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6–2015.08.14

유로존 위기와 그리스

하나의 통화를 쓰면서 재정은 따로 꾸린 유로는 어떤 규칙 위에 세워졌나? 독일의 흑자와 남유럽의 적자는 어떻게 쌓였고, 2008년의 충격은 왜 그리스에서 국가부채 위기로 터졌나? 트로이카와 유럽중앙은행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막았나? 긴축은 그리스 사회에 무엇을 남겼고, 광장의 운동과 시리자 정부, 「오히」 국민투표는 왜 3차 구제로 끝났나? 위기의 원인을 재정 방만, 국제수지 불균형, 최적 통화 지역 이론, 마르크스주의와 좌파는 어떻게 다르게 설명하나?

1999년 출범한 유로는 금리와 통화를 하나로 묶었지만 재정 통합 없이 구제를 금지했다. 독일이 임금을 억제해 흑자를 쌓는 동안 남유럽은 값싼 외국 자본으로 적자를 키웠다. 2009년 10월 그리스 새 정부가 적자를 GDP의 12.7%로 고쳐 발표하자 국채 시장이 무너졌고, 2010년 5월부터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의 트로이카 채권단이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키프로스에 긴축을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그리스는 GDP의 4분의 1을 잃었고, 2015년 시리자 정부는 국민투표에서 긴축을 거부하고도 3차 구제를 받아들였다.

유로는 어떤 규칙 위에 세워졌나?

1992년 유럽공동체 12개국이 맺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로 하고 그 문턱으로 「수렴 기준」을 정했다. 물가 상승률과 금리, 환율 안정에 더해 재정에는 두 숫자가 걸렸다. 한 해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를, 정부 부채는 GDP의 60%를 넘지 말아야 했다. 유로는 1999년 1월 1일 장부상의 통화로 먼저 출범했고, 2002년 1월 1일 지폐와 동전이 나오면서 참가국의 옛 통화를 대신했다. 그리스는 2001년 1월에 합류했다. 이 나라들은 이때부터 환율을 따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1 2 3

돈을 찍는 권한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이 넘겨받았다. 조약은 이 은행의 첫째 임무를 물가 안정으로 못 박았고, 선출된 정치인에게서 독일 연방은행(분데스방크)보다도 더 독립하게 했다. 비판자들은 마스트리흐트가 완전고용을 위한 수요 관리 대신 통화와 재정 지출을 억눌러 물가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뒤집힌 케인스주의」를 조약에 새겼다고 보았다. 조약은 또 두 가지를 막았다. 제123조는 중앙은행이 정부에 돈을 대 주는 것(통화 금융)을 금지했고, 제125조 「구제 금지 조항」은 한 회원국의 빚을 다른 회원국이나 연합이 떠안지 못하게 했다. 빚은 끝까지 각 나라의 책임이어야 했다. 1 3 4

통화는 하나가 되었지만 재정은 하나가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한 주가 불황에 빠지면 그 주 GDP가 1달러 줄 때마다 연방 재정을 통해 28센트가 메워진다. 유로존에는 이런 자동 이전 장치가 없었다. 각국 재정을 묶는 것은 1990년대 중반 독일 재무장관 테오 바이겔이 제안한 「안정 및 성장 협약」뿐이었다. 그런데 3% 규칙을 처음 어긴 프랑스와 독일에는 제재가 내려지지 않았고, 2005년에는 두 나라의 압력으로 규칙이 느슨해졌다. 큰 나라에는 지켜지지 않고 작은 나라에만 겨누어진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따라다녔다. 5 6

그리스유로 안에서 중심과 주변은 어떻게 갈라졌나? {germany}

유럽중앙은행은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도 금리를 하나밖에 정할 수 없었다. 물가가 낮은 독일에서는 실질 금리(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값)가 높았고, 물가가 높은 남유럽에서는 낮았다. 그래서 독일의 투자자에게는 남쪽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남유럽 사람과 기업에게는 돈을 빌리는 것이 이득이었다. 시장은 그리스를 홀로일 때보다 유로존 회원국일 때 덜 위험하다고 보았다. 연합이 그리스의 재정을 다잡고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그리스 경제는 외국 자본이 밀려들면서 해마다 평균 4.2% 성장해 유로존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들었다. 4 7

