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에른스트 마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요제프 디츠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빅토르 체르노프,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블라디미르 넵스키, 프란츠 메링, 폴 라파르그, 카를 카우츠키, 표트르 스트루베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학습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 1장 서론을 대신하여: 1908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1710년의 관념론자, 2장 경험비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I, 3장 물자체, 객관적 진리, 실천의 기준, 4장 물질과 경험, 인과성, 공간과 시간, 자유와 필연성, 5장 칸트를 오른쪽에서 비판한 사람들: 경험비판론의 동맹자와 계승자, 6장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과 철학적 관념론, 7장 경험비판론과 사적 유물론, 8장 결론과 두 서문: 철학의 당파 투쟁

제3장 변증법적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인식론. III

1. 물질이란 무엇인가? 경험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들 가운데 첫째 물음을 들고 관념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마흐주의자들도 그 가운데 하나로서, 유물론자들에게 줄곧 따지고 든다. 둘째 물음을 들고는 — 유물론자들이 마흐주의자들에게 따지고 든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 보자.

아베나리우스는 물질 문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정화된 ‘완전한 경험’ 안에는 ‘물리적인 것’, 즉 형이상학적 절대 개념으로서의 ‘물질’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물질’은 하나의 추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중심항을 사상(捨象)했을 때의 대립항들의 총체일 것이다. 원리적 동격에서, 즉 ‘완전한 경험’에서 중심항 없는 대립항이 사유 불가능(undenkbar)하듯이, 형이상학적 절대 개념으로서의 ‘물질’도 완전한 무의미(Unding)다”(「Bemerkungen」, 앞에 든 잡지, S. 2, § 119).

이 횡설수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아베나리우스가 물리적인 것 또는 물질을 절대자요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의 원리적 동격 이론(또는 새로운 말로 하면 “완전한 경험” 이론)에 따르면 대립항은 중심항과 떼어 놓을 수 없고, 환경은 자아와 떼어 놓을 수 없으며, 비자아는 자아와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J. G. 피히테가 말했듯이). 이 이론이 변장한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점은 이미 해당 대목에서 말했으니, “물질”에 대한 아베나리우스의 공격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아주 분명하다. 관념론자는 물리적인 것이 심리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며, 따라서 그러한 존재를 가리키려고 철학이 만들어 낸 개념을 배척한다. 물질이 “물리적인 것”(즉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고 직접 주어진 것, 정신병원 거주자들 말고는 아무도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아베나리우스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환경과 자아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뿐이다.

마흐는 같은 생각을 철학적 곡예 없이 더 단순하게 표현한다. “우리가 물질이라 부르는 것은 요소들(‘감각들’)의 일정한 법칙적 연결일 뿐이다”(『감각의 분석』, 265쪽). 마흐에게는 이런 주장을 내세움으로써 자기가 통상적 세계관에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것은 낡고도 낡은 주관적 관념론으로, 그 알몸을 “요소”라는 말로 가렸을 뿐이다.

끝으로, 유물론과 미친 듯이 싸우는 영국의 마흐주의자 피어슨은 이렇게 말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감각적 지각들의 어느 정도 항상적인 일정한 집단들을 분류하여 한데 묶고 물질이라 부르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 우리는 이렇게 해서 J. S. 밀의 정의, 즉 물질은 감각들의 항상적 가능성이라는 정의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 그러나 물질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물질이 운동하는 사물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The Grammar of Science』, 1900, 2nd ed., p. 249). 여기에는 “요소들”이라는 무화과 잎조차 없으며, 관념론자가 불가지론자에게 대놓고 손을 내민다.

독자는 경험비판론 창시자들의 이 모든 논의가 전적으로, 오로지 사유와 존재의 관계, 감각과 물리적인 것의 관계라는 본래의 인식론적 문제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 “최신 자연과학”이나 “최신 실증주의”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면 러시아 마흐주의자들만큼 한없이 순진해야 했다. 우리가 인용한 철학자들은 모두,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어떤 이는 얼버무리며, 유물론의 기본 철학 노선(존재에서 사유로, 물질에서 감각으로)을 관념론의 반대 노선으로 바꿔 놓는다. 그들이 물질을 부정하는 것은 인식론적 문제들을 우리 감각의 외적·객관적 원천, 곧 우리 감각에 상응하는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진 해결이다. 반대로 관념론자와 불가지론자가 부정하는 그 철학 노선을 인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정의들로 표현된다. 물질이란 우리의 감각 기관에 작용하여 감각을 낳는 것이다. 물질이란 감각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재이다. 등등.

보그다노프는 벨토프하고만 논쟁하는 척하며 비겁하게 엥겔스를 피해 가면서, 그런 정의들에 분개한다. 글쎄, 그 정의들은 철학의 한 방향에서는 물질이 제1차적인 것이고 정신이 제2차적인 것이며 다른 방향에서는 그 반대라는 저 “공식”(엥겔스의 공식이라는 말을 우리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덧붙이는 것을 잊는다)의 “단순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경험일원론』, 제3권, XVI쪽). 러시아의 마흐주의자들은 모두 보그다노프의 이 “반박”을 열광적으로 되풀이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았더라도 이 사람들은, 인식론의 두 궁극적 개념에 대해서는 그중 어느 것을 제1차적인 것으로 삼는가를 지적하는 것 말고는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 본질적으로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주어진 개념을 다른, 더 넓은 개념 아래에 포괄시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내가 “당나귀는 동물이다”라고 정의할 때, 나는 “당나귀”라는 개념을 더 넓은 개념 아래에 포괄시킨다. 그렇다면 이제 묻건대, 인식론이 다룰 수 있는 개념 가운데 존재와 사유, 물질과 감각,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라는 개념보다 더 넓은 개념이 있는가? 없다. 이것들은 극도로 넓은, 가장 넓은 개념들이며, 지금까지 인식론은 본질적으로(언제나 있을 수 있는 명명법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들을 넘어서 나아가지 못했다. 이 극도로 넓은 개념들의 두 “계열”에 대해, 어느 것을 제1차적인 것으로 삼는가라는 “단순한 반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협잡이나 극도의 우둔함뿐이다.

물질에 관한 위의 세 가지 논의를 보라. 그것들은 모두 무엇으로 귀결되는가? 이 철학자들이 심리적인 것, 곧 나에서 물리적인 것, 곧 환경으로, 중심항에서 대립항으로 나아간다는 것, 또는 감각에서 물질로, 또는 감각적 지각에서 물질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아베나리우스, 마흐, 피어슨이 본질적으로 기본 개념들에 대해 그들의 철학 노선의 방향을 지적하는 것 말고 다른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나란 무엇인가, 감각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지각이란 무엇인가를 달리, 또 어떤 별도의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었겠는가? 문제를 충분히 명료하게 제기하기만 하면, 마흐주의자들이 물질·자연·존재·물리적인 것이 제1차적인 것이고 정신·의식·감각·심리적인 것이 제2차적인 것이라는 말의 반복으로 귀결되지 않는 물질의 정의를 유물론자들에게 요구할 때,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천재성은 특히, 그들이 새로운 낱말, 난해한 용어, 교묘한 “주의”들을 가지고 노는 현학자의 유희를 경멸하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말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났다. 철학에는 유물론적 노선과 관념론적 노선이 있으며, 그 사이에 불가지론의 여러 색조가 있다고. 철학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새로운” 가치론, “새로운” 지대론 따위를 만들어 내려는 안간힘과 똑같은 정신의 빈곤을 드러낸다.

아베나리우스의 제자 카르스타니엔은 아베나리우스가 사적인 대화에서 “나는 물리적인 것도 심리적인 것도 알지 못하며, 오직 제3의 것만을 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제3의 것에 대한 개념을 아베나리우스가 제시하지 않았다는 한 저술가의 지적에 페촐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그가 왜 그러한 개념을 내놓을 수 없었는지 안다. 제3의 것에는 대립개념(Gegenbegriff— 상관개념)이 없다... 제3의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비논리적으로 제기된 것이다”(『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der reinen Erfahrung』, II, 329). 이 마지막 개념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은 페촐트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제3의 것”을 끌어대는 것이 한낱 얼버무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물리적인 것이 무엇이고 심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현재로서는 “제3의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베나리우스는 이 얼버무림으로 흔적을 감추었을 뿐이며, 실제로는 나를 제1차적인 것(중심항)으로, 자연(환경)을 제2차적인 것(대립항)으로 선언했다.

물론 물질과 의식의 대립도 매우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이 경우에는 오로지 무엇을 제1차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무엇을 제2차적인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인식론의 기본 문제의 범위 안에서만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이 대립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경험비판론 철학에서 경험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자. 『순수경험 비판』의 제1절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내세운다. “우리 환경의 어떤 부분이든 인간 개인들과 다음과 같은 관계에 있다. 즉 그 부분이 나타나면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진술한다. 이러저러한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안다, 이러저러한 것은 경험이다, 또는 경험에서 생겨났다, 경험에 의존한다고”(러시아어 번역본 1쪽). 결국 경험은 여전히 똑같은 개념들, 즉 나와 환경을 통해 규정되며, 이 둘의 “불가분의” 연관에 관한 “학설”은 당분간 감춰져 있다. 계속 보자. “순수경험의 종합적 개념”: “곧 그 구성 전체에 걸쳐 오로지 환경의 부분들만을 전제로 하는 그러한 진술로서의 경험”(1—2). 환경이 인간의 “진술”과 “발언”에서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면, 경험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열린다! “순수경험의 분석적 개념”: “곧 그 자체가 또한 경험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은, 따라서 경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그러한 진술로서의 경험”(2). 경험은 경험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이비 학문적 헛소리를 참된 심오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해 둘 것이 있다. 아베나리우스는 『순수경험 비판』 제2권에서 “경험”을 심리적인 것의 “특수한 경우”로 다루고, 경험을 sachhafte Werte(사물적 가치)와 gedankenhafte Werte(사유적 가치)로 나누며, “넓은 의미의 경험”에는 이 후자가 포함된다고 하고, “완전한 경험”을 원리적 동격과 동일시한다(「Bemerkungen」). 한마디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골라잡으라”는 식이다. “경험”은 철학의 유물론적 노선과 관념론적 노선을 모두 덮어 주며, 그 둘의 혼동을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 마흐주의자들은 “순수경험”을 액면 그대로 순진하게 믿고 받아들이지만, 철학 문헌에서는 여러 방향의 대표자들이 한결같이 아베나리우스가 이 개념을 남용한다고 지적한다. A. 릴은 이렇게 쓴다. “순수경험이 무엇인지는 아베나리우스에게서 규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며, ‘순수경험이란 그 자체가 다시 경험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은 경험이다’라는 그의 언명은 명백히 순환에 빠져 있다”(『Systematische Philosophie』, Lpz., 1907, S. 102). 분트는 아베나리우스에게서 순수경험이란 때로는 온갖 공상을 뜻하고, 때로는 “사물성”의 성격을 띤 언명을 뜻한다고 쓴다(《Philosophische Studien》, XIII. Band, S. 92—93). 아베나리우스는 경험 개념을 늘린다(S. 382). 코벨라르트는 이렇게 쓴다. “경험과 순수경험이라는 용어를 정확히 정의하는 데 이 철학 전체의 의미가 달려 있다. 아베나리우스는 그러한 정확한 정의를 내놓지 않는다”(《Revue Néo-Scolastique》, 1907, févr., p. 61). 노먼 스미스는 관념론과 싸운다는 구실 아래 관념론을 끌어들이는 데 “경험이라는 용어의 불명확성이 아베나리우스에게 좋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Mind》, vol. XV, p. 29).

“나는 엄숙히 선언한다. 내 철학의 내적 의미, 그 영혼은 인간이 경험 외에는 도대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인간은 자신이 이르는 모든 것에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이른다는 데 있다….” 어떤가, 이 얼마나 열렬한 순수경험의 철학자인가? 이 말을 쓴 사람은 주관적 관념론자 J. G. 피히테다(『Sonn.

Ber. etc.』, S. 12). 철학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경험” 개념의 해석은 고전적 유물론자들과 관념론자들을 갈라놓았다. 오늘날 온갖 색조의 강단 철학은 자신의 반동성을 “경험”에 관한 열변으로 치장한다. 내재론자들은 모두 경험을 들먹인다. 마흐는 자신의 『인식과 오류』 제2판 서문에서 W. 이에루잘렘 교수의 책을 칭찬하는데, 그 책에서 우리는 이런 구절을 읽는다. “신적인 근원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떠한 경험과도 모순되지 않는다”(『Der krit. Id. etc.』, S. 222).

