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문서: 민족·식민지 문제 테제와 가입 조건 토론 (1920)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마나벤드라 나트 로이,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아르투어 크리스피엔, 자친토 메노티 세라티, 카를 카우츠키, 로베르트 그림, 필리포 투라티, 램지 맥도널드, 카를 라데크,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필리프 샤이데만,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예브게니 바르가, 빌리 뮌첸베르크, 안톤 판네쿠크, 빅토르 체르노프, 안토니오 그람시 용어코민테른, 제2인터내셔널, 민족해방운동, 민족자결권, 프롤레타리아 독재,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USPD), 개량주의 사건코민테른의 창설
민족 문제와 식민지 문제에 관한 테제
1.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는 그 본성상 평등 일반, 그 가운데 민족 평등의 문제를 추상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고유하다. 인간 개인 일반의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소유자와 프롤레타리아,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형식적 또는 법률적 평등을 선포하고, 그로써 피억압 계급을 가장 큰 기만에 빠뜨린다. 그 자체가 상품 생산 관계의 반영인 평등이라는 관념을, 부르주아지는 인간 개인들의 이른바 절대적 평등을 구실로 계급 철폐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로 바꾼다. 평등 요구의 실제 의미는 오직 계급 철폐의 요구에 있다.
2.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싸우고 그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다는 기본 과제에 맞게, 부르주아지의 멍에를 벗어던지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공산당은 민족 문제에서도 추상적이거나 형식적인 원칙이 아니라 다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첫째,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무엇보다 경제적 상황을 정확히 헤아리는 것. 둘째, 피억압 계급, 근로자, 피착취자의 이익을, 실은 지배 계급의 이익을 뜻하는 인민 이익 일반이라는 일반 개념으로부터 뚜렷이 가려내는 것. 셋째, 그와 똑같이 뚜렷하게 억압받고 종속되고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한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온전한 권리를 가진 민족과 구별하는 것. 이는 금융자본과 제국주의 시대에 고유한, 한 줌의 가장 부유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지구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식민지적·금융적으로 예속시키는 현실을 흐려 버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거짓에 맞서는 것이다.
3. 1914~1918년의 제국주의 전쟁은 모든 민족과 전 세계 피억압 계급 앞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문구의 거짓됨을 특히 똑똑히 드러냈다. 양쪽 모두 인민의 해방과 민족자결권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벌인 이 전쟁은, 한편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와 부쿠레슈티 강화로, 다른 한편으로 베르사유 강화와 생제르맹 강화로, 승리한 부르주아지가 “민족” 국경마저 자기 경제적 이익에 따라 얼마나 거리낌 없이 정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부르주아지에게는 “민족” 국경도 흥정거리일 뿐이다. 이른바 「국제연맹」은 이 전쟁의 승자들이 서로의 전리품을 보장해 주는 보험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 통일을 되찾으려는 지향, “나라의 할양된 부분과 다시 합치려는” 지향은 부르주아지의 의도로 보면 패자들이 새 전쟁을 위해 힘을 모으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찢긴 민족의 재통합은 어느 정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참된 민족적 자유와 통일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투쟁과 부르주아지의 타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국제연맹과 제국주의 협상국의 전후 정책 전체는 이 진실을 더욱 똑똑히, 날카롭게 드러내며, 선진국 프롤레타리아트와 식민지·종속국의 모든 근로 대중의 혁명적 투쟁을 곳곳에서 강화하고, 자본주의 아래서도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평등할 수 있다는 소시민적 민족주의 환상의 붕괴를 앞당긴다.
4. 위에서 말한 기본 명제로부터, 민족 문제와 식민지 문제에 관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책 전체에서 중심에 놓여야 할 것은 지주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공동의 혁명적 투쟁을 위해 모든 민족과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와 근로 대중을 서로 가깝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오직 그러한 결합만이 자본주의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며, 그 승리 없이는 민족 억압과 불평등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5. 세계 정치 정세는 이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의제에 올려놓았고, 세계 정치의 모든 사건은 불가피하게 하나의 중심점, 곧 소비에트 러시아 공화국에 맞선 세계 부르주아지의 투쟁으로 모인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한편으로 모든 나라 선진 노동자의 소비에트 운동을,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와 피억압 민족의 모든 민족해방운동을 불가피하게 자기 주위로 모아야 한다. 이들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의 동맹과 세계 제국주의에 대한 소비에트 권력의 승리 말고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6. 그러므로 지금은 여러 민족 근로자들의 결합을 그저 인정하거나 선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모든 민족해방운동과 식민지해방운동이 소비에트 러시아와 가장 긴밀하게 동맹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 동맹의 형태는 각 나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공산주의 운동이, 또는 후진국이나 후진 민족 사이의 혁명적 해방운동이 어느 정도 발전했느냐에 따라 정해야 한다.
7. 연방은 여러 민족 근로자의 완전한 통일로 가는 과도적 형태다. 연방은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들(지난날의 헝가리, 핀란드, 라트비아,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의 관계에서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안에서 예전에 국가로서의 존재도 자치도 갖지 못했던 민족들(예컨대 1919년과 1920년에 만들어진 바시키르 자치공화국과 타타르 자치공화국)에 대해서도 이미 실제로 그 쓸모를 드러냈다.
8. 이 점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과제는 소비에트 체제와 소비에트 운동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이 새로운 연방들을 더 발전시키는 동시에, 연구하고 경험으로 검증하는 데 있다. 연방을 완전한 통일로 가는 과도적 형태로 인정하면서, 점점 더 긴밀한 연방적 동맹을 지향해야 한다. 이때 염두에 둘 것은, 첫째, 군사적으로 비할 수 없이 강력한 전 세계 제국주의 열강에 둘러싸인 소비에트 공화국들은 서로 가장 긴밀하게 동맹하지 않고는 존립을 지켜 낼 수 없다는 것, 둘째,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긴밀한 경제적 동맹이 필요하며, 그것 없이는 제국주의가 파괴한 생산력의 복구와 발전도, 근로자의 복지 보장도 실현될 수 없다는 것, 셋째, 모든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공동 계획에 따라 조절하는 단일한 세계 경제를 하나의 전체로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향은 자본주의 아래서 이미 아주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사회주의 아래서 반드시 더 발전하고 완전히 완성되어야 한다.
9. 국가 내부 관계의 영역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민족 정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머무는, 앙상하고 형식적이며 순전히 선언적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의무도 지우지 않는 민족 평등의 인정에 그칠 수 없다. 그들이 스스로를 공공연히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라고 인정하든,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자들처럼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을 뒤집어쓰든 마찬가지다.
공산당은 의회 연단에서든 그 밖에서든 모든 선전과 선동에서,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그 “민주적” 헌법과 달리 민족 평등과 소수민족 권리 보장을 끊임없이 짓밟는 것을 꾸준히 폭로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첫째, 오직 소비에트 체제만이 먼저 프롤레타리아를, 다음으로 근로자 대중 전체를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속에 결집함으로써 실제로 민족 평등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고, 둘째, 모든 공산당이 종속되거나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한 민족(예컨대 아일랜드, 미국의 흑인 등) 안의, 그리고 식민지의 혁명운동을 직접 도와야 한다.
