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국회의사당 화재와 히틀러 테러에 관한 갈색책』(1933)

인물빌리 뮌첸베르크, 마리뉘스 판데르루버,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아돌프 히틀러, 에른스트 룀, 에트문트 하이네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파울 힌덴부르크, 프란츠 폰 파펜, 쿠르트 폰 슐라이허, 하인리히 브뤼닝, 알프레트 후겐베르크, 그레고어 슈트라서, 빌헬름 프리크, 로베르트 라이, 오토 벨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에른스트 톨러 용어갈색책 (1933), 독일 국회의사당 화재 (1933),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 국회의사당 방화 재판 (1933), 돌격대 (SA), 친위대 (SS), 강제적 동질화, 1933년 나치 분서, 성과학 연구소 사건나치 집권과 수권법, 독일 성개혁 운동과 나치의 파괴 (1897~1935)

주석

  1. [옮긴이] 1933년 빌리 뮌첸베르크가 파리에서 조직한 국제 구호 단체. 영국 노동당 귀족 말리 경이 위원장을, 아인슈타인이 명예 위원장을 맡았다. 『갈색책』은 이 위원회 이름으로 나왔다. 말리 경의 머리말에서는 「독일 파시즘 희생자를 위한 세계 위원회」라고도 불린다. ↩
  2. [옮긴이] 말리 경(더들리 리 에이먼, 1884–1952): 영국 노동당 소속 상원 의원. 1930–1931년 노동당 정부에서 육군 차관을 지냈다. ↩
  3. [옮긴이] 1918년 11월 15일 슈티네스·레기엔 협정으로 세워진 사용자 단체와 노동조합의 협의 기구. 노조는 8시간 노동제와 단체 협약권을 얻는 대신 사회화 요구를 접었다. ↩
  4. [옮긴이] 중앙당의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1921년 8월)와 외무 장관 발터 라테나우(1922년 6월). 둘 다 베르사유 조약 이행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극우 비밀결사 「콘술 조직」에 암살당했다. ↩
  5. [옮긴이] 도스 협정(1924)은 독일의 배상금 지불 방식을 새로 정한 미국 주도의 계획, 로카르노 조약(1925)은 독일이 서부 국경을 인정하고 이듬해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길을 연 조약이다. ↩
  6. [옮긴이] 알브레히트 폰 그레페, 라인홀트 불레, 빌헬름 헤닝, 에른스트 추 레벤틀로 백작. 1922년 독일 국가인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독일 민족자유당의 지도자들이다. 레벤틀로는 1927년 NSDAP로 넘어갔다. ↩
  7. [옮긴이] 헨리 데테르딩은 석유 회사 로열 더치 셸의 네덜란드인 총수로, 소련의 석유 국유화 이후 반소 활동을 후원했다. 아르놀트 레히베르크는 칼리 공업가 집안 출신으로 독일·프랑스 반소 동맹을 주창했다. ↩
  8. [옮긴이] 1926년 6월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추진한 국민 투표. 폐위된 군주 가문의 재산을 보상 없이 몰수하자는 안에 1450만 표가 찬성했으나 유권자 과반 정족수에 못 미쳐 부결되었다. ↩
  9. [옮긴이] 루돌프 융.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거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일 민족사회주의 노동자당(DNSAP)의 지도자로, 앞서 나온 「보헤미아 당의 지도자 융」과 같은 사람이다. ↩
  10. [옮긴이] 아르투어 딘터. 반유대주의 소설 『혈통에 대한 죄』로 이름을 얻은 튀링겐 대관구 지도자로, 독자적 「독일 기독교」 종교 운동을 고집하다 1928년 당에서 쫓겨났다. ↩
  11. [옮긴이] 게레케 재판: 슐라이허 내각의 고용 담당 제국 판무관이던 귄터 게레케가 1933년 횡령 혐의로 기소된 재판. 브뤼닝 정부 장관이던 고트프리트 트레비라누스가 증인으로 나섰다. ↩
  12. [옮긴이] 기술 긴급 구조대(Technische Nothilfe): 1919년 만들어진 준국가 기구로, 파업 때 발전소·수도·철도 같은 필수 사업장을 대신 돌리는 일을 맡았다. ↩
  13. [옮긴이] 적색 전선 투사 동맹(Roter Frontkämpferbund): 1924년 독일 공산당이 만든 준군사 방위 조직. 1929년 5월 「피의 5월」 사건 직후 프로이센에서 금지되었다. ↩
  14. [옮긴이] 동부 원조(Osthilfe): 엘베강 동쪽의 빚진 대농장을 국고로 구제한 1920년대 말~1930년대 초의 보조금 사업. 융커들의 유용 의혹이 1933년 초 정치 추문이 되었다. ↩
  15. [옮긴이] 이른바 「프로이센 쿠데타」(Preußenschlag). 파펜 정부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프로이센 주 정부를 해임하고 주 행정을 제국 정부 아래 두었다. ↩
  16. [옮긴이] 1932년 7월 31일 선거에서 NSDAP는 약 1375만 표, 230석을 얻었다. 원서의 수치는 원문대로 두었다. ↩
  17. [옮긴이] 1932년 11월 3~7일 베를린 교통공사(BVG)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에 맞서 벌인 파업. 공산당 계열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가 주도했고 NSDAP 경영 세포 조직도 가담했다. ↩
  18. [옮긴이] 신사 클럽(Herrenklub): 베를린의 보수 귀족·대자본가 사교 모임으로, 파펜 내각의 인재 공급처 노릇을 해 「남작 내각」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
  19. [옮긴이] 타트 서클(Tat-Kreis): 월간지 《디 타트》를 중심으로 모인 「보수 혁명」 성향의 지식인 집단.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국가 통제 경제와 권위주의 국가를 주장했으며, 슐라이허의 노동조합 「가로지르기」 구상을 지지했다. ↩
  20. [옮긴이] 동부 원조(Osthilfe): 1920년대 말부터 동프로이센 등 엘베강 동쪽 농업 지역에 지급한 국가 보조금. 대부분 빚진 융커 대농장의 부채 정리에 쓰였다. ↩
  21. [옮긴이] 1933년 1월 22일 돌격대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공산당 본부 카를 리프크네히트 회관 앞 뷜로 광장에서 시위 행진을 벌였다. 공산당은 맞불 충돌을 피하고 사흘 뒤 대규모 반대 시위로 대응했다. ↩
  22. [원주] 이로써 정부 안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민족사회주의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에서 독일국가인민당은 그 뒤 한 걸음씩 밀려났고, 넉 달 뒤에는 후겐베르크가 물러나는 동시에 독일국가인민당의 해산이 강요되었다. ↩