돈이 흘러든 쪽에서는 임금과 물가가 생산성보다 빨리 올랐다. 주변국의 노동비용이 독일 같은 중심국보다 더 오르자 그리스의 경쟁력이 깎였고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났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가 상품·서비스 거래와 소득 거래로 해외와 주고받은 돈의 차이로, 적자가 나면 그만큼 외국에서 빌리거나 투자를 받아 메워야 한다. 그리스는 2000~2011년 GDP의 평균 9.1%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를 냈고,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는 1999년 GDP의 5% 아래에서 2008~2009년 15% 안팎까지 커졌다. 2009년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의 무역 적자가 수백억 달러씩 쌓인 반면, 독일은 1,886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7 4

독일 쪽에서는 임금이 억눌렸다. 슈뢰더 정부는 2002년 하르츠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하르츠 I~IV」 노동시장 개혁을 차례로 시행했다. 유럽연합 고용 담당 집행위원 라슬로 언도르는 뒤에 독일이 유로존 안에서 「임금 덤핑」으로 수출 흑자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흑자로 번 돈은 다시 주변국으로 빌려 나갔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2009년 12월까지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에 가진 채권은 7,040억 달러로, 그 은행들의 자본 총액보다 훨씬 많았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는 이렇게 들어온 신용이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 8 7 4

아일랜드2008년의 충격은 어떻게 그리스 부채 위기가 되었나? {greece}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번지자 중심국에서 주변국으로 가던 돈줄이 줄어들었다. 은행이 흔들리자 각국 정부는 은행을 살리는 데 공적 자금을 넣었다. 아일랜드 재무장관 브라이언 레니헌은 2008년 9월 29일 6대 은행의 예금자와 채권자에게 2년 동안 정부 보증을 약속했다. 아일랜드 은행들은 부동산 개발업자와 주택 구입자에게 빌려준 돈에서 약 1천억 유로를 잃었고, 2007년 흑자였던 아일랜드 재정은 2010년 GDP의 32%에 이르는 유로존 역사상 최대의 적자로 돌아섰다. 아일랜드의 위기는 정부의 과소비가 아니라 은행 빚을 국가가 떠안은 데서 왔다. 4 9

그리스에서는 2009년 10월 총선에서 사회주의 정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이 43.92%를 얻어 이겼고, 10월 6일 요르고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었다. 새 정부는 이전 정부가 6~8%로 예측했던 2009년 재정 적자를 GDP의 12.7%로 고쳐 발표했다. 유럽연합 통계청 방식으로 다시 계산한 최종치는 15.4%였고, 정부 부채는 GDP의 127%로 올라갔다. 그리스 통계는 유로 가입을 신청한 1999년부터 신뢰를 잃고 있었다. 골드만삭스 등이 짜 준 통화 스와프 같은 파생상품 거래로 빚의 크기를 숨긴 일도 드러났다. 시장은 그리스 국채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0 7 4

국채 금리가 오르면 빚을 갚기 위해 새로 빌리는 비용도 오르므로, 금리 상승 자체가 부도 가능성을 높이고 그것이 다시 금리를 올리는 자기실현적 공황이 생긴다. 그리스와 독일 국채 금리의 차이(스프레드)와 부도 위험을 보험하는 신용부도스와프 값이 함께 치솟았다. 유로 안에서는 다른 나라처럼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빚 부담을 줄일 수도 없었다. 2010년 4월 말 신용평가사들이 그리스 국채를 투기 등급으로 내리자 민간 자금 시장이 닫혔다. 파판드레우는 4월 23일 카스텔로리조섬에서 유럽연합에 지원 장치를 가동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3 7 10

이탈리아트로이카와 구제 기구는 무엇을 요구했나? {greece} {ireland} {portugal}

2010년 5월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3년 동안 1,100억 유로를 빌려주기로 했다. 이 세 기관을 그리스와 다른 채무국 사람들은 「트로이카」라 불렀다. 돈은 조건부였다. 그리스는 긴축(정부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 구조 개혁, 국유 자산 민영화를 약속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해야 했고, 대출금은 분할로 나뉘어 트로이카 채권단이 이행을 점검할 때마다 풀렸다. 금리는 5.5%였다. 빌린 돈은 대부분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갚는 데 쓰였다. 처음 은행이 쥐고 있던 그리스 채권은 이렇게 점차 공적 채권자에게 넘어갔다. 7 11

