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르키스탄 군단을 이끌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더 이상의 협력도 거부한다. 내 결정의 모든 결과를 나는 알고 있다.” — 리벤트로프에게 보낸 편지, 1941년
무스타파 쇼카이는 러시아 제국 붕괴 후 중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자치 정부인 코칸트(투르키스탄) 자치 정부를 이끈 카자흐 민족주의 정치 지도자였다. 페트로그라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국가두마 무슬림 분과 서기로 활동하며 제정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식민 정책에 맞섰다. 1918년 볼셰비키가 코칸트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여 《야쉬 투르키스탄》 등 간행물로 투르키스탄 독립 사상을 국제적으로 전파했으며, 1941년 나치가 투르키스탄 군단 조직을 제안하자 포로수용소의 실태를 목격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 직후 베를린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나,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 선구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1923년 6월, 스탈린이 '범튀르크주의'라고 비난하자 리스쿨로프는 연단에서 반박했다: "몇 달 전만 해도 동지 스탈린이 술탄갈리예프를 혁명적 공산주의자라고 칭송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은 정치적 편의입니다."
카자흐인 볼셰비키 혁명가로 투르키스탄 자치공화국의 핵심 지도자였다. 중앙아시아 투르크어권 민족들이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라고 주장하며 스탈린의 민족 획정에 맞섰고, 1923년 제4차 민족공화국 간부회의에서 '범튀르크주의'라는 비난을 공개 반박했다. RSFSR 인민위원회의 부의장(1926~1937)으로 투르크시브 철도와 카라간다 중공업 단지를 추진했으며, 1932~1933년 카자흐 대기근 때 스탈린에게 직서해 골로쇼킨의 강제집산화가 낳은 참상을 알리고 식량 원조를 이끌어냈다. 1938년 총살, 1956년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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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14메르케 러시아-카자흐 기숙학교 → 피슈페크 농업학교 졸업
1916–1917중앙아시아 민족해방봉기 참가, 체포; 타슈켄트 사범학교 수학; 메르케에서 카자흐 청년 혁명조직 '부하라' 창설
24년간 카자흐스탄을 브레즈네프의 동반자로 이끌고, 해임으로 젤톡산 봉기를 촉발한 공화국 건설자
1986년 2월, 나자르바예프의 비판 보고가 있은 후 쿠나예프는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나자르바예프의 해임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오히려 쿠나예프 자신에 대한 불만을 전하자, 24년간 카자흐스탄을 이끌어온 노지도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내가 직접 물러나겠소."
광산 기술자로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 24년 가까이 재임한, 소련 공화국 지도자 중 가장 오래 권좌에 있던 인물이다. 브레즈네프와의 친교를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을 소련 3대 경제권으로 끌어올렸고, 흐루쇼프의 남부 영토 이전 시도를 저지하여 공화국의 영토 보전을 지켰다. 전연방 정치국 정위원(1971–1987)으로서 중앙 무대에도 진출했으나, 1986년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전격 해임되면서 알마아타에서 대규모 민중 시위: 젤톡산(12월) 사건이 촉발되었다.
1991년 12월 8일, 옐친 측이 벨로베즈 숲에서 전화로 합류를 권했지만 그는 비행기를 돌리지 않았다. 여드레 뒤, 그의 카자흐스탄은 소련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독립을 선언한 공화국이 되었고, 소련의 공식 사망 선고문(알마아타 의정서)은 그의 수도에서 서명되었다.
제철소 용광로 노동자에서 출발해 카자흐스탄 총리와 당 제1서기를 거쳐 1990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된 인물로, 노보오가료보 협상에서 신연방조약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였다. 1991년 12월 벨로베즈 협정에 불참했고, 카자흐스탄은 소련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독립을 선언한 공화국이 되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집권하며 핵무기 포기와 수도 이전, 다방면 실용 외교로 신생국의 기틀을 놓았지만, 권위주의 통치와 개인숭배, 세습적 부패의 비판도 함께 남겼다. 201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실권을 쥐다 2022년 1월 소요 사태로 완전히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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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69카라간다 금속 콤비나트 노동자 (용광로, 주조기, 배합원, 가스 담당 등). 1962년 공산당 입당. 1967년 카라간다 금속 콤비나트 부설 고등기술학교 졸업.
1969–1973테미르타우 시 당·콤소몰 기관에서 활동.
1973–1978카라간다 금속 콤비나트 당위원회 서기 — 3만 명 규모 사업장의 사실상 2인자.
1978–1979카라간다 주 당위원회 서기, 이후 제2서기.
1979–1984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산업·운수·통신 담당).
1984–1989카자흐 SSR 각료회의 의장 (총리). 44세에 소련 최연소 공화국 정부 수반.
1989–1991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1990년 카자흐 SSR 대통령 겸임. 1990–1991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1990–2019카자흐스탄 대통령 (1990년 4월 카자흐 SSR 대통령, 1991년 12월 독립 후 초대 대통령). 1991, 1999, 2005, 2011, 2015년 재선. 2019년 3월 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