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에른스트 마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요제프 디츠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빅토르 체르노프,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블라디미르 넵스키, 프란츠 메링, 폴 라파르그, 카를 카우츠키, 표트르 스트루베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학습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 1장 서론을 대신하여: 1908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1710년의 관념론자, 2장 경험비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I, 3장 물자체, 객관적 진리, 실천의 기준, 4장 물질과 경험, 인과성, 공간과 시간, 자유와 필연성, 5장 칸트를 오른쪽에서 비판한 사람들: 경험비판론의 동맹자와 계승자, 6장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과 철학적 관념론, 7장 경험비판론과 사적 유물론, 8장 결론과 두 서문: 철학의 당파 투쟁

제5장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과 철학적 관념론

1년 전 《노이에 차이트》(Die Neue Zeit) 잡지에 요제프 디네데네시의 논문 「마르크스주의와 자연과학의 최신 혁명」(1906—1907, 제52호)이 실렸다. 이 논문의 결점은 “새로운” 물리학에서 끌어내는 인식론적 결론들, 지금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바로 그 결론들을 무시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결점 때문에 이 저자의 관점과 결론이 우리에게 특히 흥미롭다. 요제프 디네데네시는 이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그토록 위풍당당한 경멸을 담아 입에 올리는 바로 그 “평범한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에 서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자라고 — 예컨대 유시케비치 씨는 이렇게 쓴다 — 보통 그저 그런 평범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자칭한다”(그의 책 1쪽). 바로 이 평범한 마르크스주의자가 J. 디네데네시라는 인물로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최신 발견들(엑스선, 베크렐선, 라듐 등)을 엥겔스의 『반뒤링론』과 직접 대조했다. 그렇다면 이 대조는 그를 어떤 결론으로 이끌었는가? “자연과학의 가장 다양한 영역에서 — J. 디네데네시는 이렇게 쓴다 — 새로운 지식이 획득되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엥겔스가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던 바로 그 점으로, 즉 자연에는 ‘어떤 화해할 수 없는 대립도, 어떤 억지로 고정된 경계선과 차이도 없다’는 점, 그리고 자연에서 대립과 차이를 만난다면 그 부동성과 절대성은 오로지 우리가 자연에 끌어들인 것이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예컨대 빛과 전기가 자연의 동일한 힘의 발현일 뿐이라는 것이 발견되었다. 화학적 친화력이 전기적 과정으로 환원된다는 것이 나날이 더 개연성을 얻고 있다. 마치 세계의 통일성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 수가 계속 늘어나기만 하던 화학의 파괴될 수 없고 분해될 수 없는 원소들이 파괴될 수 있고 분해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라듐 원소를 헬륨 원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자연의 모든 힘이 하나의 힘으로 귀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든 물질도 하나의 물질로 귀결된다”(강조는 J. 디네데네시). 원자를 에테르의 응집일 뿐이라고 보는 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견해를 인용한 뒤, 저자는 이렇게 외친다. “운동은 물질의 존재 형식이라는 엥겔스의 명제가 얼마나 눈부시게 확증되는가.” “자연의 모든 현상은 운동이며, 그 현상들 사이의 차이는 오로지 우리 인간이 이 운동을 서로 다른 형식으로 지각한다는 데에만 있다… 사태는 바로 엥겔스가 말한 그대로다. 역사와 꼭 마찬가지로 자연도 변증법적 운동 법칙을 따른다.”

다른 한편, 마흐주의의 문헌이나 마흐주의에 관한 문헌을 손에 들면, 유물론을 반박했다는 등등의 새로운 물리학을 들먹이는 허세 섞인 언급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언급에 근거가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새로운 물리학, 더 정확히 말해 새로운 물리학 내의 특정 학파와 마흐주의 및 현대 관념론 철학의 다른 변종들 사이의 연관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연관을 무시하고 마흐주의를 분석하는 것은 — 플레하노프가 그러듯이 —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신을 조롱하는 것, 다시 말해 엥겔스의 이런저런 글자를 위해 엥겔스의 방법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엥겔스는 “심지어 자연사 영역에서도 획기적인 발견이 있을 때마다”(인류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유물론은 불가피하게 그 형식을 바꾸어야 한다”(『L. 포이어바흐』, 독일어판 19쪽)고 분명히 말한다. 따라서 엥겔스 유물론의 ‘형식’을 수정하는 것, 그의 자연철학적 명제들을 수정하는 것은 통용되는 의미에서 ‘수정주의적’인 것을 조금도 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반드시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흐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그러한 재검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순전히 수정주의적인 수법 — 유물론의 형식을 비판한다는 구실로 유물론의 본질을 바꾸고, 반동적 부르주아 철학의 기본 명제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테면 이 문제에서 의심할 바 없이 극히 본질적인 엥겔스의 주장, 즉 “…운동은 물질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반뒤링론』, 50쪽)는 주장과 같은 것을 직접적이고 솔직하며 단호하게 따져 보려는 시도조차 전혀 하지 않는 수법 때문이다.

최신 물리학자들의 한 학파와 철학적 관념론의 부활 사이의 연관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물리학의 전문적 학설들을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로지 몇몇 특정한 명제들과 널리 알려진 발견들에서 나오는 인식론적 결론뿐이다. 이 인식론적 결론들은 너무나도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것을 다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이미 여러 경향이 존재하며, 이 토대 위에서 일정한 학파들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 경향들 사이의 차이의 핵심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철학의 기본 노선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에 한정된다.

1. 현대 물리학의 위기

저명한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자신의 책 『과학의 가치』에서 물리학에 “심각한 위기의 징후”가 있다고 말하며, 이 위기에 별도의 장을 할애한다(ch. VIII, p. 171 참조). 이 위기는 “위대한 혁명가 라듐”이 에너지 보존 원리를 뒤흔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원리도 위험에 처해 있다”(180). 예를 들어 라부아지에의 원리, 즉 질량 보존 원리는 물질의 전자 이론에 의해 뒤흔들린 것으로 드러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원자는 양전기나 음전기를 띤 극미한 입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입자들은 전자라고 불리며 “우리가 에테르라고 부르는 매질 속에 잠겨 있다.”

물리학자들의 실험은 전자의 운동 속도와 질량(또는 질량과 전하의 비)을 계산할 자료를 제공한다. 운동 속도는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에 견줄 만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예컨대 그 속도의 3분의 1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첫째로 전자 자체의 관성을, 둘째로 에테르의 관성을 극복해야 할 필요에 따라 전자의 이중의 질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질량은 전자의 실재적 또는 역학적 질량이고, 둘째 질량은 “에테르의 관성을 나타내는 전기역학적 질량”이다. 그런데 첫째 질량이 영(0)과 같다는 것이 드러난다. 전자의 질량 전체, 또는 적어도 음전자의 질량 전체는 그 기원상 전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전기역학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질량이 사라진다. 역학의 기초가 뒤흔들린다. 뉴턴의 원리, 즉 작용과 반작용의 동등성이 뒤흔들린다, 등등.

우리 앞에 있는 것은, — 하고 푸앵카레는 말한다, — 물리학의 낡은 원리들의 “폐허”이며 “원리들의 전면적 붕괴”다. 물론, — 하고 그는 단서를 단다, — 원리들에서 벗어나는 앞서 지적한 예외들은 모두 무한소의 크기에 관련된 것이고, — 낡은 법칙들의 붕괴를 상쇄하는 다른 무한소들을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며, — 게다가 라듐은 매우 희귀하다. 그러나 어쨌든 “의심의 시기”가 닥친 것은 분명하다. 이 “의심의 시기”에서 저자가 끌어낸 인식론적 결론은 이미 보았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주는(또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자연에 주는 것이다”, “사유가 아닌 모든 것은 가장 순수한 무(無)다.” 이것은 — 관념론적 결론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이 무너진다는 것은 (푸앵카레의 사고 과정은 이러하다) 이 원리들이 자연의 무슨 모사나 사진이 아니며, 인간의 의식에 대해 외적인 무언가의 상(像)이 아니라 이 의식의 산물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푸앵카레는 이 결론들을 일관되게 전개하지 않으며, 문제의 철학적 측면에는 이렇다 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철학 문제에 관해 글을 쓰는 프랑스 저술가 아벨 레는 자신의 책에서 바로 이 측면을 극히 상세하게 다룬다.

『현대 물리학자들의 물리학 이론』(Abel Rey: «La théorie de la physique chez les physiciens contemporains», Paris, F. Alcan, 1907). 물론 저자 자신은 실증주의자, 즉 혼란에 빠진 자이자 반쯤은 마흐주의자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이것이 오히려 얼마간 편리하기까지 한데, 그가 우리 마흐주의자들의 우상을 “중상”하려 한다는 혐의를 받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개념의 정확한 철학적 규정, 특히 유물론이 문제가 될 때에는 레를 믿을 수 없다. 레 역시 교수이며, 교수인 만큼 유물론자들에 대한 끝없는 경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유물론의 인식론에 관해서는 끝없이 무지하다). 그런 “과학의 대가들”에게 무슨 마르크스니 엥겔스니 하는 자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레는 이 문제에 관한 지극히 풍부한 문헌을, 프랑스 문헌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문헌(특히 오스트발트와 마흐)까지 세심하게, 그리고 대체로 성실하게 정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저작을 자주 이용할 것이다.

철학자 일반의 관심은, — 하고 저자는 말한다, — 그리고 이런저런 성질의 동기에서 과학 일반을 비판하려는 사람들의 관심 역시 지금 특히 물리학에 쏠려 있다. “물리적 지식의 한계와 가치를 논하면서, 실은 실증과학의 정당성, 객체 인식의 가능성을 비판하는 것이다”(p. I—II). 사람들은 “현대 물리학의 위기”에서 서둘러 회의적인 결론을 끌어내려 한다(p. 14). 그렇다면 이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19세기의 처음 3분의 2 동안 물리학자들은 본질적인 모든 점에서 서로 일치했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순전히 역학적인 설명을 믿었다. 물리학은 더 복잡한 역학, 곧 분자 역학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의견이 갈린 것은 물리학을 역학으로 환원하는 방법, 메커니즘의 세부에 관한 문제뿐이었다.” “오늘날 물리·화학 과학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광경은 완전히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극심한 견해 차이가 이전의 만장일치를 대신했으며, 그것도 세부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지도적인 사상에서의 차이다. 모든 학자에게 저마다 특수한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장이라 하더라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과학, 특히 물리학에도 수많은 학파가 있어 그 결론들이 자주 갈리고 때로는 서로 노골적으로 적대한다는 점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현대 물리학의 위기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어떤 의미와 어떤 폭을 가지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의 전통적 물리학은 물리학을 단순히 연장하기만 하면 물질의 형이상학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 물리학은 자신의 이론들에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 이론들은 전적으로 역학적이었다. 전통적 기계론”(레는 이 말을 물리학을 역학으로 환원하는 견해 체계라는 특별한 뜻으로 쓴다) “은 이렇게 하여 경험의 결과 이상으로, 경험의 결과 너머에서 물질 세계에 대한 실재적 인식을 제시했다. 그것은 경험의 가설적 표현이 아니었다, — 그것은 교조였다”(16)...

여기서 우리는 존경하는 “실증주의자”의 말을 끊어야 한다. 그가 전통적 물리학의 유물론적 철학을 우리에게 그려 보이면서도 악마(즉 유물론)를 그 이름으로 부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흄주의자에게 유물론은 형이상학, 교조,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따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유물론을 알지 못하는 흄주의자 레는 변증법에 관해서도, 엥겔스적 의미에서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형이상학적 유물론의 차이에 관해서도 아예 아무런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예컨대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의 관계는 레에게 절대적으로 불분명하다.

“……19세기 후반에 전통적 기계론에 대해 제기된 비판적 지적들은 기계론의 존재론적 실재성이라는 이 전제를 뒤흔들었다. 이 비판 위에서 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견해가 확립되었고, 그것은 19세기 말의 철학에서 이미 거의 전통적인 것이 되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상징적 공식, 표시(지시, repérage, 기호·표지·상징의 창조)의 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이 표시 방법이 학파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때 표시되는 것은 인간이 표시(상징화)를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façonné) 것뿐이라는 결론이 곧 내려졌다. 과학은 애호가를 위한 예술 작품, 공리주의자를 위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는 당연히 어디서나 과학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이른 관점들이었다. 자연에 작용하는 순전히 인공적인 수단으로서, 단순한 공리적 기술로서의 과학은, 말뜻을 왜곡하지 않는 한, 과학이라고 불릴 권리가 없다. 과학이 그러한 인공적 작용 수단 이외의 어떤 것도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의 참된 의미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전통적 기계론의 붕괴,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이 받은 비판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 이르렀다. 과학 역시 파산했다는 것이다. 전통적 기계론을 단순히 그리고 오로지 고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과학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16—17).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물리학의 현대적 위기는 과학 발전에서 일시적이고 외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과학이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결정적으로 버리는 것인가?……”

“……역사에서 본질적으로 해방의 투사였던 물리화학적 과학들이, 그것들에 기술적으로 유용한 처방이라는 가치만을 남겨 두고 자연 인식의 관점에서 보는 모든 의의를 앗아 가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파산한다면, 거기서 논리학에서도 사상사에서도 완전한 대변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물리학은 모든 교육적 가치를 잃는다. 물리학이 대표하는 실증과학의 정신은 거짓되고 위험한 것이 된다.” 과학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처방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재의 인식은 다른 수단으로 찾아야 한다……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주관적 직관에, 실재에 대한 신비주의적 감정에, 한마디로 신비로운 것에, 과학이 그것들에게서 빼앗았다고 여겨지던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19).

실증주의자인 저자는 그러한 견해를 잘못된 것으로, 물리학의 위기를 일시적인 것으로 여긴다. 레가 마흐, 푸앵카레와 그 일당을 이러한 결론들에서 어떻게 씻어 내는지는 아래에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위기”라는 사실과 그 의의를 확인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 앞서 인용한 레의 마지막 말에서, 어떤 반동적 요소들이 이 위기를 이용하고 또 그것을 첨예하게 만들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레는 자기 저서의 서문에서 “19세기 마지막 몇 해의 신앙주의적·반지성주의적 운동”이 “현대 물리학의 일반 정신”에 “의지하려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II). 프랑스에서는 믿음을 이성 위에 두는 자들을 신앙주의자(라틴어 fides, 즉 믿음에서 나온 말)라고 부른다. 반지성주의란 이성의 권리나 주장을 부정하는 학설을 말한다. 따라서 철학적 견지에서 “현대 물리학의 위기”의 핵심은 이렇다. 옛 물리학은 자기 이론 속에서 “물질적 세계에 대한 실재적 인식”, 즉 객관적 실재의 반영을 보았다. 물리학의 새로운 흐름은 이론 속에서 실천을 위한 상징, 기호, 표지만을 본다. 즉 우리 의식과 독립해 있으며 의식이 반영하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부정한다. 레가 올바른 철학 용어를 지켰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할 것이다. 예전의 물리학이 자연발생적으로 받아들이던 유물론적 인식론이 관념론적·불가지론적 인식론으로 바뀌었고, 관념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신앙주의가 이를 이용했다고.

그러나 레는 위기를 이루는 이 교체를, 새 물리학자 전원이 옛 물리학자 전원과 맞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 그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인식론적 경향에 따라 세 학파로 나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에너지학파 또는 개념주의파(conceptuelle — 콘셉트, 즉 순수 개념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 압도적 다수의 물리학자들이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역학주의파 또는 신역학주의파,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중간적인 비판학파가 그것이다. 첫째에는 마흐와 뒤엠이, 셋째에는 앙리 푸앵카레가 속한다. 둘째에는 옛 물리학자로는 키르히호프, 헬름홀츠, 톰슨(켈빈 경), 맥스웰이, 최신 물리학자로는 라모어, 로렌츠가 속한다. 두 기본 노선(셋째는 독자적인 노선이 아니라 중간적인 노선이므로)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레의 다음 말에서 드러난다.