“경험”이라는 낱말 하나로 유물론과 관념론의 “낡아빠진” 구별을 넘어설 수 있다는 아베나리우스 일당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그저 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발렌티노프와 유시케비치가 순수 마흐주의에서 조금 벗어난 보그다노프를 “경험”이라는 낱말을 남용한다고 비난한다면, 이 양반들은 여기서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이 점에서 보그다노프는 “무죄”다. 그는 마흐와 아베나리우스의 혼란을 노예처럼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가 “의식과 직접적인 심리적 경험은 동일한 개념이다”(『경험일원론』, II, 53)라고 말하고, 물질은 “경험이 아니”며 “알려진 모든 것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것”(『경험일원론』, III, XIII)이라고 말할 때, 그는 경험을 관념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경험”이라는 낱말 위에 자잘한 관념론 체계를 세우는 사람은 그가 처음도[65] 마지막도 아니다. 그가 반동적 철학자들을 반박하면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실제로는 “공허한 추상과 모순된 형상들, 그것도 그 모든 요소를 결국 경험에서 가져온 형상들에 이를 뿐이다”(I, 48)라고 말할 때, 그는 인간 의식의 공허한 추상에 인간 밖에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대립시키고 있다. 즉 경험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흐도 관념론의 관점(물체는 감각 또는 “요소”의 복합이다)에서 출발하면서도 종종 “경험”이라는 낱말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빠져든다. 그는 『역학』(독일어 제3판, 1897, S. 14)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철학하지(nicht aus uns herausphilosophieren) 말고 경험에서 가져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경험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철학하는 것과 대립된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객관적인 무엇으로, 유물론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우리가 자연에서 관찰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도 분석하지도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표상에 새겨지며, 이 표상들은 그 뒤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안정된(stärksten) 특징에서 자연의 과정을 모방한다(nachahmen). 우리는 이 경험 속에 언제나 손닿는 곳에 있는 비축(Schatz)을 가지고 있다…”(같은 곳, S. 27). 여기서는 자연을 일차적인 것으로, 감각과 경험을 파생적인 것으로 본다. 마흐가 인식론의 근본 문제들에서 이 관점을 일관되게 지켰더라면, 인류를 수많은 어리석은 관념론적 “복합”에서 구해 주었을 것이다. 세 번째 예를 보자. “사유와 경험의 긴밀한 결합이 현대 자연과학을 만들어 낸다. 경험이 사유를 낳는다. 사유는 더 발전되어 다시 경험과 비교된다” 등등(『Erkenntnis und Irrtum』, S. 200). 여기서는 마흐 특유의 “철학”이 배 밖으로 내던져지고, 저자는 경험을 유물론적으로 바라보는 자연과학자들의 통상적 관점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넘어간다.

요컨대 마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체계를 세우는 바탕인 “경험”이라는 낱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관념론 체계들을 가리는 데 쓰여 왔고, 지금 아베나리우스 일당에게서는 관념론적 입장에서 유물론으로, 또 그 반대로 절충적으로 넘나드는 데 쓰이고 있다. 이 개념에 대한 갖가지 “정의”는 엥겔스가 그토록 선명하게 드러낸 철학의 두 근본 노선을 표현할 뿐이다.

2. “경험” 개념에 관한 플레하노프의 오류

플레하노프는 『L. 포이어바흐』(1905년판)에 붙인 자신의 서문 X—XI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독일 저술가는 경험비판론에서 경험은 연구의 대상일 뿐 결코 인식의 수단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만일 그렇다면 경험비판론을 유물론에 대립시키는 것은 의미를 잃게 되며, 경험비판론이 유물론을 대체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따위의 논의는 완전히 공허하고 쓸데없는 것이 된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란일 뿐이다.

Fr. 카르스타니엔은 아베나리우스의 가장 “정통적인” 추종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경험비판론에 관한 자신의 논문(분트에 대한 답변)에서 “『순수경험 비판』에게 경험은 인식의 수단이 아니라 오직 연구의 대상일 뿐이다”라고 말한다[66]. 그렇다면 플레하노프에 따르면, Fr. 카르스타니엔의 견해를 유물론에 대립시키는 것은 의미를 잃는다는 말이 된다!

Fr. 카르스타니엔은 아베나리우스를 거의 글자 그대로 옮겨 말하고 있다. 아베나리우스는 자신의 「주석」에서 경험을 우리에게 주어진 것, 우리가 발견하는 것(das Vorgefundene)으로 보는 자신의 이해를, 경험을 “지배적인, 본질상 전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인식론들의 의미에서” “인식의 수단”으로 보는 견해와 단호히 대립시킨다(l. c., S. 401). 아베나리우스에 뒤이어 페촐트도 『순수경험 철학 입문』(제1권, S. 170)에서 같은 말을 한다. 그렇다면 플레하노프에 따르면, 카르스타니엔, 아베나리우스, 페촐트의 견해를 유물론에 대립시키는 것은 의미를 잃는다는 말이 된다! 플레하노프가 카르스타니엔 일당의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한 독일 저자”를 끌어온 자신의 인용을 다섯 다리 건너 얻어 왔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플레하노프가 이해하지 못한, 가장 저명한 경험비판론자들의 이 주장은 무엇을 뜻하는가? 카르스타니엔이 말하려는 것은, 아베나리우스가 『순수경험 비판』에서 경험, 즉 온갖 “인간의 언명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카르스타니엔에 따르면(인용 논문 S. 50), 아베나리우스는 여기서 이 언명들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컨대 유령에 관한 것인지를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문제의 본질에는 들어가지 않은 채, 온갖 인간의 언명들을, 관념론적인 것이든 유물론적인 것이든(S. 53) 묶고 체계화하고 형식적으로 분류할 뿐이다. 카르스타니엔이 이 관점을 “전형적인 회의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S. 213). 그런데 카르스타니엔은 이 논문에서, 분트가 자신의 사랑하는 스승에게 던진, (독일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수치스러운 유물론 혐의로부터 스승을 변호하기도 한다. 천만에, 우리가 무슨 유물론자란 말인가! — 이것이 카르스타니엔의 반박의 요지다 — 우리가 “경험”을 말할 때, 그것은 결코 유물론으로 이끌거나 이끌 수도 있는 그런 흔하고 통속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경험으로서 “언명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연구한다는 의미에서다. 카르스타니엔과 아베나리우스는 경험을 인식의 수단으로 보는 견해를 유물론적이라고 여긴다(이것이 아마 가장 흔한 견해이겠지만, 우리가 피히테의 예에서 보았듯이 그래도 옳지 않다). 아베나리우스는 투입론과 조정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뇌를 사유의 기관으로 고집스럽게 여기는 저 “지배적인” “형이상학”과 선을 긋는다. 아베나리우스가 우리가 발견하는 것 또는 주어진 것(das Vorgefundene)이라는 말로 뜻하는 것은 바로 나와 환경의 불가분한 연관이며, 이것은 “경험”에 대한 혼란스러운 관념론적 해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경험”이라는 낱말 밑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철학의 유물론적 노선도 관념론적 노선도, 마찬가지로 흄주의적 노선도 칸트주의적 노선도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을 연구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도[67], 인식의 수단으로 규정하는 것도 이 점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특히 분트를 겨냥한 카르스타니엔의 논평으로 말하자면, 경험비판론을 유물론에 대립시키는 문제와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기한 일로 짚어 두자면, 보그다노프와 발렌티노프는 이 점에 관해 플레하노프에게 답하면서 조금도 나을 것 없는 식견을 드러냈다. 보그다노프는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다”(III, XI쪽)고 하면서, “이 정식화를 검토하여 그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경험비판론자들이 할 일이다”라고 선언했다. 참 유리한 입장이다. 나는 마흐주의자가 아니니, 무슨 아베나리우스니 카르스타니엔이니 하는 자가 경험에 관해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 따져 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보그다노프는 마흐주의(그리고 “경험”을 둘러싼 마흐주의적 혼란)를 이용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는 않는다.

“순수한” 경험비판론자 발렌티노프는 플레하노프의 주석을 옮겨 적고는, 플레하노프가 그 저술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조롱하며 공개적으로 캉캉을 추었다(앞서 인용한 책 108—109쪽). 그러면서도 이 경험비판론 철학자 자신은 문제의 본질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고, 플레하노프의 주석을 “세 번, 아니 그 이상 거듭 읽었다”고 시인했다(그리고 분명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마흐주의자들답다!

3. 자연에서의 인과성과 필연성에 관하여

인과성 문제는 최신의 이런저런 “주의”가 어떤 철학적 노선에 서 있는지를 규정하는 데 특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 점에 관한 유물론적 인식론을 서술하는 데서 시작하자. L. 포이어바흐는 앞서 언급한 R. 하임에 대한 반박에서 자신의 견해를 특히 명료하게 서술했다.

“자연과 인간의 이성은 — 하임은 말한다 — 그(포이어바흐)에게서 완전히 갈라져 있으며, 그 둘 사이에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패어 있다. 하임은 이 비난의 근거를 나의 『종교의 본질』 제48절에 두는데, 거기에는 ‘자연은 오직 자연 자체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자연의 필연성은 인간적이거나 논리적인 필연성도, 형이상학적이거나 수학적인 필연성도 아니다. 자연만이 어떠한 인간적 척도도 적용할 수 없는 존재이다. 비록 우리가 자연의 현상들을 그와 유사한 인간의 현상들과 비교하고, 자연을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질서, 목적, 법칙 같은 인간적 표현과 개념을 자연에 적용하며, 우리 언어의 본성상 그런 표현을 자연에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러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내가 이로써 말하려는 것이, 자연에는 아무런 질서도 없어서 예컨대 가을 다음에 여름이, 봄 다음에 겨울이, 겨울 다음에 가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인가? 목적이 없어서, 예컨대 허파와 공기 사이에, 빛과 눈 사이에, 소리와 귀 사이에 아무런 조응도 없다는 것인가? 질서가 없어서, 예컨대 지구가 어떤 때는 타원을 그리며, 어떤 때는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태양 둘레를 어떤 때는 1년에, 어떤 때는 15분에 한 바퀴 돈다는 것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대목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자연에 속하는 것과 인간에 속하는 것을 구별하려 했을 뿐이다. 이 대목은 질서, 목적, 법칙에 관한 말과 표상에 자연 속의 현실적인 것이 아무것도 대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부정되는 것은 오직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이며, 질서 등이 인간의 머리나 감정 속에 있는 바로 그대로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부정될 뿐이다. 질서, 목적, 법칙은 인간이 자연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자기의 언어로 옮기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들은 의미가 없지 않고, 객관적 내용이 없지 않다(nicht sinn- d. h. gegenstandlose Worte). 그러나 그럼에도 원문과 번역은 구별해야 한다. 질서, 목적, 법칙은 인간적 의미에서 어떤 자의적인 것을 표현한다.

유신론은 자연의 질서·합목적성·법칙성이 우연적이라는 데서 그것들의 임의적 기원으로, 즉 자연과 구별되며 그 자체로는(an sich) 혼돈스럽고(dissolute) 어떠한 규정성과도 무관한 자연에 질서·합목적성·법칙성을 들여오는 존재자의 존재로 곧바로 결론을 내린다. 유신론자들의 이성은…… 자연과 모순되는 이성이며, 자연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절대적으로 결여한 이성이다. 유신론자들의 이성은 자연을 두 존재자로 찢어 놓는다. — 하나는 물질적인 것,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으로” (Werke, VII. Band, 1903, S. 518—520).

이렇게 포이어바흐는 자연 속의 객관적 법칙성을, 질서·법칙 등에 관한 인간의 표상에 의해 대략적으로만 올바르게 반영되는 객관적 인과성을 인정한다. 포이어바흐에게서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에 대한 인정은 우리 의식에 반영되는 외부 세계, 대상, 물체, 사물의 객관적 실재성에 대한 인정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포이어바흐의 견해는 철저히 유물론적이다. 그리고 인과성 문제에 관한 여타의 모든 견해, 더 정확히 말해 다른 철학적 노선, 즉 자연 속의 객관적 법칙성·인과성·필연성을 부정하는 노선을 포이어바흐는 정당하게도 신앙주의의 방향에 귀속시킨다. 왜냐하면 실제로 분명하듯이, 인과성 문제에 관한 주관주의적 노선, 즉 자연의 질서와 필연성을 외부의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의식·이성·논리 등으로부터 도출하는 노선은 인간의 이성을 자연에서 떼어 낼 뿐만 아니라, 전자를 후자에 대립시킬 뿐만 아니라, 이성을 자연의 작은 부분으로 여기는 대신 자연을 이성의 부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과성 문제에 관한 주관주의적 노선은 철학적 관념론이며(흄의 인과성 이론도 칸트의 인과성 이론도 그 변종에 속한다), 다시 말해 다소간 약화되고 희석된 신앙주의다.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을 인정하고 이 법칙성이 인간의 머릿속에 대략적으로 올바르게 반영된다고 인정하는 것이 유물론이다.