위기가 다른 나라로 옮겨붙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 27개국은 5월 9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만들기로 했다. 회원국 보증을 담보로 채권을 내 4,400억 유로를 빌려줄 수 있는 기구로, 유럽연합 예산을 담보로 한 600억 유로와 IMF의 최대 2,500억 유로를 더해 7,500억 유로의 안전망을 이루었다. 유럽중앙은행도 5월 10일 금지되어 있던 국채 매입에 손을 대, 유통시장에서 남유럽 국채를 사들이는 「증권시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흘 전까지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그런 매입은 없다고 부인하던 터였다. 4 3

아일랜드가 다음이었다. 유럽중앙은행은 트리셰가 2010년 10월과 11월 아일랜드 재무장관에게 보낸 비밀 서한에서 긴급 유동성 지원을 끊을 수 있다고 알리며 구제 요청을 압박했고, 국유화된 은행의 채권자에게 손실을 지우지 말라고 고집했다. 아일랜드는 11월 29일 675억 유로의 구제에 합의하고 3% 아래로 적자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포르투갈은 2011년 상반기 780억 유로를 요청했다. 유럽중앙은행은 그 사이 2011년 4월과 7월 금리를 1%에서 1.5%로 올렸다. 7월 21일 브뤼셀 정상회의는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의 상환 기간을 늘리고 금리를 3.5%로 낮추었다. 3 4 7

그리스의 빚은 줄지 않았다. 2011년 10월 26일 유로존 정상들은 민간 은행이 그리스 국채의 50%를 탕감받게 하고 구제기금을 약 1조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파판드레우가 10월 31일 이 합의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하자, 유럽 지도자들은 칸 G20 회의에서 투표를 유로존 잔류 여부에 대한 투표로 만들라고 압박했고, 그는 11월 3일 계획을 거두었다. 그는 11월 10일 물러났고, 유럽중앙은행 부총재였던 루카스 파파디모스가 연립정부를 이끌었다. 이탈리아에서도 국채 금리 압박 끝에 11월 12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하고 경제학자 마리오 몬티의 기술관료 정부가 들어섰다. 4 10

2012년 2월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가 합의되었고, 민간 채권자는 액면가의 53.5%를 깎는 손실을 받아들였다. 위기 대응은 영구 기구와 더 엄격한 규칙으로 이어졌다. 2011년 12월 영국을 뺀 유럽연합 국가들은 지출과 차입에 상한을 두고 어기면 제재하는 「재정 협약」에 합의했고, 5천억 유로 규모의 상설 구제기금 유럽안정화기구(ESM)가 2012년 9월 27일 발효했다. 구제를 금지한 조약 위에서 구제가 이루어진 셈이라, 제125조의 「구제 금지 원칙」은 사실상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4 7

키프로스「무엇이든 하겠다」는 말은 어떻게 위기를 가라앉혔나? {spain}

2011년 11월 1일 이탈리아 은행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가 트리셰의 뒤를 이어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되었다. 그는 12월부터 은행들에 연 1% 금리로 3년 동안 돈을 빌려주는 장기 대출(LTRO)을 두 차례 열어 4,890억 유로와 5,295억 유로를 풀었다. 그래도 2012년 6월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7%에 이르렀다. 스페인은 위기 전 부채가 GDP의 60%로 독일보다도 낮았지만, 주택 거품이 꺼지자 은행 구제에 큰돈을 쏟아부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은 6월 9일 스페인 은행 재자본화에 최대 1천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3 4

2012년 7월 26일 런던의 한 투자 회의에서 드라기는 “우리의 권한 안에서 유럽중앙은행은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믿어 달라,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6일 유럽중앙은행은 그 말을 「전면적 통화 거래(OMT)」라는 제도로 만들었다. 유로존 국가의 만기 1~3년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사전 한도 없이 사들일 수 있게 하되, 그 나라가 EFSF·ESM의 조정 프로그램에 들어가 「엄격하고 실효적인 조건」을 지킬 때에만 사겠다는 것이었다. 분데스방크 총재 옌스 바이트만만 반대표를 던졌다. 12 13 3