이 마지막의, 특히 중요한 조건이 없으면 종속 민족과 식민지의 억압에 맞서는 투쟁도, 그들이 국가로서 분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도 제2인터내셔널 정당들에게서 보듯 거짓 간판으로 남는다.
10. 국제주의를 말로만 인정하고 실제로는 모든 선전과 선동과 실천 활동에서 그것을 소시민적 민족주의와 평화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제2인터내셔널의 정당들에서뿐 아니라 그 인터내셔널을 떠난 정당들에서도, 심지어 지금 스스로 공산당이라 부르는 정당들에서도 드물지 않게 보이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이 해악과의, 가장 뿌리 깊은 소부르주아적 민족 편견(인종 증오, 민족 박해, 반유대주의처럼 온갖 형태로 나타나는)과의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민족적 독재(곧 한 나라에만 존재하고 세계 정치를 좌우할 수 없는 독재)에서 국제적 독재(곧 적어도 몇몇 선진국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세계 정치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재)로 바꾸는 과제가 절실해질수록 그만큼 더 앞자리에 놓인다. 소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민족 평등의 인정만을 국제주의라고 부르며(그런 인정이 순전히 말뿐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민족 이기주의는 손대지 않은 채 남겨 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첫째, 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이익을 세계적 규모의 투쟁의 이익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하고, 둘째,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이룬 민족이 국제 자본의 타도를 위해 가장 큰 민족적 희생도 감수할 능력과 각오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미 완전히 자본주의적이고,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인 노동자 정당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국제주의의 개념과 정책을 기회주의적으로, 소시민적 평화주의로 왜곡하는 것과의 투쟁이 첫째가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11. 봉건적 관계나 가부장적 관계, 가부장적 농민 관계가 우세한 더 뒤떨어진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는 특히 다음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 모든 공산당은 이들 나라의 혁명적 해방운동을 실제 행동으로 도와야 하며, 지원의 형태는 그 나라에 공산당이 있는 곳에서는 그 당과 협의해야 한다. 가장 적극적으로 도울 의무는 무엇보다 먼저, 그 후진 민족이 식민지적으로 또는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있다.
나) 성직자, 기독교 선교단, 그 밖의 비슷한 분자들의 반동적이고 중세적인 영향과 싸워야 한다.
다) 범이슬람주의, 범아시아 운동, 그리고 유럽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해방 투쟁을 터키와 일본 제국주의, 귀족, 대지주, 성직자 등의 힘을 키우는 일과 결합하려는 비슷한 흐름들과 싸워야 한다.
라) 후진국에서 지주에 맞서, 대토지 소유에 맞서, 봉건제의 온갖 현상이나 잔재에 맞서 일어나는 농민운동을 특별히 지원하는 것이 특히 필요하다. 농민운동에 될 수 있는 한 혁명적인 성격을 부여하도록 애써야 하며, 가능한 곳에서는 농민과 모든 피착취자를 소비에트로 조직해, 서유럽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방의, 식민지의, 후진국 일반의 농민 혁명운동이 될 수 있는 한 긴밀하게 동맹하도록 해야 한다.
마) 후진국에서 진정으로 공산주의적이지 않은 혁명적 해방 흐름을 공산주의의 색깔로 덧칠하는 것과 단호히 싸워야 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모든 후진국에서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공산주의적인 미래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요소들이 결집되고, 자기들의 특별한 과제, 곧 자기 민족 내부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과 싸우는 과제를 의식하도록 교육받는다는 조건에서만 식민지와 후진국의 혁명운동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식민지와 후진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일시적 협정을, 심지어 동맹을 맺어야 하지만, 그것과 합쳐져서는 안 되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무리 맹아적인 형태에 있더라도 그 독자성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
바) 제국주의 열강이 피억압국의 특권 계급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실은 경제적·금융적·군사적으로 자기들에게 완전히 종속된 국가를 생겨나게 하는 체계적 기만을, 모든 나라와 민족, 특히 후진국과 후진 민족의 가장 넓은 근로 대중 사이에서 꾸준히 설명하고 폭로해야 한다. 협상국 제국주의와 해당 민족 부르주아지가 힘을 합쳐 피억압 민족의 근로 대중을 속인 뚜렷한 예로 시온주의자들의 팔레스타인 사업, 그리고 시온주의 일반을 들 수 있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근로 유대인이 보잘것없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근로 주민을 사실상 영국의 착취에 제물로 내준다. 오늘의 국제 정세에서 종속되고 약한 민족에게는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동맹 말고는 구원이 없다.
12.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와 약소 민족을 수백 년 동안 억압한 결과, 피억압국의 근로 대중에게는 억압 민족 일반에 대한, 그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까지 원한뿐 아니라 불신도 남았다. 1914~1919년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식 지도자 대다수가 사회주의를 비열하게 배반하고, 사회배외주의자들이 “조국 방위”를 내세워 식민지를 억압하고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를 약탈할 “자기” 부르주아지의 “권리”를 지켜 준 일은, 이 지극히 정당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불신과 민족 편견은 선진국에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뿌리 뽑히고 후진국 경제생활의 토대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뀐 뒤에야 사라질 수 있으므로, 이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의 의식 있는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장 오래 억압받아 온 나라와 민족의 민족 감정의 잔재를 특별히 조심스럽게, 특별히 주의 깊게 대할 의무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 불신과 편견을 더 빨리 없애기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할 의무가 있다. 먼저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음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의 근로 대중 전체가 자발적으로 동맹과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승리의 사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없다.
민족 문제와 식민지 문제에 관한 보충 테제
(1)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 예컨대 인도와 중국 등의 혁명운동과 맺는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은 제3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세계 혁명의 역사는 이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될 지점에 이르렀다. 유럽 대전과 그 결과는, 중앙집중화된 세계 자본주의의 결과로 유럽 바깥의 피지배국 대중이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떼어 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예컨대 전쟁 동안 식민지 군대와 거대한 노동자 부대가 전선으로 보내진 일 등).
(2) 유럽 자본주의가 주된 힘을 끌어내는 원천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 소유와 종속국에 있다.
식민지의 광대한 시장과 착취지를 장악하지 못하면 유럽의 자본주의 열강은 잠시도 존립을 유지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아성인 영국은 한 세기도 더 전부터 과잉생산에 시달려 왔다. 잉여 생산물을 팔고 끊임없이 커 가는 공업에 원료를 대기 위해 얻은 광대한 식민지 소유가 아니었다면, 영국의 자본주의 구조는 오래전에 제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을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억 주민을 노예로 삼음으로써 영국 제국주의는 지금까지 영국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의 지배 아래 붙잡아 두는 데 성공하고 있다.