  23. [옮긴이] 원문대로 옮겼으나 베를린 궁전의 화재는 1933년 2월 25일의 일이다. ↩
  24. [옮긴이] 잭 뎀프시. 1919~1926년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었던 미국 선수. ↩
  25. [옮긴이] 헨리 데테르딩. 로열 더치 셸을 이끈 네덜란드 석유 재벌로, 반소련 활동과 나치 지원으로 알려졌다. ↩
  26. [옮긴이] 원서에는 네덜란드어 공증 조서가 사진으로만 실려 있다. 아래는 그 사진에서 네덜란드어 원문을 직접 옮긴 것이다. ↩
  27. [옮긴이] 헤이마켓 사건. 1893년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올트겔드가 살아남은 피고인들을 사면하며 재판이 부당했다고 밝혔다. ↩
  28. [옮긴이] 카를 리프크네히트 회관: 베를린 뷜로 광장에 있던 독일 공산당 중앙 본부. 1933년 2월 23일 경찰이 점거하고 수색했다. ↩
  29. [옮긴이] 첸트너(Zentner)는 50킬로그램이므로 100첸트너는 약 5톤이다. ↩
  30. [옮긴이] 1933년 2월 17일 괴링이 프로이센 경찰에 내린 훈령. 「국가에 적대적인 조직」에 맞서 망설임 없이 총기를 쓰라고 명령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해 주었다. 2월 22일에는 돌격대·친위대·철모단 대원을 보조 경찰로 끌어들였다. ↩
  31. [옮긴이] 텔레그라펜 우니온(Telegraphen-Union): 알프레트 후겐베르크의 언론 기업군에 속한 통신사. 후겐베르크는 독일국가인민당 대표로 히틀러 내각의 경제·농업 장관이었다. ↩
  32. [옮긴이] 바이마르 헌법 제48조: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크게 위협받을 때 제국 대통령이 긴급명령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일부 기본권을 정지할 수 있게 한 조항. ↩
  33. [옮긴이] 각각 인신의 자유(제114조), 주거의 불가침(제115조), 서신·우편·전신·전화의 비밀(제117조), 의사 표현과 언론의 자유(제118조), 집회의 자유(제123조), 결사의 자유(제124조), 재산권 보장(제153조)을 정한 바이마르 헌법 조항이다. ↩
  34. [옮긴이] 괴링은 1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대위(Hauptmann)까지 올랐다. 당시 외국 언론과 반대파는 그를 흔히 이 계급으로 불렀다. ↩
  35. [옮긴이] 1932년 7월 20일 파펜 정부가 긴급명령으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프로이센 주 정부를 해임한 이른바 「프로이센 쿠데타」를 가리킨다. 사회민주당 각료들은 군대가 투입되자 저항 없이 물러났다. ↩
  36. [옮긴이] 『봉기의 기술』은 레닌의 글들을 엮은 독일어 소책자로 보인다. 인용된 두 대목은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1920)에 나오는 문장이다. ↩
  37. [옮긴이] 원서 판본에서 이 절의 첫 문장 앞부분이 빠져 있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 내각의 성립을 말하는 대목이다. ↩
  38. [옮긴이] 에른스트 오버포렌(1881–1933): 독일국가인민당의 제국의회 원내대표. 1933년 3월 말 당직에서 물러났고 5월 7일 킬의 자택에서 총상을 입고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가 이른바 「오버포렌 비망록」을 실제로 썼는지는 오늘날까지 논란이 있다. ↩
  39. [옮긴이] 1924년 영국 총선 직전 《데일리 메일》이 공개한 편지.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예프가 영국 공산당에 혁명 선동을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쓰였고 위조로 판명되었다. ↩
  40. [옮긴이] 볼프 전신국(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WTB): 독일의 반관영 통신사. 1933년 말 전신 연합(Telegraphen-Union)과 합쳐져 독일 통신사(DNB)가 되었다. ↩
  41. [옮긴이]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1887–1949): 황제 빌헬름 2세의 넷째 아들. 1930년 NSDAP에 들어가 돌격대 지휘관이 되었다. ↩
  42. [옮긴이] 쿠르트 로젠펠트(1877–1943): 베를린의 변호사이자 사회민주당 좌파 정치인. 1931년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 창당에 참여했고, 1933년 망명했다. ↩
  43. [옮긴이] 루돌프 딜스(1900–1957): 프로이센 내무부 정치경찰 책임자로, 1933년 4월 비밀 국가경찰(게슈타포)의 초대 책임자가 되었다. 원서는 줄곧 「Diehls」로 적었다. ↩
  44. [옮긴이] 《로칼안차이거》: 《베를리너 로칼안차이거》. 독일국가인민당(DNVP) 당수 알프레트 후겐베르크의 언론 그룹에 속한 베를린의 우익 대중 일간지. ↩
  45. [옮긴이] 하이지히(Helmut Heisig): 베를린 경찰청 정치경찰(IA과) 형사 경감. 화재 직후 판데르루버를 신문했고 레이던에 파견되어 그의 행적을 조사했다. ↩
  46. [옮긴이] 실업자 신고소(Stempelstelle): 실업자가 정해진 날 나와 실업 수당 카드에 도장을 받던 곳. 실업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
  47. [옮긴이] 볼프 전신국(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WTB): 독일의 반관영 통신사. 콘티 통신(Conti-Dienst)은 그 국내 통신 부문이다. ↩
  48. [옮긴이] 포크트(Paul Vogt): 라이프치히 제국법원의 판사로 국회의사당 화재 사건 예심을 맡았다. ↩
  49. [옮긴이] 소피아 대성당 테러: 1925년 4월 16일 불가리아 공산당 군사 조직 일부가 소피아의 스베타 네델랴 대성당에서 장례식 중 폭탄을 터뜨려 100명 넘게 죽인 사건. 포크트 발표의 “1926년”은 잘못이다. ↩
  50. [옮긴이] 바실 타네프는 실제로는 불가리아 공산당원이었다. 원서가 출간될 때의 정보에 따른 서술이다. ↩
  51. [옮긴이] 《반격》(Der Gegen-Angriff): 1933년 프라하에서 창간된 독일 공산주의 계열 반파시즘 망명 주간지. 괴벨스의 《앙그리프》(Der Angriff)을 겨냥한 이름이다. ↩
  52. [옮긴이] 카를 에른스트(Karl Ernst):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돌격대 지도자. 집단 지도자(Gruppenführer)는 돌격대 고위 계급이다. 1934년 6월 “장검의 밤”에 살해되었다. ↩
  53. [옮긴이] 세프턴 델머: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베를린 특파원으로, 나치 지도부와 가까이 지내며 히틀러의 선거 유세 비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원서에는 「Delmar」로 잘못 적혀 있다. ↩
