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udomarxismus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Freudo-Marxism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하려 한 1920년대 이후의 사회 이론. 빌헬름 라이히가 가장 대표적이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성 억압이 대중적 신경증과 권위주의를 낳으며 성 해방이 사회 해방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당시에는 정신분석계와 공산주의 운동 어디서도 자리 잡지 못했으나, 에리히 프롬과 마르쿠제를 거쳐 1960년대 신좌파와 68운동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상세

시작은 1920년대 독일과 소련이었다. 소련에서는 교육학자 아론 잘킨트가 마르크스주의적 정신분석의 대표 주창자였고, 철학자 유리네츠와 프로이트파 분석가 지크프리트 베른펠트가 이 주제를 논했으며, 바흐친 서클의 언어학자 발렌틴 볼로시노프는 1927년 『프로이트주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냈다. 1929년 독일·러시아 2개 국어 공산주의 이론지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에 라이히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정신분석」이 실렸다. 라이히는 순수한 임상 정신분석에는 마르크스주의와 모순되는 것이 없다고 보았지만, 1920년대 프로이트가 죽음 충동론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문화철학을 키워 가는 데는 맞섰다.

그는 정신분석이 근본적 사회 비판을 품고 있으며, 오토 그로스처럼 사회주의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었고, 이것이 프로이트와의 갈등을 키웠다. 오토 페니헬, 베른펠트,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 운동 안에서 용인되었으나 라이히는 1934년 프로이트의 주도로 공식 이유 없이 국제정신분석협회에서 쫓겨났다. 라이히식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가정은 사회가 대중적 신경증을 앓으며, 개인 신경증의 원인은 자본주의·노동·권력에 의한 사회적 억압이고 특히 사회 질서를 지키려는 규범과 도덕을 통해 성의 영역에서 드러나며, 개인의 성 해방이 혁명적 사회 해방의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1934년 라이히의 《정치심리학·성경제학 잡지》에 실린 페니헬의 「미래의 변증법적 유물론적 심리학의 핵심으로서의 정신분석」이 이 흐름의 끝으로 꼽힌다.

라이히 주변 베를린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가 모임에 있던 프롬은 이 사상을 망명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가져가 1936년 『권위와 가족 연구』의 사회심리 부분을 썼고, 카렌 호나이와 함께 리비도보다 사회적 요인을 앞세웠다. 허버트 마르쿠제는 1955년 『에로스와 문명』에서 프로이트의 후기 죽음 충동론을 바탕으로 비억압적 사회를 그리며 라이히를 「원시적」이라 했다. 라이히가 1940년대에 이 시기 저술을 고쳐 쓴 탓에 그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는 1968년 무렵 무단 복간본으로 알려졌다. 68운동에서 라이히의 이름은 파리와 베를린의 담벼락에 쓰였고 학생들은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경찰에게 던졌으며, 낭테르 대학 학생들은 기숙사의 남녀 분리를 없애게 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케이트 밀릿은 이를 페미니즘으로 이었다. 그 뒤 프란츠 파농, 루이 알튀세르, 라캉학파, 들뢰즈와 가타리 등도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를 엮었고, 푸코는 국가의 성 억압 개념을 생명 권력의 관점에서 다시 짰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