(3) 식민지에서 거두는 초과이윤은 현대 자본주의의 버팀목이며, 자본주의가 이 초과이윤의 원천을 빼앗기지 않는 한 유럽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의 인간 노동과 천연자원을 넓고도 깊게 착취할 수 있는 덕분에,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지금의 파산 상태에서 회복하려 애쓰고 있고, 그 시도는 성과가 없지 않다. 식민지 대중을 착취함으로써 유럽 제국주의는 본국의 노동귀족에게 양보에 양보를 거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럽 제국주의는 한편으로 피지배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산물을 경쟁에 끌어들여 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수준을 낮추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에서 막대한 초과이윤을 계속 거두는 한 본국의 잉여가치 전체를 희생하는 데까지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4) 식민 제국의 해체는 본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함께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을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활동 범위를 넓혀야 한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정치적·경제적으로 피지배 상태에 있는 나라들에서 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활동하는 혁명 세력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세계 혁명의 최종 성공을 보장하려면 이 두 세력이 서로 맞물려야 한다.
(5)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세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집중된 의지다. 그 사명은 자본주의 질서를 뒤엎고 공산주의를 세우기 위해 전 세계 노동계급을 조직하는 것이다. 제3인터내셔널은 세계 모든 나라의 혁명 세력을 결합하는 과제를 떠맡아야 하는 전투 단체다.
부르주아 문화에 젖은 한 무리의 정치가들에게 지배되었던 제2인터내셔널은 식민지 문제의 중요성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에게 세계는 유럽 바깥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의 혁명운동을 유럽 밖 나라들의 혁명운동과 맞물려야 할 필요를 보지 못했다. 식민지의 혁명운동에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기는커녕, 제2인터내셔널의 구성원들 스스로가 제국주의자가 되었다.
(6) 동방 민족들에게 강요된 외국 제국주의는 그들이 유럽과 미국의 동료들과 나란히 사회적·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식민지의 공업 발전을 막는 제국주의 정책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최근까지 그곳에 생겨날 수 없었다. 정교한 수공업은 제국주의 나라들의 집중된 공업 생산물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파괴되었고, 그 결과 인구의 다수는 외국으로 수출할 곡물, 사료, 원료를 생산하러 땅으로 내몰렸다. 다른 한편으로 토지가 대지주, 금융자본가, 국가의 손에 빠르게 집중되어 거대한 무토지 농민층이 생겨났다. 인구의 대다수는 문맹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 정책의 결과, 모든 피지배 민족에 잠재된 반항 정신은 교육받은 소수의 중간계급을 통해서만 표현되었다.
외국의 지배는 사회적 힘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그러므로 그것을 타도하는 것이 식민지 혁명의 첫걸음이다. 식민지에서 외국 지배를 타도하도록 돕는 것은 토착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숨죽이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7) 종속국에는 날마다 서로 더 멀어지는 뚜렷이 다른 두 운동이 있다. 하나는 부르주아 질서 아래서의 정치적 독립을 강령으로 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민족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온갖 착취로부터 해방되려는, 무지하고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대중 행동이다. 앞의 운동은 뒤의 운동을 통제하려 하고 흔히 어느 정도 성공하지만,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관련된 정당들은 그러한 통제에 맞서 싸우고 식민지 노동 대중의 계급의식을 키우도록 도와야 한다. 식민지 혁명의 첫걸음인 외국 자본주의의 타도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혁명 분자들의 협력이 쓸모 있다.
그러나 가장 앞서는 필수적 과제는 농민과 노동자를 조직해 혁명과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으로 이끌 공산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후진국의 대중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치지 않고,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계급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끎을 받아 공산주의에 이를 수 있다.
(8) 식민지 해방운동의 실제 힘은 더 이상 부르주아 민주주의 민족주의자들의 좁은 범위에 갇혀 있지 않다. 대부분의 식민지에는 노동 대중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애쓰는 조직된 혁명 정당이 이미 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식민지 혁명운동의 관계는 이들 정당이나 그룹을 매개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노동계급의 전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날 그리 크지 않지만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며, 대중은 그들을 따라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러 제국주의 나라의 공산당은 식민지의 이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손잡고 일해야 하며, 그들을 통해 혁명운동 일반에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주어야 한다.
(9) 식민지 혁명은 첫 단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도권이 공산주의 전위의 손에 있다면, 혁명적 대중은 길을 잃지 않고 혁명적 경험이 발전하는 잇따른 시기들을 거쳐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실제로 동방의 많은 나라에서 농업 문제를 순수한 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풀려는 것은 대단히 잘못일 것이다. 첫 단계에서 식민지 혁명은 토지 분배 등 많은 소부르주아적 개혁 조항을 담은 강령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혁명의 지도권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정당들은 소비에트 사상을 힘차고 체계적으로 선전하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농민과 노동자의 소비에트를 조직해야 한다. 이 소비에트들은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질서를 최종적으로 뒤엎기 위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소비에트 공화국들과 협력할 것이다.
가입 조건 토론에서
지노비예프: 가입 조건에 관한 보고 (7월 29일 오전 회의)
[…] 지노비예프: 이제 이 테제들의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는 79쪽에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일정한 상황에서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제2인터내셔널의 이데올로기를 아직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한, 동요하고 어중간함이 특징인 분자들에 의해 희석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위원회는 이것을 고쳐 여기서 훨씬 단호하게 말하기로 했습니다. “일정한 상황에서”라고 하지 않고 “지금 공산주의가 희석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하기로 했고, 그것은 잘한 일입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바로 지금, 얼마 전까지 제2인터내셔널에 속했다가 이제 대중의 압력 아래 우리에게 오는, 어쩔 수 없어서 우리에게 오는 정당들에 의해 희석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설령 원한다 해도 소부르주아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옛 아담을 그렇게 쉽게 벗어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창립대회를 열었을 때도 여러 위험이 우리를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희석될 위험, 너무 잡다한 분자들을 받아들여야 할 위험은 그때는 없었습니다. 15개월 전 우리는 아직 작은 그룹이었고, 사람들은 “당신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전체가 의자 열 개에 다 앉을 수 있다, 아무 영향력도 없다”고 비웃으려 했습니다. 옛 큰 정당들은 제2인터내셔널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옛 정당들이 이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들어오려 합니다. 노동자 대중이 공산주의로 발전한 만큼,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옛 짐 보따리를 통째로, 다시 말해 전쟁 중에도 전쟁 뒤에도 공산주의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 온 옛 지도부를 데리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19년 3월 창립될 때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는 아직 선전 단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존재한 한 해 내내 그대로였습니다. 유럽이 겪은 끔찍하고 파괴적인 전쟁 뒤에 노동자들이 길을 찾고 있는 순간에 국제적 규모의 선전 단체가 된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야겠습니다. 그때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하려는, 크게 조직된 선전 단체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크고 다른 무엇이 되려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전 단체가 아니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 조직이 되려 합니다. 제2차 대회는 이 점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선전할 뿐 아니라 실행에 옮기고, 그 일을 위해 국제 조직을 만들려는 전투 조직으로 우리 자신을 조직하려 합니다.