엥겔스의 경우,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가 인과성 문제를 따로 다루면서 자신의 유물론적 관점을 다른 경향들과 대립시켜야 했던 적은 없었다. 외부 세계 일반의 객관적 실재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모든 불가지론자와 아주 명확하게 선을 그은 이상, 그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 저작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엥겔스가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 인과성, 필연성의 존재에 대해 티끌만 한 의심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몇 가지 예만 들어 보자. 『반뒤링론』의 바로 첫 절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말한다. “개별적인 측면들을”(또는 세계 현상들의 전체 그림의 세부들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들을 그 자연적(natürlich) 또는 역사적 연관에서 떼어 내어, 각각을 그 속성에 따라, 그 특수한 원인과 결과에 따라 따로따로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5—6). 이 자연적 연관, 곧 자연 현상들의 연관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엥겔스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변증법적 견해를 특히 강조한다. “원인과 결과는 주어진 개별 사례에 적용될 때에만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표상이다. 그러나 이 개별 사례를 세계 전체와의 일반적 연관 속에서 고찰하자마자, 이 표상들은 보편적 상호작용이라는 표상 속에서 합류하고 얽힌다. 이 상호작용 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여기서 또는 지금 원인인 것이 저기서 또는 그때는 결과가 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8). 따라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간의 개념은 언제나 자연 현상들의 객관적 연관을 얼마간 단순화한다. 그것은 이 연관을 근사적으로만 반영하며,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 과정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인위적으로 떼어 낸다. 사유의 법칙들이 자연의 법칙들과 일치한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사유와 의식이 “인간 두뇌의 산물이며 인간 자신이 자연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된다고 엥겔스는 말한다. “인간 두뇌의 산물은 그 자체가 결국 자연의 산물이므로, 나머지 자연적 연관(Naturzusammenhang)과 모순되지 않고 그것에 상응한다”는 것은 당연하다(22). 세계 현상들의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연관이 존재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엥겔스는 “자연의 법칙들”, “자연의 필연성”(Naturnotwendigkeiten)에 관해 끊임없이 말하며, 널리 알려진 유물론의 명제들을 따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런 대목을 읽는다. “외부 세계와 인간 사유의 일반적 운동 법칙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그 표현에서는 인간의 머리가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반면 자연에서는 — 그리고 지금까지는 대부분 인간 역사에서도 — 그것들이 외견상의 우연들의 끝없는 연쇄 가운데서 외적 필연성의 형태로 무의식적으로 길을 뚫는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38). 그리고 엥겔스는 옛 자연철학이 (자연 현상들의) “아직 알지 못한 실제의 연관들”을 “관념적이고 공상적인” 연관들로 대신했다고 비난한다(42). 엥겔스에게서는 자연 속의 객관적 법칙성, 인과성, 필연성에 대한 인정이 아주 명백하며, 이와 함께 이 법칙성을 이런저런 개념으로 근사적으로 반영한 우리의, 즉 인간의 반영이 상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강조된다.

J. 디츠겐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문제를 왜곡한 무수한 사례 가운데 하나를 지적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에 관한” 개요』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겔폰드 씨는 우리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디츠겐 세계관의 기본 논점들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요약될 수 있다. ‘… 9) 우리가 사물들에 부여하는 인과적 의존성은 실제로는 사물들 자체 속에 들어 있지 않다’”(248). 이것은 순 엉터리 소리다. 자기 자신의 견해부터가 유물론과 불가지론을 뒤섞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인 겔폰드 씨는 J. 디츠겐을 뻔뻔스럽게 왜곡했다. 물론 J. 디츠겐에게서는 마흐주의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유물론자로 하여금 J. 디츠겐을 완전히 철저하지는 못한 철학자로 인정하게 만드는 적지 않은 혼란과 부정확함과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물론자 J. 디츠겐에게 인과성에 관한 유물론적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혐의를 씌우는 일은 겔폰드 같은 자들, 러시아 마흐주의자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객관적 과학적 인식은” — J. 디츠겐은 그의 저서 『두뇌 노동의 본질』(독일어판, 1903년)에서 말한다 — “원인을 신앙이나 사변 속에서 찾지 않고 경험 속에서, 귀납 속에서 찾으며, 선험적으로(a priori)가 아니라 후험적으로(a posteriori) 찾는다. 자연과학은 원인을 현상들 밖에서, 현상들 뒤에서 찾지 않고 현상들 속에서 또는 현상들을 통해서 찾는다”(S. 94—95). “원인들은 사유 능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유 능력의 순수한 산물이 아니라, 사유 능력이 감성적 소재와 결합하여 낳은 것이다. 감성적 소재는 이렇게 생겨난 원인에게 그 객관적 존재를 부여한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그것이 객관적 현상의 진리일 것을 요구하듯이, 원인에 대해서도 그것이 현실적일 것, 객관적으로 주어진 결과의 원인일 것을 요구한다”(S. 98—99). “사물의 원인은 그 사물의 연관이다”(S. 100).

이로부터 겔폰드 씨가 현실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세웠음을 알 수 있다. J. 디츠겐이 서술하는 유물론의 세계관은 “인과적 의존성”이 “사물들 자체 속에” 들어 있다고 인정한다. 마흐주의적 뒤죽박죽을 만들어 내기 위해 겔폰드 씨는 인과성 문제에서 유물론적 노선과 관념론적 노선을 혼동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번째 노선으로 넘어가자.

아베나리우스의 경우, 이 문제에 관한 그의 철학의 출발점은 그의 첫 저서 『최소 힘 소비의 원리에 따른 세계 사유로서의 철학』에 명확히 표명되어 있다. 제81절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는다. “우리는 운동을 일으키는 무엇으로서의 힘을 감각하지(경험에서 인식하지: erfahren) 못하므로, 어떤 운동의 필연성도 감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각하는(erfahren)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 뒤따른다는 것뿐이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흄의 관점이다. 감각, 경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필연성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유경제” 원리에 근거하여) 오직 감각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는 다른 어떤 결론에도 이를 수 없었다. “인과성의 표상은” — 계속 읽어 보자 — “결과를 규정하기 위한 필수 구성 부분으로서 힘과 필연성 또는 강제를 요구하는 한, 그것들과 함께 무너진다”(제82절). “필연성은 결과에 대한 기대의 개연성 정도로서 남는다”(제83절, 테제).

이것은 인과성 문제에서 아주 명확한 주관주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일관성을 지키려 한다면, 우리 감각의 원천으로서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없다.

마흐를 보자. 「인과성과 설명」을 다룬 특별한 장(『Wärmelehre』, 2. Auflage, 1900, S. 432—439)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는다. “흄의 비판(인과성 개념에 대한)은 여전히 효력을 지닌다.” 칸트와 흄은 인과성 문제를 서로 다르게 해결한다(마흐는 다른 철학자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흄의 해결에 “우리는 동조한다.” “논리적(마흐의 강조) 필연성 말고는 다른 어떤 필연성, 예컨대 물리적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포이어바흐가 그토록 단호하게 맞서 싸운 견해다. 마흐는 자신이 흄과 친연 관계에 있음을 부정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흄의 불가지론과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론이 “결합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러시아 마흐주의자들뿐이다. 마흐의 『역학』에서는 이렇게 읽는다. “자연에는 원인도 결과도 없다”(S. 474, 3. Auflage, 1897). “나는 인과성 법칙의 모든 형태가 주관적 충동(Trieben)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자연이 그것에 부합해야 할 필연성은 없다”(495).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 러시아 마흐주의자들이 놀랄 만큼 순진하게도 인과성 법칙에 관한 모든 논의가 유물론적 방향이냐 관념론적 방향이냐 하는 문제를 이 법칙을 이렇게 정식화하느냐 저렇게 정식화하느냐 하는 문제로 바꿔치기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함수적 관계”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것이 “최신 실증주의”의 발견이 되고, “필연성”, “법칙” 따위 표현의 “물신숭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경험비판론자 독일 교수들의 말을 곧이들었다. 물론 이것은 순전한 헛소리이며, 분트가 사태의 본질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 이 낱말 바꾸기를 비웃은 것은 전적으로 정당했다(《Philosophische Studien》에 실린 앞서 인용한 논문, S. 383 및 388). 마흐 자신도 인과성 법칙의 “모든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인식과 오류』(제2판, S. 278)에서는 함수 개념이 “요소들의 의존 관계”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연구 결과를 측정 가능한 양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뿐인데, 이것은 화학 같은 학문에서조차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자명한 단서를 달고 있다. 교수들의 발견이라면 덮어놓고 믿는 우리 마흐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포이어바흐는(엥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질서, 법칙성 따위의 개념이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수학적으로 규정된 함수적 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철학적 방향들을 갈라놓는 참으로 중요한 인식론적 문제는, 인과적 연관에 대한 우리의 서술이 어느 정도의 정확성에 도달했는가, 그 서술이 정확한 수학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연관에 대한 우리 인식의 원천이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인가, 아니면 우리 지성의 속성, 즉 일정한 선험적 진리 따위를 인식하는 지성 고유의 능력인가 하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자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엥겔스를 불가지론자(흄주의자) 아베나리우스와 마흐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점이다.

마흐는 — 그를 일관성이 있다고 탓한다면 죄가 될 것이다 — 자기 저작의 몇몇 대목에서 흄에 대한 자신의 동의와 인과성에 관한 자신의 주관주의적 이론을 “잊어버리고” “그저” 자연과학자로서, 즉 자생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논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예컨대 『역학』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 현상들 속에서 제일성을 발견하도록 가르친다”(프랑스어 번역본 p. 182). 우리가 자연 현상 속에서 제일성을 발견한다면, 이 제일성은 객관적으로, 우리의 정신 밖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바로 그 자연의 제일성 문제에 관해 마흐는 이런 말씀을 늘어놓는다. “절반만 관찰된 사실들을 사유 속에서 보충하도록 우리를 밀어붙이는 힘은 연상의 힘이다. 이 힘은 반복을 통해 강화된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개별 사실들로부터 독립해 있으면서 사유와(마흐의 강조) 사실들을 이끌고 양자를 서로 일치시키는 힘, 양자의 법칙과 같은 힘으로 우리에게 보이게 된다. 우리가 그러한 법칙의 도움으로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은 다만(!) 우리 환경의 충분한 제일성을 증명할 뿐, 예측이 성공할 필연성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Wärmelehre』, S. 383).

그렇다면 환경, 즉 자연의 제일성 이외에 어떤 필연성을 찾을 수 있고 또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을 어디서 찾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자연의 단순한 반영으로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 관념론 철학의 비밀이다. 마흐는 그의 마지막 저작 『인식과 오류』에서 심지어 자연법칙을 “기대의 제한”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한다(제2판, S. 450 이하)! 유아론은 끝내 제 몫을 챙기고야 만다.

같은 철학 사조에 속하는 다른 저술가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영국인 칼 피어슨은 그 특유의 단호함으로 이렇게 말한다. “과학의 법칙은 외부 세계의 사실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The Grammar of Science』, 2nd ed., p. 36). “자연을 인간 위에 군림하는 주인(sovereign)으로 이야기하는 시인들과 유물론자들은, 그들이 감탄하는 현상들의 질서와 복잡성이 적어도 인간 자신의 기억이나 사유만큼은 인간 인식 능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는다”(185). “자연법칙의 포괄적인 성격은 그 존재를 인간 정신의 창의성에 빚지고 있다”(ib.). 제3장 제4절은 “인간은 자연법칙의 창조자이다”라고 선언한다. “인간이 자연에 법칙을 준다는 주장에는 자연이 인간에게 법칙을 준다는 반대 주장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다.” — 하지만, — 하고 지극히 존경스러운 교수께서는 비통하게 고백한다, — 이 후자의 (유물론적) 견해는 “불행히도 우리 시대에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p. 87). 인과성 문제를 다룬 제4장의 제11절은 피어슨의 테제를 이렇게 정식화한다. “필연성은 지각의 세계가 아니라 개념의 세계에 속한다.” 피어슨에게는 지각 또는 감각적 인상이 곧 우리 밖에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정한 지각 계열이 반복되는 그 제일성 속에, 그 지각의 일상적 반복 속에는 아무런 내적 필연성도 없다. 그러나 사유하는 존재가 존재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은 지각의 일상적 반복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성은 지각들 자체가 아니라 사유하는 존재의 본성 속에 있으며, 그것은 인식 능력의 산물이다”(p. 139).