OMT는 한 번도 실제로 쓰이지 않았지만, 중앙은행이 끝까지 사 주겠다는 약속만으로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의 국채 금리가 꾸준히 내려갔다. 투자자들이 부도에 거는 내기가 중앙은행을 상대로 한 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보호는 긴축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만 주어졌다. 유럽중앙은행은 그 뒤 금리를 계속 내려 2014년 6월 예금 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었고,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2015년 3월부터 국채를 포함해 매달 600억 유로씩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3 4

그 사이 키프로스가 무너졌다. 키프로스 은행들은 2011년 그리스 국채 탕감으로 220억 유로의 손실 위험을 졌고, 정부는 2012년 6월 25일 지원을 요청했다. 2013년 3월 트로이카와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처음 내놓은 안은 소액 예금까지 포함한 모든 은행 예금에 6.7~9.9%의 일회성 부담금을 물리는 것이었다. 키프로스 의회가 3월 19일 이를 부결하자, 3월 25일 2위 은행 라이키를 닫고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 은행의 보호받지 않는 예금 약 48%를 압류하는 조건으로 100억 유로의 구제가 합의되었다. 은행 손실을 예금자에게 지우는 「베일인」이 처음으로 유로존 국가에 적용된 것이다. 4 14

그리스긴축은 그리스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트로이카가 요구한 처방은 「내적 평가절하」였다.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으니 임금과 물가를 직접 깎아 경쟁력을 되찾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는 2010~2012년 GDP의 9%포인트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기록적인 재정 긴축을 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열두 차례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 개혁 조치가 이어졌고, 그리스의 임금은 2010년 중반부터 2014년까지 20% 가까이 떨어졌다. 2014년에는 이자를 빼면 흑자인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이루었다. 그러나 2차 프로그램은 2012~2014년 민간 노동비용을 15% 더 줄이라고 요구했다. 7

경제는 그만큼 쪼그라들었다. 그리스 GDP는 2008년 2,420억 유로에서 2014년 1,790억 유로로 26% 줄었고, 그리스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 가운데 미국의 대공황보다도 긴 최장기 불황을 겪었다. 빚 자체는 2009~2017년 3천억 유로에서 3,180억 유로로 6%밖에 늘지 않았지만, 분모인 GDP가 줄어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27%에서 179%로 치솟았다. IMF는 2012년 10월, 긴축을 한 나라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계속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발표했다. GDP의 1%를 줄이는 긴축이 GDP를 0.5%가 아니라 0.9~1.7% 줄였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그리스에서 증세와 지출 삭감의 효과를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다. 7 15

고통은 사람들의 삶으로 내려왔다. 그리스 실업률은 2008년 9월 7.5%에서 2012년 5월 23.1%로 올랐고, 같은 기간 청년 실업률은 22.0%에서 54.9%가 되었다. 실업률은 2013년 27%에 이르렀고 2017년에도 22%였다. 2014년 그리스인의 36%가 빈곤선 아래에서 살았고, 2012년 2월에는 지난 한 해 사이 2만 명이 집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한 사람은 2009~2011년 36% 늘었다. 교육받은 젊은이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나라를 떠났다. 스페인 실업률도 27%에 이르렀고, 위기는 유로존 주변국 전체에서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키웠다. 7 15 4

정치도 뒤집혔다. 1977년부터 그리스를 번갈아 다스린 신민주주의당과 PASOK의 양당 체제는 2012년 5월과 6월의 연이은 총선에서 무너졌다. 2009년 44%를 얻었던 PASOK은 2012년 6월 13%로 떨어졌고,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4%에서 27%로 올라 제1야당이 되었다. 신나치 정당 황금새벽당도 0.29%에서 7%로 뛰어 2012~2019년 의회 제3당이 되었다. 유럽 전역에서 이 시기 긴축을 편 정부들은 지지를 잃었고, 연구자들은 재정 긴축이 극단 정당의 득표를 늘리고 투표율을 떨어뜨렸다고 보고했다. 7 15