[…] 얼마 전까지 제2인터내셔널에 속했던 많은 지도적 동지들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속해도 별다른 의무를 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베르너 타그바흐트」(로베르트 그림의 기관지)에서 그림의 글이 실린 오려 낸 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제2인터내셔널과 그 집행부는 우편함일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아주 옳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필자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무엇을 제안합니까? 그렇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여러 나라를 위한 “큰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곧 정보 기관을 만들도록 힘써야 하고 “의회에서 동시에 행동하는” 것을 조직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자, 보십시오. 결국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좀 더 깊고 커지겠지만, 그래도 우편함일 뿐입니다.
정보 기관은 필요합니다.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정보 기관은 아주 형편없으니 더 잘 조직해야 합니다. 의회 활동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나서서, 예컨대 국제연맹을 강도 집단이라고 낙인찍거나 개량주의자들에 맞서 동시에 동의안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적 규모의 전투 조직과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자금 지원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림과 그 동조자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근본적으로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곧 더 크고 더 잘 갖춰진, 붉은 칠을 한 우편함입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그런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또 프랑스 동지들의 「르뷔」에서 여러 “좌파” 개량주의자의 발언, 예컨대 클라우디오 트레베스의 발언을 읽었습니다. 트레베스는 곧바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들어가는 데 찬성하지만, 얽매일 필요가 없고 개별 나라에 정치적 구호를 내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입니다. 그 뜻은 곧바로 들어가되 얽매이지 않고,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계속할 수 있는 “자율”을 갖고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이른바 사회주의자” 모딜리아니 씨입니다. 그는 지금 형식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구성원이지만 우리에게 동지가 아닙니다. 그는 얼마 전 파리에 가서 롱게에게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들어가라고 설득하면서 이렇게 이유를 댔습니다. 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무도 지우지 않는다. 두 주에 한 번 집행부에 엽서 한 장만 보내면 된다. 그게 전부다. 왜 그걸 하지 않겠는가?
모딜리아니의 기회주의적 냉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서 모딜리아니의 전부를 알아볼 것입니다. 개량주의 진영의 이 양반들은 여관에 들르듯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들어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지나온 길 전체, 짧지만 뜻깊은 열다섯 달은, 진지한 정치가라면 누구에게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는 들어와서 하고 싶은 대로 계속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행동의 인터내셔널을 세우려 합니다. 우리는 카우츠키처럼 인터내셔널이 “평화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인터내셔널은 평화 때에도, 봉기 중에도, 봉기 전과 후에도 투쟁의 도구여야 하며, 자기 목표를 의식하고 그 목표를 위해 싸우려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부분의 집결점이자 전투 조직이어야 합니다.
[…] 무엇보다 우리는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 헝가리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아주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위원회에서 가입 문제를 논의할 때 몇몇 헝가리 동지가 말했습니다. 제2인터내셔널의 몇몇 정당이 지금 우리 조건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그랬던 것만큼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헝가리 당은 스스로를 “사회주의-공산주의” 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름을 둘러싼 다툼으로 보였습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싸우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등을 찌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행부는 약점을 보여 두 당의 합당에 동의했습니다. 당이 어떻게 불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문제였음이 드러났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불행히도 옛 사회민주주의자의 대부분을 제집에 받아들였고, 이 양반들이 결정적 순간에 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운명을 어쩌면 50퍼센트는 결정했습니다. […] 헝가리와 전 세계 노동계급은 이 교훈에 충분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개량주의에 새끼손가락을 내주면 손 전체를, 나중에는 머리 전체를 가져가고, 끝내는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한 희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명확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한 달 만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숱한 투쟁 끝에, 될 수 있는 한 중앙집중화되고 분명하고 확고한 전술을 가진 조직을 통해 얻어집니다. 엽서 한 장으로 우리를 달래려는 양반들은 들어오기도 전에 문밖으로 내보낼 것입니다. […]
크리스피엔 (7월 29일 저녁 회의)
크리스피엔: 동지 여러분, 우리가 왜 모스크바에 와 있고 여기서 무엇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짧게 답하고자 합니다. 다만 이 물음이 제게는 좀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말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물론 도시를 구경하러 모스크바에 온 것이 아닙니다. 집행위원회에 아주 공식적으로 알렸듯이, 우리는 집행위원회와 주고받은 서신 속에서 받은 초청에 따라, 우리 당 전당대회의 결정에 맞게 이곳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우리 당의 합류에 관해 협상하러 왔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왜 협상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제 발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당에 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여러 발언을 들으면서, 외국 동지들이 독일 사정 일반에 대해서도, 당의 사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도 전쟁이 터지자 깨끗이 손을 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처음부터 흔들림 없이 머뭇거림 없이, 옛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곧바로 옛 당과 전쟁에 맞서 전선을 친 동지들이 있었다는 것은 덜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항의나 결의만이 아니라 4년의 전쟁 동안 아주 힘든 실천 활동으로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수십 년 동안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앞선 부분을 사로잡아 온 거대한 당, 옛 사회민주당에는 당원이 100만 명, 노동조합에는 조합원이 250만 명 있었습니다. 거기에 전쟁 열기에 사로잡힌 무관심한 노동자의 큰 무리, 군사 독재, 전쟁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해진 혹독한 박해를 떠올리시면, 그런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깃발을 높이 든다는 것이 무엇을 뜻했고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작은 무리였고, 그들은 불법 문서와 스파르타쿠스 서한을 퍼뜨려서… (푹스의 외침: 누가요?) 우리도 거기 있었습니다. 저도 예컨대 거기 함께했다는 것을 동지들이 확인해 줄 것입니다. (발허의 외침: 그때는 당신이 아직 노동공동체를 지지하지도 않았지요!) 저는 지금 전쟁 초기를 말하고 있고, 제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당신이 부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발허가 수긍한다.) 우리는 전쟁 중에도 전쟁 반대 대중 행동을 벌였습니다. 대중만 희생하고 피를 흘린 것이 아니라, 여기 여러분 사이에 앉아 있는 “지독한 사기꾼들”, “나쁜 놈들”, 지도자들도 대중 행동에 함께했고, 자본주의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누구에게나 내리는 그 잘 알려진 형벌로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와 똑같이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전쟁에 맞서 싸운 이 작은 무리의 독일 사회민주주의자 주위로 점점 더 많은 반대파가 모여들었고, 그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전쟁 일반과 조국 방위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로 전쟁에 반대한 분자들도 반대파에 들어온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한 일이며, 이 힘든 투쟁 속에서 우리에게는 큰 계몽 집회를 열어 노동자들을 바른길로 이끌 시간도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회의조차 열 수 없었습니다. 박해를 받았고 지하에서 일해야 했으며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의회에서는 처음에 당의 규율에 따랐던 동지들도 전쟁 중에 이미 서면으로 계급투쟁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공공연히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푹스: 당신들은 리프크네히트에 반대했소. 디트만: 그건 내가 반박하겠소.) 의회에 있었던 디트만 동지가 그 점에 대해서는 자기가 답하겠다고 외칩니다.
