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9–2009.06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미국의 집값 거품과 서브프라임 대출은 어떻게 세계 금융 체계 전체를 흔드는 위기가 되었나? 금융 자유화와 증권화, 파생상품과 그림자 금융은 각각 어떤 역할을 했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구제금융과 양적완화로 무엇을 막았고 누구의 손실을 떠안았나? 위기는 아이슬란드와 유럽, 한국에 어떻게 번졌고, 대침체는 사람들의 삶에 무엇을 남겼나? 주류 경제학과 케인스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그 원인을 어떻게 다르게 설명하나?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 폐지와 2000년 파생상품 탈규제 뒤 미국에서는 집값이 두 배로 뛰고 신용도 낮은 사람에게 서브프라임 대출이 쏟아졌다. 대출은 증권으로 묶여 세계 금융기관에 팔렸다. 2006년 집값이 꺾이자 2007년 8월 은행 간 시장이 얼어붙었고,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공황이 터졌다. 각국은 은행에 공적 자금을 넣고 금리를 0%대로 내려 양적완화를 시작했지만, 미국 실업률은 10%에 이르렀다.

미국위기 이전 30년 동안 미국 금융은 어떻게 바뀌었나?

대공황 뒤 미국은 은행을 두 종류로 갈라 놓았다. 1933년 은행법의 「글래스-스티걸」 조항은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이 증권을 인수하거나 증권회사와 한 몸이 되는 것을 막았다. 예금자의 돈이 주식과 채권 투기에 쓰이지 않게 하려는 장치였다. 1960년대부터 감독 당국의 해석으로 이 칸막이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1998년 상업은행 시티코프가 보험사 트래블러스와 합쳐 시티그룹이 되자 연방준비제도는 법 위반인 이 합병에 임시 허가를 내주었다. 1999년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은 은행과 증권회사의 결합을 막던 두 조항을 폐지해 이 합병을 사후에 합법화했다. 1 2

같은 흐름은 파생상품에도 미쳤다. 파생상품은 주식·채권·환율·금리 같은 다른 자산의 값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계약으로, 위험을 피하는 데에도 그 위험에 돈을 거는 데에도 쓰인다. 1998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 브룩슬리 본이 장외 파생상품 규제를 검토하자,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과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아서 레빗은 의회에 이를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2000년 12월 21일 서명된 상품선물현대화법은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장외 파생상품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 밖에 두었다. 2004년에는 증권거래위원회가 대형 투자은행의 순자본 규칙을 풀어 이들이 훨씬 많은 빚을 질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규제를 걷어 내는 흐름을 금융 자유화 또는 탈규제라 부른다. 3 4

은행 밖에서도 은행 노릇을 하는 기관들이 커졌다. 투자은행, 머니마켓펀드, 증권화 기구, 헤지펀드처럼 예금을 받지 않아 은행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단기로 돈을 빌려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곳들을 그림자 금융이라 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티머시 가이트너는 2008년 6월 연설에서 2007년 초 이런 기구들의 자산이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기구 등 2조 2천억 달러, 3자간 환매조건부 거래로 하루짜리 자금을 빌려 산 자산 2조 5천억 달러, 헤지펀드 1조 8천억 달러, 5대 투자은행 4조 달러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같은 시점 미국 은행 체계 전체의 자산은 약 10조 달러였다. 5 4

미국집값 거품과 서브프라임 대출은 어떻게 커졌나?

미국의 평균 집값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두 배 넘게 올라 미국 역사상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자가 보유율은 1994년 64%에서 2005년 69%로 올랐고, 2001~2005년 민간 일자리 순증가의 약 40%가 주택 관련 부문에서 나왔다.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부채는 1998년 국내총생산의 61%에서 2006년 97%로 불었다. 2001년 경기 후퇴 뒤 연방준비제도가 정책금리를 낮게 오래 유지한 것이 거품을 키웠다는 주장(존 테일러)과, 동아시아 등 신흥국이 쌓은 막대한 저축이 세계 금리를 눌렀다는 주장(벤 버냉키의 「저축 과잉」)이 함께 제기되었다. 6 4