E. 마흐 “본인”이 여러 차례 전적인 연대를 표명한 우리의 마흐주의자는 이렇게 하여 순전히 칸트주의적인 관념론에 무사히 도달했다. 인간이 자연에 법칙을 주는 것이지, 자연이 인간에게 법칙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칸트를 따라 선험성에 관한 학설을 되풀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 이것은 철학에서의 관념론적 노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선의 특수한 정식화를 규정할 뿐이다 — 여기서 이성, 사유, 의식이 일차적인 것이고 자연이 이차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이성이 자연의 일부분, 자연의 최고 산물 가운데 하나, 자연 과정의 반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이성의 일부분이며, 이 이성은 이렇게 하여 평범하고 단순하며 누구에게나 익숙한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J. 디츠겐이 말한 대로 “과도한”, 신비롭고 신성한 이성으로 저절로 늘어난다. “인간이 자연에 법칙을 준다”는 칸트주의-마흐주의적 공식은 신앙주의의 공식이다.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유물론의 근본적인 구별 표지는 정신이 아니라 자연을 일차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엥겔스의 글을 읽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면,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중요한 철학적 방향들을 교수들의 유식한 척하는 놀음, 어려운 말 놀음과 구별할 줄 모른다는 것을, 그것도 얼마나 모르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두 권짜리 저작에서 아베나리우스를 서술하고 발전시킨 J. 페촐트는 마흐주의의 반동적 스콜라 철학의 훌륭한 표본이 될 수 있다. “흄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그는 이렇게 설파한다 — “실체성과 인과성은 사유의 용기를 마비시킨다”(『순수 경험의 철학 입문』 제1권, 31쪽). 물론 유기적 물질 없는 감각을, 뇌 없는 사유를, 객관적 법칙성 없는 자연을 발견한 유아론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용감하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인과성의 마지막 정식화인 필연성, 즉 자연의 필연성에는 무언가 불명료하고 신비적인 것이 들어 있다” — “물신숭배”, “의인관” 등의 관념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32와 34). 가엾은 신비주의자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엥겔스! 그들은 줄곧 자연의 필연성을 떠들었고, 게다가 그러면서 흄 노선의 지지자들을 이론적 반동분자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페촐트는 그 어떤 “의인관”보다도 높이 서 있다. 그는 모든 불명료함, “물신숭배”의 모든 흔적 등등, 등등, 등등을 제거하는 위대한 “일의성의 법칙”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힘의 평행사변형(S. 35)이다. 그것은 “증명”할 수 없으며, “경험의 사실”로서 인정해야 한다. 물체가 똑같은 충격을 받으면서 다른 방식으로 운동한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그러한 불확정성과 자의성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에 확정성과 법칙성을 요구해야 한다”(35).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에 법칙성을 요구한다. 부르주아지는 자기네 교수들에게 반동성을 요구한다. “우리의 사유는 자연에 확정성을 요구하며, 자연은 언제나 이 요구에 복종한다 — 우리는 심지어 자연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요구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까지 보게 될 것이다”(36). 왜 AB선 방향으로 충격을 받은 물체는 C로 운동하고 D나 F 등으로는 운동하지 않는가?

“왜 자연은 무수히 많은 다른 가능한 방향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택하지 않는가?”(37). 그것들은 “다의적”일 것이고, 요제프 페촐트의 위대한 경험비판론적 발견은 일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험비판론자들”은 이런 형언할 수 없는 헛소리로 수십 쪽을 채운다!

“……우리는 우리의 명제가 개별적 경험들의 총합에서 그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자연에게 그 명제의 승인(seine Geltung)을 요구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법칙이 되기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는 우리가 현실에 다가갈 때 지니고 가는 원리, 즉 공준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아 프리오리하게, 모든 개별적 경험과 무관하게 힘을 지닌다. 언뜻 보기에 순수 경험의 철학이 아 프리오리한 진리를 설파하고, 그리하여 가장 불모의 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아 프리오리는 오직 논리적인 것일 뿐, 심리적인 것도 형이상학적인 것도 아니다”(40). 그야 물론, 아 프리오리를 논리적인 것이라 부르기만 하면 그런 관념의 반동성은 모조리 사라지고, 그것은 “최신 실증주의”의 높이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심리적 현상의 일의적 규정성은 — J. 페촐트는 이어서 우리에게 가르친다 — 있을 수 없다. 공상의 역할, 위대한 발명가들의 의의 등이 여기서 예외를 만들어 내는데, 자연의 법칙이나 정신의 법칙은 “어떤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5).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차이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가장 순수한 형이상학자다.

아마도 사람들은 — 페촐트는 계속한다 — 역사적 사건들의 동기 부여나 시 작품에서의 성격의 발전을 나에게 들이댈지도 모른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일의성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심리적 조건 아래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도, 희곡도 단 하나도 없다”(73). “심리적 영역에서 일의성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실에게 그것이 없기를 요구할 권리마저 지닌다(페촐트의 강조). 우리의 학설은 그리하여…… 공준의 지위로…… 즉 모든 선행하는 경험의 필수 조건, 논리적 아 프리오리의 지위로 올라선다”(페촐트의 강조, S. 76).

그리고 페촐트는 이 “논리적 아 프리오리”를 가지고 자신의 『서론』 두 권에서도, 1906년에 나온 소책자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본 세계상』[68]에서도 계속 조작을 해 나간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 어느새 칸트주의로 굴러떨어져 살짝 바꾼 양념을 쳐서 가장 반동적인 학설을 설파하는 저명한 경험비판론자의 두 번째 사례다. 그리고 이것은 —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흐와 아베나리우스의 인과성 학설은 “실증주의”에 관한 제아무리 요란한 문구로 덮더라도 그 근본에서 관념론적 거짓이기 때문이다. 흄의 인과성 이론과 칸트의 인과성 이론의 차이는, 근본적인 점, 즉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치하며 그로써 불가피하게 이런저런 관념론적 결론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선고하는 불가지론자들 사이의 부차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J. 페촐트보다 조금 더 “양심적인” 경험비판론자로서 내재론자들과의 친족 관계를 부끄러워하는 루돌프 빌리는, 예컨대 페촐트의 “일의성” 이론 전체를 “논리적 형식주의”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이라며 거부한다. 그러나 R. 빌리는 페촐트와 의절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개선하는가? 조금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흄의 불가지론을 위해서 칸트의 불가지론과 의절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 그는 쓴다 — 흄 이래로 이미 오래전부터 ‘필연성’이 ‘초월적’ 표지가 아니라 순전히 논리적인 표지(Merkmal)임을, 혹은 내가 더 즐겨 말하고 싶고 또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순전히 언어적인(sprachlich) 표지임을 알고 있다”(R. Willy: «Gegen die Schulweisheit», Münch., 1905, S. 91; cf. 173, 175).

불가지론자는 필연성에 관한 우리의 유물론적 견해를 “초월적”이라고 부른다. 빌리가 거부하지 않고 손질만 할 뿐인 바로 그 칸트주의적·흄주의적 “강단의 지혜”의 관점에서 보면,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 실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은 모두 부당한 “초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검토하는 철학 조류의 프랑스 저술가들 가운데 앙리 푸앵카레도 끊임없이 이 불가지론의 오솔길로 빠져든다. 그는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하찮은 철학자인데, P. 유시케비치는 물론 그의 오류를 최신 실증주의의 마지막 말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어찌나 “최신”이었던지 또 하나의 새로운 “이즘”, 즉 경험상징론까지 필요할 정도였다. 푸앵카레(그의 견해 전반에 관해서는 새로운 물리학을 다루는 장에서 이야기할 것이다)에게 자연법칙은 상징이며, 인간이 “편의”를 위해 만들어내는 규약이다. “유일하게 참된 객관적 실재는 세계의 내적 조화이다.” 그런데 푸앵카레는 대다수 사람 또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것을 객관적이라고 부르며[69], — 즉 모든 마흐주의자처럼 순전히 주관주의적으로 객관적 진리를 없애버리며, — “조화”가 우리 밖에 있느냐는 질문에는 “의심할 바 없이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새로운 용어가 불가지론의 아주 오래된 철학적 노선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푸앵카레의 “독창적인” 이론의 요점은 결국 자연의 객관적 실재와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는 것(비록 그가 결코 철저하지는 않지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낡은 오류를 새롭게 정식화한 것을 최신의 발견으로 여기는 러시아 마흐주의자들과 달리, 독일 칸트주의자들이 이런 견해를 본질적인 철학 문제에서 자기편으로, 불가지론 편으로 넘어온 것으로 여겨 환영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 칸트주의자 필리프 프랑크의 글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는다, — 이론적 자연과학의 가장 일반적인 많은 명제들(관성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등등)은 경험적 기원인지 선험적 기원인지 흔히 말하기 어려운데, 실제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인간의 재량에 달린 순전히 규약적인 전제라는 관점을 옹호한다.” “이렇게 하여, — 칸트주의자는 감격한다, — 최신 자연철학은 뜻밖에도 비판적 관념론의 기본 사상, 즉 경험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오는 틀을 채울 뿐이라는 사상을 되살리고 있다…”[70]

우리가 이 예를 든 것은 우리의 유시케비치 일당이 얼마나 순진한지를 독자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들은 무슨 “상징주의 이론”을 새것이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만, 조금이라도 사정을 아는 철학자들은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비판적 관념론의 관점으로 넘어갔다고! 이 관점의 요점은 반드시 칸트의 정식을 되풀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흄과 칸트에게 공통된 기본 사상을 인정하는 데, 즉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고 이러저러한 “경험의 조건”, 이러저러한 원리·공준·전제를 자연에서가 아니라 주체에서, 인간의 의식에서 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어떤 철학자가 유물론이나 관념론의 수많은 학파 가운데 어느 학파에 속하느냐가 요점이 아니라, 자연, 외부 세계, 운동하는 물질을 일차적인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정신, 이성, 의식 등을 일차적인 것으로 보느냐가 요점이라고 말한 것은 옳았다.

이 문제에 관해 마흐주의를 다른 철학적 노선들과 대비해 규정한, 사정에 밝은 칸트주의자 E. 루카의 설명이 또 하나 있다. 인과성 문제에 관해 “마흐는 전적으로 흄 편에 선다”[71]. “P. 폴크만은 사유의 필연성을 자연 과정의 필연성에서 도출한다 — 이는 마흐와는 반대로, 그리고 칸트와는 일치하여 필연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관점이다 — 그러나 그는 칸트와는 반대로 필연성의 원천을 사유가 아니라 자연 과정에서 본다”(424).

P. 폴크만은 인식론 문제에 관해 상당히 많은 글을 쓰는 물리학자로, 압도적 다수의 자연과학자들처럼 유물론으로 기울어 있다. 비록 일관되지 못하고 소심하며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유물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연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사유의 필연성을 도출하는 것은 유물론이다. 필연성, 인과성, 법칙성 따위를 사유로부터 도출하는 것은 관념론이다. 위 인용문의 유일한 부정확한 점은 마흐가 모든 필연성을 완전히 부정한다고 본 데 있다. 우리는 마흐에 관해서도, 유물론에서 단호히 물러나 불가피하게 관념론으로 굴러떨어지는 경험비판론 경향 전체에 관해서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이미 보았다.

이제 러시아 마흐주의자들에 관해 따로 몇 마디 하는 일이 남았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이기를 바라며, 엥겔스가 유물론을 흄의 경향과 단호히 구별한 것을 모두 “읽었고”, 마흐와 아베나리우스가 흄의 노선을 따른다는 말을 마흐 본인에게서도, 그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누구에게서도 듣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인과성 문제에서 흄주의와 유물론에 관해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으려 애쓴다! 그들에게는 더없이 완전한 혼란이 판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P. 유시케비치 씨는 “새로운” 경험상징론을 설파한다. “푸른 것, 단단한 것 따위의 감각, 순수 경험의 소여라는 이것들”도, “키메라나 체스 놀이 같은, 순수 이성의 창조물이라는 것들”도, 이 모든 것이 “경험상징”이다(『개요』, 179쪽). “인식은 경험상징적이며, 발전하면서 점점 더 높은 상징화 단계의 경험상징들로 나아간다.” “이러한 경험상징들이 바로… 이른바 자연법칙들이다”(같은 곳). “이른바 진정한 실재, 그 자체로서의 존재란 — 우리의 지식이 지향하는 저 인피니트한”(무시무시하게 유식한 분이다, 유시케비치 씨는!) “극한의 상징 체계다”(188). “우리 인식의 기저에 놓여 있는” “소여의 흐름”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다(187, 194). 에너지는 “시간, 공간, 질량 및 자연과학의 다른 기본 개념들이 사물, 실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 실체가 아니다. 에너지 — 그것은 항수, 경험상징이며, 비합리적인 소여의 흐름에 이성, 로고스를 끌어들이려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 당분간은 — 충족시키는 다른 경험상징들과 마찬가지다”(209).

알록달록하고 요란한 “최신” 용어 조각들을 기워 만든 아를레키노의 의상을 걸치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 주관적 관념론자다. 그에게는 외부 세계, 자연, 자연의 법칙들이 모두 우리 인식의 상징이다. 소여의 흐름에는 합리성도, 질서도, 법칙성도 없다. 우리의 인식이 거기에 이성을 들여놓는다. 천체들은 인간 인식의 상징이며, 지구도 마찬가지다. 자연과학은 지구가 인간과 유기적 물질이 출현할 수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고 가르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고쳐 놓은 것이다! 행성 운동의 질서는 우리가 들여놓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인식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런 철학이 인간의 이성을 자연을 만든 장본인, 자연의 시조로까지 늘여 놓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유시케비치 씨는 이성 옆에 “로고스”를, 즉 추상화된 이성, 이성이 아니라 대문자 이성, 인간 두뇌의 기능이 아니라 모든 두뇌에 앞서 존재하는 어떤 것, 신적인 어떤 것을 갖다 놓는다. “최신 실증주의”의 마지막 말은 일찍이 포이어바흐가 폭로했던 신앙주의의 저 낡은 공식이다.