전쟁이 노동자와 병사의 봉기로 끝났을 때,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는 갑자기 거대한 과제 앞에 섰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과제를 사회주의적 의미에서 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와 병사의 큰 행동을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혁명적인 행동으로 만들어 밀고 나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몇몇 지도자가 배반해서 일이 무너졌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외침: 당신들은 독재에 반대했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새로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사회주의 당의 옛 강령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노동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이 사회주의 실현의 전제 조건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마르크스주의 원칙입니다. 사회민주당이 실제로 그것을 따랐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였을 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찬성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것을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기댈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사평의회는 그 버팀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다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 터지고서야 대중에게 다가가기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계몽의 과정, 방향을 잡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우리 당에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3월 전당대회에서 정세에 대한 입장을 정했고, 이미 그때 우리 강령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정식화했습니다. (외침: 평의회 제도의 정착이지요.)
우리도 이미 그때 강조했습니다. 의회주의는 우리에게 사회주의를 가져다주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에 쓰는 무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역사 발전의 큰 혼란 속에서 천사처럼 깨끗하게 무대에 올라 죄도 허물도 없이 움직인 당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정치 투쟁의 백열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비판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비판을,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은 독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눈에는 우리가 배신자이고,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 눈에는 여러분이 노동계급의 배신자입니다. 그 뒤 우리 당이 3월부터 라이프치히까지 더 발전했고 라이프치히에서 강령을 더 분명하게 정식화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지독한 지도자들”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다는 데 주의를 돌리고 싶습니다. 이 지도자들이 강령을 제출했습니다. 그것은 대중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당시 당 지도부가 전당대회에 내놓고 옹호한 것입니다. 당 지도부에 있던 우리는 전당대회의 결정에 따라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독일에서 대중 행동을 벌였고, 많은 경우 독일 공산주의자들과 함께였습니다. 우리 정책과 전술이 흔들린다고 비난한다면, 한때 의회주의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찬성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같은 비난을 할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독일공산당도 여러 문제에서 흔들렸고, 가슴에 손을 얹어 보면 자기도 장부에 적힌 죄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중은 지도자들과 다르다, 우리가 여기 데려온 사기꾼들과 다르다고들 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베인코프가 우리를 경찰 첩자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여기 대회 앞에서 지도자들을 깎아내리면 대중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리라 기대하는 그런 전술이 독일에서 먹히리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대중에게 사실을 들고 가야 합니다. 독일 동지들과 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를 알아 왔고, 우리가 배신자라면 거듭거듭 책임 있는 자리에 뽑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독립사회민주당의 대중은 공산주의적인데, 이 공산주의적인 독립사회민주당 대중이 여러분이 여기서 끌어내리려는 지도자들을 뽑습니다. 그렇다면 계산이 어딘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대중을 당 지도자들에게 맞서게 하려는 그런 전술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독일에서 하겠으며, 우리는 독일에서 결과가 나쁘리라고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답장을 두고 여러분이 흥분한 문제입니다. 왜 갑자기 처녀처럼 예민해졌습니까? 우리는 집행부로부터 매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울면서 매를 달게 받겠다고 하지 않고 분명하게 답하며 우리 의견을 숨김없이 밝혔습니다. 우리는 지노비예프 동지가 말한 것처럼 우파 지도자들만이 대중과 대립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집행부는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립사회민주당의 지도자 전체가 대중과 모순되며, 대중의 정책 전체를 독립사회민주당의 우파 지도자들이 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까지 여기서 우파 지도자로 꼽히는 것을 겪어야 합니다. 여기 모스크바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독일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당의 정책은 전당대회가 정하고, 결정은 당원들이 내립니다. 결정을 실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당 지도부에 들어갈 수 없고 뽑히지도 않습니다. 라데크는 제가 루체른에서 국제연맹을 지지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착오입니다. 저는 루체른에서 국제연맹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1] (라데크가 끼어든다.) 라데크 동지, 당신에게 제 연설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거기서 국제연맹에 반대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1918년 겨울 슈투트가르트에서 우리 신문에, 국제연맹은 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자본주의 정부들의 도구이지 인민의 연맹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그때 그렇게 말했고, 지금도 그 입장에 서 있습니다. 저는 국제연맹에 항의했습니다. 우리가 루체른에 간 것은 독일 우파 사회주의자들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독일 사정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고, 우파 사회주의자들이 그것을 쉽게 이용해 다른 나라 인민들을 자기 생각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우리가 전제한 것이 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2인터내셔널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제가 제 소책자에서 모스크바 인터내셔널은 너무 이른 창립이라고 썼다면, 저는 지금도 그렇게 확신한다고 말하겠습니다. 라데크 동지는 제가 왜 모스크바 인터내셔널이 너무 일찍 창립되었다고 말했는지 더 읽었어야 합니다. 저는 소책자에서 새 인터내셔널을 창립하기 전에 각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먼저 분명해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에 대해, 국제적 계급투쟁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하며, 자기 나라에서 분명해졌을 때 국제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해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지노비예프 동지의 연설 전체가 증명합니다. 도대체 누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뽑히고 부름받았습니까? 비판받지 않은 것은 러시아 공산주의자들뿐입니다. 그 밖에 가입한 정당 가운데 비판을 피한 당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판받은 바로 그 정당들의 바로 그 대표들이 독일의 나쁜 독립사회민주당원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파 사회주의자들과 갈라섰다는 것, 분열이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었을 때 우리가 분열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을 완전히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열을 너무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분열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증거가 독일의 독립사회민주당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쓰라린 필요입니다. 분열하기 전에 노동자들을 원칙적으로 분명한 태도로 이끌어 오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은 그들을 독일 혁명을 위해 얻어 내고 하나로 묶어 두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서글픈 광경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좌익 전체가 서너 개의 당, 곧 독립사회민주당, 독일공산당, 독일 공산주의 노동자당으로 갈라져 있고 요즘은 노동자연합까지 선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 운동에,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에, 특히 인터내셔널에 아주 해롭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이며, 그러려면 노동자들을 굳게 뭉치도록 조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국제 행동도 해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중을 하나로 묶어 두고, 아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토대에 서 있지 않다면 그 토대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제가 라이프치히에서 모스크바에 즉시 가입하는 데 반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였을까요? 동지 여러분, 모스크바의 제1차 대회에서는 독립사회민주당을 없애고, 부수고, 짓뭉개고, 세상에서 치워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없애 버려야 할 당의 대표가, 그렇게 하려는 동지들과 먼저 한번 터놓고 이야기해 서로 이해하는 길로 가입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입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에 대한 적대적 결정들을 거두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때려 놓고 상대가 “우리를 때렸으니 우리는 당신의 친구다”라고 말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해하고 납득해야 할 일입니다. (끼어드는 말들.) 강화조약 서명에 관해 말하자면, 이 문제에서 독일 대중은 전적으로 우리 당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독일에서 배외주의와의 투쟁이었고, 우리는 마침내 민족주의가 한번 밀려난 것을 기뻐했습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강화 문제를 또다시 민족주의적·배외주의적 마녀의 잔치로 만들려 했습니다. (발허의 외침: 당신들이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 주었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독일은 전쟁으로 너무 약해져서, 다시 봉쇄되었다면 독일 대중의 궁핍은 훨씬 더 끔찍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을 싸울 수 있게 만드는 것, 자본주의의 궁핍화 경향에 맞선 끊임없는 투쟁으로 그들의 생활수준을 될 수 있는 한 높이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궁핍해진 층은 선두에 서지 않으며 혁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을 하는 것은 생활수준을 비교적 높일 수 있었던 노동자층입니다. 그러니 강화조약 서명을 두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제 테러와 폭력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서로 다른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독재를 지키려면 우리는 폭력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폭력이 쓰이는 곳에서는 경우에 따라, 죄와 무죄를 꼼꼼히 가릴 수 있었다면 화를 면했어야 할 사람이 여기저기서 다치는 일도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권력을 잡기도 전인 지금, 우리는 테러를 정치 원칙으로 써야 한다, 공포 정치를 세워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우리는 폭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폭력을 쓰는 정도의 기준은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만큼입니다.