예전에는 신용 기록이 나쁘거나 계약금을 많이 낼 수 없는 사람은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대출을 묶어 증권으로 팔아넘기는 대출업자들이 이런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주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내주는 이 대출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라 한다. 2006년에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분의 1이 서브프라임이거나 소득 증빙 없는 대출이었다. 많은 대출자가 처음 2~3년은 낮은 「미끼 금리」를 내다가 그 뒤 시장 금리에 맞춰 이자가 오르는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도 집을 팔아 빚을 갚거나 오른 집값을 담보로 다시 빌릴 수 있었다. 7 4 8

집값은 2006년에 정점을 찍었다. 2004~2006년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올리자 변동금리 대출의 월 상환액이 뛰었고, 2007년 초 연체와 압류가 잇따르며 서브프라임 대출업체들이 쓰러졌다. 2007년 4월 2일 대표적 서브프라임 대출업체 뉴센추리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 주택」이 늘었고, 압류된 집이 시장에 쏟아져 집값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전국 평균 집값은 2007년 1분기부터 2011년 2분기까지 5분의 1 넘게 떨어졌다. 4 7 6

집 대출은 어떻게 세계 금융기관의 증권이 되었나?

대출을 내준 은행이 그 대출을 끝까지 들고 있지 않고, 수천 건을 한데 묶어 그 원리금을 받을 권리를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파는 것을 증권화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묶은 증권이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이를 다시 모아 「트랑시」라는 층으로 자른 것이 부채담보부증권(CDO)이다. 원리금이 들어오면 맨 위 선순위 층부터 받고, 대출이 부도나면 맨 아래 층부터 손실을 본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대출로 만든 증권에서도 위층은 최고 신용등급 AAA를 받을 수 있었다. 부채담보부증권 발행은 2004년 1분기 약 200억 달러에서 2007년 1분기 1,800억 달러 넘게 늘었고, 그 기초 자산 가운데 서브프라임 등 비우량 대출의 비중은 2000년 5%에서 2007년 36%로 올랐다. 9 4

대출을 팔아넘길 수 있게 되자 대출업자는 갚을 능력을 깐깐히 따질 이유가 줄었다. 대출 한 건에 중개인·대출업자·증권화 회사·신용평가사·투자자·보험사가 줄줄이 얽혔고, 기초 대출에서 멀어질수록 각자는 평가사의 계산 모형 같은 간접 정보에 기댔다. 투자자들은 신용부도스와프(CDS)로 이 증권의 부도 위험을 「보험」처럼 사고팔았다. 신용부도스와프는 대출이 부도나면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손실을 물어 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파생상품으로, 기초 채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살 수 있었다. 2007년 말 미결제 신용부도스와프는 62조 2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AIG는 규제받지 않는 자회사를 통해 이런 보장을 대량으로 팔면서도 담보나 준비금을 거의 쌓지 않았다. 4 10 11

이 구조는 빚 위에 서 있었다. 2004~2007년 미국 5대 투자은행은 자기자본에 비해 빚을 크게 늘렸고, 2007 회계연도에 이들이 보고한 부채는 4조 1천억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의 약 30%였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는 자기자본 225억 달러로 6,800억 달러의 자산을 떠받치고 있었다. 빚을 지렛대 삼아 투자하면 자산값이 조금만 올라도 수익이 크게 나지만, 조금만 떨어져도 자본이 사라진다. 리먼의 경우 부동산 값이 3~5%만 떨어져도 자본 전부가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증권들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은행, 연기금, 지방정부에까지 팔려 나가 있었다. 4 12

영국2007년 여름, 왜 은행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게 되었나? {france}

