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철학 수고
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
카를 마르크스가 1844년 4월부터 8월까지 파리에서 쓴 미완성 원고 묶음. 애덤 스미스·데이비드 리카도 등 정치경제학을 처음 본격적으로 읽으며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개념으로 비판한 기록으로, 소외된 노동, 공산주의, 헤겔 변증법 비판을 다룬다. 마르크스는 출판하지 않았고, 1920년대 말 독일 사회민주당 문서고에서 발견되어 1932년에야 두 판본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의 관계를 둘러싼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최대의 논쟁에서 중심 텍스트가 되었다.
상세
출판되지 않은 원고가 왜 그렇게 중요해졌나?
이 원고는 마르크스가 남에게 보여 주려고 쓴 책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고 쓴 메모 묶음이다. 공책 세 권이 남았는데 어느 것도 온전하지 않고, 둘째 공책은 네 쪽만 전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출판하지 않았고, 엥겔스도 다른 누구도 그 내용을 몰랐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비트 랴자노프와 지크프리트 란츠후트가 1920년대 말 사회민주당 문서고에서 「국민경제학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원고를 찾아냈고, 1932년 서로 다른 두 판본으로 처음 펴냈다. 하나는 모스크바의 연구소가 베를린에서 낸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제1부 제3권이고, 다른 하나는 란츠후트와 J. P. 마이어가 라이프치히의 크뢰너 출판사에서 낸 『초기 저작』이다.
출간 시점이 이 원고의 운명을 정했다. 마르크스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나, 마르크스주의가 이미 소련의 국가 교의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으로 굳어진 뒤에 ‘소외’와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젊은 마르크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영어 위키백과는 원고 판독에 참여한 죄르지 루카치가 이 경험으로 마르크스주의 이해가 영원히 바뀌었다고 회고했다고 적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이 원고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 전체를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고 1934년 소련에서 숙청이 시작되면서 처음의 반향은 크게 꺾였다.
원고는 어떻게 짜여 있나?
1843년 가을 파리로 옮긴 마르크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프랑스 노동자 비밀결사와 독일 망명 수공업자들을 만나고,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의 해제는 이 원고를 스미스·리카도와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첫 진지한 연구, 그리고 파리 공산주의 노동운동과의 첫 만남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첫째 공책은 쪽마다 세로줄을 그어 「임금」, 「자본의 이윤」, 「지대」 세 칸으로 나누고 경제학자들의 문장을 옮기며 논평한 노트로 시작한다. 그러다 스물두 번째 쪽부터 칸을 무시하고 이어 쓴 여섯 쪽이 편집자들이 「소외된 노동」이라는 제목을 붙인 대목이다. 둘째 공책에서는 「사적 소유의 관계」만 남았고, 셋째 공책은 「사적 소유와 노동」,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 「욕구, 생산, 분업」, 「화폐」, 그리고 「헤겔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셋째 공책에 적힌 서문이 붙는다.
소외된 노동론은 무엇을 말하나?
마르크스는 국민경제학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국민경제학의 전제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그 언어와 법칙을 받아들였다.” 그 학문 자체의 말로 보아도 노동자는 상품으로, 그것도 가장 비참한 상품으로 떨어진다. “노동자는 부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그의 생산이 힘과 규모에서 커질수록 더 가난해진다. … 사물 세계의 가치 증식에 정비례해 인간 세계의 가치 하락이 커진다.”
Mit der Verwertung der Sachenwelt nimmt die Entwertung der Menschenwelt in direktem Verhältnis zu.
이 사실을 마르크스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 활동 자체로부터의 소외, 인간의 유적 본질로부터의 소외,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라는 네 겹으로 분석한다. “노동자는 노동 밖에서야 비로소 자기 곁에 있다고 느끼고, 노동 안에서는 자기 밖에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종교와 나란히 놓는다. “인간이 신에게 더 많이 맡길수록 자기 안에는 더 적게 남는다.” 네 가지 소외의 내용과 소외 개념의 역사는 「소외」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므로 여기서는 이 원고가 소외론의 고전이라는 점만 짚어 둔다. 이 저작 항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결론이다.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가 소외된 노동의 원인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결과라고 뒤집는다. 소외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생산 관계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것이다.