우리는 볼셰비키를 한 번도 욕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저는 언제나 러시아 동지들과 연대감을 느껴 왔다고 밝힐 수 있습니다. 뉘른베르크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인들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 저는 그랬다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것은 국제 연대의 행위였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볼셰비키를 옹호했고, 그들은 힘든 투쟁을 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그들을 깎아내릴 권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외침: 카우츠키는요.) 카우츠키는 물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 지도부를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큰 착오입니다. (외침: 레데부어는요.) 레데부어도 볼셰비키를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잘못 아는 것입니다. 레데부어는 공공연히 혁명을 위해 싸웠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테러를 정치 원칙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만 우리의 러시아 친구들도 기회주의의 죄인이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농업 문제에서 자기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비난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농업 문제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집행위원회가 독일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오래전에 극복된 소부르주아적 사고방식으로 곧장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방법을 권한다는 것을 놀라움 속에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소농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 수용된 대지주의 비용으로 곧바로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그들을 대지주의 멍에에서 해방하고, 그들에게 계급으로서 큰 토지를 주고, 그들을 부채에서 해방할 것 등을 분명히 알려 주라고 권한다. 이 제안은 대토지 소유를 곧바로 사회화하여, 다시 말해 사회의 것으로 만들어 공동 경제로 경영해야 한다는 우리의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를 거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대신 이제 소농에게 큰 토지를 받고 부채에서 해방될 것 등을 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농민층을 위해 내주는 것을 뜻하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토지가 농민에게 넘겨진 러시아의 사정을 독일에 옮겨 놓는 것을 뜻한다. 독일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은 그런 조치로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독일에서 소농에게 땅을 주는 것이 혁명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발허: 소농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려는 것이오.) 기회주의적 수단으로는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지 못합니다. 대지주는 수용되어야 하고, 토지는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경영되어야지 농업 노동자와 소농에게 나누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사회를 위해 토지를 협동조합으로 경영할 만큼 성숙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이어 동지는 우리가 가입을 이루려고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이어 동지도 이에 관한 우리 공식 보고를 읽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고요? 우리는 모스크바와 만나려고 쉬지 않고 애썼습니다. 넉 달 만에 마침내 답을 받았을 때 우리는 군사 쿠데타를 막아 내는 한가운데 있었고,[2] 선거전을 치르고 있었으며, 그 직후 곧장 모스크바로 왔습니다. 우리가 다른 당들과 만난 것은 전당대회가 우리에게 맡긴 결정이었고, 전당대회가 내린 결정은 우리가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당들과 국제회의를 여는 것을 피했습니다. 모스크바에 먼저 자리를 내주려 했습니다.
쾨넨이 스위스에서 “우리는 새 인터내셔널을 창립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스크바가 우리를 거절하면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국제 정치에서 밀려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독립사회민주당 같은 큰 운동이 국제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기야 독일의 공산주의자 여러분은 우리가 당으로 태어난 뒤로 줄곧 우리가 죽었다고 말해 왔습니다. 우리가 곧 죽으리라는 여러분의 바람은 우리를 별로 불안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일반적으로 덧붙이고 싶습니다. 토론에서 역사적 발전을 생각하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어떤 동지들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함께 갑자기 마르크스주의가 세상에 나왔고, 이제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생겼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1인터내셔널은 부르주아 혁명 바로 뒤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따르리라는 믿음 속에서 창립되었고, 사회주의의 즉각적 실현에 맞추어져 있었는데, 지노비예프가 시사한 이유로 존재하기를 그쳤습니다. 마르크스도 말했듯이, 그때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에게 정치권력을 넘겨받고 지켜 낼 전제 조건이 없었다는 것, 먼저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 정치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정치적·경제적 개혁을 위한 전반적 투쟁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제2인터내셔널이 지배한 그 시대의 역사적 과제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 사회주의의 전제 조건이 있듯이, 노동계급 안에도 정치권력의 장악과 유지를 위한 투쟁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하는 시대에 서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장악했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머지않아 장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동운동이 거쳐 온 발전을 이렇게 평가해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이전 시대에 선행자들이 멈춘 곳에서 이어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아직 우파 사회주의적인 정당들이 자기 과제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들은 그 대가를 붕괴와 몰락으로 치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독일에서 혁명적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힘주어 주장하며, 언제든 문서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답을 원하는 대로 정식화하십시오. 우리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공동 전선을 세우려는 정직한 노력과 정직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혁명적 신념과 정신과 활동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회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아도 우리는 혁명가로 남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앞으로도 독일에서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쏟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 대열에 선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쁘게 받아들일 답을 준다면, 국제 프롤레타리아 전선을 세우는 데 그만큼 더 좋을 것입니다.
디트만 (7월 29일 저녁 회의)
디트만: 동지 여러분! 우연히도 제 친구 크리스피엔 바로 다음에 발언하게 되었습니다. 베인코프 동지가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독일에서보다 더 뻔뻔하게 나서려 한다고 결론짓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우리가 발언자 명단에서 잇달아 있는 것은 정말 순전한 우연입니다.
우리, 특히 크리스피엔과 저는 라이프치히 전당대회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즉각 직접 가입하는 데 찬성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비난을 한 바로 그 사람들이 여기 나와서, 우리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받아들여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우리에게 들이대야 한다고 믿는 긴 죄목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큰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공동 전선으로 합류하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협상하기로 한 우리 당의 라이프치히 결정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으로 우리는 이제 여기 왔고, 협상의 바탕으로 라이프치히 전당대회가 채택한 행동 강령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행동 강령은, 여러분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 장악,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평의회 제도의 토대에, 그것도 분명하고 거리낌 없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 독립사회민주당원들을 비판한 대표들의 정당 가운데, 바로 이 결정적인 점들에서 우리 것만큼 분명하고 모호함 없는 강령을 내보일 수 있는 당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지 여러분, 제 친구 크리스피엔의 설명 뒤에 저는 이런 일반적 문제에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제가 발언을 신청한 것은 무엇보다 토론 과정에서 몇몇 연사가 우리에게 한 몇 가지 비난을 반박하기 위해서입니다.