  54. [옮긴이] 1930년 9월 라이프치히 제국재판소에서 열린 울름 국방군 장교 재판. 국방군 안에 나치 세포를 만든 혐의로 기소된 장교들의 증인으로 나선 히틀러는 합법 노선을 맹세하면서, 권력을 잡으면 “머리들이 굴러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55. [옮긴이] 발터 겜프: 1922년부터 베를린 소방대를 이끈 소방 총감. 1933년 직무 정지된 뒤 해임되었고, 1937년 배임 혐의로 체포되어 1939년 옥중에서 숨졌다. ↩
  56. [옮긴이] 율리우스 리페르트: 괴벨스의 측근으로 나치 기관지 《앙그리프》의 편집장을 지냈고, 1933년 3월 베를린 시 행정을 장악하는 특임 국가 판무관에 임명되었다. ↩
  57. [옮긴이] 하인리히 폰 글라이헨: 보수 혁명 계열 저술가로, 신사 클럽을 세우고 그 기관지 격인 주간지 《데어 링》을 펴냈다. ↩
  58. [옮긴이] 쿠르트 달뤼게: 베를린 돌격대 지도자를 거쳐 친위대로 옮긴 나치 경찰 간부. 1933년 괴링 밑에서 프로이센 경찰을 맡았다. ↩
  59. [옮긴이] 에리크 얀 하누센: 본명 헤르만 슈타인슈나이더. 유대계 출신의 투시가·흥행사로, 바이마르 말기 베를린에서 이름을 떨치며 헬도르프 백작 등 돌격대 지도자들과 어울렸다. ↩
  60. [옮긴이] 원서에는 이 자리에 횔레링이 서명한 선서 진술서 전문이 실려 있으나, 저작권 때문에 싣지 않는다. 진술서에서 그는 2월 27일 밤 9시 반에서 9시 45분 사이, 편집국에 화재 소식이 막 들어왔을 때 하누센이 전화를 걸어 화재 상황과 범인 체포 여부를 물었고, 공산주의자의 소행은 믿기 어렵다는 그의 말에 흥분해서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는 것을 자기는 안다며 곧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증언한다. ↩
  61. [옮긴이] 1933년 1월 15일 리페 자유주 의회 선거. 나치당이 총력을 쏟아 39퍼센트 남짓을 얻었고, 이 승리를 히틀러 총리 임명 교섭의 지렛대로 삼았다. ↩
  62. [옮긴이] 포템파 살인: 1932년 8월 10일 밤 오버슐레지엔 포템파에서 돌격대원들이 공산주의 동조자인 폴란드계 노동자 콘라트 피에추흐를 그의 어머니 앞에서 짓밟아 죽인 사건. 보이텐 특별재판소가 다섯 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히틀러는 공개적으로 살인자들과의 연대를 선언했고, 파펜 정부는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1933년 3월 사면으로 풀려났다. ↩
  63. [옮긴이] 에른스트 오버포렌. 독일국가인민당의 제국의회 원내대표로, 1933년 5월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갈색책』은 국회의사당 방화를 나치의 소행으로 지목한 이른바 「오버포렌 비망록」을 그가 쓴 것으로 인용한다. ↩
  64. [옮긴이] 파울 슐츠. 1920년대 이른바 흑색 국방군의 페메 살인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풀려났고, 그레고어 슈트라서의 측근으로 나치당 조직 지도부에서 일했다. ↩
  65. [옮긴이] 원서에는 이 절에 도식 두 장이 실려 있다. 설명문은 이렇다. “형사적 조사 결과와 공식 발표에 따른 국회의사당 방화의 도식적 묘사. 1단계. 1. 괴링의 관저. 2. 괴링의 관저에서 국회의사당 건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 3.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4·5. 괴링의 경호대. 지하 통로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방화범들이 보인다.” “2단계. (번호 설명은 같다.) 방화범들이 발화점에 불을 붙인다.” ↩
  66. [옮긴이] 성채 금고(Festungshaft): 명예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 독일의 구금형으로, 주로 정치범·결투범에게 내려졌다. 히틀러도 1924년 란츠베르크에서 이 형을 살았다. ↩
  67. [옮긴이] 카린 폰 칸초브(결혼 전 성 폰 포크): 스웨덴 귀족 출신으로 장교 닐스 폰 칸초브와 이혼한 뒤 1923년 괴링과 재혼했고 1931년 숨졌다. ↩
  68. [옮긴이] 1918년 핀란드 내전에서 독일 발트해 사단이 백군 편으로 개입해 적위군을 진압했고, 뒤이은 백색 테러로 수많은 적위군 포로가 처형되었다. 헝가리는 1919년 평의회 공화국을 무너뜨린 뒤의 백색 테러를 가리킨다. ↩
  69. [옮긴이] 로베르트 라이(1890~1945). NSDAP 조직 지도자로, 1933년 5월 노동조합을 해체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나치 노동 단체 「독일 노동전선」을 이끌었다. ↩
  70. [옮긴이] NSBO는 「민족사회주의 사업장 세포 조직」(Nationalsozialistische Betriebszellenorganisation). 사업장 안에서 노동조합에 맞서려고 1928~1931년에 만든 나치당의 조직이다. ↩
  71. [옮긴이] 카를 리프크네히트 회관은 베를린 뷜로 광장에 있던 독일 공산당 중앙 본부. 원문의 「2월 5일 자 긴급명령」은 1933년 2월 4일의 「독일 인민 보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72. [옮긴이] 오토 브라운 회관은 쾨니히스베르크의 사회민주당 회관으로, 이 도시 출신인 프로이센 총리 오토 브라운의 이름을 땄다. 「총연맹」은 공공 부문·교통 노동자를 모은 자유 노동조합 「총연맹」(Gesamtverband)이다. ↩
  73. [옮긴이] 프리츠 후제만(1873~1935). 사회민주당 제국의회 의원이자 광산 노동자 연맹 위원장. 1935년 에스터베겐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
  74. [옮긴이]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RGO)는 공산당이 자유 노동조합 안팎에서 조직한 노동조합 운동. 1930년 무렵부터 광산·금속 등 몇몇 부문에서 독자적인 「통일 연맹」을 세웠다. ↩
  75. [옮긴이] ADGB(독일 노동조합 총연맹)는 사회민주당 계열 자유 노동조합의 중앙 조직, AfA 연맹(자유 직원 총연맹)은 그와 짝을 이루는 사무직 노동자 노동조합의 중앙 조직이다. ↩
  76. [옮긴이] 테오도어 라이파르트와 페터 그라스만. 각각 ADGB의 의장과 부의장으로, 1933년 봄 새 정권과 협력할 뜻을 거듭 밝혔으나 5월 2일 체포되었다. ↩
  77. [옮긴이] 베를린 소방국장 발터 겜프. 화재 진압 과정의 수상한 점을 말했다가 1933년 3월 해임되었고, 이어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귄터 게레케는 1932~1933년 고용 창출 판무관을 지낸 국가인민당 계열 정치인으로, 1933년 3월 공금 유용 혐의로 체포되었다. ↩
