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배경

칠레

3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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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인물

루이스 에밀리오 레카바렌

Luis Emilio Recabarren
공산주의 칠레 칠레 1876–1924 ✕ 자살

칠레 노동운동의 아버지이자 라틴아메리카 공산주의의 선구자

“독서는 노동계급 해방의 가장 훌륭한 수단 중 하나다. 그러니 많이 읽기를 권한다.” — 레카바렌이 전국 노동자 모임에서 늘 되풀이한 말.

칠레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평생을 바친 조직가이자 이론가였다. 질산염 광산 노동자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민주당에 입당해 활동하다, 1912년 타협적 개량주의와 결별하고 칠레 사회주의노동자당(POS)을 창당했다. 수차례 투옥과 추방을 겪으면서도 노동자 신문을 창간·편집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계급의식을 고취했으며, 1922년 당을 코민테른에 가입시켜 칠레 공산당으로 전환시켰다. 1924년 당내 노선 갈등과 건강 악화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가 닦은 조직·교육·언론의 토대는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혁명 전통의 초석이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4칠레 민주당 입당
  • 1906토코피야 지역구 하원의원 당선 (의석 거부됨)
  • 1908–1909아르헨티나·유럽 망명
  • 1912사회주의노동자당(POS) 창당, 《엘 데스페르타르》 창간
  • 1918아르헨티나 공산당 창당 참여, 초대 전국지도부 위원
  • 1921안토파가스타 지역구 하원의원 당선
  • 1922POS를 공산당(PCCh)으로 전환, 코민테른 제4차 대회 참석
  • 1924산티아고에서 권총 자살

살바도르 기예르모 아옌데

Salvador Guillermo Allende

선거로 집권해 '칠레식 사회주의'를 실험하다 군사 쿠데타로 쓰러진 마르크스주의 대통령

“나는 사임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나는 인민의 충성에 목숨으로 보답할 것이다.” — 마지막 라디오 연설, 라 모네다, 1973년 9월 11일

세계 최초로 선거로 집권한 마르크스주의 국가원수. 구리 국유화·농지개혁·사이버신 계획을 통해 평화적 '칠레식 사회주의'를 실험했으나,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2칠레대학교 의학부 졸업
  • 1933칠레 사회당 창당 참여 — 체포되어 6개월 수감
  • 1938–1942인민전선 정부 보건부 장관 — 빈민층에 최초 의료 접근권
  • 1945–1970상원의원 — 상원의장(1966–1969)
  • 1952, 1958, 1964인민행동전선(FRAP) 대선 후보 — 세 차례 낙선
  • 1970인민연합 후보로 대통령 당선(36.6%) — 10월 24일 취임
  • 1970–1973구리 국유화, 농지개혁, 사이버신 — '칠레식 사회주의' 실험
  • 1973.09.11군사 쿠데타 — 라 모네다에서 최후 라디오 연설 후 자결
유엔 에콰도르 칠레계 1935–2014 ○ 급사

6년의 제네바 왕복으로 소련군 철수를 틀 지운 에콰도르 출신 유엔 외교관

고르바초프가 철수 의사를 굳힌 것은 스팅어 미사일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와 외교 덕분'이라고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단언했다.

코르도베스는 에콰도르의 외교관이자 유엔 사무차장으로, 1982년부터 6년간 데 쿠엘랴르 사무총장의 개인대표로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간 제네바 협상을 중재했다. 라울 프레비시와 함께 UNCTAD 창설에 참여했고, 유엔 내에서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까지 오르며 이란 인질 위기, 이란-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분쟁 등 굵직한 현안을 두루 다뤘다. 1988년 4월 제네바 합의 서명을 이끌어내 소련군 철수의 외교적 틀을 완성했으며, 이후 에콰도르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5.11.03키토 출생
  • 1962칠레대학교 법학 학위 취득, 변호사
  • 1963유엔 입직, 라울 프레비시와 UNCTAD 창설 참여
  • 1978유엔 경제사회담당 사무차장보
  • 1981–1988유엔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 아프가니스탄 담당 사무총장 개인대표
  • 1988.04.14제네바 합의 서명 중재, 소련군 철수 틀 마련
  • 1988–1992에콰도르 외무장관
  • 2005–2007유엔 주재 에콰도르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