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
Critical Theory (Frankfurt School)
비판 이론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1937년 논문 「전통 이론과 비판 이론」에서 이름 붙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 이론이다. 사회적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 기술하는 ‘전통 이론’과 달리, 그 사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따져 지배와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상태’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베버의 합리화론을 결합했으며,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과 호네트의 인정 이론으로 이어졌다. 넓게는 페미니즘·탈식민 이론 등 해방을 지향하는 비판적 이론 전반을 뜻하기도 한다.
상세
왜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사회연구소의 이론은 처음에는 「유물론」이라 불렸다. ‘비판 이론’이라는 이름은 호르크하이머가 망명 중이던 1937년 《사회연구지》에 실은 논문 「전통 이론과 비판 이론」에서 처음 쓰였다. 이 논문이 나온 뒤 연구소 구성원 대부분이 이 이름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비판’은 일상어의 ‘비난’과 다르다. 철학에서 비판은 어떤 것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고 어디까지 타당한지를 따지는 일이다. 호르크하이머는 각주에서 이 ‘비판’이 칸트의 세 비판서보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가리킨다고 밝혔다. 『자본론』의 부제가 바로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독일어판 위키백과는 이 이름이 세 가지 일을 했다고 정리한다. 첫째, 실증주의적인 전통 이론과 맞섰다. 둘째, 정당 정치의 색이 짙은 ‘마르크스주의’라는 꼬리표를 피하게 해 주었다. 셋째, 칸트의 비판철학 전통과 이어졌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훗날 이 말이 ‘전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쓰였다고 회고했다. 레오 뢰벤탈은 비판 이론이 마르크스의 범주를 기계적으로 옮기지 않는 ‘발전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이며, 그래도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동기는 버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통 이론과 비판 이론」은 무엇을 대비했나?
호르크하이머가 말하는 ‘전통 이론’은 데카르트 이래의 근대 과학, 그리고 그것을 본뜬 사회과학 분과들이다. 실증주의는 관찰할 수 있는 사실만을 지식의 근거로 삼는 태도인데, 이런 사회과학은 사회적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 기술하고 설명하는 데 그친다. 호르크하이머가 보기에 그 ‘사실’은 자연이 준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것이고, 그 안에는 지배의 부당함이 숨어 있다. 그 형성 과정을 반성하지 않는 과학은 가치중립을 내세워도 결국 기존의 부당함을 굳히는 데 봉사한다는 것이다.
| 구분 | 전통 이론 | 비판 이론 |
|---|---|---|
| 사실을 보는 눈 | 사회적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 사실이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과정을 따진다 |
| 연구자의 자리 | 사회 밖에서 중립적으로 관찰한다고 여긴다 | 자신도 그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반성한다 |
| 이성의 범위 |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는 데 머문다 | 목적 자체가 이성적인지도 묻는다 |
| 지향 | 기존 질서 안의 설명과 예측 | 사람들의 자기결정이 늘어나는 사회 변혁 |
| 본보기 | 근대 자연과학, 실증주의 분과 학문 |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
비판적 이론가도 노동, 가치, 생산성 같은 범주를 쓴다. 다만 호르크하이머는 이 범주들이 지금 질서 안에서 실제로 통용된다는 것을 인정하되, 그 통용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거친 거짓’이라고 썼다. 지배적 범주를 비판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곧 그것을 고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이 바라는 목표도 분명했다. 호르크하이머는 비판 이론의 최고 정치적·도덕적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상태를 향한 노력
그는 상품 경제가 한때 인간의 힘을 키우고 개인을 해방했지만, 결국 발전을 가로막고 인류를 ‘새로운 야만’으로 몰아간다고 진단했다.
마르크스주의와는 어떤 관계인가?
호르크하이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학설이 사회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되지만’, 국가들의 내부 발전과 대외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더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판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새로 세우고 넓히려는 기획이었다.
가장 아픈 문제는 혁명의 주체였다. 처음에 이 이론은 노동운동을 변혁의 담당자로 보았다. 그러나 혁명이 실패하고 1933년 파시즘이 승리하자 그 전제가 무너졌다. 호르크하이머는 1937년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의 처지가 이 사회에서 올바른 인식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론은 점점 고립된 지식인의 몫이 되었다.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은 언젠가 누군가 주워 읽을 「병 속의 편지」에 자기 작업을 빗대기도 했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이를 두고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무오류한 주체 자리를 잃었지만 비판 이론은 여전히 그 해방을 위해 싸운다고 꼬집었다.