은행들은 매일 남는 돈과 모자란 돈을 서로 빌려주고 빌리며 영업한다. 이 은행 간 시장은 상대가 내일 돈을 갚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 돌아간다. 2007년 6월 베어스턴스는 부채담보부증권에 투자한 자사 헤지펀드 두 곳이 추가 담보 요구를 받자 이를 떠받치려다 7월 말 결국 청산했다. 7월 30일에는 독일의 IKB 산업은행이 공적 금융기관 KfW의 구제를 받아 이 위기의 첫 은행 희생자가 되었다. 서브프라임 증권이 어느 은행에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자 은행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4 13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은행 BNP 파리바는 자산 22억 달러 규모의 펀드 세 곳의 환매를 막았다.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유동성이 완전히 증발」해 펀드의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값도 없다는 뜻이었다. 많은 관찰자가 이날을 위기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같은 달 서브프라임 노출을 걱정한 머니마켓 투자자들이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PIMCO의 폴 매컬리는 오랜 안정이 낳은 위험한 차입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을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이름을 따 「민스키 모멘트」라 불렀는데, 그는 이 위기의 민스키 모멘트를 2007년 8월로 잡았다. 4 13 6 14

돈줄이 끊기자 단기 차입에 기대던 은행부터 무너졌다. 영국 뉴캐슬의 노던록은 예금보다 금융시장에서 빌린 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려 온 은행이었다. 2007년 9월 14일 노던록이 잉글랜드 은행에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금자들이 지점 앞에 줄을 서 돈을 빼 갔다. 예금 인출 사태로 영국 은행이 쓰러진 것은 150년 만이었다. 노던록은 2008년 2월 국유화되었다. 연방준비제도는 9월 18일 5.25%이던 정책금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12월에는 은행에 단기 자금을 경매로 공급하는 기구를 새로 만들었다. 15 4

미국베어스턴스에서 리먼 브라더스까지, 2008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08년 3월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 고객과 거래 상대가 돈을 빼 가는, 은행 밖에서 일어난 뱅크런이었다. 3월 13일 베어스턴스는 다음 날 갚을 돈이 없다고 연방준비제도에 알렸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JP모건 체이스를 거쳐 129억 달러를 빌려주었고, 3월 16일 베어스턴스는 JP모건에 넘어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이 인수를 돕기 위해 「메이든 레인」이라는 회사를 세워 베어스턴스의 팔리지 않는 자산 약 300억 달러를 사들였다. 1년 전 주당 178달러이던 주식은 처음 2달러, 이어 10달러에 넘어갔다. 11 4 16

9월 7일 연방주택금융청은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절반을 소유하거나 보증하던 정부 후원 기업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공적 관리(컨서버터십)에 넣었다. 두 회사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과 채권은 5조 달러가 넘었고, 재무부는 최대 2천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일주일 뒤인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주말 동안 연방준비제도·재무부·증권거래위원회가 대형 금융회사 대표들을 불러 민간 인수를 주선했지만 실패했고, 베어스턴스 때와 달리 정부는 보증을 서지 않았다. 자산 6천억 달러가 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파산이었다. 같은 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팔렸다. 17 11 12 4

리먼의 파산은 공황을 불렀다. 이튿날인 9월 16일 연방준비제도는 신용부도스와프 담보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 AIG에 850억 달러를 빌려주는 대가로 지분 79.9%를 넘겨받았다. AIG가 무질서하게 쓰러지면 금융 체계 전체가 흔들린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날 리먼 기업어음을 들고 있던 대형 머니마켓펀드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가 한 주에 1달러라는 원금을 지키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9월 17일 하루 동안 머니마켓펀드에서 1,440억 달러가 빠져나가 기업들이 급여와 운영 자금을 대던 단기 자금 시장이 얼어붙었다. 9월 21일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연방준비제도의 보호를 받으려고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고, 9월 26일 워싱턴 뮤추얼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은행 파산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넘어갔다. 18 11 4

영국정부와 중앙은행은 무너지는 금융을 어떻게 떠받쳤나? {usa}

9월 18일 재무장관 헨리 폴슨과 연방준비제도 의장 벤 버냉키는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등 의회 지도부에게 신용 시장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경고하고, 부실 주택담보 자산을 사들일 7천억 달러를 요구했다. 9월 29일 하원은 이 긴급경제안정법안을 225 대 208로 부결했고, 그날 다우 지수는 777.68포인트(6.98%) 떨어졌다. 법안은 수정을 거쳐 10월 3일 하원을 통과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같은 날 서명했다. 이렇게 생긴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은 처음에는 은행의 부실 자산을 사들이려 했지만, 10월 14일 2,500억 달러로 은행 주식을 직접 사 자본을 넣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무너지면 경제 전체가 무너질 만큼 커서 국가가 살릴 수밖에 없다는 「대마불사」가 이 구제금융의 논리였다. 4 19 20