“전통적 역학주의는 물질적 세계의 체계를 세웠다.” 물질의 구조에 관한 학설에서 그것은 “질적으로 동질적이고 동일한 요소들”에서 출발했으며, 이 요소들은 “불변하고 불가입적인” 것 등등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물리학은 “실재적인 재료와 실재적인 시멘트로 실재적인 건물을 지었다. 물리학자는 물질적 요소들, 원인들과 그것들이 작용하는 방식, 그것들이 작용하는 실재적 법칙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33—38). “이러한 물리학관의 변화는 주로, 이론들의 존재론적 가치를 내던지고 물리학의 현상학적 의의를 극도로 강조한다는 데 있다.” 개념주의적 견해는 “순수한 추상”을 다루며, “물질이라는 가설을 되도록 배제하는, 순전히 추상적인 이론을 찾는다”. “에너지 개념은 새 물리학의 하부구조(substructure)가 된다. 그러므로 개념주의적 물리학은 대체로 에너지학적 물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이 명칭은 예컨대 마흐 같은 개념주의적 물리학의 대표자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p. 46).

레가 에너지론과 마흐주의를 뒤섞은 것은 물론 완전히 올바르지는 않으며, 신역학주의 학파가 개념주의자들과 아무리 깊이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그 학파 역시 물리학에 대한 현상학적 견해에 이른다고 한 그의 장담(p. 48) 또한 마찬가지다. 레의 “새로운” 용어법은 사태를 밝혀 주기는커녕 오히려 흐리지만, 물리학의 위기에 대한 “실증주의자”의 견해를 독자에게 보여 주려면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문제의 본질을 놓고 보면, “새로운” 학파가 옛 견해에 맞세운 대립은, 독자가 확인할 수 있었듯이, 위에 인용한 클라인페터의 헬름홀츠 비판과 완전히 일치한다. 여러 물리학자의 견해를 전하면서 레는 그들의 철학적 견해가 지닌 온갖 불확정성과 동요를 자신의 서술에 그대로 반영한다. 현대 물리학 위기의 본질은 낡은 법칙들과 기본 원리들이 무너지고, 의식 밖의 객관적 실재가 내던져지는 데, 다시 말해 유물론이 관념론과 불가지론으로 대체되는 데 있다. “물질이 사라졌다” — 많은 개별 문제와 관련하여 이 위기를 낳은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난관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난관을 살펴보려 한다.

2. “물질이 사라졌다”

현대 물리학자들에게서는 최신 발견을 서술할 때 문자 그대로 이런 표현을 만날 수 있다. 예컨대 L. 울비히는 그의 책 『과학의 진화』에서 물질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을 다룬 장에 “물질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원자는 탈물질화된다, — 그는 거기서 말한다, — 물질은 사라진다”[100]. 마흐주의자들이 여기서 근본적인 철학적 결론을 얼마나 손쉽게 끌어내는지 보기 위해, 이를테면 발렌티노프를 들어 보자.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오로지 유물론 안에서만’ 확고한 근거를 얻는다는 주장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며, — 그는 이렇게 쓴다, — 게다가 터무니없는 꾸며낸 이야기다”(67쪽). 이 터무니없는 꾸며낸 이야기를 깨부수는 사람으로 저명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아우구스토 리기가 인용되는데, 그는 전자 이론이 “전기에 관한 이론이라기보다 물질에 관한 이론이며, 새로운 체계는 그저 물질의 자리에 전기를 놓을 뿐”이라고 말한다(Augusto Righi. «Die moderne Theorie der physikalischen Erscheinungen», Lpz., 1905, S. 131. 러시아어 번역본이 있다). 이 말을 인용한 뒤(64쪽) 발렌티노프 씨는 이렇게 외친다.

“아우구스토 리기는 어찌하여 신성한 물질에 감히 이런 모욕을 가하는가? 아마도 그가 유아론자, 관념론자, 부르주아 비판주의자, 이런저런 경험일원론자, 아니면 그보다 더 고약한 무엇이기 때문일까?”

발렌티노프 씨에게는 유물론자들을 치명적으로 꼬집는 독설로 보이는 이 논평은, 철학적 유물론 문제에서 그가 얼마나 숫처녀처럼 순진무구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철학적 관념론과 “물질의 소멸” 사이의 실제 연관이 무엇인지 발렌티노프 씨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현대 물리학자들을 따라 말하는 그 “물질의 소멸”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인식론적 구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를 밝히기 위해 가장 일관되고 명료한 마흐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카를 피어슨을 들어 보자. 그에게 물리적 세계란 감각적 지각들의 집단이다. 그는 “물리적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 모형”을 다음과 같은 도표로 예시하면서, 이 도표에서는 크기의 비율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단서를 붙인다(p. 282 «The Grammar of Science»).

K. 피어슨은 도표를 단순화하면서 에테르와 전기, 또는 양전자와 음전자의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를 아예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피어슨의 관념론적 관점이 “물체”를 감각적 지각으로 간주한다는 점, 그리고 그다음에 이 물체가 입자로, 입자가 분자로 이루어진다는 것 따위는 물리적 세계의 모형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것이지, 물체가 감각의 상징인가 아니면 감각이 물체의 모상인가 하는 문제와는 결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은 우리 인식의 원천에 관한 문제, 인식(그리고 일반적으로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 세계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느냐 저렇게 해결하느냐로 구별되며, 물질의 구조, 원자와 전자에 관한 문제는 오로지 이 “물리적 세계”에만 관계되는 문제다. 물리학자들이 “물질은 소멸한다”고 말할 때, 그들이 이 말로 뜻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연과학이 물리적 세계에 관한 모든 연구를 물질, 전기, 에테르라는 최종적인 세 개념으로 귀결시켜 왔으나 이제는 오직 뒤의 두 개념만 남는다는 것이다. 물질을 전기로 환원할 수 있게 되었고, 원자를 그 내부에서 양전자 둘레를 음전자들이 일정한(그리고 우리가 보았듯이 헤아릴 수 없이 막대한) 속도로 움직이는, 무한히 작은 태양계와 비슷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를 수십 가지 원소 대신 두세 가지로 환원할 수 있게 되었다(물리학자 펠라의 말대로 양전자와 음전자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물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 Rey, l. c., p. 294—295). 따라서 자연과학은 “물질의 통일”(같은 곳)[101]로 나아간다 — 이것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물질의 소멸, 물질의 전기로의 대체 따위에 관한 그 문구의 실제 내용이다. “물질은 소멸한다” —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물질을 알던 그 한계가 소멸하고 우리의 인식이 더 깊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며 원초적인 것으로 보이던 물질의 속성들(불투과성, 관성, 질량 등)이 소멸하고, 그것들이 이제는 상대적이며 물질의 특정한 상태에만 고유한 것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철학적 유물론이 그 인정과 결부되어 있는 물질의 유일한 “속성”은 객관적 실재라는 속성, 곧 우리 의식 밖에 존재한다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마흐주의 일반과 마흐주의적 신물리학의 오류는 철학적 유물론의 이 기초, 그리고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데 있다. 어떤 불변의 요소들, “사물의 불변하는 본질” 따위를 인정하는 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유물론, 즉 반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그러므로 J. 디츠겐은 “과학의 객체는 무한하다”는 점, 헤아릴 수 없고 끝까지 인식될 수 없으며 고갈될 수 없는 것은 무한한 것만이 아니라 “가장 작은 원자”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은 그 모든 부분에서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Kleinere philosophische Schriften』, S. 229—230). 그러므로 엥겔스는 석탄 타르에서 알리자린을 발견한 예를 들면서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했다. 문제를 유일하게 올바른 관점, 즉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제기하려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전자, 에테르 등등은 인간의 의식 밖에 객관적 실재로서 존재하는가, 아닌가? 이 물음에 자연과학자들은 인간 이전에, 그리고 유기적 물질 이전에 자연이 존재했음을 주저 없이 인정하는 것과 똑같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며, 실제로 늘 그렇게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써 문제는 유물론에 유리하게 해결된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물질 개념은 인식론적으로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의식에 의해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의 구조와 그 속성에 관한 모든 과학적 명제가 근사적이고 상대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 자연에는 절대적 경계가 없다는 것, 운동하는 물질은 한 상태에서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과 도무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다른 상태로 전화한다는 것 등등을 역설한다. 무게 없는 에테르가 무게 있는 물질로, 또 그 반대로 전화하는 것이 “상식”의 관점에서 아무리 기괴하더라도, 전자가 전자기적 질량 외에 다른 어떤 질량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운동의 역학적 법칙이 자연 현상의 한 영역에만 국한되고 전자기 현상의 더 깊은 법칙에 종속된다는 것이 아무리 낯설더라도, — 이 모든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시 한번 확증해 줄 뿐이다. 신물리학이 관념론으로 탈선한 것은 주로 바로 물리학자들이 변증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이상학적(이 말의 실증주의적, 즉 흄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엥겔스적 의미에서) 유물론과, 그 일면적 “기계성”과 싸웠다. — 그리고 그러면서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내다 버렸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물질의 요소와 속성의 불변성을 부정하면서, 그들은 물질, 즉 물리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데로 굴러떨어졌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법칙의 절대적 성격을 부정하면서, 그들은 자연의 모든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는 데로, 자연법칙을 단순한 약속, “기대의 제한”, “논리적 필연성” 따위로 선언하는 데로 굴러떨어졌다. 우리 지식의 근사적이고 상대적인 성격을 역설하면서, 그들은 인식과 독립적이며 그 인식에 의해 근사적으로 옳게, 상대적으로 올바르게 반영되는 객체를 부정하는 데로 굴러떨어졌다. 등등, 등등, 끝이 없다.

보그다노프가 1899년에 “사물의 불변하는 본질”에 관해 늘어놓은 논의, 발렌티노프와 유시케비치가 “실체”에 관해 늘어놓은 논의 등등 — 이 모든 것도 마찬가지로 변증법을 모르는 데서 나온 열매들이다. 엥겔스의 관점에서 보면 불변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간 의식이(인간 의식이 존재할 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고 발전하는 외부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그 밖의 어떤 “불변성”도, 그 밖의 어떤 “본질”도, 한가한 교수 철학이 이 개념들을 덧칠해 그려 낸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절대적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의 “본질”이나 “실체”도 역시 상대적이다. 그것들은 객체에 대한 인간 인식의 심화를 표현할 뿐이며, 어제는 이 심화가 원자 너머로 나아가지 못했고 오늘은 전자와 에테르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진보하는 과학이 세운 자연 인식의 이 모든 이정표가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근사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원자와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며, 자연은 무한하지만 자연은 무한히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자연이 인간의 의식과 감각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유일하게 단호하게, 유일하게 무조건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상대주의적 불가지론 및 관념론과 구별해 준다.

새 물리학이 부르주아 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불가피하게 주관주의적인(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신앙주의적인) 결론을 낳는 “현상론” 사이에서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발렌티노프 씨가 자기가 관심을 가졌던 유물론 문제에 관해 물어볼 줄 몰랐던 바로 그 아우구스트 리기는 자기 책의 서론에서 이렇게 쓴다. “전자 또는 전기적 원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이론은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철학적 의의를 얻게 될 운명일 것이다. 그것은 무게 있는 물질의 구조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전제에 이르고, 외부 세계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공통된 기원으로 환원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실증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경향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이점은 아마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이론은 무엇보다도 사실들을 편리하게 정리하고 대조하는 수단, 새로운 현상을 찾을 때 길잡이 구실을 하는 수단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인간 정신의 능력을 아마도 지나치게 신뢰하여 모든 사물의 궁극 원인을 너무 쉽게 손에 쥘 수 있다고 여겼다면, 우리 시대에는 정반대의 오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l. c., S. 3).

리기는 왜 여기서 실증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경향과 선을 긋는가? 보아하니 그는 아무런 확정적인 철학적 관점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연발생적으로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고수하고, 새 이론을 단지 “편의”(푸앵카레)로만, 단지 “경험상징”(유시케비치)으로만, 단지 “경험의 조화”(보그다노프)로만, 그 밖에 이런 주관주의적 궤변들을 또 무엇이라 부르든 그런 것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물리학자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알게 되었다면, 옛 형이상학적 유물론과 정반대되는 오류에 관한 그의 판단은 아마도 올바른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 전체가 그들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밀어내고 저속한 관제 철학의 품 안으로 내던진다.

레 역시 변증법을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최신 물리학자들 가운데 “기계론”(즉 유물론)의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론”의 길을 걷는 이는, — 그는 말한다 — 키르히호프, 헤르츠, 볼츠만, 맥스웰, 헬름홀츠, 켈빈 경만이 아니다. “순수한 기계론자들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면 누구보다도 더 기계론자들로서 기계론의 마지막 말(l'aboutissant)을 대표하는 이들은 로렌츠와 라모어를 따라 물질의 전기 이론을 정식화하고 질량의 항상성을 부정하여 그것을 운동의 함수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기계론자이다. 그들은 실재적 운동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레의 강조, p. 290—291).

“... 만일 로렌츠, 라모어, 랑주뱅(Langevin)의 새로운 가설들이 실험으로 확증되어 물리학을 체계화하는 데 충분히 견고한 기초를 얻는다면, 현대 역학의 법칙들이 전자기학의 법칙들에 의존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역학의 법칙들은 특수한 경우가 되어 엄격히 규정된 한계 안에 제한될 것이다. 질량의 항상성, 우리의 관성 원리는 물체의 중간 속도에 대해서만 효력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서 ‘중간’이라는 말은 우리의 감각 및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이루는 현상들과의 관계에서 이해된 것이다. 역학의 전반적인 개편이, 따라서 체계로서의 물리학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기계론의 포기를 뜻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순수하게 기계론적인 전통은 계속 유지될 것이며, 기계론은 그 발전의 정상적 경로를 걸어갈 것이다”(295).

“일반적 정신으로 보아 기계론적 이론들에 속해야 할 전자 물리학은 물리학 전체에 자신의 체계화를 부여하려고 한다. 이 전자 물리학은 그 기본 원리들을 역학이 아니라 전기 이론의 실험적 자료들로부터 취하고 있음에도, 정신으로 보아 기계론적이다. 왜냐하면 1) 그것은 물리적 성질들과 그 법칙들을 표상하기 위해 형상적(figurés)이고 물질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며, 지각의 용어들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2) 그것은 물리적 현상들을 역학적 현상들의 특수한 경우로 보지 않는다 해도, 역학적 현상들을 물리적 현상들의 특수한 경우로 본다. 따라서 역학의 법칙들은 물리학의 법칙들과 직접적 연관을 유지하며, 역학의 개념들은 물리화학적 개념들과 같은 차원의 개념들로 남는다. 전통적 기계론에서 이 개념들은 비교적 느린 운동들을 본뜬 것(calqués)이었는데, 그 운동들은 유일하게 알려져 있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가능한 모든 운동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실험들은 가능한 운동들에 관한 우리의 표상을 확장해야 함을 보여 주었다. 전통적 역학은 온전히 그대로 남지만, 이제 그것은 비교적 느린 운동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큰 속도에 대해서는 운동의 법칙들이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 물질은 원자의 최종 요소들인 전기적 입자들로 환원된다... 3) 운동, 즉 공간에서의 이동은 물리학 이론의 유일한 형상적(figuré) 요소로 남는다. 4) 마지막으로 — 그리고 물리학의 일반적 정신이라는 관점에서 이 점은 나머지 모든 것보다 중요하다 — 물리학과 그 방법, 그 이론들, 그리고 그 이론들과 경험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르네상스 시대 이래의 기계론의 견해, 그 물리학 이론과 절대적으로 동일하게 남는다”(46—47).

나는 레의 이 긴 글을 통째로 인용했다. 그는 “유물론적 형이상학”을 피하려고 늘 겁을 내므로, 그의 주장을 달리 요약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도, 그가 말하는 물리학자들도 유물론과는 손을 끊겠다고 아무리 다짐하더라도, 역학이 느린 실제 운동을 찍은 사진이었고 새 물리학은 엄청나게 빠른 실제 운동을 찍은 사진이라는 점은 여전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론을 객관적 실재를 찍은 사진, 그 근사적 사본으로 인정하는 것 — 바로 여기에 유물론이 있다. 레가 새 물리학자들 사이에 “개념론(마흐주의) 학파와 에너지론 학파에 맞선 반동”이 있다고 말하고, 이 반동의 대표자로 전자 이론의 물리학자들을 꼽을 때(46), 투쟁이 사실상 유물론적 경향과 관념론적 경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확증해 주는 것은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교양 있는 소시민 전체가 유물론에 대해 품는 일반적 편견 말고도, 가장 뛰어난 이론가들조차 변증법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물질 없는 운동은 사유할 수 있는가?

