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에른스트 마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요제프 디츠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빅토르 체르노프,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블라디미르 넵스키, 프란츠 메링, 폴 라파르그, 카를 카우츠키, 표트르 스트루베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학습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 1장 서론을 대신하여: 1908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1710년의 관념론자, 2장 경험비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I, 3장 물자체, 객관적 진리, 실천의 기준, 4장 물질과 경험, 인과성, 공간과 시간, 자유와 필연성, 5장 칸트를 오른쪽에서 비판한 사람들: 경험비판론의 동맹자와 계승자, 6장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과 철학적 관념론, 7장 경험비판론과 사적 유물론, 8장 결론과 두 서문: 철학의 당파 투쟁
서론을 대신하여. 1908년에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리고 1710년에 몇몇 관념론자들이 어떻게 유물론을 반박했는가
철학 문헌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유물론 반박에 종사하지 않는 현대 철학 교수(신학 교수도 마찬가지다)는 단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수백 번, 수천 번 유물론이 반박되었다고 선언했으며, 지금도 백한 번째로, 천한 번째로 그것을 계속 반박하고 있다. 우리의 수정주의자들은 모두 유물론 반박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자기들은 사실 유물론자 플레하노프만 반박할 뿐 유물론자 엥겔스나 유물론자 포이어바흐나 J. 디츠겐의 유물론적 견해를 반박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늉을 하고, 또 자기들은 “최신의” “현대적인” 실증주의, 자연과학 등의 관점에서 유물론을 반박한다는 시늉을 한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위에 든 책들에서 수백 개씩 모을 수 있는 인용문은 들지 않고, 나는 바자로프, 보그다노프, 유시케비치, 발렌티노프, 체르노프[2] 및 그 밖의 마흐주의자들이 유물론을 때려눕히는 데 쓰는 논거들을 상기시키겠다. 이 마지막 표현은 더 간결하고 단순할 뿐 아니라 이미 러시아 문헌에서 시민권을 얻었으므로, 나는 어디서나 “경험비판론자”라는 표현과 똑같이 이 표현을 쓰겠다. 에른스트 마흐가 현재 경험비판론의 가장 인기 있는 대표자라는 것은 철학 문헌에서 공인된 사실이며[3], 보그다노프와 유시케비치가 “순수한” 마흐주의에서 벗어난 것은 아래에서 보여 주겠지만 전적으로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물론자들은 사유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 즉 “물자체”, “경험 밖의” 물질, 우리의 인식 밖의 물질을 인정한다. 그들은 “경험”과 인식의 한계 너머에 있는 피안의 무언가를 인정함으로써 진짜 신비주의에 빠진다. 물질이 우리의 감각 기관에 작용하여 감각을 낳는다고 주장하면서, 유물론자들은 “알 수 없는 것”, 무(無)를 토대로 삼는다. 그들 자신이 우리의 감각을 인식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물론자들은 “칸트주의”에 빠지며(플레하노프는 “물자체”, 즉 우리 의식 밖의 사물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그렇다), 세계를 “이중화”하고 “이원론”을 설파한다. 그들에게는 현상 뒤에 또 물자체가 있고, 감각의 직접적 소여 뒤에 또 다른 무언가, 어떤 물신, “우상”, 절대자, “형이상학”의 원천, 종교의 쌍둥이(바자로프의 말대로 하면 “신성한 물질”)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흐주의자들이 유물론에 반대하여 내세우는 논거는 이러한 것들이며, 위에 이름을 든 저술가들은 이것을 갖가지 방식으로 되풀이하고 고쳐 말하고 있다.
이 논거들이 새로운 것인지, 그리고 정말로 “칸트주의에 빠진” 러시아 유물론자 한 사람만을 겨냥한 것인지 검증하기 위해, 우리는 옛 관념론자 조지 버클리의 저작에서 상세하게 인용하겠다. 이 역사적 고찰은 우리 글의 서론에서 더욱 필요하다. 아래에서 우리는 버클리와 그의 철학적 경향을 여러 차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흐주의자들은 마흐와 버클리의 관계도, 버클리 철학 노선의 본질도 잘못 그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1710년에 『인간 인식의 원리에 관한 논고』[4]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조지 버클리 주교의 저작은 다음과 같은 논의로 시작한다. “인간 인식의 대상을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것들이 감각에 의해 실제로 지각되는 관념(ideas)이거나, 우리가 정신의 감정과 작용을 관찰함으로써 얻는 관념이거나, 아니면 기억과 상상의 도움으로 형성되는 관념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시각을 통해 나는 빛과 색채, 그것들의 여러 정도와 종류에 관한 관념을 얻는다. 촉각을 통해 나는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운동과 저항을 지각한다… 후각은 나에게 냄새를 주고, 미각은 맛의 감각을 주며, 청각은 소리를 준다… 여러 관념이 서로 함께 관찰되므로, 사람들은 그것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사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일정한 색채, 맛, 냄새, 형태, 굳기가 함께 결합되어(to go together) 있는 것을 관찰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별개의 사물로 인정하고 사과라는 낱말로 부른다. 다른 관념의 집합(collections of ideas)은 돌, 나무, 책 및 그와 비슷한 감각적 사물들을 이룬다…”(제1절).