비판 이론은 마르크스의 방법에서 변증법과 이데올로기 비판을 물려받았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어떤 사회의 생각과 가치가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더해졌다. 하나는 사람들이 왜 자기 계급 이익에 어긋나는 권위주의 정치에 끌리는지 설명하기 위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 사회가 계산 가능성과 효율을 따라 조직된다는 막스 베버의 합리화론이다.
시기마다 어떻게 달라졌나?
| 단계 | 시기 | 핵심 물음과 작업 |
|---|---|---|
| 학제적 유물론 | 1930년대 | 철학과 경험 과학을 묶어 경제·심리·문화의 연관을 밝힌다. 『권위와 가족에 관한 연구』(1936) |
| 계몽 비판 | 1940년대 |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도구적 이성 비판으로 무게가 옮겨 간다. 『계몽의 변증법』(1944/1947) |
| 부정적 진단 | 1950~1960년대 |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관리되는 사회와 문화산업이 진단의 중심이 된다 |
| 의사소통 전환 | 1960년대~ | 하버마스는 이성 회의를 버리고 ‘의사소통적 이성’과 민주적 공론장에서 규범의 근거를 찾는다 |
| 인정 이론 등 | 1990년대~ | 호네트는 헤겔의 ‘인정 투쟁’을 되살리고, 프레이저는 분배와 인정을 함께 묻는다 |
1940년대의 전환에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무게가 줄었다. 대신 자연을 지배하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 앞에 섰다. 독일어판 위키백과는 이 ‘고전적’ 비판 이론이 가까운 미래의 변혁을 기대하지 않는 부정적 역사철학으로 기울었다고 정리한다. 하버마스가 연 ‘젊은’ 비판 이론은 사회 비판이라는 동기는 지켰지만, 철저한 이성 회의와 비관적 역사관은 거부했다.
‘비판 이론’이라는 말은 몇 가지 뜻으로 쓰이나?
이 말은 쓰는 사람에 따라 넓이가 다르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은 세 가지 쓰임을 구별한다.
| 쓰임 | 가리키는 것 | 예 |
|---|---|---|
| 좁은 뜻 | 프랑크푸르트학파 여러 세대의 작업. 영어에서는 흔히 대문자로 쓴다(Critical Theory) |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호네트 |
| 넓은 뜻 | 여러 사회운동의 해방 목표와 손잡은 비판적 이론들 | 페미니즘 이론, 비판적 인종 이론, 퀴어 이론, 탈식민 이론 |
| 셋째 뜻 | 정신분석·후기구조주의 계열 이론을 통틀어 부르는 말. 영어로 그냥 ‘Theory’라고도 한다 |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
이 밖에 영어권에는 ‘비판 지리학’, ‘비판 범죄학’처럼 분과 이름 앞에 ‘비판’을 붙인 흐름도 있다. 이 항목은 좁은 뜻의 비판 이론을 다룬다. 다른 글에서 ‘탈식민 비판 이론’처럼 넓은 뜻으로 쓰인 경우에는 문맥을 보고 구별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비판했나?
| 비판자 | 쟁점 |
|---|---|
| 죄르지 루카치 | 이론이 정치 실천과 혁명 운동에서 떨어져 나왔다. ‘심연 그랜드 호텔’의 테라스에서 세상의 비참을 구경한다고 비꼬았다 |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 1930년대 비판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구하려는 일관성 없는 시도다. ‘프롤레타리아 없는 루카치식 마르크스주의’다 |
| 레오 코플러 | 지식인의 거리 두기와 형체 없는 거부의 원칙 때문에 사회 변혁의 동기가 슬그머니 밀려났다. 다만 대중화, 물화, 소외 같은 새 현상을 밝힌 공로는 인정했다 |
| 귄터 로르모저, 헤르만 뤼베 | 보수 쪽 비판. 아도르노가 이성을 파괴하는 데 가담했고, 학파의 이데올로기론은 현실을 모른다 |
| 위르겐 하버마스 | 내부 비판. 『계몽의 변증법』은 이성의 타락을 설명하려면 남겨 두어야 할 이성적 기준마저 의심했다 |
하버마스는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이 ‘이 회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근거를 따져 보는 대신 거침없는 이성 회의에 몸을 맡겼다’고 평했다. 그는 계몽이 남긴 이성적 성과로 법·도덕·과학의 분화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꼽았다. 이후 비판 이론의 큰 흐름은 이 비판을 받아들여, 비판의 규범적 근거를 어디서 찾을지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