철학적 관념론이 새 물리학을 이용하거나 새 물리학에서 관념론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질료와 힘, 물질과 운동의 새로운 종류가 발견되기 때문이 아니라,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도를 우리 마흐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따져 보지 않는다. “운동은 물질 없이는 사유할 수 없다”는 엥겔스의 주장을 그들은 고려하려 들지 않았다. J. 디츠겐은 이미 1869년에 『두뇌 노동의 본질』에서 엥겔스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 물론 유물론과 관념론을 “화해시키려는” 그 특유의 혼란스러운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이러한 시도는 디츠겐이 변증법과 거리가 먼 뷔히너의 유물론과 논쟁하고 있다는 점으로 상당 부분 설명되므로 제쳐 두고, 우리가 관심을 두는 문제에 관한 디츠겐 자신의 진술을 살펴보자. “관념론자들은, — 디츠겐은 말한다, — 특수 없는 일반을, 물질 없는 정신을, 질료 없는 힘을, 경험 없는 또는 재료 없는 학문을, 상대적인 것 없는 절대적인 것을 원한다”(“Das Wesen der menschlichen Kopfarbeit”, 1903, S. 108). 이처럼 디츠겐은 운동을 물질에서, 힘을 질료에서 떼어 내려는 지향을 관념론과 결부하고, 사유를 두뇌에서 떼어 내려는 지향과 나란히 놓는다. “리비히는, — 디츠겐은 계속한다, — 자신의 귀납적 학문에서 벗어나 철학적 사변 쪽으로 곁길로 새기를 좋아하는데, 관념론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힘은 볼 수 없다”(109). “유심론자 또는 관념론자는 힘의 정신적인, 즉 유령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본질을 믿는다”(110). “힘과 질료의 대립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만큼이나 오래되었다”(111). “물론 질료 없는 힘은 없고, 힘 없는 질료도 없다. 힘 없는 질료와 질료 없는 힘은 난센스다. 관념론적 자연과학자들이 힘의 비물질적 존재를 믿는다면, 이 점에서 그들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유령을 보는 자들이다”(114).

여기서 우리는 40년 전에도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할 수 있다고 인정하려는 자연과학자들이 있었고, 디츠겐이 그들을 “이 점에서” 유령을 보는 자들이라고 선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적 관념론은 물질을 운동에서 분리하는 것, 질료를 힘에서 떼어 내는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정말로 물질 없이 운동을 사유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지 않은가?

어떤 일관된 관념론자, 예컨대 세계 전체가 나의 감각 또는 나의 표상 등등이라는 관점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누구의 것도 아닌” 감각이나 표상을 취한다 해도,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철학적 관념론의 변종일 뿐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관념론자는 세계가 운동이라는 것, 즉 나의 사유·표상·감각의 운동이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운동하는가 하는 물음을 관념론자는 물리치고 부조리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나의 감각이 교체되고 표상이 사라졌다 나타나며, 그뿐이다. 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운동한다” — 그것으로 끝이다. 이보다 더 “경제적인” 사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유아론자가 자기 관점을 일관되게 관철한다면, 어떤 증명으로도, 삼단논법으로도, 정의로도 그를 반박할 수 없다.

유물론자와 관념론 철학의 지지자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유물론자가 감각·지각·표상 및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객관적 실재의 상(像)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세계는 우리 의식에 반영되는 이 객관적 실재의 운동이다. 표상·지각 등등의 운동에는 나 밖의 물질의 운동이 대응한다. 물질이라는 개념은 감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 실재 외에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운동을 물질로부터 떼어내는 것은 사유를 객관적 실재로부터 떼어내고 나의 감각을 외부 세계로부터 떼어내는 것, 즉 관념론 쪽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다. 물질을 부정하고 물질 없는 운동을 용인할 때 흔히 부리는 요술은 물질과 사유의 관계에 대해 입을 다무는 데 있다. 사태는 마치 그러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그 관계가 몰래 끌려 들어와, 추론의 첫머리에서는 말해지지 않은 채로 있다가 나중에 다소간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떠오른다.

“물질은 사라졌다”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하며, 여기서 인식론적 결론을 끌어내려 한다. 그렇다면 사유는 남았는가? — 우리는 이렇게 묻겠다. 만일 남지 않았다면, 물질의 소멸과 함께 사유도 소멸했고 뇌와 신경계의 소멸과 함께 표상과 감각도 소멸했다면 — 그렇다면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말이며, 어떤 것이든 “사유”(혹은 몰지각)의 한 표본인 당신들의 논증도 사라졌다는 말이다! 반대로 만일 — 남았다면, 물질이 소멸해도 사유(표상, 감각 등)는 소멸하지 않았다고 전제한다면, 당신들은 몰래 철학적 관념론의 관점으로 넘어간 것이다. “경제”를 위해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그저 자기 논증을 계속한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물질이 소멸한 뒤에도 사유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아주 단순하거나 아주 복잡한 철학적 관념론을 기초로 삼는다는 뜻이다. 문제가 공공연히 유아론으로 귀결되면(나는 존재하며, 세계 전체는 다만 나의 감각일 뿐이다) 아주 단순한 관념론이고, 살아 있는 인간의 사유·표상·감각 대신에 죽은 추상을 취하면 아주 복잡한 관념론이다. 곧 누구의 것도 아닌 사유, 누구의 것도 아닌 표상, 누구의 것도 아닌 감각, 사유 일반(절대 이념, 보편 의지 등), 규정되지 않은 “요소”로서의 감각, 물리적 자연 전체 밑에 슬쩍 갖다 놓는 “심리적인 것” 등등. 이때 철학적 관념론의 변종들 사이에는 수천 가지 색조가 있을 수 있고, 언제든 1001번째 색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런 1001번째 자그마한 체계(예컨대 경험일원론)의 저자에게는 그것이 나머지와 다르다는 점이 중요해 보일 수도 있다.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차이들은 전혀 본질적이지 않다. 본질적인 것은 출발점이다. 본질적인 것은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하려는 시도가 물질에서 떼어 낸 사유를 몰래 끌어들인다는 점이며, 바로 이것이 철학적 관념론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가장 명료하고 일관되며 말로 얼버무리기를 싫어하는 마흐주의자인 영국의 마흐주의자 칼 피어슨은 “물질”을 다룬 자기 책의 제7장을 “모든 사물은 운동한다 — 그러나 오직 개념 속에서만”(“All things move — but only in conception”)이라는 특징적인 제목의 절로 곧바로 시작한다. “지각의 영역에 관해서는 무엇이 운동하며 왜 운동하는가라는 물음은 부질없다(‘it is idle to ask’)”(p. 243, 『The Grammar of Science』).

그러므로 보그다노프의 철학적 수난도 사실은 그가 마흐를 알기 전에, 그가 큰 화학자이자 하찮은 철학자인 오스트발트의 말을 믿고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할 수 있다고 여긴 때부터 시작되었다. 보그다노프의 철학적 발전에서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이 일화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더욱 적절하다. 철학적 관념론과 새로운 물리학의 몇몇 조류 사이의 연관을 이야기하면서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을 비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말했다” — 보그다노프는 1899년에 이렇게 썼다 — “19세기가 ‘사물의 불변하는 본질’이라는 문제를 끝내 매듭짓지 못했다고. 이 본질은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기의 가장 진보적인 사상가들의 세계관에서조차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자연에 대한 역사적 견해의 기본 요소』, 38쪽).

우리는 이것이 혼란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 우리 의식 밖에 영원히 운동하고 영원히 변화하는 물질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사물의 불변하는 본질을 인정하는 것과 뒤섞여 있다. 1899년의 보그다노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진보적인 사상가들”에 넣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의 과정에서는 여전히 대개 물질과 그 운동이라는 두 측면을 구별한다. 물질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명료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물질은 ‘감각의 원인’으로, 또는 ‘감각의 항구적 가능성’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여기서 물질이 운동과 뒤섞여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보그다노프가 잘못 논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가 감각의 객관적 원천에 대한 유물론적 인정(감각의 원인이라는 말로 불명료하게 정식화되어 있다)을 감각의 항구적 가능성이라는 밀의 불가지론적 물질 규정과 뒤섞고 있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오류는 저자가 감각의 객관적 원천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문제에 바싹 다가가 놓고서는 그 문제를 중도에 내팽개치고 운동 없는 물질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다른 문제로 건너뛰어 버린다는 데 있다. 관념론자는 세계를 우리 감각의 운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설령 그 감각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최고도로 “조화된” 것이라 해도). 유물론자는 세계를 우리 감각의 객관적 원천, 객관적 모형의 운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유물론자, 즉 반변증법적 유물론자는 운동 없는 물질의 존재를 (설령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최초의 충격”까지라든가 하는 식으로라도) 인정할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운동을 물질의 불가분한 속성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운동에 대한 단순화된 견해 따위도 배척한다.

“……아마도 가장 정확한 규정은 ‘물질이란 운동하는 것이다’라는 규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물질이란 술어가 ‘운동한다’인 문장의 주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내용이 없다. 그런데 아마도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정태의 시대에 사람들은 주어의 역할에서 반드시 무언가 견고한 것, 어떤 ‘사물’을 보는 데 익숙해졌고, ‘운동’처럼 정태적 사유에 불편한 것은 술어로서만, ‘물질’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서만 참아 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아키모프가 이스크라파를 두고 그들의 강령에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낱말이 주격으로 들어 있지 않다고 비난한 것과 비슷한 무엇이다! 세계는 운동하는 물질이라고 말하든, 세계는 물질적 운동이라고 말하든, 그것으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에너지에도 담지자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물질의 옹호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왜 그런가?”라고 오스트발트는 정당하게 묻는다. “자연이 주어와 술어로 이루어져야 할 의무라도 있는가?”(39쪽).

1899년 보그다노프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 했던 오스트발트의 대답은 단순한 궤변이다. 우리의 판단은 — 오스트발트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터이다 — 전자와 에테르로 이루어져야 할 의무라도 있는가? 실제로 “주어”로서의 물질을 “자연”으로부터 사유 속에서 제거한다는 것은 사유를 “주어”로서(즉 일차적이고 근원적이며 물질로부터 독립한 무엇으로서) 철학 속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제거되는 것은 주어가 아니라 바로 감각의 객관적 원천이며, “주어”가 되는 것은 감각이다. 즉 나중에 감각이라는 낱말에 아무리 다른 옷을 갈아입힌다 해도, 철학은 버클리주의가 된다. 오스트발트는 “에너지”라는 낱말을 모호하게 사용함으로써 이 불가피한 철학적 양자택일(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을 피하려 했지만, 바로 그 시도가 그러한 잔꾀가 헛되다는 것을 한 번 더 보여준다. 에너지가 운동이라면, 여러분은 난점을 주어에서 술어로 옮겨 놓았을 뿐이며, 물질이 운동하는가라는 질문을 에너지는 물질적인가라는 질문으로 고쳐 놓았을 뿐이다. 에너지의 전환은 나의 의식 밖에서, 인간과 인류로부터 독립하여 일어나는가, 아니면 그것은 관념, 상징, 약정적 기호 따위에 지나지 않는가? 바로 이 질문에서 “에너지론적” 철학, 곧 낡은 인식론적 오류를 “새로운” 용어로 덧칠하려는 이 시도는 목이 부러졌다.

다음은 에너지론자 오스트발트가 얼마나 헤매었는지를 보여주는 예들이다. 『자연철학 강의』[102]의 서문에서 그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개념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낡은 난점이 이 두 개념을 에너지 개념 아래 포괄함으로써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제거된다면, 그것은 거대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이득이 아니라 손실이다. 왜냐하면 인식론적 탐구를(오스트발트는 자신이 화학적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인식론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지 못한다!) 유물론적 방향으로 할 것인가 관념론적 방향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에너지”라는 낱말의 자의적 사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념 아래 물질도 정신도 “포괄한다면”, 대립이 말로는 소멸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도깨비와 집귀신에 관한 학설을 우리가 “에너지론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학설의 부조리가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오스트발트의 『강의』 394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외적 현상이 에너지들 사이의 과정으로서 묘사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은 바로 우리 의식의 과정들 자체가 에너지론적이며 그러한 자신의 성질을 모든 외적 경험에 각인시킨다(aufprägen)는 것으로 가장 간단히 설명된다.” 이것은 — 순수한 관념론이다. 외부 세계의 에너지 전환을 우리의 사유가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가 우리 의식의 “성질”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히븐은 오스트발트 강의의 이 대목과 그 밖의 비슷한 대목들을 지적하면서, 오스트발트가 “여기서는 칸트주의의 옷차림으로 나타난다”고 아주 적절히 말한다. 외부 세계 현상의 설명 가능성이 우리 지성의 성질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103] 히븐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의 원초적 개념을 심리적 현상까지 포함하도록 정의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계에서, 또는 심지어 에너지론자들 자신에게서도 인정되는 그 단순한 에너지 개념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에너지 전환은 자연과학에 의해 인간의 의식과 인류의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과정으로, 즉 유물론적으로 고찰된다. 그리고 오스트발트 자신에게서도 아주 많은 경우에, 아니 아마도 압도적 대다수의 경우에, 에너지란 물질적 운동을 뜻한다.

그리하여 오스트발트의 제자였던 보그다노프가 마흐의 제자가 되고 나서, 오스트발트가 에너지에 대한 일관되게 유물론적인 견해를 견지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아니라 에너지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를 용인한다(때로는 그것을 기초로 삼기까지 한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하는 독특한 현상이 벌어졌다. 유물론자들은 오스트발트가 관념론에 빠진다는 점, 유물론과 관념론을 화해시키려 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보그다노프는 관념론적 관점에서 오스트발트를 비판한다. 보그다노프는 1906년에 이렇게 썼다. “…원자론에 적대적이지만 그 밖의 점에서는 옛 유물론과 매우 가까운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은 나의 가장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나는 곧 그의 자연철학에 중대한 모순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에너지라는 개념의 순전히 방법론적인 의의를 여러 번 강조하면서도, 수많은 경우에 스스로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 그에게서 에너지는 경험의 사실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순수한 상징이었다가 걸핏하면 경험의 실체로, 세계의 물질로 바뀐다…”(『경험일원론』 제3권, XVI—XVII쪽).

에너지는 순수한 상징이란다! 그렇다면 보그다노프는 “경험상징주의자” 유시케비치와, “순수 마흐주의자들”, 경험비판론자들 등과 얼마든지 논쟁해도 좋다. — 유물론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노란 악마를 믿는 사람과 초록 악마를 믿는 사람 사이의 논쟁일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보그다노프가 다른 마흐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아니라 그들에게 공통된 점, 즉 “경험”과 “에너지”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이며, 인간의 경험은 그것에 적응하는 데 있고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론”과 과학적인 “에너지론”은 그것을 본뜨는 데 있는 바로 그 객관적 실재를 부정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재료는 그것(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에게 아무래도 상관없다. 옛 유물론도 범심론도 그것과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XVII)… — 즉 철학적 관념론도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보그다노프는 혼란스러운 에너지론에서 출발하여 유물론적 오솔길로 가지 않고 관념론적 오솔길로 나아갔다… “에너지를 실체로 표상한다면, 그것은 옛 유물론에서 절대적 원자를 뺀 것, — 존재하는 것의 연속성이라는 의미로 수정을 가한 유물론에 지나지 않는다”(같은 곳). 그렇다. 보그다노프는 “옛” 유물론, 즉 자연과학자들의 형이상학적 유물론으로부터, 그가 1899년과 마찬가지로 1906년에도 이해하지 못했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관념론과 신앙주의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에너지의 “방법론적” 개념에 대해서, 에너지를 “경험의 사실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순수한 상징”으로 해석하는 데 대해서는 현대 신앙주의의 교양 있는 대표자 누구도, 내재론자 누구도, “신비판주의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에서 그 면모를 충분히 알게 된 P. 케이러스를 보라. 그러면 이 마흐주의자가 오스트발트를 완전히 보그다노프식으로 비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케이러스는 이렇게 썼다. “유물론과 에너지론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같은 범주에 속한다”(《모니스트》(The Monist), vol. XVII, 1907, № 4, p. 536). “유물론이 우리에게 만물은 물질이고 물체는 물질이며 사유는 물질의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를 거의 계몽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오스트발트 교수의 에너지론도 물질은 에너지이고 영혼은 에너지의 한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상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533).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은 “새로운” 용어법이 얼마나 빨리 유행하게 되는지, 그리고 표현 방식을 조금 바꾸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철학 문제와 근본적인 철학 방향을 조금도 없애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빨리 드러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경험” 따위의 용어로 유물론과 관념론을 표현할 수 있듯이, “에너지론”의 용어로도 유물론과 관념론을 (물론 다소간 일관되게) 표현할 수 있다. 에너지론적 물리학은 그때까지 분해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물질 입자가 분해되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물질적 운동 형태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물질 없이 운동을 사유하려는 새로운 관념론적 시도의 원천이 되고 있다.