  78. [옮긴이] 지크프리트 아우프호이저. AfA 연맹 의장이자 사회민주당 제국의회 의원으로, 1933년 3월 연맹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망명했다. ↩
  79. [옮긴이] 파울 뢰베.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제국의회 의장을 지냈다. 1933년 6월 국내에 남은 당 지도부의 대표가 되어 프라하로 망명한 집행부와 거리를 두려 했으나 곧 체포되었다. ↩
  80. [옮긴이] 「노동 관재인」(Treuhänder der Arbeit)은 1933년 5월 19일 법률로 생긴 국가 관리로, 단체 협상 대신 각 경제 지역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정했다. ↩
  81. [옮긴이] 판토스타트(Pantostat): 갈바니 전류·감응 전류 등을 내어 전기 치료와 진단에 쓰던 의료 기기. ↩
  82. [옮긴이]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1930년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된 돌격대원 호르스트 베셀이 가사를 쓴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의 당가. ↩
  83. [옮긴이] 첸트너(Zentner): 독일의 무게 단위로 1첸트너는 50킬로그램. 1만 첸트너는 약 500톤. ↩
  84. [옮긴이] 《나흐트아우스가베》(Nachtausgabe): 알프레트 후겐베르크의 셰를 출판사가 내던 베를린 일간지 《데어 타크》의 석간판. ↩
  85. [옮긴이] 원문의 「Rahosi」는 헝가리 공산주의자 라코시 마차시(Rákosi Mátyás)를 가리키는 듯하다. 1926~1927년 호르티 정권의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자 유럽 각지에서 구명 운동이 일었다. ↩
  86. [옮긴이] 「93인 지식인 선언」: 1914년 10월 독일의 학자·예술가 93명이 벨기에 침공과 독일군의 전쟁 수행을 옹호하며 낸 성명 「문명 세계에 고함」. ↩
  87. [옮긴이] 「슐라게터 극」: 한스 요스트의 희곡 『슐라게터』(1933). 알베르트 레오 슐라게터는 1923년 프랑스의 루르 점령에 맞서 철도 폭파 공작을 벌이다 프랑스 군사 법원에서 처형되어 나치의 순교자로 떠받들어졌다. ↩
  88. [옮긴이] 1절은 「잘 있거라, 내 사랑하는 고향 땅」「슈트라스부르크 보루 위에서」「승리의 화관을 쓴 그대에게 만세」「라인의 파수꾼」 같은 이름난 노래의 첫 줄을 이어 붙인 것이다. 2절의 「검정·빨강·Sch..ade」는 공화국 국기 색 「검정·빨강·금색(Gold)」 자리에 욕설 「똥(Scheiße)」을 넣는 척하다 「아깝다(Schade)」로 돌린 말장난이다. ↩
  89. [옮긴이] 위니프레드 바그너(Winifred Wagner): 리하르트 바그너의 며느리로, 1930년부터 바이로이트 축제를 운영했으며 히틀러와 가까웠다. 1933년은 바그너 서거 50주년이었다. ↩
  90. [옮긴이] 마이캐퍼 병영(Maikäferkaserne): 베를린 쇼세 거리에 있던 옛 근위 퓌질리어 연대 병영의 별칭. 1933년 돌격대와 보조 경찰이 체포자를 가두고 고문하는 데 썼다. ↩
  91. [옮긴이] 포츠담의 날: 1933년 3월 21일 포츠담 수비대 교회에서 열린 새 제국의회 개원식. 히틀러와 힌덴부르크가 악수하는 장면으로 나치와 옛 프로이센 보수 세력의 결합을 연출했다. ↩
  92. [옮긴이] 《D. A. Z.》: 베를린의 보수 일간지 《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Deutsche Allgemeine Zeitung)의 약칭. ↩
  93. [옮긴이] 마우러: 미국 언론인 에드거 앤설 마우러(Edgar Ansel Mowrer). 나치를 비판한 보도로 압력을 받아 1933년 가을 독일을 떠났다. ↩
  94. [옮긴이] 1933년 이전부터 돌격대 노래와 나치 선동에서 권력을 잡은 날 정적들을 한꺼번에 처단하겠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다. 1934년 6월 히틀러가 룀 등 돌격대 지도부를 숙청한 사건을 가리키는 「긴 칼의 밤」은 이 책이 나온 뒤의 일이다. ↩
  95. [옮긴이] 국왕 봉인장(lettres de cachet)은 프랑스 구체제에서 국왕이 재판 없이 사람을 가두라고 내리던 명령서. 태형 대열 통과(Spießrutenlaufen)는 두 줄로 늘어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게 하며 회초리로 때리던 옛 군대 형벌이다. ↩
  96. [옮긴이] 이 말은 흔히 1209년 알비 십자군의 베지에 학살 때 교황 특사 아르노 아말리크가 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의 밤과는 관계가 없다. 원서의 착오다. ↩
  97. [옮긴이] 1933년 3월 21일 「포츠담의 날」. 새 제국의회 개원에 맞춰 포츠담 수비대 교회에서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히틀러가 국가 의식을 열었다. 이 교회에는 프리드리히 대왕(본문의 「지팡이 짚은 군주」)의 묘소가 있었다. ↩
  98. [옮긴이] 막스 라이히피치와 알빈 쾨베스. 1917년 독일 대양함대 수병들의 반전 저항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그해 9월 총살된 수병들로, 1918년 11월 혁명의 선구자로 기려졌다. ↩
  99. [옮긴이] 「새로운 러시아의 친구 협회」는 1923년 베를린에서 독일과 소련의 문화 교류를 위해 만든 단체. 아르코 백작은 무선 기술자 게오르크 폰 아르코로 보인다. 사민당 출신 언론인 에리히 바론은 1933년 4월 구금 중에 죽었다. ↩
  100. [옮긴이] 국회의사당 화재 직후 체포되었다가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이라 3월 중순 추방된 에곤 에르빈 키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01. [옮긴이] 대마는 밧줄의 재료다. 반대파를 대거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뜻의 비유. 프란츠 슈퇴어는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제국의회 의원이었다. ↩
  102. [옮긴이] 카를 뢰버. 바이마르 시기 민족사회주의자가 단독으로 주 정부를 맡은 첫 사례로, 1932년 6월 올덴부르크 자유주의 총리가 되었다. 중앙당은 가톨릭 정당이다. ↩
  103. [옮긴이] 빌헬름 셰프만(원문 철자 Scheppman). 돌격대 지휘관으로 1933년 도르트문트 경찰청장이 되었고, 1943년에는 돌격대 참모장에 올랐다. ↩
  104. [옮긴이] 괴링은 1933년 1월 30일부터 프로이센 내무부를 맡은 제국 판무관이었다. 2월 17일 명령은 경찰이 “국가에 적대적인 조직”에 맞서 거리낌 없이 총기를 쓰도록 지시했다. ↩
