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Reason
죄르지 루카치가 1952년에 완성해 1954년 동베를린의 아우프바우 출판사에서 펴낸 철학사 비판서. 1955년판부터 「셸링에서 히틀러까지 비합리주의의 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헤겔 이후 독일 부르주아 철학의 주류를 계급투쟁에 대한 반동적 대응인 「비합리주의」로 규정하고, 후기 셸링과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에서 니체, 생철학, 하이데거를 거쳐 나치즘에 이르는 계보를 그렸다. 특히 니체를 「제국주의 시대 비합리주의의 창시자」로 다룬 장은 니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고전이 되었다. 동독에서는 교과서가 되었으나, 서방과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상세
왜 이 책이 니체 비판의 고전이 되었나?
『이성의 파괴』는 「어떻게 독일이 나치즘에 이르렀는가」를 철학사로 답하려 한 책이다. 루카치의 대답은 헤겔 이후 독일 철학의 큰 흐름이 이성을 깎아내리는 「비합리주의」였고, 그것이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의 위협에 맞선 부르주아지의 사상적 무기였으며, 끝내 히틀러의 세계관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니체 수용사에서 중요한 까닭은, 니체를 「진정한 반항아」로 읽던 20세기 초 좌파의 니체 열광과 정반대로 니체를 노골적인 반사회주의 사상가로 규정한 마르크스주의 쪽의 가장 체계적인 판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래된 작업의 결과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루카치는 이미 1933년 8월 모스크바에서 200쪽이 넘는 원고 「독일에서 파시즘 철학은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마쳤고, 1942년 타슈켄트에서 두 번째 원고 「어떻게 독일은 반동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되었는가」를 끝냈다. 두 원고는 1982년 부다페스트에서 유고로 나왔다. 『이성의 파괴』는 이 원고들을 바탕으로 1952년에 완성되었다.
언제 처음 나왔나?
첫 판은 1954년 베를린(동독)의 아우프바우 출판사에서 나온 692쪽짜리 책이다. 독일 국립도서관 목록과 이 저작의 독일 국가 전거(GND) 기록이 모두 1954년을 첫 출간 연도로 적고, 스탠퍼드 철학 백과도 1954년이라고 쓴다. 1955년판부터 「셸링에서 히틀러까지 비합리주의의 길」이라는 부제가 붙었고, 서독에서는 1962년 루흐터한트 출판사의 루카치 저작집 제9권으로 다시 나왔다. 독일어 위키백과 첫 문장의 「1953년」은 같은 글이 인용하는 1954년판과도 맞지 않는다. 헝가리어판 제목은 『이성의 폐위(Az ész trónfosztása)』다. 국내에는 『이성의 파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무엇을 주장하나?
루카치는 헤겔의 변증법을 부르주아 철학이 오른 가장 높은 단계로 본다. 헤겔 이후 진보적인 길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넘어갔고, 부르주아 철학은 이성 자체를 의심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독일어 위키백과가 인용하는 루카치의 정의에 따르면 비합리주의의 표지는 이렇다. “오성과 이성의 폄하, 직관에 대한 무비판적 찬미, 귀족주의적 인식론, 사회적·역사적 진보의 거부, 신화의 창조.”
Herabsetzung von Verstand und Vernunft, kritiklose Verherrlichung der Intuition, aristokratische Erkenntnistheorie, Ablehnung des gesellschaftlich-geschichtlichen Fortschritts, Schaffung von Mythen
이 잣대로 루카치는 계보를 그린다. 1848년 이전에는 후기 셸링,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가 헤겔 변증법에 맞섰다. 파리 코뮌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는 니체가 비합리주의의 새 시조가 되었다. 이어 빌헬름 딜타이, 게오르크 지멜,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생철학,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의 실존철학, 그리고 사회학에서 막스 베버의 자유주의적 합리주의를 밀어낸 카를 슈미트와 오트마르 슈판이 같은 흐름에 놓인다. 책의 끝은 히틀러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의 세계관이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이 「비합리주의」가 문맥에 따라 지적 직관에서 존재론적 주관주의, 귀족주의적 인식론, 역사 진보의 부정까지 가리키는 포괄적 낙인이라고 지적한다.
니체는 어떻게 다뤄지나?
제3장의 제목은 「제국주의 시대 비합리주의의 창시자로서의 니체」다. 루카치는 1848년 혁명의 패배와 1871년 파리 코뮌을 계기로 부르주아 철학의 주적이 봉건 질서에서 사회주의로 바뀌었다고 본다. 니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한 줄도 읽지 않았지만, 루카치는 니체의 평생 작업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맞선 끊임없는 논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철학의 내용과 방법은 그 철학이 서 있는 계급 투쟁의 자리가 정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그는 파리 코뮌 직후 루브르가 불탔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니체가 친구 게르스도르프에게 보낸 편지를 든다.
루카치에 따르면 니체는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대신 자본주의의 추한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그 해결책을 신화와 「주인 도덕」의 귀족적 위계로 돌리는 「간접적 변호론」을 편다. 그래서 니체는 체제와 결코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반항아라는 기분을 누리고 싶은 제국주의 시대 지식인에게 가장 알맞은 철학이 되었다. 니체가 체계 대신 경구를 쓴 것도 시대가 필요로 할 때마다 다른 니체를 꺼내 쓸 수 있게 해 준 형식이라고 루카치는 본다. 그는 니체의 위버멘쉬와 노예 도덕론을 지배 계급의 도덕으로 읽고, 니체가 히틀러의 파시즘을 가장 구체적으로 예고했다고 결론짓는다.
이 장은 니체의 유고 편집본 『권력의지』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이 편집본은 니체가 쓴 책이 아니라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페터 가스트가 유고를 골라 엮은 것이고,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는 1960년대 이후 비판 전집에서 그 편집의 자의성을 드러냈다. 그래서 루카치의 니체 읽기는 니체 문서보관소가 만든 「파시스트 니체」의 상을 반대 방향에서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몬티나리 자신이 이탈리아 공산당원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니체를 둘러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논쟁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도 여기다.
누가 어떻게 평가했나?
평가는 갈렸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책은 동독 철학이 제도화된 직후에 나와 곧바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역사와 비판」 과목의 교과서가 되었다. 서독의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라인하르트 퀸을은 파시즘의 정신사적 기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자 반파시즘 투쟁의 전략을 담은 책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은 루카치 경력의 「최저점」이다. 역사가 조지 리히트하임은 「그가 쓴 최악의 책」이라고 불렀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진보적 유물론과 비합리주의를 단순하게 가르는 이 책의 논증이 교조적이고 피상적이며, 특히 후기에서 루카치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옹호하고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실용주의자들까지 새 파시즘을 돕는 주관주의로 몰았다고 지적한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는 이 책이야말로 루카치 자신의 이성이 파괴되었음을 보여 준다고 비꼬았다. 반대로 루카치 자신은 1956년 너지 임레 정부에 참여한 뒤 동구권에서 「수정주의자」로 몰렸다. 이 책은 스탈린주의 시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산물이면서, 그 저자는 곧 정통의 바깥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