4. 현대 물리학의 두 방향과 영국 유심론

새로운 물리학에서 끌어낸 이런저런 결론을 둘러싸고 현대 문헌에서 불붙은 철학적 투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우리는 “전투”의 직접적 참가자들에게 발언권을 주기로 하고 영국인들부터 시작하겠다. 물리학자 아서 W. 뤼커는 한 방향을 옹호한다 — 자연과학자의 관점에서. 철학자 제임스 워드는 다른 방향을 옹호한다 — 인식론의 관점에서.

190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영국 자연과학자 대회에서 물리학 분과 회장 A. W. 뤼커는 물리학 이론의 가치 문제, 특히 원자와 에테르의 존재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을 연설 주제로 골랐다. 연사는 이 문제를 제기한 물리학자 푸앵카레와 포인팅(상징주의자 또는 마흐주의자의 영국인 동조자), 철학자 워드, 그리고 E. 헤켈의 유명한 책을 언급하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려고 시도했다[104].

“논쟁이 되는 문제는, — 하고 뤼커는 말했다, — 가장 널리 퍼진 과학 이론들의 기초에 놓인 가설들을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구조에 대한 정확한 기술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단지 편리한 허구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보그다노프, 유시케비치 일당과 우리가 벌이는 논쟁의 용어로 말하면, 그것은 객관적 실재, 운동하는 물질의 사본인가, 아니면 단지 “방법론”, “순수한 상징”, “경험의 조직 형태”인가?) 뤼커는 실천적으로는 두 이론 사이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데 동의한다. 강의 방향은 그 줄이 실제로 강을 나타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뿐 아니라 지도나 도표 위의 파란 줄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아마 정할 수 있을 것이다. 편리한 허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론은 “기억의 경감”, 우리 관찰에 대한 “질서 도입”, 관찰을 어떤 인위적 체계와 맞추는 것, “우리 지식의 정리”, 지식을 방정식으로 요약하는 것 따위가 될 것이다. 예컨대 열은 운동 또는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데서 그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운동하는 원자들의 생생한 그림을, 우리가 그 실제 본성을 규정하려 하지도 않는 열에너지에 대한 무미건조한(colourless) 진술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길에서 큰 과학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뤼커는 “그러한 전술 체계를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과학의 최후의 말로 볼 수는 없다고 감히 주장”한다.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물질이 드러내는 현상으로부터 물질 자체의 구조를 추론할 수 있는가”? “과학이 이미 제시한 이론의 개요가 진리의 단순한 도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본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우리에게 있는가”?

물질의 구조 문제를 검토하면서 뤼커는 공기를 예로 든다. 그는 공기가 기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이 “모든 원소 기체를 원자와 에테르의 혼합물로 분해한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 그는 말을 잇는다 — 사람들이 우리에게 “멈춰!” 하고 외친다. 분자와 원자는 볼 수 없다. 그것들은 “단순한 개념”(mere conceptions)으로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실재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뤼커는 과학 발전에서 나타난 무수한 사례 가운데 하나를 들어 이 반론을 물리친다. 토성의 고리는 망원경으로 보면 하나의 연속된 덩어리처럼 보인다. 수학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산으로 증명했고, 분광 분석은 계산에 근거해 내린 결론을 확증했다. 또 다른 반론은, 원자와 에테르에는 보통의 물질에서 우리의 감각이 보여 주지 않는 속성들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뤼커는 기체와 액체의 확산 같은 예를 들어 이 반론도 물리친다. 일련의 사실과 관찰과 실험은 물질이 개별 입자, 곧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한다. 이 입자들, 곧 원자들이 그것들을 둘러싼 “최초의 매질”, “기본 매질”(에테르)과 구별되는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상태에 있는 이 매질의 일부인지 하는 문제는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지만, 이 문제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이론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 경험이 가리키는 바에 반하여, 보통의 물질(원자와 에테르)과 구별되는 “준물질적 실체”의 존재를 선험적으로 부정할 근거는 없다. 여기서 세부적인 오류는 피할 수 없지만, 과학적 자료 전체는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어서 뤼커는 원자가 음전기를 띤 미립자(소체,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새로운 자료를 지적하고, 분자의 크기에 관한 여러 실험과 계산의 결과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1차 근사”로 얻은 지름은 약 100밀리미크론(밀리미터의 백만분의 일)이다. 뤼커의 세부적인 논평과 그의 신생기론 비판은 건너뛰고, 그의 결론을 인용한다.

“지금까지 과학 이론의 진보를 이끌어 온 관념들의 의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주장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여긴다. 즉 원자와 에테르는 과학적 상상력이 지어낸 단순한 허구라는 주장이거나, 아니면 원자와 에테르의 역학적 이론이 — 지금은 미완성이지만, 만일 완성될 수 있다면 — 실재에 관해 완전하고 이상적으로 정확한 표상을 우리에게 준다는 주장이다. 내 생각에는 중간의 길이 있다.”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은 사물을 극히 희미하게밖에 분간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가구에 부딪히지 않고 거울을 문인 줄 알고 그쪽으로 걸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무언가를 올바르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표면보다 더 깊이 파고들려는 요구를 포기할 필요도 없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신비의 덮개를 이미 모두 벗겨 냈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원자의 본성에 관해서도, 원자가 그 안에 존재하는 에테르의 본성에 관해서도 아직 완전히 온전한 그림을 그려 내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이론 가운데 일부가 지닌 잠정적(tentative, 문자 그대로는 ‘더듬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또 많은 세부적 난점에도 불구하고, 원자 이론이… 그 주된 기초에서는 옳다는 것, 원자가 수학자들(puzzled mathematicians)을 위한 보조 개념(helps)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실재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뤼커는 이렇게 연설을 마쳤다. 독자도 알다시피 이 연설자는 인식론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의심할 바 없이 수많은 자연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자생적 유물론의 관점을 옹호했다. 그의 입장의 요지는 이렇다. 물리학의 이론은 객관적 실재를 찍은 사진(점점 더 정확해지는)이다. 세계는 운동하는 물질이며, 우리는 그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한다. 뤼커 철학의 부정확한 점은 에테르 운동에 관한 “역학적” 이론(왜 전자기적 이론은 아닌가?)을 굳이 옹호할 필요도 없는데 옹호한 데서, 그리고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 이 물리학자에게 모자란 것은 오직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지식뿐이다(물론 영국 교수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라고 부르게 만드는, 그 매우 중요한 세속적 고려들을 셈에 넣지 않는다면).

이제 유심론자 제임스 워드가 이 철학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썼다. “… 자연주의는 과학이 아니며, 그 기초를 이루는 자연에 대한 역학적 이론 역시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주의와 자연과학, 역학적 세계 이론과 과학으로서의 역학은 논리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서로 매우 비슷하며 역사적으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자연과학과 관념론적 또는 유심론적 경향의 철학이 혼동될 위험은 없다. 그러한 철학은 과학이 무의식적으로 세우는 인식론적 전제들에 대한 비판을 반드시 포함하기 때문이다…”[105]. 맞는 말이다! 자연과학은 자신의 학설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오직 그러한 철학만이 자연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 “… 인식론에 관한 한 과학 자체와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한 자연주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실로 자연주의는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으로 다루어진 물리학일 뿐이다… 자연주의가 유물론보다 덜 독단적인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것은 궁극적 실재의 본성에 관해 불가지론적 단서를 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의 물질적 측면이 우위에 있다고 단호히 주장한다…”

유물론자는 물리학을 형이상학으로 다룬다. 익숙한 논거다! 인간 바깥에 있는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부른다. 유심론자들은 유물론을 이렇게 비난하는 데서 칸트주의자들 및 흄주의자들과 의견이 일치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다 아는 사물들, 물체들, 대상들의 객관적 실재를 없애 버리지 않고서는 렘케 식의 “실재적 개념들”에 길을 닦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문제, 즉 경험 전체를 어떻게 더 잘 체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때”(보그다노프를 표절하셨군요, 워드 씨!), “자연주의자는 우리가 물리적인 측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이 사실들만이 정확하고 확정적이며 엄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모든 사상은… 물질과 운동의 완전히 정확한 재분배로 환원될 수 있다고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만한 철학적 의의와 이만한 폭을 지닌 주장들이 물리학(즉 자연과학)의 정당한 결론이라고 현대 물리학자들은 감히 드러내 놓고 주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은밀한 형이상학을 파헤치고 기계론적 세계관이 기초하고 있는 물리적 실재론을 폭로하려는 사람들이 과학의 의의를 훼손한다고 여긴다…” 뤼커도 나의 철학을 그렇게 보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실제로 나의 비판”(모든 마흐주의자들도 증오하는 이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은 전적으로 물리학자들의 학파,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수가 점점 늘어나고 영향력을 넓혀 가는 학파, 이 거의 중세적인 실재론을 거부하는 학파의 결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실재론은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런 반론에도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란은 과학적 무정부 상태의 선포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키르히호프와 푸앵카레 같은 사람들 — 많은 이들 가운데 두 저명한 이름만 들겠다 — 이 ‘과학의 의의를 훼손’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을 우리가 물리적 실재론자라고 부를 권리가 있는 낡은 학파와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학파를 물리적 상징론자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용어는 썩 적절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두 학파 사이의 한 가지 본질적 차이, 지금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차이를 부각해 준다. 논쟁점은 아주 간단하다. 두 학파는 말할 것도 없이 동일한 감각적(perceptual) 경험에서 출발한다. 둘 다 세부에서는 다르지만 본질에서는 같은 추상적 개념 체계를 사용한다. 둘 다 이론을 검증하는 데 같은 방법을 쓴다. 그러나 한쪽은 자기가 최종적 실재에 점점 더 다가가며 점점 더 많은 가상을 뒤에 남겨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쪽은 자기가 복잡한 구체적 사실들을 지적 조작에 알맞은 일반화된 기술 도식들로 대체하고(is substituting)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에서도 사물에 관한(워드의 이탤릭체) 체계적 지식으로서의 물리학의 가치는 건드려지지 않는다. 물리학이 더 발전하고 실천적으로 응용될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똑같다. 그러나 두 학파 사이의 철학적(speculative) 차이는 엄청나며, 이 점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솔직하고 일관된 유심론자의 문제 제기는 놀랍도록 정확하고 명료하다. 실제로 현대 물리학에서 두 학파의 차이는 오로지 철학적인 것, 오로지 인식론적인 것이다. 실제로 근본적 차이는 오로지 한쪽은 우리의 이론이 반영하는 “최종적”(객관적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실재를 인정하는 반면, 다른 쪽은 이를 부정하고 이론을 경험의 체계화, 경험상징의 체계 등등으로만 여긴다는 데 있다. 새로운 물리학은 물질의 새로운 종류와 그 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서, 낡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무너지는 것을 계기로 낡은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했다. 그리고 “중간” 철학 조류의 사람들(“실증주의자들”, 흄주의자들, 마흐주의자들)이 논쟁점을 분명하게 제기하지 못한다면, 공공연한 관념론자 워드는 모든 덮개를 벗겨 버렸다.

“…뤼커는 최근 푸앵카레 교수, 포인팅 교수, 그리고 내가 옹호해 온 상징적 해석에 맞서 물리적 실재론을 옹호하는 데 자신의 회장 연설을 바쳤다”(p. 305—306; 워드는 자기 책의 다른 곳에서 이 목록에 뒤엠, 피어슨, 마흐를 덧붙인다. II vol., p. 161, 63, 57, 75, 83 등 참조).

“…뤼커는 끊임없이 ‘사유상’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원자와 에테르가 사유상 이상의 무엇이라고 끊임없이 선언한다. 이런 추론 방식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저러한 경우에 나는 다른 상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따라서 실재는 그 상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뤼커 교수는 다른 사유상이 있을 추상적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는 심지어 우리 이론 가운데 일부가 ‘잠정적’(tentative) 성격을 띤다는 것과 많은 ‘개별적 난점’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결국 그가 옹호하는 것은 하나의 작업 가설(a working hypothesis)뿐이며, 그것도 지난 반세기 동안 위신을 상당히 잃은 가설이다. 그러나 원자론과 물질 구조에 관한 다른 이론들이 작업 가설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물리적 현상에 엄격히 국한된 가설이라면, 기계론이 만물의 기초이며 기계론은 생명과 정신의 사실들을 부수현상으로 환원한다고, 즉 그것들을 이를테면 물질과 운동보다 한 단계 더 현상적이고 한 단계 덜 실재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세계에 관한 기계론적 이론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뤼커 교수가 그 이론을 드러내 놓고 지지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그와 다툴 것이 없다”(p. 314—315).

유물론이 의식의 실재성이 “더 낮다”고 주장했다거나, 운동하는 물질로서의 세계의 그림을 반드시 “기계론적” 그림으로만 그렸을 뿐 전자기적 그림이나 그 밖에 헤아릴 수 없이 더 복잡한 어떤 그림으로는 그리지 않았다는 것은 물론 순전한 헛소리다. 그러나 참으로 요술쟁이처럼, 우리 마흐주의자들(즉 갈피를 못 잡는 관념론자들)보다 훨씬 능숙하게 — 솔직하고 공공연한 관념론자 워드는 “자연발생적” 자연과학적 유물론의 약점, 예컨대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의 상호 관계를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포착한다. 워드는 곡예를 부리며, 진리가 상대적이고 근사적이며 사물의 본질을 “더듬어 찾을” 뿐이라면 — 진리는 실재를 반영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고 선언한다! 그 대신 원자 등을 “작업 가설”로 보는 문제는 이 유심론자가 지극히 정확하게 제기했다. 현대의 교양 있는 신앙주의(워드는 이것을 자신의 유심론에서 곧바로 끌어낸다)는 자연과학의 개념들을 “작업 가설”로 선언하는 것 이상은 요구할 생각조차 없다. 자연과학자 양반들, 과학은 당신들에게 내주겠다, 인식론과 철학은 우리에게 내놓으라 —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신학자와 교수 들이 동거하는 조건이다.

워드가 “새로운” 물리학과 결부시키는 그의 인식론의 다른 논점들로 말하자면, 여기에는 그가 물질과 벌이는 단호한 투쟁도 포함해야 한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에너지란 무엇인가? 하고 워드는 가설들이 넘쳐 나고 서로 모순된다는 점을 비웃으며 캐묻는다. 에테르인가, 여러 에테르인가? 새롭고 믿기 어려운 성질들을 제멋대로 덧입힌 무슨 새로운 “완전 유체”란 말인가! 그리고 워드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운동 말고는 아무것도 확정적인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열은 운동의 한 형태이고, 탄성은 운동의 한 형태이며, 빛과 자기는 운동의 한 형태다. 질량 자체마저도 결국에는, 추정되는 바로는, 운동의 한 형태로 밝혀진다 —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기체도 아닌 그 무엇의 운동, — 그 자체는 물체도 아니고 물체들의 집합체도 아니며, — 현상적이지 않고 가상적(누메논적)이어서도 안 되는, — 우리가 우리 자신의 특성들을 갖다 붙일 수 있는 진정한 apeiron(그리스 철학의 용어 = 무한한 것, 끝없는 것)의 운동인 것이다”(I, 140).