자본을 직접 넣는 방식은 영국이 먼저 썼다. 10월 7일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의 주가가 35% 폭락하자 회장은 재무장관 앨리스터 달링에게 은행이 몇 시간 안에 돈이 바닥난다고 알렸다. 고든 브라운 정부는 10월 8일 은행 자본 확충과 은행 채무 정부 보증을 담은 대책을 내놓았고, RBS와 노던록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 영국 모델을 유럽 각국과 미국이 따랐다. 10월 8일에는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미국 증시 개장 전에 동시에 금리를 내렸다. 11월 23일 미국 정부는 시티그룹이 가진 약 3,060억 달러어치 부동산 관련 자산의 손실을 떠안기로 하고 200억 달러를 더 넣었으며, 12월에는 TARP 자금이 제너럴 모터스와 크라이슬러에도 돌아갔다. 21 22 4 19 11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만으로는 모자라 새 수단을 꺼냈다. 연방준비제도는 2007년 9월 5.25%이던 정책금리를 2008년 12월 16일 0~0.25%까지 내렸고, 이례적으로 낮은 금리를 「한동안」 유지하겠다고 밝혀 앞으로의 금리 경로를 미리 알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시작했다. 금리를 더 내릴 수 없게 되자 2008년 11월 25일 정부 후원 기업 채권 1천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 5천억 달러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고, 2009년 3월에는 장기 국채 3천억 달러 매입을 더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장기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장기 금리를 누르는 정책을 양적완화라 한다. 첫 번째 양적완화(QE1)로 연방준비제도가 사들인 장기 자산은 약 1조 7,500억 달러였다. 잉글랜드 은행도 2009년 3월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6 23 24 25

재정 지출도 동원되었다. 2009년 2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법(미국 경기회복 및 재투자법)에 서명했다. 중국 국무원은 2008년 11월 9일 2010년까지 철도·도로·공항 같은 기반 시설과 사회복지에 4조 위안(5,860억 달러)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돈을 써 무너진 수요를 메우는 이 처방은 대공황 뒤 케인스주의가 내세운 것이었다. 2008년 4분기에 미국·유럽·영국 중앙은행이 사들인 국채와 민간 부실 자산은 2조 5천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유동성 공급이 되었다. 26 27 4

대한민국위기는 어떻게 세계로 번졌고, 한국은 어떤 일을 겪었나? {iceland}

미국 밖에서 가장 크게 무너진 나라는 아이슬란드였다. 카우프싱·란즈방키·글리트니르 세 은행은 국제 단기 자금 시장에서 빌린 돈으로 몸집을 불려, 2008년 2분기 말 자산이 국내총생산의 11배를 넘었다. 은행이 나라보다 훨씬 크니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 10월 세 은행이 모두 쓰러졌고, 영국 정부는 반테러법 조항을 들어 란즈방키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아이슬란드 밖에서도 50만 명 넘는 예금자가 아이슬란드 은행 해외 지점의 계좌를 쓸 수 없게 되었고, 인터넷 예금 「아이스세이브」에 돈을 맡긴 영국·네덜란드 예금자의 보상을 두고 「아이스세이브 분쟁」이 이어졌다. 아이슬란드는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대출을 받았고, 2009년 1월 시위 속에 정부가 무너졌다. 28 4

위기는 무역과 자금 흐름을 타고 퍼졌다. 2000~2007년 세계 소비 증가의 3분의 1 넘게를 미국 소비가 차지했으므로, 미국 가계가 지갑을 닫자 수출국들이 곧바로 타격을 입었다. 2009년 1분기 국내총생산은 연율로 독일 14.4%, 일본 15.2%, 유로 지역 9.8%, 멕시코 21.5% 줄었다. 10월 24일에는 투자자들이 달러·엔·스위스 프랑으로 몰리면서 신흥국 통화가 폭락하는 통화 위기가 번졌고, 여러 신흥국이 국제통화기금에 도움을 청했다. 유럽에서는 이 금융위기가 2009년 말 그리스 국가부채 위기로 시작된 유로존 위기로 이어졌다. 4