  105. [옮긴이]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헤데만 거리에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돌격대 지구 본부가 있었고, 1933년 봄 그 건물은 초기 고문 장소의 하나로 쓰였다. ↩
  106. [옮긴이] 1933년 3월 5일 제국의회 선거의 투표용지에서 독일 공산당은 3번 명부였다. ↩
  107. [옮긴이] 빌헬름 졸만(1881~1951). 쾰른의 사회민주당 신문 《라인 신문》 편집장으로, 1923년 슈트레제만 내각의 제국 내무장관을 지냈다. 이 일을 겪은 뒤 자르로, 이어 미국으로 망명했다. ↩
  108. [옮긴이] 오스트리아의 민족사회주의자들이 독일 땅에서 꾸린 무장 조직인 「오스트리아 군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09. [옮긴이] 빌헬름 피크는 독일 공산당 지도자였다(실제로는 체포를 피해 망명했다). 울슈타인은 유대계 집안이 운영하던 베를린의 큰 출판·신문사 울슈타인 출판사를 가리킨다. ↩
  110. [옮긴이] 체카와 게페우(G.P.U.)는 소련 비밀경찰의 이름이다. 체카는 1917~1922년의 이름이고, 1922년에 국가정치국(ГПУ)으로 바뀌었다. ↩
  111. [옮긴이] 알프레트 골트샤이더(1858~1935)는 베를린 대학 병원의 내과 원장이었다. 뒤에 나오는 페르디난트 자우어브루흐(1875~1951)는 당대 독일에서 가장 이름난 외과 의사였다. ↩
  112. [옮긴이] 검정·빨강·금색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 색이다. 나치는 1933년 3월 이 깃발을 내리고 검정·하양·빨강 옛 제국기와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국기로 삼았다. ↩
  113. [옮긴이] 원문 DM-Verband는 독일 금속노동자 연맹(Deutscher Metallarbeiter-Verband)으로, 독일 최대의 자유노조였다. ↩
  114. [옮긴이] 알베르트 레오 슐라게터(1894~1923)는 1923년 프랑스의 루르 점령에 맞서 파괴 공작을 벌이다 프랑스 군사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되었다. 나치는 그를 순교자로 떠받들었다. ↩
  115. [옮긴이] 베를린 시영 전력 회사(Berliner Städtische Elektrizitätswerke AG)의 약칭. ↩
  116. [옮긴이] 인도 공산주의자 소미엔드라나트 타고르(1901~1974)로, 실제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형의 손자다. 1933년 뮌헨에서 체포되었다가 추방되었다. 제목의 「진짜 아리아인」은 나치 인종론이 인도인을 아리아인으로 친 것을 비꼰 말이다. ↩
  117. [옮긴이] 카를 슈레크(1873~1956). 빌레펠트의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국민의회·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
  118. [옮긴이] 1893년에 세워진 독일 유대인의 가장 큰 단체로, 법정 소송과 계몽 활동으로 반유대주의에 맞섰다. 흔히 「중앙 협회(C. V.)」라고 줄여 불렀다. ↩
  119. [옮긴이] 아돌프 슈퇴커(1835~1909). 베를린의 프로이센 궁정 설교사로, 1878년 기독교 사회당을 세우고 반유대주의 선동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였다. 1890년 궁정 설교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
  120. [옮긴이] 에른스트 오트발트(1901~1943). 독일 공산주의 작가. 『독일이여 깨어나라! 민족사회주의의 역사』(1932)를 썼다. 1933년 망명해 소련으로 갔다가 1936년 체포되어 수용소에서 죽었다. ↩
  121. [옮긴이] 오이겐 뒤링(1833~1921). 베를린 대학 강사였던 철학자·경제학자로,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비판한 그 사람이다. 체임벌린은 『19세기의 기초』를 써서 인종주의 역사관을 퍼뜨린 영국 태생 독일 작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1855~1927)이다. ↩
  122. [옮긴이] 해군 장교 헤르만 에르하르트가 이끈 의용군 부대. 1920년 3월 카프 폭동 때 베를린에 진주했고, 철모에 하켄크로이츠를 그려 넣었다. ↩
  123. [옮긴이] 요한 폰 레어스(1902~1965). 민족사회주의 반유대주의 선전가. 『유대인들이 너를 바라본다』(1933)는 유대인과 나치가 「유대적」이라고 지목한 인물들의 사진에 비방 설명문을 단 책이다. ↩
  124. [옮긴이] 알베르트 그제진스키(1879~1947).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프로이센 내무장관과 베를린 경찰청장을 지냈다. 원문 철자는 Gresinski. ↩
  125. [옮긴이] 에른스트 한프슈텡글(1887~1975). 미국 유학파 미술 출판업자 집안 출신으로, 히틀러의 측근이자 NSDAP 해외 언론 담당자였다. ↩
  126. [옮긴이] 롤란트 프라이슬러(1893~1945). 카셀의 변호사로 NSDAP 지역 간부였고, 1933년 프로이센 법무부 국장, 이어 차관이 되었다. 뒷날 민족 법정 재판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
  127. [옮긴이] 알프레트 비소츠키(1873~1959). 1931~1933년 베를린 주재 폴란드 공사. ↩
  128. [옮긴이] 당시 프랑스 대랍비는 이스라엘 레비(1856~1939, 재임 1920~1939)였다. ↩
  129. [옮긴이] 카를 홀츠(1895~1945). 《데어 슈튀르머》 편집자로 슈트라이허의 오른팔이었고, 뒤에 프랑켄 대관구장 대리와 대관구장을 지냈다. ↩
  130. [옮긴이] 1933년 3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경찰청장에 임명된 퇴역 장군 테오도어 폰 베스트렘 춤 구타커를 가리킨다. ↩
  131. [옮긴이] 전신 연합(Telegraphen-Union): 후겐베르크 계열의 민간 통신사. 1933년 말 볼프 전신국과 합쳐져 독일 통신사(DNB)가 되었다. ↩
  132. [옮긴이] 당시 프로이센 법무부를 맡은 제국 판무관은 한스 케를이었다. ↩
  133. [옮긴이] 베른하르트 루스트(1883~1945). 1933년 2월부터 프로이센 학술·예술·국민교육부 장관(문화부 장관)이었고, 1934년부터 제국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
  134. [옮긴이] 1933년 4월 7일의 「직업 공무원 제도 재건법」. 인용된 인종·정치 심사 조항은 4월 11일의 제1 시행령 등 시행 규정에서 나온 것이다. ↩
  135. [옮긴이] 게르하르트 바그너(1888~1939). 민족사회주의 독일 의사 연맹 지도자로, 1933년 3월 독일 의사 단체들의 판무관이 되었고 뒤에 제국 의사 지도자가 되었다. ↩