유심론자는 운동을 물질로부터 떼어놓는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충실하다. 자연 속에서 물체의 운동은 불변의 질량을 지닌 물체가 아닌 것의 운동으로, 알려지지 않은 에테르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전기의 알려지지 않은 전하인 것의 운동으로 전화한다 — 실험실과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이 물질적 전화의 변증법은 관념론자의 눈에(일반 대중의 눈에도, 마흐주의자의 눈에도 그렇듯이) 유물론적 변증법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에 반대하는 논거가 된다. “... 세계에 대한 의무적(professed) 설명으로서의 기계론적 이론은 기계론적 물리학 자체의 진보로 치명타를 입는다”(143)... 세계는 운동하는 물질이라고 우리는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물질의 운동 법칙을 느린 운동에 대해서는 역학이, 빠른 운동에 대해서는 전자기 이론이 반영한다... “연장을 지니고, 단단하며, 파괴될 수 없는 원자는 언제나 세계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의 지주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는 불행하게도, 연장을 지닌 원자는 성장하는 지식이 그것에 내놓은 요구들을 충족하지 못했다(was not equal to the demands)”(144)... 원자의 파괴 가능성, 원자의 무궁무진함, 물질과 그 운동의 모든 형태의 가변성은 언제나 변증법적 유물론의 지주였다. 자연 속의 모든 경계는 조건적이고 상대적이며 유동적이고, 물질의 인식을 향한 우리 지성의 접근을 표현한다 — 그러나 이것은 자연, 물질 자체가 상징, 조건적 기호, 즉 우리 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조금도 증명하지 않는다. 전자와 원자의 관계는 이 책 속의 한 점과 길이 30사젠, 너비 15사젠, 높이 7 1/2사젠인 건물의 부피의 관계와 같고(로지), 전자는 최대 초속 27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움직이며, 그 질량은 속도에 따라 변하고, 초당 500조 회전을 한다 — 이 모든 것은 옛 역학보다 훨씬 더 기묘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물질의 운동이다. 인간의 지성은 자연 속에서 기이한 것을 많이 발견했고 앞으로 더 많이 발견하여 자연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키워 갈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이 우리 지성의 창조물이라거나 추상적 지성, 즉 워드의 신, 보그다노프의 ‘대체’ 따위의 창조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 실재 세계에 관한 이론으로서 엄격하게(rigorously) 관철하면, 이 이상(‘기계론’의 이상)은 우리를 허무주의로 이끈다. 모든 변화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운동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변화이고, 운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운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166)... “내가 보여주려고 시도했듯이, 물리학의 진보야말로 물질과 운동에 대한 무지한 믿음, 그것들을 존재 총합에 대한 가장 추상적인 상징이 아니라 궁극적인(inmost) 실체로 인정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이 드러난다... 우리는 결코 순전한 기계론을 통해서는 신에게 이르지 못할 것이다”(180)...

자, 이건 벌써 『마르크스주의 철학 ‘에 관한’ 개요』와 완전히 똑같아졌다! 워드 씨, 그쪽에, 루나차르스키와 유시케비치, 바자로프와 보그다노프에게 한번 문의해 보시라. 그들은 당신보다 ‘부끄럼을 더 타기는’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것을 설교하고 있다.

5. 현대 물리학의 두 방향과 독일 관념론

1896년, 이름난 칸트주의 관념론자 헤르만 코엔은 Fr. 알베르트 랑게가 왜곡한 『유물론사』 제5판 서문에서 유례없이 의기양양하게 환호하며 나섰다. “이론적 관념론은”, 하고 H. 코엔은 외쳤다(S. XXVI). “자연과학자들의 유물론을 흔들기 시작했으며, 어쩌면 머지않아 그것을 완전히 이겨낼 것이다.” “관념론이 새로운 물리학에 스며들고(Durchwirkung) 있다.” “원자론은 동력론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주목할 만한 전환은, 물질의 화학적 문제들을 깊이 파고든 것이 유물론적 물질관을 원리적으로 극복하는 데로 이어질 운명이었다는 데 있다. 탈레스가 질료라는 개념을 떼어 냄으로써 최초의 추상을 이루었고 거기에 전자에 관한 사변적 고찰을 결부시켰던 것처럼, 전기 이론은 물질에 대한 이해에 가장 큰 변혁을 일으키고, 물질을 힘으로 전화시킴으로써 관념론의 승리를 가져올 운명이었다”(XXIX).

H. 코엔은 J. 워드만큼이나 분명하고 명료하게 기본적인 철학적 방향들을 짚어 내며, (우리 마흐주의자들처럼) 에너지론적이니 상징적이니 경험비판론적이니 경험일원론적이니 하는 따위의 관념론이 지닌 자질구레한 차이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코엔은 지금 마흐, 푸앵카레 등의 이름과 결부된 물리학 학파의 기본적인 철학적 경향을 붙잡아, 이 경향을 관념론적 경향이라고 올바르게 규정한다. 여기서 코엔에게 “물질을 힘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관념론의 주요한 성과인데, 이는 1869년에 J. 디츠겐이 폭로했던 자연과학자-“심령술사들”에게 그러했던 것과 완전히 마찬가지다. 전기는 관념론의 협력자로 선언된다. 왜냐하면 전기는 물질의 구조에 관한 낡은 이론을 무너뜨리고, 원자를 분해하고, 물질적 운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열어 보였는데, 그 형태들이 낡은 것들과 너무나 다르고, 아직 너무나 탐구되지 않고 연구되지 않았으며, 너무나 이례적이고 “경이로운” 나머지, 자연을 비물질적(정신적, 사유적, 심리적) 운동으로 보는 해석을 슬그머니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의 무한히 작은 입자들에 관한 우리 지식의 어제의 한계가 사라졌다, — 그러므로, 하고 관념론 철학자는 결론짓는다, — 물질은 사라졌다(그리고 사유는 남았다). 모든 물리학자와 모든 기술자는 전기가 (물질적) 운동임을 알고 있지만, 거기서 무엇이 움직이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 그러므로, 하고 관념론 철학자는 결론짓는다, — 철학적으로 교양 없는 사람들을 유혹적으로 “경제적인” 제안으로 속여 넘길 수 있다. 물질 없는 운동을 사유하자...

H. 코엔은 저명한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쓴다. 헤르츠는 우리 편이다, 그는 칸트주의자이며, 그에게서는 선험적인 것을 인정하는 대목이 보인다! 헤르츠는 우리 편이다, 그는 마흐주의자다, — 하고 마흐주의자 클라인페터가 맞선다, — 헤르츠에게서는 “우리 개념의 본질에 관하여 마흐와 똑같은 주관주의적 견해”가 엿보이기 때문이다[106]. 헤르츠가 누구의 사람인가를 둘러싼 이 기묘한 논쟁은, 관념론 철학자들이 신앙주의를 새로 단장해 옹호하는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저명한 자연과학자들의 사소한 오류, 사소한 표현상의 불명료함까지 어떻게 붙잡고 늘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다. 실제로 H. 헤르츠가 자신의 『역학』[107]에 붙인 철학적 서론은, 유물론의 “형이상학”을 향한 교수들의 아우성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외부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자연발생적 확신만은 도저히 극복하지 못하는 자연과학자의 평범한 관점을 보여 준다. 이것은 클라인페터 자신도 인정한다. 그는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의 인식론에 관한 철두철미 거짓된 대중용 소책자들을 독자 대중에게 뿌리면서 거기에 마흐를 헤르츠와 나란히 등장시키지만, —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 철학 논문에서 “헤르츠는 마흐나 피어슨과 달리 물리학 전체를 역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편견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108]고, 그가 물자체 개념과 “물리학자들의 평범한 관점”을 간직하고 있다고, 헤르츠가 “여전히 세계 자체의 존재를 붙들고 있었다”[109]고 등등 시인한다.

에너지론에 대한 헤르츠의 견해를 짚어 두는 것은 흥미롭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일 우리가 현대 물리학은 도대체 왜 자기 논의에서 에너지론적 표현 방식을 즐겨 쓰는가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러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사물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가장 편리하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우리는 모두 무게를 가진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원자의 크기와, 일정한 경우 원자의 운동에 관해서는 꽤 확정적인 표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원자의 형태, 원자들의 결합, 대다수 경우의 원자의 운동은 우리에게 완전히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원자에 관한 우리의 표상은 앞으로의 연구가 지향할 중요하고 흥미로운 목표이기는 하지만, 수학적 이론의 견고한 기초로 쓰이기에 특별히 적합한 것은 결코 아니다”(l. c., III, 21). 헤르츠는 에테르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가 “옛 물질의 본질, 그 관성과 중력”을 밝혀 주리라고 기대했다(I, 354).

여기서 보듯이, 헤르츠에게는 에너지를 비유물론적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철학자들에게는 에너지론이 유물론에서 관념론으로 도피하는 구실이 되었다. 자연과학자는 에너지론을, 물리학자들이 말하자면 원자에서는 떠났으나 아직 전자에는 이르지 못한 시기에 물질의 운동 법칙을 서술하는 편리한 방식으로 본다. 이 시기는 지금도 상당 부분 이어지고 있다. 가설 하나가 다른 가설로 바뀌고, 양전자에 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불과 석 달 전(1908년 6월 22일)에야 장 베크렐이 이 “물질의 새로운 구성 요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했다(《Comptes rendus des séances de l'Académie des Sciences》, p. 1311). 인간의 지성이 “물질”을 아직 겨우 “찾고” 있을 뿐이니, — 따라서 물질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등, 이처럼 유리한 사정을 관념론 철학이 어찌 이용하지 않겠는가.

코엔보다 훨씬 더 반동적인 색채를 띤 또 다른 독일 관념론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은 『최신 물리학의 세계관』(Die Weltanschauung der modernen Physik, Lpz., 1902)에 책 한 권을 통째로 바쳤다. 물론 우리의 관심은 저자가 자신이 옹호하는 관념론의 변종에 관해 늘어놓는 전문적인 논의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관념론자 역시 레이와 워드, 코엔이 확인한 것과 같은 현상들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E. 하르트만은 “현대 물리학은 실재론적 토양 위에서 성장했으며, 우리 시대의 신칸트주의적·불가지론적 조류 때문에 비로소 물리학의 최종 결과들이 관념론적 의미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218)고 말한다. E. 하르트만의 견해에 따르면 최신 물리학의 기초에는 세 가지 인식론적 체계가 놓여 있다. 힐로키네티크(그리스어 hyle = 물질과 kinesis = 운동에서 온 말로서, 물리적 현상을 물질의 운동으로 인정하는 것), 에너지론, 그리고 역동설(즉 물질 없는 힘의 인정)이 그것이다. 관념론자 하르트만이 “역동설”을 옹호하고, 이로부터 자연법칙이 세계 사유라는 결론을 끌어내며, 한마디로 물리적 자연에 심리적인 것을 “대입한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힐로키네티크가 가장 많은 물리학자를 자기편으로 두고 있으며, 이 체계가 “가장 빈번히 사용되며”(190), 그 심각한 결점이 “순수한 힐로키네티크를 위협하는 유물론과 무신론”(189)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에너지론을 아주 정당하게도 중간 체계로 간주하고 그것을 불가지론이라고 부른다(136). 물론 에너지론은 “물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순수한 역동설의 동맹자”(S. VI, p. 192)이지만, 하르트만은 그 불가지론을 순독일적 흑백인조의 진정한 관념론과 모순되는 일종의 “영국 숭배”로 여겨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이 당파적이고 비타협적인 관념론자(철학에서 무당파적인 사람들은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제불능의 멍청이들이다)가 물리학자들에게 이런저런 인식론적 노선을 따른다는 것이 본래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는 것을 보는 일은 지극히 교훈적이다. 하르트만은 물리학의 최근 성과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에 관해 이렇게 쓴다. “이 유행을 따르는 물리학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그러한 해석의 모든 의의와 모든 귀결을 온전히 의식하고 있다. 그들은 물리학이 그 특유의 법칙들과 함께 독자적 의의를 유지한 것은 오직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관념론에도 불구하고 실재론적 기본 전제들, 즉 물자체의 존재, 시간 속에서의 그것들의 실제적 가변성, 실제적 인과성을 고수한 한에서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직 이러한 실재론적 전제들(인과성, 시간, 삼차원 공간의 초월적 의미) 아래에서만, 즉 물리학자들이 그 법칙들을 이야기하는 자연이 물자체의 왕국과 일치한다는 조건에서만 ... 심리학적 법칙들과 구별되는 자연법칙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오직 자연법칙이 우리의 사유로부터 독립된 영역에서 작용하는 경우에만, 자연법칙은 우리의 형상들로부터 논리적으로 필연적으로 도출된 결론들이 이 형상들이 우리 의식 속에 반영하거나 상징하는 그 미지의 것의 자연사적으로 필연적인 결과들의 형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설명해 줄 수 있다”(218—219).

하르트만은 신물리학의 관념론이 자연사적 유물론에서 돌아서는 진지한 철학적 전환이 아니라 바로 유행이라는 것을 올바로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물리학자들에게 “유행”을 일관되고 완결된 철학적 관념론으로 바꾸려면 시간, 공간, 인과성, 자연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에 관한 학설을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올바로 설명해 준다. 원자, 전자, 에테르만을 단순한 상징, 단순한 “작업 가설”로 여겨서는 안 되며, 시간도, 공간도, 자연법칙도, 외부 세계 전체도 “작업 가설”이라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물론이냐, 아니면 물리적 자연 전체 밑에 심리적인 것을 보편적으로 대입하느냐이다. 이 두 가지 재주를 뒤섞으려는 자는 숱하게 많지만, 나와 보그다노프는 그 축에 끼지 않는다.

독일 물리학자들 가운데 마흐주의 조류에 체계적으로 맞서 싸운 사람은 1906년에 세상을 떠난 루트비히 볼츠만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가 “새로운 인식론적 교리에 대한 열광”에 맞서 마흐주의를 유아론으로 간단명료하게 환원해 보였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앞의 제1장 제6절 참조). 볼츠만은 물론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며, 심지어 자기가 신의 존재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고 일부러 단서를 달기까지 한다[110]. 그러나 그의 인식론은 본질적으로 유물론적이며, 19세기 자연과학의 역사가 S. 귄터[111]가 인정하듯이 대다수 자연과학자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L. 볼츠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그것들이 우리 감각기관에 불러일으키는 인상으로부터 인식한다”(l. c., S. 29). 이론은 자연, 외부 세계를 “묘사”(또는 모사)한 것이다(77). 물질이란 감성적 감각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볼츠만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는 자의 감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지적한다(168). 볼츠만이 때때로 철학적 관념론자 대신 쓰는 말로 하자면 이 “이데올로그들”은 우리에게 “주관적 세계상”(176)을 그려 보이지만, 저자는 “보다 단순한 객관적 세계상”을 택한다. “관념론자는 물질이 우리의 감각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얻어맞은 돌이 아픔을 느낀다는 어린아이의 생각에 견준다. 실재론자는 심리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심지어는 원자들의 유희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견해를, 태양이 지구에서 2천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 무지한 사람의 견해에 견준다. 그 사람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186). 볼츠만은 정신과 의지를 “물질 입자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그려 낸다는 과학의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396).

L. 볼츠만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을 거듭 논박했다. 그는 오스트발트가 운동에너지 공식(질량의 절반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을 반박할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먼저 질량에서 에너지를 끌어내고(운동에너지 공식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에는 질량을 에너지로 규정함으로써 악순환 속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S. 112, 139). 이와 관련하여 『경험일원론』 제3권에 실린 보그다노프의 마흐 해설이 떠오른다. “과학에서 — 보그다노프는 마흐의 『역학』을 끌어대며 이렇게 쓴다 — 물질 개념은 역학 방정식에 나타나는 질량 계수로 환원되며, 이 질량 계수는 정확히 분석해 보면 두 물리적 복합 — 물체들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가속도의 역수임이 밝혀진다”(146쪽). 어떤 물체를 단위로 잡으면 나머지 모든 물체의 (기계적) 운동을 가속도의 단순한 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체”(즉 물질)가 사라지거나 우리 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온 세계가 전자의 운동으로 환원되면, 바로 전자가 어디에서나 전제될 것이기 때문에 모든 방정식에서 전자를 없앨 수 있을 것이고, 전자들의 집단 또는 집합체 사이의 관계는 그것들의 상호 가속도로 환원될 것이다 — 운동 형태가 역학에서처럼 단순하다면 말이다.