한국도 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2008년 9월 9일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 협상을 보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리먼 주가는 하루에 45% 떨어졌다.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에는 값이 떨어지던 패니메이·프레디맥 채권이 많이 들어 있어 외환위기 우려가 커졌다. 원화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크게 흔들려 달러 대비 34% 떨어졌다. 2008년 4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3.4%로 10년 만의 마이너스였고, 2009년 1월 수출은 1년 전보다 33.8%, 그 가운데 자동차는 55.9%, 반도체는 46.9% 줄었다. 12 29 30

2008년 10월 29일 연방준비제도는 한국은행·브라질 중앙은행·멕시코 중앙은행·싱가포르 통화청과 각각 최대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필요할 때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 쓸 수 있는 약정으로, 연방준비제도는 이미 유럽중앙은행·잉글랜드 은행·일본은행 등 10개 중앙은행과 같은 약정을 맺고 있었다. 이 약정은 시장이 두려워하던 달러 부족에 대한 안전판이 되었다. 한국 경제는 재정 지출과 금리 인하에 힘입어 2009년 1분기 0.1% 성장으로 기술적 경기 후퇴를 가까스로 피했고, 2009년 연간 성장률은 0.2%였다. 한국은 2009년 G20 의장단의 일원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무역·투자 장벽을 새로 세우지 말자는 「현상 동결」 선언을 제안했다. 31 30 32 33

위기에 맞서 G20 정상회의가 처음 열렸다. 2008년 11월 14~15일 워싱턴에서 열린 첫 정상회의는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공통 인식과 금융 규제 개혁 원칙을 담은 선언을 내놓았다. 2009년 4월 2일 런던 정상회의는 국제통화기금 재원 확충 등 국제 금융과 무역을 떠받칠 1조 1천억 달러를 합의했다. 그때까지 선진국 7개국(G7)이 맡던 세계 경제 조정 자리를 중국·인도·브라질·한국 등 신흥국을 포함한 G20이 나누어 맡게 된 것이다. 33 34

미국대침체는 사람들의 삶에 무엇을 남겼나?

미국 경제는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대침체」라 불린 경기 후퇴를 겪었다. 실질 국내총생산은 4.3% 줄어 전후 최대의 감소였고, 실업률은 2007년 12월 5%에서 2009년 10월 10%로 올랐다. 일자리는 약 870만 개가 사라졌다. 집값은 2006년 중반 정점에서 2009년 중반까지 평균 30% 떨어졌고, 미국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은 2007년 약 69조 달러에서 2009년 55조 달러로 줄었다. 빈곤율은 2007년 12.5%에서 2010년 15.1%로 올랐다. 주식을 가진 부유층의 자산은 이후 증시 회복과 함께 돌아왔지만, 집이 재산의 전부였던 가계는 압류로 그 재산을 잃었고 흑인 주택 보유 가계는 백인보다 더디게 회복해 인종 간 자산 격차가 커졌다. 6 4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계의 책임은 거의 묻히지 않았다. 위기로 감옥에 간 은행가는 47명이었는데 그 절반 넘게가 아이슬란드 사람이었고, 미국에서는 손실을 숨기려 채권 가격을 조작한 크레디트스위스의 은행가 한 명뿐이었다. 구제금융을 받은 AIG가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일은 큰 반발을 샀다. 리먼 브라더스의 리처드 펄드는 2000년부터 파산까지 4억 8,4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규제는 다시 강화되었다. 2010년 7월 21일 서명된 도드-프랭크법은 소비자금융보호국과 금융안정감독위원회를 만들고, 예금을 받는 은행의 자기 계정 투기를 제한하는 볼커 룰을 넣고, 파생상품을 규제받는 청산소에서 거래하게 했다. 국제적으로는 은행의 자본과 유동성 기준을 높인 바젤 III가 채택되었다. 4 35 36

분노는 거리로 나왔다. 2011년 9월 17일 뉴욕 금융가의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경제적 불평등과 대기업의 탐욕, 금융과 돈이 정치에 끼치는 힘에 항의하며 59일 동안 공원을 점거했다.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는 가장 부유한 1%와 나머지 사이의 소득·재산 격차를 겨냥했다. 참가자들은 총회에서 합의로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고, 11월 15일 공원에서 강제 해산된 뒤에는 은행과 압류된 집, 대학을 점거하는 쪽으로 옮겨 갔다. 유럽에서는 2008년 12월 그리스 폭동과 2009년 런던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가 먼저 있었다. 37 4

주류 경제학과 케인스주의는 위기의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나?

