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e-révolution / Konterrevolution / контрреволюция · 1789–현재

반혁명

Counter-revolution

반혁명은 혁명에 맞서 그것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막거나, 혁명이 성공한 뒤 그 성과를 되돌려 옛 체제와 질서를 되살리려는 사상·운동·세력을 이르는 말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반대한 에드먼드 버크, 조제프 드 메스트르, 루이 드 보날 같은 사상가와 방데의 왕당파 봉기를 가리키며 생겨났고, 1848년 혁명과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 혁명 뒤의 백군과 외국 간섭, 냉전기의 반공 정권과 무장 세력으로 쓰임이 넓어졌다. 소련과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체제에 맞서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 용어로도 쓰였다.

상세

말의 뜻과 기원

러시아어판 백과사전은 반혁명을 혁명과 반대 방향의 정치 과정, 곧 혁명적 변혁 이전의 정치 체제와 그 요소, 정치 엘리트를 지키거나 되살리려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영어판은 혁명 운동이 권력을 잡기 전에 그것을 꺾으려는 시도와, 혁명이 성공한 뒤 옛 체제를 복구하려는 시도를 모두 반혁명이라 부른다고 적는다. 프랑스어판에 따르면 이 말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대 속에서 생겨나 1830년·1848년 혁명과 파리 코뮌에,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는 공산주의형 혁명에 쓰였다. 블라디미르 달의 러시아어 사전은 반혁명을 “전복 이전에 있던 옛 질서를 위한 맞봉기”라고 풀이했다. 같은 프랑스어판은 혁명 정권이 들어선 뒤, 특히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로는 집권 세력이 밀어내려는 인물을 깎아내리는 데에도 ‘반혁명적’이라는 형용사가 쓰였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혁명과 반혁명 사상

혁명 이론에 맞서는 반혁명 사상은 일찍 나타났다. 1790년 11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펴냈고, 사보이아 출신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프랑스 혁명을 자연 질서에 대한 범죄로 보며 절대 군주정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루이 드 보날, 오귀스탱 바뤼엘, 에스파냐의 후안 도노소 코르테스도 이 흐름에 든다. 프랑스어판 백과사전은 이들을 버크처럼 자유주의 전통 안에 상당 부분 머문 쪽과, 반자유주의적 전통주의나 급진적 권위주의를 내세운 쪽으로 나눈다. 행동으로서의 반혁명은 망명과 봉기로 나타났다. 망명자는 적어도 15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가운데 장교가 많았다. 국왕 처형과 반교권 정책 뒤 1793년 혁명 정부가 30만 명 징집을 요구하자 방데의 왕당파와 가톨릭 신자들이 무기를 들었고, 이 봉기의 진압은 일부 역사가에게 최초의 근대적 제노사이드로 여겨진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까지

1848년 혁명 때는 독일 연방의 군주국들을 비롯한 여러 군주국이 각지의 봉기를 진압했다.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한 정통왕조파가 1902년 대부분의 의원이 교황의 요청으로 공화국을 받아들일 때까지 정당을 이루었다. 20세기에는 샤를 모라스의 악시옹 프랑세즈가 메스트르와 보날 이래의 반혁명 전통을 잇는다고 자처하며 ‘통합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역사가 르네 레몽은 1940년 비시 정권을 파시즘 체제보다는 반혁명 체제로 보았으며, 이 정권은 ‘자유, 평등, 우애’ 대신 ‘노동, 가족, 조국’을 표어로 삼았다.

러시아와 소련에서 반혁명이라 하면 무엇보다 내전기의 백군을 가리켰다. 백군의 중심은 보수적 견해를 지닌 제정군 장교들이었지만, 라브르 코르닐로프와 안톤 데니킨 같은 지도자는 군주제 구호를 내거는 데 반대했다. 역사가 피터 케네즈는 백군을 민족주의, 교권주의, 민주주의와 사회 혁명에 대한 반감을 공유한 당대 국제적 반혁명 현상의 일부로 보았다. 연합국은 1918년 아르한겔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군대를 보냈고, 1918년 11월 휴전 뒤에는 백군을 돕는 쪽으로 목적을 바꾸었으며, 일본의 시베리아 간섭은 1922년까지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1918~1919년 혁명을 진압한 자유군단과 1920년 3월 군사독재 수립을 노린 카프 폭동이, 스페인에서는 1936년 제2공화국에 맞서 카를로스파·군주제파·팔랑헤가 손잡은 봉기가 반혁명의 예로 꼽힌다.