  136. [옮긴이] 공식 명칭은 「독일 학교와 대학의 과밀을 막는 법률」(Gesetz gegen die Überfüllung deutscher Schulen und Hochschulen)로, 유대인 신입생 비율을 1.5퍼센트로 제한했다. 원서는 Überfremdung(외래화)으로 적었다. ↩
  137. [옮긴이] 오토 디트리히(1897~1952). NSDAP 제국 공보 책임자로, 1933년 독일 언론 제국 연맹 의장이 되었다. ↩
  138. [옮긴이] 앞뒤 맥락상 독일 수영 연맹(Deutscher Schwimm-Verband)의 약칭으로 보인다. ↩
  139. [옮긴이] 민족사회주의 사업장 세포 조직(NSBO): 나치당이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려고 만든 단체. 1933년 5월 노동조합 해산 뒤 독일 노동 전선에 흡수되었다. ↩
  140. [옮긴이] 당시 경제 담당 제국 판무관은 오토 바게너(1888~1971)였다. 원서는 「바그너 박사」로 적었는데, 바게너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
  141. [옮긴이] 아돌프 슈퇴커(1835~1909). 프로이센 궁정 설교사로 1878년 기독교사회당을 세워 1880년대 베를린 반유대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
  142. [옮긴이] 오이겐 뒤링(1833~1921). 독일 철학자·경제학자.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비판한 그 사람으로, 1881년 『인종·풍속·문화 문제로서의 유대인 문제』를 펴내 인종 반유대주의의 이론가가 되었다. ↩
  143. [옮긴이] TU = 전신 연합(Telegraphen-Union). 후겐베르크 계열의 독일 통신사. ↩
  144. [옮긴이] 아힘 게르케(1902~1997). 나치당의 족보 조사 담당자로, 1933년 제국 내무부의 인종 연구 전문가가 되어 아리아인 혈통 증명 업무를 맡았다. ↩
  145. [옮긴이] 마르틴 슈테믈러(1890~1974). 병리학자로 나치 인종 위생학의 주요 선전가였다. ↩
  146. [옮긴이] 에른스트 베르크만(1881~1945). 라이프치히 대학 철학 교수로 「독일 신앙 운동」의 이론가. 『인식의 정신과 어머니의 정신』은 1932년에 나왔다. ↩
  147. [옮긴이] 한스 하인츠 에버스(1871~1943). 공포·에로 소설로 이름난 작가로, 1932년 나치 순교자 호르스트 베셀을 다룬 소설을 썼다. ↩
  148. [옮긴이] 베른하르트 루스트(1883~1945). 하노버의 김나지움 교사였다가 1930년 해직되었고, 1933년 프로이센 문화부 장관, 1934년 제국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
  149. [옮긴이] 예히엘 야코프 바인베르크(1884~1966)로 보인다. 베를린 정통파 랍비 신학교 교장이었다. ↩
  150. [옮긴이] 오스카 바서만(1869~1934).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 방크 운트 디스콘토 게젤샤프트의 이사회 대변인으로, 1933년 5월 물러났다. ↩
  151. [옮긴이] 1919년 3월 말 녹음한 연설 「유대인 학살 선동에 관하여」. 여기 실린 것은 러시아어 원문을 독일어로 옮긴 것을 다시 옮긴 것이다. ↩
  152. [옮긴이] 1918년 7월 27일 인민위원회의 포고 「반유대주의 운동의 근절에 관하여」. 레닌이 마지막 문장을 손수 덧붙였다. ↩
  153. [옮긴이] 원서의 「Geyde」는 영국 기자 G. E. R. 게디(Gedye)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빈에 머물며 《데일리 텔레그래프》 중부 유럽 특파원으로 일했다. 원서 표기대로 옮겼다. ↩
  154. [옮긴이] 아담 렘멜레(1877~1951). 방앗간 일꾼 출신의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바덴 주 내무장관과 주 대통령을 지냈다. ↩
  155. [옮긴이] 루트비히 마룸(1882~1934). 유대계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바덴 법무장관을 지냈다. 1934년 3월 키슬라우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
  156. [옮긴이] 1848년 혁명 뒤 프로이센에서 제정된 인신 자유 보호법(1850년 2월 12일 공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57. [옮긴이] 츠비카우의 오스터슈타인성(Schloss Osterstein)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서는 「Ortenstein」으로 적었다. ↩
  158. [옮긴이] 한스 리텐(1903~1938). 공산주의자 피고인들을 변호한 베를린 변호사로, 1931년 재판에서 히틀러를 증인으로 불러 추궁했다. 1938년 다하우 수용소에서 죽었다. ↩
  159. [옮긴이] 빌헬름 카스퍼(1892~1946). 공산당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단 대표. ↩
  160. [옮긴이] 헤르만 푀르츠겐. 《프랑크푸르터 차이퉁》 기자. 이어지는 그의 방문기 인용은 이 번역에 싣지 않았다. ↩
  161. [옮긴이] 바이에른 인민당 계열의 무장 조직. ↩
  162. [옮긴이] 에른스트 슈넬러(1890~1944). 공산당 제국의회 의원이자 당 군사 부문 책임자. 1944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
  163. [옮긴이] 노이마르크의 존넨부르크(지금 폴란드의 스원스크)에 있던 옛 징역형 감옥. 1933년 4월 초 프로이센의 강제수용소로 다시 문을 열었다. ↩
  164. [옮긴이] 에리히 뮈잠(1878~1934)은 아나키스트 시인으로, 1934년 7월 오라니엔부르크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 카스퍼는 공산당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 빌헬름 카스퍼로 보인다. ↩
  165. [옮긴이] 작센 스위스 지방의 호엔슈타인(Hohnstein) 성. 1933년 3월부터 작센 최대의 초기 강제수용소로 쓰였다. ↩
  166. [옮긴이] 슈바벤 알프 고원의 군 훈련장 호이베르크에 1933년 3월 세워진 뷔르템베르크·바덴의 첫 강제수용소. ↩
  167. [옮긴이] G. E. R. 게디(1890~1970). 영국 기자로, 당시 《데일리 텔레그래프》 특파원이었다. 원문 철자는 Geyde. ↩
  168. [옮긴이] 프랑스의 스포츠 의학자 마르셀 벨랭 뒤코토로 보인다. ↩
  169. [옮긴이] 1933년 4월 12일의 일로, 다하우 수용소에서 일어난 첫 살인이다. 희생자는 루돌프 베나리오, 에른스트 골트만, 아르투어 칸, 에르빈 칸이다. ↩
  170. [옮긴이] 한스 바이물러(1895~1936). 공산당 바이에른 주의회·제국의회 의원. 1933년 5월 다하우에서 탈출했고, 에스파냐 내전 때 국제여단에서 싸우다 마드리드에서 전사했다. ↩
  171. [옮긴이] 독일국가인민당의 청년·준군사 조직. 1933년 6월 21일 해산되었고, 독일국가인민당도 6월 27일 스스로 해산했다. ↩