미국 의회의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는 2011년 1월 보고서에서 위기가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위원회가 꼽은 원인은 금융 규제와 감독의 광범위한 실패, 대형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와 위험 관리 실패, 과도한 차입과 위험한 투자, 주택담보대출 기준의 붕괴와 증권화, 신용부도스와프를 비롯한 장외 파생상품의 탈규제, 신용평가사의 실패였다. 다만 보고서는 민주당 추천 위원 6명의 찬성으로 채택되었고 공화당 추천 위원 4명은 따로 반대 의견을 냈다. 앨런 그린스펀은 2008년 10월 23일 의회 청문회에서 대출 기관의 이기심이 주주의 자본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충격적인 불신 상태」에 빠졌다며, 자신의 세계관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인정했다. 4 38 39

반대 방향의 설명도 있었다. 론 폴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 쪽 논자들은 규제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연방준비제도가 2000년대 초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눌러 신용 거품을 만들었고, 패니메이·프레디맥 같은 정부 기관이 주택 보유를 지나치게 넓혔다고 보았다. 저소득층 대출을 장려한 지역재투자법(1977)이 위기를 불렀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연방준비제도 경제학자들은 2009년 서브프라임 대출 가운데 이 법과 관련된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 성과도 다른 서브프라임 대출과 비슷했다고 분석했다. 글래스-스티걸 폐지의 영향을 두고도,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투자은행 문화가 상업은행을 삼키게 했다고 본 반면 버냉키는 위기를 부른 활동 대부분이 원래 그 법이 막던 것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4 1

위기 뒤 가장 많이 다시 읽힌 경제학자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난 하이먼 민스키였다. 그는 빚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투자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이자와 원금을 다 갚는 「헤지 금융」, 이자만 갚고 원금은 계속 새로 빌려 돌려막는 「투기 금융」, 자산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만 기대어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폰지 금융」이다. 오랜 안정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들어 빚이 점점 위험한 쪽으로 옮겨 가고, 그래서 안정 자체가 불안정을 낳는다는 것이 그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다. 재닛 옐런은 2009년 4월 모두가 한꺼번에 빚을 줄이려 할 때 자산값이 무너지는 「부채 축소의 역설」을 민스키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40 4

케인스주의 쪽은 이 「부채 축소의 역설」을 개인에게 합리적인 절약이 모두가 함께하면 수요를 줄여 경기 후퇴를 깊게 하는 「절약의 역설」과 같은 구조로 보고, 정부 지출로 수요를 메워야 한다고 했다. 폴 크루그먼은 그림자 금융에서 일어난 뱅크런을 「일어난 일의 핵심」이라 부르며, 은행처럼 움직이는 모든 활동을 규제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대공황 연구로 202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버냉키는 2015년 회고록 『행동하는 용기』에서 연방준비제도가 다른 기관들과 함께 벌인 전례 없는 조치만이 대공황보다 큰 파국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위기의 뿌리가 금융시장의 탈규제에 있다고 보았다. 4 41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위기를 어떻게 읽었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둘로 갈렸다. 한쪽은 위기가 자본주의 생산 과정의 장기 경향, 특히 전후 수십 년 동안 떨어진 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윤율에서 나왔다고 본다. 로버트 브레너, 안와르 샤이크, 마이클 로버츠, 굴리엘모 카르케디, 앤드루 클라이먼, 크리스 하먼이 이쪽이다. 다른 쪽은 위기의 금융적 차원에 집중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덜 중시하는데, 코스타스 라파비차스가 대표적이다. 존 벨러미 포스터와 해리 맥도프 같은 《먼슬리 리뷰》 학파와 데이비드 하비는 대중의 과소소비와 수요 부족, 시장 포화에 따른 장기 정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갈래로 묶이기도 한다. 물론 두 입장은 깔끔하게 나뉘지 않아, 이윤율을 강조하는 쪽도 금융을, 금융을 강조하는 쪽도 생산을 함께 다룬다. 42 43 4