스페인거리와 광장에서는 누가 긴축에 맞섰나? {greece}

첫 양해각서가 맺어진 직후인 2010년 5월 5일 그리스에서 총파업이 벌어졌다. 아테네에서만 10만 명, 일부 추산으로는 50만 명이 행진했고, 일부는 신타그마 광장의 의사당으로 밀고 들어가려 했다. 그날 시위대 일부가 화염병을 던진 마르핀 은행 지점에서 불이 나 직원 세 명이 숨졌다. 그 전날 그리스 공산당(KKE) 당원들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유럽의 민중이여, 일어서라”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2011년 6월 27일에는 노동조합들이 1974년 이후 처음으로 48시간 총파업에 들어갔다. 16 15

2011년에는 광장 점거가 일어났다. 5월 15일 스페인에서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 같은 누리망 모임이 시작한 「15-M」 운동, 이른바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은 높은 실업과 복지 삭감, 양당 체제, 은행과 부패에 항의하며 광장에 천막을 쳤고, 650만~80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 영향을 받아 그리스에서도 5월 25일부터 정당과 무관한 「분노한 시민 운동」이 신타그마 광장을 점거하고 민중 집회를 열었다. 6월 5일에는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의사당 앞에 모였다. 6월 29일 의회가 300석 가운데 155표로 새 긴축안을 통과시키던 날 경찰은 최루가스로 광장을 진압했고, 8월에 마지막 점거가 해산되었다. 17 16

운동 안의 갈등도 있었다. 2011년 10월 이틀 동안 이어진 총파업 시위에서는 의사당으로 돌진하려던 강경 시위대(주로 아나키스트)와 이를 막아 선 그리스 공산당원들이 충돌해 공산당원 한 명이 숨졌다. 거리의 분노는 선거로 옮겨 갔다. 시리자는 2012년 두 차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그리스 공산당은 2012년 5월 8.5%를 얻었으나 한 달 뒤 6월 총선에서는 지지가 절반으로 줄었다. 16 7 18

독일시리자 정부와 「오히」 국민투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greece}

2015년 1월 25일 총선에서 시리자는 36%를 얻어 300석 가운데 149석을 차지했다. 시리자는 긴축에 반대하는 우파 정당 독립그리스인당(ANEL)과 연립정부를 꾸렸고, 치프라스가 그리스 역사상 가장 젊은 총리가 되었다. 재무장관에는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앉았다. 그는 이전 구제 프로그램들이 빚을 재조정하지 않은 채 새 대출과 가혹한 긴축만 더해 그리스 경제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트로이카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남은 지원을 멈추었고, 2월에 넉 달의 기술적 연장에만 합의했다. 이 무렵 협상 문서에서 채권단은 트로이카 대신 「기관들」이라 불렸다. 19 20 21 7 22

협상은 넉 달 내내 막혔다. 정부가 6월에 낸 두 차례 제안이 모두 거부되자, 치프라스는 6월 27일 새벽 채권단이 6월 25일 내놓은 안을 받아들일지 7월 5일 국민투표로 묻겠다고 발표했다. 유로그룹은 2차 구제가 6월 30일 그대로 끝난다고 밝혔고,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을 더 늘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스는 은행 문을 닫고 자본 통제에 들어갔다. 6월 30일 그리스는 IMF에 갚을 돈을 제때 내지 못한 첫 선진국이 되었다. 7월 5일 61%가 「아니오(오히)」에 투표했고, 「아니오」는 모든 지역에서 이겼다. 7 22

바로 이튿날 바루파키스가 물러났다. 그는 일부 유로그룹 참가자들이 회의에서 자신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총리가 합의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 사임한다며 “나는 채권자들의 혐오를 자랑스럽게 짊어지겠다”고 썼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가 5년 동안 유로존을 「쉬는」 일시적 탈퇴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7월 13일 17시간 협상 끝에 치프라스는 820억~860억 유로의 3차 구제에 합의했다. 부가가치세 인상, 연금 개혁, 지출 자동 삭감 같은 조건은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안보다 더 가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3 24 20 22

