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에른스트 마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요제프 디츠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빅토르 체르노프,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블라디미르 넵스키, 프란츠 메링, 폴 라파르그, 카를 카우츠키, 표트르 스트루베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학습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 1장 서론을 대신하여: 1908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1710년의 관념론자, 2장 경험비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I, 3장 물자체, 객관적 진리, 실천의 기준, 4장 물질과 경험, 인과성, 공간과 시간, 자유와 필연성, 5장 칸트를 오른쪽에서 비판한 사람들: 경험비판론의 동맹자와 계승자, 6장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과 철학적 관념론, 7장 경험비판론과 사적 유물론, 8장 결론과 두 서문: 철학의 당파 투쟁

초판 서문

마르크스주의자이고자 하는 상당수의 저술가들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맞서 그야말로 원정을 벌였다. 반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주로,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격하는 데 바쳐진 책 네 권이 세상에 나왔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자로프·보그다노프·루나차르스키·베르만·겔폰드·유시케비치·수보로프의 논문집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반대하는”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개요』(상트페테르부르크, 1908)이고, 다음으로는 유시케비치의 『유물론과 비판적 실재론』, 베르만의 『현대 인식론에 비추어 본 변증법』, 발렌티노프의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구성』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를 수십 번이나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정치적 견해의 날카로운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적대로 뭉친 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자신들이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처한다! 엥겔스의 변증법은 “신비주의”라고 베르만은 말한다. 엥겔스의 견해는 “낡았다”고 바자로프는 마치 자명한 일인 양 지나가는 말로 내뱉는다. 유물론은 “현대 인식론”, “최신 철학”(또는 “최신 실증주의”), “현대 자연과학의 철학”, 심지어 “20세기 자연과학의 철학”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우리의 용감한 전사들에게 반박당한 것으로 판명된다. 이 모든 자칭 최신 학설에 기대어, 우리의 변증법적 유물론 섬멸자들은 겁도 없이 노골적인 신앙주의[1]에까지 이르지만(루나차르스키에게서 가장 분명하지만, 결코 그 한 사람만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를 똑바로 규정해야 할 때가 오면 그들에게서는 모든 용기도, 자기 자신의 신념에 대한 모든 존중도 단번에 사라져 버린다. 실제로는 변증법적 유물론, 즉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포기한다. 말로는 끝없는 얼버무리기,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가려는 시도, 자신들의 후퇴를 은폐하려는 시도, 유물론 일반의 자리에 유물론자들 가운데 아무나 한 사람을 앉히려는 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무수한 유물론적 언명을 정면으로 검토하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뿐이다. 이것은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적절한 표현대로 참으로 “무릎 꿇은 반란”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철학적 수정주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견해에서 이탈하면서도, 버린 견해와 공공연히, 정면으로, 단호하고 분명하게 “결산”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서 서글픈 명성을 얻은 것은 오직 수정주의자들뿐이기 때문이다. 정통파가 마르크스의 낡은 견해에 반대하여 나선 일이 있을 때에는(예컨대 메링이 몇몇 역사적 명제에 반대했을 때처럼), 그것은 언제나 매우 명확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문필상의 발언에서 무언가 모호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에도 진실처럼 보이는 문구가 하나 있다. 루나차르스키의 문구다. “어쩌면 우리는”(즉, 분명히 『개요』의 필자 모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탐구하고 있다”(161쪽). 이 문구의 앞쪽 절반은 절대적 진리를, 뒤쪽 절반은 상대적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독자 앞에 내놓는 이 책에서 최대한 철저하게 보여 주려고 한다. 지금은 다만 이 말만 해 두겠다. 만약 우리의 철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몇몇 “탐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름으로 말했더라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더 많은 존중을 보였을 것이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나 역시 철학에서 “탐구하는” 사람이다. 곧, 이 글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간판 아래 믿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며 반동적인 무언가를 내놓는 사람들이 무엇에서 탈선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저자

1908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