이것이 버클리 저작의 첫 번째 절의 내용이다. 우리는 그가 “단단한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차가운 것, 색채, 맛, 냄새” 등을 자기 철학의 기초로 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버클리에게 사물은 “관념의 집합”이며, 이 마지막 낱말로 그가 뜻하는 것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바로 위에 열거한 것들, 말하자면 성질이나 감각이다.
버클리는 이어서, 이 “관념들 또는 인식의 대상들” 외에 그것들을 지각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 “마음, 정신, 영혼 또는 나”가 그것이다(제2절). 자명한 일이다 — 하고 철학자는 결론짓는다 — “관념들”이 그것들을 지각하는 마음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를 확신하려면 ‘존재한다’라는 낱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탁자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내가 그것을 보고 감각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내 방에서 나가 있다면, 나는 탁자가 존재한다고 말할 것인데, 그것으로 나는 만일 내가 내 방에 있다면 그것을 지각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버클리는 자신의 저서 제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바로 여기서 그가 유물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과의 논쟁을 시작한다(제18절, 제19절 등).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하고 그는 말한다 — 누군가가 사물을 지각한다는 것과의 관계 없이 어떻게 사물의 절대적 존재를 말할 수 있는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their, 즉 사물의 esse is percipi, 제3절 — 철학사 교과서마다 인용되는 버클리의 명제).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집, 산, 강, 한마디로 감각적 사물들이 이성이 그것들을 지각한다는 것과는 다른, 자연적 또는 실재적 존재를 가진다는 견해가 우세하다”(제4절). 이 견해는 “명백한 모순”이다 — 하고 버클리는 말한다 —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이 대상들이란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는 사물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관념들 또는 감각들(ideas or sensations)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어떤 관념들이나 감각들, 또는 그것들의 결합이 지각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조리하지 않은가?”(제4절)
버클리는 이제 관념들의 집합을 그에게는 같은 뜻인 감각들의 결합,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유물론자들이 더 나아가 이 복합의… 아니 참, 이 감각들의 결합의 무슨 원천을 찾으려 하는 “부조리한” 시도를 한다고 비난한다. 제5절에서 유물론자들은 추상을 가지고 법석을 떤다는 비난을 받는데, 버클리가 보기에 감각을 객체로부터 떼어 내는 것은 공허한 추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 하고 그는 제2판에서 삭제된 제5절 끝부분에서 말한다 — 객체와 감각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고(are the same thing), 그러므로 서로에게서 추상될 수 없다.” “당신은 — 하고 버클리는 쓴다 — 관념들이 정신 밖에, 사유하지 않는 실체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모사 또는 반영(resemblances)일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관념은 관념 말고는 그 무엇과도 닮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 색이나 형태는 다른 색, 다른 형태 말고는 그 무엇과도 닮을 수 없다… 나는 묻는다. 우리의 관념들이 그 사본이나 표상이라고 하는, 이 가정된 원본들 또는 외부 사물들을 우리는 지각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관념이며,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할 수 없다고 당신이 말한다면, 나는 누구에게든 물어보겠다. 색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것과 닮았다고, 단단한 것이나 부드러운 것이 만질 수 없는 어떤 것과 닮았다는 따위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제8절).
사물이 우리에 대한 작용과 별개로 우리 밖에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두고 바자로프가 플레하노프에 맞서 내놓은 “논거”는, 독자가 보다시피, 버클리가 이름을 대지 않은 유물론자들에 맞서 내놓은 논거와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다. 버클리는 “물질 또는 물체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생각(§ 9)을 그토록 “모순”이고 그토록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서, 사실 그것을 반박하는 데 시간을 들일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그러나 — 하고 그는 말한다 — 물질의 존재에 관한 교의(tenet)가 철학자들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듯하고 그토록 많은 해로운 결론을 수반하는 만큼, 나는 이 편견을 완전히 폭로하고 뿌리 뽑는 데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말 많고 지루한 사람으로 보이는 쪽을 택하겠다”(§ 9).
버클리가 말하는 해로운 결론이 무엇인지는 곧 보게 될 것이다. 먼저 유물론자들에 대한 그의 이론적 논거부터 정리하자. 버클리는 객체의 “절대적” 존재, 즉 인간의 인식 밖에서의 사물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적대자들의 견해를 그들이 “물자체”를 인정한다는 식으로 대놓고 서술한다. 제24절에서 버클리는 자신이 반박하는 이 견해가 “감각적 객체들의 그 자체로서의 절대적 존재(objects in themselves) 또는 정신 밖에서의 존재”(인용판 167—168쪽)를 인정한다고 이탤릭체로 쓴다. 여기서는 철학적 견해의 두 기본 노선이 고전 철학자들을 오늘날 “새로운” 체계를 지어내는 자들과 구별해 주는 바로 그 솔직함과 명료함과 또렷함으로 그려져 있다.