냉전기와 그 뒤

냉전기에는 공산주의 혁명이나 좌파 정부에 맞선 무장 세력과 정권이 반혁명이라 불렸다. 1961년 피델 카스트로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 피그스만 침공, 1980년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와 싸운 콘트라가 그 예이며, 콘트라라는 이름 자체가 ‘반혁명’에서 왔다. 영어판 백과사전은 냉전기 반공 대량 학살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과 서방 동맹국의 지원을 받았고, 1965~1966년 인도네시아 학살과 과테말라 내전기 군의 학살은 제노사이드로 여겨진다고 적는다. 남아메리카 남부의 우익 독재 정권들은 1975~1983년 콘도르 작전으로 좌파 인사를 납치하고 살해했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뒤 2013년 압델 파타 엘시시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몰아낸 일도 반혁명으로 서술된다. 독일어판은 전후 사회정책과 68운동의 성과를 재정·통화 수단으로 되돌리는 흐름을 이 말로 설명하는 해석도 소개한다.

사회주의 국가와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쓰임

소련 역사학은 반혁명을 사회 혁명에 대한 타도된 계급의 반작용, 곧 낡은 사회·국가 체제를 되살리거나 지키려는 퇴행적 과정으로 규정했다. 혁명 정권은 이 개념을 제도로 만들었다. 1917년 12월 7일 인민위원회의 산하에 반혁명·사보타주 투쟁을 위한 전러시아 비상위원회(체카)가 세워졌고, 1918년 11월 6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파기부 결정은 동기와 상관없이 소비에트와 그 기관에 맞선 모든 행동을 반혁명이라 불렀다. 1926년 러시아 공화국 형법은 제58조에서 반혁명 범죄를 규정했고, 1930년 1월 30일 정치국 결정은 집단농장 운동에 대한 쿨라크의 저항을 반혁명으로 규정했다. 러시아어판 백과사전은 이 말이 정세에 따라 볼셰비키의 거의 모든 반대자에게 붙었다고 적는다. 중국에서는 국민당이 먼저 이 말을 법률에 넣었다. 1927년 2월 우한 국민정부가 「반혁명죄 조례」를 통과시켰고, 장제스는 군벌과 공산주의자는 물론 상하이 상인들까지 반혁명으로 몰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51년 「반혁명 처벌 조례」를 공포했고, 문화대혁명 때는 많은 지식인과 관리가 반혁명분자로 고발되었다. 1979년 형법은 반혁명죄를 두었으나 1997년 개정 형법이 이를 국가정권 전복죄로 바꾸었고 1999년 헌법 개정도 같은 길을 따랐다. 독일어판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들이 반대파를 실제 입장과 무관하게 반혁명적이라 불렀다고 적는다.

관련 항목과의 구별

백군(러시아 내전)은 반혁명 가운데 러시아 내전의 특정 운동과 군대를, 백색 테러는 반혁명 세력의 폭력을 가리킨다. ‘백색 테러’라는 말은 1795년 프랑스에서 왕당파의 흰 깃발에서 나와 반혁명 폭력 전반을 뜻하게 되었다. 반혁명 진압 운동(1950~1953)은 반대로 혁명 정권이 반혁명 혐의자를 탄압한 운동이다. 반혁명은 보수주의·군주제 지지와 겹치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1920~1930년대 독일의 나치는 스스로를 반혁명 세력이라 부르지 않고 1933년 집권을 ‘민족 혁명’이라 했지만, 공산주의자에 맞서 보수적 반혁명 세력과 손잡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r.wikipedia.org
  3. de.wikipedia.org
  4. 위키백과 (러시아어)
  5. zh.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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