마흐 일당의 “현상학적” 물리학과 싸우면서 볼츠만은 “미분방정식으로 원자론을 제거하려는 자들은 나무에 가려 숲을 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144). “미분방정식의 의미에 관해 환상을 품지 않는다면, (미분방정식을 통한) 세계상이 그래도 필연적으로 원자론적 세계상, 즉 3차원 공간에 배열된 엄청나게 많은 사물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세계상이 되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사물들은 물론 동일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를 수도 있으며, 불변일 수도 있고 가변일 수도 있다” 등등(156). “현상학적 물리학이 미분방정식이라는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 볼츠만은 1899년 뮌헨 자연과학자 대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 실제로는 그것도 마찬가지로 원자 같은 개별적 존재들(Einzelwesen)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존재들을 현상군에 따라 때로는 이런 속성을, 때로는 저런 속성을 지닌 것으로 표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더 단순하고 일률적인 원자론이 필요해질 것이다”(223). “전자론은 바로 모든 전기 현상에 관한 원자론적 이론으로 발전하고 있다”(357). 자연의 통일성은 서로 다른 현상 영역에 관한 미분방정식들의 “놀라운 유사성”에서 드러난다. “똑같은 방정식으로 유체역학의 문제를 풀 수도 있고 퍼텐셜 이론을 표현할 수도 있다. 액체 속 소용돌이 이론과 기체 마찰(Gasreibung) 이론은 전자기 이론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등등(7). “보편적 대입” 이론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가 이토록 한결같이 물리적 자연을 “대입”할 생각을 해냈느냐는 물음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볼츠만은 “구학파의 물리학자”를 내치는 사람들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일부 “물리화학” 전문가들이 어떻게 마흐주의와 반대되는 인식론적 관점에 서게 되는지를 상세히 이야기한다. 볼츠만의 말을 빌리면 1903년에 나온 개설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가운데 하나”를 쓴 저자 포벨(Vaubel)은 “그토록 자주 칭송받는 현상학적 물리학에 단호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381). “그는 원자와 분자의 본성,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관해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표상을 세우려고 애쓴다. 그는 이 표상을 이 분야의 최신 실험들과 맞춘다”(이온, 전자, 라듐, 제만 효과 등). “저자는 물질과 에너지의 이원론[112]을 엄격히 고수하며, 물질 보존 법칙과 에너지 보존 법칙을 따로 서술한다. 물질에 관해서도 저자는 역시 무게 있는 물질과 에테르의 이원론을 고수하지만, 후자를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본다”(381). 저작의 제2권(전기 이론)에서 저자는 “처음부터 전기 현상이 원자 모양의 개체들, 즉 전자들의 상호작용과 운동으로 일어난다는 관점에 선다”(383). 따라서 유심론자 J. 워드가 영국에 대해 인정한 것, 즉 실재론 학파의 물리학자들이 상징주의 학파의 물리학자들 못지않게 최근 몇 년의 사실과 발견을 잘 체계화하며, 본질적 차이는 “오로지” 인식론적 관점에 있다는 것이 독일에 대해서도 확인된다[113].

6. 현대 물리학의 두 방향과 프랑스의 신앙주의

프랑스에서도 관념론 철학은 마흐주의 물리학의 동요를 그에 못지않게 단호히 붙잡았다. 우리는 이미 신비판주의자들이 마흐의 『역학』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곧바로 마흐 철학 기초의 관념론적 성격을 지적했음을 보았다. 프랑스의 마흐주의자 푸앵카레(앙리)는 이 점에서 한층 더 큰 행운을 누렸다. 명백히 신앙주의적인 결론을 내세우는 가장 반동적인 관념론 철학이 곧바로 그의 이론을 붙잡은 것이다. 이 철학의 대표자 르루아(Le Roy)는 이렇게 추론했다. 과학의 진리는 규약적 기호, 상징이다. 그대들은 객관적 실재를 인식한다는 터무니없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내던졌다. 그렇다면 논리를 일관하여, 과학은 인간 행위의 한 영역에 대해서만 실천적 의미를 가지며 종교는 다른 행위 영역에 대해 과학 못지않게 실제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데 우리와 동의하라. “상징적인” 마흐주의 과학은 신학을 부정할 권리가 없다. H. 푸앵카레는 이러한 결론을 부끄럽게 여기고 『과학의 가치』에서 일부러 그것을 공격했다. 그러나 르루아 같은 동맹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어떤 인식론적 입장을 취해야 했는지 보라. “르루아 씨는” — 하고 푸앵카레는 쓴다 — “오직 인식의 다른 원천들, 즉 마음, 감정, 본능, 신앙에 더 많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이성이 구제할 길 없이 무력하다고 선언한다”(214—215). “나는 끝까지 가지는 않는다.” 과학 법칙은 규약, 상징이지만 “과학적 ‘처방’이 행위의 규칙으로서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이 대체로 성공을 거두기 때문이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무슨 권리로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가?”(219).

A. 푸앵카레는 실천의 기준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 문제를 옮겨 놓을 뿐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기준은 주관적 의미로도 객관적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루아 역시 과학과 산업에 대해서는 이 기준을 인정한다. 그는 다만 이 기준이 객관적 진리를 증명한다는 것만을 부정한다. 그런 부정만으로도 과학의 주관적(인류와 별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진리와 나란히 종교의 주관적 진리를 인정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A. 푸앵카레는 르루아에 맞서 실천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과학의 객관성 문제로 넘어간다. “과학의 객관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외부 사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기준과 바로 같은 것이다. 이 사물들이 실재적인 것은, 그것들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감각(qu'ils nous font éprouver)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날그날의 우연이 아니라 어떤 파괴할 수 없는 시멘트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한에서이다”(269— 270).

이런 논증을 펴는 저자가 대단한 물리학자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철학자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보로실로프-유시케비치 같은 자들뿐이라는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앙주의가 처음 공격해 오자마자 유물론의 날개 밑으로 피신하는 “이론”에 의해 유물론이 파괴되었다고 선언하다니! 감각이 실재적 사물에 의해 우리 안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외부 사물의 객관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가장 순수한 유물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테르는 어떤 외부 물체 못지않게 실재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270).

만일 유물론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마흐주의자들이 얼마나 떠들어댔겠는가! “에테르적 유물론” 따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빨 빠진 재담이 쏟아졌겠는가! 그러나 최신 경험상징론의 창시자는 다섯 쪽 뒤에 가서 벌써 이렇게 설파한다. “사유가 아닌 모든 것은 순전한 무이다. 우리는 사유 외에는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276). 틀렸소, 푸앵카레 씨. 당신의 저작들은 무의미밖에 사유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저 유명한 혼란제조자 조르주 소렐이다. 그는 과학의 가치에 관한 푸앵카레의 책의 “처음 두 부분”이 “르루아의 정신으로 쓰였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이 두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화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과학과 세계 사이에 동일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환상이며, 과학이 자연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고, 과학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과 일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Georges Sorel: «Les préoccupations métaphysiques des physiciens modernes», P., 1907, p. 77, 80, 81).

그러나 푸앵카레의 “철학”은 지적만 하고 지나쳐도 충분하지만, A. 레의 저서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레가 “개념주의적” 방향과 “신기계론적” 방향이라고 부르는 현대 물리학의 두 기본 방향이 관념론적 인식론과 유물론적 인식론의 차이로 귀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제 우리는 실증주의자 레가 유심론자 J. 워드나 관념론자 H. 코엔과 E. 하르트만의 과제와 정반대되는 과제, 즉 새로운 물리학의 철학적 오류와 그것이 관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오류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물리학으로부터 관념론적(그리고 신앙주의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A. 레의 저서 전체를 붉은 실처럼 관통하는 것은, 새로운 물리학 이론, 곧 “개념주의자들”(마흐주의자들)의 이론을 신앙주의(II, 17, 220, 362쪽 등)와 “철학적 관념론”(200쪽), 이성의 권리와 과학의 권리에 대한 회의주의(210, 220쪽), 주관주의(311쪽) 등이 붙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러므로 A. 레가 “물리학의 객관적 가치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견해”(3쪽)를 분석하는 일을 자기 작업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면 이 분석의 결과는 무엇인가?

기본 개념인 경험 개념을 들어 보자. 레는 마흐에 대한 주관주의적 해석(간단하고 짧게 하기 위해 마흐를 레가 개념주의파라고 부르는 학파의 대표자로 삼겠다)이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물론 “19세기 말 철학의 주요한 새로운 특징들”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점점 더 정교해지고 점점 더 풍부한 뉘앙스를 지니게 된 경험주의, 한때 형이상학의 주장에 맞선 회의주의의 투쟁에서 위대한 무기였던 경험주의가 신앙주의로, 신앙의 우위에 대한 인정으로 이끈다. 이렇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뉘앙스들을 거쳐 조금씩 ‘경험’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를 왜곡했기 때문이 아닌가? 실제로 경험은, 그것을 그 존재 조건 속에서, 그것을 규정하고 다듬는 실험과학 속에서 파악한다면, 우리를 필연성과 진리로 이끈다”(398쪽). 넓은 의미의 마흐주의 전체가 눈에 띄지 않는 뉘앙스들을 거쳐 “경험”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를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마흐 자신이 아니라 신앙주의자들에게만 왜곡의 죄를 씌우는 레는 이 왜곡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들어 보라. “경험은 통상적인 정의에 따르면 객체에 대한 인식이다. 물리학에서 이 정의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적절하다…… 경험은 우리 정신이 지배하지 못하는 것, 우리의 욕망이나 의지가 바꿀 수 없는 것, 주어진 것, 우리가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경험은 주체 앞(en face du)에 있는 객체다”(314쪽).

이것이 레가 마흐주의를 옹호하는 한 견본이다! 철학적 불가지론과 현상론의 최신 유형의 지지자들을 “수줍은 유물론자들”이라는 별명으로 규정한 엥겔스는 얼마나 천재적으로 꿰뚫어 보았던가. 실증주의자이자 열렬한 현상론자인 레는 이 유형의 훌륭한 표본이다. 만일 경험이 “객체에 대한 인식”이라면, 만일 “경험이 주체 앞에 있는 객체”라면, 만일 경험이 “외부의 어떤 것(quelque chose du dehors)이 존재하며 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se pose et en se posant s'impose, p. 324)는 데 있다면, 이것은 명백히 유물론으로 귀착된다! 레의 현상론, 감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느니 객관적인 것은 보편타당한 것이라느니 하는 따위를 그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모두 무화과 잎사귀, 유물론을 가리는 공허한 말의 덮개일 뿐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상 말이다:

“객관적인 것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고 경험에 의해 강요된(imposé) 것이다. 우리가 생산하지 않으며, 우리와 무관하게 생산되고, 어느 정도는 우리를 생산하는 것이다”(320쪽). 레는 개념론을 파괴하면서 “개념론”을 옹호하고 있다! 마흐주의에서 나오는 관념론적 결론에 대한 반박은 오로지 마흐주의를 수줍은 유물론의 의미로 해석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레는 현대 물리학에 두 방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 놓고서도, 유물론적 방향에 유리하도록 모든 차이를 지워 버리려고 비지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다. 예컨대 신기계론 학파에 관해 레는, 이 학파가 물리학의 객관성 문제에서 “추호의 의심도, 추호의 불확실성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237쪽). “여기서(즉 이 학파의 학설을 토대로 하면) 여러분은, 물리학의 다른 이론들의 관점에서는 이 객관성을 주장하는 데 이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했던 그 모든 우회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레는 바로 마흐주의의 이런 “우회로”를 덮어 주며, 자신의 서술 전체에 걸쳐 그 위에 베일을 씌워 놓는다. 유물론의 근본 특징은 바로 그것이 과학의 객관성으로부터, 과학에 의해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의 인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데 있는 반면, 관념론은 객관성을 정신, 의식, “심리적인 것”으로부터 이렇게든 저렇게든 “끌어내기” 위해 “우회로”를 필요로 한다. 레는 이렇게 쓴다. “물리학의 신기계론적(즉 지배적인) 학파는 인류가 외부 세계의 실재성을 믿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물리학 이론의 실재성을 믿는다”(234쪽, 제22절: 테제). 이 학파에게 “이론은 객체를 본뜬 사본(le décalque)이기를 원한다”(235쪽).

옳다. 그리고 “신기계론적” 학파의 이 근본 특징은 다름 아닌 유물론적 인식론의 기초다. 레가 유물론자들과 아무리 선을 긋고, 신기계론자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현상론자라느니 하는 따위를 아무리 장담해도 이 근본 사실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신기계론자들(다소 수줍은 유물론자들)과 마흐주의자들의 차이의 핵심은 바로, 후자가 그러한 인식론으로부터 물러선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물러서면서 불가피하게 신앙주의 속으로 발을 헛디딘다는 데 있다.

레가 마흐의 인과성 및 자연 필연성에 관한 학설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레의 장담에 따르면, 마흐가 “회의주의에 가까워지는”(76) 것도, “주관주의”(76)에 가까워지는 것도 언뜻 보기에만 그러할 뿐이며, 이 “애매함”(équivoque, p. 115)은 마흐의 학설을 전체로서 취하면 사라진다. 그래서 레는 그것을 전체로서 취하여 『열학설』과 『감각의 분석』 양쪽에서 여러 인용문을 끌어오고, 앞의 저작에 있는 인과성에 관한 장은 특별히 따로 다루기까지 한다 — 그러나…… 그러나 물리적 필연성은 없고 오직 논리적 필연성만 있다는 마흐의 선언, 그 결정적 대목은 인용하기를 삼간다!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마흐에게 분칠을 해 주는 것이며, “신기계론”과 마흐주의 사이의 차이를 지워 버리는 것이라는 말뿐이다. 레의 결론은 이렇다. “마흐는 분석을 계속하여 흄, 밀 및 모든 현상론자의 결론을 받아들이는데,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과성은 그 안에 실체적인 것을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사유의 습관일 뿐이다. 마흐는 현상론의 기본 테제, 곧 감각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테제를 받아들이며, 인과성에 관한 학설은 이 테제에 대해 단순한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흐는 순전히 객관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과학은 감각을 탐구하면서 그 안에서 항상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들을 발견하는데, 이 요소들은 감각에서 추상된 것이면서도 감각과 똑같은 실재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요소들은 감각적 관찰을 통해 감각에서 길어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항상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들, 예컨대 에너지와 그 전화는 물리학 체계화의 기초를 이룬다”(117).

결국 마흐는 흄의 주관적 인과성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객관주의적 의미로 해석한다는 셈이다! 레는 마흐의 비일관성을 끌어대어 마흐를 변호하고, 경험을 “실재적”으로 해석하면 이 경험이 “필연성”으로 이끈다는 쪽으로 몰아가면서 얼버무린다. 그런데 경험이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만일 자연의 필연성, 자연의 법칙 역시 외부로부터, 객관적-실재적 자연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다면, 그때는 물론 마흐주의와 유물론 사이의 차이는 모조리 사라진다. 레가 마흐주의를 “신기계론”으로부터 지켜 내는 방식은 후자 앞에 전면적으로 항복하면서, 이 경향의 본질이 아니라 현상론이라는 낱말 하나를 고수하는 것이다.

예컨대 푸앵카레는 완전히 마흐의 정신에 따라 자연법칙을 — 공간이 삼차원이라는 것까지 — “편리함”에서 이끌어 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의적”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레는 서둘러 “바로잡는다”. 아니, 여기서 “편리한”이라는 말은 “객체에 대한 적응”을 표현한다는 것이다(강조는 레, 196쪽). 두 학파를 구별하고 유물론을 “반박”하는 솜씨가 참으로 훌륭하기도 하다…… “설령 푸앵카레의 이론이 논리적으로 건널 수 없는 심연에 의해 기계론 학파의 존재론적 해석과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즉 이론은 객체의 사진이라는 이 학파의 인정과)…… “설령 푸앵카레의 이론이 철학적 관념론의 지주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과학의 토대 위에서는 그것은 고전 물리학 사상의 일반적 발전과, 즉 물리학을 객관적 인식으로, 경험만큼이나, 다시 말해 경험의 출발점인 감각만큼이나 객관적인 인식으로 보려는 경향과 아주 잘 어울린다”(200).