유물론은 “그 자체로서의 객체” 또는 정신 밖의 객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관념과 감각은 이 객체들의 사본 또는 반영이다. 이와 반대되는 학설(관념론)에 따르면, 객체는 “정신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객체는 “감각들의 조합”이다.
이것은 1710년에, 즉 임마누엘 칸트가 태어나기 14년 전에 쓰였다. 그런데 우리 마흐주의자들은 자칭 “최신” 철학에 근거하여, “물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유물론이 칸트주의에 감염되거나 왜곡된 결과라는 발견을 해냈다! 마흐주의자들의 “새로운” 발견은 기본적인 철학 사조들의 역사에 대한 그들의 놀라운 무지의 산물이다.
그들의 다음 “새로운” 생각은 “물질”이나 “실체”라는 개념이 낡은 무비판적 견해의 잔재라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는 철학적 사유를 앞으로 밀고 나가 분석을 심화했고, 이러한 “절대자들”, “불변의 본질들” 따위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원전에 비추어 검증하려고 버클리를 펼쳐 보라. 그러면 그것이 허세 부린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버클리는 물질이 “nonentity”(존재하지 않는 존재자, § 68)이며 물질은 무라고(§ 80) 아주 분명히 말한다. “여러분이 — 하고 버클리는 유물론자들을 비꼰다 — 정 그러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무’라는 말을 쓰는 의미로 ‘물질’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인용판 p. 196—197). 처음에는 — 하고 버클리는 말한다 — 색·냄새 따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나중에는 이 견해를 버리고 그것들이 우리 감각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낡은 잘못된 개념들을 이렇게 제거하는 작업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잔재가 “실체”라는 개념(§ 73)인데, 이것도 똑같은 “편견”(p. 195)으로서 1710년에 버클리 주교가 최종적으로 폭로한 것이다! 그런데 1908년 우리 나라에는 “최신 실증주의”와 “최신 자연과학”에 와서야 비로소 이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제거하기에 이르렀다는 아베나리우스·페촐트·마흐 일당의 말을 진지하게 믿어 버린 익살꾼들이 있다.
바로 이 익살꾼들(보그다노프도 그중 하나다)은, 인간의 의식 밖에 존재하는 사물이 인간의 의식에 무슨 “반영”된다고 말하는, 영원히 반박당하는 유물론자들의 학설에 담긴 “세계의 이중화”의 오류를 밝혀낸 것이 바로 새로운 철학이라고 독자들에게 장담한다. 이 “이중화”에 관해서 위에 이름을 든 저자들은 절절한 말을 숱하게 써 댔다. 그들은 건망증 때문인지 무지 때문인지, 이 새로운 발견들이 이미 1710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것들(관념들 혹은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감각적 객체들이 이중으로(twofold) 존재한다는 가정, 즉 한 가지 존재는 가지적(可知的)인 존재 또는 정신 안에서의 존재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실재적인 존재, 곧 정신 밖에서의 존재라는 가정 때문에 극도로 흐려지고 뒤엉켜 가장 위험한 오류로 이끌려 갔다”고 버클리는 쓴다(정신 밖이란 곧 의식 밖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버클리는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할 수 있다고 보는 이 “불합리한” 견해를 조롱한다! “불합리”의 근원은 물론 “사물”과 “관념”의 구별(§ 87), 곧 “외적 객체들의 가정”이다. 버클리가 1710년에 발견하고 보그다노프가 1908년에 다시 발견했듯이, 바로 이 근원이 물신과 우상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 “물질의 존재, 즉 지각되지 않는 사물들의 존재는 무신론자들과 숙명론자들의 주된 버팀목이었을 뿐 아니라, 온갖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도 바로 이 원리에 기대고 있다”고 버클리는 말한다(§ 94).
여기서 우리는 외부 세계의 존재에 관한 “불합리한” 학설에서 나오는 저 “해로운” 결론들에 이르렀다. 이 결론들 때문에 버클리 주교는 이 학설을 이론적으로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지자들을 원수처럼 맹렬히 박해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의 학설, 즉 물체적 실체의 학설을 토대로 무신론과 종교 부정의 온갖 불경한 구축물들이 세워졌다... 물질적 실체가 어느 시대에나 무신론자들에게 얼마나 위대한 벗이었는지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괴물 같은 체계들은 모두 너무나 명백하게, 너무나 필연적으로 물질적 실체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 주춧돌을 치워 버리기만 하면 건물 전체가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신론자들의 개별적인 가련한 분파들의 불합리한 학설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92, 앞에 인용한 판 203—204쪽).