A. 보그다노프를 보자. 1899년, 그가 아직 절반은 유물론자였고, 매우 위대한 화학자이자 매우 혼란스러운 철학자인 빌헬름 오스트발트의 영향으로 이제 막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썼다. “현상들의 보편적 인과 연관은 인간 인식의 마지막이자 가장 훌륭한 자식이다. 그것은 보편적 법칙이며,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이성이 자연에 규정하는 법칙들 가운데 최고의 법칙이다”(『기본 요소 등』, 41쪽).

그때 보그다노프가 누구에게서 그 인용을 가져왔는지는 알라만이 아신다. 그러나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자”가 곧이곧대로 되풀이한 “철학자의 말”이 바로 칸트의 말이라는 것이다. 불쾌한 사건이다! 그것을 오스트발트의 “단순한” 영향으로 설명할 수조차 없으니 더욱 불쾌하다.

1904년, 이미 자연과학적 유물론도 오스트발트도 버린 보그다노프는 이렇게 썼다. “…현대 실증주의는 인과성 법칙을 현상들을 연속적 계열로 인식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만, 경험을 조정하는 형식으로만 간주한다”(『사회심리학에서』, 207쪽). 이 현대 실증주의가 모든 “인식”과 모든 인간에 앞서, 그리고 그 바깥에 존재하는 자연의 객관적 필연성을 부정하는 불가지론이라는 사실을 보그다노프는 몰랐거나 입을 다물었다. 그는 독일 교수들이 “현대 실증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1905년, 이전의 모든 단계와 경험비판론적 단계까지 거쳐 이미 “경험일원론적” 단계에 이른 보그다노프는 이렇게 썼다. “법칙들은 결코 경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경험 속에 주어져 있지 않으며, 경험을 조직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정연한 통일로 일치시키는 수단으로서 사유에 의해 창조된다”(『경험일원론』, I, 40). “법칙들이란 인식의 추상이다. 물리적 법칙들이 물리적 속성을 지니지 않는 것은 심리학적 법칙들이 심리적 속성을 지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ibid.).

그러니까 가을 다음에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봄이 온다는 법칙은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직하고 조화시키고 일치시키는 수단으로서 사유가 창조한 것이다… 무엇을 무엇과 말인가, 보그다노프 동지?

“경험일원론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인식이 경험을 능동적으로 조화시키고, 경험의 무수한 모순들을 제거하며, 경험을 위한 보편적 조직 형식들을 창조하고, 요소들의 원초적이고 혼돈된 세계를 관계들의 파생적이고 질서 잡힌 세계로 대체하기 때문이다”(57). 이것은 틀렸다. 인식이 보편적 형식들을 “창조”할 수 있고 원초적 혼돈을 질서로 대체할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은 관념론 철학의 생각이다. 세계는 물질의 법칙적 운동이며, 자연의 최고 산물인 우리의 인식은 이 법칙성을 반영할 수 있을 뿐이다.

요컨대 우리의 마흐주의자들은 “최신” 반동 교수들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인과성 문제에서 칸트와 흄의 불가지론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으며, 이 학설들이 마르크스주의, 즉 유물론과 얼마나 절대적인 모순 관계에 있는지도, 이 학설들이 관념론으로 향하는 비탈길을 어떻게 굴러 내려가고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4. “사유경제의 원리”와 “세계의 통일” 문제

“마흐, 아베나리우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식론의 기초로 삼은 ‘최소 노력 소비’의 원리는… 의심할 바 없이 인식론에서의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이다.”

V. 바자로프는 『개요』 69쪽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마르크스에게는 “경제”가 있다. 마흐에게도 “경제”가 있다. 과연 이 둘 사이에 털끝만 한 연관이라도 있다는 것이 정말로 “의심할 바 없는” 일인가?

아베나리우스의 저작 『최소 노력 소비의 원리에 따른 세계에 관한 사유로서의 철학』(1876)은, 우리가 보았듯이, 이 “원리”를 “사유경제”의 이름으로 오직 감각만이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식으로 적용한다. 인과성도 “실체”(교수 양반들이 더 정확하고 명료한 말인 물질 대신 “위엄을 부리려고” 즐겨 쓰는 말)도 같은 경제의 이름으로 “제거되었다”고 선언된다. 즉 물질 없는 감각, 뇌 없는 사유가 얻어진다. 이 순전한 헛소리는 주관적 관념론을 새로운 소스를 끼얹어 밀반입하려는 시도이다. 저 이름난 “사유경제” 문제에 관한 이 기본 저작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띤다는 것은, 우리가 보았듯이, 철학 문헌에서 널리 인정되어 있다. 우리의 마흐주의자들이 “새로운” 깃발 아래 숨은 주관적 관념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진기한 일의 영역에 속한다.

마흐는 『감각의 분석』(러시아어 번역 49쪽)에서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1872년 저작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저작은, 우리가 보았듯이, 순수한 주관주의의 관점, 세계를 감각으로 환원하는 관점을 관철한 것이다. 이처럼 철학에 이 유명한 “원리”를 도입한 두 기본 저작이 관념론을 관철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사유경제의 원리를 실제로 “인식론의 기초로” 삼는다면, 그 원리는 주관적 관념론 말고는 아무 데로도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나와 나의 감각만이 존재한다고 “사유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 우리가 인식론에 그처럼 터무니없는 개념을 끌어들이는 이상, 이는 논박할 여지가 없다.

원자를 쪼갤 수 없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가, 아니면 양전자와 음전자로 이루어진 것으로 사유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가?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을 자유주의자들이 수행하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자들에 맞서 수행되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가? 문제를 제기하기만 해도 여기에 “사유경제”라는 범주를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주관주의적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사유는 객관적 진리를 올바르게 반영할 때 “경제적”이며, 이 올바름의 기준은 실천, 실험, 산업이다. 오직 객관적 실재를 부정할 때, 즉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부정할 때에만 인식론에서 사유경제를 진지하게 논할 수 있다!

마흐의 후기 저작들을 들여다보면, 그 유명한 원리를 흔히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게 해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열학』에서 마흐는 과학의 “경제적 본성”이라는, 자신이 애호하는 사상으로 되돌아간다(독일어 제2판 366쪽). 그러나 그는 바로 거기서 우리는 경영 자체를 위해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366쪽, 391쪽에서 되풀이됨). “과학적 경영의 목적은 가능한 한 완전한…… 평온한…… 세계상이다”(366쪽). 그렇다면 “경제의 원리”는 사실상 인식론의 기초에서뿐 아니라 인식론 일반에서도 밀려난다. 과학의 목적이 올바른(평온함은 여기서 전혀 상관이 없다) 세계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물론적 명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 그것은 우리의 인식에 대한 세계의 객관적 실재를, 그림에 대한 모델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관에서 사유의 경제성이란 올바름이라는 말 대신 쓴, 어설프고 젠체하여 우스꽝스러운 말일 뿐이다. 마흐는 여기서도 늘 하던 대로 혼동하고 있고, 마흐주의자들은 그 혼동을 우러러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인식과 오류』의 「연구 경로의 예들」이라는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는다.

“키르히호프의 완전하고도 가장 단순한 기술(1874), 사실적인 것의 경제적 묘사(마흐 1872), ‘사유를 존재와 일치시키고 사유 과정들을 서로 일치시키는 것’(그라스만 1844) — 이 모든 것은 약간씩 변형되었을 뿐 똑같은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자, 이것이야말로 혼동의 표본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흐가 1872년에 오직 감각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던(그 자신도 나중에 관념론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관점이다) “사유경제”가, 사유를 존재와 일치시켜야 한다는 수학자 그라스만의 순전히 유물론적인 격언과 동일시된다! 가장 단순한 기술(객관적 실재에 대한 기술, 키르히호프는 그 실재의 존재를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과 동일시된다.

“사유경제” 원리를 이렇게 적용하는 것은 마흐의 진기한 철학적 동요의 표본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대목들을 진기한 일이나 lapsus로 치워 버린다면, “사유경제 원리”의 관념론적 성격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진다. 예컨대 칸트주의자 회니히스발트는 마흐의 철학과 논쟁하면서도 그의 “경제 원리”를 “칸트주의의 사상권”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며 환영한다(Dr. Richard Hönigswald. «Zur Kritik der Machschen Philosophie». Brl., 1903, S. 27). 실제로, 감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경제 원리”가 주체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생겨날 수 있겠는가? 감각은 물론 아무런 “경제”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사유는 감각에 없는 무언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제 원리”는 경험(=감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며, 칸트의 범주들처럼 경험의 논리적 조건을 이룬다는 것이다. 회니히스발트는 『감각의 분석』에서 다음 대목을 인용한다. “우리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평형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의 평형, 일의적 규정성, 동질성을 추론할 수 있다”(러시아어 번역 281쪽). 그리고 실제로 이런 명제들의 주관적 관념론적 성격, 그리고 떠들다 못해 선험주의에까지 이른 페촐트에게 마흐가 가깝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관념론자 분트는 “사유경제 원리”를 염두에 두고 마흐를 매우 적확하게 “뒤집힌 칸트”라고 부른다(『Systematische Philosophie』, Lpz., 1907, S. 128). 칸트에게는 선험과 경험이 있다. 마흐에게는 경험과 선험이 있다. 왜냐하면 마흐에게서 사유경제 원리는 사실상 선험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130). 연관(Verknüpfung)은 사물 속에 “자연의 객관적 법칙으로서(마흐는 이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있거나, 아니면 서술의 주관적 원리이다”(130). 마흐에게서 경제 원리는 주관적이며, 그것은 kommt wie aus der Pistole geschossen —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목적론적 원리로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세상에 튀어나온다(131). 보다시피 철학 용어의 전문가들은, “새로운” 말 한마디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을 없애 준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태세가 되어 있는 우리 마흐주의자들만큼 순진하지 않다.

끝으로 스스로를 서슴없이 유심론적 일원론자라고 부르는 영국 철학자 제임스 워드도 끌어오자. 그는 마흐와 논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에서 보겠지만, 물리학에서의 마흐주의 조류 전체를 유물론에 맞선 자신의 투쟁에 이용한다. 그리고 그는 마흐의 “단순성의 기준”이 “주로 주관적이지 객관적이지 않다”고 분명히 말한다(『Naturalism and Agnosticism』, ν. Ι, 3rd ed., p. 82).

인식론의 토대로서의 사유경제 원리가 독일의 칸트주의자들과 영국의 유심론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모든 것에 비추어 보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유물론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마흐의 인식론적 경제와 결부시킨다는 것, — 이것은 순전한 희극이다.

여기서 “세계의 통일”에 관해 몇 마디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P. 유시케비치 씨는 이 문제에서 — 백 번째, 천 번째로 —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끌어들이는 끝없는 혼란을 실물로 보여 주었다.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사유의 통일로부터 세계의 통일을 끌어내던 뒤링을 반박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실제적 통일은 그 물질성에 있으며, 이 물질성은 몇 마디 사기꾼 같은 문구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자연과학의 길고 어려운 발전에 의해 증명된다”(S. 31). 유시케비치 씨는 이 대목을 인용하고 이렇게 “반박한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불분명한 것은 ‘세계의 통일은 그 물질성에 있다’는 주장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점이다”(앞의 책, 52쪽).

멋지지 않은가? 이 작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해 공공연히 떠들어 대겠다고 나서서는, 유물론의 가장 초보적인 명제들이 자기에게는 “불분명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엥겔스는 뒤링을 예로 들어, 조금이라도 일관된 철학이라면 세계의 통일성을 사유로부터 이끌어내거나 — 그 경우 그 철학은 유심론과 신앙주의 앞에서 무력하며(『반뒤링론』 S. 30), 그러한 철학의 논거는 필연적으로 사기꾼의 문구로 귀착된다 — 아니면 우리 밖에 존재하며, 인식론에서 오래전부터 물질이라고 불려 왔고 자연과학이 연구하는 저 객관적 실재로부터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것이 “불분명한” 작자와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았자 소용없다. 그가 여기서 “불분명”을 운운하는 것은 엥겔스의 아주 명백한 유물론적 명제에 대해 본질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사기꾼처럼 빠져나가기 위해서이며, 이때 그는 “존재의 원리적 동질성과 연관성에 관한 근본 요청”(유시케비치, 앞의 책, 51쪽)에 관해, 또 “경험에서 도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연구의 기초에 놓기 때문에 비로소 과학적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같은 곳)라는 “명제”로서의 요청에 관해 순전히 뒤링식의 헛소리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 순전한 횡설수설이다. 이 작자가 인쇄된 글에 털끝만큼이라도 존중심이 있었다면, 경험에서 취한 것이 아니면서도 그것 없이는 경험이 불가능한 명제가 있을 수 있다는 관념이 대체로 관념론적 성격을, 특히 칸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갖가지 시시한 책자에서 주워 모아 유물론자 디츠겐의 명백한 오류들과 엮어 놓은 낱말의 나열 — 이것이 바로 유시케비치 씨 같은 자들의 “철학”이다. 차라리 세계의 통일성 문제에 관한 진지한 경험비판론자 한 사람, 요제프 페촐트의 논의를 살펴보자. 그의 『입문』 제2권 제29절의 제목은 「인식 영역에서 통일적인 것(einheitlich)을 향한 지향. 일어나는 모든 것의 일의성(一義性)의 요청」이다. 그의 논의의 견본을 보자. “... 오직 통일성에서만, 어떠한 사유 가능성도 그 너머로는 나아가지 않는 저 자연적 목표가 발견되며, 따라서 사유는 해당 영역의 모든 사실을 고려하기만 한다면 그 목표 안에서 평온에 이를 수 있다”(79). “... 자연이 언제나 통일성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자연이 이미 지금도 많은 경우에 평온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든 연구에 비추어 볼 때 자연이 앞으로 모든 경우에 이 요구를 충족시키리라고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고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의 정신 상태는 통일성을 향한 지향이라기보다 안정 상태를 향한 지향으로 규정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안정 상태의 원리는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간다... 식물계와 동물계 옆에 원생생물계를 하나 더 세우자는 헤켈의 제안은 쓸모없는 해결책이다. 그것은 이전의 난점 하나 대신 새로운 난점 두 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식물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의심스러웠지만, 이제는 원생생물을 식물로부터도 동물로부터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가 최종적(endgültig)인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개념들의 이러한 양의성(兩義性)은 어떻게든 제거되어야 하며, 다른 수단이 없다면 전문가들의 합의와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통해서라도 제거되어야 한다”(80—81).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경험비판론자 페촐트가 뒤링보다 털끝만큼도 나을 것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논적에게도 공정해야 한다. 페촐트에게는 적어도 저작마다 유물론을 철학 방향으로서 단호하고도 돌이킬 수 없이 거부할 만큼의 학문적 성실성은 있다. 적어도 그는 유물론을 흉내 내면서 기본 철학 방향들 사이의 가장 초보적인 차이를 “불명료하다”고 선언하는 데까지 비굴해지지는 않는다.

