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1985

해빙과 정체의 사람들 445명

스탈린의 관 뚜껑을 연 해빙과 그것을 다시 덮은 정체 사이에서, 우주와 개혁과 반체제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얀 팔라흐

Jan Palach
비소련 혁명가 체코 체코 1948–1969 ✕ 분신

소련 점령에 항거해 스스로 불붙인 카렐대 학생

의사들이 생명을 구하려 애쓰는 병상에서 팔라흐는 말했다: '내 행동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동료 학생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고 살아서 투쟁하라고 당부했다.

1969년 1월 16일, 바르샤바조약군 점령 5개월 만에 체코 사회가 체념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한 카렐대학교 학생. 검열 폐지와 소련군 기관지 발행 중단을 요구하며 자신을 '인간횃불 1호'라 부른 그는 사흘 만에 사망했다. 20만 명이 운집한 장례식은 정상화 직전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항의였고, 20년 후 그의 기일 시위는 벨벳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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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프라하 출생, 브셰타티에서 성장
  • 1963–66멜니크 김나지움
  • 1966–68프라하 경제대학
  • 1968.9카렐대학교 철학부로 편입
  • 1968.11학생 파업 참가
  • 1969.1.16바츨라프 광장 분신
  • 1969.1.1920세로 사망

빅토르 바실리예비치 바클라노프

Виктор Васильевич Бакланов
농업 소련 러시아 1949–2019 ○ 자연사

노동영예훈장 완전 수훈자, 전 콜호스 기계화공

시베리아 튜멘주 출신의 빅토르 바클라노프는 1967년 열여덟 살에 우크라이나 콜호스 '기간트'의 기계화공이 되었고, 37년간 한 농장에서 일하며 노동영예훈장 3개 등급을 모두 받아 완전 수훈자가 되었다.

소련의 농업 노동자이자 국가·정치 인물로, 드네프로페트롭스크주 콜호스 '기간트'에서 기계화공으로 평생 일하며 전연방·공화국 차원의 수확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노동영예훈장 3급(1975), 2급(1982), 1급(1987)을 차례로 받아 완전 수훈자가 되었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는 콜호스 조합 대표로 소련 인민대의원(1989~1991)에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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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2004콜호스 '기간트' 기계화공 (드네프로페트롭스크주)
  • 1987–1989소련 최고소비에트 대의원 (제11기)
  • 1989–1991소련 인민대의원 (콜호스 조합 대표)
  • 2004연금 은퇴

발레리 일리치 호뎀추크

Валерий Ильич Ходемчук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인 1951–1986 ✕ 폭발로 즉사, 시신 미수습

폭발 순간 펌프실에 있었고, 시신도 수습되지 못한 체르노빌의 첫 번째 희생자

폭발 직전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22번 펌프 하부 급수를 재충전해야 해… 좋아, 잠깐만…"이라고 말했다. 그게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키이우주 크라피브냐에서 태어나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해 주순환펌프(GCN) 운전원으로 일했다. 1986년 4월 26일, 4호기 안전시험 중 폭발이 일어났을 때 그는 북쪽 GCN 펌프실에 있었고,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시신은 지금도 석관 내부 잔해 속에 남아 있으며, 3호기와 4호기 사이 격벽에는 그의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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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입사, 보일러 기사·선임 기사(열·지하통신 작업장)
  • 19784호기 주순환펌프(GCN) 운전원, 이후 제7그룹 수석 운전원
  • 1984노동영예훈장 3등급 수훈
  • 1986.04.264호기 안전시험 중 폭발, 북쪽 GCN 펌프실에서 순직
  • 1986.12명예휘장훈장 추서
  • 2008우크라이나 용기훈장 3등급 추서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샤셰노크

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Шашенок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소련 우크라이나 1951–1986 ✕ 사고 당일 사망