“물질은 자연에서 추방되기만 하면 그토록 많은 회의적이고 불경한 구축물들을, 그토록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논쟁과 뒤엉킨 문제들을 함께 데리고 사라진다”(마흐가 1870년대에 발견한 “사유경제의 원리”! “최소한의 힘의 소비라는 원리에 따라 세계를 사유하는 것으로서의 철학” — 아베나리우스, 1876년!). “이 논쟁과 문제들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물질은 인류에게 그토록 많은 헛된 수고를 끼쳤으므로, 설령 우리가 물질에 반대하여 내세운 논거들이 충분히 증명되지 못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나로서는 그것들이 완전히 명백하다고 생각하지만), 진리와 평화와 종교를 사랑하는 모든 벗들은 이 논거들이 충분하다고 인정되기를 바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96).
버클리 주교는 솔직하게, 순박하게 논했다! 오늘날에는 철학에서 “물질”을 “경제적으로” 제거한다는 바로 그 사상을 “새로운” 용어로 뒤엉킨, 훨씬 더 교활한 형태로 포장해서, 순진한 사람들이 이 사상을 “최신” 철학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버클리는 자기 철학의 경향에 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관념론적 알몸을 가리고 그것을 불합리한 데가 없는 것으로, “상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그려 내려고도 애썼다. 우리의 철학으로써는 — 그는 지금이라면 주관적 관념론과 유아론이라고 불렸을 것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철학으로써는 “우리는 자연 속의 어떤 사물도 잃지 않는다”(§ 34). 자연은 남으며, 실재하는 사물과 공상의 구별도 남는다 — 다만 “둘 다 똑같이 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감각이나 반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사물의 존재도 결코 반박하지 않는다. 내가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는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것,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 이 점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존재를 부정하는 유일한 것은 철학자들(버클리의 이탤릭)이 물질 또는 물체적 실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나머지 인류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없으며, 감히 말하건대 인류는 그것이 없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무신론자에게는 자신의 무신론을 근거 짓기 위해 공허한 이름의 이 유령이 정말로 필요하다……”.
이 생각은 § 37에서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거기서 버클리는 자기 철학이 물체적 실체를 없애 버린다는 비난에 이렇게 답한다. “만일 실체라는 말을 일상적(vulgar) 의미로, 즉 감각적 성질들, 연장, 견고성, 무게 따위의 결합으로 이해한다면, 나를 그것들을 없앤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실체라는 말을 철학적 의미로, 즉 의식 밖에 (존재하는) 우유성 또는 성질들의 기체(基體)로 이해한다면, 그때는 나는 참으로 그것을 없앤다는 것을 인정한다.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것, 상상 속에서조차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없앤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관념론자이자 버클리주의의 지지자로서 버클리의 저작을 펴내고 거기에 자신의 주석을 붙인 영국 철학자 프레이저가 버클리의 학설을 “자연적 실재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앞의 인용판, p. X). 이 우스꽝스러운 용어법은 반드시 짚어 두어야 한다. 그것은 실재론을 흉내 내려는 버클리의 의도를 참으로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서술에서 다른 형태로, 다른 말의 껍데기를 씌워 바로 이 술책 내지 위장을 되풀이하는 “최신” “실증주의자들”을 여러 번 만나게 될 것이다. 버클리는 실재하는 사물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버클리는 온 인류의 견해와 결별하지 않는다! 버클리는 “다만” 철학자들의 학설, 즉 외부 세계와 그것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반영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진지하고 단호하게 자기의 모든 논의의 기초를 두는 인식론을 부정할 뿐이다. 버클리는 자연과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연과학은 언제나 이 인식론, 즉 유물론적 인식론 위에 (대개는 무의식적으로) 서 있었고 지금도 서 있다. “우리는, — § 59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는다 —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버클리는 “순수 경험”의 철학이다)[5] “우리 의식 속에서 관념들이 공존하고 계기하는 것에 관한……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조건과 매우 크게 다른 조건 속에 놓인다면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또는 무엇을 보게 될지)에 관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자연의 인식이 있으며, 이 인식은” (들어 보라!) “위에서 말한 것과 완전히 모순 없이 그 의의와 확실성을 유지할 수 있다”.