5. 공간과 시간

우리의 의식과 무관한 객관적 실재, 즉 운동하는 물질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물론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도 인정해야 한다. 이 점에서 유물론은 무엇보다 칸트주의와 다르다. 칸트주의는 이 문제에서 관념론의 편에 서서 시간과 공간을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인간 직관의 형식으로 여긴다. 이 문제에서도 두 기본 철학 노선이 근본적으로 갈라진다는 점은 가장 다양한 방향의 저술가들, 다소라도 일관된 사상가들이 아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유물론자들부터 시작하자.

포이어바흐는 “공간과 시간은 단순한 현상의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 조건(Wesensbedingungen)이다”(Werke, II, 332)라고 말한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감각적 세계를 객관적 실재로 인정하는 포이어바흐는 당연히 공간과 시간에 대한 현상론적(마흐라면 자기 견해를 두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또는 불가지론적(엥겔스의 표현대로라면) 이해도 거부한다. 사물이나 물체가 단순한 현상이나 감각 복합이 아니라 우리 감각에 작용하는 객관적 실재이듯이, 공간과 시간도 단순한 현상의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객관적-실재적 형식이다. 세계에는 운동하는 물질 외에 아무것도 없으며, 운동하는 물질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가 아니고서는 운동할 수 없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표상은 상대적이지만, 이 상대적 표상들로부터 절대적 진리가 이루어지며, 이 상대적 표상들은 발전하면서 절대적 진리의 노선을 따라 나아가 그것에 다가간다. 물질의 구조와 운동 형식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변한다고 해서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이 반박되지 않듯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표상이 변한다고 해서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실재성이 반박되지는 않는다.

엥겔스는 일관성 없고 혼란스러운 유물론자 뒤링을 폭로하면서, 그가 공간과 시간은 실재적인가 관념적인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표상들은 존재의 객관적-실재적 형식에 대한 근사인가, 아니면 발전하고 조직되고 조화를 이루는 등의 인간 사유의 산물에 불과한가 하는 물음에 명확히 답하기를 회피하면서 시간 개념의 변화에 대해 늘어놓는다는(가장 다양한 철학 방향의 다소라도 중요한 현대 철학자라면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 문제다) 바로 그 점을 붙잡는다. 참으로 근본적인 철학 방향들을 가르는 기본적 인식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오직 여기에 있다. 엥겔스는 이렇게 쓴다. “뒤링 씨의 머릿속에서 어떤 개념들이 변하는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문제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실제의 시간이며, 뒤링 씨는 이 시간을 그렇게 값싸게”(즉 개념의 가변성에 관한 문구들로)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다”(『반뒤링론』, 독일어 제5판, S. 41).

이것은 유트케비치 씨들조차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일이 아니겠는가? 엥겔스는 모든 유물론자에게 공인되어 있고 자명한 명제, 즉 시간의 현실성, 다시 말해 시간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명제를 뒤링에게 맞세우면서, 이 명제를 정면으로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변화한다는 논의로 피해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엥겔스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 개념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과학적 의의를 부정했다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인식론적 물음, 즉 인간의 모든 지식 일반의 원천과 의의에 관한 물음을 일관되게 해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조금이라도 사리를 아는 관념론 철학자라면 — 엥겔스가 관념론자를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은 고전 철학의 천재적으로 일관된 관념론자들이었다 — 관념론자이기를 그만두지 않고도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 개념의 발전을 쉽사리 인정한다. 예컨대 발전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시간과 공간 각각의 절대적 이념에 가까워진다고 여기는 식이다. 발전하는 우리의 시간·공간 개념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며, 여기서도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객관적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신앙주의와 모든 관념론에 적대적인 관점을 철학에서 일관되게 견지할 수 없다.

“모든 존재의 기본 형식은” 하고 엥겔스는 뒤링을 훈계한다, “공간과 시간이다. 시간 밖의 존재는 공간 밖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가장 큰 무의미다”(같은 곳).

엥겔스는 왜 이 문장의 전반부에서 포이어바흐를 거의 글자 그대로 되풀이하고, 후반부에서는 포이어바흐가 그토록 성공적으로 수행한 유신론의 가장 큰 무의미와의 투쟁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는가? 엥겔스의 바로 그 장에서 드러나듯이, 뒤링은 세계의 “최종 원인”이나 “최초의 충격”(엥겔스의 말로는 신이라는 개념의 다른 표현)에 부딪히지 않고서는 자기 철학의 앞뒤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뒤링은 아마도 우리의 마흐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 못지않게 진심으로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관념론적이고 유신론적인 무의미의 발밑에서 모든 토대를 실제로 빼앗아 버릴 철학적 관점을 일관되게 관철할 줄 몰랐다.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 또는 적어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음으로써(뒤링은 이 문제에서 동요하고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 뒤링은 우연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최종 원인”과 “최초의 충격”에 이르기까지 비탈길을 굴러 내려간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막아 주는 객관적 기준을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단지 개념일 뿐이라면, 그것을 만들어 낸 인류는 그 한계를 넘어설 권리가 있으며, 부르주아 교수들은 이렇게 넘어서는 것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중세의 “무의미”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변호한 대가로 반동 정부에게서 봉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엥겔스는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철학적 혼란이고 실천적으로는 신앙주의 앞에서의 항복 또는 무력함이라는 것을 뒤링에게 보여 주었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한 “최신 실증주의”의 “학설”을 보라. 마흐에게서 우리는 이렇게 읽는다. “공간과 시간은 질서 잡힌(또는 조화된, wohlgeordnete) 감각 계열들의 체계이다”(『역학』, 독일어 제3판, 498쪽). 이것은 — 물체가 감각 복합이라는 학설에서 불가피하게 따라 나오는 명백한 관념론적 헛소리다. 감각을 지닌 인간이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이 인간 속에 존재하며 인간에게 의존하고 인간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 이것이 마흐에게서 나오는 결론이다. 그는 자신이 관념론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저항하면서” 숱한 단서를 달고, 뒤링처럼 우리의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의 가변성, 그 상대성 등에 관한 장황하기 짝이 없는 논의(특히 『인식과 오류』를 보라)에 문제를 파묻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구하지 못하며 구할 수도 없다. 이 문제에서 관념론적 입장을 참으로 극복하려면 오직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흐는 결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인식론적 이론을 상대주의 원리 위에 세운다 — 그뿐이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이야기하면서 이미 밝혔듯이, 이러한 구축물은 본질상 주관적 관념론 말고는 어디에도 이를 수 없다.

자신의 전제들에서 불가피하게 따라 나오는 관념론적 결론들에 저항하면서, 마흐는 칸트에 맞서 공간 개념이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인식과 오류』, 독일어 제2판, S. 350, 385). 그러나 만일 (마흐가 가르치는 대로)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객관적 실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칸트에 대한 그러한 반박은 칸트에게도 마흐에게도 공통된 불가지론의 일반적 입장을 조금도 없애 주지 못한다. 만일 공간 개념이 우리 밖의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 아닌 채로 경험에서 얻어진다면, 마흐의 이론은 관념론적인 것으로 남는다. 인간과 인간의 경험이 출현하기 이전에 수백만 년으로 측정되는 시간 속에서 자연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 관념론적 이론의 불합리를 보여 준다.

“생리학적 견지에서 — 마흐는 쓴다 — 시간과 공간은 정위(定位) 감각이며, 이것은 감성적 감각들과 함께 생물학적으로 합목적적인 적응 반응의 촉발(Auslösung)을 규정한다. 물리적 견지에서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요소들 서로 간의 의존 관계이다”(같은 곳, S. 434).

상대주의자 마흐는 시간 개념을 여러 견지에서 고찰하는 데 그친다! 그리고 그는 뒤링과 똑같이 제자리걸음을 한다. 만일 “요소”가 감각이라면, 물리적 요소들 서로 간의 의존 관계는 인간 밖에, 인간 이전에, 유기적 물질 이전에 존재할 수 없다. 만일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합목적적인 정위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 감각들이 인간 밖의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감각이 환경에 관한 객관적으로 올바른 표상을 주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간과 시간에 관한 학설은 인식론의 근본 문제의 해결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부되어 있다. 그 문제란 우리의 감각이 물체와 사물의 상(像)인가, 아니면 물체가 우리 감각의 복합인가 하는 것이다. 마흐는 이 해결과 저 해결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뿐이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 하고 그는 말한다, — 절대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즉 시간과 공간 그 자체에 관한 뉴턴의 견해가 유지되고 있다(S. 442—444). 이 견해는 “우리에게” 무의미하게 보인다, — 하고 마흐는 계속 말한다, — 세상에 유물론자들과 유물론적 인식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러나 실천에서 이 견해는 무해했으며(unschädlich, S. 442), 그 때문에 오랫동안 비판을 받지 않았다.

유물론적 견해의 무해성에 관한 이 소박한 언급은 마흐의 정체를 송두리째 드러낸다! 첫째, 관념론자들이 이 견해를 “아주 오랫동안”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흐는 이 문제를 둘러싼 관념론적 인식론과 유물론적 인식론의 투쟁을 그저 무시하고 있으며, 두 견해를 정면으로 명확하게 서술하기를 회피한다. 둘째, 자신이 반박하는 유물론적 견해들의 “무해성”을 인정함으로써 마흐는 사실상 그 견해들이 올바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올바르지 않은 것이 어떻게 수 세기 동안 무해할 수 있었겠는가? 마흐가 추파를 던져 보려 했던 그 실천의 기준은 어디로 갔는가?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유물론적 견해가 “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연과학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물질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 그런 일은 반동 철학 교수들에게 맡겨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해성”은 올바름과 같은 것이다.

“해로운” 것은 공간과 시간에 관한 마흐의 관념론적 견해다. 그것은 첫째로 신앙주의에 문을 활짝 열어 주고, 둘째로 마흐 자신을 반동적 결론으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872년에 마흐는 “화학 원소들을 반드시 3차원 공간 속에서 표상할 필요는 없다”고 썼다(『Erhaltung der Arbeit』, S. 29, S. 55에서 반복됨).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순전히 사유된 것(das bloss Gedachte)을 공간적으로, 즉 보이는 것 및 감각되는 것과 관련지어 사유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을 어떤 특정한 음높이로 사유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27).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전기 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전기 현상을 기어이 3차원 공간 속의 분자적 과정으로 설명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30).