원전 시운전과 사고 대응을 맡은 기술자

동료들이 무너진 계측실에서 그를 끌어냈지만, 그는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전 6시 프리피야티 병원에서 숨졌다.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원자력발전소의 계측·자동화 설비를 조정하고 시험하던 기술자였다. 체르노빌 4호기 시험에 참여하던 중 폭발로 척추와 갈비뼈가 부러지고 중화상과 방사선 화상을 입었으며, 동료들에게 구조되어 프리피야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는 사고 당일 숨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발전소의 기술 노동이 재난의 최전선에 놓였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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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코노토프 산업기술학교 졸업
  • 1970–1980산업·원자력 설비 분야 기술 업무
  • 1980–1984체르노빌 원전 계측·자동화 조정 및 시험 기술자
  • 1984–1986스몰렌스크아톰에네르고날라드카 소속 조정·시험 기술자
  • 1986체르노빌 4호기 시험 지원 중 사고로 사망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시모노프

Николай Сергеевич Симонов
이론가 러시아 러시아 1959– ○ 생존

소련 군산복합체의 기록자, 펜으로 VPK를 해부한 역사가

그는 이렇게 썼다: "소련 VPK의 역사는 전쟁과 전쟁 준비의 연속이었고, 바로 그것이 소련 경제 전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소련 군산복합체(VPK)의 형성과 작동을 처음 체계적으로 밝혀낸 러시아의 역사가·경제사가. 1996년 출간된 『1920~1950년대 소련의 군산복합체』는 이 분야의 기본 문헌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바버, 마크 해리슨과의 공동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키로프 농촌 출신으로 교사로 일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1988년 CPSU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서 연구를 이어갔으며, 대통령 행정실 자문과 스베르방크 금융 실무를 거치며 학문과 현실 사이를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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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키로프주에서 출생
  • 1981키로프 국립사범대학 역사·영어 전공 졸업
  • 1988모스크바 국립대학 역사학 박사 취득
  • 1988–1991CPSU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선임연구원
  • 1991–1997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러시아사 연구소 선임연구원
  • 1999대통령 행정아카데미서 역사학 국가박사(Dr. hab.) 취득
  • 1998–2000연방평의회 예산위 자문, 대통령 행정실 내부정책총국 고문
  • 2001–2010스베르방크 부국장 등 금융 분야 근무
  • 2011–2017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러시아사 연구소 선임연구원

미하일 코즐롭스키

Михаил Козловский
국가보안 기관 소련 러시아 ?–? ○ 자연사

안드로포프 시기 KGB 국경수비대를 지휘한 보안장교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이후 소련 국경수비대는 3년 만에 병력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코즐롭스키는 이 팽창기를 지휘했다.

소련 KGB에서 국경수비대 총국(GUPV)을 관할하며 유리 안드로포프 시기 국경 통제와 내부 단속 강화에 관여한 보안기관 간부이다. 브레즈네프 시기 KGB의 제도적 팽창 속에서 국경·내부 보안 체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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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1979KGB 부의장 겸 국경수비대 총국장
  • 1979–?KGB 제1부의장
  • ?–?KGB 고등학교장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슈코바

Валентина Владимировна Терешкова

직공 출신 첫 여성 우주인, '차이카'

발사대 앞에서: 「에이, 하늘! 모자 벗어!」 — 마야콥스키의 시구를 외치며, 1963년 6월 16일.

1963년 보스토크 6호로 세계 최초 여성 단독 우주비행. 직물 공장 여공 출신으로 71시간 49바퀴를 홀로 비행하며 프롤레타리아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된 '차이카'. 후에 러시아군 최초 여성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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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60타이어 공장·직물 공장 노동자, 야간학교·통신기술학교 졸업
  • 1959–61야로슬라블 비행클럽 낙하산 훈련 (90회)
  • 1962.3여성 우주비행사단 선발 (5인)
  • 1963.6.16–19보스토크 6호: 첫 여성 우주비행, 71시간 단독비행
  • 1966–89소비에트 최고회의 대의원, 간부회의 위원 (1974–89)
  • 1968–87소비에트 여성위원회 위원장
  • 1969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우등 졸업, 기술과학 후보·교수
  • 1971–90CPSU 중앙위원회 위원
  • 1987–92소비에트 해외우호문화교류협회연합 의장
  • 2011–현재통합러시아당 국가두마 의원
  • 1995/2025소장·중장 진급: 러시아군 최초 여성 장군