한편으로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푸앵카레를 신기계론으로부터 갈라놓는다. 푸앵카레는 마흐의 “개념론”과 신기계론의 중간에 서 있고, 마흐는 신기계론과 어떤 심연으로도 전혀 갈라져 있지 않다는데도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 푸앵카레는 고전 물리학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는데, 레 자신의 말에 따르면 고전 물리학은 전적으로 “기계론”의 관점에 서 있다. 한편으로 푸앵카레의 이론은 철학적 관념론의 지주가 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경험”이라는 말의 객관적 해석과 양립한다. 한편으로 저 고약한 신앙주의자들은 “경험은 객체다”라는 올바른 견해에서 벗어나,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빗나가는 방식으로 “경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했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의 객관성이란 경험이 감각이라는 것을 뜻할 뿐이다 — 이것이라면 버클리도 피히테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레가 혼란에 빠진 것은 풀 수 없는 과제를 스스로 떠맡았기 때문이다. 신물리학에서 유물론 학파와 관념론 학파의 대립을 “화해시키는” 과제 말이다. 그는 자기 이론을 객체의 사진으로 여기는 물리학자들의 견해를 현상론으로 끌어넣음으로써 신기계론 학파의 유물론을 약화시키려 한다[114]. 또 그는 개념론 학파 지지자들의 가장 단호한 발언은 잘라 내고 나머지는 수줍은 유물론의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이 학파의 관념론을 약화시키려 한다. 이때 레가 유물론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억지스러운지는, 예컨대 맥스웰과 헤르츠의 미분 방정식이 지닌 이론적 의의에 대한 그의 평가가 보여 준다. 마흐주의자들에게는 이 물리학자들이 자기 이론을 방정식 체계에 국한한다는 사실이 유물론에 대한 반박이다. 방정식 — 그게 전부이고, 물질도 객관적 실재도 없으며, 오직 기호뿐이라는 것이다. 볼츠만은 자신이 현상학적 물리학을 반박하고 있음을 알고서 이 견해를 반박한다. 레는 현상론을 옹호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견해를 반박한다! “맥스웰과 헤르츠를 — 하고 그는 말한다 — 그들이 라그랑주 역학의 미분 방정식과 비슷한 방정식에 그쳤다는 이유로 ‘기계론자’의 범주에서 빼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맥스웰과 헤르츠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가 실재적 요소들 위에 전기의 기계론적 이론을 세울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가능성은, 고전 역학의 일반적 형식과 동일한 형식을 지닌 이론이 전기 현상을 표상한다는 사실로 증명된다”(253)… 문제의 현재 해결에 있는 불확정성은 “방정식에 들어가는 저 양적 단위들, 즉 요소들의 본성이 더 정확히 드러남에 따라 줄어들 것이다.” 물질 운동의 이러저러한 형식이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레에게 운동의 물질성을 부정할 구실이 되지 못한다. “물질의 동질성”(262) — 공준으로서가 아니라 경험과 과학 발전의 결과로서의 동질성, 곧 “물리학 객체의 동질성” — 바로 이것이 측정과 수학적 계산을 적용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인식론에서 실천의 기준에 대한 레의 평가는 이렇다. “회의주의의 전제들과는 반대로 우리는 과학의 실천적 가치가 그 이론적 가치에서 나온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368)…… 이 회의주의의 전제들을 마흐, 푸앵카레와 그들의 학파 전체가 조금도 모호함 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레는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이 가치와 저 가치는 과학의 객관적 가치를 이루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고 엄밀하게 평행하는 두 측면이다. 어떤 자연법칙이 실천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 자연법칙이 객관적 의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객체에 대한 작용은 객체의 변화, 즉 우리가 그 작용을 시도한 근거인 우리의 기대나 예견에 들어맞는 객체의 반작용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대나 예견은 객체와 우리의 작용에 의해 검증되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다양한 이론들에는 객관적인 것의 일부가 있다”(368). 이것은 완전히 유물론적인, 그리고 오직 유물론적일 뿐인 인식론이다. 왜냐하면 다른 관점들, 특히 마흐주의는 실천의 기준이 지닌 객관적 의의, 즉 인간과 인류로부터 독립한 의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레는 워드, 코엔 일당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에 접근했지만, 그에게서도 결과는 똑같이 나왔다. 즉 현대 물리학의 두 주요 학파를 가르는 기초로서 유물론적 경향과 관념론적 경향을 인정한 것이다.

7. 러시아의 “물리학자-관념론자”

내 작업의 몇몇 서글픈 여건 때문에 나는 지금 다루는 문제에 관한 러시아 문헌을 거의 전혀 접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이름난 철학적 흑백인조 로파틴 씨가 지난해(1907년 9—10월) 《철학 및 심리학 문제》에 실은 「물리학자-관념론자」라는 글, 내 주제에 매우 중요한 이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진정한 러시아적 철학적 관념론자 로파틴 씨와 현대 유럽 관념론자들의 관계는 대략 “러시아 민족 연맹”과 서유럽 반동 정당들의 관계와 같다. 그러나 그런 만큼 동질적인 철학적 경향이 전혀 다른 문화적·생활적 환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더욱 교훈적이다. 로파틴 씨의 글은 프랑스인들 말대로 éloge — 고(故) 러시아 물리학자 N. I. 시시킨(1906년 사망)에 대한 찬사다. 로파틴 씨가 반한 것은, 헤르츠와 새로운 물리학 전반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이 교양인이 우익 카데트였을 뿐 아니라(339쪽) 깊은 신앙인이요 Vl. 솔로비요프 철학의 숭배자 등등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철학적인 것과 경찰적인 것의 경계 영역으로 쏠리는 자신의 주된 “지향”에도 불구하고, 로파틴 씨는 물리학자-관념론자의 인식론적 견해를 특징짓는 데 쓸 만한 자료도 얼마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는 — 로파틴 씨는 이렇게 쓴다 — 연구 방법과 과학의 가정 및 사실을, 온전하고 완결된 세계관을 세우기 위한 수단과 재료로서 쓸모가 있는지에 따라 최대한 폭넓게 비판하려고 끊임없이 애썼다는 점에서 진정한 실증주의자였다. 이 점에서 N. I. 시시킨은 그의 수많은 동시대인과 정반대였다. 앞서 이 잡지에 실린 내 글들에서 나는 이른바 과학적 세계관이 얼마나 잡다하고 흔히 불안정한 재료들로 짜여 있는지를 이미 여러 차례 밝히려 애썼다. 여기에는 증명된 사실도, 다소간 대담한 일반화도, 이런저런 과학 분야에서 당장 편리한 가설도, 심지어 보조적인 과학적 허구까지도 들어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반박할 수 없는 객관적 진리의 지위로 떠받들어져서, 철학적·종교적 성격의 다른 모든 관념과 신앙은 이 진리의 관점에서 심판받아야 하고 그 가운데 이 진리들에 제시되지 않은 것은 모조리 배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상가이자 자연과학자인 Vl. I. 베르나츠키 교수는 한 역사적 시대의 과학적 견해를 움직일 수 없고 누구에게나 구속력을 갖는 교조적 체계로 바꾸려는 이런 요구가 얼마나 공허하고 부당한지를 모범적인 명료함으로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런 변환의 죄를 짓는 것은 폭넓은 독서 대중만이 아니고(로파틴 씨의 주: ‘이 대중을 위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런 과학적 교리문답이 존재한다고 믿게 하려는 목적의 대중서가 숱하게 쓰였다. 이 부류의 전형적 저작이 뷔히너의 『힘과 물질』이나 헤켈의 『우주의 수수께끼』다’) 자연과학의 개별 전문 분야의 몇몇 학자만도 아니다. 훨씬 더 기이하게도, 관변 철학자들이 흔히 이 죄를 짓는다. 그들의 모든 노력은 때로, 자기들은 개별 전문 과학의 대표자들이 앞서 말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다만 자기들 나름의 특별한 언어로 말할 뿐임을 증명하는 데에만 쏠린다.

N. I. 시시킨에게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교조주의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연 현상에 대한 기계적 설명의 확고한 옹호자였으나, 그에게 그것은 다만 연구 방법일 뿐이었다”(341)… 흠… 흠… 귀에 익은 가락이다!… “그는 기계적 이론이 연구되는 현상의 본질 자체를 드러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이론에서 과학의 목적을 위해 현상들을 통합하고 정초하는 가장 편리하고 결실 있는 방식만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자연에 대한 기계적 이해와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는 결코 일치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의 저자들과 완전히 똑같다!… “정반대로, 그는 고차원의 문제들에서 기계적 이론이 엄격히 비판적인, 심지어 화해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여겼다…”.

마흐주의자들의 말로 하면, 이것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낡고 협소하며 일면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한다… “사물의 최초의 시작과 최후의 끝, 우리 정신의 내적 본질, 의지의 자유, 영혼의 불멸 등에 관한 문제들은 그 의미의 실제적 넓이에서 기계적 이론의 관할에 속할 수 없다 — 이미 그 이론이 연구 방법으로서 물리적 경험의 사실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자연적 한계 안에 갇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342)… 마지막 두 줄은 A. 보그다노프의 『경험일원론』에서 따온 명백한 표절이다.

“빛은 물질로서, 운동으로서, 전기로서, 감각으로서 고찰될 수 있다”고 시시킨은 자신의 논문 「기계적 이론의 관점에서 본 심리물리적 현상에 관하여」(《철학과 심리학의 문제》, 제1권, 127쪽)에서 썼다.

로파틴 씨가 시시킨을 실증주의자로 분류한 것이 전적으로 옳으며, 이 물리학자가 새로운 물리학의 마흐주의 학파에 온전히 속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시킨은 빛에 관한 자신의 논의로, 빛을 고찰하는 여러 방식이 이런저런 관점에서 똑같이 정당한, 서로 다른 “경험의 조직화” 방법들(A. 보그다노프의 용어로)이거나 서로 다른 “요소들의 연결”(E. 마흐의 용어로)이며, 어쨌든 빛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학설은 객관적 실재의 모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시시킨의 논변은 형편없이 졸렬하다. “빛은 물질로서, 운동으로서 고찰될 수 있다…” 자연에는 운동 없는 물질도, 물질 없는 운동도 없다. 시시킨의 첫 번째 “대립”은 무의미하다… “전기로서…” 전기는 물질의 운동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시시킨은 틀렸다. 빛의 전자기 이론은 빛과 전기가 동일한 물질(에테르)의 운동 형태임을 증명했다… “감각으로서…” 감각은 운동하는 물질의 상이다. 감각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물질의 어떤 형태에 대해서도, 운동의 어떤 형태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감각은 운동하는 물질이 우리의 감각 기관에 작용함으로써 일어난다. 자연과학은 이렇게 본다. 붉은색의 감각은 초당 약 450조 회의 빠르기로 일어나는 에테르의 진동을 반영한다. 푸른색의 감각은 초당 약 620조 회의 빠르기로 일어나는 에테르의 진동을 반영한다. 에테르의 진동은 우리의 빛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우리의 빛 감각은 에테르의 진동이 인간의 시각 기관에 미치는 작용에 의존한다. 우리의 감각은 객관적 실재, 즉 인류와 인간의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을 반영한다. 자연과학은 이렇게 본다. 유물론을 겨냥한 시시킨의 논변은 가장 값싼 궤변이다.

8. “물리적” 관념론의 본질과 의의

우리는 최신 물리학에서 어떤 인식론적 결론이 나오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영국, 독일, 프랑스 문헌에서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어떤 하나의 철학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철학 바깥에 놓인 어떤 일반적 원인들에서 생겨난 일종의 국제적 사상 조류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위에서 개관한 자료는 마흐주의가 새로운 물리학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심할 여지 없이 보여 주는 동시에, 우리 마흐주의자들이 퍼뜨리는 이 연결에 관한 표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 준다. 마흐주의자들은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물리학에서도 노예처럼 유행을 뒤쫓을 뿐, 자신들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해당 조류들을 총괄적으로 개관하고 그 위치를 평가할 줄 모른다.

마흐의 철학이 “20세기 자연과학의 철학”, “자연과학의 최신 철학”, “최신 자연과학적 실증주의” 등등이라는 주제로 늘어놓는 장광설에는 모두 이중의 거짓이 배어 있다(보그다노프, 『감각의 분석』 서문, IV, XII쪽; 유시케비치, 발렌티노프 일당에게서도 똑같은 것 참조). 첫째, 마흐주의는 현대 자연과학의 한 분야에 속한 한 학파와만 사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둘째,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마흐주의에서 이 학파와 연결된 것은 마흐주의를 관념론 철학의 다른 모든 조류와 자잘한 체계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마흐주의가 철학적 관념론 일반 전체와 공유하는 것이다. 고찰하고 있는 사상 조류를 전체로서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이 명제가 옳다는 데 대해 의심의 그림자조차 남을 수 없다. 이 학파의 물리학자들을 보라. 독일인 마흐, 프랑스인 앙리 푸앵카레, 벨기에인 P. 뒤엠, 영국인 K. 피어슨. 그들 각자가 전적으로 옳게 인정하듯이,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고 그들의 토대도 방향도 하나다. 그러나 이 공통점에는 경험비판론 일반의 학설도, 하다못해 “세계의 요소”에 관한 마흐의 학설도 들어 있지 않다. 뒤의 세 물리학자는 이 두 학설 가운데 어느 것도 알지조차 못한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단지” 하나, 그들 모두가 예외 없이 다소간 의식적으로, 다소간 단호하게 기울어 있는 철학적 관념론뿐이다. 새로운 물리학의 이 학파에 의거하여 그것을 인식론적으로 정초하고 발전시키려 애쓰는 철학자들을 보라. 거기서도 역시 독일의 내재론자들, 마흐의 제자들, 프랑스의 신비판주의자들과 관념론자들, 영국의 유심론자들, 러시아의 로파틴, 거기에 더해 유일무이한 경험일원론자 A. 보그다노프를 보게 될 것이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그들 모두가 다소간 의식적으로, 다소간 단호하게, 신앙주의 쪽으로 급격하고 성급하게 기울면서든 아니면 신앙주의에 대한 개인적 혐오를 품은 채로든(A. 보그다노프), 철학적 관념론을 관철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고찰하고 있는 새로운 물리학 학파의 기본 사상은 감각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의 이론들이 반영하는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 또는 그러한 실재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 학파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유물론(부정확하게도 실재론, 신기계론, 질료운동론 따위로 불리며, 물리학자들 자신도 조금이라도 의식적으로 발전시키지는 않는 유물론)에서 이탈한다. — “물리학적” 관념론 학파로서 이탈하는 것이다.

매우 이상하게 들리는 이 마지막 용어를 설명하려면 최신 철학과 최신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한 가지 일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1866년에 L. 포이어바흐는 최신 생리학의 저명한 창시자인 요하네스 뮐러를 맹렬히 공격하면서 그를 “생리학적 관념론자들” 속에 넣었다(Werke, X, S. 197). 이 생리학자의 관념론은, 그가 감각과의 관계에서 우리 감각 기관의 메커니즘이 갖는 의의를 연구하면서, 예컨대 빛의 감각은 눈에 여러 종류의 작용이 가해질 때 생겨난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거기에서 우리의 감각이 객관적 실재의 상(像)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결론을 끌어내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데 있었다. 자연과학자들의 한 학파가 “생리학적 관념론”으로, 즉 생리학의 일정한 결과들을 관념론적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기우는 이 경향을 L. 포이어바흐는 지극히 정확하게 포착했다. 생리학과 철학적 관념론, 주로 칸트주의 계열의 관념론 사이의 “연관”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반동 철학에 이용되었다. F. A. 랑게는 칸트주의적 관념론을 옹호하고 유물론을 반박하기 위해 생리학을 내세워 뽐냈고, 내재론자들(A. 보그다노프는 이들을 마흐와 칸트 사이의 중간 노선에 그토록 잘못 집어넣었다) 가운데 J. 렘케는 1882년에 생리학이 칸트주의를 확증한다는 허울뿐인 주장에 맞서 특별히 논진을 폈다[115]. 당시 여러 저명한 생리학자들이 관념론과 칸트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여러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철학적 관념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물리학적” 관념론, 즉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의 일정한 학파의 관념론은, F. A. 랑게와 “생리학적” 관념론자들의 그에 상응하는 안간힘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을 거의 “반박”하지 못하며 관념론(또는 경험비판론)과 자연과학의 연관도 거의 증명하지 못한다. 두 경우 모두 자연과학의 한 분야에서 자연과학자들의 한 학파에게서 드러난 반동 철학 쪽으로의 편향은 일시적인 지그재그이자 과학사에서 지나가는 병적 시기이며, 무엇보다도 낡은 기성 개념들의 급격한 파괴가 불러온 성장통이다. 현대 “물리학적” 관념론과 현대 물리학의 위기 사이의 연관은, 우리가 위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현대 물리학을 겨냥한 회의적 비판의 논거들은” — 회의론자들이라기보다는 브뤼네티에르 같은 신앙주의의 노골적 지지자들을 염두에 두고 A. 레는 이렇게 쓴다 — “본질적으로 모든 회의론자들의 유명한 논거, 즉 견해의 불일치로 귀착된다”(물리학자들 사이의).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는 “물리학의 객관성을 반박하는 그 무엇도 증명하지 못한다”. “물리학의 역사에서도 다른 모든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론들의 서로 다른 형태, 서로 다른 전반적 외관으로 특징지어지는 커다란 시기들을 구별할 수 있다... 물리학의 모든 부분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불충분하게 평가되었던 어떤 근본적인 사실을 확립하는 그런 발견들 가운데 하나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물리학의 모습 전체가 바뀌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다. 뉴턴의 발견 이후에도, 줄 — 마이어와 카르노 — 클라우지우스의 발견 이후에도 그러했다. 방사능 발견 이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훗날 어느 정도 필요한 거리를 두고 사건들을 바라볼 역사가는, 동시대인들이 갈등과 모순과 여러 학파로의 분열만을 보는 곳에서 진화의 항상성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물리학이 겪은 위기도 (이 위기를 근거로 철학적 비판이 내린 결론과는 달리)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위대한 새 발견들이 불러온 전형적인 성장의 위기(crise de croissance)다. 위기가 물리학의 변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그렇지 않다면 진화도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 변혁이 과학 정신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l. c., p. 370—372).