1872년에 마흐가 공공연히 옹호했던 그 솔직하고 뒤엉키지 않은 마흐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추론은 전혀 반박의 여지가 없다. 분자, 원자, 한마디로 화학 원소들을 감각할 수 없다면, 그것들은 “단지 사유된 것”(das bloss Gedachte)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고 공간과 시간이 객관적·실재적 의의를 갖지 않는다면, 원자를 반드시 공간적으로 표상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물리학과 화학은 물질이 운동하는 3차원 공간으로 “자신을 제한”하라지, — 그래도 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을 3차원이 아닌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마흐는 1906년에도 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데(『인식과 오류』, 제2판, 418쪽),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이를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 것은 —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공간에 대한 관념론적 견해와 유물론적 견해의 문제를, 얼버무리지도 대립물을 “화해”시키려 하지도 못한 채, 정면으로 제기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흐가 완전히 무명이었고 심지어 “정통파 물리학자들”에게서 논문 게재를 거절당하기까지 하던 바로 그 70년대에, 내재학파의 두목 가운데 한 사람인 안톤 폰 레클레어가 마흐의 바로 이 논변을 유물론과의 훌륭한 절연이자 관념론의 승인으로 여겨 온 힘을 다해 받아들였다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 당시 레클레어는 아직 “내재학파”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내지도, 슈페와 슈베르트-졸데른 또는 J. 렘케에게서 빌려 오지도 않았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비판적 관념론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다[72]. 자신의 철학 저술에서 신앙주의를 노골적으로 설교하는 이 명백한 신앙주의 옹호자는 그런 발언을 한 마흐를 곧바로 위대한 철학자,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혁명가”라고 선포했으며(S. 252), 그는 완전히 옳았다. 마흐의 논변은 자연과학의 진영에서 신앙주의의 진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1872년에도 1906년에도 3차원 공간 속에서 전기의 원자, 즉 전자를 찾아왔고, 찾고 있으며, 찾아낸다 — 적어도 더듬어 찾고 있다. 자연과학은 자신이 연구하는 물질이 3차원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며, 따라서 이 물질의 입자들도, 설령 너무 작아서 우리가 볼 수 없을지라도, “반드시” 같은 3차원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1872년 이래 물질의 구조 문제에서 과학이 거대하고 현기증 나는 성공을 거둔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공간과 시간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는 계속 “무해한” 것, 즉 여전히 자연과학과 일치하는 것으로 남아 있었고, 마흐 일당의 반대 견해는 신앙주의에 진지를 내준 “해로운” 것이었다.

마흐는 자신의 『역학』에서 n차원의 사유 가능한 공간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는 수학자들을, 그들이 자신들의 연구에서 “괴물 같은” 결론을 끌어낸 죄가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변호한다. 그 변호는 의심할 바 없이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마흐가 이 변호에서 어떤 인식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보라. 마흐는 말한다. 최신 수학은 사유 가능한 공간으로서 n차원 공간에 관한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현실적 사례”(ein wirklicher Fall)로 남는 것은 3차원 공간뿐이다(제3판, 483—485쪽). 그러므로 “지옥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곤란을 겪는 많은 신학자들”과 강신술사들이 4차원에서 자기들에게 이로운 무엇인가를 끌어내려 한 것은 헛된 일이다(같은 곳).

아주 좋다! 마흐는 신학자들과 강신술사들의 패거리에 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식론에서 무엇으로 그들과 선을 긋는가? 오직 3차원 공간만이 현실적이라는 것으로써다! 그런데 공간과 시간에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신학자들과 그 일당에 맞서는 무슨 방어가 되겠는가? 결국 당신들은 강신술사들과 거리를 두어야 할 때면 유물론에서 슬그머니 빌려 오는 방법을 쓰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유물론자들은 우리가 감각하는 현실 세계, 즉 물질을 객관적 실재로 인정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인간의 어떠한 날조도,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여기에서 이끌어 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흐주의자 양반들, 당신들은 유물론과 싸울 때에는 “현실성”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고서, 일관되고 끝까지 대담하며 공공연한 관념론과 싸워야 할 때에는 그것을 몰래 다시 들여온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개념 속에 상대성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면, 이 상대적 개념들이 반영하는 객관적(= 인간에게도, 인류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실재가 없다면, 어째서 인류가, 어째서 인류의 다수가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존재자들에 관한 개념을 가질 권리가 없다는 말인가? 마흐가 전기의 원자나 원자 일반을 3차원 공간 밖에서 찾을 권리가 있다면, 어째서 인류의 다수는 원자나 도덕의 기초를 3차원 공간 밖에서 찾을 권리가 없다는 말인가?

“제4차원의 도움으로 해산을 도운 산파는 아직 없었다”고 마흐는 같은 곳에서 쓴다.

훌륭한 논거다. 다만 실천의 기준에서 객관적 진리의 확증을, 우리의 감각적 세계가 지닌 객관적 실재성의 확증을 보는 사람들에게만 그렇다. 우리의 감각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의 객관적으로 올바른 상을 우리에게 준다면, 그때는 산파를 끌어대고 인류의 모든 실천을 끌어대는 이 논거가 쓸모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철학적 조류로서의 마흐주의 전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누구도 내가 이 문제에 관해 말하고 쓴 것을 가지고 어떤 마귀 소동을 옹호하지는(die Kosten einer Spukgeschichte bestreiten) 않기를 나는 바란다”고 마흐는 1872년의 자기 저작을 끌어대며 말을 잇는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지 않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마흐주의가 이미 내재론자들에게 이롭게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 마당에, 그것이 “마귀 소동”에 이롭게 쓰이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게다가 아래에서 보겠지만 내재론자들에게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철학적 관념론은 가려지고 치장된 마귀 소동일 뿐이다. 경험비판론의 독일 대표자들보다 덜 현란한, 이 철학적 조류의 프랑스와 영국 대표자들을 보라. 푸앵카레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상대적이며, 따라서(비유물론자들에게는 이것이 정말로 “따라서”다) “자연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는(또는 강요하는, impose)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그것들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편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l. c., p. 6)라고 말한다. 이것이 독일 칸트주의자들의 열광을 정당화해 주지 않는가? 이것이, 일관된 철학적 학설은 자연이나 인간의 사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제1차적인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엥겔스의 말을 확인해 주지 않는가?

영국 마흐주의자 칼 피어슨의 견해는 아주 명확하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이 실재적 존재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것들은 사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지각하는 우리의 방식(our mode) 속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l. c., p. 184). 이것은 노골적이고 솔직한 관념론이다.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은 이 위대한 분류 기계, 곧 인간의 인식 능력이 자기 재료를 질서 있게 배열하는(arranges) 방식들(글자 그대로는 계획들, plans) 가운데 하나이다”(같은 곳). K. 피어슨이 늘 그렇듯 정확하고 명료한 명제로 서술하는 최종 결론은 이러하다. “공간과 시간은 현상 세계(phenomenal world)의 실재가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양태, modes)이다. 그것들은 본질상(essentially) 우리 지각의 내용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므로 무한하지도, 무한히 나뉠 수도 없다”(p. 191, 공간과 시간에 관한 제5장의 결론).

마흐가 — 거듭 말하거니와 — 여러 차례 전적인 동의를 표명했고 그 자신도 마흐에 대한 동의를 직접 밝힌 유물론의 성실하고 정직한 적 피어슨은, — 자기 철학에 특별한 간판을 지어 붙이지 않고, 자기 철학적 노선의 뿌리인 고전가들, 곧 흄과 칸트를 조금도 에두르지 않고 지목한다(p. 192)!

그리고 러시아에는 마흐주의가 공간과 시간 문제에 관해 “새로운” 해결을 내놓았다고 믿은 순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국 문헌에서는 한편으로 자연과학자들이, 다른 한편으로 관념론 철학자들이 마흐주의자 K. 피어슨에 대해 즉각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입장을 취했다. 예컨대 생물학자 로이드 모건의 평은 이렇다. “자연과학은 그 자체로서 현상 세계를 관찰자의 정신에 대해 외적인 것,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피어슨 교수는 “관념론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73]. “내 생각에 자연과학은 과학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순전히 객관적인 범주로 다룰 충분한 근거를 지닌다. 생물학자는 유기체의 공간적 분포를, 지질학자는 그 시간적 분포를 다룰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감각적 지각, 축적된 감각적 지각, 지각의 일정한 형식일 뿐이라고 독자에게 설명하려고 멈춰 설 필요 없이 다룰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좋을지는 몰라도 물리학과 생물학에서는 부적절하다”(p. 304). 로이드 모건은 엥겔스가 “수줍은 유물론”이라고 부른 불가지론의 대표자이며, 그런 철학의 경향이 아무리 “화해적”이라 해도 피어슨의 견해를 자연과학과 화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어슨에게서는 “먼저 정신이 공간 속에 있고, 그다음에 공간이 정신 속에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또 다른 비평가는 말한다[74]. K. 피어슨의 옹호자 라일(R. J. Ryle)은 이렇게 답했다. “칸트의 이름과 결부된 공간과 시간에 관한 학설이 버클리 주교 이래 인간 인식의 관념론적 이론이 거둔 가장 중요한 긍정적 성과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피어슨의 『과학의 문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영국 학자의 저술로서는 처음으로, 칸트 학설의 근본적 진리성에 대한 완전한 인정과 그 학설에 대한 간결하지만 명료한 서술을 함께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75].

이처럼 영국에서는 마흐주의자들 자신도, 자연과학자 진영의 반대자들도, 전문 철학자 진영의 지지자들도 시간과 공간 문제에 관한 마흐 학설의 관념론적 성격에 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몇몇 러시아 필자들만이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엥겔스의 개별적 견해 가운데 많은 것은, — 예컨대 V. 바자로프는 『개요』 67쪽에서 이렇게 쓴다, — 예를 들어 ‘순수한’ 공간과 시간에 관한 그의 표상은 이제 이미 낡았다.”

그렇고말고! 유물론자 엥겔스의 견해는 낡았고, 관념론자 피어슨과 갈팡질팡하는 관념론자 마흐의 견해야말로 최신의 것이다! 여기서 가장 우스운 것은, 공간과 시간에 관한 견해, 바로 그것들의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 저자가 바로 다음 문장에서 말하는 “세계관의 출발점”과 대립하는 “개별적 견해”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바자로프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독일 철학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엥겔스가 말하곤 하던 “절충주의적 거지 수프”의 생생한 견본이 여기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의 “출발점”을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그들의 “개별적 견해”와 대립시키는 것은,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출발점”을 잉여가치에 관한 그의 “개별적 견해”와 대립시키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엥겔스의 학설을 “물자체”가 “우리에 대한 사물”로 전화한다는 그의 학설로부터,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바로 감각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재에 대한 그의 인정으로부터, 자연의 객관적 법칙성·인과성·필연성에 대한 그의 인정으로부터 떼어 내는 것, 이것은 하나로 통일된 철학을 잡탕으로 만드는 것이다. 바자로프는 모든 마흐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인간의 개념이 변한다는 것, 그 개념이 오로지 상대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인간과 자연은 오직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며, 사제주의가 만들어 내고 무지하고 억눌린 인류 대중의 상상이 떠받치는 시간과 공간 밖의 존재자들은 병든 환상이자 철학적 관념론의 억지 궤변이요 쓸모없는 사회제도의 쓸모없는 산물이라는 사실의 불변성과 혼동하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물질의 구조, 음식의 화학적 조성, 원자와 전자에 관한 과학의 학설은 낡을 수 있고 날마다 낡아 가지만, 인간은 생각을 먹고 살 수 없으며 플라톤적 사랑만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진리는 낡을 수 없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철학은 이 후자의 진리들을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고, 속속들이 썩었으며, 거짓이다. 관념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술책은 대체로 보아 바리새인들의 플라톤적 사랑 설교만큼이나 위선적이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개념이 지닌 상대성과, 이 문제에서 유물론적 노선과 관념론적 노선 사이의, 인식론의 범위 안에서는 절대적인 대립 사이의 이 차이를 예시하기 위해, 아주 오래되고 아주 순수한 “경험비판론자”, 바로 1792년에 글을 쓴 흄주의자 슐체-에네지데무스의 특징적인 구절을 하나 더 인용하겠다.

“표상으로부터 ‘우리 밖의 사물’을 추론한다면, 그때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 밖에 있는 실제적인 어떤 것이며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체의 존재는 오직 현존하는(vorhandenen) 공간 속에서만, 변화의 존재는 오직 현존하는 시간 속에서만 사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1. c, S. 100).

바로 그렇다! 흄의 추종자 슐체는 유물론과, 유물론에 대한 아주 작은 양보까지도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1792년에 공간과 시간의 문제가 우리 밖의 객관적 실재의 문제와 맺는 관계를, 유물론자 엥겔스가 1894년에 그린 바로 그 방식으로 그려 낸다(엥겔스가 『반뒤링론』에 붙인 마지막 서문에는 1894년 5월 23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이것은 백 년 동안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표상이 변하지 않았다거나, 이 표상들의 발전에 관한 방대한 새 자료가 수집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보로실로프-체르노프도 보로실로프-발렌티노프도 엥겔스를 반박한답시고 바로 이 자료를 들먹인다) — 이것은 우리의 마흐주의자들이 아무리 “새로운” 별명들을 뽐내더라도, 근본적인 철학 노선으로서 유물론과 불가지론이 맺는 상호관계는 변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보그다노프 역시 관념론과 불가지론의 낡은 철학에 “새로운” 별명 말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 그가 생리학적 공간과 기하학적 공간의 차이, 또는 감각적 지각의 공간과 추상적 공간의 차이에 관해 헤링과 마흐의 논의를 되풀이할 때(『경험일원론』, 제1권, 26쪽), 그는 뒤링의 오류를 고스란히 되풀이한다. 인간이 여러 감각 기관의 도움으로 공간을 정확히 어떻게 지각하는가, 그리고 오랜 역사적 발전을 거쳐 이러한 지각들로부터 추상적 공간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와, 인류의 이러한 지각과 개념에 인류와 독립된 객관적 실재가 상응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뒤의 문제야말로 유일하게 철학적인 문제인데도, 보그다노프는 앞의 문제에 관한 세부 연구 더미에 파묻혀 그것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엥겔스의 유물론을 마흐의 혼란과 명확히 대립시키지 못했다.

