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철도 폭격 분석에서 그는 기관차와 수리시설을 끊어야 철도망 전체가 멈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솔리 주커먼은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공무원으로,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정부 정책에 결합한 운용연구의 선구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폭격 효과를 조사하고 지중해 전선의 경험을 분석해, 노르망디 상륙을 앞두고 프랑스 철도망을 마비시키는 교통계획을 설계했다. 이 계획은 독일군 증원을 늦추는 데 기여했지만 프랑스 민간인 피해와 폭격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남겼다. 전후에는 영국 최초의 정부 수석과학고문으로 과학과 국가정책의 관계를 제도화했다.
「감옥에서는 적의 움직임만 보인다. 감옥은 싸움을 하기에 가장 어려운 곳이다.」 — 《117일》(1965)
남아공 공산당과 ANC에서 활동한 백인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이자 언론인. 진보 매체 《가디언》 편집장으로 인종차별 정책을 고발했고, 자유헌장 기초위원으로 참여했다. 반역죄 재판 피고를 거쳐 90일 구금법 첫 백인 여성 수감자가 되었고, 독방 체험을 《117일》로 남겼다. 망명 후 아프리카 해방운동을 연구했으며, 모잠비크에서 아파르트헤이트 경찰의 소포 폭탄에 암살당했다.
상세 이력 보기
1946위트워터스랜드 대학 사회과학 학사, 진보학생연맹 창립 참여
1946–1950s《가디언》 편집장 — 신문 금지 후 《클라리온》《뉴 에이지》 등으로 재창간
“우리가 협상하는 이유는 사회주의를 위한 더 나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 암살 직전 인터뷰, 1993년
남아공 공산당 사무총장이자 민족의 창(Umkhonto we Sizwe) 참모총장으로, 반아파르트헤이트 무장투쟁에서 협상 전환까지 남아공 해방운동의 좌익을 이끈 혁명가. 1993년 극우 이민자에게 암살되면서 민주이행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1994년 총선을 확정짓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