  172. [옮긴이] 1933년 2월 28일의 「민족과 국가 보호를 위한 대통령령」, 곧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 ↩
  173. [옮긴이] 1930년 9월 라이프치히 제국 법원에서 열린 울름 국방군 장교 재판(나치 선전 혐의)에 증인으로 나온 히틀러는, 나치가 집권하면 “11월 범죄자들”을 재판할 국사 재판소가 세워지고 “목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174. [옮긴이] 1933년 3월 21일 자 「형 면제 부여에 관한 대통령령」. 1933년 1월 30일부터 3월 21일 사이에 “독일 민족의 민족적 봉기를 위한 투쟁에서” 저지른 범죄를 사면했다. ↩
  175. [원주] 2월 1일: 헬무트 셰퍼(펠베르트), 프랑케와 한스 하세(빌헬름스부르크), 파울 슐츠(베를린). 2월 2일: 회페(알토나), 빌헬미네 슈트루트(함보른). 2월 3일: 케테 젠홀트(뒤스부르크), 에르빈 베르너와 알프레트 콜라치(베를린), 베트만. 2월 5일: 안나 뢰더(베를린), 발터 슈타인펠트(브레슬라우), 바더(괴팅겐), 파울 피셔(켐니츠), 헤르만 카스텐(슈타스푸르트). 2월 6일: 마르틴 로이셸(빌헬름스부르크). 2월 7일: 로베르트 라트케(쾰른). 2월 8일: 빌헬름 에서(글라트바흐레이트). 2월 9일: 하인리히 립스(쾰른). 2월 11일: 슈치플리크(헤클링겐). 2월 12일: 바르니카우(아셀른-도르트문트), 요제프 멩(벤스하임), 그로스유스틴의 한 농업 노동자. 2월 14일: 오토 헬름과 발터 슈나이더(아이슬레벤), 슈토크(쾰른칼크), 쿠르트 뢰어(뒤스부르크오르트). ↩
  176. [옮긴이] 1932년 8월 10일 밤 상슐레지엔 포템파에서 돌격대원들이 공산당 지지자인 폴란드계 노동자 콘라트 피에추흐를 그 어머니 앞에서 짓밟아 죽였다. 보이텐 특별 법원이 다섯 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히틀러는 그들에게 연대의 전보를 보냈고, 파펜 정부는 형을 무기 징역으로 감형했다. ↩
  177. [옮긴이] WTB = 볼프 전신국(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독일의 반관영 통신사. ↩
  178. [옮긴이] TU = 전신 연합(Telegraphen-Union). 후겐베르크 계열의 독일 통신사. ↩
  179. [옮긴이] 함부르크 동부 호른의 습지대로, 노동자들의 텃밭과 오두막이 모여 있던 곳이다. ↩
  180. [옮긴이] 에른스트 에크슈타인(1897~1933). 브레슬라우의 변호사로 사회민주당 좌파를 거쳐 사회주의 노동자당(SAP)을 이끌었다. 1933년 2월 말 체포되어 학대를 받다가 5월 8일 숨졌다. ↩
  181. [옮긴이] 베를린 남서쪽 클라인마흐노 일대의 숲(Machnower Forst). ↩
  182. [옮긴이] 적색 구원회(Rote Hilfe). 공산당 계열의 구호 단체로, 정치범과 그 가족을 법률·물질 면에서 도왔다. ↩
  183. [옮긴이]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있던 베를린 경찰청 본부 건물을 부르던 이름. ↩
  184. [옮긴이] 만프레트 폰킬링거(1886~1944). 에르츠베르거 암살에 연루된 우익 의용군 출신으로, 1933년 작센의 제국 판무관을 거쳐 작센 주 총리가 되었다. ↩
  185. [옮긴이] 발터 쉬츠.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의 공산당 간부이자 제국의회 의원으로, 1933년 3월 돌격대에 살해되었다. ↩
  186. [옮긴이] 알베르트 푼크(1894~1933). 루르의 광부 출신 공산당원으로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고, 공산당 계열 광원 통일 연맹을 이끌었다. ↩
  187. [옮긴이] 1927년 적발된 소련 체르보네츠 지폐 위조 사건을 두고 193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재판. 그루지야 망명자들과 독일 우익 인사들이 소련을 흔들고 그루지야를 떼어 내려고 꾸민 일로, 피고들은 정치적 동기가 인정되어 가볍게 처리되었다. ↩
  188. [옮긴이] 헨리 데테르딩(1866~1939). 네덜란드 출신으로 로열 더치 셸을 이끈 석유 기업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유전을 잃은 뒤 반소 운동을 지원했다. ↩
  189. [옮긴이] 슐츠는 1920년대 흑색 국방군의 페메 살인에 연루된 파울 슐츠, 슈바르츠는 나치당 재무 책임자 프란츠 크사버 슈바르츠다. ↩
  190. [옮긴이] 1932년 뮌헨에서 나치 당원 에밀 단차이젠 등이 룀과 그 측근(돌격대 정보 책임자 카를 레온 뒤 물랭에카르트 백작, 벨, 울)을 살해하려 모의한 혐의로 재판받은 사건. 부흐 소령은 나치당 당내 재판 기구의 우두머리 발터 부흐다. ↩
  191. [옮긴이] 하누센(헤르만 슈타인슈나이더)은 실제로는 1889년 6월 2일에 태어났다. ↩
  192. [옮긴이] 《베를리너 타게블라트》를 내던 루돌프 모세 출판사의 베를린 사옥. ↩
  193. [옮긴이] 1933년 6월 21~26일의 이른바 「쾨페니크 피의 주간」. 돌격대가 사회민주당원·공산당원 등 수백 명을 잡아들여 고문했고, 20명 넘게 죽었다. 1934년 6월 30일 룀 숙청을 가리키는 「긴 칼의 밤」과는 다른 일이다. ↩
  194. [옮긴이] 각 항목 끝 괄호는 원서가 밝힌 출처다. 「목격자 보고」는 원문의 Zeugenbericht(증인 보고)로, 편찬자나 그 대리인 앞에서 한 증언을 뜻한다. 「보고 참조」는 그 사건을 자세히 다룬 앞 10장의 보고를 가리킨다. 원서의 신문 약칭(Frankf. Z., Voss. Z., M.N.N., V.B. 따위)은 신문 이름을 풀어 옮겼다. ↩
  195. [옮긴이] WTB = 볼프 전신국(Wolffs Telegraphisches Bureau). 독일의 반관영 통신사로, 정식 법인 이름(Continental-Telegraphen-Compagnie)을 따 「Conti」로도 불렸다. TU = 전신 연합(Telegraphen-Union). 후겐베르크 계열의 통신사. 두 통신사는 1933년 말 합쳐져 독일 통신사(DNB)가 되었다. ↩
  196. [옮긴이] 1931년 말 사회민주당·국기단·자유 노동조합·노동자 체육 단체들이 나치에 맞서 결성한 연합 조직. ↩
  197. [옮긴이] 국제 노동자 구원회(Internationale Arbeiterhilfe). 1921년 결성되어 빌리 뮌첸베르크가 이끈 공산당 계열의 국제 구호 단체. ↩
  198. [옮긴이] 보호 구금(Schutzhaft). 1933년 2월 28일의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을 근거로 재판 없이 사람을 무기한 가둔 경찰 구금. ↩
  199. [옮긴이] 베를린의 박람회장 「우니베르줌 박람회 공원」(Universum-Landesausstellungspark)의 약칭. 그 식당 아래 지하실에 돌격대의 고문실이 있었다. ↩
  200. [옮긴이] 롤란트 프라이슬러(1893~1945). 카셀의 변호사 출신 나치 법률가로, 1933년 프로이센 법무부 차관이 되었고 1942년부터 민족 재판소장을 지냈다. ↩
