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 1883–188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us Spoke Zarathustra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3~1885년에 네 부로 펴낸 철학적 산문시. 고대 페르시아 종교 창시자의 이름을 빌린 예언자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신이 죽은 세상에 위버멘쉬(초인)를 가르치고, 안락만 바라는 “최후의 인간”을 경고하며, 마침내 모든 것이 똑같이 되돌아온다는 영원회귀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을 성서를 패러디한 문체로 그린다. 니체 스스로 가장 깊은 책이라 불렀고,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읽혔지만 가장 많이 오용되기도 했다.

상세

왜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오해받은 책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다. 그러나 논문도 아포리즘 모음도 아닌, 한 인물의 연설과 여행을 그린 서사시 같은 산문이어서, 개념을 차례로 정의해 주지 않는다. 부제 “모두를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 말해 주듯 니체는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책을 쓰려 했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 책의 근본 줄거리를 차라투스트라가 자기 생각을 가르치려다 거듭 실패하는 과정으로 요약한다. 그는 늘 오해받는다. 그 실패가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오해는 책 바깥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위버멘쉬(초인), 권력에의 의지,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 같은 구절은 문맥에서 떼어져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선전과 나치의 인종주의에 동원되었다. 동시에 같은 책이 아나키스트와 표현주의 예술가, 실존주의자에게는 해방의 책으로 읽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니체의 사상만이 아니라 20세기가 니체를 어떻게 썼는지를 함께 읽는 일이다.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나왔나?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은 기원전 이란의 종교 개혁가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에서 왔다. 니체는 뒷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역사상의 차라투스트라가 선과 악의 싸움을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로 처음 세운 사람이므로 그 오류를 처음 깨닫는 사람도 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인물은 『즐거운 학문』(1882)의 마지막 절 「비극이 시작된다」에서 처음 등장했고, 그 절이 거의 그대로 이 책의 첫머리가 되었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네 부는 1882년 11월부터 1885년 2월 사이에 쓰였다. 니체는 1883년 초 이탈리아 라팔로 해안을 걸으며 제1부를 구상했다고 회고했다. 제1부와 제2부는 1883년, 제3부는 1884년 켐니츠의 슈마이츠너 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러나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1884~1885년 겨울에 쓴 제4부는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1885년 니체가 자비로 40부만 찍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시기 니체는 바젤 대학 교수직을 건강 때문에 그만두고(1879) 스위스 실스마리아와 이탈리아·프랑스 남부를 떠돌며 살았다.

책은 성서, 특히 루터 번역 성서의 문체를 일부러 흉내 낸다. 각 연설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후렴으로 끝나고, 비유와 수수께끼와 노래가 이어진다. 니체는 이 문체를 “평온한(halkyonisch)” 어조라 부르며, 그 어조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지혜의 뜻을 오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위버멘쉬와 최후의 인간은 무엇인가?

마흔 살의 차라투스트라는 10년의 산중 생활 끝에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려고 내려온다. 숲에서 만난 늙은 성자가 아직 신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그는 혼잣말한다. 이 늙은 성자는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 이어 시장에 이른 그는 줄타기 광대를 보러 모인 군중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Ich lehre euch den Übermenschen.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신이 죽은 뒤 삶의 의미는 저 세상이 아니라 “대지”에 있어야 하며, 인간은 목표가 아니라 다리이자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매인 밧줄”이라고 말한다.

Der Mensch ist ein Seil, geknüpft zwischen Thier und Übermensch

군중이 비웃자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이 경멸할 만한 것을 보여 주겠다며 “최후의 인간”을 묘사한다. 최후의 인간은 사랑도 창조도 동경도 모르고, 모두가 똑같기를 바라며, 작은 쾌락과 건강과 안락만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은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

„Wir haben das Glück erfunden“

그러자 군중은 위버멘쉬는 필요 없으니 우리를 최후의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외친다. 차라투스트라는 대중에게 말하는 일을 포기하고 동반자를 찾아 나선다. 제1부의 첫 연설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는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낙타는 “너는 해야 한다”는 기존 가치의 짐을 지고, 사자는 “나는 원한다”며 그 가치를 부수지만 새 가치를 만들지는 못하며, 아이는 순진무구한 새 출발로서 삶에 성스러운 긍정을 말한다.