외부 세계, 자연을 — 신이 우리 정신 속에 불러일으키는 “감각의 결합”으로 간주하자. 이것을 인정하라, 의식 밖에서, 인간 밖에서 이 감각들의 “기초”를 찾기를 그만두라 — 그러면 나는 나의 관념론적 인식론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자연과학을, 그 결론들의 모든 의의와 확실성을 인정하겠다. “세계와 종교”를 옹호하는 나의 결론을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테두리, 오직 이 테두리뿐이다. 이것이 버클리의 생각이다. 관념론 철학의 본질과 그 사회적 의의를 올바로 표현하는 이 생각을 우리는 뒤에 마흐주의와 자연과학의 관계를 논할 때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20세기에 최신 실증주의자이자 비판적 실재론자인 P. 유시케비치가 버클리 주교에게서 빌려 온 또 하나의 최신 발견을 지적해 두자. 이 발견이란 “경험상징론”이다. 버클리의 “가장 애호하는 이론”은, — A. 프레이저의 말에 따르면, — “보편적 자연 상징론”(앞에 인용한 판, p. 190) 또는 “자연의 상징론”(Natural Symbolism)이다. 이 말이 1871년에 나온 판본에 실려 있지 않았다면, 영국의 신앙주의 철학자 프레이저가 현대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푸앵카레와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유시케비치를 표절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레이저를 열광하게 한 버클리의 이론 자체를 주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관념들의 결합은”(버클리에게 관념과 사물은 같은 것임을 잊지 말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으며, 다만 이런저런 식으로 표시되는 사물에 대한 표지나 기호의 관계를 전제할 뿐이다”(§ 65). “그러므로 결과의 산출에 협력하거나 도움을 주는 원인이라는 범주의 관점에서(under the notion of a cause) 보면 전혀 설명할 수 없고 우리를 커다란 부조리로 이끄는 사물들도, 그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한 표지나 기호로 본다면 ……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66). 물론 버클리와 프레이저의 생각으로는, 이 “경험상징”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버클리의 이론에서 상징론이 갖는 인식론적 의의는, 그것이 “사물을 물체적 원인으로 설명한다고 자처하는” “학설”을 대체해야 한다는 데 있다(§ 66).
우리 앞에는 인과성 문제에 관한 두 가지 철학적 방향이 있다. 하나는 “사물을 물체적 원인으로 설명한다고 자처한다”, — 이것이 “부조리한”, 버클리 주교가 논박한 “물질의 학설”과 결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원인의 개념”을 (신이)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 쓰는 “표지나 기호”의 개념으로 환원한다. 20세기의 의상을 걸친 이 두 방향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마흐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태도를 분석할 때 만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실재성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지적해 둘 것은, 버클리가 의식 밖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실재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을 구별할 기준을 찾으려 애쓴다는 점이다. 제36절에서 그는 인간의 정신이 제멋대로 불러일으키는 “관념들”은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하는 관념들에 비해 희미하고 약하며 불안정하다. 이 후자의 관념들은 일정한 규칙 또는 자연법칙에 따라 우리 안에 새겨지므로, 인간의 정신보다 더 강력하고 더 지혜로운 정신의 작용을 증언한다. 이러한 관념들은 앞의 관념들보다 더 많은 실재성을 지닌다고들 하는데, 이는 그것들이 더 명료하고 질서 정연하며 판명하고, 그것들을 지각하는 정신이 꾸며 낸 허구가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곳(제84절)에서 버클리는 실재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여러 사람이 동일한 감각적 감각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과 결부시키려 애쓴다. 예컨대 누가 우리에게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자. 그 변화가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어떻게 판정할 것인가? “만약 식탁에 앉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보고, 그 냄새를 맡고, 그 포도주를 마시고 그 맛을 느끼고, 포도주를 마신 결과를 자기 몸으로 겪었다면, 내 생각에 그 포도주의 실재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감각적 관념들을 동시에 의식하는 것은, 상상된 대상과 감정을 순전히 개인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의식하는 것과 달리, 여기서 첫 번째 종류의 관념들이 지닌 실재성의 증거로 간주된다.”
이로부터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을 마치 그가 개인적 지각과 집단적 지각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바로 이 차이 위에 실재성의 기준을 세우려 한다. “관념들”을 신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작용에서 끌어냄으로써 버클리는 이렇게 객관적 관념론에 다가간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 아니라, “자연법칙”도, “더 실재적인” 관념을 덜 실재적인 관념과 구별하는 법칙 등도 창조하는 하나의 최고의 정신적 원인이 낳은 결과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버클리가 특히 대중적인 형식으로 자기 견해를 서술하려 애쓴 또 다른 저작 『힐라스와 필로노우스의 세 대화』(1713년)에서, 그는 자기 학설과 유물론 학설의 대립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도 여러분(유물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무언가가 밖에서 작용하는 이상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힘들, 즉 우리와 다른 존재에 속하는 힘들이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강력한 존재가 어떤 종류의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우리는 갈라진다. 나는 그것이 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여러분은 그것이 물질이거나 아니면 무엇인지 나도 모르는 (덧붙이자면 여러분도 모르는) 제3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인용한 판본, p. 335).
프레이저는 이렇게 논평한다. “문제 전체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물론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감각적 현상은 물질적 실체 또는 어떤 미지의 ‘제3의 본성’이 일으킨다. 버클리의 생각에 따르면 이성적 의지가 일으킨다. 흄과 실증주의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그 기원은 절대적으로 알 수 없으며, 우리는 다만 관습에 따라 귀납적 방법으로 그것들을 사실로서 일반화할 수 있을 뿐이다.”