시간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조정하는 형식”이며(같은 곳, 34쪽), 그것들의 “객관성”은 “보편타당성”이다(같은 곳).

이것은 순전한 거짓이다. 인류 대다수의 경험의 사회적 조정을 표현하는 종교 역시 보편타당하다. 그러나 종교의 가르침, 예컨대 지구의 과거와 세계 창조에 관한 가르침에는 어떤 객관적 실재도 상응하지 않는다. 지구가 모든 사회성 이전에, 인류 이전에, 유기적 물질 이전에 존재했으며, 일정한 시간 동안, 다른 행성들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공간 속에 존재했다는 과학의 가르침 — 이 가르침에는 (종교 발전의 각 단계가 상대적이듯이 이 가르침 역시 과학 발전의 각 단계에서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실재가 상응한다. 보그다노프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의 여러 형식이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의 인식 능력에 적응한다는 것이 된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인식이 객관적 공간과 시간에 점점 더 적응해 가며, 그것들을 점점 더 올바르고 깊이 반영한다.

6. 자유와 필연성

『개요』 140—141쪽에서 A. 루나차르스키는 이 문제에 관한 엥겔스의 『반뒤링론』의 논의를 인용하고, 이 저작의 해당 “경이로운 쪽”[76]에서 엥겔스가 이 문제에 관해 내린 “놀랄 만큼 명료하고 적확한” 특징 규정에 전적으로 동조한다.

여기에는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A. 루나차르스키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다른 숱한 마흐주의자들도 자유와 필연성에 관한 엥겔스의 논의가 지니는 인식론적 의의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읽기는 — 읽었고 베끼기는 — 베꼈지만,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엥겔스는 말한다. “헤겔이 처음으로 자유와 필연성의 관계를 올바르게 제시했다. 그에게 자유란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다. ‘필연성이 맹목적인 것은 오직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한에서일 뿐이다.’ 자유는 자연법칙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상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법칙들을 인식하는 데에, 그리고 이 앎에 기초하여 자연법칙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작용하도록 계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이는 외적 자연의 법칙들에도, 인간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존재를 지배하는 법칙들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 이 두 부류의 법칙은 우리가 기껏해야 표상 속에서나 서로 떼어 놓을 수 있을 뿐, 현실에서는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의지의 자유란 사정을 알고서 결정을 내리는 능력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문제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 자유로울수록, 그 판단의 내용은 그만큼 더 큰 필연성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자유는 자연의 필연성(Naturnotwendigkeiten)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우리 자신과 외적 자연을 지배하는 데에 있다…” (독일어 제5판, 112—113쪽).

이 모든 논증이 어떤 인식론적 전제들에 기초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엥겔스는 자기 논증의 맨 처음부터 자연법칙, 외적 자연의 법칙, 자연의 필연성을 인정한다 — 즉 마흐, 아베나리우스, 페촐트 일당이 “형이상학”이라고 선언하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 루나차르스키가 엥겔스의 “경이로운” 논증을 제대로 숙고해 보려 했다면, 유물론적 인식론이 자연의 법칙성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단지 “논리적인” 것 등등으로 선언하는 불가지론 및 관념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엥겔스는 자유와 필연성의 “정의”를, 즉 반동적 교수들(아베나리우스 같은)과 그 제자들(보그다노프 같은)이 무엇보다 몰두하는 스콜라적 정의를 억지로 짜내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엥겔스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를 — 한편에, 자연의 필연성을 — 다른 편에 놓고, 어떤 정의나 규정을 내리는 대신 그저 자연의 필연성이 일차적인 것이고 인간의 의지와 의식은 — 이차적인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후자는 전자에 적응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엥겔스는 이것을 너무나 자명하게 여기기에 자기 견해를 설명하는 데 쓸데없는 말을 허비하지 않는다. 오직 러시아 마흐주의자들만이 엥겔스가 내린 유물론의 일반적 정의(자연 — 일차적인 것, 의식 — 이차적인 것: 이 점에 관한 보그다노프의 “의아함”을 떠올려 보라!)에 대해 불평하면서, 동시에 엥겔스가 이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정의를 개별적으로 적용한 한 사례는 “경이롭고” “놀랍도록 적확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셋째, 엥겔스는 “맹목적 필연성”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필연성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는 인용한 대목에서 더없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마흐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기가 모르는 것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식되지 않은 필연성의 존재를 안다니? 이것이야말로 “신비주의”, “형이상학”, “물신”과 “우상”의 인정, “칸트주의의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가 아닌가? 마흐주의자들이 깊이 생각해 보았다면, 사물의 객관적 본성의 인식 가능성과 “물자체”가 “우리에 대한 물”로 전화하는 것에 관한 엥겔스의 논의와, 맹목적이고 인식되지 않은 필연성에 관한 그의 논의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개의 인간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의식의 발전과 전 인류의 집단적 지식의 발전은 인식되지 않은 “물자체”가 인식된 “우리에 대한 물”로 전화하는 것, 맹목적이고 인식되지 않은 필연성, 곧 “그 자체로서의 필연성”이 인식된 “우리에 대한 필연성”으로 전화하는 것을 걸음마다 우리에게 보여준다. 인식론적으로 이 두 전화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양쪽 모두 근본 관점은 하나, 즉 유물론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와 외부 자연의 법칙이 객관적 실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 세계와 이 법칙들은 인간에게 충분히 인식 가능하지만 인간이 그것들을 끝까지 인식할 수는 결코 없다. 우리는 날씨 현상에서 자연의 필연성을 모르며, 그런 만큼 우리는 불가피하게 날씨의 노예다. 그러나 이 필연성을 모르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 앎은 어디서 오는가? 사물이 우리 의식 밖에 그리고 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앎이 오는 바로 그곳, 즉 우리 지식의 발전에서 온다. 이 발전은 대상이 우리의 감관에 작용할 때 무지가 앎으로 바뀌고, 반대로 그러한 작용의 가능성이 제거될 때 앎이 무지로 전화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수백만 번 보여준다.

넷째, 인용한 논의에서 엥겔스는 철학에서 “살토비탈레식” 방법을 분명히 적용한다. 즉 이론에서 실천으로 도약한다.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뒤따르는 저 학식 있는 (그리고 어리석은) 철학 교수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순수 과학”의 대표자로서 수치스러운 이런 도약을 결코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더 교묘하게 말로 “정의”를 꾸며 내야 하는 인식론이 한 가지 일이고, 실천은 전혀 다른 일이다. 엥겔스에게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실천 전체가 인식론 자체 속으로 밀고 들어와 진리의 객관적 기준을 제공한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모르는 동안, 그 법칙은 우리의 인식과 상관없이, 우리의 인식 밖에서 존재하고 작용하면서 우리를 “맹목적 필연성”의 노예로 만든다. (마르크스가 수천 번 되풀이했듯이)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이 법칙을 우리가 일단 알게 되면 —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다. 인류의 실천에서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지배는 자연의 현상과 과정이 인간의 머릿속에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반영된 결과이며, 이 반영이 (실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진리라는 증명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엥겔스의 논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거의 문자 그대로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명제 한 명제가 전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위에, 즉 감각 복합으로서의 물체, “요소”, “감성적 표상과 우리 밖에 존재하는 현실의 일치” 등등에 관한 온갖 마흐주의적 헛소리의 면전을 후려치는 전제들 위에 세워져 있다. 마흐주의자들은 이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유물론을 내던지고, (베르만 식으로) 변증법에 관한 닳아빠진 속된 소리를 되풀이하면서, 바로 그 옆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적용 가운데 하나를 두 팔 벌려 받아들인다! 그들은 절충주의의 거지 같은 죽에서 자기 철학을 퍼 왔고, 지금도 그런 죽으로 독자를 대접하고 있다. 그들은 마흐에게서 불가지론 한 조각과 관념론 약간을 가져다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한 조각과 섞어 놓고는, 이 뒤범벅이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들은 마흐, 아베나리우스, 페촐트와 그 밖의 모든 권위자가 헤겔과 마르크스가 (자유와 필연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순전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어느 책자의 어느 쪽을 읽지 않았을 뿐이지, 이 “권위자들”이 19세기 철학의 실제 진보에 대해 철저한 무식쟁이였고 지금도 그러하며, 철학적 몽매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그런 몽매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 빈 대학의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철학 정교수 에른스트 마흐의 논의가 있다.

“결정론의 입장이 옳은지 비결정론의 입장이 옳은지는 증명될 수 없다. 오직 완성된 과학이나 불가능함이 증명된 과학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연구의 이전 성공이나 실패에 다소 큰 주관적 무게(subjektives Gewicht)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물의 고찰에 들여오는(man heranbringt) 전제들이다. 그러나 연구하는 동안에는 모든 사상가가 필연적으로 이론상 결정론자다”(『인식과 오류』, 독일어 제2판, 282—283쪽).

순수 이론이 실천으로부터 조심스럽게 울타리를 치고, 결정론이 “연구”의 영역에 국한되며, 도덕과 사회 활동의 영역에서, “연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주관적” 평가에 맡겨진다면, 이것이 몽매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 서재에서는, — 하고 박식한 현학자는 말한다, — 나는 결정론자다. 그러나 철학자가 이론과 실천을 모두 포괄하고 결정론 위에 세워진 통일적인 세계관에 마음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꺼낼 것도 없다. 마흐가 진부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자유와 필연성의 관계라는 문제가 이론적으로 그에게 전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 모든 새로운 발견은 우리 지식의 결함을 드러내고,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의존 관계의 나머지를 밝혀낸다”(283)… 훌륭하다! 이 “나머지”가 바로 우리의 인식이 점점 더 깊이 반영하는 “물자체”인가? 천만에. “… 따라서 이론에서 극단적 결정론을 옹호하는 사람도 실천에서는 불가피하게 비결정론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283)… 자, 이렇게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77]. 이론은 교수들에게, 실천은 신학자들에게! 또는 이론에서는 객관주의(즉 “수줍은” 유물론), 실천에서는 “사회학에서의 주관적 방법”이다. 러시아의 소시민 이데올로그들, 즉 레세비치에서 체르노프에 이르는 인민주의자들이 이 속된 철학에 공감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런 헛소리에 빠져서 마흐의 특히 터무니없는 결론들을 수줍게 가려 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 의지 문제에서 마흐는 혼란과 반쪽짜리 불가지론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나아간다… “우리의 배고픔 감각은” — 『역학』에서 이렇게 읽는다 — “황산이 아연을 향하는 경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의지는 돌이 받침대를 누르는 압력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자연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즉 이러한 견해를 취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흐릿한 원자들의 무더기로 분해하거나 세계를 정신적 결합들의 체계로 만들 필요도 없이”(프랑스어 번역 434쪽). 그러니까 유물론(“흐릿한 원자들” 또는 전자, 즉 물질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 없고, 세계를 정신의 “타재”로 인정하는 그런 관념론도 필요 없지만, 세계를 의지로 인정하는 관념론은 가능하다! 우리는 유물론보다 높을 뿐 아니라 “무슨” 헤겔 따위의 관념론보다도 높지만, 쇼펜하우어 식의 관념론에 추파를 던지는 것쯤은 마다하지 않는다! 마흐가 철학적 관념론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모욕당한 결백의 표정을 짓는 우리의 마흐주의자들은 여기서도 이 껄끄러운 대목에 관해 그저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철학 문헌에서 마흐의 견해를 서술하면서 그가 Willensmetaphysik, 즉 의지주의적 관념론에 기울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점을 J. 바우만[78]이 지적했으며, 그에게 반론을 편 마흐주의자 G. 클라인페터도 이 점은 반박하지 않았고, 마흐가 물론 “자연과학에서 지배적인 형이상학적 경험론보다는 칸트와 버클리에 더 가깝다”(즉 자생적 유물론보다; 같은 곳, Bd. 6, S. 87)고 언명했다. E. 베허도 이 점을 지적하는데, 그는 마흐가 어떤 곳에서는 의지주의적 형이상학을 인정하고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부인한다면 이는 그의 용어법이 자의적이라는 것을 보여 줄 뿐이며, 실제로 마흐가 의지주의적 형이상학에 가깝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79]. 이 형이상학(즉 관념론)이 “현상학”(즉 불가지론)에 섞여 있다는 것은 루카도 인정한다[80]. W. 분트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81]. 마흐가 “의지주의적 관념론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론자라는 것은 이베르베크-하인체의 최근 철학사 편람도 확인하고 있다[82].

한마디로, 마흐의 절충주의와 관념론으로 기우는 그의 경향은 아마 러시아 마흐주의자들 말고는 누구에게나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