그리스 의회는 8월 14일 3차 구제 협약을 222표로 승인했지만, 시리자 의원 40여 명이 반대하거나 기권해 정부는 친유럽 야당의 표에 기대야 했다. 바루파키스는 이 협약을 「그리스의 항복 조건」이라 불렀고,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긴축 요구에는 「이것은 쿠데타다」라는 해시태그로 비판이 쏟아졌다. 유로 탈퇴를 주장하던 라파비차스 같은 시리자 의원들은 8월 민중연합으로 옮겼다. 치프라스는 8월 20일 사임하고 9월 총선에서 다시 이겼지만 투표율은 역대 최저였다. 그의 두 번째 정부는 3차 프로그램의 긴축을 집행했고, 그리스는 2018년 8월 20일 구제 프로그램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났다. 25 20 22 26 27

위기의 원인은 어떻게 설명되나?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방만한 재정」 이야기다. 그리스 정부가 분수에 넘치게 쓰고 통계를 속였으며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재무부 스스로 2004~2009년 명목 생산이 40% 느는 동안 중앙정부 기초 지출은 87% 늘고 세수는 31%만 늘었다고 밝혔다. 2012년 그리스의 지하경제는 GDP의 24.3%로 추산되었다. 트로이카의 긴축 처방은 이 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설명으로는 위기 전 부채가 낮았던 스페인과 흑자였던 아일랜드를 설명하기 어렵다. 블룸버그 사설은 신중한 독일과 방탕한 그리스라는 구도를 두고 “무책임한 대출자 없이는 무책임한 차입자도 없다”고 지적했다. 7 4

두 번째 설명은 국제수지 위기론이다. 위기의 뿌리가 정부 부채보다 경상수지 적자에 있었다는 것으로, 위키백과의 정리에 따르면 이것이 오늘날 합의에 가깝다. 유로가 생기자 자본이 남쪽으로 쏟아져 남유럽의 물가와 임금을 부풀렸고, 2008년 뒤 그 흐름이 갑자기 멈추자(「돌연 정지」)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없는 나라들이 소득을 줄이는 고통스러운 조정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이것은 뿌리에서 재정 위기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국제수지 위기였다”고 썼다. 이 관점에서는 조정의 짐을 적자국만이 아니라 흑자국 독일도 나누어 져야 했다. 2012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IMF도 독일에 내수와 임금을 늘리라고 권했다. 4 7

세 번째는 최적 통화 지역 이론이다. 로버트 먼델이 1961년에 세운 이 이론은 한 통화를 쓰는 지역이 한 나라에만 닥치는 충격(비대칭 충격)을 견디려면 노동이 자유롭게 옮겨 다니고, 임금과 물가가 유연하며, 어려운 지역으로 돈을 옮겨 주는 재정 이전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주민의 40% 넘게가 태어난 주 밖에 살고 연방 재정이 이전을 해 주지만, 유로존에서 태어난 나라 밖에 사는 사람은 14%에 그쳤고 이전 장치도 없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이 처음부터 최적 통화 지역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다만 「유로의 아버지」로 불린 먼델 자신은 1973년 단일 통화에 유리한 논리를 폈다. 5 28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코스타스 라파비차스는 위기를 그리스인의 게으름이나 낭비가 아니라 독일의 국내 정책에서 찾았다. 독일이 노동자의 임금을 억눌러 물가를 유럽중앙은행 목표보다 낮게 유지하고 경쟁력을 쌓아 거대한 흑자를 냈고, 그 결과 그리스가 경쟁력을 잃고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쌓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유럽연합은 수렴이 아니라 독일 산업 복합체를 중심으로 지중해·동유럽 주변부를 거느린 「중심과 주변」의 구조였다. 그래서 그는 부채 탕감, 은행 국유화와 함께 유로 탈퇴와 자국 통화 복귀를 주장했다. 그는 유럽의 위기를 이윤율 저하 경향 하나로 풀이하는 것은 「나쁜 마르크스주의」라고도 했다. 29 27 30 31