영국의 버클리주의자 프레이저는 여기서 자신의 일관된 관념론적 관점에서, 유물론자 엥겔스가 그토록 명료하게 규정한 철학의 바로 그 기본 “노선들”에 다가간다. 엥겔스는 저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에서 철학자들을 “두 개의 큰 진영”, 즉 유물론자와 관념론자로 나눈다. 엥겔스는 — 프레이저보다 훨씬 더 발전되고 다양하며 내용이 풍부한 두 방향의 이론들을 고려하는 엥겔스는 — 그 둘의 기본적 차이를, 유물론자들에게는 자연이 일차적인 것이고 정신이 이차적인 것인 반면 관념론자들에게는 그 반대라는 데서 찾는다. 엥겔스는 이 양자 사이에 흄과 칸트의 지지자들을 놓는데, 이들은 세계 인식의 가능성, 또는 적어도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자들이며, 엥겔스는 이들을 불가지론자라고 부른다. 엥겔스는 『L. 포이어바흐』에서 이 마지막 용어를 흄의 지지자들(프레이저가 거명하는, 그리고 스스로를 즐겨 “실증주의자”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만 적용하지만, 「사적 유물론에 관하여」라는 글에서는 “신칸트주의적 불가지론자”의 관점에 대해 직접 말하면서 신칸트주의를 불가지론의 한 변종으로 본다[6].
우리는 여기서 엥겔스의 이 놀랍도록 정확하고 심오한 논의(마흐주의자들이 뻔뻔스럽게 무시하는 논의)에 머물 수 없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논할 것이다. 지금은 이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법과, 철학의 기본 방향들에 대한 일관된 유물론자의 견해와 일관된 관념론자의 견해라는 두 극단의 이 일치를 지적하는 데 그치겠다. 이 방향들(앞으로의 서술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다루어야 할 방향들)을 예시하기 위해, 버클리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18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견해를 간략히 짚어 두자.
흄은 『인간 인식에 관한 연구』의 (제12)장, 회의주의 철학을 다룬 대목에서 이렇게 논한다. “인간은 자연적 본능이나 성향에 따라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으며, 우리는 아무런 추론 없이도, 심지어 추론에 의지하기도 전에, 언제나 외부 세계(external universe)를 상정한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세계는 우리의 지각에 의존하지 않으며, 설령 우리와 감각 능력을 지닌 다른 모든 피조물이 사라지거나 절멸되더라도 존재할 것이다. 심지어 동물들조차 이와 비슷한 견해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들의 모든 생각과 계획과 행동에서 외부 객체에 대한 이 믿음을 간직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지닌 이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견해는 가장 가벼운(slightest) 철학에 의해서도 곧 무너진다. 그 철학은 우리 마음에는 상(像)이나 지각 말고는 그 무엇도 결코 주어질 수 없으며, 감각은 이 상들이 전달되는 통로(inlets)에 불과하여 마음과 객체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관계(intercourse)도 맺어 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보는 탁자는 우리가 거기서 멀어지면 더 작아 보이지만,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제의 탁자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나타난 것은 탁자의 상(image)일 뿐이었다. 이것이 이성의 명백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추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우리가 ‘이 탁자’, ‘이 나무’라고 말하는 대상들(existences)이 우리 마음의 지각일 뿐이라는 점을 의심한 적이 없다… 우리 마음속의 지각이 마음 자체의 에너지에서 비롯되거나,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어떤 정신의 작용에서 비롯되거나, 우리에게 더욱 알려지지 않은 다른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각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과 유사한 외부 대상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대체 어떤 논거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종류의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경험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경험은 침묵하며,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은 지각 말고는 어떤 사물도 결코 마주하지 못하며, 지각과 객체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는 어떤 경험도 결코 해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계를 가정하는 것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다. 우리 감각의 진실성을 증명하려고 최고 존재자의 진실성에 호소하는 것은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문제를 비켜 가는 것이다… 일단 외부 세계를 문제 삼으면, 우리는 그러한 존재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을 모든 논거를 잃게 될 것이다”[7].
