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Wille zur Macht. Versuch einer Umwerthung aller Werthe (1901; erweitert 1906) · 1901–1906

권력의지 (유고 편집본)

The Will to Power (compilation)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책이 아니라, 그가 정신을 잃은 뒤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친구 페터 가스트(하인리히 쾨젤리츠)가 1880년대 유고에서 골라 엮어 니체의 체계적 주저인 것처럼 내놓은 편집본. 1901년 483개 단편으로 처음 나왔고, 1906년 1067개 단편으로 늘린 판이 표준처럼 쓰였다. 니체는 한때 이 제목의 책을 계획했지만 1888년 8월 말 그 계획을 버렸다. 1950년대 카를 슐레히타가, 1960년대부터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가 이 책이 니체의 뜻과 무관하게 단편을 고르고 자르고 고친 편집물임을 밝혔다.

상세

왜 니체의 “주저”가 니체의 책이 아닌가?

20세기 전반의 독자들에게 『권력의지』는 니체 철학의 완성, 곧 그가 평생 준비한 체계적 주저였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 책을 바탕으로 니체를 서양 형이상학의 마지막 사상가로 해석했고, 나치의 니체 해석자 알프레트 보임러는 이 책에서 국가사회주의의 철학을 읽어 냈으며, 영어권에서는 오랫동안 이 책이 니체 유고의 대표 판본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책은 니체가 쓴 책이 아니다. 니체가 1889년 1월 토리노에서 정신이 무너진 뒤, 그의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친구 하인리히 쾨젤리츠(필명 페터 가스트)가 1880년대의 메모 수천 개 가운데 일부를 골라 그들 나름의 목차에 따라 배열한 편집본이다.

이 항목은 그 편집본을 다룬다. 니체가 실제로 발전시킨 개념으로서의 권력의지는 별도 항목 권력의지에서 다룬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니체를 읽는 데 결정적이다. 개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같은 니체가 직접 낸 책에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체계로 완성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이 편집본이 『권력에의 의지』 또는 『힘에의 의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니체는 어떤 책을 계획했고, 왜 버렸나?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니체는 1885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마지막 부를 찍은 뒤 더 크고 체계적인 저작을 구상했고, 1886년부터는 대개 그 제목을 “권력의지”로 잡았다. 그는 『도덕의 계보』(1887) 제3논문 제27절에서 이 책을 이렇게 예고했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저작, 권력의지. 모든 가치의 전도의 시도.”

ich verweise dafür auf ein Werk, das ich vorbereite: Der Wille zur Macht, Versuch einer Umwerthung aller Werthe

니체의 공책에는 이 책을 위한 수많은 계획이 남아 있다. 1887년 3월 17일 니스에서 적은 계획은 네 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 유럽의 허무주의. 제2권 최고 가치들의 비판. 제3권 새로운 가치 설정의 원리. 제4권 훈육과 사육.” 뒷날 누이와 가스트가 1906년판의 뼈대로 쓴 것이 바로 이 계획이다.

Erstes Buch. Der europäische Nihilismus. Zweites Buch. Kritik der höchsten Werthe. Drittes Buch. Princip einer neuen Werthsetzung. Viertes Buch. Zucht und Züchtung.

그러나 니체는 1887년 가을부터 1888년 봄까지 이 책을 위한 메모를 쌓은 뒤에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마지막 계획은 “1888년 8월 마지막 일요일”(8월 26일) 실스마리아에서 적은 「권력의지. 모든 가치의 전도의 시도」를 위한 초안이다.

Entwurf des Plans zu: der Wille zur Macht. Versuch einer Umwerthung aller Werthe. — Sils Maria am letzten Sonntag des Monat August 1888

며칠 뒤 그는 계획을 바꾸었다. 이미 정서해 둔 원고를 모아 『우상의 황혼』으로 냈고, 1888년 9월 초의 새 계획에서는 제목을 「모든 가치의 전도」로 바꾸어 네 권으로 짰다. 그 제1권이 『안티크리스트』였다.

Umwerthung aller Werthe. Erstes Buch. Der Antichrist. Versuch einer Kritik des Christenthums.

11월 말 니체는 이 계획마저 버리고 『안티크리스트』 자체를 “전도” 전체로 선언했다. 그러니 니체가 마지막으로 정신이 맑았던 몇 달 동안 “권력의지”라는 책은 이미 그의 계획에서 사라져 있었다.

편집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893년 11월 쾨젤리츠는 엘리자베트에게 니체의 공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출판하자고 제안했다. 엘리자베트는 1894년 나움부르크에 니체 문서보관소를 세우고(1897년부터 바이마르) 니체 전집, 이른바 대8절판 전집을 펴냈는데, 그 유고 권에 이 편집본을 넣었다. 1901년 첫 판은 에른스트 호르네퍼와 아우구스트 호르네퍼 형제, 쾨젤리츠가 엘리자베트의 지휘 아래 엮은 것으로 483개 단편이었다. 1906년 엘리자베트와 쾨젤리츠가 1067개 단편, 네 “권”으로 크게 늘린 판을 냈고, 이것이 “정본”처럼 굳어졌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엘리자베트가 1931년 법원에서 이 책의 공동 저자 지위를 인정받아 계속 인세를 받았다고 전한다.