라파비차스의 탈퇴론은 좌파 안에서도 논쟁을 불렀다. 같은 민중연합의 소티리스 마르탈리스는 하인너 플라스벡과 라파비차스가 짠 계획이 약한 통화로의 평가절하가 빠른 회복을 가져오리라는 지나친 낙관에 기대고, 임금이 따라 오르지 않으면 회복의 비용을 노동자가 치른다고 비판했다. 바루파키스는 다른 길을 갔다. 그는 2010년 스튜어트 홀랜드와 함께 낸 「겸손한 제안」에서 유로 안에서 위기를 넘을 정책을 내놓았고, 국민투표 뒤에도 부채 재조정과 긴축 완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재분배를 담은 합의를 요구했다. 그는 2016년 유럽 민주주의 운동(DiEM25)을 함께 세웠다.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레크은 위기를 시민(국민)과 국제 채권자(시장)라는 두 「주권자」의 충돌로 읽고,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된 정부가 몬티와 파파디모스 같은 기술관료로 바뀐 것을 시장의 승리로 보았다. 30 21 23 32 33

그리스 공산당(KKE)은 트로이카와 시리자 정부 양쪽에 맞섰다. 2015년 국민투표를 앞두고 낸 성명에서 KKE는 시리자를 「본질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정당이라 부르고, 정부 자체의 제안도 채권단의 안과 90% 같아 노동자에게 가혹한 조치를 담고 있다며 둘 다 거부하자고 했다. KKE는 6월 27일 의회에서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와 그리스 정부의 합의안 모두 반대」와 「유럽연합 이탈, 양해각서와 그 이행법 폐지」를 국민투표에 올리자고 제안했다가 부결되자,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말고 KKE의 제안을 표로 투표함에 넣으라고 호소했다. KKE가 내건 출구는 유럽연합과의 단절, 부채의 일방적 취소, 독점 기업의 사회화, 노동자·민중 권력이었다. 34 18

결과

2012년 드라기의 「무엇이든 하겠다」와 OMT 뒤 국채 금리가 내려가 유로존 해체의 공포는 가라앉았고, 유럽중앙은행은 2015년 양적 완화에 나섰다. 그리스는 2018년 8월 구제 프로그램을 마쳤지만 GDP 대비 부채는 180%에 가까웠고 높은 실업과 이민이 남았다. 재정 협약과 유럽안정화기구가 상설 장치로 남았다. 위기는 유로의 설계와 유럽연합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 그리고 반긴축 좌파와 극우의 부상을 남겼다.

연표와 지도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더블린 베를린 런던 브뤼셀 프랑크푸르트 로마 푸에르타 델 솔 (마드리드) 리스본 카스텔로리조섬 니코시아 9 더블린 18 런던 1 마스트리흐트 6 브뤼셀 17 브뤼셀 25 브뤼셀 2 프랑크푸르트 8 프랑크푸르트 16 프랑크푸르트 19 프랑크푸르트 14 칸 15 로마 10 푸에르타 델 솔 (마드리드) 11 리스본 3 아테네 4 아테네 7 아테네 21 아테네 22 아테네 24 아테네 12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13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23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26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5 카스텔로리조섬 20 니코시아
  1. 11992.02.07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영국네덜란드룩셈부르크
    마스트리흐트 조약 서명

    유럽공동체 12개국이 단일 통화 도입과 재정 적자 3%, 정부 부채 60%의 수렴 기준을 담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했다.

  2. 21999.01.01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아일랜드네덜란드룩셈부르크
    유로 출범

    유로가 11개국의 장부상 통화로 출범했고, 유럽중앙은행이 이들 나라의 통화 정책을 넘겨받았다.

  3. 32001.01.01그리스
    그리스 유로 가입

    그리스가 유로존의 열두 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4. 42009.10.06그리스
    파판드레우 정부 출범

    총선에서 이긴 PASOK의 요르고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었고, 새 정부는 곧 2009년 재정 적자를 GDP의 12.7%로 고쳐 발표했다.

  5. 52010.04.23그리스
    카스텔로리조 지원 요청

    파판드레우가 카스텔로리조섬에서 재무장관에게 유럽연합 지원 장치의 가동을 공식 요청하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6. 62010.05.02그리스
    1차 구제금융 합의

    유로존 국가들과 IMF가 그리스에 1,100억 유로를 빌려주기로 하고, 그리스 정부는 긴축과 구조 개혁을 담은 첫 양해각서를 받아들였다.