흄도 『인간 본성론』 제4부 제2절 「감각에 관한 회의주의에 대하여」에서 같은 말을 한다. “우리의 지각이 우리의 유일한 대상이다”(르누비에와 파일롱의 1878년 프랑스어 번역본, p. 281). 흄이 회의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감각을 사물·정신 등의 작용으로 설명하기를 거부하는 것, 지각을 한편으로는 외부 세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신이나 미지의 정신으로 환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흄의 프랑스어 번역본 서문을 쓴 파일롱(F. Pillon)은 (아래에서 보겠지만) 마흐와 가까운 경향의 철학자인데, 흄에게서 주체와 객체는 “여러 지각의 집단”으로, “의식의 요소들, 인상들, 관념들 등등”으로 환원되며, 문제는 오직 “이 요소들의 집단화와 결합”일 뿐이라고 옳게 말한다[8]. 마찬가지로 영국의 흄주의자이자 “불가지론”이라는 적확하고 올바른 표현을 만든 헉슬리도 흄에 관한 자신의 책에서, 흄은 “감각”을 “원초적이고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의식 상태”로 받아들이면서도, 감각의 기원을 객체가 인간에게 미치는 작용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성의 창조적 힘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의 문제에서는 완전히 일관되지 못하다고 강조한다. “그(흄)는 실재론과 관념론을 똑같이 개연적인 가설로 용인한다”[9]. 흄은 감각 너머로 나아가지 않는다. “빨간색과 파란색, 장미의 향기, 이것은 단순 지각이다… 붉은 장미는 우리에게 복합 지각(complex impression)을 주는데, 그것은 빨간색, 장미의 향기 등의 단순 지각으로 분해될 수 있다”(같은 곳, pp. 64—65). 흄은 “유물론적 입장”도 “관념론적 입장”도 용인한다(p. 82). “지각의 집합”은 피히테의 “자아”가 낳은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실재적인 것(real something)의 “모상이거나 적어도 상징”일 수도 있다. 헉슬리는 흄을 이렇게 해석한다.
유물론자들로 말하자면, 백과전서파의 우두머리 디드로가 버클리에 관해 내린 평가는 이러하다. “관념론자들이란 자기 자신의 존재와 우리 안에서 잇따라 바뀌는 감각의 존재만을 알려진 것으로 인정하고 그 밖의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는 철학자들을 이른다. 내 생각에 오직 장님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기괴한 체계다! 그런데 이 체계는, 인간 지성의 수치요 철학의 수치이지만, 모든 체계 가운데 가장 터무니없는데도 반박하기는 가장 어렵다”[10]. 그리고 디드로는 현대 유물론의 견해(관념론을 반박하는 데는 논거와 삼단논법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여기서 문제는 이론적 논증에 있지 않다는 견해)에 바싹 다가서서, 관념론자 버클리와 감각론자 콩디야크의 전제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콩디야크는 감각을 우리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는 견해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결론이 나오지 않도록 버클리를 반박하는 일에 착수했어야 했다.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화』에서 후자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이렇게 서술한다. “…피아노가 감각 능력과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해 보게. 그리고 말해 보게, 그렇다면 그 피아노는 자네가 그 건반으로 연주한 아리아를 스스로 되풀이하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 감각 능력과 기억을 부여받은 악기일세. 우리의 감각은 건반이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그 건반을 두드리며, 건반은 종종 저절로 울리기도 하네. 내 생각에, 자네와 나처럼 조직된 피아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것이 전부일세.” 달랑베르는 그런 피아노라면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작은 피아노들을 낳을 능력도 지녀야 할 것이라고 답한다. — 의심할 바 없네, — 디드로가 반박한다. 그러나 알을 보라. “신학의 모든 교리와 지상의 모든 신전을 뒤엎는 것이 바로 이것일세. 이 알이란 무엇인가? 배자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감각 없는 덩어리일세. 그러면 배자가 들어간 뒤에는 무엇인가? 감각 없는 덩어리일세. 그 배자 역시 불활성의 조잡한 액체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 덩어리는 어떻게 다른 조직으로, 감각 능력으로, 생명으로 이행하는가? 열에 의해서일세. 그러면 열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인가? 운동일세.” 알에서 깨어난 동물은 자네의 모든 감정을 지니고 자네의 모든 행동을 해낸다. “데카르트와 함께 이것이 — 단순한 모방 기계라고 주장하겠는가? 그러면 어린아이들이 자네를 보고 깔깔대며 웃을 것이고, 철학자들은 이것이 기계라면 자네도 — 똑같은 기계라고 답할 걸세. 이 동물들과 자네 사이의 차이가 오직 조직에만 있다고 인정한다면, 자네는 건전한 상식과 분별을 보여 주는 것이고 옳을 걸세. 그러나 그로부터 자네에게 불리한 결론이 따라 나올 것이니, 곧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된 불활성 물질로부터, 다른 불활성 물질의 작용과 그다음 열과 운동의 작용 아래에서, 감각, 생명, 기억, 의식, 감정, 사유의 능력이 생겨난다는 결론일세.” 둘 중 하나다, — 디드로는 계속한다. — 하나는 발전의 특정 단계에 이른 순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알 속에 스며드는 어떤 ‘숨은 요소’를 알 안에 상정하는 것이다, — 그 요소가 공간을 차지하는지, 물질적인지, 아니면 일부러 창조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는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며 모순과 부조리로 이끈다. 