  201. [옮긴이] 뮌헨에 있던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의 중앙 당사. ↩
  202. [옮긴이] 에리크 얀 하누센(1889~1933). 본명 헤르셸 슈타인슈나이더. 빈 출신의 유대계 투시술 공연가·점쟁이로, 베를린에서 나치 고위층과 어울렸다. 1933년 3월 말 돌격대에게 끌려가 살해되었고 4월 7일 시체로 발견되었다. ↩
  203. [옮긴이] 함부르크 동부 호른의 습지대로, 노동자들의 텃밭과 오두막이 모여 있던 곳이다. ↩
  204. [옮긴이] 적색 구원회(Rote Hilfe). 공산당 계열의 구호 단체로, 정치범과 그 가족을 법률·물질 면에서 도왔다. ↩
  205. [옮긴이] 독일국가인민당 원내 대표였던 오버포렌이 썼다고 알려진 비망록으로, 나치 지도부가 국회의사당 방화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1933년 4월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에 실렸고 『갈색책』의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206. [옮긴이] 한스 프랑크(1900~1946). 히틀러의 변호사였던 나치 법률가로, 1933년 바이에른 법무장관이 되었고 뒤에 점령 폴란드의 총독을 지냈다. ↩
  207. [옮긴이] 알베르트 레오 슐라게터(1894~1923). 1923년 프랑스의 루르 점령 때 파괴 공작을 벌이다 붙잡혀 5월 26일 처형된 의용군 출신으로, 나치가 순교자로 떠받들었다. 이 살인은 그의 10주기에 일어났다. ↩
  208. [옮긴이] 1933년 6월 21일부터 며칠 동안 베를린 쾨페니크에서 돌격대가 사회민주당원·공산당원 등 수백 명을 붙잡아 고문하고 수십 명을 죽인 「쾨페니크 피의 주간」. 1572년 파리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에 빗댄 말이다. ↩
  209. [옮긴이] 1931년 헤센의 나치 간부들이 복스하이머호프에서 작성한 문서로, 권력을 잡은 뒤의 즉결 처형 따위를 규정했다. 당원이던 셰퍼가 이를 당국에 넘겨 폭로되었다. ↩
  210. [옮긴이] 1932년 7월 17일 「알토나 피의 일요일」 충돌을 두고 열린 재판에서 공산주의자 아우구스트 뤼트겐스, 발터 묄러, 브루노 테슈, 카를 볼프가 사형을 선고받아 1933년 8월 1일 처형되었다. ↩
  211. [옮긴이] 1913년 알자스의 소도시 차베른(사베른)에서 프로이센 장교가 주민을 모욕하고 군대가 주민을 불법으로 체포·구금한 사건. 제국의회가 정부 불신임을 결의했으나 군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
  212. [옮긴이] 1910년 베를린 모아비트의 석탄 회사 파업 때 경찰이 노동자와 주민을 무차별 구타하며 진압한 사건. ↩
  213. [옮긴이] 1906년 구두장이 빌헬름 보이크트가 대위 군복을 입고 병사들을 거느려 쾨페니크 시청을 점거하고 시장을 체포한 뒤 금고를 가져간 사건. 군복만 보면 복종하는 프로이센 풍조를 드러낸 일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
  214. [옮긴이] 제1차 세계대전 개전 무렵 독일 정부와 신문이 프랑스 비행기가 뉘른베르크 일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발표한 일을 가리킨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나 8월 초 독일의 대프랑스 선전포고에 구실로 쓰였다. ↩
  215. [옮긴이] 1932년 8월 바르뷔스와 롤랑의 호소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반전 대회와 거기서 생겨난 반전·반파시즘 운동(암스테르담-플레옐 운동). ↩
  216. [옮긴이] 마그누스 폰 레베초(1871~1939). 제국 해군 제독 출신으로 1933년 2월부터 1935년까지 베를린 경찰청장을 지냈다. ↩
  217. [옮긴이] 독일 인권 연맹(Deutsche Liga für Menschenrechte). 제1차 세계대전 중의 평화주의 단체 신조국 동맹을 이어 1922년 이 이름을 얻은 시민적 평화주의·인권 단체로, 레만루스뷜트는 그 창립자이자 오랜 사무국장이었다. ↩
  218. [옮긴이] 1933년 봄 코펜하겐에서 나온 반파시즘 소책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
  219. [옮긴이] 1933년 3월 말 유대인 전선병사 제국동맹 등 독일의 유대인 단체들이 외국의 보도를 반박하는 성명을 낸 일을 가리킨다. ↩
  220. [옮긴이] 원문 Pg.(Parteigenosse). 나치 당원끼리 부르던 호칭이다. ↩
  221. [옮긴이] 독일국가인민당(DNVP)의 청년 조직. 1933년 6월 21일 프로이센 경찰이 공산주의자 침투를 구실로 해산했고, 며칠 뒤 독일국가인민당도 스스로 해산했다. ↩
  222. [옮긴이] 권력 장악 뒤 자본가와 옛 지배층을 겨냥한 “두 번째 혁명”을 요구하던 돌격대와 나치당 안 일부 세력의 구호. 히틀러는 1933년 7월 6일 제국 총독 회의에서 “혁명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이를 억눌렀다. ↩
  223. [옮긴이] 민족사회주의 사업장 세포 조직(Nationalsozialistische Betriebszellenorganisation). 나치당이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려고 만든 단체. ↩
  224. [원주] 7월에 에르푸르트의 비밀 인쇄소 한 곳이 발각되었다. 활동가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돌격대에게 사살되었다. ↩
  225. [옮긴이] 나치 정부는 1933년 5월 1일 노동절을 “민족 노동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바꾸어 대규모 관제 행사를 열었고, 바로 이튿날인 5월 2일 노동조합 사무실을 일제히 점거했다. ↩
  226. [옮긴이] 1932년 7월 17일 알토나에서 나치 행진을 둘러싼 충돌로 18명이 죽은 이른바 “알토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두고 열린 재판. 아우구스트 뤼트겐스, 브루노 테슈, 카를 볼프, 발터 묄러는 증거가 거의 없는데도 사형을 선고받고 1933년 8월 1일 처형되었다. ↩
  227. [옮긴이] 실업 청년을 노동 봉사(Arbeitsdienst)에 동원해 집단 수용하던 수용소. 1933년에는 아직 자원 형식이었으나 나치는 이를 의무화하려 했고, 1935년 제국 노동 봉사로 의무화되었다. ↩
  228. [옮긴이] 헤센 인민주의회 의원을 지낸 독일 공산당 소속 교사. ↩
  229. [옮긴이] 쪽수는 1933년 원서의 것이다. 6장의 해임 학자 명단에 나오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공법학자 알베르트 헨젤(원서 표기 Henzel)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판의 명단에는 이미 “공법”으로 바로잡혀 있다. ↩