  7. 72010.05.05그리스
    그리스 총파업

    긴축에 항의하는 총파업 시위 도중 아테네의 마르핀 은행 지점에 화염병이 던져져 안에 있던 세 명이 숨졌다.

  8. 82010.05.10그리스독일프랑스
    구제기금과 국채 매입

    유럽연합이 전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창설에 합의했고, 유럽중앙은행은 국채를 사들이는 증권시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9. 92010.11.29아일랜드
    아일랜드 구제 합의

    은행 부채를 떠안아 재정이 무너진 아일랜드가 675억 유로의 구제에 합의했다.

  10. 102011.05.15스페인
    스페인 15-M 운동

    마드리드 등 스페인 도시의 광장에서 실업과 복지 삭감, 은행과 부패에 항의하는 「분노한 사람들」의 점거가 시작되었다.

  11. 112011.05.16포르투갈
    포르투갈 구제 확정

    유로존 지도자들이 4월 6일 구제를 신청한 포르투갈에 780억 유로의 구제 패키지를 공식 승인했다.

  12. 122011.05.25그리스
    신타그마 광장 점거

    정당과 무관한 「분노한 시민 운동」이 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을 점거하고 민중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13. 132011.06.29그리스
    2차 긴축안 의회 통과

    48시간 총파업 속에 그리스 의회가 300석 가운데 155표로 긴축안을 통과시켰고, 경찰은 광장의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았다.

  14. 142011.10.31–11.03그리스독일프랑스
    파판드레우의 국민투표 발표

    파판드레우가 2차 구제 합의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으나, 칸 G20 회의에서 유럽 지도자들의 압박을 받고 11월 3일 계획을 거두었다.

  15. 152011.11.12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사임

    국채 금리가 치솟는 가운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물러났고, 경제학자 마리오 몬티의 기술관료 정부가 들어섰다.

  16. 162011.12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아일랜드
    첫 3년 만기 장기 대출

    드라기의 유럽중앙은행이 은행들에 연 1%, 3년 만기로 4,890억 유로를 빌려주었다.

  17. 172012.02.21그리스
    2차 구제금융 합의

    유로그룹이 밤샘 회의 끝에 1,300억 유로의 그리스 2차 구제와 민간 채권자의 손실 조건에 합의했다.

  18. 182012.07.26영국스페인이탈리아
    「무엇이든 하겠다」

    드라기가 런던의 투자 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유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19. 192012.09.06스페인이탈리아
    OMT 발표

    유럽중앙은행 정책위원회가 조건을 지키는 나라의 만기 1~3년 국채를 한도 없이 사들일 수 있는 전면적 통화 거래(OMT)를 발표했다.

  20. 202013.03.25키프로스
    키프로스 구제와 예금 압류

    키프로스가 2위 은행 라이키를 닫고 키프로스 은행의 보호받지 않는 예금 일부를 압류하는 조건으로 100억 유로의 구제에 합의했다.

  21. 212015.01.25그리스
    시리자 총선 승리

    긴축 반대를 내건 시리자가 36%를 얻어 300석 가운데 149석을 차지했고, 이튿날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가 되었다.

  22. 222015.06.27그리스
    국민투표 발표

    치프라스가 새벽 연설에서 채권단 안을 받아들일지 7월 5일 국민투표로 묻겠다고 발표했다.

  23. 232015.07.05그리스
    「오히」 국민투표

    은행이 닫히고 자본 통제가 걸린 가운데 그리스 유권자의 61%가 채권단 안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24. 242015.07.06그리스
    바루파키스 사임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국민투표 이튿날 사임하며 「채권단의 증오를 자랑스럽게 입겠다」고 썼다.

  25. 252015.07.13그리스독일
    3차 구제 합의

    17시간 협상 끝에 치프라스가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안보다 가혹한 조건의 3차 구제에 합의했다.

  26. 262015.08.14그리스
    3차 양해각서 의회 승인

    그리스 의회가 3차 구제 협약을 222표로 승인했지만, 시리자 의원 40여 명이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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