아니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단순한 가정, 즉 감각 능력은 물질의 보편적 속성이거나 물질의 조직화의 산물이라는 가정”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이 가정은 본질적으로 물질과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달랑베르의 반론에 대해 디드로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데 당신은 사물 일반의 본질도, 물질의 본질도, 감각의 본질도 모르면서, 감각 능력이 본질상 물질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당신은 운동의 본성, 운동이 어떤 물체 안에 존재한다는 것, 운동이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전달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한다는 말인가?” 달랑베르: “감각의 본성도 물질의 본성도 모르지만, 나는 감각하는 능력이 단순하고 단일하며 나눌 수 없는 성질이고, 나눌 수 있는 주체 또는 기체(suppôt)와는 양립할 수 없는 성질임을 안다.” 디드로: “형이상학적·신학적 헛소리다! 뭐라고? 물질의 모든 성질, 우리의 감각이 접근할 수 있는 물질의 모든 형태가 본질상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정말 보지 못하는가? 불투과성에 더 크거나 더 작은 정도란 있을 수 없다. 둥근 물체의 절반은 있을 수 있어도 둥긂의 절반은 있을 수 없다…”. “물리학자가 되라. 그리고 어떤 결과가 어떻게 산출되는지를 볼 때는, 비록 원인과 결과의 연관을 설명할 수 없더라도, 그 결과가 파생된 것임을 인정하는 데 동의하라. 논리적이 되라. 그리고 존재하며 모든 것을 설명하는 원인 대신에, 파악할 수 없고 결과와의 연관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으며 단 하나의 난점도 해결하지 못한 채 무수한 난점만 낳는 어떤 다른 원인을 갖다 놓지 말라.” 달랑베르: “그럼, 내가 이 원인에서 출발한다면?” 디드로: “우주에도,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단 하나의 실체만이 있다. 손풍금은 나무로, 인간은 살로 되어 있다. 검은방울새는 살로, 음악가는 — 달리 조직된 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 같은 기원과 같은 형성을 지니며, 같은 기능과 같은 목적을 지닌다.” 달랑베르: “그러면 당신의 두 피아노 사이에서 소리의 대응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디드로: “…감각 능력을 지닌 악기, 또는 동물은 이러저러한 소리 뒤에 자기 밖에서 이러저러한 결과가 따른다는 것, 자기와 비슷한 다른 감각하는 악기들이나 다른 동물들이 다가오거나 물러나고, 요구하거나 제안하고, 상처를 입히거나 어루만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그 자신의 기억 속에서, 또 다른 동물들의 기억 속에서 특정한 소리들과 결부된다. 인간들 사이의 교류에는 소리와 행동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하라. 그리고 내 체계의 힘을 온전히 평가하려면, 그 앞에도 버클리가 물체의 존재에 반대하여 내세운 것과 같은 극복할 수 없는 난점이 놓여 있다는 점에 또한 주목하라. 감각하는 피아노가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피아노이며 우주의 모든 조화가 자기 안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한 광기의 순간이 있었다”[11].
이것은 1769년에 쓰였다. 이것으로 우리의 짧은 역사적 참고를 마치겠다. “최신 실증주의”를 검토하면서 우리는 “미친 피아노”와, 그리고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세계의 조화와 여러 번 마주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한 가지 결론만 내리는 데 그치자. “최신” 마흐주의자들은 버클리 주교에게 없던 논거를 단 하나도, 문자 그대로 단 하나도 유물론자들에게 내놓지 못했다.
진기한 일로 하나 지적해 두자. 이 마흐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발렌티노프는 자기 입장의 거짓됨을 어렴풋이 느끼고 버클리와 자신의 친연성에 대한 “흔적을 지우려” 애썼는데, 그 방식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그의 책 150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는다. “…마흐를 논하면서 버클리를 들먹일 때, 우리는 어느 버클리를 말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전통적으로 독아론자로 통하는(발렌티노프는 ‘여겨지는’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버클리인가, 신의 직접적 현존과 섭리를 옹호하는 버클리인가? 일반적으로 말해(?), 무신론을 분쇄하는 철학하는 주교로서의 버클리인가, 아니면 사려 깊은 분석가로서의 버클리인가? 독아론자로서의 버클리와도, 종교적 형이상학의 설교자로서의 버클리와도 마흐는 실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발렌티노프는 왜 자기가 “사려 깊은 분석가”인 관념론자 버클리를 유물론자 디드로로부터 변호해야 했는지 스스로 분명히 깨닫지 못한 채 뒤죽박죽 헤매고 있다. 디드로는 기본적인 철학 방향들을 명확히 대립시켰다. 발렌티노프는 그것들을 뒤섞으면서, 그 와중에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를 이렇게 위로한다. “우리는 — 그는 이렇게 쓴다 — 마흐가 버클리의 관념론적 견해에 ‘가깝다’는 것을, 설령 그런 것이 실제로 있다 하더라도, 철학적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149쪽). 철학의 화해할 수 없는 두 기본 방향을 뒤섞는 것 — 여기에 무슨 “범죄”가 있단 말인가? 마흐와 아베나리우스의 깊은 지혜란 모두 결국 이것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바로 이 깊은 지혜의 분석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