브레너는 2009년 1월 한국 《한겨레》의 정성진과 한 인터뷰에서 이 위기를 단순한 금융위기로 부르는 데 반대했다. 그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자본 투자의 수익률이 깊고 오래 떨어졌는데, 주된 원인은 독일과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 신흥 공업국, 동남아시아의 「호랑이」들, 마지막으로 중국이 차례로 세계 시장에 들어오면서 생긴 세계 제조업의 만성적 과잉 설비였다. 수요가 모자라자 각국 당국은 빚을 늘리도록 부추겼고, 연방준비제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주식과 주택의 거품을 차례로 키웠다. 브레너는 공공 적자를 민간 적자가 대신한 이 방식을 「자산 가격 케인스주의」라 불렀다. 그에게 이 위기는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과 그 회복 실패에 뿌리를 둔 「마르크스적 위기」였다. 44

클라이먼은 2011년 『자본주의적 생산의 실패』에서 마르크스가 「가장 중요한 운동 법칙」이라 부른 이윤율 저하를 대침체 설명의 중심에 되돌리려 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불황에서 끝내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정책 당국이 그 정체를 더 많은 빚을 쏟아부어 막으며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인위적인 호황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는 1982년 이후 이윤율이 회복되었다는 다른 연구자들의 계산이 경기 순환과 장기 추세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마이클 로버츠도 이윤율 하락이 「신용이 더는 이윤을 떠받칠 수 없게 된 2007년에 결국 신용경색을 촉발했다」고 썼다. 43 4

라파비차스는 2008년 겨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위기가 마르크스가 분석한 19세기 공황과도, 1970년대 위기와도 다르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은행이 생산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기업이 만든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로 받았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점점 자기 이윤으로 투자하며 은행에 덜 기대게 되자, 은행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과 직접 이어지지 않는 곳, 특히 노동자 가계의 대출에서 이윤을 찾았다. 그는 2013년 『생산하지 않고 이윤 내기』에서 이를 「금융적 수탈」이라 부르고, 이렇게 바뀐 자본주의를 「금융화된 자본주의」라 불렀다. 거품이 꺼지면 빚을 진 노동자들이 먼저 집을 잃고, 그 소비 감소가 실물 축적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45 42

하비는 위기 직전인 2008년 가을 《뉴 레프트 리뷰》에 실은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계속 재투자해야 하므로 넘쳐나는 자본을 흡수할 이윤 나는 투자처를 끝없이 찾아야 하고, 그 필요가 자본주의의 정치를 형성한다고 썼다. 그 흡수처 가운데 하나가 도시화와 부동산이었다. 2010년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에서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왜 2008년 위기로 이어졌는지를 긴 시야에서 다루며, 규제되고 윤리적인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공통적으로 위기를 은행가 몇 사람의 탐욕이나 규제 실수가 아니라 자본 축적이 부딪힌 한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주류 해석과 갈린다. 46 47

결과

미국 경기 후퇴는 2009년 6월 끝났지만 회복은 더뎠고, 집을 잃은 가계와 저소득층, 흑인 가계의 손실은 오래 남았다. 위기는 2009년 말부터 유로존 위기로 이어졌다. 미국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으로, 세계는 바젤 III로 금융 규제를 다시 강화했고, G20이 세계 경제 조정의 장이 되었다. 구제금융과 책임 회피에 대한 분노는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으로 터져 나왔다.

연표와 지도

월가 (뉴욕) 레이캬비크 뉴캐슬 런던 파리 베이징 워싱턴 서울 11 레이캬비크 4 뉴캐슬 12 런던 18 런던 3 파리 20 주코티 공원 5 월가 (뉴욕) 7 월가 (뉴욕) 13 베이징 1 워싱턴 2 워싱턴 6 워싱턴 8 워싱턴 9 워싱턴 10 워싱턴 14 워싱턴 15 워싱턴 16 워싱턴 17 워싱턴 19 워싱턴
  1. 11999.11.12미국
    그램-리치-블라일리법 제정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은행과 증권회사의 결합을 막던 글래스-스티걸법 조항을 폐지했다.