화해론자 레이는 신앙주의에 맞서 현대 물리학의 모든 학파를 한데 묶으려 애쓴다! 이것은 선의의 거짓이지만 어쨌든 거짓이다. 마흐—푸앵카레—피어슨 학파가 관념론(다시 말해 세련된 신앙주의)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주의적 정신과 구별되는 “과학적 정신”의 토대와 결부되어 있고 레이가 그토록 열렬히 옹호하는 물리학의 객관성이란 유물론을 “수줍게” 정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의 유물론적 기본 정신은, 현대 자연과학 전체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온갖 위기를 이겨 낼 것이다. 다만 형이상학적 유물론이 반드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대체되어야만 그러할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위기가 물리학이 자기 이론들의 객관적 가치를 직접적이고 단호하며 돌이킬 수 없이 인정하던 데서 후퇴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화해론자 레이는 매우 자주 흐리려 애쓰지만, 사실은 어떤 화해 시도보다도 강하다. “수학자들은 — 레이는 이렇게 쓴다 — 객체가 — 적어도 겉보기에는 — 학자의 지성에 의해 창조되거나, 어쨌든 구체적 현상이 연구에 개입하지 않는 학문을 다루는 데 익숙해져서, 물리학에 대해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상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물리학을 수학에 가깝게 만들려고 애쓰면서 수학의 일반 이론을 물리학에 옮겨 놓았다... 모든 실험가들은 물리학적 판단의 방식과 물리학에 대한 이해 속으로 수학 정신이 침입(invasion)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리학의 객관성에 관한 사유의 불확실성과 동요, 객관성에 이르기 위해 거치는 우회로들, 그 과정에서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들은 흔히 이 영향으로 — 때로 은밀하게 작용한다고 해서 그 힘을 잃지는 않는 이 영향으로 — 설명되는 것이 아닌가?..”(227).

훌륭한 말이다. 물리학의 객관성 문제에서 나타나는 “사유의 동요” — 바로 여기에 유행하는 “물리학적” 관념론의 핵심이 있다.

“…… 수학의 추상적 허구들은 물리적 실재와, 수학자들이 그 실재에 관한 학문을 이해하는 방식 사이에 일종의 막을 만들어 놓은 듯했다. 그들은 물리학의 객관성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들은 물리학에 착수할 때 무엇보다도 객관적이고자 하며, 실재에 발을 딛고 그 발판을 지키려 애쓰지만, 이전의 습관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옛 기계론적 물리학보다 더 견고하게, 더 적은 가설로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 감성적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사(décalquer)하려 애썼던 — 에너지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전히 수학자들의 이론을 다루고 있다…… 수학자들은 물리학의 객관성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 왜냐하면 객관성 없이는 — 그들도 그것을 아주 잘 안다 — 물리학이란 말조차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이 지닌 복잡성, 그들의 우회로는 개운치 않은 느낌을 남긴다. 그것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지나치게 정교하며, 꾸며 낸 것(édifié)이다. 실험가는 여기서 물리적 실재와의 끊임없는 접촉이 그에게 불어넣어 주는 그런 자연발생적인 신뢰를 찾지 못한다…… 무엇보다 먼저 물리학자인 — 그런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 혹은 오직 물리학자일 뿐인 모든 물리학자가 본질적으로 말하는 것, 신기계론 학파 전체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물리학의 위기는 물리학이 수학 정신에 의해 정복되는 데 있다. 한편으로 물리학의 진보와 다른 한편으로 수학의 진보는 19세기에 이 두 학문을 긴밀하게 접근시켰다…… 이론물리학은 수학적 물리학이 되었다…… 그때 형식적 물리학의 시기, 즉 순수하게 수학적인 것이 된 수학적 물리학, 물리학의 한 분과로서가 아니라 수학의 한 분과로서의 수학적 물리학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국면에서 수학자는 자기 작업의 유일한 재료를 이루는 개념적(순전히 논리적) 요소들에 익숙해 있었고, 충분히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여긴 거칠고 물질적인 요소들에 거북함을 느꼈으므로, 그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추상해 버리고, 그것들을 완전히 비물질적으로, 순전히 논리적으로 표상하고, 심지어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려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서, 즉 물리적 요소로서의 요소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미분방정식으로 표상되는 형식적 관계들만이 남았다…… 수학자가 자기 정신의 이 구성적 작업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이론물리학과 경험의 연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그리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론이 자의적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개념, 순수한 개념이 실재적 요소들을 대체한다…… 이렇게 해서 이론물리학이 취한 수학적 형식으로 말미암아…… 물리학의 불편(le malaise), 물리학의 위기, 그리고 물리학이 객관적 사실들로부터 멀어진 듯한 외양이 역사적으로 설명된다”(228—232).

이것이 “물리적” 관념론의 첫 번째 원인이다. 반동적 기도는 과학의 진보 그 자체에서 생겨난다. 자연과학의 커다란 성공, 즉 그 운동 법칙을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동질적이고 단순한 물질 요소들에 다가간 것이 수학자들로 하여금 물질을 잊게 만든다. “물질이 사라지고” 방정식만 남는다. 발전의 새로운 단계에서, 그리고 겉으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낡은 칸트주의 사상이 다시 나타난다: 이성이 자연에 법칙을 지정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새로운 물리학의 관념론적 정신에 열광하는 헤르만 코엔은 학교에 고등수학을 도입하자고 설교하기에까지 이른다 — 우리의 유물론적 시대가 몰아내고 있는 관념론의 정신을 김나지움 학생들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Geschichte des Materialismus von A. Lange, 5. Auflage, 1896, Bd. II, S. XLIX). 물론 이것은 — 반동가의 허황한 몽상이며, 실제로 여기에는 소수 전문가들이 잠시 관념론에 열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붙잡듯, 교양 있는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이 민중의 밑바닥에서 무지와 억눌림과 자본주의적 모순의 터무니없는 야만이 낳는 신앙주의를 위한 자그마한 자리를 인위적으로 지키거나 찾아내려고 얼마나 교묘한 수단을 쓰는지는 지극히 특징적이다.

“물리적” 관념론을 낳은 또 하나의 원인은 상대주의의 원리, 즉 우리 지식의 상대성의 원리인데, 이 원리는 낡은 이론들이 급격히 무너지는 시기에 물리학자들에게 특히 강하게 밀어닥치며, — 변증법을 모를 경우 — 필연적으로 관념론으로 이끈다.

상대주의와 변증법의 관계라는 이 문제는 마흐주의의 이론적 곤경을 설명하는 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레는 모든 유럽 실증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는 변증법이라는 말을 오로지 관념론적 철학 사변이라는 뜻으로만 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물리학이 상대주의 때문에 탈선했음을 느끼면서도, 온건한 상대주의와 무절제한 상대주의를 구별하려 애쓰며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린다. 물론 “무절제한 상대주의는 실천에서는 아니더라도 논리적으로는 진정한 회의주의와 맞닿아 있다”(215). 그러나 푸앵카레에게는, 글쎄, 이런 “무절제한” 상대주의가 없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약사처럼 상대주의를 조금 더 — 조금 덜 달아 내기만 하면 그것으로 마흐주의의 일을 바로잡을 수 있다니!

실제로 상대주의에 관한 유일하게 이론적으로 올바른 문제 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내놓고 있으며, 이것을 모르면 필연적으로 상대주의에서 철학적 관념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현대 인식론에 비추어 본 변증법』이라는 베르만 씨의 터무니없는 소책자를 아무런 의의도 없는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베르만 씨는 자기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변증법에 관해 낡디낡은 헛소리를 되풀이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마흐주의자들이 인식론에서 걸음마다 똑같은 몰이해를 드러낸다는 것을 보았다.

물리학의 모든 낡은 진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고 확고부동하다고 여겨지던 것들까지도, 상대적 진리임이 드러난다 — 그러므로 인류에게서 독립된 객관적 진리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추론하는 것은 마흐주의 전체만이 아니라 “물리학적” 관념론 일반 전체다. 상대적 진리들의 총합이 그 발전 속에서 절대적 진리를 이룬다는 것 — 상대적 진리란 인류에게서 독립된 객체를 상대적으로 올바르게 반영한 것이라는 것 — 이 반영이 점점 더 올바르게 된다는 것 — 모든 과학적 진리에는 그 상대성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진리의 요소가 있다는 것 — 엥겔스의 『반뒤링론』을 숙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명한 이 모든 명제가 “현대” 인식론에게는 일곱 겹으로 봉인된 책이다.

마흐가 특히 추천하는 P. 뒤엠의 『물리학 이론』[116]이나 스탈로의 『현대 물리학의 개념과 이론』[117] 같은 저작은, 이 “물리학적” 관념론자들이 무엇보다도 바로 우리 인식의 상대성을 증명하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본질적으로 관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음을 지극히 뚜렷하게 보여 준다.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두 저자(뒤엠은 이 분야에서 20년간 일해 온 전문 물리학자이고, 스탈로는 1848년에 자신이 구헤겔주의 정신으로 펴낸 자연철학을 부끄러워하는 옛 정통 헤겔주의자다)는 자연에 대한 원자론적-기계론적 이해와 가장 정력적으로 싸운다. 그들은 그러한 이해의 한계, 그것을 우리 인식의 한계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이해를 고수하는 저술가들에게서 많은 개념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낡은 유물론의 이러한 결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과학 이론의 상대성에 대한 몰이해, 변증법에 대한 무지, 기계론적 관점의 과장 — 엥겔스가 이전의 유물론자들을 비난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스탈로와 달리) 헤겔의 관념론을 내던지고 헤겔 변증법의 참된 핵심을 천재적으로 이해할 줄 알았다. 엥겔스는 낡은 형이상학적 유물론을 버렸지만,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위해서였지 주관주의로 굴러떨어지는 상대주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예컨대 스탈로는 이렇게 말한다. “기계론적 이론은 모든 형이상학적 이론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이고 관념적이며 어쩌면 순전히 관습적인 속성 집단이나 개별 속성을 실체화하고, 그것들을 객관적 실재의 여러 종류로 취급한다”(p. 150). 이것은 당신이 객관적 실재의 인정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형이상학을 반변증법으로서 공격한다면 옳은 말이다. 스탈로는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흔히 상대주의를 거쳐 주관주의와 관념론으로 굴러떨어진다.

뒤엠도 마찬가지다. 그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 마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이 흥미롭고 가치 있는 물리학사의 예들을 여럿 동원하여 “모든 물리학 법칙은 근사적이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다”(280)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사람, 열린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 드는구나! — 이 주제에 관한 장황한 논의를 읽으면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뒤엠·스탈로·마흐·푸앵카레의 불행은 바로 그들이 변증법적 유물론이 열어 놓은 문을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상대주의를 올바로 정식화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상대주의에서 관념론으로 굴러떨어진다. “물리학 법칙은, 엄밀히 말해, 참도 거짓도 아니라 근사적이다”라고 뒤엠은 쓴다(p. 274). 이 “아니라” 속에는 이미 허위의 시작, 즉 근사적으로 객체를 반영하는, 다시 말해 객관적 진리에 접근하는 과학 이론과 자의적이고 환상적이며 순전히 약정적인 이론, 예컨대 종교 이론이나 체스 게임 이론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일의 시작이 있다.

이 허위는 뒤엠에게서, 감각적 현상에 “물질적 실재”가 대응하는가라는 문제를 형이상학이라고 선언하는 데까지 이른다(p. 10). 실재에 관한 문제는 치워 버려라, 우리의 개념과 가설은 단순한 기호(signes, p. 26), “자의적인”(27) 구성물 따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념론까지, “신자의 물리학”까지는 한 걸음이며, 피에르 뒤엠 씨는 칸트주의 정신에 따라 바로 그것을 설파한다(레이의 책, p. 162; p. 160 참조). 그런데 사람 좋은 아들러(프리츠)는 — 그 역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흐주의자다! — 뒤엠을 다음과 같이 “교정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일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뒤엠은 “현상 뒤에 숨은 실재들을 이론의 객체로서만 제거할 뿐, 현실의 객체로서는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18]. 이것은 흄과 버클리의 관점에서 행한 칸트주의 비판으로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P. 뒤엠에게서 의식적인 칸트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그는 마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대주의를 무엇에 기대야 할지 모른 채 그저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여러 대목에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바싹 다가선다. 우리는 소리를 “우리에 대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그대로 알 뿐, 소리를 낳는 물체들 속에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각이 그 외면적이고 피상적인 것만을 드러내 주는 이 실재를, 음향학 이론들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이론들은, 우리가 소리라고 부르는 그 겉보기만을 우리의 지각이 붙잡는 곳에, 실제로는 주기적이고 미세하며 매우 빠른 운동이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 등등(p. 7). 물체가 감각의 상징인 것이 아니라, 감각이 물체의 상징(더 정확히는 모상)이다. “물리학의 발전은 지칠 줄 모르고 재료를 내주는 자연과 지칠 줄 모르고 인식하는 이성 사이에 끊임없는 투쟁을 불러일으킨다”(p. 32) — 자연은 무한하며, 그 가장 작은 입자(전자도 포함하여)도 마찬가지로 무한하다. 그러나 이성 역시 그와 똑같이 무한히 “물자체”를 “우리에 대한 사물”로 전환한다. “실재와 물리학 법칙 사이의 투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물리학이 정식화하는 모든 법칙에 대해 실재는 조만간 조야한 반박, 곧 사실을 통한 반박을 들이댈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은 반박된 법칙을 지칠 줄 모르고 다듬고 변형하고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290). 저자가 인류로부터 독립적인, 이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굳게 견지하기만 했다면, 이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완전히 올바르게 서술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 물리학 이론은 오늘은 편리하고 내일은 쓸모없어지는 순전히 인위적인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점점 더 자연적인 분류이며, 실험적 방법이 직접 관조할 수 없는 실재들을 점점 더 명료하게 반영한 것이다”(문자 그대로는: 얼굴을 마주하여: face à face, p. 445).

마흐주의자 뒤엠은 마지막 문구로 칸트주의적 관념론에 추파를 던진다. 마치 “실험적”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위한 오솔길이 열리기라도 하는 듯이, 마치 우리가 “물자체”를 곧바로, 직접, 얼굴을 마주하여 인식하지 못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물리학 이론이 점점 더 자연적인 것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의식과 독립하여 “자연”, 곧 이 이론에 의해 “반영되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해가 바로 그러하다.

한마디로, 오늘의 “물리학적” 관념론은 어제의 “생리학적” 관념론과 꼭 마찬가지로, 자연과학의 한 부문에서 한 자연과학자 유파가 형이상학적 유물론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곧바로, 단번에 올라서지 못한 채 반동적 철학으로 굴러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119]. 현대 물리학은 이 걸음을 내딛고 있으며 앞으로도 내디딜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과 유일하게 올바른 자연과학 철학을 향해 곧장이 아니라 갈지자로,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자신의 “최종 목적”을 똑똑히 보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비틀거리며, 때로는 뒷걸음질까지 치며 다가간다. 현대 물리학은 산고를 겪고 있다.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낳고 있다. 산고는 고통스럽다. 출산은 살아 있고 생명력 있는 존재 말고도 불가피하게 몇몇 죽은 산물, 오물 처리장으로 보내야 할 얼마간의 찌꺼기를 내놓는다. 이 찌꺼기에는 온갖 물리학적 관념론, 온갖 경험비판론 철학이 경험상징론, 경험일원론 등등과 함께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