의 국제 조직으로, 1923년 함부르크에서 베른 인터내셔널(재건된 제2인터내셔널)과 빈 인터내셔널(사회주의 정당 국제노동동맹)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졌다. 1923년 5월 21일 함부르크 대회에는 30개국 41개 정당에서 약 620명의 대의원이 참가했으며, 프랑스 사회당(SFIO)과 독일 독립사회민주당(USPD) 좌파 계열부터 영국 노동당의 온건 개혁주의자들까지 다양한 흐름이 포함되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대의원 80명이 대회를 주도했고, 카를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루돌프 힐퍼딩, 아르투어 헨더슨, 프리드리히 아들러, 오토 바우어, 에밀 반데르벨데 등이 참가했다.
성립 대회는 별도의 가입 조건이나 구속력 있는 강령을 채택하지 않았다. 함부르크 대회는 새 인터내셔널이 "사회주의 정당들이 서로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한다는 선언을 발표했고, 창립 순간에 기본 원칙의 완전한 합의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조직
LSI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정당들의 연맹으로 남았다. 소속 정당은 조직 규정에 따라 자신의 내부 정책과 강령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최고 권한은 국제 대회에 있었고, 10개 이상의 소속 정당이 요구하면 언제든 소집할 수 있었다. 대회 사이의 운영은 소속 정당이 선출한 집행위원회가 맡았고, 집행위원회는 의장과 간부를 선출하고 사무소 소재지를 정할 권한을 가졌다. 1923년 대회가 선출한 첫 집행위원회는 영국 노동당의 아르투어 헨더슨을 의장으로, 해리 고슬링을 재무로 선출했으며, 런던을 집행위원회 소재지로 정했다. 이후 본부는 취리히, 브뤼셀로 옮겨졌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의 경쟁
LSI는 국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지도권을 두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과 경쟁했다. 그러나 코민테른과 달리 소속 정당의 행동을 직접 통제하지 않았다. 코민테른은 LSI를 흔히 "제2인터내셔널"이라 불렀고, LSI 자신도 제2인터내셔널의 연속으로 기능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LSI 내부의 지배적 정당이었다.
1922년 좌파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연합"을 추구했지만, 코민테른 제4차 세계대회가 포괄적 국제 조직 구성을 거부하면서 이 시도는 끝났다. 이후 빈 인터내셔널과 런던 인터내셔널이 1923년 1월부터 공동 국제 기구 구성을 준비했다.
파시즘에 대한 대응
독일에서 나치즘이 성장하자 LSI와 코민테른에 대한 협력 압력이 커졌다. 1933년 2월 19일 LSI 집행부는 히틀러 정권에 맞선 독일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의 공동 행동을 촉구했고, 코민테른은 이 선언의 진정성을 확신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곧 각국 조직에 사회민주당과의 지역적 통일전선 구성을 지시했고, LSI는 지역 차원의 통일전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코민테른이 온건한 태도로 돌아서면서 LSI의 국가 차원 통일전선 반대도 완화되었다.
LSI 내부에는 남북 분열이 나타났다. 지중해 연안 정당들은 공산당과 전선을 만들었고,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정당들은 공산당과의 협력을 거부했다. 독일 정당이 혼란에 빠지면서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정당의 영향력이 커졌고, 사회주의-공산주의 협력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1934년 9월 25일 코민테른 집행부는 두 인터내셔널 사이의 "평화 협상"을 제안했지만 LSI는 거부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뒤 LSI와 국제노동조합연맹은 '스페인 원호' 운동을 벌였고, 원호 활동은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과 노동자총연맹(UGT)을 통해 전달되었다.
식민지 문제
식민지 문제에서 LSI는 단일한 입장을 갖지 못했다. 최대 소속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식민주의에 반대하기보다 식민 통치 개혁을 지지했고, 프랑스 사회당(SFIO)의 입장은 불명확하거나 분열되어 있었으며,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 정당들은 상대적으로 반식민주의적이었다. 리프 전쟁과 관련해 1925년 8월 22일부터 27일까지 마르세유에서 열린 제2차 LSI 대회는 리프의 독립을 지지하고 국제연맹이 리프 공화국을 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중국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분열을 일으켰다. 영국 독립노동당(ILP)의 반제국주의동맹 참여도 논쟁거리였다. 반제국주의동맹은 코민테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코민테른 계열 정당 외에도 일부 유럽 LSI 소속 정당과 식민지 반식민주의 정당의 지지와 가입을 얻으려 했다. LSI 지도부 다수는 이를 코민테른 전선 조직의 도구로 보았고, LSI 대회는 ILP에 반제국주의동맹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해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LSI는 1940년 활동을 멈췄다. 국제적으로는 그 후신으로 195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세워졌다. LSI는 이 조직의 직접적 전신으로 여겨진다. LSI의 해산 시점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서술이 다르며, 1940년 4월 브뤼셀에서 해산했다는 설명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활동이 멈춘 해만 확정해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