[…]
이제 끝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상당수의 연사가, 자기들 생각에는 다른 당들뿐 아니라 우리 당도 혁명적이지 않으므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제 친구 크리스피엔은 이 비난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큰 줄기로 증명했고, 독일 혁명 이래 우리 당의 역사 전체를 여러분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틀림없이 우리 당에 대한 판단을 바꿀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부디 확신하십시오. 공산당 신문들이 여기서 제기된 비난과 그 밖에 백 가지 비난을 퍼붓는 당을, 그 비난이 정당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면 500만 명이 뽑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수파 사회주의자들과 부르주아지에 맞선 가장 힘든 투쟁 속에서 우리 자리를 얻어 냈습니다. 독일의 독립사회민주당 뒤에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이 서 있다고 우리는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혁명이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공동 전선으로 행진하며 자본주의를 쓰러뜨리려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모스크바에 왔습니다. 여러분 말처럼 노동자 대중의 압력에 굴복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노동자이고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출신으로도 교육으로도 노동자이며, 사반세기 동안 노동운동 속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 존재 전체가 운동에 바쳐져 있으며, 전쟁의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 몫을 해냈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 계급국가의 앞잡이들에게도 맞섰습니다. 여기서 혁명적 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그려진다면, 자기 흉터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투쟁에서 얻었다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같은 것을, 곧 러시아와 독일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나아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로 굳게 결합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여기서 애쓴 것만큼 진지하게, 앞으로의 협상에서도 우리가 곧 하나가 되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본주의와의 공동의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애써 주십시오.
세라티 (7월 30일)
[…] 세라티: […] 저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문을 우리와 함께 혁명을 할 수 있는 모든 정당에 열어야 하며, 토론은 그다음에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베인코프: 무정부주의자들도요?
세라티: 허락해 주신다면, 친애하는 베인코프, 무정부주의자들뿐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들 이야기도 하겠습니다. 크리스피엔이나 디트만의 태도를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상황이 어떤지, 프랑스 사회당과 독립사회민주당의 상황이 어떤지만 물으면 충분합니다. […]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친애하는 이탈리아와 러시아 동지들, 우리는 러시아 혁명을 위해 총파업을 선포하겠다고. 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약속했을 때 진심이었다고 믿습니다.
골덴베르크: 그들은 진심이 아니었소.
세라티: 그러나 친구여, 우리 주머니에는 “진심 측정기”가 없습니다.
레닌: 그 진심 측정기를 우리가 찾아낼 것입니다.
[…] 세라티: […] 아닙니다,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이탈리아 사회당이 정화의 순간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여러분에게 장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번이라도 약속을 어겼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정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준비하는 노동자 대중과 당과 혁명에 이로운 방식으로 그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레닌: 가입 조건에 관한 연설 (7월 30일)
레닌: 동지 여러분! 세라티는 우리가 아직 “상세로메트르”를 발명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진심을 재는 기구를 뜻하는 새 프랑스어 낱말인데, 그런 기구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구는 우리에게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경향을 판단하는 기구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세라티 동지가 이 오래전부터 알려진 기구를 쓰지 않은 것은 잘못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크리스피엔 동지에 대해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가 이 자리에 없어서 무척 유감입니다. (디트만의 외침: 그는 아픕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의 연설은 가장 중요한 문서 가운데 하나이며, 독립사회민주당 우파의 정치 노선을 정확히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일이나 개별 사례가 아니라 크리스피엔의 연설에서 분명하게 표현된 생각들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단연 카우츠키적인 연설이었고, 크리스피엔 동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카우츠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누군가 외치자 크리스피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에르푸르트 강령에 있다. 에르푸르트 강령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아무것도 없으며,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1902~1903년 우리 당의 첫 강령을 만들 때 우리는 늘 에르푸르트 강령을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그때 플레하노프는, “베른슈타인이 사회민주주의를 묻어 버리든지, 사회민주주의가 그를 묻어 버리든지 할 것이다”라고 옳게 말했던 바로 그 플레하노프는, 에르푸르트 강령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말이 없는 것은 이론적으로 틀렸고 실천적으로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비겁한 양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강령에는 1903년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들어 있습니다.
크리스피엔 동지가 지금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우리는 언제나 정치권력의 장악에 찬성했다”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 가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의 장악은 인정하지만 독재는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독일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주의 문헌 전체가 증명하듯, 기회주의 정당의 지도자들, 예컨대 영국의 맥도널드는 정치권력의 장악에 찬성합니다. 그들은 모두 진실한 사회주의자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합니다! 우리에게 쓸 만하고 이름에 값하는 공산주의적·혁명적 정당이 생기는 즉시, 제2인터내셔널의 옛 견해와 달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선전해야 합니다. 크리스피엔 동지는 바로 그것을 감추고 흐려 놓았으며, 그것이 카우츠키적 견해 모두에 고유한 근본 오류입니다.
크리스피엔 동지는 이어서 우리는 대중이 뽑은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관점이며 옳지 않습니다.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의 지난 전당대회에서 우리는 경향들의 투쟁을 아주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향들의 투쟁이 있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알기 위해 진심 측정기를 찾거나, 세라티 동지가 그랬듯 그것을 두고 농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쪽 경향은 혁명적인, 새로 우리에게 온 노동자들, 노동귀족의 적대자들입니다. 다른 쪽 경향은 모든 문명국에서 옛 지도자들이 대표하는 노동귀족입니다. 크리스피엔이 옛 지도자와 노동귀족의 경향 편에 서는지, 노동귀족에 반대하는 새로운 혁명적 노동자 대중의 경향 편에 서는지, 바로 그것을 크리스피엔 동지는 덮어 버렸습니다.
