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노동계급 해방의 가장 훌륭한 수단 중 하나다. 그러니 많이 읽기를 권한다.” — 레카바렌이 전국 노동자 모임에서 늘 되풀이한 말.
칠레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평생을 바친 조직가이자 이론가였다. 질산염 광산 노동자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민주당에 입당해 활동하다, 1912년 타협적 개량주의와 결별하고 칠레 사회주의노동자당(POS)을 창당했다. 수차례 투옥과 추방을 겪으면서도 노동자 신문을 창간·편집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계급의식을 고취했으며, 1922년 당을 코민테른에 가입시켜 칠레 공산당으로 전환시켰다. 1924년 당내 노선 갈등과 건강 악화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가 닦은 조직·교육·언론의 토대는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혁명 전통의 초석이 되었다.
고르바초프가 철수 의사를 굳힌 것은 스팅어 미사일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와 외교 덕분'이라고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단언했다.
코르도베스는 에콰도르의 외교관이자 유엔 사무차장으로, 1982년부터 6년간 데 쿠엘랴르 사무총장의 개인대표로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간 제네바 협상을 중재했다. 라울 프레비시와 함께 UNCTAD 창설에 참여했고, 유엔 내에서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까지 오르며 이란 인질 위기, 이란-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분쟁 등 굵직한 현안을 두루 다뤘다. 1988년 4월 제네바 합의 서명을 이끌어내 소련군 철수의 외교적 틀을 완성했으며, 이후 에콰도르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