  2. 22000.12.21미국
    상품선물현대화법 서명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장외 파생상품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 밖에 두는 상품선물현대화법이 서명되었다.

  3. 2007.04.02미국
    뉴센추리 파산

    서브프라임 대출과 증권화를 전문으로 하던 미국의 뉴센추리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4. 32007.08.09프랑스
    BNP 파리바 펀드 환매 중단

    BNP 파리바가 「유동성의 완전한 증발」로 값을 매길 수 없다며 자산 22억 달러 규모 펀드 세 곳의 환매를 막았다.

  5. 42007.09.14영국
    노던록 예금 인출 사태

    노던록이 잉글랜드 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에 예금자들이 지점으로 몰려 돈을 빼 갔다.

  6. 52008.03.16미국
    베어스턴스, JP모건에 매각

    자금이 바닥난 베어스턴스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원 아래 JP모건 체이스에 인수되기로 했다.

  7. 62008.09.07미국
    패니메이·프레디맥 공적 관리

    연방주택금융청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공적 관리에 넣고, 재무부가 최대 2천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8. 72008.09.15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

    주말 동안의 민간 인수 협상이 실패하자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다우 지수는 504.48포인트 떨어졌다.

  9. 82008.09.16미국
    AIG 구제

    연방준비제도가 AIG에 최대 850억 달러를 빌려주고 지분 79.9%를 넘겨받기로 했다. 같은 날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가 원금 1달러를 지키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10. 92008.09.29미국
    하원, 구제법안 부결

    하원이 7천억 달러의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을 담은 긴급경제안정법안을 225 대 208로 부결했고, 다우 지수가 777.68포인트 떨어졌다.

  11. 102008.10.03미국
    긴급경제안정법 제정

    하원이 수정된 긴급경제안정법을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이 같은 날 서명했다.

  12. 112008.10.06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긴급법

    아이슬란드 의회가 금융감독청이 금융기관을 장악하게 하는 긴급법을 만들었고, 이어진 며칠 동안 세 대형 은행이 모두 관리에 들어갔다.

  13. 122008.10.08영국미국
    영국 은행 구제책과 세계 동시 금리 인하

    영국 정부가 은행 자본 확충과 채무 보증을 담은 대책을 발표했고,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미국 증시 개장 전에 함께 금리를 내렸다.

  14. 2008.10.29미국대한민국
    한미 통화 스와프

    연방준비제도가 한국은행·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 중앙은행과 각각 최대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15. 132008.11.09중국
    중국 4조 위안 경기 부양책

    중국 국무원이 2010년까지 기반 시설과 사회복지에 4조 위안(5,860억 달러)을 쓰는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16. 142008.11.14–15미국영국중국대한민국독일프랑스
    첫 G20 정상회의

    G20 정상들이 워싱턴에서 처음 모여 위기의 원인과 금융 규제 개혁 원칙을 담은 선언을 채택했다.

  17. 152008.11.25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주택저당증권 매입 발표

    연방준비제도가 정부 후원 기업 채권 1천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 5천억 달러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18. 162008.12.16미국
    정책금리 0~0.25%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연방기금금리 목표를 0~0.25%로 내리고 이례적으로 낮은 금리를 한동안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19. 172009.02.17미국
    미국 경기회복법 서명

    오바마 대통령이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법에 서명했다.

  20. 182009.04.02영국미국중국대한민국독일프랑스
    G20 런던 정상회의

    G20 정상들이 런던에서 국제 금융과 무역을 떠받칠 1조 1천억 달러에 합의했고, 회의장 밖에서는 은행가 상여금과 경제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1. 192010.07.21미국
    도드-프랭크법 제정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 규제를 개편하는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에 서명했다.

  22. 202011.09.17–11.15미국
    월가 점령 시위 시작

    시위대가 뉴욕 금융가의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11월 15일 강제 해산될 때까지 59일 동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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