크리스피엔 동지는 분열에 대해 어떤 어조로 말합니까? 분열은 쓰라린 필요라고 말하고 오래도록 그것을 슬퍼했습니다. 그것은 카우츠키적이었습니다. 누구와의 분열입니까? 샤이데만과의 분열입니까? 그렇습니다! 크리스피엔은 “우리가 분열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당신들은 너무 늦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둘째, 독립사회민주당원들은 그것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국제 노동계급은 아직 노동귀족과 기회주의자들의 멍에 아래 있다. 이것은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사실입니다. 크리스피엔 동지는 분열에 대해 공산주의적으로가 아니라, 영향력이 없다는 카우츠키의 정신에 따라 완전히 생각합니다. 그다음 크리스피엔은 높은 임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독일의 사정은 노동자들이 러시아와 동유럽 일반의 노동자에 비해 꽤 좋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혁명은 노동자들이 “너무 크지 않은” 궁핍을 겪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저는 공산당에서 이런 어조로 말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묻습니다. 그것은 반혁명적입니다. 우리 러시아의 생활수준은 분명 독일보다 낮으며, 우리가 독재를 세웠을 때 그 결과로 노동자들은 더 굶주렸고 생활수준은 더 낮아졌습니다. 희생 없이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일시적으로 나빠지지 않고는 노동자의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크리스피엔이 말한 것과 반대로 말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을 독재에 대비시키려 하면서 그들 앞에서 “너무 크지 않은” 궁핍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은 것입니다. 곧 노동귀족은 “자기” 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고 목 조르는 것을 도와서 생겨났고, 그렇게 해서 더 나은 임금을 확보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독일 노동자들이 혁명적 활동을 하려 한다면, 그들은 희생을 치러야 하고 그 앞에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일반적인 세계사적 의미에서는, 뒤떨어진 나라의 중국인 쿨리가 혁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약탈 덕분에 생활 형편이 더 나은 몇몇 부유한 나라에서 노동자들에게 “너무 큰” 궁핍을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것은 반혁명적입니다. 반대로 말해야 합니다. 희생을 두려워하고 혁명 투쟁 동안의 “너무 큰” 궁핍을 두려워하는 노동귀족은 당에 속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는 불가능하며, 특히 서유럽 나라들에서는 그렇습니다.
크리스피엔은 테러와 폭력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사회학 교본에서라면 그런 구별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천 정치에서는, 특히 독일 사정과 관련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할 때의 독일 장교들처럼 구는 자들, 신문을 사들이는 슈티네스와 크루프 같은 자들, 그런 자들에 맞서서는 폭력과 테러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테러를 하겠다고 미리 선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독일 장교들과 카프 일당이, 크루프와 슈티네스가 지금 그대로 남는다면, 우리는 테러를 써야 합니다. 카우츠키뿐 아니라 레데부어와 크리스피엔도 테러와 폭력에 대해 완전히 반혁명적인 의미로 말합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움직이는 당은 독재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다음은 농업 문제입니다. 여기서 크리스피엔은 특히 격렬했고, 우리를 소부르주아적이라고 탓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대토지 소유를 희생해 소농을 위해 무엇인가를 얻어 내려 하는 것은 소부르주아적이라는 것입니다. 대토지 소유는 수용해서 그 땅을 협동조합에 넘겨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현학적인 견해입니다.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 독일에서도 대농장은 얼마든지 있고, 대규모 자본주의 방식이 아니라 반봉건적으로 경작되는 땅, 경영을 찢어 놓지 않고도 소농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땅이 있습니다. 대경영은 그대로 두면서도 소농에게 그에게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줄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지만, 실천에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것은 예컨대 바르가(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전 국민경제 인민위원)의 책이 증명합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뒤에도 헝가리 농촌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날품팔이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며 소농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헝가리에는 큰 대농장이 있고, 넓은 땅이 반봉건적으로 경영됩니다. 대토지 가운데 소농에게 무엇인가를, 어쩌면 소유가 아니라 임차로라도 줄 수 있는 부분은 언제나 찾을 수 있고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분할지 농민이 몰수된 재산에서 무엇인가를 얻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농은 예전과 평의회 독재의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권력이 이 정책을 펴지 않으면 그것은 버틸 수 없습니다.
크리스피엔이 “여러분은 우리의 혁명적 신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그것을 단호히 부정합니다. 당신들이 혁명적으로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혁명적으로 생각할 줄 모른다는 뜻에서 부정합니다.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로 아무 위원회나 뽑아서 카우츠키의 책 열 권과 크리스피엔의 연설을 주면, 그 위원회는 이 연설은 철두철미 카우츠키적이며 카우츠키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크리스피엔의 논법은 모두 철두철미 카우츠키적인데, 그러고 나서 크리스피엔은 카우츠키가 우리 당에서 더는 영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새로 들어온 혁명적 노동자들에게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우츠키가 크리스피엔에게, 그의 사고방식 전체와 크리스피엔 동지의 모든 생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크리스피엔의 연설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상세로메트르나 진심 측정기를 찾지 않고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피엔의 경향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전체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베인코프 동지와 뮌첸베르크 동지가 우리가 독립사회민주당을 초청하고 그 대표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면,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카우츠키가 우리에게 맞서 나서고 책을 쓴다면, 우리는 그를 계급의 적으로 보고 논쟁합니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커진 독립사회민주당이 협상하러 이곳에 온다면, 우리는 그 대표들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이 혁명적 노동자의 일부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원들과도, 프랑스인들과도, 영국인들과도 우리는 인터내셔널에 관해 당장 합의할 수는 없습니다. 베인코프 동지는 연설할 때마다 판네쿠크 동지의 잘못을 거의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베인코프는 판네쿠크의 견해를 함께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의 연설은 그 반대를 증명합니다. 그것이 이 좌익 부분의 근본 오류이며, 성장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운동 일반의 오류입니다. 크리스피엔 동지와 디트만 동지의 연설은 철두철미 부르주아적인 연설이며, 그런 연설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인코프 동지와 뮌첸베르크 동지가 독립사회민주당 문제에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그들과 의견이 같지 않습니다.
세라티가 표현한 대로,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선의를 시험할 진심 측정기가 분명 없으며,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는 데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세라티가 새로운 것을 하나도 말하지 않고 발언한 것이 유감입니다. 그의 연설은 우리가 제2인터내셔널에서 들었던 종류의 연설이었습니다.
세라티가 프랑스에는 혁명적 상황이 없고, 독일에는 혁명적 상황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혁명적 상황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틀렸습니다.
그러나 상황 자체가 반혁명적이라 해도, 혁명적 선전과 선동을 조직하려 하지 않는다면 제2인터내셔널은 잘못하는 것이며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상황이 혁명적이지 않을 때에도 혁명적 선전을 할 수 있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볼셰비키 당의 역사 전체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차이는 바로, 앞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하는 일, 곧 혁명화하는 활동을 하기를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세라티는 크리스피엔이 말한 것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우리는 투라티를 몇 월 며칠에 반드시 제명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이미 집행위원회에서 다루어졌고, 세라티는 우리에게 제명은 안 되지만 당의 정화는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탈리아 동지들에게 그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경향에 맞는 것은 「오르디네 누오보」의 구성원들의 경향이지,[3] 사회당과 그 의원단의 지금 지도자 다수의 경향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들은, 사람들 말로는, 반동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키려 합니다. 러시아의 체르노프와 멘셰비키와 다른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반동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키지만, 그것이 그들을 우리 사이에 받아들일 이유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탈리아 동지들과 우익을 가진 모든 정당에 말해야 합니다. 이 개량주의 경향은 공산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다. 이탈리아 동지 여러분, 대회를 소집해 우리의 테제와 결의를 거기에 내놓아 주기 바랍니다. 저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남기를 원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세라티: 당신은 자꾸 저를 투라티와 혼동합니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 것입니까?
레닌: 세라티 자신이 투라티를 옹호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도 세라티를 투라티와 혼동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