Drei Verwandlungen nenne ich euch des Geistes: wie der Geist zum Kameele wird, und zum Löwen das Kameel, und zum Kinde zuletzt der Löwe.

위버멘쉬라는 개념 자체, 그리고 그것이 우생학이나 인종론과 어떻게 다른지는 별도 항목 위버멘쉬에서 다룬다.

권력의지와 영원회귀는 어떻게 등장하나?

권력의지라는 말이 니체의 출판된 책에서 처음 주제로 등장하는 곳도 이 책이다. 제2부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곳에서 나는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섬기는 자의 의지에서도 나는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발견했다.”

Wo ich Lebendiges fand, da fand ich Willen zur Macht; und noch im Willen des Dienenden fand ich den Willen, Herr zu sein.

그러나 니체 자신이 이 책의 근본 사상이라 부른 것은 영원회귀였다. 제3부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산길에서 자기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에게 두 길이 만나는 성문을 보여 준다. 한 길은 영원히 뒤로, 다른 길은 영원히 앞으로 뻗어 있고, 둘이 만나는 성문 위에는 “순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Der Name des Thorwegs steht oben geschrieben: „Augenblick“.

난쟁이는 “모든 진리는 굽어 있고 시간 자체가 원”이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 생각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모든 것이 이미 셀 수 없이 있었고 다시 셀 수 없이 되풀이된다면, 작고 비천한 것까지 영원히 되돌아온다. 제3부 후반 「회복하는 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 생각에 구역질하며 쓰러졌다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삶 전체를 긍정하는 자로 일어선다. 제4부는 차라투스트라가 “보다 높은 인간들”, 곧 두 왕, 마지막 교황, 그림자 같은 시대의 낙오자들을 동굴로 맞아들이는 이야기로, 그들의 한계를 확인한 뒤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길을 나서며 끝난다. 이 개념들은 각각 별도 항목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서 설명한다.

이 책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쓰였나?

차라투스트라는 정치 강령을 내놓지 않지만, 그의 적의는 분명하다. 제2부 「타란툴라에 대하여」에서 그는 “평등의 설교자들”을 거미에 비유하며, 그들의 “정의”라는 말 뒤에 무력한 자들의 복수심이 숨어 있다고 공격한다. “평등의 설교자들이여, 너희는 내게 타란툴라이며 숨은 복수자들이다!”

Taranteln seid ihr mir und versteckte Rachsüchtige!

이 대목은 니체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르상티망, 곧 약자의 원한에서 나온 운동으로 본 후기 저작의 진단을 예고한다. 프란츠 메링 같은 초기 사회주의 비평가들이 니체를 착취하는 지배자를 위한 철학자로 본 것도 이런 대목들 때문이었다. 한편 독일어 위키백과의 니체 수용사 항목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중 니체 문서보관소가 승인한 니체 선집 전시판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모든 독일 병사의 배낭에 차라투스트라가 들어 있다”는 말이 생겼고, 연합국 선전은 거꾸로 니체를 독일 침략주의의 사상가로 그렸다. 나치 시대에는 알프레트 보임러가 위버멘쉬와 권력의지를 앞세워 니체를 국가사회주의의 선구자로 꾸몄다. 니체가 1880년대에 반유대주의와 독일 민족주의를 경멸했다는 사실은 이 과정에서 지워졌다.

누가 어떻게 이어받았나?

이 책의 언어는 처음부터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96년 같은 제목의 교향시를 썼고, 그 도입부는 20세기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더 유명해졌다. 철학에서는 카를 뢰비트가 『니체의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철학』(1935)에서 영원회귀를 니체 사상의 중심에 놓았고, 마르틴 하이데거는 1930~1940년대 니체 강의에서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의 통일을 서양 형이상학의 완성으로 해석했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바위를 끝없이 굴려 올리는 운명을 긍정하는 인간을 그리며 차라투스트라의 긍정을 자기 식으로 이어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쪽에서 게오르크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니체를 제국주의 시대 독일 부르주아 비합리주의의 창시자로 규정했고, 이 평가는 동독에서 사실상 공식 견해가 되어 동독 시절 니체의 책은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리는 극복과 자기 창조의 이상과 최후의 인간에 대한 경멸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해방의 언어로 들리기도 하고 귀족주의의 언어로 들리기도 했다. 이 양가성이 이 책이 오늘까지 논쟁 속에서 읽히는 이유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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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ietzschesour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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