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ization / financialisation · 1980 (현상으로는 1970년대 말~1980년대부터, 개념으로는 맥도프·스위지의 『정체와 금융 폭발』(1987)과 크리프너(2005)·엡스타인(2005)·라파비차스(2013) 등을 거치며 자리 잡았다.)

금융화

Financialization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전체에서 금융 부문의 비중과 이윤이 커지고, 비금융 기업과 가계까지 금융시장과 빚에 깊이 기대게 된 자본주의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 사회학자 그레타 크리프너는 이를 「이윤이 무역과 상품 생산보다 금융 경로를 통해 점점 더 많이 생기는 축적 양식」으로 정의했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는 원인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먼슬리 리뷰 학파는 독점자본의 만성적 정체에 대한 반응으로,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은행이 노동자의 소득에서 직접 이윤을 뽑아내는 「금융적 수탈」로, 이윤율 저하를 중시하는 쪽은 생산 부문 수익성 위기의 결과로 본다.

상세

금융화라는 말은 단지 은행과 증권사가 커졌다는 뜻이 아니다. 자동차 회사가 차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할부 금융이나 금융 투자로 더 많은 돈을 벌고, 기업 경영이 주가를 올리는 데 맞춰지고, 가계가 주택담보대출·학자금 대출·신용카드 빚과 연금 펀드로 금융시장에 묶이는 변화 전체를 가리킨다. 미국에서 금융 부문은 1978년 국내총생산의 3.5%였으나 2007년 5.9%가 되었고, 1980년부터 2005년까지 물가를 감안한 금융 부문 이윤은 800% 늘었다. 1980년대 미국의 금융 자유화가 이 성장의 길을 텄다.

정의는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경제학자 제럴드 엡스타인은 금융화를 「국내와 국제 수준 모두에서 경제와 그 통치 기관의 운영에서 금융시장, 금융 동기, 금융기관, 금융 엘리트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라 했다. 좁게는 기업 지배구조에서 주주가치가 우위에 서는 것, 또는 은행 중심 금융 체계보다 자본시장 중심 금융 체계가 우세해지는 것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변화를 숫자로 보여 준 대표적 연구가 그레타 크리프너의 2005년 논문 「미국 경제의 금융화」다. 크리프너는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를 따라 금융화를 「이윤이 무역과 상품 생산보다 금융 경로를 통해 점점 더 많이 생기는 축적 양식」으로 정의하고 두 가지 척도를 만들었다. 하나는 비금융 기업이 이자·배당·자본이득으로 버는 「포트폴리오 소득」을 기업 현금흐름(이윤에 감가상각을 더한 것)과 견준 비율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 부문 이윤과 비금융 부문 이윤의 비율이다. 설명용으로 가정하면, 1960년대에 어느 제조 기업이 생산 활동으로 현금흐름 100을 벌 때 금융 투자로 10을 벌었다면, 1980~1990년대에는 같은 100에 대해 30~50을 금융에서 버는 셈이다. 실제로 크리프너는 1980~1990년대 이 비율이 1950~1960년대의 약 3~5배였다고 측정했다. 고용이나 생산물 구성만 보는 통상의 「탈산업화·서비스 경제」 서술로는 이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요점이었다.

금융이 산업을 압도한다는 걱정 자체는 새롭지 않다. 20세기 초 존 A. 홉슨은 금융이 영국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았고, 루돌프 힐퍼딩은 독일에서 은행이 산업을 지배하는 「금융자본」을 분석했다. 그러나 오늘의 금융화론자들은 차이를 강조한다. 힐퍼딩 시대에는 은행이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며 산업을 지배했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대기업이 은행 차입에 덜 기대고 내부 이윤으로 투자하며, 은행은 다른 이윤원을 찾아 가계로 향했다는 것이다.

먼슬리 리뷰 학파의 해석은 정체론에서 출발한다. 폴 배런과 폴 스위지는 『독점자본』(1966)에서 독점 대기업이 지배하는 경제는 늘어나는 잉여를 흡수할 투자처를 찾지 못해 정체로 기운다고 보았다. 해리 맥도프와 스위지는 『정체와 금융 폭발』(1987)에서 성숙한 독점 경제에서는 정체가 정상이고 빠른 성장이 예외라고 하면서, 군사·민간 국가 지출, 획기적 기술혁신과 함께 금융의 팽창이 정체를 일부 상쇄한다고 했다. 이들은 1980~1990년대의 긴 금융 폭발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결국 체제의 모순을 키워 더 큰 투기 거품을 만들고 노골적 정체로 되돌아갈 것이라 내다보았다. 존 벨러미 포스터는 이를 이어 「독점-금융자본」(2006)과 「자본주의의 금융화」(2007), 프레드 맥도프와 함께 쓴 『대금융위기』(2009)에서 2008년 위기를 설명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금융 쪽의 변화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는 2008년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은행은 생산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이윤은 생산에서 생긴 잉여가치의 몫을 이자로 받는 것이었으나, 오늘날 실물 축적의 중심에 있는 대기업은 은행 차입과 외부 금융에 점점 덜 기대고 내부 유보 이윤으로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금융기관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과 직접 이어지지 않은 영역, 곧 소비자 신용과 주택담보대출, 기업의 증권 발행을 돕는 수수료 쪽으로 옮겨 갔고, 이자를 잉여가치가 아니라 임금과 급여에서 끌어오게 되면서 거품을 만들 유인이 생겼다는 것이다. 『생산 없는 이윤』(2013)에서는 이런 이윤 획득을 처음의 「직접적 착취」 대신 「금융적 수탈」이라 불렀다.

반론도 있다. 조지프 추나라는 2007~2008년 위기 뒤 마르크스주의 논의를 두 입장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생산 과정의 장기 경향, 특히 전후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윤율에서 위기의 뿌리를 찾는 쪽으로, 로버트 브레너, 안와르 샤이크, 마이클 로버츠, 굴리엘모 카르케디, 앤드루 클라이먼, 크리스 하먼이 여기에 든다. 다른 하나는 위기의 금융적 차원에 집중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을 낮게 보는 쪽으로, 라파비차스가 그 가장 정교한 대표자다. 추나라는 라파비차스의 책을 금융화 연구 가운데 뛰어나다고 평가하면서도 「금융적 수탈」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클라이먼과 섀넌 윌리엄스는 금융화가 미국의 생산적 투자를 억누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하비는 금융화를 사유화, 위기의 관리와 조작, 국가의 재분배와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 「탈취에 의한 축적」의 주요 실천으로 꼽았다. 이처럼 금융화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해석하는 열쇠말이 되었고, 실물 경제와 금융 자산 가격이 따로 노는 실물-금융 간극이나 플랫폼 자본주의 같은 최근 논의에도 이어진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economicsociology.org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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