보리스 미하일로프

Борис Михайлов

보스호트 2호의 우주유영을 가능케 한 팽창식 에어록 볼가의 수석 설계자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발사 때 접혀 있던 볼가 에어록이 궤도에서 부풀어 오른 뒤 그 문을 열고 우주로 나갔다.

보리스 미하일로프는 모스크바 근교 토밀리노의 제918공장(훗날 NPO 즈베즈다)에서 수석 설계자로 일하며 1964년 중반, 단 9개월 만에 팽창식 에어록 '볼가'를 설계·제작·시험한 인물이다. 보스호트 우주선에 금속제 에어록을 탑재할 공간이 없었기에, 발사 시에는 접혀 있다가 궤도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의 유연 구조물 설계가 유일한 해법이었다.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바로 이 에어록을 통해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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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1965제918공장(즈베즈다) 수석 설계자, 팽창식 에어록 '볼가' 개발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

Свя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яксандраўна Алексіевіч
작가·예술가 벨라루스 벨라루스계 1948– ○ 생존

증언의 목소리로 소비에트 세기를 기록한 작가

“나는 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아 왔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작가이자 기자로, 러시아어로 전쟁과 사회적 격변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을 엮어 집단적 기억의 문학을 만들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아연 소년들》에서 공식 영웅담이 가린 여성과 병사의 경험을 드러냈고, 《체르노빌의 기도》에서는 1986년 재난 뒤 생존자와 유가족, ликвидатор들의 목소리로 기술 재난의 인간적 결과를 기록했다. 그녀의 작업은 사실의 기록과 문학적 구성 사이의 긴장을 감수하면서도 개인의 목소리를 역사 이해의 중심에 놓았으며,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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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1967학교 교사와 지역 신문 기자
  • 1972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저널리즘 학위
  • 1973–1976《농촌신문》 기자
  • 1976–1984잡지 《뇨만》 논픽션·수필 부문 책임자
  • 1985《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출간
  • 1989《아연 소년들》 출간
  • 1997《체르노빌의 기도》 출간
  • 2015노벨 문학상 수상

올레크 다닐로비치 칼루긴

Олег Данилович Калугин
국가보안 기관 소련 러시아 1934– → 망명 · 미국 시민

KGB 최연소 장군이자 최고위 망명 비판자

"나는 미국인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7개월을 이곳에서 보낸 지금, 공산주의 체제가 여러분의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 195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위장한 24세 KGB 장교가 《뉴스위크》에.

KGB 최연소 소장으로 대외방첩국(K국)을 이끌며 냉전기 대미 첩보전을 지휘했다. 1980년대 말 체제 개혁파로 전향하여 KGB의 부패를 공개 비판했고, 1991년 쿠데타에서 옐친을 지지한 뒤 미국에 망명해 회고록으로 기관 내부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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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1956KGB 외국어대학 (레닌그라드)
  • 1956–1958KGB 제101고등정보학교
  • 1958–1959컬럼비아 대학 풀브라이트 장학생 신분으로 작전 실습
  • 1960–1964KGB 뉴욕 레지덴투라 작전장교 (모스크바 라디오 기자 신분)
  • 1965–1970KGB 워싱턴 레지덴투라 부레지던트 겸 대행
  • 1971–1973제1총국 제2국(후일 K국) 부국장
  • 1973–1980KGB 제1총국 K국(대외방첩) 국장
  • 1980–1987KGB 레닌그라드국 제1부국장
  • 1990소련 최고회의 인민대표로 선출

이리나 바야노브나 솔로비요바

Ирина Баяновна Соловьёва

테레슈코바의 예비 우주비행사, 카마닌이 신체적 최고라 했지만 대중역할엔 내성적이었던 낙하산 국가대표

「우리는 해볼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비밀경찰로부터 우주비행사단 입단 제의를 받고, 약혼자와 함께 단골 카페에서 문 닫을 때까지 고민한 끝에.