원고의 공산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셋째 공책의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따진다. 모두에게 똑같은 몫을 나누어 주어 사적 소유를 일반화할 뿐인 ‘조야한 공산주의’는 시기심이 평준화를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 다음,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자기소외인 사적 소유의 긍정적 지양이며, 그렇기에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 본질의 현실적 획득이다. … 이 공산주의는 완성된 자연주의로서 휴머니즘이고, 완성된 휴머니즘으로서 자연주의다. … 그것은 역사의 풀린 수수께끼이며, 자기가 바로 그 해답임을 안다.”
Er ist das aufgelöste Rätsel der Geschichte und weiß sich als diese Lösung.
‘풀린 수수께끼’라는 표현은 한 해 전 크로이츠나흐 원고가 민주주의에 붙였던 말이다. 이제 그 자리에 공산주의가 들어섰다. 같은 공책에서 마르크스는 산업의 역사를 “인간 본질력의 펼쳐진 책”이라 부르고, 화폐가 모든 인간적 성질을 그 반대로 뒤바꾸는 힘이라고 분석한다.
헤겔과 포이어바흐는 원고에서 어떤 자리에 있나?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이 원고의 비판이 포이어바흐의 발견 위에 서 있다고 밝힌다. “포이어바흐에서 비로소 긍정적인 인간주의적·자연주의적 비판이 시작된다.” 그의 저작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이래 진정한 이론적 혁명을 담은 유일한 저작”이다. 유적 존재(Gattungswesen) 같은 핵심 개념도 포이어바흐에게서 왔다.
마지막 대목 「헤겔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은 헤겔을 두고 양면의 평가를 내린다. 『정신현상학』의 위대함은 인간의 자기 산출을 과정으로 보고 “노동의 본질”을 파악한 데 있지만,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학자의 관점”에 서서 노동의 긍정적 측면만 보며, 그가 아는 노동은 “추상적인 정신적 노동”뿐이다. 헤겔의 변증법과 경제학 비판을 이렇게 한데 엮었다는 점에서,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 원고를 마르크스가 국민경제학 비판과 유물론 철학을 처음으로 하나의 체계로 묶은 저작이라고 평가한다. 원고의 상당 부분은 몇 달 뒤 『신성가족』의 재료가 되었다.
청년 마르크스 논쟁은 무엇이었나?
원고가 출간되자 곧 해석이 갈렸다. 영어 위키백과의 정리에 따르면 소련은 이 원고를 마르크스가 결국 버린 사고의 흔적인 ‘초기 저작’으로 보아 대체로 무시했다. 반대로 서유럽에서는 앙리 르페브르가 1933년 프랑스어로 처음 옮겼고,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가 이 원고에 크게 기댔으며, 1960년대 미국 신좌파는 에리히 프롬의 해설을 붙인 영역본(1961)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소외’라는 말이 『자본론』에는 눈에 띄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원고는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가 같은 사상가인지를 묻는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한쪽 끝에는 원고 속의 휴머니스트 청년 마르크스야말로 진짜 마르크스라고 보는 해석이 있었다. 다른 끝에는 루이 알튀세르가 있었다. 그는 1845년 무렵 마르크스의 사상에 ‘단절’이 있어, 그 이전의 ‘이데올로기적’ 시기와 이후의 ‘과학적’ 시기가 갈린다고 주장했다. 많은 연구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본론』의 상품 물신성론과 물화론을 1844년 소외론이 경제 분석 속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읽는다. 어느 쪽에 서든 이 원고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이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순간을 보여 주는 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