이 편집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독일어 위키백과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편집자들은 단편을 고르고 버렸고, 니체의 계획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판독 오류를 남기고, 니체가 다른 책에서 옮겨 적은 발췌를 니체의 아포리즘처럼 실었고, 제목을 붙이거나 순서를 바꾸고 글을 덧붙였다. 예컨대 여러 단편은 레프 톨스토이의 『나의 종교』(1885)를 옮겨 적은 것인데 출처가 지워졌다. 니체가 16개 절로 나누고 날짜까지 붙인 글 「유럽의 허무주의」는 1906년판에서 네 조각으로 잘려 흩어졌다. 몬티나리의 조사에 따르면, 니체가 직접 이 책을 염두에 두고 번호를 붙인 374개 단편 가운데 104개는 편집본에서 빠졌고, 실린 270개 가운데 137개는 불완전하거나 멋대로 고쳐져 있었다.

누가 어떻게 읽었고, 어떻게 밝혀졌나?

이 편집본의 영향은 컸다. 니체가 출판한 책에는 정치적 발언이 흩어져 있을 뿐이지만, 『권력의지』는 “훈육과 사육”, “지상의 주인” 같은 표제 아래 메모들을 묶어 니체가 하나의 정치적 체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니체 문서보관소는 이 이미지를 퍼뜨렸고, 독일어 위키백과의 니체 수용사 항목은 엘리자베트가 무솔리니를 숭배했으며 문서보관소의 니체 해석이 파시즘과 나치즘의 선별적 니체 수용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본다. 보임러는 1930년 크뢰너 출판사판 『권력의지』에 해설을 붙이고 이듬해 더 선별적인 유고 선집 『생성의 무구함』을 엮어, 니체를 나치즘의 선구자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하이데거도 이 편집본의 단편 제617번 「요약」을 니체 철학 전체의 결론으로 거듭 인용했지만, 「요약」이라는 제목은 쾨젤리츠가 붙인 것이었다.

편집본에 대한 의심은 일찍부터 있었다. 문서보관소에서 일했던 프리츠 쾨겔, 루돌프 슈타이너, 호르네퍼 형제가 편집 방식을 비판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문제가 알려진 것은 카를 슐레히타가 1954~1956년의 세 권짜리 니체 저작집에서 편집본을 해체해 단편들을 시간순으로(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싣고, 1957년의 「문헌학적 후기」에서 엘리자베트의 위조를 밝힌 뒤였다. 결정적인 작업은 이탈리아의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가 했다. 그들은 1961년부터 동독 바이마르에 보관된 니체의 원고를 직접 해독해, 유고를 공책별·시간순으로 모두 싣는 니체 비판 전집을 1967년부터 펴냈다. 몬티나리는 『권력의지』를 “역사적 위조”라 불렀고, 그의 글을 모은 책에는 「‘권력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질 들뢰즈는 몬티나리의 작업을 환영했지만,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 자신의 『니체와 철학』(1962)도 편집본의 판독 오류에 기대고 있었다. 니체의 공책에는 “힘”이라는 개념에 “내적 세계”를 부여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편집본은 이를 “내적 의지”로 잘못 읽었고, 들뢰즈는 이 문장을 니체의 가장 중요한 글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거의 한 단어씩 주석했다. 카를 뢰비트는 반대로 슐레히타의 해체에 맞서, 시간순 배열이 니체 사상의 짜임을 가린다며 편집본의 체계를 옹호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이 편집본은 무엇이었나?

마르크스주의 쪽의 니체 비판은 상당 부분 이 편집본을 통해 형성되었다. 게오르크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1954)를 비롯한 20세기 중반의 비판은 니체를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지의 세계관을 체계화한 사상가로 보았는데, 『권력의지』의 “훈육과 사육”이나 “지상의 주인” 같은 대목은 이 해석에 가장 편리한 증거였다. 동시에 이 책을 니체의 주저로 만든 것이 니체 문서보관소와 그 정치적 후원자들, 곧 엘리자베트와 보임러 같은 민족주의 우파였다는 사실은, 니체의 “파시즘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편집과 전유를 거쳐 만들어졌음을 보여 준다. 공교롭게도 이 편집본을 해체한 몬티나리는 평생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고, 그의 공산당원 신분은 동독 바이마르의 문서고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니체 연구에서 『권력의지』는 니체의 저작으로 인용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니체 비판 전집이나 그 학습판에 실린 유고 단편을 공책 번호와 단편 번호로 인용한다. 그럼에도 편집본은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다시 나오며, 영어권에서는 비판 전집의 완역이 없어 여전히 널리 읽힌다. 이 책은 니체의 사상보다 니체가 20세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문서로서 의미를 가진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한국어)
  4. de.wikipedia.org
  5. de.wikipedia.org
  6. nietzschesource.org
  7. nietzschesource.org
  8. nietzschesource.org
  9. nietzschesour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