우랄 공과대학을 졸업한 기계공학자이자 국가대표 낙하산 선수로, 1962년 소련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단 5인에 선발되었다. 1963년 보스토크 6호 비행에서 발렌티나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로 훈련받았으며, 니콜라이 카마닌은 그녀를 신체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했으나 대외 선전에 필요한 외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포노마료바와 함께 보스호트 계획 최초 여성 우주유영 임무를 준비했으나 계획 취소로 무산되었고, 1969년 여성 비행사단 해체 후 우주비행사훈련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심리학 후보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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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59우랄 공과대학 건설학부 졸업, 기계공학 전공
  • 1955–62국가대표 낙하산 선수, 스포츠 마스터(1959), 약 700회 강하
  • 1959–62우랄에네르고몬타주 설계국 엔지니어
  • 1962.3여성 우주비행사단 선발, 우주비행사 훈련 이수
  • 1963.5보스토크 6호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
  • 1964–67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졸업, 조종사-우주비행사-기사 자격
  • 1966포노마료바와 보스호트 여성 우주유영 임무 훈련 (취소)
  • 1969–91우주비행사훈련센터 연구원·선임연구원, 심리학 후보학위(1980), 대령 퇴역

즈지스와프 쿠로프스키

Zdzisław Kurowski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폴란드 폴란드인 1937– ○ 체제 관료로 활동

청년조직 출신의 당 관료

1980년 7월, 그는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와 함께 파업 중인 루블린으로 파견된 정부 대표단에 합류했다.

즈지스와프 쿠로프스키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청년조직에서 성장해 당·국가 기구의 중견 간부가 된 정치가였다. 그는 비아위스토크 지역 당 지도부와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농업·청년·경제 행정을 연결했다. 1980년 루블린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되자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와 함께 정부 대표단으로 파견되어 임금과 생활 조건을 둘러싼 요구를 협상했다. 이후에도 대외경제 관료로 일하며 인민공화국 체제의 관리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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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1956폴란드 청년동맹 활동가
  • 1957–1972농촌청년동맹 중앙위원장
  • 1969–1985폴란드 인민공화국 하원 의원
  • 1972–1975비아위스토크 주 당위원회 제1서기
  • 1975–1980PZPR 중앙위원회 서기국 성원
  • 1977–1980PZPR 중앙위원회 경공업·상업·소비부장
  • 1980PZPR 중앙위원회 조직부장
  • 1982–1989대외경제 관료, RWPG 및 무역부
사회주의권 개혁 지도자 폴란드 폴란드계 1935– ○ 자연사

당의 통제와 노동자 협상 사이에 선 개혁파

그는 파업 첫날 국가보안기관의 보고가 믿을 수 없다며 즉시 현장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했다.

타데우시 피슈바흐는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당료이자 외교관으로, 1975년부터 그단스크 당 제1서기를 지냈다. 1980년 8월 그는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반대하며 노동자 대표들과 초기 협상에 나섰고,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가 도착한 뒤에도 정부 측 협상에 관여했다. 그러나 그의 온건한 조정은 독립 노조를 통제하려는 당의 전략과 충돌했고, 계엄 이후 중앙 정치에서 밀려났다. 이후 의회 부의장과 핀란드·라트비아 주재 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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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입당
  • 1964–1968엘블롱크 지구당 위원회 서기
  • 1968–1971트체프 지구당 위원회 서기
  • 1971–1975그단스크 주 당 위원회 서기
  • 1975–1982그단스크 주 당 위원회 제1서기
  • 1976–1985폴란드 인민공화국 의회 의원
  • 1982–1986헬싱키 주재 폴란드 대사관 참사관
  • 2001–2005라트비아 주재 폴란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